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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복음서

last modified: 2015-01-06 21:30:25 Contributors

신약성경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마태복음)
마르코 복음서
(마가복음)
루카 복음서
(누가복음)
요한 복음서
(요한복음)

그리스어: κατὰ Ἰωάννην εὐαγγέλιον, τὸ εὐαγγέλιον κατὰ Ἰωάννην
라틴어: Evangelium secundum Ioannem
영어: Gospel of John

Contents

1. 개요
2. 구성 및 형성 과정
3. 집필 의도
4. 특징
4.1. 신학서적 특징
4.1.1. 3장 16절
4.1.2. 우주적 예수
4.2. 공관 복음서와의 차이
4.2.1. 간음한 여자
4.2.2. 요한 복음서 21장
4.3. 반유대주의(?)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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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요한 복음 8장 31-32

사도 중 1명으로, 예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 요한(Ἰωάννης, 이오안네스)이 집필한 복음서.[1] 정경으로 인정받는 4복음서 가운데 4번째이며, 공관 복음서는 아니다. 개신교에서는 요한복음이라고 부른다. 상징물은 독수리.

이 문서는 가톨릭 및 현대 성서 비평학계의 관점에 따라 작성되었다. 개신교에서는 교회 전승을 따라 사도 요한이 성령의 인도에 따라 저술한 것으로 본다.[2]

2. 구성 및 형성 과정

요한 복음서의 공관 복음서와 다른 신학서적 특징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에게 즐겨 인용되었고, 그 외에도 이교 집단에서도 잘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 복음서를 정경에 넣기 위하여 사도적 전승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해야 했고, 이레네오사도 요한이 말년에 에페소에 거주하면서 작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세기 초까지도 요한이 살아있었다는 내용이 덧붙여진 것으로 보아, 소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사제인 요한과 혼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 복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도 요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요한 복음서를 집필했거나 혹은 적어도 요한 공동체(요한 학파)에 예수의 전승을 전한 인물로 보이는 자가 요한 복음서 안에는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과연 12사도 중의 1명인 제베대오의 아들 사도 요한이겠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일반적인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선 둘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에서 묘사된 제베대오의 아들 사도 요한은 상당히 과격하고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3] 요한 복음서에 묘사된 주의 사랑하시는 제자는 상당히 지적이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처럼 보인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조.

성서비평 학자들에 따르면, 매우 문학적으로 잘 짜여진 구성과 일관된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한 개인이 썼을 수는 있지만, 사도 요한 계통의 전승을 형성시켜 온 공동체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요한 공동체 내에서 형성된 복음서로 추정하고 있다.

요한 복음서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고, 유대인의 관습이나 용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 것으로 볼때, 요한 복음서는 티투스예루살렘 대신전을 파괴한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회당에서 쫒겨나는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얌니아 회의에서 유대교 경전이 확립된 이후인 90~95년경에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3. 집필 의도

요한 복음서의 일차적인 집필 의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화육신이었다는 사실을 설득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도는 책 마지막 부분에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복음서 20장 31절) 이는 요한의 관심이 철학적이라기보다는 신학적인 데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이는 유다인들의 박해를 받아 회당에서 내어쫓기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 요한 공동체 성원들의 신앙을 북돋아 주기 위해 쓰여진 복음서이다.

또한 요한은 그리스 철학이나 신비주의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그 수단으로 그리스 철학 용어를 사용하였다.

4. 특징

4.1. 신학서적 특징

공관 복음서들이 예수의 행적을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는 데 비해, 요한 복음서는 신학 체계에 따라 쓰여진 복음서로서, 이는 신학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성(神性)을 중시하고 인성(人性)을 부정하는 가현설 및 단성론적 학파에 대항하기 위해, 예수의 몸을 찔렀더니 이 나왔다는 내용을 서술하여,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4.1.1. 3장 16절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가톨릭 성경)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개역성경)
 
니코데모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 중의 일부인 요한 복음서 3장 16절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심적인 교리를 표현하고 있는 내용으로 여겨지고 있다. "영~생을 얻으리로다~♪ 요~한복~음~ 3장 16절~♬" 개신교인 중 어려서 주일학교에 다닌 사람들 대부분은 이 특유의 가락을 붙여서 암송한 기억이 있다.

이 부분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다.

  • 외아들을 내 주시어[4] - 그래서 삼위일체의 2번째 분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려 속죄 제물로 드리고 싶었다.

  • 그를 믿는 사람은 - 구원은 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그 믿음은 예수를 바탕으로 함을 의미한다.

  • 누구나 - 구원은 믿는 사람이 누구든지 열려 있는, 구원의 보편성을 의미한다.

  • 멸망하지 않고 -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닥칠 멸망을 피한다. 즉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지 않는다.

  •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 그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궁극적인 목적인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특히 개신교에서 중요시하는 소극적 구원론인 신칭의론의 근거 구절이다. 물론 로마서라티아 서간에도 주구장창, 더 노골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개신교, 특히 개혁교회에 속하는 장로회에서는 이를 가지고 가톨릭이 행위구원을 주장한다고 까기도 한다.

