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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칸

last modified: 2015-03-11 00:18:59 Contributors


2008년 9월 2일,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축구 역사상 골키퍼로서 월드컵 골든볼을 받은 것은 그가 유일하다.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긴장감 넘치던 승부차기의 주인공

이름   올리버 롤프 "올리" 칸 (Oliver Rolf "Olli" Kahn)  
생년월일 1969년 6월 15일
국적 독일
출신지 바덴-뷔르템베르크카를스루에
신체조건 188cm / 87kg
포지션 골키퍼
유스팀 를스루에 SC (1975~1987)
소속팀 를스루에 SC II (1987~1990)
를스루에 SC (1987~1994)
FC 바이에른 뮌헨 (1994~2008)
국가대표 86경기

2001 Ballond'or
수상
마이클 오언
2위
라울 곤잘레스
3위
올리버 칸
2002 Ballond'or
수상
호나우두
2위
호베르투 카를로스
3위
올리버 칸
2002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호나우두
2위
올리버 칸
3위
지네딘 지단
2002 FIFA 월드컵 야신상
수상
올리버 칸
2000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
올리버 칸
2001 독일 올해의 선수
수상
올리버 칸

2002 FIFA 월드컵
골든볼
올리버 칸
실버볼
호나우두
브론즈볼
홍명보

FC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Der 'Kaiser' (황제)
프란츠 베켄바워
Der 'Bomber der Nation' (폭격기)
게르트 뮐러
Die 'Katze von Anzing' (안칭의 고양이)
제프 마이어
Der 'Macher' (창조자)
울리 회네스
Der 'Visionär' (공상가)
칼 하인츠 루메니게
Der 'Leitwolf' (늑대사령관)
로타어 마테우스
Der 'Chef' (지배자)
슈테판 에펜베르크
Der 'Samba-Stürmer' (삼바공격수)
지오반니 에우베르
Der 'Beständige' (꾸준함)
롤란트 볼파르트
Der 'Libero' (리베로)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Der 'Mr. Europacup' (Mr. 유로파컵)
디터 회네스
Der 'Stratege' (전략가)
파울 브라이트너
Des 'Kaisers Bodygaurd' (황제의 기사)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벡
Der 'Titelsammler' (타이틀수집가)
비셴테 리사라수
Der 'Rekordmeister' (기록챔피언)
메멧 숄
Der 'Titan' (거인)
올리버 칸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슈테판 에펜베르크
(1999~2002)
올리버 칸
(2002~2008)
마르크 반 봄멜
(2008~2011)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올리버 비어호프
(1998~2000)
올리버 칸
(2000~2004)
미하엘 발락
(2004~2010)

"스포츠맨이라면 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비록 후보로 벤치에 앉을지라도 월드컵에 출전하여 나의 경험으로 후배들에게 힘이 되겠다."
- 자국에서 열린 2006년 월드컵에서 결국 경쟁에 밀려 세컨 키퍼로 이름을 올렸지만 프로정신을 지키겠다며 언급했던 말

패자전은 없다 - 올리버 칸

Contents

1. 커리어
2. 개요
3. 클럽에서의 발자취
3.1. 데뷔와 칼스루헤 시절
3.2. 전설로 남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
4. 국가대표에서의 발자취
4.1. 데뷔, 1994 FIFA 월드컵 미국
4.2. EURO96
4.3.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4.4. EURO2000
4.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6. EURO2004
4.7. 2006 FIFA 월드컵 독일
5. 여담

1. 커리어

  • x8 분데스리가 우승[1] (1996-97,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4-05, 2005-06, 2007-08)
  • x6 DFB-포칼 우승[2] (1997-98, 1999-2000, 2002-03, 2004-05, 2005-06, 2007-08)
  • 2000-01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 2001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 x6 DFB-리가포칼 우승 (1997, 1998, 1999, 2000, 2004, 2007)
  • 1995-96 UEFA 컵 우승

  • UEFA 유로1996 우승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우승
  •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3위
  • 2006 FIFA 월드컵 독일 3위

  • 2002 FIFA 월드컵 야신상
  • 2002 FIFA 월드컵 골든볼(MVP)
  • 2002 FIFA 월드컵 Best11
  • 레퀴프 선정 2001년 베스트 11
  • 2001 발롱도르 3위
  • 2002 발롱도르 3위
  • 2002 FIFA 올해의 선수 2위
  • x2 독일 올해의 선수상 (2000, 2001)
  • x3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 선정 최우수 골키퍼 (1999, 2001, 2002)
  • x4 UEFA 최우수 골키퍼 (1999, 2000, 2001, 2002)
  • x7 분데스리가 최우수 골키퍼 (1994,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 2001 UEFA 페어플레이 상
  • 2001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MVP
  • FIFA선정 가장 위대한 선수 100인
  • 2006 밤비상 - 스포츠 부문
  • 2010 라우레우스 미디어 상

