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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last modified: 2015-04-12 09:18:3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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沖縄, 沖繩,[1][2] Okinawa


Contents

1. 지리적 개념
1.1. 오키나와 본도(沖縄本島)
1.2. 오키나와 제도(沖縄諸島)
2. 오키나와현(沖縄県)
2.1. 행정 구역
2.1.1.
2.1.2. 초(정)
2.1.3. 손(촌)
2.2. 역사
2.2.1. 류큐 처분 및 일본으로의 편입
2.2.2. 2차 세계대전
2.2.3. 50년대 이후
2.3. 주민
2.4. 사회/문화
2.5. 기후
2.6. 관광
2.7. 교통
2.7.1. 현외
2.7.2. 현내
2.7.2.1. 항공
2.7.2.2. 철도
2.7.2.3. 버스
2.7.2.4. 도로
2.7.2.5. 렌터카
2.8. 오키나와 방언
2.9. 미디어에서의 오키나와
2.10. 그 밖에
2.11. 오키나와 현 출신자
2.11.1. 실존 인물
2.11.2. 캐릭터
2.12. 독립 문제
2.13. 참고 항목
3. 키나와 시(沖縄市)


과거 존재했던 독립국으로서의 류큐에 대한 정보는 해당 항목으로.

1. 지리적 개념

1.1. 오키나와 본도(沖縄本島)

난세이 제도(南西諸島), 류큐 제도(琉球諸島) 가운데에 있는 섬 이름으로 일본 오키나와 현에 소속돼 있다. 간단히 오키나와 섬(沖縄島)[3][4]이라고도 한다. 오키나와 현 안에서는 그냥 본도(本島, 혼도)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오키나와 현민(縣民)의 절대 다수가 이 섬에 몰려 살고 있다.

일본의 국토교통성은 일본의 본토에 해당하는 섬을 5개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섬이다.[5] 하지만 오키나와 현 주민들은 대개 혼슈만을 '본토'라고 하거나 오키나와 현을 제외한 일본 전체를 '본토'(内地나이치)라고 부른다.

본래 역사적으로 '오키나와'(오키나와 방언: うちなー 우치나)는 이 섬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현재의 오키나와 현 일대는 14세기 즈음부터 '류큐'(오키나와 방언: るーちゅー 루추)라고 불렸다.

일본류큐 왕국을 일본의 일개 지방으로 만들면서 류큐 현을 설치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6]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키나와 현으로 결정돼 오키나와라는 지명의 범위가 이전보다 확장되어 쓰이게 되었다.[7] 가장 유력한 추정은 현재의 오키나와 현 일대가 류큐라고 불리게 된 것은 명나라가 류큐 왕을 책봉하면서 확립된 명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명나라의 뒤를 이은 청나라가 종주권을 고집할 것에 대비해 류큐라는 이름 대신 현지 주민들에 의해 스스로 불러온 지명인 오키나와를 행정구역 명으로 채택하되 오키나와가 가리키는 지역 범위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변화 때문에 방언 단어의 뜻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류큐어의 오키나와 본도 중남부 방언과 구니가미(国頭) 방언에서 우치나(うちなー)와 우치난추(うちなーんちゅ 또는 うちなんちゅ)는 원래 각각 오키나와 본도와 오키나와 본도 출신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키나와 현이 설치된 이후로 두 단어는 각각 오키나와 현 전체와 오키나와 현 출신자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1.2. 오키나와 제도(沖縄諸島)

난세이 제도, 류큐 제도의 일부. 오키나와 섬과 인근에 있는 작은 섬들을 한데 일컫는 말이다. 여기 포함되는 지역은 위 항목의 오키나와 본도 외에 미야코 제도, 야에야마 제도 등이 있다.

2. 오키나와현(沖縄県)

沖縄県, 沖繩縣,[8] Okinawa-ken, Okinawa Prefecture

오키나와
沖縄(おきなわ)
Okinawa
오키나와현.jpg
[JPG image (Unknown)]
현청소재지 나하 시
지역 일본 오키나와지방
면적 2,276.49km²
인구 1,416,587명 (2013년 10월 1일 현재)
홈페이지 http://www.pref.okinawa.lg.jp/

East_China_Sea_Map.jpg
[JPG image (Unknown)]

류큐 제도를 관할하는 일본의 최남단의 현. 물론 1.의 섬도 관할한다.

현청은 오키나와 시[9]가 아닌 나하 시에 있다. 원래부터 류큐 왕국의 중심지는 슈리(특히 슈리성 일대)였는데 일본에 병합된 뒤 나하가 중심지가 되었다.[10] 현지사는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이다.

2.1.1.

나하
나패
那覇
우라소에
포첨
浦添
기노완
의야만
宜野湾
토미구스쿠
풍견성
豊見城
이토만
사만
糸満
난죠
남성
南城
오키나와 시
충승 시
沖縄市
우루마
うるま
나고
명호
名護
미야코지마 시
궁고도 시
宮古島市
이시가키 시
석원 시
石垣市

2.1.2. 초(정)

야에세
팔중뢰
八重瀬
하에바루
남풍원
南風原
요나바루
여나원
与那原
니시하라
서원
西原
차탄
북곡
北谷
카데나
가수납
嘉手納
킨 정
금무
金武
모토부
본부
本部
쿠메지마 정
구미도 정
久米島町
타케토미 정
죽부 정
竹富町[11]
요나구니 정
여나원 정
与那国町

2.1.3. 손(촌)

오키나와 현의 경우 村을 '무라'라고 안 읽고 '손'으로만 읽는다. [12]
나카구스쿠
중성
中城
키타나카구스쿠
북중성
北中城
요미탄
독곡
読谷
온나
은납
恩納
기노자
의야좌
宜野座
나키진
금귀인
今帰仁
이에 촌
이강 촌
伊江村
오오기미
대의미
大宜味
히가시 촌
동 촌
東村
쿠니가미
국두
国頭
이제나 촌
이시명 촌
伊是名村
이헤야 촌
이평옥 촌
伊平屋村
토카시키 촌
도가부 촌
渡嘉敷村
자마미 촌
좌간미 촌
座間味村
토나키 촌
도명희 촌
渡名喜村
아구니 촌
속국 촌
粟国村
타라마 촌
다량간 촌
多良間村
키타다이토 촌
북대동 촌
北大東村
미나미다이토 촌
남대동 촌
南大東村

2.2. 역사

일본 편입 이전의 역사는 류큐 항목을 참조.

