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용덕한

last modified: 2016-12-07 19:28:18 Contributors


야구 매거진 Dugout에서 촬영한 화보. 분위기가 어째 현역이 아니라 배터리 코치 급 / 그리고 이젠 진짜 코치가 됐다.
내래 인민의 시크함을 보여주갔어!

NC 다이노스
용덕한(龍德漢)
생년월일 1981년 4월 9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출신학교 중앙초-대구중-대구상고-동아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4년 드래프트 2차지명 8라운드 전체 54번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4~2012.6.17)
롯데 자이언츠 (2012.6.18~2014)
kt 위즈 (2015~2015.6.21)
NC 다이노스 (2015.6.21~2016)
응원가 입장시:Bon Jovi 《It's my life》
타격시:노래 제목 아시는 분 추가바람[1]

2010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김동주(두산 베어스) 용덕한(두산 베어스) 정근우(SK 와이번스)

두산 베어스 등번호 23번
민구 용덕한(2004~2006) 이경필(2007)
두산 베어스 등번호 24번
김재환(2008) 용덕한(2009~2011) 김재환(2012~2013)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김재환(2011) 용덕한(2012) 김명성(201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7번
김명성(2011~2012) 용덕한(2012~2014) 임재철(2015~)
kt 위즈 등번호 27번
현진(2014) 용덕한(2015~) 현역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아마야구 시절
4. 프로 커리어
4.1. 두산 베어스 시절
4.1.1. 데뷔~2006년
4.1.2. 2009년
4.1.3. 2010년
4.1.4. 2011년~2012년
4.2. 롯데 자이언츠 시절
4.2.1. 2012년
4.2.2. 2013년
4.2.3. 2014년
4.3. kt 위즈 시절
4.3.1. 2015년
4.4. NC 다이노스 시절
4.4.1. 2016 시즌
4.5. 코치 시절
5. 기타


1. 개요

고영민과 같이 남한으로 귀순한 북한용병[2] 두산 베어스롯데 자이언츠, kt wiz을 거쳐 NC 다이노스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선수이다.

2.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 가끔은 아닐 때도 있지 낫아웃 3루타라거나, 타자 헤드샷이라거나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멘도사 라인을 들락 거리는 안습한 공격력 때문에 프로생활 대부분을 백업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군에 끈질기게 붙어있을 수 있었던 것은 준수한 수비력 덕분이었다. 포구, 블로킹, 홈 승부 시 플레이트 가드, 내야백업 등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다. 다만 수비형 포수라고 평가받고 있음에도 정작 야구팬들이 포수 수비력의 척도로 삼는 도루저지율은 그저그런 편이다. 자동문 타격이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스퀴즈 번트에 능하다.

전체적으로 투수를 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엄마 같은 포수'라는 평이 많다. 실제로 2014시즌 5월 17일 넥센전에서 신인투수 김유영의 '널뛰기 투구'를 받느라 이리저리 구르면서 애를 먹는 와중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신인투수를 잘 다독여가며 (투수의 손가락에 부상이 없는지 챙겨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는 등...) 안정적으로 배터리 운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러한 용덕한의 장점은 경험이 부족한 신인 투수들로 팀을 꾸려야 하는 kt가 그를 지명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듯하다.

두산시절 변진수에게 스플리터를 권유한 것이나 김성배의 주무기인 포크볼을 전수한 것 등등 소속 팀 동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도 그렇고, 크게 튀지 않으면서도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시크한 모습 때문에 사랑 받는 선수. 롯데 시절에는 미래 코치감으로 점쳐질 정도였다. 특히 덕아웃에서 광대뼈가 승천했을 때 존재감이 엄청나다 때문에 20인 외 특별지명으로 kt wiz로 가게 되었을 때 많은 팬들이 아쉬워 했다.

어쩌다 한 번씩 안타를 치면 영양가 만점의 활약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을에.

3. 아마야구 시절

용덕한은 대구상고 2학년이던 1998년, 제5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투런홈런을 터트리면서 팀이 5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팀내 키스톤인 2루수 박기혁- 유격수 권도영에 가려 빛을 그다지 보지 못하였다. 3학년이던 1999년에도 제5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하며 팀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프로지명을 받는데는 실패하고 동아대로 진학한다.

