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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last modified: 2015-12-04 08:24:34 Contributors


이 표지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문학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문학이 아니라 그냥 입시용 교재

이문열이 쓴 소설과 거기서 파생된 영화, 연극 제목이다. 소설 전문 보기

Contents

1. 소개
2. 특징
3. 줄거리
3.1. 병태의 전학
3.2. 병태의 저항과 굴복
3.3. 엄석대의 붕괴
3.4. 결말
4. 평론
4.1. 김 선생에 대하여
4.2. 교양물, 학원물이란 측면에서
5. 여담
6. 표절시비 논란
7. 미디어믹스
7.1.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7.1.1. 배역
7.2. 연극

1. 소개

1987년 발표된 이문열의 중편소설.

제11회 이상문학상 본상을 수상하였다.참고자료

1987년 당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당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를 고수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여담으로 당시 2위에서 6위는 모두 외국 번역작품이다.참고자료

2. 특징

1980년대 당시에 교육현장을 소재로 삼은 소설은 많이 있었다. 이는 작가들이 겸업하는 직업 가운데 교사의 비중이 무척 컷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교육현장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1986년 학사상 자료연구실의 조사에 따르면, 당시 문단 인구의 44.7%가 교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즉, 당시 한국 문단은 반쯤은 선생님들이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참고기사

하지만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당대 교육현장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과는 차별점을 가졌는데, 일단 대부분 '중고교'를 대상으로 했던 당시 소설들과는 달리 국민학교(not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다. 화자와 시점은 모두 국민학생의 관점에서 진행되며, 국민학생의 집단을 대상으로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폭력에 대한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참고기사

3. 줄거리

3.1. 병태의 전학

이야기는 화자 한병태가 삼십년 전 자신의 생활을 회고하면서 시작된다. 자유당 독재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초등학교 5학년 소년 '한병태'는 서울특별시의 명문초등학교에서 시골 작은 읍내의 학교로 전학온다. 그러나 여기에서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데, 학생들의 자치회가 있고 모든 것이 토론과 투표로 결정되며 급장은 단지 심부름꾼이던 서울의 학교와는 달리, 시골의 학교는 급장 엄석대의 절대적인 권위주의에 따라 지배되고 있었다.

학급은 급장(당시엔 반장을 급장이라 불렀다)인 '엄석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데, 엄석대는 선생님들에 대한 충성과 선생님들의 기준에 '완벽한' 학생을 연기하며 선생님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폭력과 회유를 적절히 섞어가며 반의 학생들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런 엄석대가 무서워 자발적으로 엄석대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엄석대는 그런 권력 속에서 자신의 패거리들을 이끌고 주인이 노예를 대하듯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물건을 빼앗고, 시험에서 부정을 저질러[1] 만점을 받는다. 그리고 새로 한반이 된 병태 역시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만들려고 한다.

3.2. 병태의 저항과 굴복

한병태는 그런 엄석대의 행동이 틀리다는것을 믿으며, 가치관대로 행동하려 하지만, 학급이 굴러가는 꼴은 이미 병태의 가치관과는 안드로메다급 차이가 있었다.안드로메다는 점점 가까워지고있다 자신의 편을 만들어 보려고 학생들에게 친하게도 대해보고 물건도 사줘 보지만 결국 학생들은 엄석대가 두려워 그가 시키는대로 할 뿐이다. 급장선거도 결국 엄석대의 손아귀에서 굴러갈 뿐이고, 심지어는 서울 출신이라 병태가 자신이 있었던 공부조차도 대리시험 셔틀을 부리는 엄석대를 이기지 못해서 등수에서 밀려버린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생님들 조차 병태를 골칫거리로 여기게 되고, 자신의 설자리가 점점 줄어가자 결국 병태는 엄석대를 찾아가 자신의 굴욕을 인정하고[2] 엄석대가 시키는대로 하겠다는 표시를 한다.

그러자 엄석대는 병태에게 자신의 권력을 일부 맛보게 해주며 한 편으로 끌어들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예 자신의 오른팔 자리에 앉혔다. 엄석대는 한병태에게 다른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당번, 셔틀짓 등에서 제외해주는 특권[3]과 이익을 안겨주었다.

엄석대가 주는 특권과 이익에 맛들려 병태 조차도 점차 반 학우들과 동화되어 간다. 석대 그룹에 끼어든 병태는 우연히 석대의 최대 약점인 대리시험 셔틀짓을 알게 되지만, 이전과는 달리 알고서도 이를 무시한다.

사실 엄석대가 한병태에게 해준 '우대'는 한병태가 그만큼 엄석대의 권력에 위협적이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비교적 엄석대 치하에 머무른 시기가 짧고, 따라서 자유에 대한 갈망도 더 컸던 병태는 한 학기가량 반 전체를 적으로 두고도 버텨갔다. 결국 꺽이기는 했지만, 엄석대 입장에서 한병태는 지금까지 엄석대가 쉽게 지배할 수 있었던 평범한 시골 아이들과는 다른, 분명하게 자신을 적대하면서 치밀하게 공격을 가하는 집요한 '적'이었음이 분명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병태 자신보다는 한병태의 '부모'가 더 무서웠을 것이다. 시골로 좌천되었다고는 해도 한병태의 아버지는 '공무원'이고, 한병태 역시 다른 아이들보다 명백하게 더 부유했고, 시골에서도 평균보다 많이 잘 사는 집 아이다. 엄석대가 모범생의 탈로 본성을 감추고 철저하게 '아무 문제도 없음'을 가장하지 않으면 안될 상대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엄석대는 자신의 그룹에 한병태를 끌어들였으면서도, 자신의 최대 '약점'은 한병태에게만은 알리지 않고 숨겼다. 물론 병태 역시 미술 과목 그림 셔틀을 해주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그림 숙제와 시험은 이 당시 시골 학교에서는 질적으로 다른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한병태는 엄석대의 약점을 알아내고서도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즉, 한병태는 본질적으로 나약한 지식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3.3. 엄석대의 붕괴

그러다가 서울에서 새로 부임한 김 선생이 6학년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을 맡으면서, 이상한 점을 하나 둘씩 발견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급장선거에서 만장일치로 엄석대를 뽑는 것,[4]2년 간 전교 1등인 엄석대가 정작 선생이 수업시간에 문제를 풀도록 시키면 제대로 못 푼다는 것,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이 아닌 엄석대에게 청소검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검사를 받는 등등.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의아해하는 김 선생에게 다른 선생님들은 엄석대를 '자기가 잘 알아서 하는 학생이다.', '성적도 1등, 청소도 1등, 운동도 1등인 학생이다.', '엄석대 반은 뭐든 1등 반이다.'으로 말할 뿐이다. 영화판에서는 이 대사를 말한 후, 라디오에서 "3.15 선거는 불법이다."라고 외치는 시위자들의 뉴스가 나온다.