2. 개요

FC 바이에른 뮌헨전차군단의 최후방을 지켰던 전설적인 수문장.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피터 슈마이켈, 티아고 카니자레스, 지안루이지 부폰등과 쌍벽을 이루는 거물 골키퍼.[3][4].코스트 17,능력치 63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 클린시트 기록 보유자 (204회)
분데스리가 단일시즌 최다 클린시트 기록 보유자 (19경기 무실점 / 32경기 출전[5])
1998~2003 즈음 전성기때의 포스는 역대 그 어느 골키퍼도 범접하기 힘든 정도였다.
또 하나의 대기록으로는 레프 야신이 유일한 골키퍼 발롱도르 수상자라면, 올리버 칸은 골키퍼로서 역대 유일하게 발롱도르 최종 3인에 2번이나 들었고, 2년 연속 들었다. 골키퍼라는 포지션을 감안한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기록이다. FIFA 최우수선수상에서도 호나우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던 바 있다.

FC 바이에른 뮌헨에서만 14년 간 429경기를 출장했으며, 를스루에 SC 시절까지 합치면 분데스리가 출장기록이 557회로, 이는 차범근과 함께 활약했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원클럽맨 레전드 칼-하인츠 쾨어벨의 602회와 함부르크 SV의 전성기를 이끈 전설적인 풀백 만프레드 칼츠의 581회에 이은 역대 출장기록 3위에 해당한다.

가히 짐승[6]이라 일컬어지는 선방 및 반응속도와 외모, 박스(Box) 장악력, 최후방에서 아군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리더쉽, 그리고 불 같은 성격과는 반대로 필드 위 페널티 박스 안에서는 냉정하기 그지없는 판단력과 무시무시한 카리스마까지...월드 클래스 골리(Goalie)를 운운할 때 꼭 언급되는 선수이다. 1987년 를스루에 SC에서 데뷔해 1994년 당시 골키퍼 최대 이적료를 기록하며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 이후 14년간 팀의 최후방을 지켜왔고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전설로 남았다.
국내에서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 대회직전 주전들의 대거 부상이탈과 세대교체 실패로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을 듣던 독일을 억지로 끌고 올라가다시피한 하드캐리로 준우승을 차지했던 활약을 눈앞에서 지켜봤다보니 지안루이지 부폰, 이케르 카시야스등과 더불어 인지도가 매우 높다.

3. 클럽에서의 발자취

3.1. 데뷔와 칼스루헤 시절

1987년 칼스루헤 팀에서 데뷔했지만 처음에는 필드 플레이어였다. 이듬해 칼스루헤 유스에서 골키퍼로 뛰며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0년, 팀이 분데스리가로 승격 후 그는 주전 골키퍼 자리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93-94시즌 칼스루헤는 UEFA 컵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그 과정에서 8강에서 만난 스페인의 명문 발렌시아 CF에게 메스타야 원정에서는 3대1로 패했으나, 홈에서 칸의 환상적인 활약에 힘입어 7대0이라는 믿기 힘든 대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한다.(독일에서는 이를 빌트파크슈타디온의 기적이라 칭한다.) 94년에는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에도 발탁된다.

3.2. 전설로 남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

그의 활약상을 눈여겨 본 독일 최고의 명문 FC 바이에른 뮌헨은 1994/1995 시즌을 앞두고 역대 골키퍼 최고 몸값(2.5M)[7]을 들여 칸을 영입한다.

이적 후 거의 모든 경기에 출장하며 당시 FC헐리우드라는 비아냥을 듣던 바이에른의 해이해진 수비진을 휘어잡으며 주전 골키퍼로 군림했다. 1996년에는 UEFA컵을 들어올렸다. 바로 다음 시즌인 96-97시즌에 칸은 생애 첫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한다.
그 후 몇년간 분데스리가의 절대강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바이에른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한다. 1999년부터는 은퇴 직전의 슈마이켈이나 당시 이탈리아의 신성 지안루이지 부폰, 각각 스페인, 프랑스 최고의 골키퍼 티아고 카니자레스, 파비앵 바르테즈 등을 모두 재끼고 유럽 최우수 골키퍼상을 4년 연속 독차지했다.

