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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다 히카루

last modified: 2015-04-13 11:03:25 Contributors

우타다 히카루
본명 宇多田光 | Hikaru Utada[1]
예명 宇多田ヒカル | Utada | Cubic U
생년월일 1983년 1월 19일
출생지 미국 뉴욕 맨하탄
가족 부모 父 우타다 테루자네 (1948~ )
母 후지 케이코 (1951~2013)[2]
남편 前 키리야 카즈아키 (2002~2007)
現 Francesco Calliano (2014~ )
최종학력 컬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중퇴
음반사 일본 Eastworld/EMI (1997~2013)
Virgin Records/UMJ (2013~ )[3]
미국 Island Records/UMG (2002~2010)[4]
소속사 U3 MUSIC[5]
공식홈페이지트위터인스타그램

Contents

1. 소개
2. 생애와 활동
2.1. 1983~1998: 어린시절, U3와 Cubic U
2.2. 1998~2001: <First Love>, <Distance>
2.3. 2001~2006: <DEEP RIVER>, <EXODUS>, <ULTRA BLUE>
2.4. 2006~2010: <HEART STATION>, <This Is The One>, 활동중지
2.5. 2011~ : 활동중지 이후
3. 디스코그라피
3.1. 앨범
3.1.1. 스튜디오 앨범
3.1.2. 컴필레이션 앨범
3.1.3. 기타 앨범
3.2. 싱글
3.2.1. 피지컬 싱글
3.2.2. 디지털 싱글
3.2.3. DVD 싱글
4. 기타


宇多田ヒカル (うただ ヒカル, 1983.01.19 - )
일본/미국여성 싱어송라이터.

1. 소개

일본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 1998년 15살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작사/작곡 실력과 가창력으로 충격적인 데뷔를 한 후 활동중지한 현재까지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수들 중 하나. 어지간한 유명 가수는 안티가 있게 마련이지만 우타다를 까는 사람은 별로 없다. 90년대 말 일본 가요와 POP를 융합시키며 J-POP의 흐름을 바꾼, 일본대중음악을 논하는데 절대 빠질 수 없는 인물.

음악 프로듀서인 아버지와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어린시절부터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기에 영어일본어를 모두 모국어로 구사하는 바이링구얼이다. 국적은 미국과 일본의 복수국적.[6] 애칭은 히키(ヒッキー, Hikki)[7]로 뉴욕의 친구가 어린시절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

10살부터 작사/작곡을, 16살부터 공동편곡을 시작했고, 21살 이후 단독편곡 및 프로그래밍, 프로듀싱 등 모든 음악작업을 스스로 한다. 굉장히 실험적으로 데뷔 이후 음악이 매우 많이 바뀌었는데 초기에는 R&B에 기반을 둔 팝이었지만 현재에는 ,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있다. 작사가로서는 기존의 J-POP 가사와는 다른 음절분절을 시도하여 일본어로 된 그루브를 만들어냈다고 평가받는다.[8] 프로그래밍을 통한 치밀한 편곡과 두텁고 화려한 코러스가 특징인데 모든 프로듀싱과 백보컬을 본인이 소화한다. 가수로서는 허스키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가성이 맛깔나고 리듬감, 강약조절이 좋다.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평가받으나 선천적으로 성대가 약하고 난소종양 투병이후 건강이 악화되어 라이브가 컨디션에 따라서 들쑥날쑥하다. 노래가 멜로디, 음정 등의 변화가 심해 부르기 힘든 것도 라이브가 불안한 원인.[9] 여러모로 콘서트보다는 스튜디오에서 더 빛을 발하는 보컬이다.

데뷔부터 활동중지까지 줄곧 평단과 동료 아티스트들에게 찬사를 받으며 음악성을 인정받는 동시에 대중적으로도 전세대 인지도와 호감도가 최상위인 일본의 국민가수이다. 우타다가 일본음악계에 미친 영향과 받은 사랑은 그녀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에서 알 수 있는데 데뷔앨범인 <First Love>는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10]이고, 두번째 앨범 <Distance>는 첫주 판매량이 300만장으로 전세계 초동 1위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11]. 2007년 발표한 싱글 <Flavor Of Life>는 현재까지 약 922만건 다운로드되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디지털 음원이며, 활동중지로 전혀 언론매체에 나서지 않음에도 '오리콘 음악팬 2만명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2004년부터 2014년까지 계속 10위안에 들고있다.

2011년부터 음악활동을 중단하고 인간활동에 전념하고있다. 절대 은퇴는 아니며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말하였고, 2010년 12월 9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활동중지에 들어갔다. 2012년 11월 에반게리온: Q 주제곡 桜流し를 깜짝 발표하였지만 활동복귀는 부정했고, 2015년 4월까지 공식적인 음악활동은 재개하지 않고 있다.

2. 생애와 활동

2.1. 1983~1998: 어린시절, U3와 Cubic U

1983년 1월 19일 뉴욕 맨하탄에서 음악 프로듀서 우타다 테루자네와 엔카가수 후지 케이코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테루자네는 16살에 쇼치쿠 영화사 뉴욕지사에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이민을 간 뒤 음악계에서 활동했으며, 어머니는 떠돌이 로오쿄쿠(浪曲) 가수인 아버지와 맹인 샤미센 연주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후지 케이코는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부모님와 함께 유랑하며 노래를 부르며 생활했는데 우연히 연예관계자가 노래를 듣게되고 캐스팅되어 도쿄에서 엔카가수로 데뷔한다.

69년 9월 후지 케이코의 데뷔곡 '신주쿠의 여자'은 서서히 주목받기 시작해서 70년대 공전의 히트곡이 되고, 70년 3월 데뷔앨범 <신주쿠의 여자>는 무려 20주 연속 오리콘 앨범차트 1위를 하며 오리콘 연간 1위 앨범이 된다.[12] 21주차 1위를 가로막은건 자신의 2번째 앨범 <여자의 블루스>로 이 앨범은 17주 연속 주간 1위를 기록해 무려 37주 연속 1위를 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다. 인기절정인 71년 엔카가수 마에카와 키요시와 결혼하지만 1년만에 이혼하면서 인기가 꺾인다. 이후 성대결절 수술, 아버지의 가정폭력 문제, 어머니/친형제와의 금전적 갈등[13] 등의 문제들을 겪고 79년 은퇴를 선언하고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 우타다 테루자네와 후지 케이코는 만나게 되고 81년 후지 케이코는 연예계를 복귀하는데 이때부터 우타다 테루자네가 매니저와 음반 프로듀서 역할을 하게된다. 둘은 82년 결혼을 하고 83년 1월 뉴욕에서 외동딸 우타다 히카루를 낳게 된다.


우타다 히카루의 부모님은 언제나 스튜디오와 공연장에 어린딸을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딸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님은 전폭적으로 음악활동을 지원했는데, 우타다가 10살인 1993년 연예사무소 U3 MUSIC를 설립하고 U3라는 가족밴드를 결성해서 <STAR>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이때부터 부모님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작사/작곡을 시작했고 13살인 1996년 여름, 자작곡과 일부 커버곡으로 이루어진 앨범 <Precious>를 녹음한다. Cubic U라는 이름으로 1997년 미국 EMI에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계약문제로 취소되었고 1998년 1월 뉴욕 Free Base라는 인디레이블과 일본 토시바 EMI에서 소량 발매된다. 이 시기 Cubic U 이름으로 후지 케이코의 커플링 곡에 듀엣을 하거나 일부 곡에 작사로 참여하였다.

