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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스포츠)

Contents

1. 개요
2. 야구
2.1. KBO 리그
2.1.1. 1기 왕조 해태 타이거즈 (1983년~1997년 우승 9회)
2.1.2. 2기 왕조 현대 유니콘스 (1998년~2004년 우승 4회)
2.1.3. 3기 왕조 SK 와이번스 (2007년~2010년 우승 3회, 준우승 1회)
2.1.4. 4기 왕조 삼성 라이온즈 (2011년~현재 우승 4회)
2.2. 일본프로야구
2.2.1.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5~1973)
2.2.2. 세이부 라이온즈 (1982~1992)
3. 농구
3.1. 농구대잔치~한국프로농구
3.2. NBA
4. 축구
4.1. 한국
4.2. 유럽
5. 배구
5.1. V-리그

1. 개요

王朝, Dynasty.

특정 팀 혹은 특정 선수로 구성된 집단이 우승을 계속해서 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막강한 실적을 쌓았을 경우 이 팀이나 혹은 이 팀이 활약을 한 기간 전체를 '왕조'라 부른다. 이는 흔히 쓰는 '전통의 강호'라는 표현과는 구분되는데, 이 용어가 꾸준히 상위권에 드는 역사를 가진 팀을 지칭한다면, 왕조는 그 강팀들 중에서도 우승을 독점하는 것과 같이 그 스포츠 역사에 남을 만한 독보적인 수준의 성적을 이루어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해 콩라인은 전통의 강호에는 해당할지언정 왕조 소리는 들을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냥 전통의 강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팀에게 붙여지는 호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우승이라는 확실한 타이틀 외엔 주관적인 개념으로 우승을 여러 번 했다고 쉽게 왕조라는 타이틀이 붙는 것도 아니고 실적이 좋아도 그 내용 가지고 그 팀 팬들과 안티 팬들이 키배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항목이다. 특히 아래 항목들처럼 폐쇄적 독립 리그 구조의 미국과 개방형 자유 시장 구조의 유럽 프로리그에서 왕조라는 단어의 사용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전자의 구조는 드래프트를 잘해서 좋은 선수를 쌓으면 리그 내 팀들만 물리쳐서 우승할 수 있기 때문에 왕조의 형성과 경쟁 가능성에서는 유리하지만, 왕조의 유지 기간과 그 지배력에서는 타팀 전력 빼오기가 매우 쉬운 후자의 구조가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2. 야구

가장 왕조라는 용어가 많이 쓰이는 종목. 특히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짧은 역사 동안 특정 팀이 우승을 독점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 용어가 자주 쓰인다. 심지어 연속 우승도 아니고 한국시리즈에만 올라가도 왕조가 시작되는 게 아니냐는 설레발성 기사가 나올 정도이니 말 다 했다.

2.1.1. 1기 왕조 해태 타이거즈 (1983년~1997년 우승 9회)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다우승의 신화를 이뤄내고 갔다.

김응용 감독이 전설적인 V9를 이끌었던 시기. 프로야구 초창기인 1982년~1985년에는 전무후무한 3할-20홈런과 10승을 동시에 달성하는 등 투타 모두에서 활약한 오리궁둥이 김성한과 콧수염 홈런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김봉연이 팀을 이끌었으며, 해태의 최고 전성기라 불리는 1986년~1989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던 기간 동안에는 전설적인 대투수인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 야전 사령관 이순철, 해결사 한대화가 새로이 등장하면서 팀을 이끌었다.

이후 1990년대 초 들어서도 바람의 아들 이종범, 핵 잠수함 이강철, 싸움닭 조계현 등 슈퍼 스타들이 줄줄이 배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도 이대진, 임창용, 홍현우 등 걸출한 신인들이 주전 선수들의 뒤를 받쳐주며 리빌딩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1997 시즌 종료 후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쳐오면서 해태의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이종범은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로 진출하고, 그 외에도 임창용, 이순철, 조계현삼성 라이온즈에 팔아 넘기는 등[1] 주전 선수들의 유출로 인해 1998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이후 하위권을 전전하다가 결국 2001년 7월 KIA에 야구단이 매각되면서 KIA 타이거즈로 바뀌며 해태 왕조는 끝나게 된다.