마침내 시험부정을 눈치챈 김 선생이[5] 이 전반의 모든 사태에 대해서 눈치를 채고는 엄석대에게 매를 때리기 시작하고,[6]결국 아픔에 견디다 못한 엄석대는 "잘못… 했습니다."라며 처음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김 선생은 엄석대의 대리시험 셔틀들도 불러내어 누가 셔틀을 시켰는지 질문했고, 이미 엄석대가 약한 것을 본 셔틀들은 엄석대가 시켰노라고 자백했다. 이에 김 선생이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각자 죄스럽고 들킬까 겁났다는 반응이었고, 이에 김 선생은 자기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줄 모르고 불의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줄도 몰랐다는 이유로 매질을 했다.[7].

결국, 김 선생으로 인해서 엄석대의 권위가 무너지게 되었고, 엄석대의 잘못을 나머지 아이들에게 질문하자, 아이들이 하나하나 나서서 앞뒤를 다투며 엄석대의 잘못들을 너도나도 꺼내서 담임에게 일러바친다. 저 새끼는 순 나쁜 새끼예요! 저 새끼는 해로운 새끼다 영화판에서는 새로운 대사를 외우게 하기 귀찮았는지링크처럼 애들의 대사가 일관적이지만 소설판에서는 뒤로 갈수록 엄석대를 향한 "'임마', '새끼' 등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욕들이 튀어나왔으며,[8] 대화의 방식도 엄석대를 직접 까는 내용까지 추가되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석대를 매도하는 와중에도 병태만은 엄석대의 잘못을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일면을 보여주었다. 이런 병태의 행동에 대해서도 해석할 여지가 많은데, 병태는 자기나 학우들도 엄석대의 잘못에 동참한 악인이라는 심정으로 엄석대의 부정을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소설판에서는 이 때 병태의 마음을 직접 해설해 준다. 대충 '저 놈들은 석대가 실각하기 전에는 석대 밑에서 꿀 실컷 빨아 놓고, 석대가 권위를 잃으니까 쓰러진 놈 등 밟으면서 까대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다.[9] 그리고 김 선생은 아이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비겁함의 값과 앞으로 삶에서 교훈의 값으로 아이들에게 매질 4대씩을 하였다.

결국 모든 것이 틀어진 엄석대는 새로운 급장 선거 도중 학교에서 쌍욕을 하면서 뛰쳐나가버리고, 나중에는 등교길에서 애들을 습격하면서 복수를 하려고 하지만 선생님의 일갈에 자극받은[10] 애들의 저항에 부딪혀서 패퇴하여 완전히 잠적한다. 영화판에서는 이에 엄석대가 교실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는 장면까지 그려냈다. 그리고 재가한 어머니를 찾아 서울로 떠났다는 소문만이 들려왔다고 한다.

3.4. 결말

소설판에서는 결말이 3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는 손실되어서 누구도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아니, 작가가 멀쩡히 살아있는데 어째서? 결말 하나는 엄석대가 몰락하는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서, 현재의 한병태는 소시민으로서 바쁘게 살아가던 도중 엄석대를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는 형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두들겨 맞고 결국 체포된다. 병태는 그 날 저녁 그 때의 일을 회상하며 술을 마시다 눈물을 흘린다. 두 번째 결말은 엄석대가 화려하게 성공을 하는 결말이다. 현제의 병태가 가족과 바다로 여행을 하다가 숙소를 잡지 못했다. 그러던 도중에 엄석대를 만나고 엄석대가 호텔로 예약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석대랑 병태가 만나서 석대가 "나중에 들었다. 그 무효표 둘. 한 표는 틀림없이 너의 것이었겠지. 세월이 지나도 그 귀중한 한 표를 잊을 수 없었다." 하면서 병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병태가 석대가 방으로 나가는데 그를 앞질러서 오래전부터 모셔온 사람처럼 문을 열고 맞이하고 끝난다. 소설판은 이렇게 끝나지만, 영화판은 석대가 어딘가의 거물이 되어서 화환을 보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작가 후기에 따르면 결말이 3가지라고 한다. 흔히 알고 있는 엄석대가 기차역에서 형사들에게 체포되는 버전과, 한병태가 다시 화려하게 성공한 엄석대와 재회하는 버전, 그리고 성공했는지 망했는지 애매한 결말이 있다는데 마지막 결말은 원고가 분실되어 찾을 길이 없다고…….

두 번째 결말애서의 엄석대는 엄청난 거물이 된 모양. 고급 외제차에 전용 기사까지 부리며, 강릉 경포대로 휴가를 나온 한병태가 아직 마땅한 숙소를 못 잡았다고 하자 여름 피서철, 이미 투숙객들로 미어터진 경포 관광호텔의 스위트룸 키를 예약도 없이 받아내는가 하면, 룸살롱에서 한병태에게 명함을 건네며 '신통찮거든 나를 찾아와. 여기도 업체가 있지만 나도 주력 사업 본사는 서울에 있어. 옛날같이 우리가 손잡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라고 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엄석대가 이렇게 한병태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엄석대가 급장에서 쫓겨난 후 치러진 새 급장 선거에서 한병태가 투표한 무효표 한 장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이후 룸살롱에서 헤어질 때 '석대를 앞질러 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를 모셔온 사람처럼 공손히 문을 열고 그를 기다렸다.' 라는 구절이 백미.