우타다는 10주년 기념 오피셜북 인터뷰에서 자신이 음악을 시작한 이유는 가수가 되거나 성공하고 싶었던게 아니고 단지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밝히면서, 음악은 자신과 부모님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라고 표현을 했다. 어린시절 가정환경은 비정상적으로 부모님은 3살때 처음 이혼을 하고 이후 6번 이혼-재혼을 반복했다고 하며 2주만에 이혼하고 재혼한 적도 있다고 한다. '내일 뉴욕으로 갈거야.', '오늘밤 도쿄로 갈거야.'는 식으로 셀 수 없이 도쿄와 뉴욕을 오가면서 친구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며 헤어진 적이 없다고. 특히 어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14] 자신은 다섯살때 이미 어른이 되었고 어머니가 정상적인 행동을 할 때가 오히려 무서웠다고 고백할 정도로 불안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2.2. 1998~2001: <First Love>, <Distance>

어린 우타다 히카루의 재능을 눈여겨본 음악출판사 글로벌 라이츠(Global Rights)[15]는 우타다에게 데모테이프 제작을 지원하고 모회사인 소니 뮤직에 데모를 보냈으나 일본에서 통하지 않는 음악이라고 거절당한다.그리고 1년뒤 땅을 치고 후회하는데(...) 글로벌 라이츠는 포기하지 않고 데뷔할 경우 출판권을 가지는 조건으로 우타다의 레코딩을 지원해주고 다른 음반사와 계약을 추진한다. 그렇게 97년 가을 도쿄 EMI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토시바 EMI의 이사 겸 프로듀서 미야케 아키라와 만나게 되고 우타다에게 매력을 느낀 미야케는 일본어로 된 노래를 써볼것을 권유한다. 우타다는 뉴욕으로 돌아가서 한달 뒤 'Never Let Go'[16]라는 노래를 보냈고, 미야케 아키라의 추천으로 토시바 EMI는 우타다와 계약을 맺고 앨범 제작에 들어간다. 이런 데뷔과정을 거쳤기에 우타다 히카루의 일본 음반제작사는 EMI(현재는 유니버설), 음악출판사는 소니 뮤직이라는 특이한 형태가 되어 레이블이 다르지만 소니계열 타이업이 붙거나 소니 뮤직이 홍보를 지원해주기도 한다.[17]

당시 우타다는 학업과 음악활동을 병행해서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고 방과후와 주말에 레코딩을 해서 방송매체에 출연해 홍보할 시간이 없었기에 TV출연 없이 오직 라디오를 통해서 노래를 홍보했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가수가 당시 일본에서 생소했던 R&B 기반의 세련된 팝을 들고온 것이 매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라디오를 통해 20-30대를 위주로 우타다의 이름과 노래는 입소문으로 퍼져나갔고 12월 9일 데뷔싱글 <Automatic / time will tell>이 발매된다.[18] 첫주 오리콘 순위는 20위로 낮았으나 점점 인기를 얻으며 엄청난 롱런을 하여 더블밀리언을 달성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타다 히카루가 15살의 싱어-송라이터고 후지 케이코의 딸이라는 정보가 알려지면서 노래뿐만 아니라 우타다 히카루 자체에 대한 관심을 커졌다.


99년 2월 하우스 장르의 곡인 두 번째 싱글 <Movin' on without you>이 발매되었다. Automatic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R&B라는 장르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했고 100만장 이상 판매되었다. 3월 10일 일본 음악사에 영원히 기억될 데뷔앨범 <First Love>가 발매된다. 발매 첫주에 최초출하량 200만장이 모두 매진되고 발매 2주차에도 100만장 이상이 판매되며 최종적으로 오리콘 기준 765만 장, 출하량 860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당시 모든 음반점에서 우타다 히카루 1집이 매진되었다고 하며 NHK 뉴스에서도 다룰 정도로 사회현상을 일으켰다. 이렇게 인기를 얻은것에 대한 여러가지 분석이 지금까지 일본에서 나오고 있는데 보통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꼽는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후반까지 J-POP의 주류는 코무로 테츠야 사단과 계열이었는데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대중들은 새로운 음악을 원하기 시작했다. 또 당시 일본은 쿠보타 요시노부나 MISIA가 R&B를 메인스트림에 소개했었지만 여전히 흑인음악의 볼모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적이고 세련된 멜로디를 가진 R&B 기반의 POP을 불과 15살의 소녀가 작사/작곡을 모두 스스로 해서 들고온 것이다. 그런데 그 소녀는 왕년의 명가수 후지 케이코의 딸이자 뉴욕태생으로 일본인들의 컴플렉스인 영어발음도 완벽했고, 2년 월반한 우등생에다가 방송에도 잘 안 나오는 신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외부조건이 받혀주는 상황에서 지금 들어도 신선하고 세련된 멜로디와 공들인 편곡, 성숙한 가사와 목소리, 뉴욕까지 가서 마스터링할 정도로 신경쓴 사운드 등 무엇보다 앨범퀼리티가 뛰어났기에 영원히 깨지지 않을 기록을 세운것이다.

우타다 히카루의 등장은 당시 활동하던 선배가수들과 이후 데뷔하는 후배가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코무로 테츠야는 인터뷰에서 "우타다 히카루가 데뷔했을때 나의 시대는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느꼈다."# DREAMS COME TRUE의 나카무라 마사토는 NHK 대담프로에서 "도리카무가 10년동안 힘들게 추구하던 가요곡과 POP의 융합을 우타다는 너무나 손쉽게 하고있었다. 우타다 히카루의 음악을 듣고 도리카무가 새로운 단계로 나갈 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이외에도 Spitz의 쿠사노 마사무네, 요시이 카즈야, 히라이 켄 등 많은 선배가수들이 충격적인 음반으로 <First Love>를 꼽았으며, 카토 미리야, May J, 이키모노가카리 등 수 많은 후배가수들은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를 계기로 가수를 꿈꾸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4월(봄방학) 도쿄와 오사카 라이브하우스에서 자신의 첫 라이브를 열고, 6월(여름방학)에 첫 TV프로모션을 시작했다. 우타다의 TV 첫출연은 뮤직스테이션으로 이날 출연분은 28%로 역대 최고 시청률이며 우타다가 노래를 부르고나서 순간시청률은 33.6%로 역대 2위의 기록. 이날 오프닝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딛어 휘청거렸는데, 14년이 흐른 후 First Love 노래를 부른 장면과 함께 2013년 다시 보고싶은 뮤직스테이션 영상 1위에 뽑혔다. 이후 SMAPXSMAP 비스트로와 HEY! HEY! HEY!에 출연했고 각각 시청률이 20-30%을 넘었으며, 뮤직스테이션, HEY! HEY! HEY!, 우타방, 스마스마의 역대 시청률 1위 또는 2위는 모두 우타다 히카루가 출연한 방송회차이다.

11월 <First Love> 이후 첫싱글 <Addicted To You>, 00년 4월에는 <Wait & See ~リスク~>가 발매된다. 전작의 인기로 발매전부터 예약이 폭주했고 프로듀싱을 Jam and Lewis가 맡아서 화제를 모았다. 두 싱글 모두 판매량이 160-170만장에 이르며 반짝 인기가 아님을 보여줬고 마이너한 멜로디와 세련된 비트과 조화를 이루며 우타다의 송라이팅 실력이 발전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6월에는 <For You/タイム・リミット>를 발매했는데 タイム・リミット는 GLAY의 타쿠로와 공동작곡이며 편곡은 Rodney Jerkins가 맡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월과 8월에 걸쳐 첫 전국투어 "BOHEMIAN SUMMER 2000"를 열었고 9월에는 컬럼비아 대학교에 입학한다.[19]


2001년 2월 드라마 히어로의 주제가이자 2집 선행싱글 <Can You Keep a Secret?>을 발매한다. 히어로는 평균시청률 34.3%로 폭발적인 인기였는데 08화에 우타다 히카루가 까메오로 등장해서 순간 최고 시청률 39.4%를 기록한다. 주인공들에게 물을 따라주는 웨이트리스 역할로 대사는 "실례합니다." 한마디, 등장시간은 10초. 블로그에 적은 출연감상은 방송에서 웨이트리스 제복을 입을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타이업의 시너지를 일으켜 <Can You Keep a Secret?>은 148.5만장으로 2001년 오리콘 연간 싱글차트 1위에 오른다.

