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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8-01-21 17:35:44 Contributors

Contents

1.
1.1. 국왕
1.2. 작위로서의 왕
1.3. 작위로서의 왕의 예시
1.3.1. 조선 국왕은??
1.4. 관련 항목
2. 게임보스
3. 별명
4. 성씨
4.1. 한국의 성씨 중 하나
4.2. 중국의 성씨 중 하나
5. 복근에 나타나는 모양의 비유
6. 크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접두사
7. 일본식 개의 울음소리
8. 무책임함장 테일러의 등장인물
9.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지구의 왕
10. ALICE=ALICE의 등장인물
11. 곤충에서의 왕

1.

이 항목은 왕이란 단어에만 한정해서 논하는 문서입니다. 왕이나 황제같은 군주의 개념 자체를 알고 싶다면 군주 항목을 참고하세요.

임금을 뜻하는 한자. 갑골문의 王은 아래 변이 넓고 위는 도끼 모양을 하고 있다. 고대에 도끼는 권력을 상징했다. 이외에도 갑골문의 모양 해석에는 몇몇 이설이 있다. 한대 학자인 허신(許愼)은 갑골문을 보지 못했기에 전서(篆書) 등 이미 원형에서 많이 변형된 후세의 자체만 보고 하늘과 사람 사이(二)의 중간에 위치하여(一) 하늘과 백성을 연결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서 하늘의 명으로 만민을 통치하는 존재라고 풀이했다.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이 허신의 해석이 널리 쓰였으나 갑골문이 발견되어 그 잘못이 밝혀졌다. 아무튼 높으신 분이라는 뜻.

참고로 원래 한자문화권의 전통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따위의 "~~의 신"이란 개념은 '신'이 아니라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듯하다. 우라누스의 이름을 딴 행성을 천성으로 (해왕성, 명왕성 등도 같다) 번역한 사례를 보자.


한반도 역사에서 왕을 뜻하는 고유명사들이 있었는데 다음과 같다.

고조선 단군
고구려 개차(皆次)
백제 건길지, 어라하
신라 거서간(居西干)
차차웅(次次雄)
이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매금왕(寐錦王)[1]
발해 가독부(可毒夫)

1.1. 국왕

군주의 가장 일반적인 칭호로서 페르시아의 나, 이슬람의 술탄 등도 왕으로 번역하는게 일반적이다.

일반적인 정의는 왕국의 군주. 보통 목차보면 알 수 있듯이 '국왕'이라고 칭한다. 훌륭한 일을 하면 대왕이 된다.

아직도 지구상에는 왕국이 여럿 존재하며, 대표적인 예로 덴마크, 영국 등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한 국가이다. 심지어 현대에도 전제군주제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왕도 일부 존재한다. 가령 김정은이라든지 브루나이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가 그 대표적인 예. 반대로 부탄같이 왕이 직접 국가체제를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2] 흠좀무.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군주제가 위태롭다고 하지만 세상의 모든 왕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체스판의 왕과 트럼프의 왕 네 명, 그리고 영국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농담이 있다[3]. 어, 영국왕 없어진 적 있는데? 덴노는? 몰랐나보지
자세한 것은 군주 항목 참조. 정복군주는 정복 항목 참조.

1.2. 작위로서의 왕

별 상관 없지만 명목상으로는 황제의 아래이고 대공의 위. 봉건제도의 영토 위주 국가 시스템에서 계약직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자다.