2.1.2. 2기 왕조 현대 유니콘스 (1998년~2004년 우승 4회)

짧고 굵게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다.

현대는 당시 故 정주영 회장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자 분위기 쇄신책을 위해 스포츠에 눈을 돌렸는데 이때 탄생한 야구 팀이 바로 현대 유니콘스였다.[2]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짧은 기간 동안 현대를 강팀으로 만들기 위해 프론트 측에서 삼성 라이온즈와의 머니 게임을 벌여가며 1997년외환 위기 이후 심각한 재정난을 겪었던 해태와 쌍방울의 선수들과 유망주들 그리고 2000년부터 도입된 FA 제도를 통해 각 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을 싹쓸이한 덕에 박재홍, 박경완, 임선동, 정명원, 정민태, 박진만, 박종호, 송지만과 같은 걸출한 실력을 갖춘 선수를 확보하였으며, 이 외에도 다른 팀 내에서 입지가 흔들리거나 갈등을 겪었던 전준호, 심정수, 심재학 등을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며 KBO 팀들을 통틀어 역대 최고급 선발 라인업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2000년에는 정민태, 김수경, 임선동이 나란히 18승을 올리는 등, 2014년 현재까지도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 승 기록으로 남아 있는 91승을 거두었다. 오죽하면 "야구장에서 김밥 파는 할머니가 감독 해도 우승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을 정도.

하지만 2001년 故 정주영 회장의 사망과 하이닉스의 자금난 등이 겹치며 2004년을 끝으로 외환위기 직후의 해태와 마찬가지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다른 팀으로 팔려나가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2008년 초에 팀이 해체되고 서울 히어로즈를 거쳐 2010년 넥센 히어로즈라는 구단으로 재창단되었다. 그래도 이런 사정에도 2006 시즌에 페넌트레이스 2위를 하면서 무너지지 않은 뒷심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ㅎㄷㄷ 어째 왕조의 끝이 해태랑 비슷하다(...).

여담으로 삼성이 2011년에 우승하기 전까지 현대가 통산 우승 횟수 2위였다. 현재는 삼성이 2014년까지 V8(8회 우승)을 달성한 덕에 현재 통산 우승 횟수 3위로 내려앉은 상태. 현대는 이미 2008년 초에 해단했기 때문에 더 이상 늘어날 일이 없는 우승 횟수[3]KBO 리그 역사가 점점 흐를수록 통산 우승 횟수 순위는 계속 아래로 쳐질 수밖에 없다.

2.1.3. 3기 왕조 SK 와이번스[4] (2007년~2010년 우승 3회, 준우승 1회)

한국 프로야구의 또다른 전성기와 함께 찾아온 뜨거운 야구.

아직까지 신생 팀 이미지와 인천 야구의 서자 이미지를 벗지 못했던 와이번스는 하위권에서 전전하기는 하지만 나름 리빌딩도 어느 정도 완료했고 준우승의 공로가 있는 조범현 감독과의 계약을 포기하고, 이후 스포테인먼트 차원에서 태평양 돌핀스 등으로 인천 야구 팬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김성근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걸게 된다. 아직도 현대의 배신 때문에 야구장을 찾지 않던 팬들에게 SK는 철저히 인천에 남을 것이라는 어필과 함께, 리빌딩을 하던 감독을 중간에 포기하면서까지 우승을 하겠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신의 무리수를 두게 된다