4. 평론

이문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장편에서 대표작으로 사람의 아들을 꼽는다면 단편에서 그의 대표작은 단연 이 작품을 친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로 표현한 우화라는 것이 보편적인 평이며 이문열은 이 작품으로 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대중적으로도 매우 인지도가 높은데 초등학교 교육과정부터 국어 교과서의 단골 소재이며 시험지문으로도 종종 등장한다. 영화화도 이루어졌으며 영화 또한 이문열 소설의 영상화 중 가장 성공한 작품으로 통한다. 즉 이문열의 작품중에서도 최고의 역작, 작중 시간적 배경은 4.19혁명 직전으로 보인다. 작중 극초반에 "자유당 독재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무렵..."이란 문구가 분명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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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문열식 영웅 찬가가 새로운 발돋움을 했다는 평을 듣는 이문열의 기념비적 작품. 영화화되었고, 해외에 번역되어 출간되어 그의 명성을 쌓는데 가장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소설이다.

이문열은 사람의 아들이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작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문열을 중견작가로서 인정받게 해준 작품은 바로 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되겠다. 그만큼 이문열의 작가경력에서 중요한 작품이며, 한국문학사의 입장에서 봐도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우선 우리나라의 굴곡진 현대사를 초등학교 학급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구현한 솜씨가 매우 빼어나며 소설적 재미를 살렸고 통상적인 교양소설의 형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90년대부터 꾸준히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이기 때문에[12] 이 작품과 그 해석에 대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이 작품을 정치적인 우화로 해석하는 경향인데, 이는 90년대에 교과서에서 채택하면서 가장 대중적으로 인식된 해석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면에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조금씩 해석이 달라진다. 당시엔 부당한 권력이나 독재의 종식을 이야기하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양상을 띄웠다. 현재에는 폭력이 또다른 폭력에 의해서 종식당하고 새로운 폭력의 시대가 열리는 것에 대한 냉소, 그리고 주인공 한병태가 향수를 느끼는 장면 등을 들어서 권력을 순응하고 동경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린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그렇게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문열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도 발표 후에 수정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최근에 발매된 이문열 작품선에서는 또 한 번 개작된 엔딩이 나왔으며 아예 기존의 결말을 같이 실어놓기도 했다. 또 이 작품이 다른 매체로 개작되는 과정에서 변형도 많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이 아주 판이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결론을 짓자면, 우선 어떤 결말이든 한병태의 태도가 찜찜하게 끝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그저 한 소시민의 씁쓸한 회상인지 혹은 권력에 대한 향수와 동경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한병태는 분명 변화된 시대상에 대해서 불만족에 빠져 있으며 동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석대의 몰락과 그 이후 과정에 대해서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엄석대의 경우도 끝이 좀 다르긴 하지만, 또 한 번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는 동일하다.

이를 통해, 작가가 긍정과 부정을 떠나 한국의 현대사 흐름에 강한 아이러니를 느끼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런 입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식자층이 느껴온 어떤 무기력과 회의주의적인 감성이 나타난다는 측면, 다른 하나로 작가 개인의 보수적인 스텐드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측면이 있겠다.

사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지식인층의 무력감은 리얼리즘 계열 작품에서는 흔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계몽주의 시대 이후의 작품들은 대체로 혁명가가 독재자로, 이념가가 현실에 매몰된 속물로 몰락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 또한 결코 무탈하게 지나오지 않은 만큼, 그 과정에서 식자층들이 느끼는 무력감과 불만족은 문학작품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이 작품에서 다루는 바는, 오히려 주류적인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뚜렷한 정치적 스탠드의 문제라기 보다는 식자들 사이에 만연했던 회의주의적인 자세, 현실순응적인 자세를 여과없이 묘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시각에서 이 작품이 보수주의적이라거나 민주화 투쟁에 대한 근거없는 냉소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 한병태가 스스로의 굴종을 타락이라고 인지하고 있으며 작중 스스로의 입으로 "굴종의 단맛에 취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엄석대가 몰락하기가 무섭게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인 김 선생에게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며 한병태가 느끼는 아이러니는, "나는 너희들보다는 지조가 있다."라는 냉소처럼도 읽히며 "(지금 설레발 치는)너희나 나나 똑같지 않느냐? 왜 (내가 투쟁할때)나에게는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았느냐?"라는 비난처럼 읽히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말부에서 한병태가 "엄석대의 새로운 왕국이 생기고, 거기에서 예전과 같은 호사를 누리는" 상상을 하는 장면이다.(판본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나 가장 유명한 결말일 것이다.)

위와 같은 대목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는데, 첫째는 작중 한병태는 바뀐 환경에 대해서 강한 괴리를 느끼는 캐릭터이며 항상 거기에 쫓아가지 못하고 소외되는 인물이다. 둘째는 결말부의 한병태는 보잘것 없는 소시민의 신분으로 각박한 삶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무엇보다 엄석대는 결국 또 다시 실패하고 잡혀가는 신세로 나온다. 여기서 나타나는 한병태의 감정은 결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자조에 가까운 것이며 당시 한국사회에 고개들기 시작한 물질주의와 성공주의를 생각해 보면 자포자기에 가까운 망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 이후의 작품들, 특히 90년대 이후에 보여준 작품활동에 대한 비판이 이 작품으로 번진 것도 생각해둬야겠다.

