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우규민

last modified: 2016-12-06 00:03:09 Contributors


이제는 볼 수 잆는 LG 트윈스 시절.

삼성 라이온즈
우규민(禹奎珉)
생년월일 1985년 1월 21일
국적 대한민국
신체 184cm, 75kg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성동초등학교 - 휘문중학교 - 휘문고등학교
프로입단 2003년 2차 3라운드
소속팀 LG 트윈스 (2003년~2009년)
경찰청 야구단 (2010년~2011년)
LG 트윈스 (2012년~2016년)
삼성 라이온즈 (2017년~)
등장곡 김수진 - B Rossette(하얀거탑 OST)

LG 트윈스 등번호 17번
최경환(2000~2001) 우규민(2003) 안상준(2004~2006)
LG 트윈스 등번호 37번
이승호(1999~2003) 우규민(2004~2005) 이승호(2006~2008)
LG 트윈스 등번호 1번
이승호(2004~2005) 우규민(2006~2009) 최동환(2010)
임찬규(2011) 우규민(2012~ ) 현역

Contents

1. 개요
2. 선수 커리어
2.1. 데뷔 ~ 2008 시즌
2.2. 2009 시즌
2.3. 2010 시즌 ~ 2011 시즌
2.4. 2012 시즌
2.5. 2013 시즌, LG의 사이드암 에이스로 등극하다
2.6. 2014 시즌
2.7. 2015 시즌
3. "넌 선수도 아니야"!
3.1. 2016 시즌
3.2. 2017 시즌: 삼성 라이온즈로
4. 기타
5. 역대 성적


1. 개요

삼성 라이온즈 소속 투수.

LG 트윈스 시절 KBO 역사상 13번째로 한 시즌 10승-한 시즌 30세이브를 기록하였다. 한 시즌 최다 블론세이브(13블론)는 덤

언더핸드 투수로, 입단 후 중간계투를 거쳐 마무리 투수로 뛰다가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수행한 후 2013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투수로 전환, 2013년에 신정락과 함께 LG의 옆구리 원투펀치를 이루었다.

우규민의 프론트도어 슬라이더 포수 위치를 보면 제구가 안된 실투긴 하지만 타자가 몸쪽공인줄 알았으니 넘어가자

2. 선수 커리어

2.1. 데뷔 ~ 2008 시즌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2003년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상당히 높은 기대를 받고 입단했다. 2004년부터 1군에 올라와 계투 요원으로 활약했으나 진필중경헌호가 2004년과 2005년도에 마무리로서 심하게 부진했기 때문에 2006년부터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75⅔이닝 동안 3승 4패 7홀드 17세이브 ERA 1.55라는 수준급 성적을 거두면서 차기 마무리로 낙점되었다.

2007년에도 초중반엔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활약을 펼쳤지만 후반기에 816 대첩 대방화사건을 일으키며 떡실신, 이후엔 구질이 노출되었는지 체력이 떨어졌는지 점점 방화 비율이 높아지더니 결국 1시즌 13개의 블론세이브라는 전대 미문의 대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오승환의 뒤를 이어 세이브 2위(30세이브)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지만 블론의 임팩트가 너무 컸다는 게 문제. 도중에 채태인에게 데뷔 첫 홈런을 허용한 장본인이다. 실질적으로는 부상으로 인한 스프링캠프 미참여로 인한 체력문제가 가장 크다. 실제로 봉중근을 마무리로 하고, 우규민을 셋업맨으로 한다는 계획이 수립되기도 했었으며, 봉중근은 2012년부터 마무리로 뛰기 시작한다.

언더핸드 투수라서 그런지 마무리 투수가 요구하는 탈삼진 능력이나 구속이 뛰어나지는 않은 타입이었지만, 2007년 한 해 뛰어난 성적(30세이브, 평균자책점 2.65, 13블론)을 거둔 이후 계속 마무리로 기용되었다.