3월 28일 2집 <Distance>를 발매하는데 하마사키 아유미의 베스트앨범 A BEST와 동시발매되어 엄청난 관심을 끌게된다. EMI가 발매일을 먼저 공개했는데 에이벡스에서 두 가희의 정면대결을 선포하며 같은날 베스트 앨범 발매하겠다고 발표해버렸다. 우타다와 하마사키 모두 최전성기였고 이런식으로 거물들끼리 앨범발매일을 맞붙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폭발하였다. 우타다의 앨범사양은 1종이고 하마사키는 6종이었으나 우타다의 1집이 경이적인 판매를 보여줘서 누가 위클리 1위를 할지 예측이 힘들었다. <Distance>는 첫주판매량 300만장, 역대 일본/세계 앨범 초동 1위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세우며 위클리 1위를 가져간다.[20]

2.3. 2001~2006: <DEEP RIVER>, <EXODUS>, <ULTRA BLUE>

7월 25일 <Distance>의 수록곡 'Distance'을 재편곡한 'FINAL DISTANCE'를 싱글로 발매한다. 원래 'Distance'를 리컷싱글로 발매할 예정이었지만 6월 일본 오사카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살해사건 피해자들중 한명이 우타다 히카루의 팬인 것을 알고 추모의 의미로 발라드로 재편곡해서 발매했다고 한다. CD안에는 추모의 메세지가 실려있고 수익금은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기부했다. FINAL DISTANCE는 우타다가 편곡과 프로그래밍을 연습하는 느낌으로 카와노 케이의 도움을 받아서 재편곡했다고 한다.


11월에는 우타다 히카루 음악커리어의 분기점 싱글 <traveling>이 발매된다. 1-2집까지 R&B와 외부 편곡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traveling을 기점으로 편곡, 프로그래밍과 프로듀싱의 주도권을 잡고 일렉트로니카쪽으로 음악성이 바뀌게 된다. 직설적이었던 가사도 난해해지고 철학적으로 변하고 음악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게 된다. 화려한 색감과 환상적인 연출의 PV도 매우 화제를 모았는데 전남편 키리야 카즈토시의 PV가 곡의 세계관을 완성시켰다며 우타다는 극찬, DVD 싱글로도 발매되어 오리콘 음악DVD 연간 1위를 차지하고 2002년 뮤직비디오 관련 상을 휩쓸었다. 가사는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서 후렴에 '春の夜の夢の如し(봄날 밤 꿈과 같느니라.)'라는 제1구 구절이 들어가는데, 일본 고전문학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많이 틀어준다고.

2002년 1월 유니버셜 뮤직 그룹의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과 미국진출을 발표하고, 3월에는 싱글 <光>을 발매한다. 5월 선행싱글 <SAKURAドロップス / Letters>, 6월 3번째 앨범 <DEEP RIVER>를 발매하고 TV출연을 비롯한 홍보활동을 할 예정이었으나 5월 9일 난소종양을 발표하면서 모든 프로모션 일정을 취소한다. 앨범녹음을 하면서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검진을 받았고 난소에 양성종양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았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적출을 했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고, 설상가상으로 호르몬 치료제도 부작용이 심해서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왔다고. 이때부터 체중의 증감이 심해지고 체력이 약해져 잔병치레가 많아지는 등 건강이 매우 안좋아졌고 라이브도 컨디션에 따라 기복이 심해졌다.

3집 <DEEP RIVER>는 프로모션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1,2집에 이어 초동 2,350,170장, 총판매량 3,604,588장이라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일관성있게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건강상 문제로 휴식을 취하던 중 9월 6일 19살의 나이로 결혼을 발표한다. 상대는 15살 연상의 사진작가/영화감독 키리야 카즈토시로 2000년 겨울 <Distance> 앨범촬영을 하면서 만나 사귀게 되었고 난소종양 투병을 하면서 결혼할 결심이 생겼다고 밝혔는데,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남자와 깜짝 발표된 결혼이라 당시 일본이 뒤집어졌다고. 이후 2007년 3월 이혼할때까지 우타다의 앨범자켓, PV, 콘서트 연출은 키리야 카즈토시가 담당한다.

2003년 1월 19일, 20살 생일이벤트로 20대는 이케이케!(20代はイケイケ!)라는 Ustream 생중계 이벤트를 열고, 열흘뒤 29일에는 프랑스 신혼여행중에 호텔에서 만들었다는 <COLORS>를 발매한다. COLORS를 마지막으로 공동편곡자 카와노 케이와 결별하고 단독편곡을 하게된다. 영어앨범을 준비하며 1년 이상의 공백기를 가지는데 2004년 3월 베스트 앨범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1>를 발매하고 데뷔 5주년 기념으로 일본무도관에서 5회 공연(ヒカルの5)을 가진다. 원래 우타다는 베스트 앨범을 낼 생각이 없었으나 소속사와 음반사의 권유로 발매했기에 어떠한 프로모션도 진행하지 않았다. 4월에는 남편 키리야 카즈토시의 영화 데뷔작 "캐샨"의 주제곡 <誰かの願いが叶うころ>을 발매한다. 미국앨범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도피성으로 만들었다고 하며 무조건 단순하고 심플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Utada라는 명의로 영어싱글 8월 <Easy Breezy>, 9월 <Devil Inside>이 차례로 공개되고 10월 영어 데뷔앨범(Cubic U <Precious>는 제외) <EXODUS>가 발매된다. 평단에서 비평은 대체로 호의적이고 앨범퀼리티도 나쁘지 않았으나 차트성적은...망했어요 빌보드 앨범차트 160위, Top Heatseekers 5위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둔다. 라디오 에어플레이나 프로모션이 전무했는데 아일랜드-데프잼에서는 1, 2집의 음악을 기대하고 계약했으나 우타다는 3집 이후의 음악을 고집해서 의견이 충돌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EXODUS>의 음악은 기존 팬들도 너무 난해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평이 많은데, 이런 음악을 데뷔앨범으로 만들고 프로모션 전무라는 배짱을 부렸으니 망하는게 당연한 결과일지도. 그래도 일본에서는 100만장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활동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지다가 2005년 가을부터 <Be My Last>, <Passion>, <Keep Tryin'> 싱글들을 2-3개월 간격으로 발매한다. 이때부터 피지컬 싱글판매량이 10만장대로 감소했는데 음반시장 축소와 미국진출 실패, 1년이 넘는 긴 공백기로 인한 인기저하, 점점 더 난해해지는 음악 등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부터 우타다의 가사는 직설적인 가사보다는 난해한 가사가 늘어났다. 피지컬 싱글 역시 사라고 만든 건지 모를 정도로 구성이 조악했는데, 종이 케이스로 된 패키징에 CD에는 커플링곡 없이 타이틀곡과 MR만 담아서 팔았다. 그래도 다운로드에는 강세여서 Keep Tryin'은 2006년 연간 아이튠즈 재팬 1위를 차지하고 다른 곡들도 상위권을 점령하였다.