2000년 동아대학교에 입학했으며, 3학년이던 2002년, 이탈리아 메시나에서 열린 제 1회 세계 대학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한 국가대표 선발 명단에 고려대학교 재학 중이었던 이택근과 함께 포수로써 이름을 올리며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4. 프로 커리어

4.1. 두산 베어스 시절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두산 베어스 시절.

4.1.1. 데뷔~2006년

2004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두산의 안방마님이던 홍성흔이 2004년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자 2005, 2006 시즌에 백업포수로서 적지 않은 경기에 나서면서 가능성을 엿보였다. 리드도루 저지와 같은 '포수'로서의 자질은 충분하였으나 '선수'로서 필요한 타격 기술이 부족한지라[3] 백업 포수 이상의 입지는 얻지 못하였다. 그리고 2006 시즌을 마치고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4.1.2. 2009년

2009년 복귀하면서 홍성흔 지명타자 전향과 롯데로의 FA이적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빈약한 포수 자리를 두고 최승환, 채상병과 함께 주전 경쟁을 펼쳤다. 전지훈련 도중 채상병은 자신의 약점인 2루송구를 보완하기 위해[4] 무리하게 연습하다 어깨부상이 재발하게 되어 1군 경쟁에서 탈락, 용덕한은 2009시즌을 1군 백업포수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승환 역시 지난 시즌 당했던 무릎 인대부상으로 인하여 장기인 2루송구를 비롯하여 몸상태가 많이 떨어져 있던 상태여서, 시간이 지날수록 용덕한이 주전포수로 나서는 경우가 잦아졌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주전 포수로 나서게 된다.[5]

2009년에는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으나, 여전히 타격면에서는 평균 이하라 홍성흔 체제를 그리워하는 팬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195타석에서 기록한 병살타 13개는 압권. 하지만 두산베어스 포수진 중에서 가장 기민한 블로킹을 하는 선수라, 컨트롤이 불안정한 투수가 많았던 두산 투수진과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었다. 특히 땅에 공을 심는 포크볼을 주무기로 하는 홍상삼과는 거의 전담포수에 가까운 궁합을 보여주었다.

4.1.3. 2010년

2010년 혜성 같이 등장한 양의지의 출현으로 다시 최승환과 함께 1.5군으로 추락했으며 시즌 중 거의 출전하지 못하였다. 이 정도면 이적을 고려할 만한 상황인데...하지만 채상병과 최승환이 상대적으로 비슷한 스타일이어서 비교적 차별화된 장점을 가진 용덕한은 2009년 진갑용의 시즌 아웃 부상으로 SOS를 친 삼성과의 트레이드때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6] 게다가 양의지 역시 수비 동작이 기민하지 못한 편이어서 최승환보다는 용덕한이 백업 포수로 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2010년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양의지가 계속 실책을 연발하고 허리가 아프다며 교체 요청까지 하자 3회말에 대수비로 출장했다. 여기서 결승타를 포함하여 4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스코어 11:4 승리에 공헌하며 팀이 스코어 3:2로 앞선 9회초 1사 2, 3루에서 쓰리런 홈런을 친 정수빈과 함께 당일 MVP가 되었다. 너무 오랜만의 활약인지라 기쁜 것을 잘 못 느끼겠다는 슬픈 인터뷰를 했다….

결국 10월 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선발 출장 기회를 잡았고, 2회말에 결승 2타점 2루타를 치는 등 3타수 3안타 1희생플라이 1도루 3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스코어 4:11 승리를 이끌고 준플레이오프 MVP가 되었다.

용덕한은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4차전은 대수비, 3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 5차전은 선발 포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9타수 6안타 1희생플라이 1도루 4타점 3득점, 타율 .667, 장타율 .889, 출루율 .600을 기록했는데, 시즌 내내 6안타를 쳤다가 준플레이오프 단 두 경기만에 6안타를 때려냈다.

용덕한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타수 1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용덕한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1타수 7안타 1볼넷 1도루 4타점 4득점, 타율 .636, 장타율 .818, 출루율 .583를 기록했다.


4.1.4. 2011년~2012년

전년에도 그랬듯이 양의지가 주전포수로, 용덕한은 백업으로 출장하는 중. 가끔 양의지가 선발출장이 안되면 자신이 선발출장으로 나서기도 한다. 수비력 하나는 괜찮은 용덕한이었기에 큰 사고 없이 역할을 해내나 싶었더니...