한나라 이래로[4] 황제가 가장 높은 지배자의 명칭으로 굳어진 한자문화권에서 왕은 작위의 일종으로도 활용되었는데, 이를 왕작이라 한다.[5]그 이전까지는 왕 아래 제후(公)가 있는 봉건제 국가가 중원을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칭왕하는 것은 중원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과 같았다. 즉 이 시기의 왕은 진 이후의 황제와 같은 위치였다. 이후 황제가 등장하기까지 대왕, 패왕 등 왕과 차별화하기위한 명칭들도 나타났었다. 왕을 대신해 황제가 등장한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대공 작위를 거의 준 적이 없으므로 작위로서의 왕은 유럽에서 말하는 대공을 대신해서, 위계상 황제공작의 사이에 위치했다. 보통 황제의 가까운 황족을 친왕(親王)[6], 황제와 혈통상으론 다소 멀더라도 공적이 높거나 세력이 강성할 경우 경우 군왕(郡王)[7]에 봉했었다. 물론 한나라 이후 통일제국의 봉건제도는 유교 윤리상 주나라 제도를 흉내낸것이기 때문에 분봉받은 왕이 직접 통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절대왕정시대 유럽의 공작이나 백작들 처럼 작위명 타이틀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한족 왕조의 경우 황태자를 제외한 황제의 아들들 즉 후계에서 제외된 친자들은 장성하기 전에 각 지역으로 분봉했다.[8] 황태자의 저위(儲位)를 방해하지 않고 중앙정계에서 후계다툼을 미리 방지하려고 한것. 반면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 시기에는 모든 황족은 북경성안에서 살아야 했다. 한편 한자문화권의 제국에서는 프린스의 의미와 어느 정도 일치하므로 보통 작위로서의 왕은 영어로 king대신 prince로 번역한다. 조선의 경우에는 군주의 호칭이 왕이였고,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기 때문에 식민지 혹은 식민지에 가까운 속국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왕은 중국의 '작위로서의 왕'인 사람들과는 달리, 엄연한 '군주로서의 왕'이였다.
실제로 대장금 같은 사극의 중국어 자막을 보면, 조선의 왕을 황제라고 표현해 놓았다. 즉, 중국인들의 인식 속에서도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이다. 그러니 조선 왕은 Prince가 아닌 King으로 번역된다. 하지만 조선 말기에 청과 일본 사이에서 시달리면서 왕 칭호가 중국의 작위라는 청나라의 생떼에 맞서기 위해 갑오개혁을 통해 왕 칭호를 폐지하고 대군주라는 칭호를 도입했다가[9] 대한제국 수립으로 황제 칭호를 쓰게 된다.

대한 제국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작위로서 왕이 쓰인적이 있는데 바로 신라이다. 신라의 대표적인 왕작은 갈문왕으로 대체적으로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에게 주는 칭호였지만 다르게 사용된 경우도 있기에 지금도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 하다. 그리고 삼국통일 시기 보장왕의 서자인 안승에게 보덕국왕이란 작위를 주어 복속된 고구려유민을 관리하게 하였다.