2.2.1. 류큐 처분 및 일본으로의 편입

오키나와 현의 역사(縣史)는 일본이 1879년 이른바 '류큐 처분'을 통해 당시 이미 왕국에서 번(藩)으로 강등된 류큐 정부를 해산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일본 정부는 500여 명의 군경을 파견해 류큐 정부를 해산하고 국왕을 도쿄로 압송해 형식적 작위(후작)를 내린 뒤, 이 일대에 오키나와 현을 설치하였다.

이후 식민지적 동화 정책을 거치면서 류큐는 매우 안 좋은 신세로 전락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공황기에는 경제 및 식량사정의 악화로 오키나와 주민들은 '소테츠'[13]라고 불린 풀로 연명해야 했다. 1930~40년대 빈궁한 조선인들이 나무껍질까지 먹었다고 한 바와 비슷하다. 즉 류큐 제도와 오키나와 전체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내부 식민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후 타이완조선까지 차례로 일본 식민지가 되면서 오키나와는 대우가 점점 안 좋아졌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있었던 관동 대지진에서도 조선인, 중국인과 함께 류큐인들이 학살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 정부, 가고시마(식민지배를 시작한 사쓰마번)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나쁜 편이며, 반감도 강한 편이다.

2.2.2. 2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오키나와는 다시 주목 받았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이곳을 병참 기지로 쓰기 시작했던 것(이곳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일본군의 집결지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결국 패전이 다가오면서 미군이 오키나와에도 상륙하게 되는대, 이오지마 전투와 더불어서 태평양 전선 최대의 혈전이 벌어지게 된다. 이 와중에 일본은 자국민 보호는커녕 오키나와 주민 전원에게 옥쇄하라라는 명령을 내렸고,[14] 일본군은 또 이것도 충실하게 수행해서 오키나와 주민들을 전투중에 인간방패로 쓰거나, 패배가 다가오자 주민들을 모아놓고 자폭(말이 좋아서 자폭이지, 살고싶어하는 민간인들까지 살해했다.)[15] 하기까지 했다. 오키나와 전투가 끝날 때까지 최소 20만 명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희생되었고, 강제징용 된 조선인들도 많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는 평이 많은데,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 본토로 보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그냥 단순한 식민지인 오키나와의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이야기. 본문 후반부에 다시 언급되는 전쟁종료 막후 협상에서 일본측의 최후 협박용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미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하면 오키나와보다 더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의미로. 그리고 여기에 미국은 핵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트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런 사례들로 인해 오키나와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고, 일본 본토에 대한 감정도 이전보다 더욱 복잡해지게 되었다. 노인과 여자들[16]은 보호는커녕 옥쇄라는 미명하에 끌고가서 자폭(...)시키고. 어린 남학생들은 데려다 군인으로 써먹고, 심지어 여학생들도 데려다 군인으로 만들었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히메유리 학도대가 있다.

1945년 6월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국처럼 이 지역을 일본에서 떼어놓기 위해 류큐 정부를 세웠다(그러나 실상은 미국령이라…).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세를 잡아 버리고(1949), 급기야 북한한국전쟁이라는 병크를 터뜨리는 바람에(1950) 미국의 류큐 독립 정책은 흑역사가 되어버렸고,으아니 왜 독립할 수가 없는 거야! 미국은 일본과 함께 애치슨 라인에 이 지역을 집어넣으면서 공산주의를 저지할 군사 기지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 때부터 오키나와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고 이후 오키나와는 동북아 미군의 거점이 된다.[17] 오키나와 반환 및 미일안보조약에 관한 미국 내부 협의에서도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가장 중요한 안건이었고 이를 보장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 중 하나였다.[18]

우선 일본이 패전한 직후부터 살펴보자면, 당시 승전국이었던 미국 국내여론은 당시 전쟁의 최고 책임자 였던 쇼와 덴노를 당연히 전범재판에 세우려고 했는데, 당시 덴노였던 히로히토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히로히토는 미국이 자신을 재판에 세우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데 필요한 전진기지를 원하고 있다는 것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히로히토는 당시 주일 미군 사령관이었던 더글라스 맥아더와 협상을 벌였고 결과적으로 히로히토는 면책받고 전(前) 총리 도조 히데키 같은 A급 전범들만 재판 받고 끝나게 되었는데, 그 대가로 미국에 넘어간 게 오키나와였다.

2.2.3. 50년대 이후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현황. 빨간색은 모두 미군기지이다. 특히 일본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는 거의 전부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영어 위키백과 내용[19]

1950~60년대 당시 일본에선 국민들의 미군기지 반대운동과 평화운동이 한창이었는데, 정치인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고려해 미국정부와 협상을 벌여 본토 내의 미군기지를 1/4까지 줄이는 데 합의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본토에서 줄어든 기지만큼 오키나와로 옮겨 갔다는 거다. 이래저래 오키나와만 제대로 피해를 본 셈.

그리고 1972년에 이곳을 류큐라는 나라로 독립시키느냐, 아니면 오키나와 현으로 존치하냐라는 의제가 일본 국회에 넘어가는데, 이 논의에서 오키나와 현을 독립시키지 않고 그대로 일본령으로 존치한다는 안이 가결되었고, 이 지역은 독립하지 못한 채 지금도 일본령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다만 1950년대에는, 일본으로 귀속하면 평화헌법의 위상이 가지는 힘으로 미군 기지를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김칫국 생각에 따라 일본 복귀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1972년 당시의 '복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지역 내에서 독립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많고, 오키나와 현에서도 독립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에 이르렀다는 설도 있지만, 독립하고자 하는 류큐인들의 입장을 묵살해 버리고 날치기로 오키나와 현 유지안을 통과시켰다는 설도 있어 두 의견이 충돌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시 주민의 24.9%는 오키나와의 독립운동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 심지어 1975년, 일본 좌파운동이 강했던 시절에는 오키나와를 방문한 일본 왕세자를[20] 암살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ㅎㄷㄷ.. 히메유리의 탑 사건 실제로 오키나와 독립운동 단체들이나 오키나와 권익 옹호 단체들은 이런저런 이유에서 일본의 좌파계열 단체와 자주 연합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21]

그래서 일본 '본토'에 대해 좀 오묘한 감정이 있다. 오키나와 출신 연예인이 본토 TV 프로그램에서 생각없이 기미가요를 따라부른다거나 하면 지역민들로부터 개념없다며 욕을 좀 먹는다. 1989년 히로히토가 죽었을 때도 오키나와만은 임시 공휴일로 정하지 않았으며 태평양 전쟁 전범이 죽은 것뿐이라는 지역 언론의 비아냥까지 나왔다. 하긴 히로히토가 살아있을 때 암살 시도까지 벌어진 곳이니... 당시 동아일보가 오키나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한 승려가 동경을 향해 큰절을 하며 히로히토 일왕의 명복을 비는데 사람들은 투명인간처럼 보듯 지나갔으며 지나가던 사람 몇몇은 이걸 보고 침까지 뱉으며 욕을 하고 갔다고 한다.[22]