2006년 3월 어머니 후지 케이코가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마약성분이 묻어있는 약 5억원의 지폐(미국, 호주, 캐나다 달러)를 가지고 있는게 발견되어 현금 전액이 압류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조사결과 마약과는 무관하고 카지노를 하기위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딸 우타다 히카루는 의도치 않은 구설수에 시달리게 된다. 압류사건보다 후지 케이코가 해명하기 위해서 일본매체와 인터뷰한 영상이 더 문제가 되었는데, 횡설수설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 한동안 연예프로와 찌라시에 오르내렸다. 이 무렵 부모님이 이혼을 했는데 우타다는 NHK 방송에서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이 6번의 이혼과 재혼을 반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6월 다섯번째 스튜디오 앨범 <ULTRA BLUE>가 발매된다. 본인의 기분이 초 우울해서 앨범 제목을 ULTRA BLUE라고 했다고 하는데, 음악은 복잡하고 가사는 우울하고 한마디로 난해하다. COLORS를 제외하고 전곡 편곡과 프로그래밍을 담당했으며 어느 앨범보다도 가장 우타다 히카루의 색깔이 짙은 앨범이라고 여겨진다. 앨범 판매랑은 초동 500,317장, 총 판매량 909,113장을 기록했고 우타다의 정규앨범들 중 유일하게 (오리콘 기준) 밀리언을 달성못했다. 상업적으로 부진한 앨범이라는 평이 있지만 다른 앨범들이 워낙 괴물같이 팔려서 그렇지 90만장이 쉽게 나오는 수치가 아니다.


7월부터 9월까지 6년만이자 2번째 전국투어 UTADA UNITED 2006을 개최한다. 남편 키리야 카즈아키가 무대연출을 담당했는데 화려한 LED와 빛을 이용한 연출이 인상적으로 초호화 세션을 자랑하는 우타다 답게 편곡과 연주도 뛰어나므로 우타다 히카루에게 관심있으면 꼭 봐야할 콘서트. 아쉬운 점은 목상태가 공연에 따라 편차가 크고 투어 마지막에 가면 성대폴립이 수술을 고려해야할 정도로 심각해져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후쿠오카 공연에서는 아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오자키 유타카도 똑같은 상태로 온적 있다고 말하자 오자키의 광팬인 우타다는 "완전 잘됐네요!"라며 기뻐했다고(...)

2.4. 2006~2010: <HEART STATION>, <This Is The One>, 활동중지

6년만의 전국투어를 마치고 다시 잠수를 타나 싶었는데 11월 22일 동요 <ぼくはくま>가 싱글로 발매되었다. 전작 <ULTRA BLUE>가 난해함과 어두움의 절정이었기에 "나는 곰~ 곰~ 곰~"이러는 귀여운 동요에 팬들은 대부분 당황. NHK 어린이 방송에 주제곡으로 쓰였는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 동요싱글이 14만장이나 팔리는 저력을 보여줬다. 우타다는 23살 생일에 커다란 곰인형을 선물받았는데 곰돌이가 너무 좋아서 이름을 '쿠마쨩(くまちゃん)'[21]이라 짓고 매일밤 껴안고 놀았는데 자연히 멜로디가 떠올라서 만든 곡이라고 한다. 데뷔이후 처음으로 (발표할) 노래를 만든다는 의식을 가지지 않고 마음가는데로 만들어 데뷔전 어린시절이 생각난다고. 자신이 만든 노래들 중 최고 명곡이라고 공언하고 다닐정도로 우타다의 애착이 매우 강하다.


2007년 2월 28일 드라마 꽃보다 남자2 주제곡인 <Flavor Of Life>를 발매한다. 전국투어 이후 성대폴립이 심각해서 약물치료를 받으며 1-2년간 휴식기를 가질 생각이었는데 드라마 주제곡 오퍼가 들어왔고 원작팬이었기에 승낙했다고. 인터뷰와 자신의 블로그에서 "인기가 많은 드라마고 많은 사람들이 들을 노래여서 오랜만에 대중성에 신경을 썼다. 아마 많이 팔리지 않을까요?"라고 밝혔는데 결과는 초대박. 2007년에 유료 다운로드 700만건, 2008년에 800만건, 2011년에는 900만건을 돌파해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디지털 음원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마음 먹으면 히트곡을 쓰는 무서운 여자(...) 쿠와타 케이스케는 Flavor Of Life를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노래로 꼽고 싶다고 칭찬할 정도로 음악성에서도 호평.

3월 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키리야 카즈아키와 4년 7개월만의 이혼을 발표했다. 도쿄와 뉴욕을 오가는 생활차이 등이 원인으로 발전적인 관계를 위해서 헤어지기로 했다고. 실제로 나쁘게 헤어지지는 않았는지 서로 인터뷰에서 상대방은 잘못한 것이 없고 자신의 부족함이 큰 탓이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사랑했었고 결혼했던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13년 8월 후지 케이코가 사망하자 전남편 키리야 카즈아키가 위로해주고 우타다가 재혼발표전에 찾아가서 소식을 직접 알려줬다고 하는 등 이혼했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듯.

8월에는 에반게리온: 서의 주제곡과 닛신 컵누들 CM곡인 <Beautiful World/Kiss & Cry>을 발매했으며 20만장이 넘는 판매량과 높은 다운로드 성적을 기록했다. 2008년 2월에는 선행싱글 <HEART STATION/Stay Gold>를 발매하고 3월에 5번째 앨범 <HEART STATION>을 발매한다. 무겁고 난해했던 전작 <ULTRA BLUE>와 비해 밝고 편안해진 모습을 보였고 본인이 말하길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심플한 팝앨범."이라고. 초동은 48만장으로 전작에 비해 소폭 하락했으나 환상적인 낙폭과 엄청난 롱런으로 2009년 1월 오리콘 기준으로 100만장을 돌파했다.그리고 이 앨범은 여성 솔로가수 마지막 정규앨범 밀리언 이기도 하다. 다운로드에서도 선전해서 앨범 수록곡들이 총합 2000만건이 넘는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고 이는 현재까지 일본 최다기록이다. 음반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여성 솔로가수가 정규앨범으로 밀리언을 달성한 것은 우타다 히카루가 현재까지 마지막. 5월 드라마 "라스트 프렌즈" 주제곡인 <Prisoner Of Love>가 리컷싱글로 발매되었고 200만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2009년 1월 21일 싱글 <Come Back to Me>가 아이튠즈에 공개되었고, 3월 13일 Utada 명의의 두번째 영어앨범 <This Is The One>이 발매되었다. 4년 5개월만의 영어앨범으로 메인스트림을 의식해서 R&B 기반의 Pop을 추구했다고 하며, Stargate와 Stewart가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아일랜드 레코드에서도 적극적인 에어플레이를 지원해 주면서 빌보드 앨범차트 179위로 진입해서 69위까지 순위가 상승하며 좋은 분위기를 탔으나, 싱글컷하며 적극적으로 홍보할 시점에 급성 좌부 편도염이 재발하여 입원하게 되었고 북미 프로모가 전면 취소되었다. 이때 체중이 급감하고 팬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건강이 안좋은 것이 느껴질 정도여서 결국 미국활동은 흐지부지 끝났다. 그러는 동안 6월 에반게리온: 파의 주제곡으로 Beautiful World -PLANiTb Acoustica Mix-이 디지털음원으로 발매되고 기간한정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며 틈틈히 곡작업한다는 떡밥을 뿌리며 건강을 추스른 후 12월 'Dirty Desire'을 싱글컷하고 2010년 1월부터 2월까지 첫 미국투어 Utada "In The Flesh" 2010 Tour을 열었다. 라이브하우스를 중심으로 호놀룰루, LA, 시애틀, 뉴욕 등을 거쳐서 런던에서 투어가 끝났다. 투어가 끝나고 블로그 갱신도 별로 없다가 8월 9일 블로그에서 "2011년부터 아티스트 활동을 중지하고 인간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발표했다. 15살에 데뷔해서 아티스트로는 성장했지만 인간으로는 자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은퇴는 절대 아니고 2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반드시 발전해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말 두번째 베스트 앨범 발매, 마지막 콘서트 개최 계획을 공개하고 오랜만의 CM에 출연하며 팬들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서 트위터를 개설한다.