1998-1999시즌 인터밀란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CF 등 쟁쟁한 상대들을 상대로 선방 쇼를 보여주며 첫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캄프 누에서의 결승전에서 전반 6분만에 터진 마리오 바슬러의 프리킥골로 앞서가면서 경기내내 맨유를 압도했으나 경기종료직전 두번의 코너킥에서 연달아 실점하며 순식간에 우승컵을 넘겨주고 만다.(영국에서는 이를 '캄프 누의 기적', 독일에서는 '캄프 누의 비극'이라고 명명한다.) 칸은 그나마 슈마이켈을 누르고 처음으로 UEFA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된것에 만족해야했다.

00/01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이에른은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올레 군나르 솔샤르등이 이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8강에서 만나 홈,원정에서 모두 승리하며 2년전의 패배를 되갚아주며 4강에 진출했고 지네딘 지단, 라울 곤잘레스, 루이스 피구가 선봉을 맡은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하였으나 이들 모두를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한다.

특히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치러진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 1차전은 가히 칸의 인생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칸은 라울 곤살레스루이스 피구등 레알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의 수많은 유효슈팅을 모조리 방어해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 홈에서도 에우베르의 골로 승리하며 바이에른은 2년만에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한다.

그리고, 칸의 클럽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순간이 결승전에서 펼쳐진다.

산 시로에서 열린 결승전 상대는 스페인 최고의 스타 멘디에타 등을 앞세운 프리메라 리가의 강호 발렌시아였다. 먼저 멘디에타에게 PK골을 골을 먹혔으나 당시 주장이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도 똑같이 PK골로 갚아주며 동점, 그 후 득점없이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칸은, 무려 3개의 PK를 막아내며 드디어 팀에 빅 이어를 안긴다.[8]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전설의 승부차기 선방 49초에 이말년이 들린다

칸은 이 시즌 UEFA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으며 결승전 종료 후 티아고 카니자레스를 위로한 장면 덕분에 UEFA 페어플레이 상도 함께 수상한다. 칸은 인터뷰에서 '내가 카니자레스를 위로한건 그가 어떤 느낌일지 완전히 이해했었기 때문이다. 2년전의 내가 그랬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오오 감동.[9]


물론 이때의 공은 주장인 에펜베르크나 에우베르, 리자라쥐, 살리하미지치, 숄, 링케 등 팀원 모두의 공이었지만, 칸의 존재감은 이때부터 본격적이었다.

01-02 시즌 팀은 챔스4강, 리그/컵을 각각 도르트문트, 브레멘에 내주며 무관에 그쳤지만 올리버칸은 여전히 4년 연속 UEFA 최우수 골키퍼에, 6년 연속 분데스리가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2002년 FIFA 월드컵은 그야말로 칸이 왜 최고의 골키퍼인지 보여준 전설적인 활약상을 남겼고(2002월드컵부분 문단 참조) 야신상과 대회 골든볼을 동시에 석권했다.

그리고 02-03시즌, 리빌딩된 바이에른은 다시한번 리그와 컵을 동시에 석권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03-04시즌은 바이에른에겐 그야말로 최악의 부진이었는데, 챔스 조별리그에서 최하위로 탈락하고 포칼도 3부리그팀 아헨에게 16강에서 발목잡히는 등 수난끝에 히츠펠트 감독도 경질되고 말았다. 이 시기 칸은 사생활 문제와 그로인한 기량 하락으로 2000년대 초반만큼의 무적에 가까운 포스를 보여주진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 정상급 키퍼 중 한명으로 활약했고 매 시즌 소수점대 실점률을 기록했다. 마가트 체제에서도 04-05, 05-06 분데스리가, 포칼 2년연속 더블 우승을 기록하는데 맹활약했다.

자국에서 열린 2006 월드컵에서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쟁끝에 라이벌인 옌스 레만을 주전 골키퍼로 낙점해 No.2 골리로 출전해야 했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남자답게 세컨드 골리의 위치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위치에서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8강 아르헨티나전 승부차기 직전에 칸과 레만이 손을 맞잡는 장면은 장면은 감동 그 자체. 레만도 승부차기 2개를 선방하며 독일의 승리를 이끌자 가장 먼저 칸에게 달려가 감사를 표했다. 포르투갈과 맞붙었던 3,4위전에서 옌스 레만의 배려로 칸은 주장 완장을 달고 자신의 국가대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의 원맨쇼로 독일이 포르투갈을 3:1로 꺾으며 3위를 차지했고, 칸은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쳤다. 여담으로 이날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질릴정도로 만나서 숱하게 싸웠던 레알마드리드와 포르투갈의 전설 루이스 피구도 마지막 경기였고, 경기 종료 후 둘이 나란히 포옹하며 국가대표 커리어를 마쳤다.