2000년 7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제26차 G8정상회의인 큐슈-오키나와 정상회의가 오키나와 나고시에서 개최되었다. 이는 일본 최초로 지방에서 개최된 정상회의이며, 당시 쟁쟁한 도시들이 후보군에 올라 있었으나 오키나와의 역사적 아픔과 지역의 뜨거운 유치 열기 때문에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의 결정으로 정상회의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슈레이몬 도안이 그려진 2천 엔권 지폐가 발행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채 세월이 흘러... 2012년 7월에는 중국 공산당 정권에 의한 영유권 주장이 나왔다! 오키나와의 전신인 류큐 왕국이 중국의 번속국(藩屬國)[23]이었고, 일본 제국주의가 청나라의 쇠락을 틈타 1879년 강제로 합병한 것이니만큼, 중국에게 궁극적인 영유권이 있다는 얘기다. 흠좀무.

하지만 중국의 영유권 주장은 실제로 관철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게, 오키나와 주민들의 가장 큰 원성의 대상이기도 한 주류(駐琉)미군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얌전히 물러난다는 건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국적임이 분명한 주민이 1, 2만도 아니고 140만 명이나 거주하기 때문에[24] 과거에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현재의 영유권을 인정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2012년 다시 불붙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 분쟁에 따라 일본이 애초에 센카쿠 주변지대인 류큐 제도에 대한 주권도 없었다는 점을 거론해 일본의 주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중국의 야욕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은 냉정하다. 류큐 반미주의자나 분리주의자들조차도 우리는 종주의자들이 아니에염 뿌우하고 있는 상황. 실제로 중국이 류큐 지역에 노골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시작한 2012년 7월에는 중국이 우리를 먹으려고 한다는 플래카드를 나하 시내 곳곳에 걸어두어, 설령 반미주의를 표방하더라도 중국을 좇는 행위는 엄격히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1년판 일본 방위성의 방위백서에 따르면,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은 전체 주일미군 약 33,000명 가운데 23,000명(!)이며, 그들의 가족과 군속까지 합치면 총 43,550명에 달한다. 또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현 전체에 대략 37곳이 분포하며, 기지면적은 현 전체 면적의 18.7%에 달한다. 대충 평택시 면적과 거의 맞먹는 지역이 미군기지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오키나와의 주요 미군기지는 코트니 캠프 등에 해병대 시설 및 해병대 관리구역이 있으며, 해병대 제3기동전개부대사령부가 위치한다. 토리이에는 미 육군 제1특수부대군 제1대대 및 제10지원군이 주둔하고, 유명한 후텐마 기지에는 해병대 제36해병항공군 산하에 다수의 CH-46, CH-53, AH-1, UH-1 등의 헬리콥터 부대와 KC-130 공중급유기 등이 배치되어 있고, 이 기지에서 발진한 CH-53 헬리콥터가 2004년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정에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25] 그러나 추락지점에 있던 건물은 대파되어 철거되었다. 그리고 철거하면서 남은 벽면 일부와 그슬음이 남은 나무를 보존하고 있다.

극동 최대의 공군기지라 일컬어지는 가데나 기지에는 미 공군 제18항공단 산하에 F-15전투기, KC-135 공중급유기, HH-60 헬리콥터, E3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같은 기지 내에 해군 P3C 대잠초계기, 육군 1-1방공포병대대의 패트리어트 PAC-3가 배치되어 있다. 그 외에도 나하에 위치한 군항과 나하 국제공항, 캠프 화이트비치의 해군 저유시설, 구니가미의 해병대 훈련캠프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일부 시설은 자위대도 공유한다.[26] 자위대 83항공단소속 F-15J가 나하 국제공항에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2012년 9월 중순, 센카쿠 문제로 불거진 중-일 관계를 기화로 미 국방부는 오키나와 주민의 거센 반대를 묵살하고 M-22A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의 배치를 확정하고 일본 정부 역시 이에 동의해 오키나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처사에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 10월 16일, 미군 병사 두 명이 귀가 중이던 여성을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고 기도한 사건이 터지면서 다시 한 번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일본 정부는 총리가 직접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불쾌함을 표시했고, 주일 미국 대사도 "미국 정부가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오키나와 현민의 분노를 이해한다. 일본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주민들은 "하늘에는 신형수송기 오스프리가 날고, 땅에는 걸어 다니는 흉기(미군 병사)가 있다"면서 "현민은 어디로 걸어 다녀야 하느냐"며 분노를 드러냈다.[27]

2013년 4월 28일,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61주년을 맞아 이 날을 '주권회복의 날'로 명명하고 덴노 등이 참석한 식전행사를 거행하자 오키나와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날이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버림받은 '굴욕의 날'이라며 항의 집회를 개최했다. 이는 1952년 4월 28일 상기한 조약의 발효로 일본이 주권을 회복했을 때 일본 정부가 아마미 제도가 포함된 오키나와 열도를 거들떠도 안 보고 미군 지배하에 방치하고 외면했기 때문이다.[28]

2013년 5월 15일,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한 지 41년이 되는 날에 마침내 '류큐 민족독립 종합연구학회'라는 일종의 독립(문제를 논의하는) 단체가 결성되었다! 목표로 '류큐자치연방공화국'의 건설을 내걸었다. 흠좀무. '복귀' 이래 4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일본 정부의 오키나와 차별, 미군기지 강요라는 구도에 대항하기 위한 움직임의 절정인 셈이다.~이로써 에우레카 AO의 오키나와가 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오키나와가 실제로 독립을 이룰 가능성은 낮다. 2007년만 해도 20%는 되던 독립지지 여론이 2012년에는 고작 1% 정도로 격감했기 때문도 있고, 일본 정부가 순순히 놓아줄 가능성도 제로에 가깝기 때문. 미군 기지 문제가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미국 역시 찬성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실제로 오키나와의 독립을 추진하기 보다는, 오키나와의 분리-독립 가능성을 공론화시킴으로써 오키나와에 강요되고 있는 무수한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와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미군 기지 문제에 대해) 오키나와만 분발해 봤자 (일본 정부와 미국의 전향적 자세 없이는) 소용이 없다"는 식으로 확산되고 있는 패배주의 풍조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29] 다만 어떤 식으로든 오키나와 주민의 여론이 분리독립 찬성으로 기울게 되면, 일본 정부든 미국 정부든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제3자가 또 있으니...