하지만 가톨릭과 감리회의 공동 선언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원이 믿음을 근거로 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다. 단지 믿음의 증거로서의 행동을 강조하는 것일 뿐. 성경부터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나와 있으며, 고보서에도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2장 24절)",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입니다.(2장 26절)"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개신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그 증거를 보인다. 행함 그 자체가 구원을 가져다주는 한 조건이 될 수는 없지만, 참된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5] 가톨릭의 교리와 차이가 없다. [6]

일부 학계에서는 구약에서 그려지던 '힘'과 '권능'의 전투신이었던 야훼가, 신약에서는 "사랑의 신"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스티브 오스틴의 3장 16절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며, 지하철 차량의 노선도나 시내버스 정류장의 노선 푯말마다 예수쟁이들이 포교한답시고 붙여놓아서 문제가 되는 구절도 이 구절이다(개역성경판 번역).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은 너무 사랑하시지만 환경미화원들은 사랑하지 않으시나 보다.

4.1.2. 우주적 예수

요한 복음서가 묘사하는 예수는 다른 세 복음서의 예수보다 더욱 스케일이 크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데에서, 마태오 복음서루카 복음서는 예수의 탄생부터 시작하지만, 요한 복음서는 아예 예수의 탄생 자체를 그리지 않는다.

요한 복음서에서 말하는 예수는 이미 태초부터 존재했던 분이다. 그는 말씀, 즉 로고스로 불리는데 이 로고스는 태초에 하느님과 함께 우주를 창조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느님과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로고스는 기원전 500년경 에페소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가 우주를 지배하는 궁극적인 이성적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기원 1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 필로는 궁극적 원리 - 즉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인 이성 - 으로서의 로고스를 부정하고 인격적으로 초월하여 존재하는 하느님이 그의 뜻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고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곧 필로는 헤라클리투스의 '이성적 원리'라는 뜻과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의미를 합한 것으로서 '로고스'라는 말을 응용하였다. 요한은 이같은 로고스 개념을 차용함으로서 예수의 신성에 관한 신앙을 그리스-로마 세계에 뚜렷하게 밝힐 수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복음서 1장 14절)"는 곧 예수가 로고스의 화육신이었다는 뜻이다.

이런 우주적인 예수관은 요한 공동체가 가진 독특한 측면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전까지는 유태적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보았고 예수의 탄생을 유태적 관점에서 규정하는게 일반적이었다면, 요한 복음서에서는 그리스적 관점에서 예수를 바라보았다는 차이가 존재한다.

이렇게 로고스라는 그리스 철학 용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 철학에 익숙한 예상 독자들에게 요한의 사상을 설득시키려는 의도였다.

4.2. 공관 복음서와의 차이

대체적으로 공관 복음의 경우, 예수의 행적과 '하느님나라의 선포'를 초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비신자들이 해당 복음을 보고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반면에 요한 복음의 경우, 초반부터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미 믿음을 가진 교우들이 신앙의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복음서가 집필되었다.

요한 복음서에는 공관 복음서에 있는 많은 사건들이 생략되어 있다. 예수의 탄생, 세례, 시험, 변화산 사건, 최후의 만찬 등이다. 그 이유는, 이미 그러한 사건들이 요한 복음서가 집필될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생략하였다는 학설이 있다. 하지만, 요한 공동체라는 공관 복음서의 전승과는 다른 전승을 가지고 있는 신앙 공동체에서 집필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요한은 사건이나 사실보다는 신학 사상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자기 계시에 대한 해명이 될 수 있는 예수의 전기 대신 화육신에 대한 요한의 신비적이고 철학적인 견해가 실려 있다. 따라서 요한의 "예수의 인물과 가르침에 대한 표현"은 공관복음의 표현과 아주 다르다. 요한은 예수의 가르침보다는 예수의 본성 및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병을 고치는 기적을 소개할 때에도,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는 공관복음과 달리 신성의 '표적'으로서의 기적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짧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은 공관복음서와 달리, 강의에 가까운 긴 어록이 많이 실려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사실 대부분의 요한 복음서의 내용은 이러한 예수의 강의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공관 복음서에 생략된 부분이 요한 복음서에는 길게 실려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카나의 혼인잔치
    유명한 한턱 쏘신 포도주로 변하게 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 니코데모(3장 1 ~ 21절, 7장 50 ~ 52절, 19장 39절)
    바리사이이자 최고 대의회 의원이었다. 당대 유대인 사회의 인텔리. 예수를 시험하고자 하는 질문을 던지나, 이후 예수를 변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제들은 그를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토라를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하고 디스한다(…). 예수가 죽고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가져온 것도 그다. 가톨릭의 전승에서 그는 개종하고 순교했으며, 순교자 성 니코데모(축일 8월 3일)로 공경받아 왔다.[7]

  • 사마리아의 여인과의 대화
    가톨릭에서는 이 사마리아 여인이 훗날 예수의 제자가 되어 카르타고에서 순교한 성녀 포시나(Photina, 축일 3월 20일)라고 가르치고 있다.