2006-2007시즌 바이에른은 03-04시즌 못지않은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전반기 팀은 강등권과 승점 4점차이나는 나락까지 떨어지자 펠릭스 마가트 감독은 경질되었고, 바이에른의 영광의 시대를 이끌었던 오트마르 히츠펠트가 다시 부임했다. 챔스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오랜만에 다시 만나 이케르 카시야스와 선방쇼 대결을 펼치며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데이비드 베컴의 프리킥을 환상적으로 슈퍼세이브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바이에른은 레알을 원정다득점으로 꺾었지만 8강에서 천적 AC 밀란을 만나버리며 탈락했다. 나락까지 추락했던 팀은 차츰차츰 순위를 올렸지만 4위로 마감하며 UEFA컵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는다.
07-08시즌 칸은 히츠펠트 체제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바이에른의 더블을 이끌고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38세의 나이로 맞는 마지막 시즌까지도 소수점대 실점률로 방어해냈으며, 칸은 은퇴까지 무려 197회의 클린싯으로 역대 분데스리가 골키퍼들 가운데 가장 많은 클린싯을 기록했다. 2008년 5월 17일 헤르타 베를린을 4대1로 꺾은 리가 34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칸의 공식전 은퇴전이 되었다.

그리고 2008년 9월 1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FC 바이에른 뮌헨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간의 친선전으로 은퇴경기를 치르며 수많은 바이에른 팬들의 기립박수와 눈물속에서 칸은 그라운드를 떠났다. 영국의 성악가 폴 포츠가 초청되어 Time to say goodbye를 라이브로 불렀다.

참고로 칸의 은퇴 후 제대로 된 후계자가 없어서 바이에른은 한동안 꽤 죽을 쒔다. 부트의 회춘으로 2009-2010 시즌에 어떻게든 다시 우승은 했지만 지금도 바이에른의 가장 큰 과제는 골키퍼다. 프런트의 신뢰를 받았던 젊은 골키퍼 미하엘 렌징은 팬들에겐 전혀 신뢰받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방출. 그 후 루이 반 갈 감독을 비롯 바이에른 프런트는 역시 어린 선수인 토마스 크래프트를 신뢰하며 밀어주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팬들의 반응은 냉담. 흠좀무 2011 시즌에 FC 샬케 04마누엘 노이어를 대체자로 영입했고, 노이어를 통해 비로소 바이에른은 골키퍼 문제를 해결했다. 노이어는 이적하자마자 1011분 무실점 기록으로 칸의 1004분 기록을 경신했고, 현재 불과 28세의 나이로 109회의 클린싯을 달성해 칸의 최다 클린싯 기록도 경신할 수 있을것으로 보인다. 칸도 인터뷰나 해설중에 간간히 언급하는걸 보면 노이어의 활약상에 흡족하신 모양.

4. 국가대표에서의 발자취

4.1. 데뷔, 1994 FIFA 월드컵 미국

1994년 자신의 첫 메이저 대회인 미국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이때는 도 일그너, 드레아스 쾨프케라는 이미 최정상급 골키퍼가 2명이나 있었기 때문에 3rd 골키퍼였기 때문에 참가에 의의를 두었다. 하지만 6년이나 더 기다려야 할 줄은 이때는 몰랐겠지 조예선 상대에 대한민국도 있었기 때문에 이때는 알려지진 않았지만 대한민국과 칸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조 예선 상대였던 대한민국에도 역시 3rd 골키퍼였던 한 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는 공교롭게도 독일전 후반전에 최인영과 교체 출장하여 선방한다. 그 둘은 8년 뒤 국대 주전으로 팀을 이끌며 야신상을 두고 경쟁하며 4강전에서 조우하게 된다.

4.2. EURO96

두번째 메이저 대회인 유로96에서는 주전 골키퍼인 도 일그너가 불참했지만 세컨 키퍼였던 쾨프케가 주전을 차지[10], 역시 선배에게 밀려 서브 키퍼로 참가했다. 그래도 서열 한계단 상승 하지만 독일은 이 대회에서 결승전에서 체코를 꺾고 앙리 들로네 컵을 들어올렸다. 칸의 첫번째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트로피였다.

4.3.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쾨프케가 이 대회에서도 주전을 차지하며 칸은 서브 키퍼로 참가한다.