결론을 내자면,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우화라는 양식에 충실한 작품이다. 정치색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른 이문열의 작품들, 장편 선택, 시인이나 단편 우와의 만남, 로 아리랑, 아난 악령 등에 비해서 노골적이지 않다. 특히 몇몇 작품에서 이문열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거의 찌라시 기자에 가까운 어조로 쓰고 있으며 특히 최근으로 올 수록 작풍이 망가지고 정치색에 대한 여과없는 어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그러한 작풍과 비교하면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작품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일그러진 영웅"이며 그 성장과 절정, 그리고 몰락,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어지는 "영웅의 연쇄"에 있다. 그 사이에서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식자이든 소시민이든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이 느끼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작품 해석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으로 서울에서 부임한 김 선생의 입장에 대한 해석에도 논란이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작품 전체의 해석과는 연관된 부분은 아니다. 우선 김 선생이 엄석대와 마찬가지로 폭력과 정치적 술수로 권력을 장악한 새로운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김 선생의 역할을 통해 "영웅의 연쇄"라는 루프가 완성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도 똑같다. 다만 작품 외적으로, 김 선생이 "독재자를 때려잡은 미군이라는 입장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대체로 이문열의 친미성향과 엮어서 "현대화 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너무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식의 비판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작중에서 김 선생은 또다른 폭력이며 그 증거로 한병태가 초기 엄석대에게 느꼈던 저항감을 김 선생에게도 똑같이 느끼는 점을 보아야 할 것이다. 김 선생을 "해방자"로 해석하는 경향은 작품의 해석을 "독재타도"로 보았던 과거의 것이며 오히려 김 선생이 "해방자가 아니라 또다른 억압자"로 해석된 것이 이 작품을 재평가하게 된 계기였다. 이문열 자신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엄석대를 교실의 질서를 세우는 데 이용한 5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실리에 따라서 독재정권을 용납한 미국의 6~70년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메타포이고, 엄석대를 폭력으로 굴복시킨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인 이념이다.

덧붙이자면, 엄석대의 시험성적의 날조에 협조했던 모범생들은 지식인 출신의 관료 내지 행정기술자들이며, 지식인과 권력 사이의 관계를 다뤘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쓰는 작업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고 이문열은 말한다.

4.1. 김 선생에 대하여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또 불의 앞에서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어!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인 녀석들이, 만약 너희들이 계속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앞으로 어른이 되어서 만들 세상은 상상만 해도 끔찍해!

강압적이고 부당한 권력자인 엄석대, 거기에 저항하나 결국 맥없이 무너지는 소시민적 지식인 한병태, 엄석대의 압제에 굴복하는 학급 아이들의 경우, 소설에서의 성격이 상당히 정형화되어 있으며 또한 비유한 세력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적은 편이지만 소설 후반부 등장하는 김 선생의 경우에는 상당히 입체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대다수의 해석에선 김 선생 역시 엄석대와 똑같이 '폭력과 권모술수'를 통해 학급의 정권을 탈환하고 엄석대 비판작용을 통해 새로이 권력을 공고히 한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영화판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국회의원 김 선생'의 모습은 이러한 의식을 보다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해석을 기반으로 하였을 경우 김 선생은 '기존 압제세력을 제거하여 권력을 가지려는 새로운 압제세력'을 나타내며 특히 우리 사회에서 반미주의가 점차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김 선생을 '미국'을 비유한 존재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이문열의 언급으로 인하여 이런 해석이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김 선생의 사회적 위치나, 극중 배경인 1960, 70년대를 생각해 보면 김 선생을 '해방자 같은 압제자'로 보기만도 어려운 노릇이다. 일단 엄석대와는 달리 김 선생은 '선생'이라는 '학급 운영에 대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한을 가진 인물'로 등장하며 사실 엄석대도 김 선생에 비하면 아랫 직위(반장)에 있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엄석대 역시 전 학급 담임 선생의 방관과 신임 속에서 힘을 얻었을 뿐인 학생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군대로 묘사하자면 같은 병사 계급인 이등병, 일병, 상병 등의 후임 병사에게 '사적제재'를 가하는 병장과 중대원에게 '얼차려'를 주는 중대장 정도의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애초에 더 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압제자'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애초에 지휘권이나 교육권을 가진 자가 지시하는 것이 불법은 아닌데다가 오히려 지휘자 밑에서 불법적으로 사적제재를 가하는 불순분자를 뿌리뽑는 것이 지휘권을 가진 자의 의무이다. 즉 김 선생이 엄석대를 축출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정당하며 애초에 엄석대와 김 선생은 '같은 권한을 가진 자'가 아니다. 엄석대도 김 선생의 지시와 교육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엄석대 역시 학생이고 학생은 교사의 정당한 교육 지시에 순응할 의무가 있다.

방법의 문제는 있었겠지만, 오히려 김 선생이 엄석대의 권력을 그대로 두고 보거나 전 담임처럼 이용했다면 그것 자체가 직무유기이며, 방조죄이다. 선생의 제 1의무는 '학생의 지적 수준을 특정 수준 이상까지 향상시키는 것과 학생의 인격적 도야를 돕는 것.' 이기 때문이다.

또한 김 선생이 엄석대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폭력이 있었으나, 1970년대 당시에는 오히려 그 방법이 교육의 왕도였다. 아닌 것 같다면 40대, 50대 이상의 중년 어른에게 그 당시 교육에 대해서 한번 들어보자. 죽도록 맞았다는 일화가 수도 없이 나올 것이다. 물론 21세기에는, 이런 학생의 체벌이 '절대악'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불과 80~90년대만 해도 합당한 체벌이라면 육체적 체벌 역시 정당한 교육방법으로 인정을 받았었다. 사실 21세기 초에서도 한국에서 줄빠따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과연 '엄석대에게 빌붙어서 대리시험을 쳐 주고 선생을 기만한' 학생이 죄가 없는가? 참고로 대리시험은 현재 학교에서도 정학은 기본이요, 수능이나 국가시험에서도 중대한 부정행위이기에 시험자격을 수 년 박탈하는 경우도 있다. 즉, 김 선생은 그 시절 당시 기준으로는 악랄한 처벌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김 선생은 '돌아온 압제자'가 당연히 아니다. 이 경우 김 선생은 엄석대의 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제한한 선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인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되면 김 선생은 부당한 권력이 횡행하던 학급을 제 상태로 되돌려 놓은 '해방자'로 해석을 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김 선생은 압제자, 해방자 등으로 해석 될 여지가 있는 입체적 인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김선생은 폭력을 동반한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했을 뿐이고, 민중에게 능동적인 혁명의 기회를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측면 때문제 해방자적인 면이 있을지언정 순수한 해방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무능하고 폭력과 억압의 질서를 방기하는 관리자인 전 담임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당연하나, 무능한 민중이라는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문열 특유의 허무주의로 이어지기 쉽고, 이는 정치적 보수성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그리고, 김 선생의 해석 문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 중 하나가, 김 선생의 해방은 철저하게 '피해자 자신이 그 대가를 부담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엄석대에 의한 강압적 지배구조에서 학생들은(설령 굴복하고 영합한 면이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피해자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김 선생은 피해자의 입장을 보호하기는 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강압하여 엄석대에 저항하게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즉, 엄석대의 독재로 인해 입은 피해에 더하여 엄석대에게 저항하는 대가까지 치르게 한 것. 여기서 문제는, 엄석대가 가진 최대의 권력기반은 교사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병태가 엄석대에게 저항하던 시기에 엄석대는 주로 숙제검사나 소지품, 복장검사, 청소검사 등 교사의 권한을 대행하는 영역에서 한병태를 탄압했다. 즉, 5학년때의 담임(천하의 개쌍놈)은 단순히 엄석대가 반 아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을 방치한 것이 아니라, 폭력의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방조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학급 아이들의 소극적 굴종보다 훨씬 더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5학년때의 담임이다. 애들이 몇십대 맞았으니 선생은 백대는 맞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김 선생 자신이 엄석대를 방조한 것은 아닐지언정, 학생 대 교사라는 권력 관계 내에서 동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김 선생의 해결책은 교사가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은 아이들에게 교사의 잘못을 만회할 책임까지 떠넘기는 것이었다. 특히, 엄석대가 학급 아이들에게 보복폭행을 가하던 시기에도 교사라는 입장에 있던 김 선생을 위협했다는 이야기는 작중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다. 결국 김 선생은 엄석대 문제의 책임을 진짜 책임자인 동료교사가 아니라 만만한 피해자인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자기 자신은 편안하고 안전한 위치에서 학생들을 싸움터로 내몰았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 이 부분에서, 학교 권력관계의 최상위 구조인 교사-학생간의 역학관계와 이로 인한 책임문제가 작품 중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4.2. 교양물, 학원물이란 측면에서