하지만 2008년엔 시즌 초부터 2007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시즌 내내 흔들리며 3승 7패 10세이브 방어율 4.91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1]

2.2. 2009 시즌


롯데전에 등판하여 2삼진을 잡아내고 깔끔한 세이브를 하며 2007년의 모습을 보여주려나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4월 15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 LG가 4:3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포수 조인성(...!)과 함께 등판하여 9회말 2아웃에 정근우에게 동점타를 허용하고 만다. 시즌 첫 블론. 정근우에게 맞은 공은 바깥쪽 어중간한 높이의 밋밋한 직구였다. 특히 이 블론세이브봉중근이 득녀한날에 선발로 등판하여 8이닝 3실점 8삼진 호투를 한 뒤 저지른 블론세이브라 더욱 뼈아픈 블론세이브였다. 2009년 4월 16일, 이 강렬한 블론세이브로 디시 인사이드의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입증시켰다.(혹자는 8이닝 3실점이나 한 봉중근의 잘못이라고도 말한다. 안습의 봉크라이) 이 블론으로 빡친 야갤의 LG빠 신모갤러[2]가 우규민의 싸이에 남긴 일침은 우규민에 대한 LG팬의 눈물나는 애증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에 우규민은 미니홈피 제목을 죄송합니다로 바꾸며 야갤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 참고

2009 시즌 초반에 잠시동안 김정민포수와 배터리를 이룰 땐 5⅔이닝 동안 삼진 5개, 피안타 2개, 볼넷 0개, 방어율 0의 엄청난 성적을 냈으나, 5월 12일과 13일 사이에 벌어진 SK와의 잠실 경기에서, 12회 초에 올라왔을 때, 주심 전일수의 대활약(?)으로 처절하게 망가졌다. 지못미.

이후 완전 무너진 그는 블론세이브를 거듭하게 되고 결국 시즌 중반 이재영으로 마무리 자체가 사실상 넘어갔다. 2군도 한 번 갔다 왔으나...또 한 번의 파이어로 팬들의 분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2.3. 2010 시즌 ~ 2011 시즌


결국 2009년 시즌을 마치고 입대를 선언하여, 테스트 합격 후 경찰청에 입단했다.

2010년 기초 군사 훈련을 마친 후 경찰청에 합류했는데 투수로서 어울리지 않는 등번호 2번을 달았다. LG에서 마무리, 계투로 뛰던것과는 다르게 선발 투수로 기용되었다.

그리고 2011년 대각성, 9월 18일까지 성적은 18경기 15승 0패 방어율 2.34 123이닝(경기당 6.8이닝) 80탈삼진 29사사구 5피홈런으로 경찰청의 PO에이스WER 역할을 하였다. 이 스탯은 뭐 야구게임도 아니고

2011년 시즌을 마치고 경찰청에서 제대한 후 등번호는 심수창넥센으로 트레이드되어 형은 갔어, 더는 없어! 하지만, 내 등에, 이 가슴에, 하나가 되어 계속 살아가! 남은 67번을 달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2011년에 입단한 임찬규의 1번을 다시 달기로 했다.참고 아아 대인배 찬규 그리고 임찬규는 우규민의 경찰청 후배가 된다

2.4. 2012 시즌

2012년 시즌 전 박현준, 유원상, 김태군 등과 함께 팀 내 체력테스트에 탈락하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지 못해 우려를 샀다.

그리고 2012년 3월 21일, 두산과의 2번째 시범경기에서 그 놈의 방화기질+새가슴을 못 버렸는지 1⅔이닝 동안 4피안타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며 경찰청 성적을 보고 설레였던 팬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복귀하자마자 블론세이브를 지르면서 잠실 야구장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렸다.

K-459.jpg
[JPG image (Unknown)]


하지만 3월 25일, 롯데와의 2번째 시범경기에선 3:0으로 밀리던 팀을 9회에 4:3으로 역전하자 9회말에 등판해 화끈하게 불을 질러놓고도 세이브를 달성하였다.