양의지가 주자와의 충돌로 빠진 뒤 자신이 나온 527 대첩에서 3루타를 치면서 최악의 본헤드 플레이로 역전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투수 정재훈이 던진 회심의 변화구가 홈플레이트에 튕기면서 낫아웃 상태, 그런데 포수 용덕한이 공을 잡기는 커녕 심판에게 따지기 바빠서 1루에서 아웃당했어야 할 타자가 3루까지 내달리는 초유의 플레이가 벌어졌다. 디씨에서는 용덕한 승부조작설까지 나돌정도의 황당한 상황...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4위까지 등극하며 미칠듯이 까이고 있는 중. 누가 용덕한이 이런 본헤드 플레이를 저지를 줄 예상이나 했을까...당시 영상


최훈 작가의 카툰에서도 이 해프닝을 다뤘다. 역전재판 패러디.

게다가 다음날인 5월 28일 또 한건 작렬하고 마는데,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홈에 송구된 공을 미처 잡지 못하고 뒤로 빠트린 뒤 망연자실하게 서있는 동안 타자였던 정원석은 3루까지, 1루 주자였던 최진행, 2루 주자였던 전현태는 홈까지 안착했다.[7] 결국 이날이 용덕한의 두산에서 포수로 나온 마지막 1군 경기(...)가 되어버렸다.

2012 시즌 초반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양의지도 건재했고, 최재훈, 김재환이 백업 포수로 본격적으로 가세한 데다가 박세혁까지 깜짝 등장하면서 용덕한의 입지는 줄어든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어지고 말았다.

4.2. 롯데 자이언츠 시절

4.2.1. 2012년

결국 6월 17일, 당시 대졸 2년차 투수였던 김명성과 맞트레이드되어 장성우의 입대 이후 백업 포수를 찾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공교롭게도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울린 선수로써 만감이 교차했을 듯

트레이드 이후 첫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두산 시절에 없던 밝은 모습과 큰 제스처,액션 등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교시절의 동창, 두산 시절의 선수들[8], 동아대 출신이 많은 롯데라서인지 꽤나 반가운 선수들이 많아서 생긴 모습으로 보였다.

최기문, 홍성흔에 이어 용덕한이다. 2012년까지 두산 포수 출신 선수 세 명이 롯데로 이적했다. 믿고 쓰는 두산표 포수들

실은 롯데로 이적한 이유가 이거 때문이다 카더라. 소장수 개객끼! 근데 결국 이분도 넥센으로 떠났다

2012년 6월 23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부터 대수비로 나왔는데, 팀이 스코어 3:4로 뒤진 9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김선규를 상대로 기습적인 투수 앞 스퀴즈로 동점을 만드는 대활약을 했다!!! 결국 연장전까지 가서 6:4로 롯데가 승리하였다.

8월 26일 4번 타자 강민호의 대수비로 출전하였다. 김주찬의 스퀴즈에 힘입은 8회 2-2 동점 상황에서, 3루에 있던 김주찬을 스퀴즈로 불러들이면서 역전, 결승타가 되었다. 스퀴즈의 화신이 되는 건가.

팀이 7연패에 빠지며 부진을 거듭하고 있던 9월 23일, 엘지에게 1:0으로 뒤지고 있을때 무려 1,122일만에 홈런을 때려내어 동점을 만들며 팀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시즌 1호. 게다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악의 축 박정태 타격코치를 은근슬쩍 디스하면서 롯데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9][10]

그리고 포스트시즌에 들어서면서 용덕한은 제대로 미치기 시작했다. 일명 가을고모!

10월 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수비 중 부상을 당한 강민호의 대수비로 들어왔는데, 스코어 5:5인 10회초에 선두 타자로 나와 3득점의 시작을 알린 좌익 선상 2루타를 쳤고, 득점에도 성공했다. 이후로 두산이 뒤집지 못하며 이 득점이 결승 득점이 되었다. 이날 용덕한은 2타수 1안타(2루타)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5로 재역전승했다.

10월 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서 4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날 친 홈런이 스코어 1:1, 9회초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쳐낸 결승 솔로 홈런이었다.[11]
결국 이날 팀은 스코어 2:1로 역전승했고 용덕한은 이날의 MVP가 되었다.

용덕한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수비, 2, 3, 4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로 출장하여 13타수 3안타(2루타 한 개 포함) 1홈런 1타점 2득점, 타율과 출루율 .231, 장타율 .538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용덕한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 3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용덕한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15타수 3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 타율 .200, 장타율 .467, 출루율 .200을 기록했다.