작가 이문열이 2010년도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성장소설"이라고 코멘트한 바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말하는 덕분에 권력에 순종하면서 사는게 좋다는 안드로메다적인 인가?"하는 야유도 있다. 그러나 교양소설, 성장소설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자연주의 계열에서는 오히려 속물적으로, 타락하는 방향으로 성장해나가는 인간을 통해서 인간성이 얼마나 쉽게 유린 될 수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그 인간성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보통 독자들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사드 남작의 대표작들 또한 성장소설, 교양소설로 분류된다. 이 작품은 한병태의 타락과 자포자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성장소설적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다.

이 소설은 "학원소설"이라는 측면에서도 읽힐 수 있다. 특히 소위 빵셔틀로 요약되는 학교폭력 문제의 현실을 바라보면 이 작품은 수십년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실내에서의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그 만큼 집단괴롭힘을 대처하는 방법이 수 십년동안 변화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13]

학원폭력이라는 관점에서 이 소설을 바라보면, 소위 "일진"인 엄석대와 그 패거리가 한병태를 "왕따"로 만들고, 복종시킨 다음에는 "셔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엄석대의 일진-셔틀 행위는 집요하고 치밀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엄석대는 단순히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이진'들을 조직하여 다양한 이득을 꾀한다는 점[14]에서 조직폭력배의 학교 버전으로서의 일진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또한 엄석대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혹은 실체를 눈감아주면서 오직 '성적'과 '질서'에만 골몰하는 교사들의 모습, 한병태가 엄석대의 일진패거리에 붙어서 또 다른 왕따를 만들고 으스대는 모습, 종국에 엄석대에게 대처하는 방법 마저도 "폭력교사"에게 엄석대가 학교에서 "짤리는" 결말, '정의'를 대변하는 교사인 김선생 마저도 아이들을 내몰아 엄석대를 공격하는 '또 다른 집단괴롭힘'을 저지르며, 교육자로서 엄석대를 대하기보다는 '문제아를 잘라내는 활동'에만 집착한다는 점에서 일선 교육현장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런 요소들은 오히려 최근에 발표된 학교를 소재로 한 소설들보다 적나라하다.

엄석대는 작중에서는 강력한 '압제자'로 묘사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들 세계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김선생의 매질에 결국 굴복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엄석대 역시 기껏해야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소년에 불과하며, 오히려 배경에서 암시적으로 묘사되듯이 '결손가정 출신'으로 학교에도 몇년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당시 시점에서는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엄석대가 아이들에게 가지는 강점은 결국 같은 반의 다른 애들보다 실제 나이가 2,3살 더 많아서 덩치가 크고 힘이 셋다는 것 뿐인데, 어떻게 보면 자기보다 나이 어린 꼬꼬마들 사이에 끼어서 수업을 받아야 하는 조금 꼴사나운 처지(…)였다.

또한 작중 김 선생은 아이들의 저항정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체벌을 가했으나, 당시가 아닌 현대의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일진 한 마리한테 몇 년을 휘둘린 애를 보듬어주진 못할 망정 어디서!" 라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설에 나오는 아이들은 초등학생이다.

5. 여담

이문열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그러진 영웅"형 인물이 최초로 등장했다는 점을 필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전에도 일그러진 영웅형의 인물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 소설에서 엄석대를 기점으로 하여 이러한 인물상이 뚜렷하게 확립되었다. 이문열의 데뷔작인 자레를 아십니까에 나왔던 목사의 아들이 일그러진 영웅의 시작지점처럼 보이기는 하나, 이는 오히려 훗날에 나타나는 타락한 지식인, 냉소적인 지식인의 형태에 가깝다. 물론 여기서 나타난 엄석대의 처참한 몰락은 후대의 일그러진 영웅들에게는 없는 것인데, 이에 따라 여기서 엄석대 자체도 "보다 큰 권력의 용인하에 설쳐댄 나팔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후에 결말을 바꿔서 엄석대에 거물이 되는 판본에서는 후대의 일그러진 영웅들과 같다.