하지만 칸에게는 이 대회를 계기로 지금보다 더 힘든 길을 걷게 될 상황에 처한다. 영원할 줄 알았던 조국의 영광과 전력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예선에서 여타 대회와는 다르게 그다지 속 시원한 경기를 펼치지 못했고 16강전 멕시코전에서는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가기까지 하더니 결국 8강전에서 곪았던 고름이 터지고 만다. 처녀 출전국이자 이제 갓 만들어지기 시작한 나라인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완패해 시작 전 상대를 '코딱지만한 나라' 라고 비하하면서까지 임했던 경기에서 망신을 당한다.[11]

끈기를 앞세운 단단한 분업 축구를 장점으로 하던 독일 축구에 한계가 찾아온 것이다.
여전히 주전이었던 공격수 위르겐 클린스만은 3골을 넣었지만 노장축에 들어선 선수였고, 마테우스, 콜러, 헬머, 부흐발트 등의 주전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유럽 축구 역사에서 가장 커다랗고 꾸준한 발자취를 남겨왔던 독일은 전대미문의 침체기를 맞이한다.

독일은 충격에 휩싸였고 위기를 깨닫고 본격적인 개혁에 나선다. 이 대회를 끝으로 쾨프케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으며 칸은 전차군단의 새 문지기가 된다. 하지만 조국의 영광을 다시 되찾아야 하는 엄청난 부담을 어깨에 짊어지고 시작한 것이다.

4.4. EURO2000

칸이 주전으로 나선 첫번째 메이저 대회. 2년 전과는 다르게 독일에는 새로운 젊은 선수들이 많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포르투갈, 잉글랜드, 루마니아와 한 조가 된 독일은 첫 경기 루마니아전에서 선제골을 내 주면서 끌려가다 숄의 중거리 골로 겨우 비기더니, 이전까지 강한 면모를 보여준 잉글랜드에게는 0대 1 패배, 그리고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는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헤트트릭을 내 주면서 한번도 이기지 못하고 광탈하고 만다. 칸은 콘세이상의 2번째 골을 알까기로 내주는 수모까지 당한다. 분데스리가 우승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거머쥔 칸이지만 여전히 세계축구의 흐름에 떨어지는 국대의 전력앞에선 칸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독일은 본격적으로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조롱까지 받아가며 그렇게 힘겨운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4.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칸이 주전으로서 참가한 첫번째 월드컵. 그러나 지역 예선에서 철천지 원수 잉글랜드에게 5:1로 패배[12]하는 등 여전히 전세계의 시선은 독일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세계무대에서도 당당히 존재감을 자랑할 수 있었던 선수는 칸과 미하엘 발락 기껏 둘 뿐이었고 나머지 선수들은 그저 그런 A~B급 선수였다.[13] 대회 전 그들은 여전히 '녹슨 전차 군단' 처럼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삿포로에서 열린 조예선 첫번째 경기에서 독일은 월드컵 공식 호구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인정사정없이 발라버리며 울분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다음 아일랜드 전에서는 로비 킨의 두번의 1대1 상황과 문전앞 헤딩을 모두 환상적으로 선방해내며 1:0 승리를 지키나 싶었으나 후반 저리 타임에 한순간의 침투에 동점골을 내주며 비겼다, 이것이 독일과 칸에게는 결승전 전까지 상대에게 허용한 유일한 실점이었다.[14] 다음 카메룬 전에서는 발락과 클로제의 활약으로 깔끔하게 2:0 승리를 거두며 16강행을 확정지었다.
16강전 파라과이, 8강전 미국, 4강전 대한민국. 모두 독일의 그물을 가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칸은 신들린 듯한 활약으로 무수히 많은 슛을 막아낸다. 특히 미국전에서 든 도노반을 필두로한 미국의 끈질긴 공세를 홀로 모조리 막아낸 칸의 활약은 전율 그 자체. 적어도 축구팬들은 이 대회만큼은 수비수인 골키퍼가 팀을 이끌고 결승으로 계속 밀어올리는, 레프 야신 이후로 다시는 보기 힘들지 모르는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15] 칸은 타국의 골키퍼는 물론이요 필드 플레이어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4강에서 그의 대활약상을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이게 행운인지 불운인지 2002년 월드컵을 시청한 사람은 그의 환상적인 선방을 아마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전반 11분 이천수의 논스톱 슛을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붕 날라 한손바닥으로 쳐냈던 것과 안정환의 크로스를 마치 매트릭스같이 뒤로 날아올라 라인바깥으로 쳐낸 선방 등.

결승전에선 카푸와의 충돌로 손가락을 삐는 부상을 당했음에도 끝까지 경기에 임했다. 이후 이 부상 여파로 인한 치명적인 캐칭 미스로 호나우두에게 선제골과 추가골을 내주며 2:0으로 패해 우승컵과 스포라이트를 브라질에게 뺏겼지만, 그는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는 대회 최고의 선수였다.

