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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스기 카게카츠

last modified: 2019-04-24 00:39:24 Contributors


上杉 景勝 (うえすぎ かげかつ)
(1556~1623)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영주). 에도시대 데와 요네자와번의 초대 번주.

Contents

1. 출신
2. 후계분쟁과 승계
3. 오다가와의 싸움
4. 히데요시에게 항복
5. 전봉과 감봉
6. 평가
7. 대중문화 속의 가게카츠
7.1. 란스 시리즈
7.2. 노부나가의 야망
7.3. 센고쿠히메
7.4. 전국무쌍 시리즈


1. 출신

우에스기 겐신의 양자로, 원래 이름은 나가오 아키카게.

원래 겐신의 누이인 모모히메의 아들로, 겐신의 아버지인 나가오 다메카게로부터 나가오씨를 하사받은 나가오 마사카게의 자식이다. 나가오 마사카게는 겐신이 형을 몰아내고 에치고를 장악할 적에 최후까지 저항했음에도 이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집안 내에서 좋지 않은 본보기였다.

이후 나가오 마사카게가 우사미 사다미츠와 뱃놀이 도중 함께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난다.[1] 이로인해 우사미 일족은 에치고에서 추방당했고,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가게카츠는 우에스기 켄신의 양자가 되었다

우에스기 겐신에게는 가게카츠 말고도 호죠집가서 온 양자 가게토라가 있었다. 호죠가의 양자 우지히데는 우에스기 겐신의 첫 이름이었던 가게토라를 내려받아 우에스기 가게토라가 되었으며, 가게카츠보다 5년정도 앞서 우에스기성을 사용했다. 게다가 가게토라의 거주지가 가게카츠보다 마루에 가까웠으며 가신에게 우에스기 성을 양도한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가게토라 편에 붙은 걸로 보아 겐신은 가게토라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2]

2. 후계분쟁과 승계

겐신이 후계자를 정해놓지 않고 급사하자, 나오에 카네츠구가 가게카츠를 급히 옹립하고 가게토라파를 축출했다. 다행히 선대부터 불만을 가지고 있던 가키자키, 기타죠 등을 제외한 선대의 중신들 이로베, 사이토, 나카죠, 아마카스, 혼죠 등은 모두 가게카츠 파였다.[3]

초반에는 가게토라가 본가인 호죠가와 다케다가의 후원을 받아 우세했으나, 가게카츠가 다케다 집안에 엄청난 뇌물을 먹이고 다케다 신겐의 딸 키쿠히메와 약혼하는 등 후원을 얻었으므로 대패하고 도망가던 길에 죽었다. 난의 초반에는 외부세력의 힘을 등에 업은 가게토라의 세력이 명백한 우세를 점하고 있었으나 호죠의 본대가 적대가문인 사타케-우츠노미야의 연합군에 발이 묶여 진군이 늦어졌고 이후 다케다의 변심이 결정타가 되어 결국 패배하게 되었던 것.[4]

아무리 승계에 가네츠구가 공이 컸다고는 하지만, '애송이'라는 소릴 들으며 범재 취급을 당한걸 보면 그리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네츠구는 아예 대놓고,
'돌아가신 어르신을 따라잡기는 요원한 일이나, 주군께서 어르신의 모습을 흉내내어 가만히 있고, 소인이 어르신의 군략을 흉내내면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오'
라고 했으며, 가게카츠도 이를 잘 따라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겐신을 훌륭한 무장으로서 존경하고 있던 가게카츠는, 항상 겐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여 행동했다고 한다. 가게카츠가 늙어 병에 걸렸을 때 출가하여 소신(宗心)이라는 을 썼는데, 이는 겐신이 예전에 교토에서 사용했던 적이 있었던 법명이다.

3. 오다가와의 싸움

그렇게 카게카츠가 우에스기 가의 당주가 되긴 했지만, 더한 시련이 오고 있었다. 먼저 은상문제로 중신인 시바타 시게이에가 시바타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여기에 호응하여 오다 노부나가가 파견한 시바타 카츠이에마에다 토시이에, 삿사 나리마사 등과 함께 엣추 방면에서 우에스기 가를 침공한다.[5]텐모쿠잔에서 다케다 카츠요리가 패사한 뒤에는, 에치고 방면에서 모리 나가요시, 타키가와 카즈마스까지 가세해 카게카츠는 사면초가의 처지에 빠진다. 여기에 오다테의 난으로 틀어진 호죠가 마저 코즈케 방면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마침내, 엣추가 오다 세력에 떨어지고, 이 때 카게카츠 본인도 옥쇄를 각오하고, "일본의 60여 주를 상대로, 에치고 일국으로 도전하게 되다니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내용의 유언장까지 남겼다.

하지만 곧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고, 카게카츠는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6]

4. 히데요시에게 항복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아케치 미츠히데를 토벌, 키요스 회의를 거쳐 노부나가의 다음 후계자로 대두된 하시바 히데요시가 카게카츠에게 접촉, 카게카츠도 이에 응해 히데요시를 지지, 코마키・나가쿠테 전투, 토야마의 역에서 히데요시 측을 지원하여 히데요시의 신임을 산다.