김성근 감독은 이른바 '김성근 사단'를 동원해 팀의 체질을 뜯어고치는 동시에 선수들에게는 본인이 직접 펑고를 쳐가면서까지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경기에서는 1점을 짜내기 위한 세밀한 작전과 필요하다면 도발을 걸어 상대 팀의 멘탈을 흔드는 등 이기기 위한 야구를 펼쳤고, 이는 4년간 4번 한국시리즈에 나가 3번 우승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져 결국 2010년 이후 왕조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 SK는 '약점이 없는 팀'이라는 찬사와 '비매너 야구', '번트 야구'라는 야유 속에서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왕조라는 사실 자체는 팬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2009 시즌에 에이스 김광현, 전력의 반이라고 평가받던 박경완, 전병두 등이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19연승을 달리고 플루크 성적으로 코시 간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7차전까지 압박하는 투혼은 여러 팬들로 하여금 SK 야구를 재평가하게 만들었으며, '이기는 야구'가 아닌 '지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야구'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1년 SK는 프론트에 전권을 요구하는 김성근을 중도 해임하고[5] 이만수 감독 대행 체제로 넘어가게 되면서 급격히 몰락, 결국 왕조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이만수 체제 이후 첫 2년간은 비록 준우승에 그쳤을지라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2012 시즌까지 왕조의 명맥은 그럭저럭 이어갔다.

다른 왕조와는 달리 준우승 한 번이 포함돼 있는데, 이 준우승의 과정조차 시즌 막판에 1무가 낀 19연승을 기록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이 기간의 4년 연속 6할 승률은 다른 왕조는 해본 적이 없는 대기록이다. 통합 4연패를 달성한 삼성 왕조조차 2013년 승률은 0.595로, 6할에 아쉽게 못 미친바 있다.

총평하자면, 비록 앞선 왕조들에 비하면 왕조의 흥망성쇠는 4년으로 다소 짧은 편이지만[6] 한국 프로야구의 제2 전성기의 도래와 함께 김성근 감독 시절의 SK 야구는 인천의 야구 팬들과 전국의 야구 팬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이 시기 SK를 두고 만화가 최훈정말 뜨거웠던 야구라고 평하기도 하였다.[7]

2.1.4. 4기 왕조 삼성 라이온즈 (2011년~현재 우승 4회)

멍게강점기선동열 퇴임 이후 대구의 레전드와 함께 맞은 전무후무한 4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

현재진행형 왕조.

전통의 강호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늦게서야 왕조 소리를 듣게 된 팀.[8] 프로야구 원년부터 꾸준히 최소 중상위권의 성적을 올리며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는 늘 받아왔지만, 항상 큰 경기에만 가면 미끄러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왕조는커녕 콩라인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우승청부사 김응용감독을 영입한 뒤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드디어 준우승 징크스를 깼고,[9], 선동열 감독 재임 기간 강점기과도기를 거쳐 2011년 류중일 감독 시대로 접어들며 본격적으로 도약하기에 이른다.

2010년 무기력한 한국시리즈 패배를 이유로[10] 삼성은 용퇴라는 형식을 빌려 선동열 감독을 해임하고 류중일 감독을 선임했다. 류중일 감독은 전임 선동열 감독과는 달리 선발 야구, 믿음의 야구, 형님 리더십 야구를 표방했고, 이른바 조까 라인에 더해 신인왕 배영섭, 잉여 킹 타격 3관왕 최형우의 활약과 김상수의 각성, 윤성환의 부활 등이 더해지며 감독 부임 첫해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아시아 시리즈에서 한국팀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패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 아시안시리즈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강렬한 데뷔로 삼성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 2012년에는 돌아온 국민 타자 이승엽이지영, 심창민, 정형식 등 유망주들의 맹활약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삼성 왕조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고 2013년에 조동찬, 권오준의 부상과 이승엽의 부진 등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결국 우승을 차지하며 언론과 팬들에게 드디어 왕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2014년엔 업셋을 예상한 기레기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당히 4연속 우승을 달성하며 해태 타이거즈의 4연속 우승을 따라잡게 되었다.