10월 유니버설 뮤직 재팬에서 Utada 명의의 영어 베스트 앨범 <Utada the Best>을 발매한다고 발표한다. 유니버셜에서는 신곡이 수록된다고 홍보하고 EMI에서 발매하는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2>와 발매일도 동일하게 맞췄는데 우타다 히카루는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본인의 의사로 발매되는 앨범이 아니며, 신곡도 사실 들어있지 않아서 팬들은 구매할 필요가 없다. 유니버셜 담당 스텝들이 피해입지 않기를 바라지만 유니버셜 운영진들에게는 유감이다."고 밝혔다. 베스트 앨범의 리드싱글 'Goodbye Happiness'의 뮤직비디오를 본명 宇多田光 명의로 감독했다. Utube라는 로고부터 시작해서 12년동안 자신의 뮤직비디오를 셀프패러디했는데 우타다의 팬이라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1월 8일 아일랜드 레코드와의 계약이 종료되었고 앞으로 영어음반은 EMI를 통해서 발매하며, Utada의 명의로 활동했던 것과 달리 宇多田ヒカル/Hikaru Utada로 통일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1년뒤 EMI는... 11월 24일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2>이 발매되고 12월 8일과 9일에 활동휴지 직전 마지막 콘서트 WILD LIFE를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개최한다. 8일 공연은 일본내 영화관과 Ustream에서 생중계되었고 데뷔 12주년인 12월 9일 공연을 마지막으로 활동중지에 들어간다. 마지막 공연에서 마이크를 무대위에 놓고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퇴장해 완전 은퇴라는 말이 돌았는데, 본인이 밝히길 양손으로 팬들에게 인사하고 싶어 아무생각없이 마이크를 내려놓은 것이라고. 2011년 1월 15일 NHK 특별 프로그램으로 베스트앨범 레코딩 과정, 콘서트 모습, 인터뷰 등이 포함된 특별프로그램 'Utada Hikaru ~지금의 나~'가 방송되었다. 이 방송이 공식적으로 언론매체에 출연한 우타다 히카루의 마지막 모습.

2.5. 2011~ : 활동중지 이후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자 8000만엔(100만달러)를 기부하고 헌혈을 했다고 하며, 본인은 밝히지 않았으나 도호쿠 지방에 직접 자원봉사를 다녀왔다는듯. 참고로 우타다는 지진 이전부터 어머니의 고향이 이와테도호쿠에 애정이 있다고 밝혀왔다. 트위터를 통해서 가끔씩 밝힌 근황으로는 여러곳을 혼자 여행다니거나 글을 쓰고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하며, 2012년부터는 주로 런던에서 체류하는걸로 보인다.

2012년 11월 17일 에반게리온: Q 주제곡 <桜流し>를 아이튠즈에 깜짝 발표하였다. Paul Carter이라는 영국의 작곡가와 공동 작업을 했고 A멜로디-후렴구-B멜로디-후렴구라는 일반적인 곡의 형식을 벗어난 기승전결 형식. 뮤직비디오는 카와세 나오미 감독이 맡았으며 12월 26일에는 DVD 싱글을 발매했다. 원래는 디지털로만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카와세의 뮤직비디오를 영상매체로 남기고 싶어서 계획을 급히 수정했다고. 디지털 음원의 앨범아트는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일러스트며, 우타다 히카루가 EMI에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노래가 되었다.

2013년 4월부터 2014년 3월까지 Inter FM에서 <KUMA POWER HOUR with Utada Hikaru>이라는 방송의 라디오DJ를 맡았다. 프로그램 구성, 대본, 녹음, 편집까지 모든 것이 우타다 히카루 스스로 담당한 프로로 한달에 한번씩 주제를 선정해서 음악을 소개했다. Inter FM이 재일 외국인을 청취자로 하는 방송국이라 영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진행. 모친의 사망과 이로인한 컨디션 악화 등으로 휴방이 몇번있었고 1년 뒤 폐지되었다.

8월 22일 어머니 후지 케이코가 신주쿠 고층맨션에서 투신자살을 하였다. 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이자 국민가수의 어머니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일본 전역에 충격을 주었고 모든 스포츠신문 1면과 연예방송특집으로 보도되었다. 우타다는 런던에서 급히 일본으로 돌아왔으나 충격을 받아 어떤 행동도 못 할 정도였다고. 고인의 유언장에 따라서 가족끼리 장례식없이 조용히 고인을 보내려고 했지만 기레기들은 영구차를 가로막아 차안에 앉아있는 우타다를 플래쉬 터트리며 사진찍고 "왜 어머니가 자살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하는 등 옐로 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여줬다. 이후 공식 홈페이지에 우타다 히카루와 아버지 우타다 테루자네는 故후지 케이코는 우타다 히카루가 5살때부터 정신병을 앓았으며 치료를 거부하여 20년 넘게 본인과 가족들이 고통받았다는 것을 밝혔다.

홈페이지의 글을 일부 번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 어머니는 아주 긴 시간,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 특성상 본인의 의지로 치료받는 것은 매우 어려워서 가족으로서 어떻게해야 좋은지, 무엇이 그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병이 진행되는 것을 봐왔습니다. 증상이 악화되는 것과 함께 가족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불신이 늘어가고, 현실과 망상의 구별이 모호하게 되어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저 농락당하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랜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바라는 반면, 그녀의 마지막 행동은 너무나 슬프고, 후회의 마음이 커져만 갑니다. (...) 슬픈 기억이 많은데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것은 웃고 있는 그녀입니다. 어머니의 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녀를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 기분으로 가득합니다. (...)"


12월 8일 데뷔 15주년을 기념해서 콘서트 영상 <Utada : In the Flesh 2010>를 아이튠즈에 발매했다. 콘서트에서 영어노래와 일본어노래를 모두 불렀는데 宇多田ヒカル는 레이블 EMI/퍼블리싱 SONY였고, Utada는 레이블 UMG/퍼블리싱 EMI로 판권이 꼬였기 때문에 발매가 어려웠다. 그런데 EMI가 레이블은 UMG, 퍼블리싱은 SONY로 절묘하게(...) 매각되면서 레이블 UMG/퍼블리싱 SONY로 통일되었고 3년만에 다운로드 형태지만 발매가 이루어졌다.

2014년 2월 공식홈페이지에서 재혼을 발표하였고 <KUMA POWER HOUR>에서도 공식적으로 발언하였다. 상대는 런던의 호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8살 연하의 이탈리아 남성으로 공통된 친구의 소개로 알게되었다고 한다. 3월 10일 데뷔 & 발매 15주년 기념 <First Love -15th Anniversary Edition->을 발매했고, 5월 23일 남부 이탈리아 파사노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2월 9일 데뷔 15주년 기념앨범 2탄으로 트리뷰트 앨범 <宇多田ヒカルのうた> 및 싱글콜렉션 Vol 1+2의 고해상도 음원(24bit/96kHz)이 발매되었다. 12월 3일 아버지 우타다 테루자네가 우타다 히카루의 복귀를 암시하는 트윗을 올렸다!!! 제작시기는 히카루와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아마 2015년에 발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한다. [22]

2015년 1월 11일 '정월부터 곡을 작업중입니다'라는 트위터를 올렸다.