4.2.2. 2013년

주전 포수인 강민호를 뒷받침하며 백업으로 꾸준히 출장했다. 수비는 여전히 베테랑 답지만 타율은... 음...

7월 24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희대의 병신불펜매치[12]에서 10회 득점권 상황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2루타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롯데는 그 뒤로 블론을 2번이나 기록(...)

친정팀을 만난 7월 30일에는 선발로 출전, 동점 홈런으로 마수걸이포를 신고한데다 완벽한 송구로 발빠른 이종욱오재원의 도루를 잡아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팬들을 환호케 만들었고 경기 MVP까지 되었다. 근데 양의지 도루는 왜...

4.2.3. 2014년

장성우가 영 좋지 않은 일에 말려들며 개막전부터 1군에서 시작했지만 몇경기 나오지도 못했고 나와서도 별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장성우와 자리를 맞바꿔 10일자로 상동으로 내려갔다.

5월 6일에 다시 1군에 등록되었고 5월 1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3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을 기록하여 팀의 3:4 역전승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5월~6월 사이에 알게 모르게 감초같은 역할로 팀에 도움을 주고 있다. 강민호가 꾸준히 똥망테크(...)를 타고 있는 현재, 그나마 타격감이 나은 용덕한을 주전 기용 할 것인지, 도루저지에서만큼은 밥값을 하는 강민호에게 안방마님 자리를 맡길지 김시진 감독도 머리가 아플 듯. 아니, 사실 강민호가 아무리 도루를 잘 잡는다고 해도 용덕한 본인이 갑자기 2루 자동문이 되지 않았다면 무난히 주전을 차지했을 상황이다.

강민호의 타격 부진이 너무 심한데다 길어지기까지 하니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고 김시진 감독은 계속해서 강민호를 경기중에 교체해주고 있고, 이때문에 용덕한의 출장수는 더욱더 늘어갔다.

7월 현재 타율이 3할(!)을 넘었다. 강민호가 타격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 용덕한이 도루저지율이 낮은 대신에 타격이 좋아졌다. 이제 강민호가 수비형 포수고 용덕한이 공격형 포수다 (....)

7월 16일 경기에서 9회말 2사에 1루주자로 나갔을때 뜬금없이 도루를 시도하며 아웃되었다. 잘하면 동점까지 갈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도루자로 인해 경기는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이 날 4타수 3안타 1타점을 치며 타석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도루자 하나때문에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왜 뛰었는지 아무도 이해 못했던 도루시도. 경기 후 김시진 감독은 자신이 내린 작전이 아니라며 부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소 선수들을 감싸기로 유명한 김시진이 이럴 정도니 얼마나 저 도루가 황당했는지 알 수 있다.

이후로도 강민호를 대신해 주전으로 출장하면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다 7월 26일 LG전에서 홈 경합중 정성훈과 충돌하여 부상을 당해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8월 7일 다시 콜업 되었다.

10월 3일 경기에서 7회말 1사에 장성우의 교체로 나와 홈런을 쏘아올렸다.
10월 3일 기준으로 타율이 0.320을 찍고 있다. 3할 2푼의 타율은 10월 3일 기중으로 20위권의 기록.... 정말 공격형포수가 되었다.

2014시즌 최종 성적은 82타수 25안타 11타점 .305로 마무리했다. 출전 경기수가 많지 않아(59경기)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마지막까지 3할 타율을 지켜냈다.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을 듯 하다.

11월 28일 KT 위즈의 20인 외 선수로 지명되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강민호를 FA때 잡지 말거나 장성우를 재입대시켰어야 했는데 용덕한은 하필이면 롯데의 납회식 행사 참석 중에 이 소식을 접했는데, 그럼에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며 1박 2일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KT행' 용덕한과 롯데의 훈훈한 이별 보호선수에서 제외한 구단측이 섭섭할 법도 한데 끝까지 자리를 지켰으니 인성갑 & 대인배 인증. 롯데 팬들도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새로운 팀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4.3. kt 위즈 시절

4.3.1. 2015년

시즌초 kt의 신인 안중열과 함께 번갈아가며 출전하고 있다. 안방에서의 안정감 있는 모습은 좋지만 역시나 타격이 문제다. 4월 3일까지 5경기에서 10타수를 쳤는데 안타 하나 없이 3삼진(...)을 기록 중이다. 그 뒤 6월 21일에 NC 다이노스로 트레이드됐다.