한편 2001~2006년 삼성[11]도 왕조로 봐야 하지 않나라는 이야기가 과거에 돈 적이 있었으나, 중간에 현대의 주축 선수였던 박진만, 박종호, 심정수를 거액을 질러 사오는 등 이른바 '돈성'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우승을 한 데다 98년부터 시작된 돈질의 원조 현대 왕조와는 달리 그 시기가 짧았고 2007년을 시작으로 3년간 한국시리즈 근처에도 가지 못하면서 왕조 소리는 듣지 못하게 되었다. 거기다 중요한 건 정작 삼성 팬들이 05~06에 해당하는 시기를 왕조로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때 쓴 돈 때문에 아직까지도 돈성이라는 비난을 듣는 데다가, 우승하겠답시고 선동열이 배영수를 마구잡이로 등판시켜 선수 생활을 끝장낼 뻔했고, 선발 유망주였던 권혁권오준을 무리하게 계투로 돌리고 혹사시킨 것에 더해 김한수를 강제로 은퇴시키고 임창용을 철저히 전력 외로 만드는 등의 만행이 겹쳤으니 야구를 조금이라도 오래 본 삼성 팬들 입장에선 이래저래 분통이 터질 일들만 가득했다. 그 때문에 삼성 팬들은 이 시기를 왕조로 보기는커녕 오히려 흑역사 취급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에 당시 김응용 사장, 선동열 감독 체제는 해태 냄새가 너무 강했다는 점도 존재한다. 김응용 감독 시기야 우승에 대한 열망이 너무 커서 그냥 넘어갔지만, 이게 선동열로 이어지니 이걸 견디지 못한 것. 더구나 삼성의 야구 하면 타격 위주였는데, 선동렬식 불펜 야구는 기존 삼성 팬들에게 매력을 주지 못했다. 소위 삼태 타이온즈 시절. 거기에다 선동열이 앞에서도 적혀 있듯 삼성 라이온즈에서 키운 선수들은 냉대하고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들만 편애하는 행동을 해 좋을래도 좋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엘롯기가 들으면 어이없을 소리 다만 이 시기에 삼성의 압도적인 전력과 연속 우승의 임팩트 때문인지 이 시기를 왕조라 부르는 전문가나 기자들도 꽤 있는 편.

여담으로 1~3기 왕조의 감독들, 심지어는 라이벌들 대부분(김영덕, 김인식, 김경문 등)이 김씨였던 반면 4기 왕조는 전혀 다른 성씨들의 감독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류중일, 2005~2006의 선동열).

2.2.1. 요미우리 자이언츠 (1965~1973)

과장 아니고 매해 연말만 되면 자이언츠 야구단 일본 제패라는 소식이 들려왔던 시절이다. 당시 퍼시픽 리그 강호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약해지며 자이언츠의 라이벌은 퍼시픽 리그에선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이다. 도에이 플라이어스나 한큐 브레이브스가 신흥 강호로 올라갔지만 자이언츠를 막긴 힘들었다. 속칭 V9 시기. 이때부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의 국민 구단으로 자리잡았고, 일본 야구 팬들은 친거인 VS 반거인으로 거의 완벽하게 쪼개졌다.

2.2.2. 세이부 라이온즈 (1982~1992)

리그 우승 9회에 일본 제일 클럽 자리를 8번이나 차지한 상승(매번 이긴다는 뜻) 군단의 돌풍이었다. 세이부는 강해야 관중이 많이 온다 하며[12] 어떻게든 팀 전력을 강화시켰다. 타선은 막강한 AKD[13] 클린업 트리오가 타점을 팍팍 대주었고, 중심 타선 이외에도 이시게 히로미치, 쓰지 하츠히코, 히라노 켄, 타나베 노리오, 이토 츠토무 등 선수들이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진에선 히가시오 오사무, 쿠도 기미야스, 마츠누마 형제가 왕조 초반의 투수진을 주도했고, 중후반으로 가면서 와타나베 히사노부, 시오자키 테츠야, 가쿠 타이겐(곽태원) 등 신진 세력이 투수진의 중심에 떠오르며 리그를 썰어먹었다.