3. 디스코그라피

3.1. 앨범

3.1.1. 스튜디오 앨범

# 발매일 명의 제목 오리콘 일본판매량 비고
1998.01.28 Cubic U Precious 2위 702,060장 [23]
1 1999.03.10 宇多田ヒカル First Love 1위 7,650,215장
2014.03.10 First Love -15th Anniversary Edition- 9위 21,905장
2 2001.03.28 Distance 1위 4,472,353장
3 2002.06.19 DEEP RIVER 1위 3,604,588장
4 2004.10.05 Utada EXODUS 1위 1,074,000장 빌보드 160위
5 2006.06.14 宇多田ヒカル ULTRA BLUE 1위 909,113장
6 2008.03.19 HEART STATION 1위 1,011,373장
7 2009.03.12 Utada This Is The One 2위 243,000장 빌보드 69위

3.1.2. 컴필레이션 앨범

# 발매일 명의 제목 오리콘 판매량 비고
1 2004.03.31 宇多田ヒカル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1 1위 2,608,647장
2005.10.11 1998–2005 All for You : UH Premium Single Box Set [24]
2 2010.11.24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2 1위 442,549장 2CD
Utada Utada the Best 12위 21,831장 [25]

3.1.3. 기타 앨범

  • U3 앨범
    1993년 10살때 부모님과 함께 결성한 가족밴드 U3의 앨범. 우타다는 우타다 히카소라는 이름으로 작사, 보컬, 코러스에 일부 참여했지만 워낙 어린나이여서 본인의 음악색깔은 묻어나지 않는다. 모든 작사/작곡은 우타다 테루자네와 후지 케이코가 했으며 엔카풍 노래가 많다. 앨범은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우타다 히카루가 성공한 이후 99년 재발매, 미공개 신곡, 10주년 기념반 등 포니캐년에서 수없이 울궈먹고 있다. <Star>의 앨범커버는 9살 우타다가 그린 그림.
    # 발매일 제목 오리콘 판매량 비고
    1 1993.09.17 Star
    2003.06.21 あれから10年 記念盤 [26]


  • 트리뷰트 앨범
    데뷔 15주년 기념 프로젝트 2탄으로 데뷔 16주년인 2014년 12월 9일에 발매. AI, 이노우에 요스이, 카토 미리야, KIRINJI, 시이나 링고, Jam & Lewis, tofubeats with BONNIE PINK, 하마사키 아유미, 요시이 카즈야, LOVE PSYCHEDELICO 등 유명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 프로모션을 겸해서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우타다 히카루를 표현한 작품들을 제공했는데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스텝들의 영상, 노무라 테츠야의 일러스트를 포함한 사진, 서예, 사진 작품들과 참여 아티스트들의 코멘트들을 특집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 발매일 제목 오리콘 판매량 비고
    1 2014.12.09 宇多田ヒカルのうた 5위 46,726장

3.2. 싱글

宇多田ヒカル 명의의 일본어 피지컬 & 디지털 한정 싱글들만을 기록합니다. 이외의 일본어 디지털 싱글이나 U3, Cubic U, Utada 명의의 싱글들을 알고 싶으면 공식홈페이지나 위키백과일본어 또는 영어를 참조하십시오.

3.2.1. 피지컬 싱글

#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수록 앨범 비고
1 1998.12.09 Automatic / time will tell (8cm) 4위 772,080장 First Love
Automatic / time will tell (12cm) 2위 1,290,700장
2 1999.02.17 Movin' on without you (8cm) 5위 346,820장
Movin' on without you (12cm) 1위 879,760장
3 1999.04.28 First Love (8cm) 6위 303,430장 리컷
First Love (12cm) 2위 500,890장
4 1999.11.10 Addicted To You 1위 1,784,050장 Distance [27]
5 2000.04.19 Wait & See ~リスク~ 1위 1,662,060장
6 2000.06.30 For You / タイム・リミット 1위 888,650장
7 2001.02.16 Can You Keep A Secret? 1위 1,484,940장 [28]
8 2001.07.25 FINAL DISTANCE 2위 582,120장 DEEP RIVER [29]
9 2001.11.28 travelling 1위 856,140장
10 2002.03.20 1위 598,130장
11 2002.05.09 SAKURAドロップス / Letters 1위 686,720장
12 2003.01.29 COLORS 1위 893,790장 ULTRA BLUE
13 2004.04.21 誰かの願いが叶うころ 1위 365,206장
14 2005.09.28 Be My Last 1위 150,928장
15 2005.12.14 Passion 4위 112,345장
16 2006.02.22 Keep Tryin' 2위 125,077장
17 2006.11.22 ぼくはくま 4위 147,041장 HEART STATION
18 2007.02.28 Flavor Of Life 1위 650,510장
19 2007.08.29 Beautiful World/Kiss & Cry 2위 235,050장
20 2008.02.20 HEART STATION / Stay Gold 3위 76,762장
21 2008.05.21 Prisoner Of Love 2위 81,626장 리컷

3.2.2. 디지털 싱글

앨범/싱글 발매전 디지털 선공개 음원들을 제외하며, 발매당시 피지컬 음반없이 오직 디지털 형식(착신음악/PC 다운로드)으로만 발매된 음원만을 기록합니다.

# 발매일 제목 수록 앨범 비고
1 2008.10.20 Eternally -Drama Mix- [30]
2 2009.06.27 Beautiful World -PLANiTb Acoustica Mix- Utada Hikaru SINGLE COLLECTION VOL.2
3 2012.11.17 桜流し

3.2.3. DVD 싱글

# 발매일 제목 수록 앨범 PV감독 비고
1 2000.04.19 Wait & See ~リスク~ Distance 다케이시 와타루
2 2002.01.30 travelling DEEP RIVER 키리야 카즈아키 [31]
3 2003.03.12 COLORS ULTRA BLUE 도널드 카메론
4 2004.07.28 誰かの願いが叶うころ 키리야 카즈아키
5 2012.12.26 桜流し 카와세 나오미