이 대회에서 올리버 칸은 야신상[16][17]과 골든볼[18]을 모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역대 월드컵에서 골키퍼로서 골든볼(혹은 MVP)를 받은 선수는 칸 뿐이다. 심지어 레프 야신도 해내지 못한 일이다. 그럼 야신상은 이운재 주지

한일월드컵에서의 활약 덕에 2001년에 이어 2년연속 FIFA 풋볼어워드 2위에 올랐으며, 발롱도르도 2년 연속 최종후보 3인에 선정되었다. 골키퍼로서 피파어워드를 2년 연속 2위를 하거나 발롱도르 수상 최종후보에 거론됐던건[19] 칸이 유일하다. 이는 지금 우리가 최고의 골키퍼를 논할때 언급되는 이케르 카시야스지안루이지 부폰, 페트르 체흐조차 이뤄보지 못한 업적이다.



마지막의 호나우두에게 두골을 먹힌듯하지만 무시하자.

4.6. EURO2004

2년 전의 대성공으로 독일은 자신감을 되찾았지만 칸과 발락의 투맨쇼에 힘입은 성과라며 여전히 의문을 보내는 시선도 줄지 않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올리버 비어호프 이후 대형 골잡이와 창의적 미드필더의 부재, 수비진의 노쇠화 등등 여전히 약점이 많은 독일이었다.

칸은 네덜란드전부터 꾸준히 좋은 선방을 보여 줬지만 체코와 네덜란드에게 밀리며 독일은 조 예선에서 또다시 탈락하고 만다. 네덜란드전에서도 칸의 경기내내 선방쇼에 힘입어 겨우 무승부를 한데 이어 최약체 라트비아에게마저 무재배를 하며 탈락 위기에 처한다. 최종전 체코전에서 미하엘 발락의 멋진 선제골로 앞서가지만 곧바로 2골을 내주며 역전당해 2무 1패로 탈락하고 만다. 결국 루디 푈러 감독은 경질되었다. 이들에게 고전한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축구 역사에 변변한 발자취도 남긴 적이 없는 처녀 출전국인 라트비아에게도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경기력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4.7. 2006 FIFA 월드컵 독일

루디 푈러의 후임으로 온 감독은 무려 칸과 같은 시기에 선수 생활을 하기도 했던 젊은 초짜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이었다. 위르겐 클린스만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코치와 의견 충돌을 일으키면서까지 칸이 아닌 옌스 레만에게 골문을 맡기려고 했고, 칸 또한 역시 한 성깔 하는 레만과 신경전을 벌이며 주전 자리 수호를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국 뺏긴 주전을 다시 되찾아 오지 못하고 세컨 키퍼로 조국의 월드컵을 맞이한다.


칸에게 어울리지 않는 벤치에 쓸쓸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팬들은 매우 익숙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회가 다가오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며 후보로써도 최선을 다하는 프로로써의 정신을 보여주었고 아르헨티나와의 8강 경기 승부차기 직전에 레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독려하는 진정한 프로의 자세를 보여주기도 한다.[20] 서로 미소와 악수를 교환하는 모습은 훈훈함 그 자체. 멋진 남자 칸.

마지막 경기인 포르투갈과의 3,4위전에선 레만의 배려로 주장완장을 달고 주전 골리로 출전. 울레타데쿠의 페널티박스 안 슛팅은 물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프리킥까지 쳐내는 등 훌륭한 선방들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그래도 역시 아쉬운지 말없이 디 위를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그라운드를 둘러보기도...그리고, 영광과 세월을 뒤로 하고 그 경기를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다.

5. 여담

  • 해당 문서에 등재된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포효하는 모습이 트레이드마크로, 과묵하게 생긴 겉모습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다혈질이라고 한다.다혈질 같이 생겼는데 FM2007에서는 리더쉽 20의 막강능력치를 보여준다(기타 신체능력도 마흔에 가까운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수준급). 여담이지만 풋볼 매니저에서는 자신의 본명을 올리기 보다는 자신의 라이벌인 옌스 레만과 자신이 인터넷에서 아이디로 쓰는 mustermann을 합쳐서 jens mustermann을 자신의 호칭으로 써달라고 하였다고. 라이센스를 못따서 그렇나 버젼마다 좀 달라서 본명인 올리버 칸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저 이름이 보인다면 그건 올리버 칸이다.