이 기간 동안 세이부가 리그 우승을 놓친 적은 단 두 번(1984, 1989)이며, 해당 기간 9회 일본시리즈에 출장해 단 한 번을 제외하곤 모두 우승했는데, 우승에 실패한 한 번은 상대가 역대 최고의 사기 타선을 보유했던 1985년 한신 타이거스였다.[14]

이 시기 이후로 왕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센트럴 리그에선 주니치와 자이언츠가 양강 체제를 이루고 있고, 퍼시픽 리그는 카오스가 되어버렸다. 다만 센트럴은 2013 시즌 판도가 바뀌어 주니치가 3약(!)으로 굴러떨어지고, 히로시마(!)가 3강에 뛰어들었다.

3.1. 농구대잔치~한국프로농구

  • 기아자동차 실업농구단/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울산 모비스 피버스 : 1980년대 후반~1990년대, 2013년~현재
    허재, 강동희, 김유택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허동택 라인업으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휩쓸었고, 한국프로농구 출범 이후 프로 원년 우승도 달성했다. 이후 2001년 들어 인수 및 재창단 과정을 거치며 온갖 잡음으로 잠시 암흑기에 빠져들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이후로 팀의 재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강팀으로 도약하기에 이르렀으며, 2년 연속 챔프전 우승, 그리고 그 다음 시즌은 정규리그 1위로 등극해서 다시 왕조로 거듭나게 되었다.

3.2. NBA

4.1. 한국

  • 일화 천마 : 1993~1995, 2001~2003
    K리그에서 유일하게 왕조를 구축했던 팀. 동대문 연고 시절인 1993~1995 시즌에 3연패, 성남으로 연고 이전한 이후인 2001~2003 시즌에 3연패로 총 2번에 걸친 3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첫 번째 3연패의 마지막 시즌인 1995 시즌에는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까지 제패하며 K리그 팀 중 최초로 시즌 더블을 달성하였다. 두 번째 3연패 기간 중 2003년에는 승점 91점을 기록하며 당시 최다 승점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모기업이던 일화가 슬슬 발을 빼던 2010 시즌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으나 결국 문선명 교주가 사망하면서 일화에서 성남시에 팀을 매각, 중위권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4.2. 유럽

  • 레알 마드리드 : 1955~1960
    1955년부터 1960년까지 UEFA 챔피언스 리그 5연패를 일구어냈다. 다만 당시 챔피언스 리그 진행 방식 및 규모가 현재와 크게 차이가 있어서 그렇게 높게 쳐주지는 않는 편이다.

  • 잉글랜드
  • 리버풀 FC : 1972~1980, 1981~1991
    1972년부터 1980년까지 우승 5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으며, 이후 1981년부터 1991년까지 우승 6회, 준우승 4회를 이룩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991~2001, 2005~2013
    1986년 알렉스 퍼거슨이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우승 7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았다가 2000년대 초에 잠시 침체되었으나 2005년부터 다시 전력을 재정비해서 2013년까지 우승 5회, 준우승 3회를 이룩했다.

  • 이탈리아
  • AC 밀란 : 1987~1994
아리고 사키파비오 카펠로 휘하의 87~94년동안 리그우승 3연속 우승을 포함한 4회, 유러피언 컵(현 챔피언스 리그) 최후의 2연패를 포함한 3회 우승. 이때당시의 밀란은 클럽 축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꼽힌다.

전자는 카테나치오의 창시자인 엘레니오 에레라의 조련하에 유러피언 컵 2연속 우승 및 세리에 A 3회를 기록했으며, 후일 로베르토 만치니, 주제 무리뉴휘하에서는 세리에 A 5연패,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2회를 기록하였다. 특히 09-10 시즌은 숨막히는 수비라인과 미들진의 조직력이 역습전술에 극대화된 시절로 결국 트레블까지 달성했다.