6월 16일 군산 월명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원래 선발로 예정되었던 벤자민 주키치가 갑자기 배탈과 구토 증상을 보이자 선발 투수로 긴급 투입되어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등판했다. 7이닝 96투구수 4피안타 1사구(死球) 3탈삼진 1실점 비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5:1로 승리하여 데뷔 후 10년만에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

6월 22일 잠실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등판, 5⅓이닝 96투구수 7피안타 1사사구 3탈삼진을 기록하였다. 팀이 스코어 2:3으로 앞서던 6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마운드에서 내려갔으나 다음 투수인 이동현이 대타 홍성흔을 2루수 플라이로 잡아 우규민의 실점과 자책점은 2점에 그쳤고 우규민은 승리 투수의 요건을 갖췄으나, 팀이 스코어 3:5로 앞선 9회초에 올라온 마무리 봉중근이 2사 1루 상황에서 강민호에게 동점 투런포를 맞는 바람에 승리가 날아갔고 본격 역지사지 팀도 연장 12회의 접전 끝에 6:5로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투구 내용이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 고정선발이 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미미한 투수가 한 짓을 보면 족지레터 먹던 2009 우규민 멘탈이 의외로 단단한 걸 알 수 있다

6월 2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도 선발 투수로 출전하였다. 그리고 이날 작가모드로 회귀하며 5이닝 96투구수 12피안타 3사사구 7실점 7자책점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완벽하게 KIA 타선에 놀아났다. 특히 좌타자들에게는 전원 안타를 맞는 굴욕을 보이면서 좌타자에게 극단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팀도 이날 스코어 13:8로 패했고 우규민은 패전 투수가 되었다.

7월 18일 SK전에서 세이브를 만들어냈다.

2012년에 58경기 92⅔이닝 4승 4패 1세이브 9홀드 평균자책점 3.30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던 한편, 이 해에 43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등유규민에서 노예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특별히 구질이 개발되거나 구속이 올라간 건 아니라는 점에서 경찰청 복무를 통해 멘탈이 상당히 단단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군대 다녀와서 실력이 늘어난 케이스라고 봐도 무방할 듯.

2.5. 2013 시즌, LG의 사이드암 에이스로 등극하다

지난 시즌의 호투를 본 김기태 감독이 일찌감찌 선발 후보군 중 유력한 후보로 내세웠으나, 체력테스트에서 탈락하며 스프링 캠프에 합류하지 못하고 진주에서 따로 훈련을 하게 되어 팬들에게 걱정을 안겼다. 하지만, 결국 선발 투수로로 확정이 되었다.

3월 31일의 첫 상대가 좌타자 일색인 SK 와이번스라서 많은 LG팬들을 걱정하게 만들었지만 5⅔이닝동안 4피안타 1자책점으로 호투했고 특히 5회에 1사 1,3루 위기상황에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확실한 눈도장을 남겼다.

4월 9일 NC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하였으나, 3 2/3이닝동안 4자책하며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4월 14일 한화전에서 9이닝 7탈삼진 5피안타 무실점으로 데뷔 첫 완봉승을 달성함과 더불어 한화에게 개막 13연패라는 대기록(?)을 떠안겼다. 우규민 완봉하는 소리하네 한화단물을 몸에 뿌렸더니 완봉승을 하는 에이스가 되었습니다.[3]

6월 23일, 대구에서 펼쳐진 삼성 라이온즈 원정경기에서 상대 타자들을 5이닝 6탈삼진 2피안타 무실점으로 꽁꽁 묶으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로써 6승, 팀내 다승 1위가 되었다.

7월 11일, 잠실 NC전에서 6 2/3이닝동안 1실점으로 호투하여 7승을 올리며 팀의 스윕을 이끌었다.