  • 짐승같은 포스와 겉모습과는 달리 경영학 석사 학위가 있으며, 주식투자에도 조예가 깊다. 은퇴 후 ZDF에서 주로 A매치나 메이저 대회 경기들의 해설을 맡았다. 목소리도 제법 세련되고 깔끔하다.경기중에 함성과 포효를 질러대던 그 목소리란다

  • 인상적인 비화로는 일본에서 어린이 10명과 PK를 치뤄 골이 들어가는만큼 한골당 100만엔씩 주최기업측에서 기부를 한다는 내용의 자선행사에 참여했다. 물론 사람들은 그가 대충 봐주리라고 생각했지만 한골이고 두골이고 차는 족족 모두 막아내어 결국 한골도 허용하지 않았고 '아무리 가벼운 놀이용 게임이라도, 내가 지키는 골대에 골이 들어가게 할 순 없다'며 모두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다들 벙쪄있는 찰나 '하지만 기부는 꼭 해줘♡'라며 자기명의의 1천만엔짜리 수표를 꺼내 사인을 하고 기부함에 넣었다는 훈훈한 이야기.계획대로

  • 다만 이렇게 능력 좋고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사생활이 깔끔하지 못해 빈축을 사기도 한다. 아내가 임신 중이었음에도 다른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신 일이라든가...

  • 한일월드컵으로 내한 당시 베지밀을 마셔보고 신이 내린 음료라 격찬하고 박스째로 구입해 독일로 공수했다는 루머가 있다.

  • 리그 경기 중 상대편 골로 쇄도하여 펀칭으로 골을 넣은 기행을 벌인 적이 있다. 당연하지만 즉각 퇴장당했고, 경기 후 키퍼가 골 에이리어에서 펀칭을 하는게 뭐가 문제냐라고 대답하기도. 그게 상대편 골 에어리어라서 문제였지.

  • 98-99시즌 후반기 도르트문트 원정서 상대 공격수인 스테판 사퓌자에게 옆차기를 날리고[21](일명 분데스리가 로고킥) 헤어초크의 목을 물어뜯는 시늉을 해[22] 빈축을 샀다. 이후 도르트문트팬들은 홈에서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할때 칸에게 바나나 껍질을 던지기 시작했다.고릴라 닮았다는건 너네도 아나보다 이 풍습은 현재 바이에른의 수문장인 마누엘 노이어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 한일 월드컵 당시의 인상적인 활약으로 일본에도 팬이 많다. 팬이 많다기보단 뭔가 네타요소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게 정확한 것 같지만... 독일 국가에 맞추어 바나나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감격의 매드무비가 유명.

  • 한일 월드컵 이후 2년 만에 대한민국독일이 부산으로 무대를 옮겨 A매치를 치렀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올리버 칸은 무려 3골을 얻어맞고 무너지는 대굴욕을 당했다.

  • 성질머리와 카리스마, 박스 장악력은 세계 최강이다만... 칸의 유일한 천적은 칸 이전의 바이에른의 주장이었전 슈테판 에펜베르크. 그에게 훈계를 하다 역으로 사자후 관광을 당한후 순한양이 된 칸의 모습이 나름대로 개그다.[23][24]

  • 은퇴 후에는 해설가로 활약중이다.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대한민국우루과이의 16강전 ZDF 중계의 해설을 올리버 칸이 했었는데, 경기 후 칸은 '비록 경기는 우루과이가 승리했으나 진짜 축구를 한 쪽은 대한민국이었다'라고 애정어린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루이스 수아레스의 선제골을 두고 정성룡 골키퍼의 경험 부족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아쉬워했는데, 그 상황에서 수아레스가 찰 곳은 한 곳밖에 없었다. 골키퍼는 그걸 알았어야 했다고 인터뷰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기념하는 대형 칸(...).

  • 만화 보스의 두얼굴에서는 올리파 칸으로 패러디 되어 미국 마피아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바나나를 너무 좋아하는게 약점.