유럽 역사상 최고의 명장대한민국에선 이상한 할아버지인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시절 세리에 A 6회 우승, 코파 이탈리아 2회, 유러피언 컵 1회, 위너스 컵 1회, UEFA컵 1회, 도요타 컵 1회등 14개의 트로피를 쓸어담았다. 이때 당시 유럽 무대를 최초로 전부 재패한 기념으로 UEFA에서 UEFA Plaque라는 명예트로피를 최초이자 최후로 지급받았다.그러니깐 유에파 플레이트가 아니다

일명 일 그랑 토리노(IL Gran Torino). 수페르가의 비극 항목 참조.

프랑스
  • 올랭피크 리옹 : 2002~2008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7시즌 연속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며 유럽 상위 리그 클럽 중 최다 신기록을 기록하면서 주목을 받았으며, 이 기세를 몰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킬러로 등극하는 등 꾸준히 활약했다.

  • 스코틀랜드
  • 셀틱 FC : 2012~현재
    유일한 맞수인 레인저스 FC가 해체 후 4부 리그에서 재창단되었으니 더 이상 말은 필요없긴 한데... 리그야 셀틱의 독무대이긴 하지만 컵 대회에서는 아니다. 2014년 리그 컵에서는 3부 리그 팀에게 연장전까지 가서 패했으니 왕조라고 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 물론 어디까지나 리그에 한해서 왕조는 확실하다.

5.1. V-리그

  •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 1997~현재
    18년 연속[18], 여전히 진행 중인 연속 결승 진출 기록.
    다소 뒤늦게 창단되어 실업 리그에 참가, 2004년에 대회가 폐지될 때까지 8연패를 질주했고 V-리그 창단 원년(2005년) 우승까지 거머쥐며 총 9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2년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그 와중에도 결승 진출은 항상 성공했고, 2007년부터는 다시 7년 연속 우승을 하고 있다. 지역 연고 이후 2회 우승인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도, 콩배구단인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도 막으러 올라오지만 블루팡스 앞에선 다 무릎 꿇는 현실이다.[19]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장 연속 우승 기록[20]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프로 스포츠 최다 우승인 KIA 타이거즈의 10회에 꾸준히 다가가고 있다. 게다가 이쪽은 가장 잘했을 때는 당연히 우승이고, 가장 못했을 때가 최종 준우승[21]이다.