바로 중국이다. 5월 15일 상기한 단체가 결성되자마자 다음 날인 16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환추시보가 중국이 민간 차원에서 일본의 영토로 돼 있는 오키나와의 독립운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0] 센카쿠 문제로 일본과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센카쿠는 물론이고 그 이상의 커다란 틀을 손에 쥐기 위한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 다만 전술했듯이 오키나와 독립운동 지지세력도 중국의 영향력 강화는 기피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중국이 정말로 지원해 준다고 해도 이를 받아들일 지는 미지수이다.

그래도 참의원 선거에서 이 논의가 영향을 미쳤는지 전국적으로 자민당이 우세인 상항에서도 혁신계 의원(오키나와 사회대중당, 단, 공식적으로는 무소속)인 이토카즈 게이코(糸数慶子) 의원이 3만 표의 격차로 자민당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오키나와는 물론 일본과 미국에서도 논란의 핵심인 후텐마 기지 이전 후보지인 헤노코 해변의 모습.

2013년 12월 27일, 일본(과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과 회유에 결국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 현지사가 굴복, 후텐마(普天間) 미군 기지의 현내(縣內) 이전에 동의했다. 이전까지는 현(縣) 정부가 현외(縣外) 이전 내지는 기지 폐쇄가 현의 공식 입장이었으나 일본 정부의 압력과 회유[31]에 결국 오키나와 현정(縣政)이 굴복한 모양새가 됐으나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된 나카이마 현지사는 '사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관련기사 한편 일본 정부는 헤노코 지역 기지 이전을 지역주민들이 방해할 경우 형사특별법을 적용해 엄격히 처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미 2002년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사전에 엄포를 놓은 것.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사의 결정에 항의하며 집회를 가지고, 2014년 1월 9일 임시 현의회를 소집해 지사를 추궁할 계획을 밝혔다.관련 기사[32]

한편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후텐마 기지를 헤노코로 이전하기로 합의하고 오키나와 현(縣)정부를 굴복시켜 헤노코 해안 매립을 오키나와 현정부가 승인함에 따른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노엄 촘스키, 존 다우어, 노마 필드, 마이클 무어 등 서방 국가의 진보적 지식인 29명이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해안 매립을 승인한 것에 대해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

오키나와 현지사의 후텐마 기지 현내 이전 승인에도 불구하고 복병은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지사가 주민 설득을 위한 마지노 선으로 정부에 요구한 '5년 내 기지 사용 중단'에 대해 일본 정부가 미국에 요구 사항을 그대로 전달했으나 미국은 확답을 거부했다는 것. 여기에 오는 11월 현지사 선거에서 나카이마 현(現) 현지사가 패배하게 된다면 정부와의 타협은 도로아미타불이 될 가능성도 있다.관련 기사

2014년 1월 19일 치러진 나고 시 시장 선거에서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파인 이나미네 스스무(稻嶺進) 현(現) 시장이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기지 이전 문제가 시작하자마자 좌초됐다(...). 실제 기지 이전을 위해서는 공사자재 적치장 설치 등 나고 시장의 인허가가 필요한 절차가 많기 때문에 나고 시장의 협조가 필수적인 데 그 부분에서 암초에 걸린 것. 집권 자민당 정부가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고이즈미 신지로 내각부 정무관,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 등을 동원해 기지 이전 찬성파를 도왔지만 '지역 경제 개발'이라는 고리타분한 구호에 나고 주민들은 동의하지 않은 셈이다.관련 보도[33]

2014년 3월 13일, 현내의 야에야마 지구 소속 다케토미쵸(竹富町)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구가 결정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계열의 이쿠호샤 교과서 채택을 거부하고 도쿄서적 교과서를 쓰기로 결정했다. 다케토미쵸 당국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에 대한 실태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으나 일본 문부과학성은 직접 시정조치를 명령하여 압박을 강화했다.참조댓글에는 류큐왕국 독립시키라고 야단이다. 4월 9일, 일본 정부가 법률을 개정하면서까지 극우 교과서 채택을 강요하자 다케토미쵸는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교육구에서 탈퇴해버리고(...) 독립적인 교과서 채택지구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상급 단위인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도 이에 지지의사를 밝혀, 일단 다케토미쵸의 결정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역시 이번에도 댓글마다 오키나와 독립 지지글이 넘쳐난다.

2014년 5월 21일,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가 다케토미쵸의 독자적인 역사교과서 채택을 승인함에 따라 '교과서 내전'에서 일본 정부가 사실상 패배했다. 법률까지 바꿔가며 다케토미 측이 극우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했지만, 개정 법률의 허점을 파고든 다케토미 쪽의 결정에 일본 정부가 승복할 수밖에 없게 된 것.자승자박 관방장관과 문부과학성 모두 다케토미쵸와 오키나와 교육위원회의 결정을 인정하여 패배를 받아들였다.#

21일 오전 10시 30분경, 쿠메지마 앞바다에서 대폭발음과 함께 버섯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이 목격되었다. 섬에 미군 기지가 있긴 하지만 주민들조차 처음 겪는 일이라는 반응.버섯 구름을 포착한 일본 뉴스 현재로서는 미군이 MOAB 투하훈련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유력하지만, 자위대가 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조금 나오는 상태.

한편, 아키히토 덴노가 6월 하순 쓰시마마루(對馬丸) 사건으로 희생된 민간인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오키나와에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2014년 7월 8~9일, 초대형 태풍 너구리가 오키나와를 덮쳐 60만 명의 주민이 피난했고 3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오키나와 현내에서만 7만여 세대에 전기공급이 끊어지는 등 정전 및 재산피해도 막대하게 발생했다.# 하지만 국내 언론에서 떠든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사상자 중 가장 큰 상해가 손가락 2개 절단이었다. 또 7월 기상관측 사상 최악의 태풍에 직격당했으면서도 단 하루 만에 국도랑 고속도로 및 모노레일이 정상 복구 되면서 태풍 다음 날 도착한 관광객들이 "여기가 태풍에 직격당한 오키나와가 맞나?" 라며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2014년 7월 14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1972년 오키나와 반환과 관련된 소위 '오키나와 밀약' 문서의 공개를 요구한 소송을 기각하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와중에 1972년 오키나와 '반환' 이래 줄곧 동아시아 내 최대 미군 거점지대였던 오키나와가 이 멍에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신호'가 잡혔다. 미국이 거센 주민 반대와 저항에 지쳤는지(...) 일본 본토, 야마구치 현의 이와쿠니를 새로운 미군 거점지대로 조성하기 시작했기 때문. 실제로 미군은 지난 15일부터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있던 KC-130 공중급유기를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로 이전을 시작했고, 8월 말까지 15기 모두 이동할 예정이다. 또 차세대 스텔스기 F-35를 2017년까지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하기로 했고, 오키나와 주민의 배치 반대가 격렬한 신형 수직이착륙 수송기 MV-22 오스프리 12대(2개 편대)도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 배치하기 전 이와쿠니 기지에 잠정 배치하기로 했다.# 이러한 배치 전환 및 이와쿠니 기지 거점화가 개시되면 오키나와가 짊어진 미군 기지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쿠니 주민들도 혐오시설(...)인 미군 기지 확장에 반대하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지수.