작위인 경우의 '왕'에 경우 일단 다른 모든 신하들보다 작위는 높지만 예우상은 아니다. 분봉받은 왕의 경우 어디까지나 신하이기 때문에 천자의 조정에서의 신하들과 군신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봉건시대 예법의 기준인 주나라 예법은 경대부[10] 중에 삼공의 지위는 가장 높은 작위인 공작과 동급 대우 였고 이하의 벼슬도 직위에 따라 제후들과 매치 되었기 때문에 이후 왕조에서 황제가 분봉할때 작위가 공작등에서 왕으로 격상 되었어도 이같은 예법은 그대로 이어진다. 실질적으로 황제의 친자식이면 신하들보다 끝발은 쎄겠지만 오래된 종친이나 변방의 왕이라면 이하 서술되는 조선국왕의 안습시대 경우처럼 별 듣보잡한테도 개무시 당할수 있다. 또한 중앙 관제에 속한다고 지방직은 경대부는 아니고 당나라때 절도사나 명나라 청나라 시대 순무나 총독[11]들은 제후 취급을 받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왕이 작위로 나올 경우가 거의 없는데 왕보다 높게 쳐주는 황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만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세계인 유럽에서는 성서에 나오는 4개의 제국[12]중에 로마가 마지막 제국 이기 때문에 로마황제관을 이어받은 단 한명만이 존재 할 수 있었다. 다만 신성로마제국의 경우 작위로서 왕을 많이 쓴편이었다. 일단 다음황제로 선출된 자에겐 로마왕이란 작위를 주었고 황제를 선출할 권한이 있는 선제후중 한명은 보헤미아왕이었다. 보헤미아왕은 황제의 신하이기도 하지만 신성로마제국과는 이질적인 독립된 지방이 신성로마제국에 복속되어 보헤미아공작으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황제에게 왕의 칭호를 수여받았기 떄문에 때문에 작위로서의 왕과 군주로서의 왕 두가지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동로마제국의 계승은 비잔틴 마지막 황녀와 결혼한 러시아 차르라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서유럽에선 무관심이었다. 딱히 '황제>왕' 의 개념은 구체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고 중세이후 유럽강국으로 떠오른 프랑스에선 '모든 국가의 왕은 자국에서 황제다'라는 주장도 나왔었다. 동아시아식으로 해석하면 매치는 안되지만 일종의 외왕내제. 영국에서도 대영'제'국이라지만 유럽 최강국으로 올라서도 왕국에 여러 작위를 합친 군주였고 황제드립은 무굴 제국을 멸망시키고 '인도황제'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서 나왔다. 물론 자국에선 침략적이고 중세적인 발상이라고 비판도 많았다. 유럽식 작위를 동아시아식으로 번역하다보니 유럽에서도 황제>왕 이란 혼란이 나오는데 황제가 여러 군주들 사이의 대표로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딱히 따지자면 틀린 발상은 아니지만, 왕은 봉건적이고 세습적인 개념, 황제는 선출되는 개념(신성로마황제,독일의 카이저[13])이거나 군사적 지도자(나폴레옹,로마시대 군인황제)에 가까운 이미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극히 드문 경우지만 King(왕)을 작위로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군주가 여왕일 경우 남편에게 주어지는 칭호인데 정식명칭은 King consort다.[14] 그러나 이런 호칭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포르투갈)쪽에서 주로 사용했으며,[15] 다른 나라의 여왕의 부군의 경우는 호칭에 인색한 관계로 그냥 Prince consort의 작위를 주었다. 여자 왕의 남편은 한국에서는 혹은 국서(國壻)로 번역된다[16]

일본에서는 덴노의 3세손(증손자)[17] 이하의 남자 자손은 왕(王), 여자 자손은 여왕(女王)이라 하며, 중국의 군왕(郡王)과 비슷한 지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1947년 신헌법 시행 이후로는 "왕"은 한 명도 태어나지 않고 있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40개 이상의 도시를 차지하면 얻는 칭호이긴 하지만, 삼국지 7의 경우는 개나소나 다는 듯. 일단 한명이 왕을 칭하기 시작하면 심지어 도시가 2~3개밖에 안되는 군주들도 너도나도 왕을 칭해[18] 각 시나리오 후반부엔 그야말로 왕들의 전쟁(…). 게다가 2년 쯤 지나면 이번엔 개나소나 황제를 칭하기 시작해서 한층 더 막장으로 치닫는다.

이는 실제 중국 난세와 비교해보면 사실적인 전개이다. 삼국시대에서는 명목상이나마 헌제가 있었기 때문에 칭호 인플레가 덜했는데, 황제를 칭하면 반역자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조가 왕위에 오르자 유비, 손권도 덩달아 왕위에 올랐고, 조비가 헌제에게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되자 유비와 손권도 곧 황제를 칭했다. 비슷한 규모의 다른 군웅들이 있었다면 그들도 황제나 왕을 자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공손연은 독립하자마자 금새 '연왕'을 자칭했다. 이렇게 난세가 닥치면 보통 군웅들이 서로 자존심을 세우려고 "니가 왕이면 나는 황제다!"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인데, 삼국시대에는 헌제가 제위에 버티고 있는 동안은 그것이 억제되었던 것 뿐이다.

