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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last modified: 2019-12-29 22:10:4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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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偶像, idol
2. 右相

1. 偶像, idol

개신교에서는 이걸 숭배하면 안된다고 한다

보통 다신교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것을 말한다.

주로 유일신교에서 배척하려고 환장(…)하는 물건. 특히 그리스도교이슬람교에서 이를 부정하는 소리가 높다. 가끔 공산주의 계열에서도 종교적 우상을 배척하려고 애쓰는 경우가 있었다. 대신 마르크스-레닌이 신격화

종교별로 보자면 그리스도교 중에서 8세기 가톨릭(천주교)과 정교회의 분쟁원인도 성상의 인정 유무였다. [1] 특히 가톨릭은 이런 진통을 겪고 난 뒤로, 르네상스 예술이 결국 성서 혹은 그리스·로마 신화를 형상화해 놓은 것이니만큼 그리 엄하게 보지 않고 '예술품' 카테고리로서는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단 가톨릭의 공식교리에서도 이콘이나 성상의 존재 의의는 존경의 마음으로 예를 표하는 것에서 그친다. 사진이나 인물의 초상화, 동상을 보면서 그들의 삶과 업적에 대해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이콘이나 성상을 공경하는 것은 곧 이들이 묘사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와 같이 믿음의 삶을 살아간 여러 성인들의 굳건한 믿음을 기억하고 본받으려 하는 존경의 표시이다.

정교회는 초기에는 그림 이콘 이외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비잔틴 제국에서 성상 인정 문제로 여러 차례 투닥거리는 우여곡절을 거쳐 성상이 부분적으로 공인되기는 했다. 그런데 십자가 목걸이나 십자고상 정도로 한정되어 있고, 그리스 신화 같은 다른 신의 형상에 대해서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예술품'의 가치만 인정하고 있다. 정교회는 오히려 고대의 신전을 개조해서 교회를 만드는 데 열중했다.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도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아테네오스만 제국에 넘어가자 100년 남짓 이슬람 사원으로 쓰인 역사가 있으며, 파르테논 신전 근처의 헤파이스토스 신전은 상태가 아주 양호해서 1860년대까지 성당으로 쓰였다.

이슬람교는 어떤 종교도 못 따라올 만큼 가장 반우상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슬람에서 제일가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얼굴마저 묘사하지도 않고, 모스크 내부의 움푹 파인 곳이 상징의 역할을 한다. 이렇듯 자기 종교 내의 성상은 물론 상징조차도 거의 안 만들어 두는 만큼, 자신들이 정복한 타 지역의 우상에 대해서도 극단적으로 배제한다. 하지만 지역마다 용인수준도 크게 달랐는데, 가령 13세기 이후 몽골투르크족의 영향을 받은 이후로 페르시아에서는 중국의 영향이 분명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이는 세밀화(miniature)예술로 게승되었다. 또한 비교적 초기 무슬림 국가인 마위야 왕조에서도 인물의 형태를 묘사한 무늬를 건축장식에 사용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예언자에 대한 묘사 금지' 같은 금기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조각은 여전히 금기시되고 있으며, 원리주의자들은 알짤없다. 이슬람 왕국이 중앙아시아의 불교 왕국들과 인도의 힌두교 지역을 정복하면서 이들의 성상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기도 했고, 탈레반유네스코 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폭파한 사건도 있었다. 실제로 힌두교인과 이슬람 교인 사이 상당히 안 좋은 배경 중의 하나를 차지하기도 한다.

유대교에서는 주로 상징을 사용한다.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 왕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에는 커룹과 같은 천사의 상이 새겨졌으며, 다양한 장식이 되어있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의 유대교 시나고그에서도 토라의 구절을 새긴 벽면이나 다윗의 별, 7개의 가지가 달린 촛대 메노라 같은 상징들이 존재한다.

개신교의 경우 가톨릭에 반대항을 두기 의해서 우상에 대해 상당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물론 루터교처럼 그냥 예술작품 정도로 인정하고 남겨두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 개신교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칼뱅 계통 교파들은 대놓고 적대적이어서 이미 종교개혁스위스네덜란드에서 성난 군중들이[2] 합스부르크에 대한 화풀이도 할 겸(...) 신나게 성당을 털어버리고 교회로 개조해버렸다는 예가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이정도면 이슬람 뺨칠 수준[3] 멀리 가지 않아도 당장 우리나라에 불화나 탱화에 십자가 그어놓은 것들도 나름 볼 수가 있고… 이슈로 보자면 단군상 목치기(…)를 생각해 보자. 근데 이 양반들이 평소 하는 행실을 보면 이런 전후사정 따지지 않고 그냥 생각 없이 벌인 짓 같기도 하다. 참고로 개신교의 우상에 대한 거부와 검소한 절제는 건축에도 이어졌고, 네덜란드를 비롯한 신교가 주류였던 국가들의 교회들은 카톨릭의 성당에 비해서 규모나 장식적인 면에서 검소한 편이다. 이러한 점은 훗날 현대건축의 시발점이 된 모더니즘 건축에서 장식이 사라지는데 영향을 끼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4]

연예인들 중 아이돌이라 불리는 무리들의 어원도 바로 이 단어. 말 그대로 우상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붙었다. 실제 중국어로도 아이돌을 "우샹"(偶像)이라고 부른다.

2. 右相

조선시대 의정부(議政府)의 정1품 관직인 우의정(右議政)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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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성상의 인정 문제가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긴 하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선 로마 카톨릭측에선 야만족들을 교화하기 위해 성상이 필요했고, 이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동방정교회와 결별한 것처럼 묘사했으나, 실제로는 카톨릭측이 성상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동방 정교회는 이미 이전에 성상 파괴운동 때문에 큰 내홍을 겪기도 했디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인 문제는 성상문제보다는 교리적으로는 필리오케 논쟁, 정치적으로는 로마 황제의 종교적 영향력에 관련된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 [2] 당시 네덜란드에서 가톨릭은 스페인 압제의 상징으로 어그로를 끌 대로 끌어버린 상황이었다.
  • [3] 실제로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교황권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터키인이 되겠다(Liever Turks dan Paaps)라는 말까지 유행하던 상황이었다. 현재 네덜란드가 타 유럽국가들처럼 이슬람에 적대적이란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 [4] 일례로,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인 르 코르뷔지에는 프랑스어권인긴 하지만 개신교 성향이 강한 도시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