헤노코 해안 주변에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기지 이전 반대파 주민들. 2014년 8월 6일.

2014년 10월 30일, 여성 각료들의 연속 사퇴로 지지율이 떨어진 아베 정권에 정치적 부담을 더 얹어줄 수도 있는 정치적 사건이 오키나와에서 시작된다. 이날부터 오키나와 지사 선거전이 공식 시작된다. 투표 및 개표는 11월 16일. 이번 선거에서는 미일동맹의 주요 과제 중 하나인 오키나와 후텐마(普天間) 미군기지의 현내(縣內) 이전 문제가 최대 쟁점. 아베 정권이 오키나와의 여론을 무시하고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내 이전을 추진하는 만큼, 이번 선거에서 현내 이전 반대파가 당선된다면 아베 정권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16일의 지사 선거를 앞두고 내걸린 선거전 포스터. 사진 좌측 4명의 사진 가운데 기지 이전 반대파가 왼쪽 위의 오나가 타케시 후보, 오른쪽 아래의 키나 쇼키치 후보이고 왼쪽 아래가 현재 현지사를 역임하고 있는 기지 이전 찬성파 나카이마 히로카즈 지사이다.

지사 선거가 열흘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기지의 현내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오키나와 내의 선거전도 가열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현내 기지 이전 반대 여론이 우세하며, 지방지 류큐신보의 자체조사에 따르면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후보가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3선에 도전하는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지사가 뒤쫓고 있으며 유권자의 20% 이상이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

11월 16일 치러진 현지사 선거에서 현내 기지이전 반대파인 오나가 타케시 후보가 압승을 거두어 당선되었다. 이에 따라 헤노코로의 기지 이전 문제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였지만....

11월 18일, 충공깽스럽게도 방위성은 밤에 몰래 15대의 덤프 트럭으로 플로트 복구를 위한 자재를 운반하고 19일 공사를 강행하려 했다! 흠좀무. 이에 주민들이 해상과 육지에서 봉쇄 시위에 나섰다. 70여 명의 주민들은 진입로 앞에 주저앉아 트럭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봉쇄하고 농성을 했다.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고자 했지만 대치 끝에 주민들은 진입로를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주민들은 해상에서도 카누 13척에 나눠 타고 공사를 저지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카누에 탄 이들은 높은 물살에도 불구하고 해상보안청의 보트 7대에 접근해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새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문구를 들고 저지 시위를 계속했다.

한편, 19일 오후 오나가 타케시 현 지사 당선인은 선거 후 처음으로 진입로 농성장을 방문해 “모든 방안을 생각하고 지혜를 모아 헤노코 기지를 건설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새 미군기지 건설 반대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NHK는 현지사의 소견과는 상관없이 중앙정부가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레이버넷은 “정부가 오키나와의 민의를 짓밟는데 물불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할 것”이라면서 “상황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천하의 개쌍놈들#

결국 아베 정부는 '숨고르기'에 돌입했다. 민심의 강력한 반발을 확인한 상황에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곤란해진 것. 11월 27일자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헤노코(의 훈련장 건설을 위한 사전) 지질조사를 반대하는 시위대의 접근을 차단하는 해상보안청 고무보트를 정박시키는데 쓰인 부잔교(浮棧橋)가 지난 22일 철거됐다고 보도했다. 총선에서 승리하여 내각을 재편한 뒤 다시 강행하려는 듯하다.#

12월 5일, 9일 퇴임이 예정된 나카이마 현(現) 현(縣)지사가 헤노코 기지 이전 반대 운동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과 일본이 원하는 미군 기지의 매립 예정지인 헤노코 일대를, 지역 자치체의 승인이 없어도 현지사의 승인만으로 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 이는 아베 총리와 자민당, 미국이 원하는 구도이지만 당연히 지역 주민은 반발하고 있다.#

지난 11월 16일 당선된 오나가 다케시(翁長 雄志) 신임 오키나와 현지사

12월 10일, 오나가 다케시 신임 오키나와 현지사는 첫 출근 후 기자회견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매립해 헤노코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그만두기 바란다"고 말했다고 요미우리 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오나가 지사는 또 오키나와 방위국이 현에 제출한 헤노코 연안 매립 관련 공법 변경 신청 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 14일 치러진 제47회 일본 중의원 총선거 결과, '본토'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오키나와에선 괴멸을 면치 못했다. 오키나와에 배정된 총 4개의 선거구 가운데 자민당 후보는 단 1명도 승리하지 못하고 모두 야당 후보나 무소속 후보가 승리했다. 이는 헤노코 기지 이전 문제로 촉발된 오키나와 주민의, 자민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자민당의 득표율은 오키나와에서 25.36%에 불과해 오사카(24.79%)[34]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낮은 숫자를 기록했다.

이미지 출처는 세계일보. 사진 속의 광대한 활주로가 미 해병대의 후텐마 기지이다. 보다시피 기지를 둘러싸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기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이 기지는 미군에 의한 오키나와 '지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총선 후 아베 정부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중론인 가운데, 12월 23일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 현(縣)지사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 등에서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 弘多) 전(前) 지사가 후텐마 기지의 이전 대상지인 헤노코 연안부의 매립신청 승인과정을 검증할 위원회를 내년 1월 중순에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검증 결과 매립 승인 과정에서 법적 하자가 드러나면 매립 승인도 취소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오나가 지사는 아울러 12월 25∼26일 도쿄를 방문해 후텐마 기지의 현내 이전 반대 여론을 전하기 위해 아베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오키나와 담당상 등의 면담도 추진하기로 했다. 내년 4월에는 미국으로 가 기지 이전의 문제점을 직접 호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스가 관방장관은 “헤노코 이전은 기정사실”이라며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오히려 “오나가 지사가 (헤노코 이전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은 채 만나봐야 의미가 없다”며 지사와 면담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전했다.