1.3. 작위로서의 왕의 예시

  • 친왕(親王) : 본래 황제의 친족. 단 일자왕 이자왕은 주나라때 제도고 이후 한왕조시대 이후 특히 오초칠왕국의 난 이후로는 작위로의 왕이 유명무실해지고 거의 명예직에 불과했기 때문에 왕 타이틀 두자보다 한자가 높다는건 별 의미가 없다. 한고조 시기 낙양(두글자)은 중요지역이라 변방지역(한글자)처럼 왕을 세울수 없다고 했고, 한무제는 태자가 되기 전 교동왕(膠東王)이었다.[19] 이복형 율태자는 임강왕으로 폐위 되었고, 한나라 소제중에 폐위된 창읍왕이 있는걸로 봐선 한글자가 딱히 두 글자보다 우위였던건 아니다.
    • 일자왕(一字王) : 수식어가 한 글자 뿐인 왕. 춘추전국시대에 존재했던 왕국 내지는 지역명에서 따오며, 일반적으로 이자왕보다 일자왕이 높게 여겨진다. 예) 초왕(楚王), 오왕(吳王), 제왕(齊王), 연왕(燕王) 등.
    • 이자왕(二字王) : 수식어가 두 글자인 왕. 대개 지방 도읍의 이름에서 따오는데, 따라서 일대의 지역명을 받는 일자왕 보다는 낮게 여겨진다. 예) 임치왕, 동해왕 등.
  • 평왕(平王) : 기원은 나라 시대이다. 이전부터 북평, 남평, 동평, 서평의 4왕의 칭호가 있었지만, 당나라의 권위가 저하하자 사방을 지키는 유력한 절도사에게 북평왕, 남평왕, 동평왕, 서평왕 등의 왕작을 내리기 시작했다. 오대십국시대에는 평왕 직위의 절도사들은 왕위를 세습하게 되어, 중 앙에 반항하여 국가를 건설하는 등 반독립국으로 바뀌게 된다. 나라 시대에 절도사의 왕작은 폐지되었지만, 서평왕은 서하의 군주에게 남평왕은 베트남의 리 왕조에게 주었다. 하지만 나라 이후에는 단순히 황족에게 주는 칭호로 바뀌게 되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평왕의 의전서열은 일자왕과 이자왕 시이에 놓인다.
  • 군왕(郡王) : 군왕은 비교적 먼 황족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지방의 고장 이름에서 따온다.
  • 심양왕(瀋陽王) : 원나라 때 존재했던 작위. 처음에는 이자왕이었으나 후에 심왕(瀋王)으로 승격.

1.3.1. 조선 국왕은??

원나라 시기 고려 국왕은 고려 국왕이라는 작제적 지위[20]와 함께 정동행성 승상이라는 관료적 지위의 가지고 있었다. 조선 국왕은 관료제적으로는 2품, 작제적 질서와 종법적 질서에서는 친왕급이었다. 이전문서에서 조선국왕은 군왕대우였다는 잘못된 지식이 있는데 예법상 이품체강(二等遞降) 원칙에 따라황제에서 이품(이등)급을 낮추면 황태자- 친왕 순이다. [21] 조선 시대때는 친왕 대우였다.[22][23]

또한 실록을 찾아보면 태종2년 2월기사에 명 건문제가 태종에게 면복을 주는데 칙서에 "조선왕은 군왕의 벼슬이니 오장(五章)이나 칠장복(七章服)을 주어야 마땅하지만 이제 특명으로 친왕(親王)의 구장복(九章服)을 내려 주며"라는 구절과
태종 9년 4월 기사에 " 사신을 중국에 보내어 고명(誥命)을 청하니, 영락(永樂) 원년 여름 4월에 황제가 도지휘사(都指揮使) 고득(高得) 등을 보내어, 조(詔)와 인(印)을 받들고 와서 우리 전하를 국왕(國王)으로 봉(封)하고, 이어서 한림 대조(翰林待詔) 왕연령(王延齡) 등을 보내어 와서 전하에게 곤면 구장(袞冕九章)을 하사하였으니, 품계(品階)가 친왕(親王)과 동일하였다."라고 나오는 바 대우가 친왕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때 약간 운이 좋았는데, 정난의 변이 한창이라서 건문제는 반란 세력인 연왕의 후방에 있는 조선에 좋은 대우를 해줘서 회유하고 적어도 남경의 명나라 정부와 사이가 틀어져서 막 나가게 하지는 않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건문제는 어이없이 망해버리고 연왕은 영락제가 되었는데 이왕 준 걸 거둬가겠다고 할 수 없으니 대우는 그대로 유지된 모양.