이 작품의 작가인 이문열 특유의 엘리트 의식이 나타나는 소설이라는 평가도 있다. 우선 한병태가 전학 초기에 보였던 태도는 전형적인 엘리트 의식의 발현이고 한병태가 전반적으로 보이는 식자적 태도, 그리고 결말부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몰락한 인간이나 실패한 인간으로 치부하는 태도에서 그런 점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엘리트의식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문열의 부정적 특징이 최초로 드러난 소설로 이 소설을 꼽는다.(다만 이 작품 이전에 내놓았던 작품들 또한 그러한 엘리트 의식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작품내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났던 "식자의 무력함"은 우리나라 식자계층의 자기합리화 논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식자계층의 자기합리화 자체가 이 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도 없는 데다, 문학 작품을 누군가 악용한다고 해서 그 문학 작품 자체나 그 작가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작품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관계로 악용도 많이 될 뿐이다.

작품의 절정이자 클라이막스인 엄석대의 몰락 장면은, 현세대를 살아가는 정치가·논객들의 처신과 허탈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일치한다. "부당한 권력이 몰락했을 때, 그에 최대한 저항했던 지식인과 비굴하게 아첨하여 연명한 시정잡배들은 어떤 행동의 차이를 보이는가?"에 관하여 현실을 돌아보면, 부당한 권력이 위세당당할 때에 모든 것을 부딪쳐 저항한 사람은 그 권력이 몰락한 후에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반면 권력이 강성할 때에는 찍소리도 못 하던 비겁자들이 오히려 그 권력이 쇠한 뒤에는 태도를 돌변하여 마치 자신은 그 권력자와 3대째 철천지 원수로 지내오기라도 했다는 듯 못잡아먹어 안달복달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엄석대가 독재하던 시절에 권위에 억눌려서 찍소리도 못했던 친구였던 만순이 있다. 저 새끼는 순 나쁜 새끼에요!

2013년 교육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엄석대의 존재적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같은 이들을 육성하여 높으신 분들 보시기에 좋은 학교폭력 드러나지 않는 학교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뭐라고요?

6. 표절시비 논란

영화화 될 무렵, 황석영의 단편 소설인 <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으나 영화의 흥행으로 인해 별 반응없이 묻히고 말았다. 하지만 2004년, 문학평론가인 반경환이 직접적으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황석영의 단편소설인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꺼내게 된다. 반경환은 이 주장으로 책도 냈다.

표절설에 대해 이문열은 자신의 위치를 시샘하는 이들이 억지주장을 한다는 식으로 슬쩍 넘어갔는데, 2008년즈음 부터 다시 재논란 되었다.

반경환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아우를 위하여가 전달하려는 구조와 스토리가 아주 유사하고, 화자로서 5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위치와 성격, 전달하는 부분이 모두 똑같다는 점을 지적하며 집필당시 정치색을 그리 띄지 않았던 이문열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유독 강렬한 정치색을 주입한 이유는 이와 같은 표절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밖의 표절에 관한 의견은 아래에 나와 있다.

  • 황석영의 소설인 아우를 위하여는 1970년대초에 출판 되었으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7년에 출간되었다.

  •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그의 초기 단편선 '객지(1974)'에 수록된 단편중의 하나로 황석영의 작품세계를 논의할 때 필수적으로 언급된다. 이런 작품을 이문열이 표절했다는 것은 넌센스이다. 표절설은 반경환이란 이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이런 주장에 응답하는 이는 평론계에 없다. 2008년에 재점화된 것도 이문열의 촛불집회 비난이 물의를 빚자 데일리 서프라이즈가 이문열을 공격하기 위해 반경환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선전하고 네티즌들이 뇌동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견해도 있다.

  •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시와바라 효조의 <長い道>(1968)을 표절했다는 설이 있는데 2008년 시점에선 표절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먼 길>은 일본 근대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로 같은 계보주의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은 왕국>(1918)의 비극적인 결말에 대해, 다른 해석과 희망을 제시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란 평론을 고려해야 하며, <먼 길>의 대립구조는 아우를 위하여와 반대되는 형태(입장이 역전되어있다)라, 표절이라고 이야기 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위와 같은 주장이 있으나, 문예지나 대중 언론 매체 등에서는 이와 같은 표절설을 대대적으로 다루거나 하지는 않고 있다. 이문열 자신이 표절이라는 주장에 대해 별다른 코멘트를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인 만큼, 실제로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황석영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대하여 "읽지 않았다"고 짧게 코멘트했다.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한 한국 문학 총서라는 단편선에서는 이문열의 대표작으로 <하구>, <금시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실었다. 창비는 문학의 사회적인 기능을 중요시하는 문예지에서 비롯되었으며 <객지>나 <한씨 연대기>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황석영은 창비의 문학 이데올로기에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으니 그 둘은 그만큼 긴밀한 관계에 있다. 반대로 이문열은 막 소설가로 이름을 알리던 시절부터 <칼레 파 타칼라>처럼 사회 개혁에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내는, 소위 보수반동적인 세계관을 표출해 왔기 때문에 이문열이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글을 못 실어본 문예지가 창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간 서먹한 관계이다. 하지만 그런 출판사에서조차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대표작으로 인정하고 책에 실었다는 것은, 사실상 문단에서 이문열을 특별히 호의적이게 보지 않는 이들조차 표절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막상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비평계에서 <아우를 위하여>보다 <우상의 눈물>과 많이 비교되었다고 한다.

7. 미디어믹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89년에 이미 연극으로 각색되어 공연되었다.참조 홍익소극장에서 극단 까망이 각색하여 공연하였고, 몇년간 공연이 지속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극단 까망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1994년 까지 지속적으로 공연되었다.종료기사

1992년에 영화가 개봉되었다. TV로는 1994년에 KBS 2TV에서 처음 방송되었다.참고기사 1995년에는 KBS 1TV에서 방송되었다.참고기사 1999년에 KBS 1TV에서 한 차례 더 방송했다.참고기사

1998년에는 다림출판사에서 아동판이 나왔다. 급장 등 과거 용어를 현대용어인 반장으로 고치고, 어린이들이 알기 어려운 한자어를 좀 더 알기 쉽게 풀어썻다.참고기사

7.1.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화와 소설의 내용전개가 미묘하게 다른데, 그 미묘한 전개가 엄청나게 다른 뉘앙스로 다가온다. 영화 쪽이 훨씬 암울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홍경인이 다른 아이들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15] 엄석대로서 등장하며, 관객들조차도 수긍을 할 만큼 정말 살벌하게 학생들을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명연기를 보여준다. 소설에서는 마지막에 경찰에게 붙잡혀 가는 깡패가 아무리 봐도 엄석대가 틀림없다는 것으로 엄석대의 인생이 결국 추한 결론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으로 끝나는데, 영화에서는 당시의 학생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김 선생이 오기 전의 담임이었던 선생님(신구)의 상갓집에 모여서 "요즘 시대에는 엄석대 같은 인물이 나와서 꽉 쥐어잡아야해."라며 그 시절을 추억하며, 식장에는 엄석대가 보낸 크고 거창한 화환이 도착한다. 그러나 그 화환으로는 엄석대가 얼마나 성공했는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중년의 병태 나레이션이 나온다.