대신 아베 정부는 예산안 삭감 카드를 동원할 태세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내년도 오키나와 진흥예산 요구안을 전액을 제공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어디서 감히 '을' 주제에 갑에게 대들어? 오키나와 기지 이전에 협력한 나카이마 전 지사 시절 오키나와 진흥예산은 2011년도 2,300억 엔에서 2014년도 3,400억 엔으로 증액됐고, 2015년도 진흥예산 요구안을 3,794억 엔(약 3조 4,782억 원)으로 설정됐다. 아베 정부는 기지 이전에 협력하는 대가로 2021년까지 매년 3000억 엔대의 오키나와 진흥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바 있지만, 신임 지사가 이전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면 자기도 안 지키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세상은 예산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빨리 독립해야해, 답이 없어

2.3. 주민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았는데, 국토가 좁고 물을 잡아두기 힘든 지형 문제로 벼농사보다는 사탕수수 농사 위주로 농업 체계가 맞추어져 있다.[35] 다만 90년대 이후 요즘은 오랫동안 일본의 영향을 받아 농업 기반이 많이 무너져 있는 게 문제.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36] 기지 주변에서 깽판을 치는 GI들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특히 90년대에 소련이 붕괴한 이후 더 심해지면서 주민들은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72년부터 1995년까지 27년 동안 미군 및 미군 군속이 저지른 범죄는 약 4,716건에 달하며, 민간인이 살해된 것도 12건이나 된다. 특히 1995년 미군 병사 3명이 여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쌓이고 쌓인 불만과 울분을 일거에 폭발시켜 일본 중앙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후텐마 기지에 인접한 오키나와국제대학 교정에 해병대 헬리콥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나 주민들의 불안감을 키웠고, 2012년에 들어서는 미군이 오스프리 수직이착륙기의 후텐마 및 가네다 기지 배치를 강행하려다가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보류한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미군기지의 전면 철수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요구이기 때문에, 오키나와 주민들은 '그렇다면 미군기지를 본토로 이전해라'라고 하여 현외이설론(県外移設論)을 주장하고 있다.[37] 그렇게 해야 평등하지 않느냐는 얘기인데, 이에 대한 본토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다. 본토의 일본인들은 미군기지로 인한 평화와 안전보장이라는 수혜는 누릴 수 있어도, 미군기지로 인한 현실적인 피해와 불이익은 거부한다는 태도를 암암리에 고수하고, 미군기지의 존재로 인한 피해와 불편은 오키나와에 떠넘기고 있는 것. 이런 불평등과 차별 때문에 오키나와인 사이에서는 일본 본토(인)에 대한 반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2014년 현재 '중국위협론'을 슬로건으로 내건 아베 정권이 헤노코에 새로운 미군 기지를 짓기 위한 공사를 강행할 태도를 보이자 오키나와 주민 사이에서도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0여 년 동안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펼쳐온 '주민 의견 무시, 정부 견해 우선' 태도와 각종 경제적 보상을 토대로 한 강온 양면술 앞에 오키나와 주민의 민심도 분열된 상태다.#

현재 류큐에 사는 주민들은 거의 전적으로 관광업과 예능 산업, 공예 산업(이곳에서는 유리 공예와 나전칠기 공예를 쳐 준다)에 종사하고 있고, 소득 수준이나 학력도 가장 낮아 일본 내에서도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는 실정. 이런 문제들 때문에 독립하자는 설이 심심찮게 대두되고 있고, 오키나와 지역 내부적으로도 이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모양.

동남아 계열의 문화가 섞이다 보니, 민족성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난다(는게 본토사람들이 갖고있는 이미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묘사된 오키나와인들의 모습을 종합해 보면 이국적이고 밝고 활기차고 생활력이 강해보인다라는 모습으로 종합할 수 있다. 현실의 오키나와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사실인 듯. 또한 창작물에서 한가지 특징은 피부가 까무잡잡하다는 거. 물론 다 그런건 아니다.

2.4. 사회/문화

오키나와에는 일본 본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성씨들이 많이 존재한다. 2014년 11월 지사 선거에서 패배해 전 현지사가 된 분의 성씨인 나카이마(仲井眞)를 비롯하여 가장 흔한 성인 히가(比嘉)가 있으며, 배우 아라가키 유이의 아라가키(新垣), 골프 선수 미야자토 아이와 미야자토 미카의 미야자토(宮里)나 역시 같은 골프 선수인 모로미자토 시노부의 모로미자토(諸見里),[38] 전직 복서인 탤런트 구시켄 요코(참고로 남성임)[39]의 구시켄(具志堅), 그 밖에 카네시로(金城),[40][41] 타마구스쿠(玉城)[42], 캰(喜屋武), 마타요시(又吉) 등의 성씨도 오키나와에서는 흔한 편에 속한다. 참고로 아무로 나미에의 아무로(安室)는 일본 본토는 물론 오키나와에서도 드문 희귀성이다.[43]

그런가 하면 해외에 일본 무술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가라테도 사실은 류큐 왕국 시절에 중국 무술이 건너왔다가, 일본점령기에 주민들이 일본인들 몰래 중국 무술을 기반으로 만들고 유지시킨 무술이다. 이후 세계적으로 가라데가 퍼져나가면서 오키나와 가라데는 '가라데의 원형'을 간직한 곳으로 알려진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선 이 때문에 뭔가 알려지지 않은 비장의 무술이나 격투기술은 오키나와에서 나오는 걸로 묘사하곤 한다(...).[44]

오키나와/류큐 지방 음악은 일본 음악과 차이가 많이 나는데, 열대지방 해변 느낌이 강한 편이다. 게다가 종전 이후 미군 기지가 주둔하고 있어서 미군이 듣던 음악까지 수용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록 음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키나 쇼키치[45] & 참프루즈 같은 밴드가 그런 류큐 지방 록 밴드의 선구주자로 유명하다. 지금도 류큐 록 밴드나 가수들은 일본 음악계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통음악도 호소력 있고 모던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어서, 국내외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 (섬사람의 보물, 섬노래, 눈물이 주룩주룩 등등...)[46]

명물 요리로는 소키소바(ソーキそば, 혹은 오키나와 소바)가 있다.
일반적인 소바보다는 라멘에 가까운 맛을 보여주지만 라멘보다는 맑은 맛을 내며, 고명으로 돼지고기 수육이 올라가는게 특징. 여담이지만 이곳 향토 요리 중 바다뱀을 말린 것과 다시마로 우려내 만든 국물을 쓰는 국수가 있다. 맛의 달인에도 나온다. 불교와 농경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고기 요리가 그다지 발전하지 못한 일본에서 돼지고기 요리가 다채롭기로 유명하며, 참프루가 유명하다. 근데 스팸을 좋아하며 오키나와 출신인 일본 연예인 아라가키 유이가 SMAPXSMAP에 나와 오키나와풍 미소시루라며 스팸을 넣은 된장국을 끓이기도 했다.