물론 조선이 멀쩡할 때에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꽤 큰 나라로(?)[24] 여겼기 때문에 명나라 시대때는 천자의 대리인으로 온 사신들도 조선 국왕을 만나면 칙서를 반포하기 전에는 공손하게 읍을 하며 예우를 했고 초기 환관을 보내던데서 후기로 올수록 사신 지위도 높아졌다. 황제의 스승이자 공부상서[25]를 지낸 사람이 올정도.. 청나라 때도 청태종도 한양 땅밟기 (삼전도의 굴욕)를 시전 할 때도 항복절차가 끝나고 나서도 "조선왕은 일국의 국왕이니 짐의 아우들 사이에 앉혀라" 할 정도였고 조공국중에 조선이 그나마 나라꼴을 갖추고 주요국으로 대우 했기 때문에 사신으로는 만주인 고관을 보냈다. 그쪽에서 봐도 비교적 큰 나라인 조선국왕과 백성이 수천에서 수만에 불과한 몽고 추장 7~80명이랑 같은 왕작위를 줬어도 대우는 현격히 달랐다...

반면 국세 기울어 임진왜란시기 선조 시절 나라가 털리고 나선 경략(해당 지역 책임자)으로 온 명나라 병부우시랑 송응창[26]은 물론 듣보잡 연대장급 지휘관한테도 맞절하고 광해군은 아버지의 친구를 맞는예로 인사할 지경.. 하성군은 답이없다.. 조선 막장테크인 고종때는 황제도 아닌 북양대신 이홍장의 대리로 온 원세개(위안스카이)에게 조선국왕 고종도 개무시 당하는 안습의 역사가 있다.

고려시대때도 상당히 예우 받은것을 알수 있다. # "옛 현도(玄菟 : 고려국)의 땅을 그대에게 모두 주나니 영광은 옛날 일자왕(一字王)보다 높고, 조칙에 의해 부여받은 높은 직위는 삼공(三公)을 겸했다" 고려 정종 5년(1039) 기묘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8.30, 경인문화사) 이 외에도 고려국 사신을 국신사라 하여 서하보다 위에 두고 사실상 요에 준하여 취급한 것을 보면 송대에서도 예우 받았다고 볼 수 있다.

]

2. 게임보스

게임상에서의 보스를 일컫는 말. 1에서 유래. 바리에이션으로 최종 보스 → 끝판왕이 있으며 액션 게임에서 등장하는 중간 보스, 혹은 페이크 최종 보스를 '가짜왕'이라고도 한다. 이 단어는 80 ~ 9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서 오락실이나 콘솔게임을 즐긴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던 단어였다. 이름의 유래는 마계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3. 별명

한 나라에서 으뜸가는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에, 역시 어떠한 대단한 것을 칭하는 별명으로서도 사용된다. 사실 왕보다 더 높은 황제도 있긴 하지만 황제 칭호는 대단한 수준을 넘어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경이로운 수준의 인물에게나 붙이는 별명으로 왕 만큼 자주 보긴 힘들다.

다만 황제급은 아니고 그렇다고 왕급 중에서는 좀 대단한 애매한 인물도 있는데, 이 땐 '왕중왕'이라는 호칭도 있다.