4.4. NC 다이노스 시절

4.4.1. 2016 시즌

2016 시즌 종료 직후 FA를 선언하였으나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고, 결국 12월 7일에 NC 다이노스와 코치 계약을 맺고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4.5. 코치 시절


5. 기타

그의 헤드샷능력.jpg[13]

별명은 '용포', 잘해줄 때 한정으로 '더 칸' 혹은 더칸V, 하지만 선수단 내에서의 별명은 '비'다. 무장공'비'...롯데에서의 별명은 '용고모'. 머리 스타일이라든가 외모가 고모를 떠올린다 하여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정작 본인은 고모라는 별명이 싫다고...

gomo_pic.jpg
[JPG image (Unknown)]

왜 그의 별명이 고모인지를 알려주는 전설의 짤. 하긴 이런 짤을 보면 누구라도 식겁할 법 하다

한화 이글스한용덕 코치가 2012년 시즌 중후반에 감독대행을 맡으면서 뒤늦게 떠오르고 있는 개그 소재가 있는데, 한용덕을 영문 이름으로 표기하면 용덕한이 된다.(!!!) 하지만 용덕한을 바꾸면 덕한용이 되므로 이름 돌려막기는 실패

2012년 12월 16일에 음반회사에 근무중인 4살 연상인 조정민씨와 결혼하였다.관련기사

----
  • [1] "kt 위!즈! 용덕한! k!t!위!즈! 용덕한! kt위즈 안방마님 용! 덕! 한!"
  • [2]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고영민과 같이 북한 간부 혹은 대남간첩으로 나온다.* '추두' 편에서는 김혁민과 같이 '북인의 거두'(...)로 나오기도 했다.
  • [3] 혹자는 병살에 가장 최적화된 타구를 날리는 선수라고 평하기도...하지만 원래 병살과 안타는 한 끝 차이다. 잘 치는 사람이 병살 확률도 높은 건 그 때문.
  • [4] 이는 어깨부상의 후유증으로, 아마추어 시절 채상병은 준수한 롱펙(Long Peg)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5] 이로써 두산베어스는 2006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매년' 주전 포수가 바뀌는(홍성흔-채상병-최승환-용덕한-양의지) 진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 집권이 당연시되는 포수 포지션의 특성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 [6] 당시 삼성 지승민과 트레이드된 선수는 채상병으로 2010년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 2011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지승민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역시 삼성과의 트레이드는 흥한 적이 없다.
  • [7] 이틀간의 이런 촌극 이후 한화 팬들은 이글스의 레전드 한용덕이라고 놀려댔다.(...) 이해를 못하겠다면 그냥 읽어봐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8] 하지만 홍성흔은 2013년 FA를 통해 다시 두산으로 돌아가버렸다.
  • [9] 캐스터:초구를 자제하는 모습이었는데 혹시 지시가 있었습니까? A:아니요, 그냥 선수단이 자발적으로 한겁니다.│양준혁:아 그럼 선수들끼리 분위기가 만들어진건가요? 코치 지시보다는? A:네. 코치님께서는 적극적으로 치라고 하셨으니까...
  • [10] 롯데의 선구안 문제는 한두해 문제가 아니다. 2008년부터 이 시즌까지 롯데는 팀 볼넷 개수가 7등을 넘어본적이 없다. 8888577을 깨니까 볼넷 개수 순위에서 비밀번호 그럼에도 타자들은 심각성을 못느끼는지 안하려고 하는게 더 문제. 그러니 가을마다 쳐발렸지 2013년에는 장성호의 가세로 그나마 선구안이 조금이라도 나아진 모습을 보이기는 하였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 [11] 당시 해설이 한 말이 압권. 아~이제 선수, 아무나, 다른 팀에 보내면 안 되겠어요 !!!
  • [12] 롯데는 블론세이브를 3번 기록했고, 한화는 동점 상황에서 역전을 3번 허용했다(...)
  • [13] 1루주자 견제구를 던지다 타자 이영욱에게 머리를 맞춰버린 상황. 엠뷸런스가 급히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경기후 이영욱의 인터뷰에서 "사실은 별로 안 아팠다. 일어날 수 있었는데 분위기상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대로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수밖에...엠뷸런스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응급실이더라"라는 인터뷰를 했었다. 이사건 이후 이영욱의 잠실벌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치는 괴력을 발휘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