4. 기타

  • 어머니 후지 케이코와 특유의 허스키한 음색과 떨림까지 목소리가 상당히 닮았다. 19세 시절 케이코의 영상을 보면 마치 우타다 히카루가 더빙을 하는듯 하다. 그런데 안좋은 점도 그대로 닮아서 성대가 약한것은 유전으로 후지 케이코도 생전 성대폴립으로 고생을 했고 성대결절 수술로 가수생활에 치명적인 위기를 겪었다.
  • 2002년 난소종양 수술이후 건강이 매우 나쁘다. 복부수술로 등과 배의 근육이 약해져 라이브하는데 지장이 왔으며, 지속적으로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는데 컨디션에 따라서 체중변화가 심하게 온다. 성대폴립도 고질병으로 수술을 피하기위해 약물치료를 하는데 약의 부작용으로 몸에 무리가 심하게 와서 체력관리가 힘들다. 가끔씩 TV에 나올때 우타다가 살이 찌거나 빠져있으면 팬들은 건강걱정에 노심초사.
  • TV출연이 거의 없고 나와도 대부분 음악방송에만 출연한다.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홍백가합전, FNS 가요제을 비롯한 연말 특집프로그램에 나오지 않고있다. 엄청난 인기에 비해서 TV노출도가 적어서 가끔씩 음악프로에 출연하면 시청률이 몇 퍼센트씩 뛰며, 음악프로에서 완곡을 부르는 몇 안되는 가수들[32] 중 하나이다.
  • 상술이 없는 가수이기도 한데 12년간 앨범은 오직 CD반 1종만 내고 싱글은 초기 3작품을 8cm/12cm로 나눈것과 2005년 'Be My Last'와 'Passion'때 2종류으로 출시한 것 이외에는 모두 1종류로 출시하고 있다. 이런데도 괴물같은 판매량을 보인걸 보면... 12년간 싱글이 겨우 21장으로 1년에 싱글을 1개만 내거나 싱글텀이 1년을 넘은 적도 있지만 의외로 (영어앨범도 포함해서) 2년마다 꾸준히 앨범이 나온 편이다.
  • 16살에 이미 70억원(...)을 벌었을 정도로 엄청난 갑부. 2005년까지의 추정소득이 500억원이 넘었고 23살에 일본연예계 전체 평생소득 10위안에 들었다. 2006년 이후 히트곡들의 저작권료나 일본에서 집계가 안되는 해외인세 등을 생각하면 100억엔에 근접할거란 예상. 2005년까지 일본은 고액납세자들이 공개되었기 때문에 우타다는 16살때부터 돈이 많다는게 네타거리였다(...) 다운타운이나 톤네루즈가 '이런 꼬맹이가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벌다니!'라고 한탄하는게 주된 토크소재. 10대 시절 본인도 자주 써먹은 네타로 2001년 우타방에 출연했을 당시 이상형[33]으로 V6의 멤버 오카다 준이치를 꼽았는데 MC인 나카이 마사히로가 같은 쟈니즈 소속의 친분으로 즉석에서 마침 근처 스튜디오에 와있던 오카다를 데리고 왔다. 나카이가 영어 잘하는 여자 좋아하냐면서 너스레를 떨었는데, 이 때 우타다가 방긋 웃으며 "돈이라면 있어요."라고 개드립을 날리자 좌중이 빵터졌고 이시바시는 "너 정말 대단한 18살짜리구나!"라는 멘트를(...) 하지만 의외로 평소 생활은 소박하고 평범해서 100엔샵이나 패밀리 레스토랑, 편의점등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옷차림도 수수해서 스텝으로 오인받은 적도 많은데 2008년에는 당시 일본 활동을 하던 SS501이 우타다 히카루를 일본 스탭인 줄 알고 음료 심부름을 시켰다가 뒤늦게 사과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화도 많은데 사람 크기의 커다란 곰인형(쿠마짱)을 여행시 대동하기 위해 루이비통에 트렁크 특수 주문 제작을 맡겨버렸다고.
  • 독서광으로 동서고금의 문학작품을 가리지 않고 읽는다고 한다. 영어일본어도 어중간한 세미링걸 혹은 더블 리미티드(=0개 국어 사용자)가 되기 싫어서 문학과 어학공부를 엄청나게 했다고. 원래 어학과 문학을 좋아해서 어린시절부터 꿈이 소설가였고 몇년동안 취미로 프랑스어를 배워 일상회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취미를 활용해 'ぼくはくま' 중간에 쿠마쨩(우타다의 목소리)이 프랑스어로 자기소개하고, 두번째 베스트 앨범에서 샹송 Hymne à l'amour을 커버했다. 현재 남편과 알게되면서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 예술가는 개인의 인성과 상관없이 오로지 작품으로만 평가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경험상 대체로 예술가의 인성과 작품의 퀄리티는 반비례하기 때문이라고. 본격 셀프디스 데뷔부터 지금까지 공식 팬클럽(FC/파미쿠라)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자기자신이 아닌 자신의 노래를 듣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팬으로 그런 사람들을 팬클럽으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 1999년 1월부터 공식 홈페이지에서 블로그를 만들어 쓰고있는데 이것이 일본 연예인 블로그의 시초이다. 현재는 트위터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블로그쪽은 뜸한 상태. 그래도 활동휴지, 결혼보고 등 중요한 소식이 있을때는 공식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있다.
  • 테트리스 고수로 '테트리스는 스포츠다' 라고 공언하고 있다. 5살 때부터 매일 플레이하고 있다는 듯. NDS 발매당시 일본 닌텐도 광고모델이었고 닌텐도에서 NDS와 모든 테트리스 시리즈를 줬다고 한다. RPG는 싫어하는데 싫어하는 이유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싫어서 게임을 하는데 RPG를 해버리면 의미가 없지 않느냐" 라고(...) 그렇기에 자신이 주제곡을 담당한 킹덤하츠 시리즈를 해본적이 없다고 한다.
  •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특히 인어공주의 열렬한 팬. 'Part of your world'는 노래방 18번이라고 하며 킹덤하츠 주제곡 제의가 들어왔을때 흔쾌히 받아드리고 음악 출판권도 디즈니에게 넘기는 것을 허락한 건 이런 이유. 블로그에서 다카하시 루미코의 작품들도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여자 란마는 자기 이상형이라서 사귀고 싶을 정도지만 남자 란마는 절대 얽히기 싫은 최악의 남자라고 평하기도.
  • 국내오덕들에게는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주제곡들을 부른것으로 유명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열렬한 팬으로 전남편 키리야 카즈아키에게 에반게리온을 추천을 받아서 TV판을 보기 시작했는데 완전히 빠져서 3일간 밤을 새가며 TV판부터 극장판까지 정주행했다고 한다. 신지아스카에게 감정이입이 되서 언제나 통곡을 하면서 보게 된다며 2006년 일본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 말했는데[34] 이 인터뷰를 안노 히데아키가 보고서 테마송을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 귀여운 여자아이들을 좋아한다. 여자 란마가 최애캐그라비아도 챙겨보고 모델들 블로그를 눈팅한다고 본인블로그에 인증했다. 미국인 그라비아 모델 리아 디존이 일본에 데뷔하기 전 미국에서 이미 눈여겨 봤다며 우타방에서 리아 디존의 매력을 역설하기도. 모닝구무스메AKB48도 좋아해 블로그에 '오랜만에 엠스테에 출연했는데 이시카와 리카상이 너무 귀여워서 행복했어요.'라고 쓰거나 데뷔 10주년 우타방 출연분에서 나중에 나이가 들면 쟈니스같은 여자아이돌 기획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우타다(宇多田)라는 성씨는 일본에서 100명밖에 없는 매우 드문 성씨이다. 조슈번(현재의 야마구치현) 하급 사무라이 집안의 성씨로 메이지 시대에 우타다家에서 다른 집안으로 양자를 보낸 인물이 데라우치 마사타케. 데라우치와 먼 친척관계지만 그외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넷 우익들은 발악을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및 동아시아 역사문제에 대해 비판적이고 제대로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무사 집안에 엄청나게 희귀한 성씨여서 족보가 야마구치현 박물관에 보관되어있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집안내력이 다 나와버린다.
  • 방송에서의 모습이나 우의 일화들을 보면 엉뚱하고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은 허무주의, 염세주의적인 시니컬한 사람. 음악잡지의 심층 인터뷰나 본인이 쓴 블로그의 글, 에세이, 가사 등을 살펴보면 겉과 속이 다른 우타다 히카루의 어두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외국에서 자라서 메이와쿠를 중시하는 보통 일본인들의 경향과 다르게 굉장히 직설적이기도 하다. 참고로 종교는 무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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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발음은 똑같이 우타다 히카루. 한자로 된 본명이 너무 딱딱해 보여서 光를 획수가 같은 가타카나 ヒカル로 표기했다고 한다. 영어이름은 따로 없다.