영미권의 경우 'The King of…'이나 '…baron[27]' 같이 사용된다. 주로 엘비스 프레슬리마이클 잭슨에게 자주 사용된다. 이름에 붙여서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펠릭스 에르난데스는 킹 펠릭스라는 별명을 가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왕○○'나 '○○왕'등의 별명을 자주 사용하며, '업적왕 이명박' 시리즈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자매품으로 그 분의 이름과 비슷한 군밤왕 이명복도 있다. 해당 항목 참조

4. 성씨

4.1. 한국의 성씨 중 하나

한국의 왕씨 중에서 개성을 본관으로 하는 파는 고려 왕조의 왕족이다.

전 왕조의 왕족이라는 점 때문에 조선 초기에 여러가지로 탄압을 받아 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대동야승에서는 왕씨들을 외딴 섬에 보내는 대신 살려주겠다는 거짓말로 배에 태운 후에 물질에 능한 장사들로 하여금 배 밑에 구멍을 뚫어 배를 침몰시켜 몰살시켰다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야사에 따르면 이 때문에 왕씨들은 탄압을 피해서 왕씨 성에 획을 더하는 식으로 다른 성씨로 바꾸었다고 하며, 옥(玉)이나 전(全)씨, 혹은 전(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일부는 이렇게 성씨를 바꾼 왕씨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후에 왕씨 성을 쓰는 자들을 찾아서 고려왕조에 제사를 지내는 벼슬을 내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서 탄압 자체는 조선 초기에 그친 것 같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적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다[28]. 태조 이성계가 왕씨들에게 외가쪽 성을 따르라 명령한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 심지어 왕족인지가 불확실한 경우를 포함했는 데도 이 정도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성씨순위 1위!!의 매우 흔한 성씨이지만중국인을 가리킬 때 쓰는 왕서방이란 단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28,000명 정도 되는 희성이다.

유명인으로는 왕건과 더불어 뽀뽀뽀에서 뽀미언니를 지낸 바 있는 영은, 배우 전지현(왕지현), 아나운서 종근, 배우 석현 등이 있다. 왕가네 식구들도 있다

4.2. 중국의 성씨 중 하나

중국에서 9288만명으로 가장 많은 성씨다. 2위는 9207만명으로 이씨. 중국은 전통적으로 왕씨가 최대성씨였고(2006년에 제친적이 있었는데, 열받은 왕씨들의 ㅍㅍㅅㅅ 덕분에 다음 조사때 도로 환원되었다), 그 덕분에 중국인을 상징하는 왕서방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보통 짱깨와 같은 중국인 비하의 뜻을 가진 말로 쓰인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5. 복근에 나타나는 모양의 비유

왕(王) 모양이 나타난다고 해서 '배에 왕 자(字)가 새겨져 있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식스팩 항목 참고.

6. 크고 아름다운 것을 뜻하는 접두사

큰 무언가를 뜻하는 접두사로 쓰인다. 왕대포, 왕뚜껑, 왕건(4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러시아어황제를 뜻하는 차르도 마찬가지로 크고 아름다운 것을 부를 때 쓰인다. 차르 봄바, 차르 대포 차르푸틴 등의 예가 있다.

7. 일본식 개의 울음소리

일본어의 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중 하나. 왕왕왕! 정도로 쓰인다.온 팔도의 개새끼들이 과인을 부르고 다닌단 말이더냐!

이것 외에도 개의 울음를 나타내는 말에는 멍멍멍, 월월월, 컹컹컹 등 상당히 많은 편이다. 참고로 영어권에서는 개의 울음소리를 Woof! Ark! Bow-Wow! 등으로 표기한다. 얼핏 보면 괴이하게 여겨지겠지만 강조나 음색등을 감안하면 꽤나 그럴싸한 표현.

9.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지구의 왕

국왕(드래곤볼) 항목 참조.

10. ALICE=ALICE의 등장인물

국왕(ALICE=ALICE) 항목 참조.