이후, 상경해 히데요시와 회견해 신종, 오오기마치 덴노(正親町天皇)를 알현해 조정의 벼슬까지 얻게 된다.

5. 전봉과 감봉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대가 오자, 히데요시는 당대 강력한 다이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견제 차원으로 카게카츠를 치고에서 아이즈로 전봉시켰다. 이 때 고쿠다카도 기존의 90만 석에서, 120만 석으로 늘어났다.

이렇듯 히데요시파의 다이묘답게 임진왜란 때도 참전해, 웅천지방에 침략했다.

1597년 오대로의 일원인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오대로가 되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나자, 가게카츠는 후시미저택을 떠나 아이즈 영지로 돌아가서 군비를 증강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도발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도발에 걸리지 않았고 세키가하라로 향했다. 대신 모가미 요시아키와 다테 마사무네에게 우에스기 집안을 상대하도록 했다. 우에스기 군은 무문의 명문답게 다테군을 개발살내며 선전했지만, 세키가하라의 패전소식이 전해지자 사기가 떨어지고 후퇴 및 수비 일변도로 변하여 모가미군과 다테군의 반공에 시달렸다.

패전 후 카게카츠는 '무운(武運)이 쇠한 것이니 이제 와서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마디했을 뿐이라고 한다.

가게카츠는 'A급 전범'이라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는 신세였지만, 나오에 카네츠구의 엄청난 말빨로 목숨을 건졌다. 다만, 감봉은 피할 수 없었는데, 120만석에서 30만석으로 대폭 감봉되었다. 그리고 가게카츠의 인품에 매료된 (…또는 실업자가 되기 싫었던) 가신들이 감봉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떠나질 않아서 에도시대 초기 우에스기 가문은 엄청난 재정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쩌면 고도의 안티였을지도 모른다-_-;[7]

우에스기가의 재정난은 후대 다이묘들이 감봉된 영지의 회복을 꾀하고자 없는 돈에 까지 끌어다 도박 로비를 하다 빚만 더 늘어나 막장으로 치달은 부분도 컸는데, 이 재정난은 18세기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이 다이묘가 되고 단순한 절약만이 아닌 적극적인 식산흥업과 복지정책, 의식개혁을 일으킨 덕에 그 만년에야 겨우 어찌어찌 수습되었다. 도몬 후유지가 쓴 소설 한국어 번역판 불씨(원제는 우에스기 요잔)에 이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전투씬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무슨 전투를 다룬 소설처럼 치열함이 느껴진다.

사족이지만 2014년 현재 요네자와 우에스기가의 당주는 우에스기 쿠니노리(上杉 邦憲, 1943년생)라는 사람인데, 우주공학자였다가 2006년 정년 은퇴했다고 하며, 우에스기 가문과 관련한 학술대회나 각종 행사에도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생인 우에스기 다카하루(上杉隆治)는 음악가였다고 한다.(2006년 사망). 이 두 사람의 어머니는 도쿠가와 종가 출신이라서 오늘날 도쿠가와 종가와 요네자와 우에스기가는 인척 관계인 셈이다.

6. 평가

에도시대 초기에는 우에스기 집안 내에서도 나오에 카네츠구와 함께 저평가를 당했지만, 후에 긍정적인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면서 현재의 '믿을 수 있는 사나이', '무문명가의 대장'같은 이미지가 정착되었다. 요네자와 번[8] 우에스기 가의 일사불란한 가풍과 무문 모두의 명문이라는 자긍심은 가게카츠의 대에 와서 확립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말수가 적고 표정의 변화가 없는지라, 온 집안의 인간들이 가게카츠를 두려워했다. 다음은 가게카츠의 인품에 관련된 일화 몇 가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의 후시미에서 여러 영주들을 불러모아 연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 연회장의 멤버중에는 가부키모노로 유명한 마에다 케이지가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마에다 케이지가 말석에서 일어나 원숭이 가면을 쓰고 천을 뒤집어 쓴 채, 부채를 펄럭이면서 온몸과 손발을 떠는 등, 영주들 앞에서 우스꽝스럽고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케이지는 나란히 앉아 있는 영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무릎 위에 앉아 원숭이 흉내를 냈다. 그런데 케이지는 가게카츠 앞에 오자 그 위풍에 압도되어 도저히 무릎에 앉을 수 없었다고 한다. 케이지는 그때 가게카츠의 의연한 인물됨을 순식간에 꿰뚫어보고, 훗날 '천하가 넓다고 해도, 진정 내 주군으로 모실 만한 분은 아이즈의 가게카츠 님뿐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가게카츠는 평생 남의 앞에서 웃은 적이 없어 에 깊은 주름이 패어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는 가게카츠가 키우던 애완 원숭이가 가게카츠가 무게를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따라했는데, 가게카츠는 가신들 앞에서 이 모습을 보고 뜻하지 않게 피식 하고 웃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웃음이 가게카츠가 남에게 보인 생애 단 한번의 웃음이었다고. 얼마나 무표정했는지 알 만하다.