미군 점령과 지배(1945~72)의 영향으로 나이 드신 분들 중에는 영어를 잘 하는 분도 계신다. 약한 영어라도 좀 하면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일본의 여타 지역이과는 이점이 다르다. [47]

오키나와 항목을 다룬 일본어 위키백과를 보면 오키나와인에 의한 차별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아마미 섬 출신자 차별, 미국인과의 혼혈자 차별, 한센병 환자 차별, 정신질환자 차별, 심지어 자위관 차별 항목까지 개설되어 있다. 해당 항목에 대한 일본인 편집자의 악의적인 접근이 두드러지는 부분. 애초에 오키나와에 대한 일본 본토인의 차별과 억압이 심하면 심했지,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다. 물론 아예 없을 수야 없겠지만.[48]

여담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다. 일본 평균 출산율이 1.4명인데 비해 오키나와 출산율은 1.8명 정도라서 상대적으로 아동층의 인구가 두텁고 고령층 인구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인들은 애를 많이 낳아재낀다는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랬던건 아니고 20세기 초중반에는 오히려 일본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았던 지역이었다. 전쟁 이전에는 오키나와인들이 하도 먹고살기 힘든것도 해서(상단 참조) 타 지역에 비해 애를 적게 낳았는데 전후 일본의 출산율 하락이 급속하게 이루워졌고 오키나와 지역은 산아제한이 상대적으로 늦게, 느슨하게 이루워지다 보니까 출산율 하락이 더뎌서 1970년대 이후에 일본에 출산율이 가장 높은 동네가 되어버렸다는 얘기.

2.5. 기후


위도가 낮은 편. 대략 대만 북부 정도의 위치에 있고, 홍콩과도 차이가 크지 않다.

섬이기 때문에 겨울바람은 쌀쌀하다. 바다에서는 현지 사람들도 후디를 입는다. 현지기후
겨울철 혹한기라도 한국에서는 경량파카를 가져가는 정도로 대응 할 수 있다.

  • 1월 중순에는 벚꽃이 핀다. 가장 추운시기. 동계우기이므로 자주 비바람이 몰아친다. 가능하면 방수되는 외투를 챙길것
  • 2월말이나 3월부터 날씨가 비교적 따뜻해진다. 허나 일교차가 있으니 가벼운 외투는 필수
  • 4월 부터 해수욕장과 리조트 실외풀장이 개장
  • 5월 부터 6월까지 장마 골든 위크 인데다가 비도 자주내리니 관광으로서는 최악의 시즌
  • 7월 부터 8월까지 본격적인 여름이다.
  • 9월 그야말로 최악의 계절. 태풍이 없다면 7,8월에 비해 비교적 온순한(?) 날씨를 보이나 거의 한주에 하나씩 태풍이 올라올 정도로 태풍이 자주 올라온다. 항공편 및 선편이 자주 결항되며 심지어 도로마저 교통통제.
  • 10월 비교적 안정된 날씨를 보이나 가끔 태풍이 출몰. 월말에 해수욕장과 리조트 실외풀장이 문을 닫는다.
  • 11월 해수욕장 자체는 닫아있지만 날씨로만 보면 충분히 물에 들어갈 수 있는 시즌
  • 12월 중순부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

좋은 날씨를 오키나와에서 즐기려면 상당한 운과 돈이 필요하다.

관광에서 월간 이벤트는 다음을 참고 공식가이드북 일본 여행사 한국 여행사

2.6. 관광

오키나와.png
[PNG image (Unknown)]

필리핀보다 더 위험한 지역이라 카더라.
일본에서 한국보다 먼 오키나와에 벌써 방사능이 퍼졌다 카더라

오키나와의 관광은 세가지의 키워드로 분류 될 수 있는데, 첫번째로는 독립국이었던 박제화된 류큐 왕국으로서의 문화, 두번째로 미군정시기를 거치면서 강하게 남아있는 미국문화의 영향, 마지막 세번째로 츄라우미 수족관으로 대표되는 바다와 아열대풍경이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일본어는 기초적인 수준은 되어야 한다. 위의 영어 항목에서 나이드신 분들이 부분을 강조처리 하고 싶어질 정도. 기대를 전혀 하지 말자. 그래도 영어 한다고 도망가진 않는다

항공편은 언급된 국적기 국제선이 무난하다. 교통편은 렌터카를 빌리자. 보통 공항에서 렌터카업체까지 각 업체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오타쿠 여행은 애니메이트가 국제거리에 있으므로 소소히 구경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한국 내 오타쿠 샵만큼 작지만
게임의 경우에는 세가 계열이나 코나미 PASERI 지원 점포를 토대로 검색해봐야 할 듯 하다.
TV 애니메이션은 언사이클로피디아 일본판에도 아니메 과소지 항목에서 논외의 아니메 초과소지역에 들어갈 정도다. 기대를 하지 말자. 공중파 TOKYO MX(엄밀히 말하면 이쪽은 독립방송국/지역 방송국이긴 하지만.. 애니를 볼 수 있는 도쿄와는 격차가 상당히 심함.

전자제품상가는 나하 시의 오모로마치에 베스트덴키, 야마다덴키, 에디온(쇼핑몰 산에이 메인플레이스 1층) 등이 몰려 있으며 컴퓨터 전문상점인 굿윌 도 오모로마치에 위치하고 있다.

마린레포츠가 최고. 본섬도 좋지만 미야코지마나 야에야마 제도 쪽도 강력히 추천된다. 본섬보다 인구가 훨씬 적기 때문에 본섬 외 작은 섬들이 대체로 훨씬 물빛이 밝고 깨끗한 편이다.[49]
야에야마 제도에서 제일 큰 섬인 이시가키 섬은 하네다 직항이 있어서, 나하공항을 거치지 않고 갈 수 있다. 비용적으로 유리한 편이니 참고할것. 미야코지마의 히라라 공항도 JTA가 있긴 있는데 항공권 사이트에서 검색이 안된다.

겨울에 따뜻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팀들의 전지훈련장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자전거를 타기에도 나쁘진 않은 편.
식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일본 음식이라고 하기엔 오묘한 느낌. 중국 요리 및 멀리는 인도네시아 요리의 영향도 받아 입맛에 맞는가와는 별개로 본토에 비해 매우 특색있는 편이다.

야간 치안은 일본답게 거의 문제 없다. 파출소가 자주 보이지는 않으나 미군기지 주변의 환락가가 아닌이상에 특별하게 치안상 문제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더 심각한 문제는, 밤에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 나하 시내가 그나마 할게 있고, 아메리칸 빌리지도 한국인 기준 꽤 일찍 닫는 편.