11. 곤충에서의 왕

캐미는 오직 여왕개미정액셔틀(..)일 뿐인 개미와는 다르게 흰개미는 유시충(생식흰개미) 암수 한쌍이 평생 살면서 아이를 생산한다. 그래서 유시충 수컷을 왕이라고 부른다. 자세한 것은 흰개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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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원고구려비와 봉평신라비에서 등장.
  • [2] 국민들은 오히려 전제군주제를 원했는데 '국왕이 명하시니까' 여기에 따랐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히려 의회가 결사반대했다고 한다(…).
  • [3] 농담은 아니고, 나세르가 이끄는 자유장교단의 쿠데타로 쫓겨난 이집트 국왕 파루크가 "20세기에는 각국의 왕실이 사라질 것이나 다섯 명의 왕만은 건재할 것이니 트럼프의 왕 넷과 영국의 왕이다"라고 했던 말이다.
  • [4] 진시황은 절대황권을 유지하려고 신하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친자식이자 후계자에게도 분봉하지 않았다.
  • [5] 유명한 공후백자남의 오등작도 춘추전국시대의 난리판을 거치며 유사한 과정을 통해 왕의 아랫칸에 편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찌어찌 한 시스템에서 위아래로 배치된 계급 비슷하게 되었지만, 이 명칭들은 본래 서로 다른 집단에서 각자들 칭해 쓰던 군주의 다른 말이었다. 고조선만 해도 연나라의 칭왕에 맞서기 전 까지는 대외적인 군주의 명칭이 侯였다.
  • [6] 왕의 직계 혈족에게 주로
  • [7] 郡을 다스리는 왕이라는 의미. 한국에서야 군하면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별거없는 그냥 시골 땅뙈기지만, 중국으로 옮겨가면 넓이로나 위상으로나 國에 버금가는 큰 단위였다. 요즘식으로 비유한다면 자치구나 자치령 정도의 느낌. 단 청나라 시절 친왕과 군왕은 황제의 친자라도 공이 없으면 할 수 없었다. 방계라도 공을 세우면 가능..
  • [8] 만력제의 아들 복왕 주상순은 일찍 낙양으로 분봉 받았으나 거의 예외적으로 장성해서도 임지로 보내지 않고 북경에서 끼고 살았다. 만력제가 태창제를 제끼고 황태자로 삼고 싶어한데서 비롯.
  • [9] 이때의 외교문서를 보면 다른 나라 '국왕'도 모조리 '대군주'로 바꾸어 호칭하고 있다.
  • [10] 천자-제후-대부-사 중에서 천자를 모시는 대부
  • [11] 순무는 1개 성(省)의 행정관이고 총독은 1~2개 성의 지방행정과 군권까지 주어진다.
  • [12] 아시리아 신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로마
  • [13] 독일제국 황제는 30여개 독일 제후들에 의해 추대되었다
  • [14] 유럽에서 왕비여왕을 구분할때 왕비에게는 Queen뒤에 consort를 붙이는 것과 똑같다. 여왕은 Queen regnant. 사실 군주인 왕도 엄밀히 따지면 King regnant인데 남성인 왕이 워낙 많아서 짧게 King로 사용될 뿐이다.
  • [15] 물론 타국에서도 사용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였던 메리 스튜어트의 남편인 헨리 스튜어트 단리처럼.
  • [16] 사전을 찾아보면, 부군은 여왕의 남편뿐만 아니라 남의 남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국서는 여왕의 남편이라는 뜻/또는 부마(왕의 사위)의 뜻으로 한정되어 있다.
  • [17] 1947년 이전에는 5세손