  • [2] 후지 케이코(藤圭子)는 예명으로 태어났을때 이름은 아베 쥰코,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쪽 성을 따라서 타케야마 쥰코가 되었다가 결혼하면서 우타다 쥰코(宇多田純子)가 되었다. 이혼을 했지만 성씨를 바꾸지 않고 계속 우타다 호적에 남아있었다.
  • [3] 2013년 4월 1일 EMI Music Japan이 Universal Music Japan에 완전히 합병되면서 EMI의 Eastworld에서 UMJ의 Virgin Records로 레이블이 바뀌었다.
  • [4] 2010년 11월 EMI로 음반사를 옮겼으나, 2012년 EMI의 음반부분이 Universal Music에 인수되면서 돌아오게 되었다. 활동중지로 앨범발매가 없어 2011년 이후 레이블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 [5] 1993년 설립한 우타다 집안의 매니지먼트 회사로 U3는 우타다家 3명을 의미한다. 모친의 사망전까지 사장은 아버지 우타다 테루자네, 이사는 어머니 우타다 쥰코(= 후지 케이코), 소속가수는 후지 케이코와 우타다 히카루 2명이었다.
  • [6] 일본은 1985년 국적법을 개정하면서 1985년 이후 이중국적자는 불허하며 1984년 이전에 복수국적을 지닌 사람은 그대로 허용하였는데, 1983년생인 우타다 히카루는 태어나면서 복수국적인 상태였기에 그대로 2개의 국적을 유지할 수 있다.
  • [7] 키스마크라는 뜻인 hickey를 변형시킨 것. 공교롭게도 'ヒッキー'는 히키코모리를 가리키는 속어이기도 하다. 우타다의 별명이 먼저였지만, 본인의 스타일을 보면 히키코모리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 [8] 대표적으로 데뷔곡 Automatic 첫소절 '七回目のベルで'을 '나~나카이메노베~루데'로 끊어 부른 것은 일본어 가사의 혁신으로 평가받는다.
  • [9] 인터뷰에서 자신은 작곡가 우타다 히카루가 가수 우타다 히카루보다 우위에 있어 만들고 싶은 곡을 만들지, 부르고 싶은 곡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본인이 만들어 놓고도 부르기 어려운 곡들이 많다고. 가라오케에서 부르기 어려운 가수로 항상 꼽히기도 한다.
  • [10] 오리콘차트 기준 765만장, 일본내 출하량은 860만장 이고 해외 출하량을 포함하면 991만장이 팔렸다. 오리콘차트는 300위(90년대는 100위) 이하 앨범의 판매량은 합산을 안해,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팔리는 앨범들은 출하량과 오리콘 판매량 사이에 차이가 크다.
  • [11]
  • [12] 후지 케이코와 우타다 히카루는 부모-자식이 모두 오리콘 싱글/앨범차트 주간 1위, 연간 앨범차트 1위를 달성한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 [13] 가족들은 후지 케이코의 등골을 빼먹으면서 돈벌이를 강요했는데 결국 케이코는 결혼 후 가족들과 절연을 한다. 이후 한동안 잠잠했나 싶었는데 우타다 히카루가 성공하자 주간문춘, 사이조 등 찌라시에 인터뷰하고 돈을 요구하는 등 다시 막장짓을 시작했고 아직도 현재진행중.
  • [14] 2013년 8월 모친 사망후 오랫동안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공식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자세한 병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후지 케이코의 행적등을 근거로 많은 매체에서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 [15] 현재는 소니 뮤직 퍼블리싱(Sony Music Publishing (Japan) Inc.)으로 회사명을 바꿨다. 소니 뮤직 재팬의 자회사로 주로 소니 뮤직 소속 아티스트들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음악출판사(Music publisher)이다. 어머니 후지 케이코가 십여년간 소니뮤직 소속이었기에 우타다를 어린시절부터 알았다.
  • [16] 우타다가 처음 만든 일본어곡으로 미야케 아키라에게 권유받기 전까지 일본어로 된 노래를 만든적이 없다고 한다. 참고로 두번째로 만든 노래가 'Automatic'.
  • [17] 음반제작사는 음반을 만들고 유통시켜 생기는 음반의 수익을 가져가고, 음악출판사는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관리해주면서 인세의 일부를 가져간다. 일본은 대부분 레코드회사와 음악출판사가 동일 계열사고 다르더라도 매니지먼트거나 개인회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대형 음반사끼리 데뷔때부터 권리를 나눠 가지는 경우는 없었는데, 아무도 우타다가 성공할 거라고 예상을 못해 "그깟 푼돈 나눠봤자..."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 [18] 원래 데뷔곡은 time will tell이었으나 발매직전 Automatic으로 바뀌고 time will tell은 싱글 B면이 되었다고 한다. 소파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흐느적거리는 PV도 화제가 되어 당시 수많은 개그맨들이 흉내를 내었고, 지금도 천장이 낮은 곳에서 춤추는 PV하면 다들 아는 정도.
  • [19] 데뷔초에는 SAT,AP 등 대입준비 때문에 방학때 잠깐 활동하는 것 이외에는 대외적인 활동이 전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뉴욕에서 대학교를 다녔기에 2005년까지 우타다의 음반외 활동은 극히 드물었다. 컬럼비아대는 음악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 2004년 자퇴한다.
  • [20] 하마사키 아유미의 <A BEST>는 280만장으로 역대 최다판매량 주간 2위(...)의 기록을 세웠다. 2주차에서는 <Distance>가 데일리 차트 1위를 일주일동안 유지했지만 오리콘의 보정치 때문인지 하마사키 아유미가 2000여장 차이로 1위를 했다.
  • [21] 일본어로 곰은 쿠마(くま). 2006년 이후로 해외에 나갈때도 쿠마쨩을 데리고 가고 모든 우타다 관련 활동에 항상 쿠마쨩(...)이 등장한다. 참고로 쿠마쨩은 게이라고 한다.#
  • [22] 원문: ある程度の制作開始時期はヒカルと話し合っていますが、発表するのは来年になると思います。
  • [23] 96년 8월(13살) 뉴욕에서 녹음해 98년 1월 미국과 일본에서 소량 발매된 우타다 히카루의 첫번째 스튜디오 앨범. 99년 3월 일본 토시바 EMI에서 재발매되었다.
  • [24] 놀랍게도 200장 한정으로 한국에서만 발매된 박스세트이다. 14장의 싱글과 1장의 베스트앨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토시바 EMI에서 직수입되어 판매되었다.
  • [25] 활동중지를 선언하자 유니버설에서 본인의사와 상관없이 임의로 발매한 영어 베스트 앨범. 우타다 히카루는 트위터에서 이 앨범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우타다 히카루의 공식 디스코그라피에서도 제외되는 앨범이다.
  • [26] U3의 <Star> 발매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포니캐년의 우려먹기 기념반. <Star>에 미공개곡 2개를 추가하고 촌스러운 새로운 표지로 바꾼것 이외에는 변한 것이 없다. 이외에도 많은 U3 음반들이 존재.
  • [27] 오리콘차트 90년대 마지막 밀리언셀러 싱글
  • [28] 오리콘차트 21세기 최초 밀리언셀러 싱글
  • [29] 2집 Distance에 실린 <Distance>를 재편곡해서 발매.
  • [30] 2집 Distance의 수록곡으로 2008년 드라마 "이노센트 러브"의 주제곡으로 기용되자 새롭게 믹스.
  • [31] 2002년 연간 오리콘 DVD차트 음악부분 1위. MVA BEST VIDEO OF THE YEAR 수상.
  • [32] 일본 음악프로에서 완곡을 배정받는 가수는 사잔 올 스타즈, B'z, Mr.Children 등 거물급 가수들 뿐이다.
  • [33] 이유는 카레가 어울리는 남자였다. 2008년 출연했을때 이 어울리는 남자로 이상형이 바뀌었다고 말했는데 재혼한 상대를 보면 파스타가 어울리는 남자로 다시 바뀐듯?
  • [34] 상술하면 이카리 신지와는 15살의 평범했던 일상에서 갑자기 모든 관심을 받고 무거운 책임을 지게된 상황과 '도망치면 안돼...'라고 말하며 간신히 버티는 모습이 공감되었다고 말했고, 아스카와는 어머니와의 관계(우타다의 어머니는 그녀가 5살때부터 정신병을 앓았다.)가 비슷하며 자기와 가장 닮은 캐릭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