이문열은 나중에 어느 대담에서 "현대소설에서는 이런 악인이 벌을 받으면 구식의 권선징악적 결말이라고 까이는데, 꼭 그래야 하나? 에라, 악인이지만 넌 쇠고랑을 차라."라고 소설의 결말을 맺었는데, 나중에 영화화를 위해 미팅했을 때 시나리오를 맡은 감독이 대놓고 "이건 구식입니다."라고 까면서 위와 같이 바꿨다는 요지로 말하기도 했다.

영화는 홍경인최민식, 신구 등 (최민식이 새로 부임한 김 선생, 신구는 그 전 담임) 당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며 16회 몬트리올영화제 최우수제작자상, 12회 하와이국제영화제 동서문화상, 제13회 청룡영화제 작품상, 제31회 대종상영화제 4개 부문 수상등을 기록한다.

네이버 영화 평점에서 10점 만점에 무려 9.16점에 올라가 있다.

김 선생이 엄석대를 체벌하는 장면에서 여태까지는 '학생들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자유의 가치를 가르쳐 주기 위한 필요악적인 폭력'으로서 찬양하는 내용이 많았는데, 일부에서는 '김 선생 역시도 실제로는 엄석대를 실질적인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유일무이한 선생으로 반을 장악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 일 뿐이다.'라고 좀더 넓게 해석하는 쪽도 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영화에서의 전반적인 묘사는 결국 김 선생 역시 일그러진 영웅중의 한명이 되면서 더욱 다각적인 면을 띄게 되는 면이 있다. 영화에서도 결말 즈음에 김 선생은 권력의 상징인 금뱃지를 차고 있는 국회의원이 되고, 높으신 분들에게 굽신굽신거리면서 악수를 한다. 이에 학생들은, "변해도 너무 변했어. 출세가 뭔지..." 라고 뒷담화를 한다.

작중에서의 수업내용은 대부분 사회와 도덕 시간이다. 수업의 내용을 학생들이 무미건조하게 따라 하는 것이 일품이다. 자유 민주 국가로서... , 이러한 예절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만은 아니다. , 올바르지 않은 지도자가 선출되었을때는 국민들의 뜻에 따라... 이런식으로 작중 계속하여 자유에 대해 언급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들은 자신이 무얼 배우는지 제대로 이해도 하지 못한채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시대적 배경을 3.15 부정선거, 4.19 혁명으로 보여줌으로서 다시 한번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마지막에 엄석대가 고발을 당할 때, 영팔이라는 약간 정신이 모자란 친구가 한 말이 뜻 깊다. "니네들도 나뻐!" 라고 모든 아이들에게 일침을 하는데, 여기서 정신이 모자라다고 무시당하는 바보가 반 아이들 모두에게 엄석대의 횡포와 부정한 짓을 묵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일침을 하는 모습이 나오며, 실제로 엄석대의 횡포에 강하게 저항하는 한병태를 가장 많이 지지해줬었다. 그러나 한병태가 점점 엄석대의 오른팔이 되서 권력에 물이 들자, 영팔이는 한병태에게 크게 실망하면서, "너랑 안 놀아."라고 차갑게 외면하여 돌아선다. 결국 김 선생으로 인해 엄석대가 실각을 하자, "니들도 다 비겁한 놈들이다."라고 엄석대의 밑에서 다들 비굴하게 살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는데, 겉으로는 멍청해보이고 '팔푼이',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던 아이가 반에서 가장 올바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아이였다는 아이러니함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영팔이는, 아이들이 맞고 있을 때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표정이 굳어 있는데도 혼자서만 실실거리고 있다. 그저 바보라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무때나 실실거리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평상시 모습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엄석대의 독재로 물들었던 학급이 제대로 바로잡혀가는 것에 대한 희열의 표현으로 보인다. 힘으로 저항할 수 없는 입장에서 엄석대의 권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바보 행세가 아니었을까. 바보처럼 행세를 하면서 엄석대가 하는 명령들을 못 알아듣는 척을 하면, 대리시험 셔틀이나 음식을 갖다바치는 당번을 안 시켰을테니까(왜냐하면 엄석대가 무슨 음식을 바치라고 명령해도 바보같이 못 알아들으니까), 역시 영팔이는 바보가 아니라 똑똑한 아이였을 수도 있다.(정작, 영팔이는 어른이 되어서는 정신이 멀쩡하기만 하다.) 초기의 저항하는 한병태를 지지했던 걸로 미루어 변화를 상당히 고대했던 듯 하다.

실제로 어른이 되서 상갓집에서 반 친구들을 만났을 때, 엄석대 밑에서 찍소리도 못하다가, 김 선생으로 인해 권위를 잃고 실각하자 기회주의자로서 가장 강하게 엄석대의 부정을 김 선생에게 실토하던 만순은 어른이 되고 졸부가 되서 쓸데없이 과거 엄석대의 오른팔이었던 체육부장에게 "너는 어렸을 땐 엄석대 똘마니나 하면서 가오잡더니, 나이먹어서는 겨우 택시기사나 하고 있었냐?"라고 체육부장에게 허세를 부리는데, 당시 엄석대의 오른팔이었고 만순에게 허세부리며 가오잡던 체육부장은 어른이 되고 상황이 역전되어서 변변치않은 택시기사나 하면서 근근히 먹고 사는 주제에, 만순에게 "너는 옛날만 같았으면 그냥 한 방에 죽었어!"라고 열폭을 한다. 여기서 만순은 기회주의자같은 약삭빠른 성격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체육부장은 권력자가 몰락해버리자, 같이 몰락해버리는 끄나풀들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다만, 후반부 만순의 대사가 약간 중의적이다. 김선생을 두고 "사람이 너무 변했어. 출세가 뭔지..."라는 대사를 한 후 "난 변한 게 없다, 돈만 붙었을 뿐이지."라며 항변을 하는데, 이것이 자신의 기회주의적인 성품이 변한 게 없다는 자조적인 의미도 되기 때문. 그리고 역시 기회주의자가 된 김선생에 대한 동종혐오의 의미도 될 것이다.