  • 호남정유 여자 배구단 : 1990~1999
    여자배구 최장기 집권팀이자 9연속 슈퍼리그 우승팀.
    장윤희, 정선혜, 도희, 박수정, 지연이라는 5명의 국가대표 주전팀과 수비배구의 달인 김철용 감독을 앞세운 무시무시한 철벽수비로 슈퍼리그 9연패를 달성하고 저 멤버 그대로 + 한일합섬 라이트 김남순만 끼워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우승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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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리고 2001년에는 김응용 감독마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게 된다. 본인이 후술하길 해태 프런트로부터 경영난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삼성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막상 김응용의 부인 분은 삼성으로 간다니 좋아했다고.
  • [2] 사실 실업 팀 현대 피닉스를 통해 미국의 양대 리그처럼 한국 프로야구에 새로운 리그를 만들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렇게 되진 못했고, 그 대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한국 프로야구에 입성했다. 자세한 건 현대 피닉스 참고.
  • [3] 히어로즈는 현대 유니콘스와는 전혀 다른 팀으로, 현대 해체 후에 새로이 창단된 신생 구단이기 때문에 히어로즈가 이후에 우승을 한다고 해서 현대 유니콘스의 우승 횟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다.
  • [4] 2005~2006년 삼성에 대해선 후술.
  • [5] 이 자체만 놓고 보면 김성근 감독도 잘못한 게, 김성근 감독의 주장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할 테니 너님들은 돈이나 대줘라"는 식. 하지만 SK가 김성근을 자른 방식이 더 막장이었다.
  • [6] 물론 2011, 2012년에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콩라인의 마스터피스였던 80년대 삼성과 빙그레/한화, 그리고 90년대 중후반 LG 역시 왕조 항목에 실려야 한다.
  • [7] 사실 최훈은 09 시즌 말의 19연승, 코시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보고 그야말로 투혼이라며 극찬한바가 있다.
  • [8] 삼성 라이온즈의 평균 성적을 보면 기본이 포스트시즌 진출이며 프로야구 구단 중 유일하게 꼴찌를 기록한 적이 없는 팀으로 같은 원년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비밀번호랑 많이 비교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두 팀 간의 관계는 오랫동안 안 좋았고, 9개 구단 팬 중 롯데 팬들만 꼴찌+삼성의 합성어인 꼴성 드립을 치곤 한다. 자세한건 꼴리건 항목 참고. 물론 롯데 팬들만 잘못한건 아니고 삼성 팬들도 병크가 여러 번 있었다. 대구아재 항목 참고.
  • [9] V1은 1985년 한국시리즈에서 달성했지만, 당시 리그 제도상 전후기 통합 우승이라 한국시리즈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 [10] 사실 이거 하나 때문에 잘린 건 아니다. 지역주의로 회귀하려는 구단 수뇌부의 판단과 함께 선동열이 그동안 수십억에 달하는 돈을 썼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복잡한 사유가 겹쳤던 것. 자세한 건 선동열/삼성 라이온즈 감독 항목을 참고하자.
  • [11] 이쪽은 6년간 3회 우승 2회 준우승이다. 특히 05~06은 연속 우승.
  • [12] 세이부 홈 구장은 도쿄에서도 열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하고, 사이타마 인구 밀집 지역에서도 거리가 있었다. 한 마디로 성적이 안 나오면 관중 수익이 폭망한다는 것.
  • [13] 키야마 코지, 요하라 카즈히로, 오라토리스 스트라데.
  • [14] 얼마나 사기냐면 1번 타자부터가 .322, 34홈런이었다. 중심 타선은 그 유명한 바스, 카케후, 오카다. 셋이서 홈런만 130개를 넘게 쳤다.
  • [15] 다만 레이커스가 압도적인 최고는 아니었고, 매직 존슨의 라이벌 래리 버드가 이끄는 보스턴 셀틱스가 있었다. 레이커스가 일방적으로 셀틱스에 우위에 섰다고 볼 수 없다. 셀틱스는 총 1981, 1984, 1986년으로 3회 우승. 1980년대 NBA는 레이커스와 셀틱스 두 팀이 다 해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16] LA 레이커스는 샤크의 이적 후 잠시 주춤했지만 파우 가솔을 영입해 2009, 2010년에 2번 우승을 더하게 된다. 하지만 00년대 후반의 레이커스까지 왕조라고 보기엔 좀 부족하다.
  • [17] 동시대에 팀 던컨샌안토니오 스퍼스도 1999, 2003, 2005, 2007, 2014년 5회 우승으로 결코 커리어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지만 의외로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받고 있다. 과소평가받는 이유는 연속 우승이 없고, 임팩트가 부족(?)했던 게 이유로 보인다. 2014년에 3연속 우승을 노리던 마이애미 히트를 4:1로 박살내고 5회 우승을 차지하자 스퍼스의 꾸준함이 재조명되면서 평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래서 스퍼스를 '가장 조용한 왕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 [18] 프로 리그만 계산하면 8연속.
  • [19] 특히 현대캐피탈은 실업 리그 시절부터 결승전에서만 무려 11번 패배했다.
  • [20] 7연속. 참고로 야구 최장은 KIA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의 4연속, 축구는 성남 일화 천마의 3연속, 농구는 전주 KCC 이지스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2연속.
  • [21] 2010-2011년 리그에서 3위로 마감한 적은 있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대한항공을 4:0으로 업셋 셧아웃을 시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