7월 17일, 사직 롯데전에서는 1+1알바 행사 불펜으로 나와 7~8회는 호투했으나, 9회에는 난타 당해 솔로홈런후 1사 12루 상황을 만들고 봉중근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하지만 승계주자 분식으로 인해 3실점 봉중근: 내 승리를 날려먹었던 업보다

7월 25일, 잠실 KIA전에서 7이닝 동안 무실점 2안타 경기를 펼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써 시즌 8승째를 수확하며 이 부문 팀 내 단독 선두에 올라섰고, 최근 선발 6연승을 이어가며 평균자책점을 3.39까지 끌어내렸다.

8월 2일, 1-2위 다툼이었던 잠실 삼성전에서도 6이닝 무실점 호투를 이어가 9승 적립. 삼성전 자책점 0.00 2승째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팀 1선발인 리즈와 방어율이 비슷하지만 우규민은 다승왕, 리즈는 다패왕 도전중

8월 8일, 전구단 상대 승리 & 10승 고지가 걸린 잠실 롯데전에서는 5회까진 8안타 1실점으로 잘 틀어막았으나 6회에 주자를 내보내고 분식당하여 5⅓이닝 3실점으로 패를 적립했다.

8월 15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4, 5회에 모처럼 탈탈 털리면서 4⅓이닝 4실점(2자책)으로 강판. 팀은 역전승하긴 했지만... 여하간 ND

8월 21일, 목동 넥센전에서는 2회 서동욱 홈런 빼고는 넥센의 강타선을 6이닝 2실점으로 잘 틀어막으며 QS를 적립했으나 불펜진의 화려한 불쇼로 인해 승리 적립은 또 실패. ND

8월 27일, 잠실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1회에 박병호에게 중견수 앞 1실점 안타로 맞은것을 빼곤 5⅓이닝을 잘 막아냈지만 타선이 밀봉당하면서 1:0으로 패 적립. 리즈만 차별한다고 깠더니 이젠 우규민도 차별하고있다

9월 1일, 다시한번 전구단 승리 & 10승 도전을 위해 사직 롯데전에 등판, 3회 흔들리며 2실점했으나 그 이후는 잘 틀어막으면서 6이닝 2실점으로 QS 적립. 경기도 이기긴 했지만 내려가고나서 타선이 터진지라 이번에도 ND
세이브 딴 봉중근 : 이제 옛날 내 심정 알겠지?

인내심의 한계가 깨졌는지 9월 7일, 잠실에서 열린 1위 수성전인 삼성전에서 신나게 난타당하면서 5⅔이닝 5실점으로 광속으로 패배했다. 삼성전에서 좋던 기록도 다 깨졌다.

8월 초만해도 금방 10승 고지에 올라갈줄 알았으나 한달간 아홉수에 걸려서 여전히 9승에서 정체되었다. 29살이라 그래

9월 14일, 7번째 10승을 향한 도전이었던 잠실 KIA전에서 4회에 텍사스 안타 등에 힘입어 2실점해 9번째까지 가야 아홉수가 깨지나 우려를 낳았지만, 4회말 LG가 추격하는 1득점을 보고 버프를 받았는지 5회는 신속하게 막고 내려왔고 타자들도 염치가 없지는 않아서 5회말 체력이 떨어진 송은범을 상대로 선발 전원안타를 날리며 포풍 6득점. 그 이후 나온 불펜들이 8월 목동처럼 불쇼를 저지르진 않고 신속하게 틀어막아 드디어 10승고지에 올라섰다.
더불어 KBO 통산 12명밖에 없었던 한 시즌 10승 / 한 시즌 30 세이브를 13번째로 달성. 12번째가 될 뻔했지만 아홉수 걸린 사이에 봉중근이 30세이브를 먼저 달성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6⅓이닝 4피안타 1볼넷 2사구(死球) 3탈삼진 2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1.42으로 호투했지만, 팀이 스코어 1:5로 패하는 바람에 패전투수가 되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고, 10월 20일 경기가 우규민의 2013년 플레이오프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다.