  • 라자로의 부활 사건
    성 라자로는 이 사건 이후 예수의 제자가 되었으며, 가톨릭 전승에서는 여동생 마르타 및 마리아 막달레나 등과 함께 프랑스 마르세유 지역으로 가 주교가 되어 순교했다고 한다. 축일은 12월 17일.

공관복음에서 한 번 이상 언급되었지만 요한 복음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처녀탄생설화
  • 예수의 세례[8]
  • 광야에서 고난 중 악마의 유혹을 받음
  • 성체성사의 제정
  • 예수의 승천

4.2.1. 간음한 여자

4.2.2. 요한 복음서 21장

요한 복음서 21장은 후대에 덧붙인 것이라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요한 복음서의 사본 중 21장이 생략된 사본이 발견된 적이 없고, 20장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포함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신학계에서도 더 이상의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요한 복음서에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9] 이 문제 때문에, 요한 복음서는 2명 이상의 집필자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21장에 대한 다른 이론으로는, 요한 공동체와 베드로에게서 정통성을 이어받은 걸로 보이는 주류 사도전승 교회가 화해한 증거라는 시각도 있다. 21장에서는 예수는 그를 3번 부인한 전례가 있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는다. 그리고 "내 들을 잘 돌보아라."라고 3번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한데, 그리스어 원문에서 예수의 질문은 "αγαπας με(agapos me)"이지만 베드로의 대답은 "φιλω σε(philo se)"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자신에 대한 아가페적 사랑을 물어봤지만, 베드로는 philos의 사랑으로 대답했다. 3번째 예수의 질문은 '아가페'가 아닌 '필리아'인데, 이것을 두고 예수가 대인배답게 베드로의 인간적 사고방식에 맞추어준 것이라고 해석하며, 눈높이 교육

특히 ‘양들을 잘 돌보라’는 대목은 사실상 베드로의 수위권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이론에 따르면, 요한 공동체가 분열되어 한쪽은 영지주의와 결합하고 다른 쪽은 주류 사도전승 교회에 편입되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요한 복음서가 정경이 될수 있었던 것도 주류 사도전승 교회와의 연합의 결과라는 추측도 있다.

4.3. 반유대주의(?)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루카 복음서는 차이는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유대적인 기반하에서 예수를 바라보았다. 물론 시각차가 없는 건 아니라서, 마태오 복음서는 친유대교적, 마르코 복음서는 중립적, 루카 복음서는 비유대교적 성격이 존재한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과 유대인들을 철저하게 구분하고 있다.

또한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10] 예수를 믿지 않으며 심지어는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결국 이런 예수와 유대인들의 긴장은 십자가 사건에서 폭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요한 복음서의 예수와 유대인들의 팽팽한 긴장과 갈등은 요한 복음서의 저자, 혹은 요한 복음서를 형성한 예수의 전승을 간직한 요한 공동체와 유대교 간의 긴장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로마제국 동방지역에서는 초기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관계가 긴장되었고, 로마제국의 법에 따르면 불법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를 유대교 회당에서 고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요한 공동체는 유대인과 유대교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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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의 증언 인용.
  • [2] 『IVP 성경사전』(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요한복음' 항목 참고.
  • [3]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제베대오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사도 요한을 가리켜 예수가 보아네르게스, 즉 번개의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만큼 상당히 급하고 과격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들은 어떤 마을에서 예수를 쫓아내자, 불을 하늘에서 내리게 해서 마을을 태워버리자는 소리까지 했다.
  • [4] '내주다'는 동사는 그리스어 '에도켄(ἔδωκεν)'의 번역.
  • [5] 이국진 목사, <굿모닝 성경> 주석.
  • [6] 행위(혹은 선행)가 믿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가톨릭, 개신교 모두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선행의 중요성을 구원의 조건이라는 단순한 관점으로만 바라보니 '가톨릭은 펠라기우스의 행위구원론에 영향을 받았다.'와 같은 주장을 반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한 논쟁에서 개신교 교리와 가톨릭 교리의 가장 큰 차이점 세 가지를 논하자면 1. 몸(행함)과 마음(믿음)이 본질적으로 하나(가톨릭)라 보느냐 분리된 것(개신교)이라 보느냐 2. '의로움을 칭하는 것'(칭의)(개신교)인가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의화)(가톨릭)인가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가톨릭 교리의 내용을 종합하면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로워지지만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이므로 언제라도 죄를 짓고 하느님과 멀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므로 지은 죄를 하느님께 용서받고 개인의 의지로 선행을 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 [7] 관련 출처
  • [8] 요한이 증언하는 형태로 자신이 예수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비둘기 모습의 성령이 내려왔다는 내용이 있다.
  • [9] 다만 개신교 계에서는 이것을 편집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성서와 기독교, 연세대학교 출판부 인용) 20장 30~31절에서 이미 이 복음서의 목적과 결론이 적절하게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 [10] 예를 들면 예수가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자기 살을 주어 우리에게 먹이겠는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예수가 하는 말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인데 유대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 군데서 보인다. 사실 제자들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모습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