평생의 가신이었던 나오에 가네츠구의 부음을 전해 듣고는 "주군보다 먼저 죽는 가신이 어디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 냉철하고 감정 표현을 잘 안 하기로 유명했던 가게카츠가 이런 반응을 보였을 정도였으니 카네츠구에 대한 가게카츠의 신뢰를 엿볼 수 있다.

7. 대중문화 속의 가게카츠

7.2. 노부나가의 야망

Example1.jpg
[JPG image (Unknown)]


어느정도의 전투형 만능 다이묘이다. 양아버지보다는 낮지만, 어디까지나 전투능력치이지. 남은 능력치인 지력, 정치는 양아버지보다 높다(이는 겐신이 지력, 정치가 워낙 낮아서 그렇지만.)

천하창세에서는 마지막 등장 기준으로 정치:80, 통솔:85, 지력:67, 교양:67, 특기:기마2, 철벽, 고무을 가지고 있어서 양아버지있든 없든 쓸만한 무장.

천도에서는 전법이 양아버지의 전법인 차현지비로 비록 양아버지만큼은 못하지만 역시 쓸만하다.

코에이삼국지 12에서는 등장하는데. 어쨰선지 병종이 창병에 전법이 기병격봉인이라서 기병이 득실한 우에스기보다는 유비, 원소, 오다 노부나가에게 쓸만한 무장이다.

7.3. 센고쿠히메

역사대로 겐신의 양자. 남자다... 능력치도 미묘하게 낮다. 말수가 적어서 어깨위의 원숭이인 사루가 대신 의사소통을 한다. 검덕후.

7.4. 전국무쌍 시리즈

...절차탁마!

전국무쌍 4에 등장한 신규 캐릭터 성우는 타케우치 료타[9]

무기는 쌍참마도로 거대한 두개의 참마도로 적들을 휙휙 쓸어버리는 파워 타입.

아야고젠의 친자식이며, 겐신의 양자가 된다. 말수는 극단적으로 적고, 말보다 행동으로 의지를 나타내는 캐릭터. 항상 미간에 주름을 새긴 위엄 있는 풍모이지만 사실 속은 여린 성격으로. 군신의 아들이란 이름에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날마다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위 항목에 쓰여있는 대부분의 가게카츠의 실제 역사적 캐릭터성을 대부분 가져왔지만 가장 개성넘치는 포인트는 이번 신무장중 가장 험악한 외모로 얼핏 보면 형제시리즈에서 나오는 얼굴은 험악하지만 말투는 완전 시인모 캐릭터가 약간 살빠졌다고 느껴질 정도. 무엇보다 이번 4의 신무장 캐릭터들 대부분이 꽃미남으로 나오는데다 이미 모바일 게임인 백만인의 전국무쌍에서 슬림하고 냉정한 꽃미남으로 나왔던 캐릭터라 그 반전성이 매우 컸다.

공개된 PV에선 누군가의 주검을 붙잡고 울부짖는 영상이 나왔으며[10] 겐신 사망후 마에다 케이지, 나오에 가네츠구와 함께 우에스기 가를 이끌어나가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듯.

전국무쌍 4의 키워드인 줄기와 꽃 중, 우에스기의 장에서 줄기역할을 한다. 때문에 이후 서군으로 종군하려는 카네츠구에 대해 우에스기 가신들이 불만을 표시할 때에도 카네츠구를 의로운 흰 꽃이라 표현하며 꽃을 피워내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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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과거에는 사다미츠가 겐신의 명령을 받아 익사를 위장해 암살한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현재로는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있다.
  • [2] 우에스기 노리마사는 가와코에 야전에서 카게토라의 아버지 호죠 우지야스에게 패해 에치고로 도망친 사람이다.
  • [3] 혼죠 시게나가가 이후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켜서 간혹 가게토라 파였다고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 [4] 그렇다고 다케다가 원군을 보내서 승부가 결정 난 것은 아니고, 그냥 가게카츠군과 가게토라군이 외부지원 없이 붙어서 가게토라가 패배한 것이었다.
  • [5] 발음은 둘다 시바타에 이름도 비슷하지만 시바타 시게이에는 新発敦씨고, 시바타 가츠이에는 柴田씨다.
  • [6] 이때 우에스기군이 워낙 거세게 저항해서 시바타 가츠이에는 혼노지의 변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우에스기군과 싸우고 있었다.
  • [7] 다른 가문의 경우 어쩔 수 없이 가신들을 정리해고하여 살 길을 도모했지만 우에스기가는 차마 가신들을 내버릴 수 없어 정리해고 없이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비유하자면 삼국지연의에서 유비가 백성들을 모두 이끌고 힘들게 도망치던 것과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오카 사다토시처럼 주군을 위해 자기 가산을 내어주고 다른 영주에게 사관한 케이스도 소수지만 존재했다.)
  • [8] 전술했듯이 본래 우에스기의 영지는 치고였지만, 도요토미 시대에 아이즈로 전봉되었고, 세키가하라 패전 후에 감봉되면서 요네자와의 영지만 남았다.
  • [9] 카타쿠라 코쥬로랑 동일 성우다.
  • [10] 근데 그 주검은 다르아닌 우에쓰기 카게토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