2013시즌에 FIP 1위를 달성하였는데, 이 때문에 세이버까들이 FIP를 까는 주요한 근거(…)로 사용되는 선수가 되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FIP에 대해서 설명하면 지나가던 세이버까가 "그래서 우규민이 2013 최고의 선수였다는 거니?"라고 묻는 구도.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러셨어요[4] 그러나 우규민이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 구장을 홈으로 쓴 덕에 피홈런의 영향이 큰 FIP에서 이득을 본 면이 있다. 즉 FIP 1위=최고의 투수 라는 세이버까들의 전제 자체도 일정 부분 세이버메트릭스에 대한 몰이해일 수 있다. 물론 이를 파크팩터나 홈런파크팩터 등으로 보정해서 산출한 궁극의 스탯WAR조차 논란이 있는 만큼, 세이버메트릭스가 완벽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근데 우규민은 fWAR도 리즈 다음으로 리그 2위인데?

2.6.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2.7. 2015 시즌

지난해 11월에 왼다리 고관절 물혹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재활도 순조로워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고 시범경기에도 두차례 등판했지만 3월 24일 훈련도중 수술을 받은 부위가 다시 탈이 났다고 한다. 약 3주정도 결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팬들은 용병투수들 말고 5이닝 이상을 던지는 투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며 뒷목을 잡는 중.

그래도 복귀 후엔 LG에서 그나마 제 몫을 하는 몇 안되는 선수로서 활약하여 결국 3년 연속 10승 투수가 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그리고 LG는 10승 투수가 3명 있는데도 9위를 하는 위업을 달성했...

시즌 후에는 프리미어 12 대표팀에 차출되었는데, 쿠바 대표팀과의 평가전 중에 손에 강습타구를 맞아 타박상을 입어 한 때 야구팬들을 식겁하게 했다.

3. "넌 선수도 아니야"!

옛날 한 경기에서 공 3개로 2데드볼 1안타 기록을 냈을 당시 감독이었던 이순철이 '우규민 넌 선수도 아니다'라며 깠던 적이 있었고, 또 다른 경기에서 우규민이 투수강습으로 머리에 공을 맞았으나 계속 공을 던지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일부 LG팬들은 이 에피소드로 이순철을 맹비난하곤 했다.

이것과 비슷하게 김재박이 2009년에 우규민이 부진하자 "한 두 시즌 잘했다고 자기가 진짜로 잘 하는 선수인 줄 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2014년 6월 1일 경기에서 기록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덕아웃에서 물병을 던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 발언이 이상한 쪽으로 재평가받았다.

3.1. 2016 시즌


3.2. 2017 시즌: 삼성 라이온즈로

2016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다. 허리 부상 등으로 인해 들쭉날쭉했던 시즌 성적 때문에 LG에서는 그 동안 팀에 헌신한 데 대한 예우를 해 주겟다고 밝히면서도 크게 쓰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5일에 삼성에서 우규민을 4년 65억(계약금 37억원, 연봉 7억원)에 영입하였다. LG 팬들은 "없으면 아쉽지만 굳이 붙잡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시큰둥한 반응인 반면 삼성 팬들은 "차우찬 잡을 여력이 없다는 반증"이라며 프런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이전에 차우찬이 메이저나 일본 구단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LG에서 그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기사도 나왔다.)