  • [18] 더욱 황당한 건 도시 10개가 넘는 강대국일 때는 왕을 칭하지 않다가 도시가 2개 정도로 쪼그라 든 뒤에 왕을 자칭하는 군주들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 [19] 한무제가 교동왕(膠東王)에 봉해질 당시 황제 경제의 11번째 아들로 제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처지대로 두 자 이름을 받았으니 이 경우는 적절한 예시가 아닐지도?
  • [20] 원나라 당시에는 친왕, 번왕 이런 식으로 나누는 것이 없었고 전부 왕으로 통일했다. 왕급 직위 중에서는 최고 직위를 받은 셈이다.
  • [21] 이는 명나라가 조선의 관료의 위치를 일일이 정해주기 보다는 조선 국왕의 위치를 정해줌으로써 관료들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정해주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 [22] 이는 조선국왕 뿐만 아니라 조선의 벼슬아치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의정부대신(삼정승)이나 좌우찬성은 조선에서 1품이지만 명나라 의전예우로는 3품대우이다.
  • [23] 양녕대군이 조선의 세자로 명나라에 입조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영락제는 양녕대군을 정강왕(광서성 일대를 다스렸다고 한다.)의 예에 따라 대했다고 한다. 다만 초대 정강왕은 왕작을 군왕에서 시작해 친왕으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정강왕이 초대정강왕인지 그 후대인지, 혹은 친왕으로 있을 당시인지 군왕으로 있을 당시인지는 확인바람.
  • [24] 지금도 대체로 인구 분포가 그렇지만(근대 이전까지는 맬서스의 주장대로 인구가 경제력 측정 기준이었다.) 우리나라나 월남같은 경우 땅이 괜찮은 편이라(물론 인구밀도로 보면 우리나라가 훨씬 더 살기 괜찮았다. 1600년 경 우리나라의 인구밀도는 1제곱킬로당 50, 동남아 평균은 5.8) 땅이 비교적 좁아보일지라도 중국 기준으로 만주, 몽골, 티벳 등지의 여러 칸들보다는 훨씬 경제력, 문화력 측면에서 우위에 있었다. 의외로 따지고 볼 때 명나라나 청나라와 국경을 맞댄 나라 중 조선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지극히 드물었다. 러시아, 인도는 청대에 들어 겨우 접하게 되었고 그나마도 중국의 직접 통치력이 약하다 보여지는 티베트 방면에서 접했다. 똑같이 친왕급 대우를 받은 베트남 역시 남부를 완전히 정복하게 된 때는 조선 후기 시기에 해당하며, 그 이전에는 북부, 중부 지역만을 지배하고 있었다. 티무르 제국에 대해서는 추가바람.
  • [25] 정2품으로 조선관직으론 판서에 해당된다. 명나라는 재상을 없애고 1품직위는 대학사 즉 황제의 자문에 불과 했기 때문에 관직상 오를수 있는 최고직이다.
  • [26] 정 3품 조선 관직으론 병조참판 해당 명나라시절 남경정부에 시랑하나 북경엔 좌우 시랑 청나라 시기엔 만한상서 2인밑에 만인시랑 2명 한인시랑 2명 총 4명
  • [27] 직역하면 '남작'이지만, 주로 어떠한 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대실업가 등을 가리킬 때 쓰인다. 예를 들어서 석유왕은 'oil baron'이라 하는 식.
  • [28] 왕씨보다 적은 왕족으론 발해왕족인 밀양 대씨, 협계 태씨와 고구려 왕족인 횡성 고씨, 백제 왕족인 부여 서씨가 있다. 다만 횡성 고씨는 중국의 요양 고씨와 다르게 제주(도) 고씨의 방계가 아닌가 의심되고 있고, 부여 서씨같은 경우 당나라에서 백제 왕손인 부여융이 서씨 성을 받았다는 것에 근거를 두는데 정작 중국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다만, 부여의 여(餘)를 살짝 바꾼 서(徐)로 바꿔서 살아 설도 있다. 실제로 개성 왕씨도 왕(王)을 살짝 바꾼 전(田)씨등으로 바꿔 살았다. 그러나, 부여 서씨같은 경우 집성촌이 충남 부여가 아니라, 평안남도 개천군(개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