  • 에르루이기 콜리나가 주심을 맡으면 경기에서 진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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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메멧 숄과 더불어 개인 통산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기록이다.
  • [2] 역시 숄과 더불어 개인 통산 최다 포칼 우승기록이었으나 13-14시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7회 우승을 달성하며 최다우승 기록을 넘겨줬다. 이변이 없는 한 분데스리가 최다 우승기록도 슈바인스타이거에게 넘어갈 듯.
  • [3] 지안루이지 부폰 역시 칸과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고 할 만하지만 전성기를 함께 겨룬 골키퍼들로는 발렌시아 CF의 전성기를 이끈 티아고 카니자레스, 1998 프랑스 월드컵과 유로 2000 우승의 주역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수문장 파비앵 바르테즈, 은퇴 직전까지 트레블을 이끈 피터 슈마이켈 등이 있다.
  • [4] 부폰과는 전성기가 5~6년정도 차이가 나고 칸의 커리어가 황혼기에 접어들때 전성기를 맞았고, 카시야스는 2000년대 초 당시 20세 풋내기였고 최고의 키퍼로 인정받기 시작한것도 2008년부터의 일이다.
  • [5] 분데스리가는 한 시즌이 34경기뿐이기 때문에 32경기가 적은 것이 아니다. 참고로 2위는 31경기 중 18경기 무실점을 기록한 뮌헨/독일국대의 후배 마누엘 노이어다.
  • [6] 칸은 자신을 일컬어 "내가 집에서 기르고 있는 짐승"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 [7] 지안루이지 부폰유벤투스 FC 이적으로 기록이 경신됨.
  • [8] 경기가 끝난 후 통곡하는 상대 키퍼 티아고 카니자레스를 위로하는 훈훈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카니자레스가 통곡한 이유는 그 전 시즌 준우승팀도 발렌시아였기 때문...
  • [9] 칸의 바이에른은 2년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후반 추가시간이었던 46분,48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연달아 실점하며 눈앞에서 우승컵을 놓친 기억이 있다. 종료 직후 바이언 선수들은 필드에 엎드려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했다. - 누캄프의 비극
  • [10] 참고로 쾨프케가 일그너보다 선배다.
  • [11] 처녀 출전국이긴 했지만 크로아티아 전력은 구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에서 갈라져 나온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다보르 슈케르와 로베르토 프로츠네스키, 즈보미디르 보반 등은 이미 유럽 명문클럽의 핵심 선수들이었다.
  • [12] 이 경기는 10년전 일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잉글랜드 축구 팬이 독일을 조롱하는 데 꺼내는 1등 떡밥이다. 이때 유니폼에 이 날의 날짜와 득점을 적어놓은 프린팅을 정식으로 발매해서 팔았을 정도. 얼마나 많이 찍어내 팔았는지 한국에서도 상설같은데 자주 보였다. 더구나 이 경기의 주심이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에르루이기 콜리나 심판인데 이 경기 이전에 독일축구협회 DFB에서는 심판들에게 뇌물(?)을 준다고 줬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헤어 드라이기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로 콜리나 심판은 독일 경기에 주심으로 나오면 어땠겠는가?
  • [13] 바이에른의 전설의 테크니션 메멧 숄과 차세대 에이스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수비의 핵 옌스 노보트니 등 그나마 이름값있는 주전들이 대회 전에 대거 부상당했고, 이 대회에서 5골을 넣으며 깜짝 스타가 된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대회 전까지 조국에서도 '대체 이 선수를 왜 뽑았냐.'라는 비판을 듣는 선수였다.
  • [14] 참고로 이 골을 넣은 선수는 그 옛날 이영표와 같이 토트넘 핫스퍼 FC에서 활약했던 로비 킨.
  • [15] 뭐 엄밀하게 따지면 더 찾을 수 있기는 하다. 단적으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파라과이 전력의 과반수 이상이라고 불리던 세 루이스 칠라베르트같은 경우라거나. 하지만 이때 파라과이는 16강에서 탈락.
  • [16] 결승전이 열리기 전 수상이 확정되었다. 경쟁자였던 이운재의 대한민국과 뤼스튀 레츠베르의 터키가 4강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확정이었기 때문.
  • [17]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넣고 대회 8골을 넣은 호나우두가 골든볼을 수상할 수도 있었지만 골든볼 투표 마감이 결승전 하프타임까지여서 호나우두가 두 골을 넣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의 골든볼 수상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가히 절대적인 활약이었다.
  • [18] 실버볼은 호나우두, 브론즈볼은 홍명보.
  • [19] 발롱드르 수상 최종후보는 2014년 마누엘 노이어 가 들어버렸다.
  • [20] 이때문이었을까, 레만은 에스테반 캄비아소와 로베르토 아얄라의 PK를 멋지게 막아내며 팀에 승리를 안긴다.
  • [21] 경기가 과열된 상황에서 사퓌자가 오프사이드가 선언됐음에도 멈추지않고 골을 넣으로 달려오자 빡친 칸이 옆차기를 날렸다. 직접적인 가격은 아니었고 살짝 스치는 시늉만 했기에 카드는 안나오고 주의로 끝났지만...
  • [22] 역시 과열된 경기상황에서 골대 바로앞에서 칸이 공중볼을 잡으려할때 헤어초크가 칸을 밀어 골을 넣으려하자 빡친 칸이 뺨과 목을 물어뜯는 제스쳐를 취했다.
  • [23] 근데 에페와 찍힌것중 칸 뒷모습 사진을 보면 관광당하는거 같지만 옆에서 본 사진은 그냥 둘다 포효하면서 기뻐서 미쳐 날뛰고있는 사진이다.
  • [24] 그래도 실제로 에펜베르크의 포스에 칸도 긴장빨았던건 사실. 특히 인터뷰때 에페가 기자 말을 잘 못알아듣자 칸이 말해주려하는데 '넌 입좀 다물어'라고 쏘이며 관광당한 일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