여기서, 영팔이의 직업이 허세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땀을 흘려서 일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인 "농부"라는 점에서 그의 강직하고 올바른 성품이 드러나며, 상가집에서 모였을 때 철없는 어른들의 싸움을 말리는 어른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덤으로 일본에도 수출된 것 같다.(단 더빙은 아니고 그냥 자막 나오는 버전이다.)

7.1.1. 배역

사실 이 당시 고정일과 정진강이 영화, TV에서 출연을 했던 반면[16], 홍경인은 처음 영화 연기에 도전했다고 한다.기사 그리고 이 뒤에 홍경인이 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주연이 되고 다양한 TV무대에 출연하면서 인기 스타가 된 반면에, 고정일은 이후로는 활동이 매우 저조하다.[17]

7.2. 연극

인천 문화 예술회관에서 연극으로도 표현되었으나, 엄청난 악평을 듣고 있다. 한 학교는 학교에서 단체로 관람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완전히 멘붕 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해당 연극은 원작을 각색하여 현대식으로 풀이했는데,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석대와 병태의 대립을 거의 전부 생략했고, 석대가 한 비행도 엄청나게 축소되어, 마치 병태같이 반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인도적인 폭력으로 다스리나, 그것도 먹히지 않자 사람적인 대우를 해주는 학교폭력 미화물로 재탄생 했다. 선생님의 무능도 대부분이 생략됐고, 부모님들은 아예 극중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새로온 선생님도 강압적인 체벌이 아니라 손바닥만 때리는 것 정도로 완전히 가감되어, 극 자체만 본다면 학교폭력은 경우에 따라선 아주 많이 필요하다. 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방백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데, 이 작품은 인물들의 표정과 심리가 잘 묘사되어야 완벽해지지만, 연극은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모든 관객에게 보여줄수가 없으므로 거의 대부분을 방백으로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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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리시험 셔틀을 과목별로 두고 있었다. 한 과목을 잘 하는 학생들을 그 과목의 대리시험 셔틀로 만든 것.
  • [2] 한병태가 창을 제대로 닦는데도 엄석대는 꼬장을 놓으며 보내주지 않았는데, 이때 한병태가 엄석대에게 저항을 포기하며 드는 심경 변화 묘사가 일품이다. 직접 읽어 보시길.
  • [3] 병태는 미술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비교적 사소한 셔틀짓을 '자발적으로' 했을 뿐이다.
  • [4] 총 61표 중 무효표 1표와 엄석대 본인의 표를 제외하면 전원 일치였다(...) 결과를 본 담임이 재투표를 지시하자 다른 9명의 후보들에게 1표만 주고 자기에게 51표를 몰빵해놨다.
  • [5] 대리시험 셔틀 중 하나가 시험지에 자기 이름을 쓰다가 엄석대로 이름을 고쳐서 쓰는데 여기서 이름을 지운 자국을 김 선생이 발견한 것.
  • [6] 소설판에서는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풀스윙으로, 몽둥이가 부러질 때까지 사정없이 때린다. 그것도 초등학생을. 영화판에서도 엎드려뻗쳐를 시킨 뒤 주저앉을 정도로 때린다. 이 때, 엄석대가 몇 대 맞더니 잔뜩 쫄아서 "선생님, 왜 이러세요?"라고 묻는 연기가 일품이다.
  • [7] 셔틀들은 10대씩 때렸는데 셔틀들 중 몸이 건장한 아이들도 두 세번은 주저앉을 정도의 파워였다고 한다.
  • [8] 2000년대 출생자들에게는 놀랍겠지만 (...) 80년대까지만 해도 실제로 저런 욕을 함부로 쓰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 [9] 영화판에서는 동네바보인 좀 모자란 아이는 "너희들 전부 다 나빠!" 라면서 울부짖는다.
  • [10] 담임이 바뀐 뒤 석대에게 당한 것을 담임에게 일러바치는 아이들을 "왜 네가 스스로 대항을 못 하고 어른의 힘을 빌리려 하느냐?"라면서 체벌을 가했다.
  • [11] 영역판. 아마존 리뷰를 보면 알겠지만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을 받고 있다.
  • [12] 사족으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는데 삽화가 많이 깬다. 1공화국이 배경인 소설에서 남녀공학에(작중에서 남학생반, 여학생반이 갈려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도!) 두발자유화에 사복까지! 책의 내용만 열심히 읽었어도 없었을 고증오류들이... 다들 학교다닐 때 공부 안했냐?
  • [13] 학교폭력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방법은 교사나 공권력에 의한 통제밖에 없는 불편한 진실
  • [14] 가게나 농가를 하는 아이들에게 물건을 바치게 하는 것은, 현대 일진이 돈을 상납하게 하는 것과 일치한다.
  • [15] 소설판에서도 엄석대가 출생신고가 늦어져서 실제 나이가 법적 나이보다 서너살은 많다는 이야기가 돈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처음 전학온 병태가 다른 친구에게 "급장은 몇 살이니?"라고 묻자 "열 다섯? 나도 잘 몰라."라고 대답한다. 영화판에서는 이 이야기가 '이야기'일 뿐이 아니라는 설정인지 다른 배역들이 초등학생 티가 날 때 혼자서만 고등학생 포스를 풍긴다. 임재범.
  • [16] 고정일은 1991년에는 자도는 바람개비의 주연으로 출연했다.
  • [17] 대부분 단역, 조연급이고 주연급으로는 2014년에 정영배 감독의 리새인에 출연했다는 정보가 있긴 한데 영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