4. 기타

배우 윤은혜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예전에 윤은혜가 모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4학년 2반 반장을 찾는 걸 보며 동창인 걸 알았다고 한다. 우규민 본인은 1학기 반장이었는데 찾지 않아 섭섭했다고 한다(…). 우규민이 2학기 때 야구부로 유명한 성동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스포츠 신문의 꼭지에서 윤은혜에게 보내는 편지[5]를 썼으나…. 아…눈물 좀 닦고…[6]

야갤에선 '불규민' 혹은 우블론, 방화신기 '등유규민'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등판하여 안타를 맞는순간 "불규민 퐈이얔ㅋㅋㅋㅋㅋㅋㅋ!!"라는 제목으로 몇페이지가 도배되었다. 심지어 LG전 우규민이 나오면 상대빠들은 희망을 주는 그 세글자 '우규민'이라고 하였다. 상대팀에게 희망을 주는 마무리였다니... 요즘은 야민정음의 영향을 받아 윽귺민 이라는 기괴한(...) 단어로도 부르고 있다.

삼성에서 정현욱이 엘지로 온 뒤로는 엠엘비파크에서 우규민과 관련된 사진이 올라오면 드라군 놀이처럼 '야 우규민 나오냐'를 댓글로 다는 암묵의 룰이 생겼다(…). 하지만 조직력이 모래알이라 번번히 실패한다.

심수창과 굉장히 친하다. 특히 LG 트윈스의 일부 여성팬들이지만 실상 부녀자인 이들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혹자는 둘의 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우규민이 투구를 할 때 갈매기와 비슷한 투구폼을 선보인다.

2014시즌 시범경기에서 KIA선수가 된 이대형의 잠실 LG전 첫 타석에 몸에스치는 맞는 공을 선물하며 선후배간 끈끈한 애정을 과시했다.

2013시즌 FIP 리그 1위, fWAR 리그 2위임에도 저평가가 줄을 잇더니, 2014시즌 국내투수끼리 순위를 지어보자 QS 4위, 피출루율 최저1위, 피장타율 최저1위, 피OPS 최저1위, 방어율 2위, FIP 2위 임에도 아직도 저평가당한다. 야알못들이 뭣도 모르고 우규민까지

5. 역대 성적

  • 투수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04 LG 트윈스 18 18⅓ 3.93 2 1 0 1 16 4 7 4
2005 6 7⅔ 1.17 1 0 0 0 7 0 3 4
2006 62 75⅔ 1.55 3 4 17 7 62 2 29 30
2007 62 78 2.65 5 6 30
(2위)
0 58 3 38 26
2008 54 51⅓ 4.91 3 7 10 5 57 5 19 16
2009 30 36⅓ 5.70 0 3 7 0 46 3 22 22
2010~2011 경찰 야구단 복무
2012 LG 트윈스 58 92⅔ 3.30 4 4 1 9 96 2 32 57
2013 30 147⅓ 3.91 10 8 0 2 162 5 43 92
2014 29 153⅔ 4.04 11 5 0 0 170 11 34 103
통산 - 349 661 3.58 39 38 65 24 674 35 239 354

----
  • [1] 여담이지만 2008 시즌의 야구 컨셉은 마무리 털리기였다. 롯데임작가, 국내 리그에서 선전하던 한기주가 베이징에 가서 털리는 등. 부처님만 안 털렸다.
  • [2] 야구관련 갤러리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찌질였지만 LG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 [3] 마지막 타자 김태균을 삼진으로 잡은 뒤 스코어보드를 바라보며 감격하다가 포수 조윤준완봉 기념구를 쿨하게 뒤로 버리자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여 중계진을 즐겁게 해주었다. "야! 볼!"
  • [4] 그런데 이닝이터가 아니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LG 국내 선발진 에이스였던 것은 사실이다. 류제국은 본인 성적에 비해 승운이 따르던 편이었고, 실제로 쥐팬들 사이에서는 우규민 선발일 때가 가장 안정적이었다는 평이 많다.
  • [5] 어느 한 선수가 편지를 쓰면 답장이 오는 꼭지였다. 이를테면 이범호가 절친인 농구선수 양동근에게 편지를 썼다든지, 이택근이 한 팀과 같이 있었던 박진만에게 편지를 썼다든지.
  • [6] 그 스포츠 신문 꼭지에서 우규민이 유일하게 답장을 못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