2.7. 교통


2.7.1. 현외


본섬의 나하 공항 # 이 국제공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 본토와 대만, 한국, 일본을 커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항공이 인천/부산-나하, 진에어, 제주항공, 티웨이항공인천-나하 직항노선을 운영한다. 2012년에 해외관광객 수요가 많아져서인지 새 국제선 건물을 신축하여 2014년 2월 17일부터 영업개시. 게다가 국내선건물도 확장공사시작.그러면 뭐하나 활주로는 한 개 뿐인데 뭐 그래도 있는게 다행이지

이시가키섬은 하네다 경유 JTA/ANA로 갈 수 있다. 이 중 항공사이트에서는 ANA 가 검색이 잘 된다. 하네다-이시가키에는 767이 뜬다!

나하항 # 도 있으며, 북미, 중국, 아시아, 동남아행 여객선이 지나간다. 주로 화물선과 크루즈선이 지나가서 국제 여객선으로 큰 기대는 할게 못된다. 이론적으로는 부산에서 나하까지 크루즈선이 있지만, 보통은 비행기 탄다.


2.7.2. 현내

인구 대부분이 몰려있는 나하 시를 중심으로 한 섬의 중남부지역의 경우에 주간에도 교통이 혼잡하여 출퇴근 시간에 버스 전용차선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나하 시내 일부 지역의 경우에는 버스 전용도로, 가변차선제까지 시행되고 있다. 이를 모르는 관광객은 벌금이나 사고를 내기 쉽다.
여담으로 1978년 7월 29일까지는 우리나라처럼 우측통행이었다. 730 참조.

2.7.2.1. 항공

본섬의 나하 공항 #이 있으며, 현 전체에 걸쳐 민간 국제공항이시가키섬(石垣島)의 파이누시마(南ぬ島) 공항#[50] 두 곳이다. 미야코 섬, 요나구니 섬 등 몇몇 작은 섬들에도 일본 국내선만 다니는 작은 공항이 있다.

2.7.2.2. 철도

종전 이후 철도 노선이 없었으나 2003년에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이 개통되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일본 최서단역, 최남단역 타이틀 동시 획득. 이런 것조차 없는 제주도는 그저 안습 한국에 비하면 요금이 무척 비싸지만 나하 시의 교통체증도 좀 심하기에 나하 시내 관광이라면 한번쯤 이용해 볼 만하다.

2.7.2.3. 버스

버스는 나하 버스, 류큐 버스, 토요 버스, 오키나와 버스에서 운영하고 있다. 나하 시를 중심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나하~나고 간 노선은 중간 행선지가 다르게 운행 되는 게 특징이다. 오키나와의 간판노선은 오키나와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111번 고속버스로 나하 버스센터와 공항을 접속하여 나고 시까지 가장 빠르게 이어준다.
나하 시를 벗어나면 버스망이 매우 부실하며, 배차간격도 길고 요금마저 살인적이기 때문에 오키나와 여행은 버스보다 렌터카가 여러 모로 훨씬 저렴하고 편리하다. 버스 관련된 패스는 나하 시내버스 한정이며 이마저 특정 회사에 국한되고 딱히 버스를 탈 필요성도 없기 때문에 정신건강상 버스 이용은 포기하는게 편하다. 진심으로 충고하는 데 자전거 탈거 아니면 렌트하는 게 더 싸다. 멀리 안 가고 호텔 주위만 다니는 거라면 모를까...

2.7.2.4. 도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인해 오키나와 자동차 전용도로실상은 톨비받는 고속도로가 있으며 제한속도는 80Km... 이지만 잘 지켜지진 않는다. 시속 120Km 정도로 달리는 차들도 흔하게 눈에 띈다. 심지어 160km 이상 밟는차도 가끔 보일 정도니.. 중앙선쪽이 추월차선이니 미리 비켜주도록. 그리고 여행객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속감시 카메라를 조심하자. 내비게이션이 알아서 카메라 위치를 알려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말자. 하지만 카메라 앞에 대빵 큰 경고문이 있고, 카메라도 실제로는 거의 켜 놓지 않는다는 말이 있으나 부정기적으로 가동시킨다. 따라서 과속은 금물이다. 게다가 '복면차'라고 불리는 토요타 크라운의 경찰도색이 되지 않은 흰색 세단(5002,7329)이 있는데, 실제로는 안에 경찰이 타서 과속차량이 눈에 띄는 즉시 잡히기 때문.잠복근무 중입니다, 고객님

현도(縣道) 58번이 오키나와 서해안을 끼고 뻗어 있으며 서해안 절경을 보면서 드라이브 할 수 있다. 58번 도로는 아예 관광자원이라는 생각에서인지 'ROUTE 58'이라는 표지판 디자인으로 티셔츠도 팔 정도. 오키나와 리조트와 관광지의 대다수가 이 도로변에 위치하여 렌터카 자유여행객은 거의 이 도로를 이용한다.

2.7.2.5. 렌터카

오키나와 여행시 중/북부로 이동 시에는 투어버스가 아닌 한 대중 교통 수단이 불편하다. 그런 연유로 통상적으로 일본 국내 관광객들도 오키나와 자유 여행시 렌터카 필수로 인식 되고 있다.[51] . 렌터카는 현지 로컬인 OTS와 일본 내 자동차 메이커 계열 렌터카 (도요타, 닛산, 타임즈(구 마츠다)), 일본 내 렌터카 전문회사 (닛폰, 오릭스, 스카이) 등이 치열하게 경합중. 렌터카 회사마다 나하 국제공항에서 거리가 다르니 참고할 것.


2.8. 오키나와 방언

오키나와 지역에 존재하는 방언으로는 과거부터 쓰여 오던 여러 류큐어의 방언 중 하나인 오키나와어와 현대에 성립한 새로운 오키나와 지역의 언어인 오키나와벤이 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2.9. 미디어에서의 오키나와

홋카이도처럼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며 수학여행(이쪽은 여름) 관련으로 자주 등장한다. 로컬라이징(번안/현지화)시엔 높은 확률로 제주도.[52] [53] 둘 다 양국의 최남단에 있는 섬이며 열대를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분위기와[54] 그로 인해 발달한 관광업, 그리고 안습한 역사(…)[55][56]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밖에도 음식의 간이 심심한 편이라던가 특산물로 감귤류[57]가 있다던가 하는 공통점까지 있다. 대표적으로는 아이돌 마스터의 가나하 히비키안녕하수꽈!라는 제주도 방언을 쓰는 것으로 번역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는 소설로 하이타니 겐지로의 『태양의 아이』란 책이 있다. 전후 오키나와인들의 상처와 치유에 관심이 있다면 꼭 한번쯤 읽어 보면 좋은 수작.

태평양 전쟁을 다룬 헐리우드 창작물에서는 오키나와 전투의 참혹함 때문에 특정 전투가 아닌 전쟁의 대부분을 다루는 태평양 전쟁 관련 창작물에서는 이오지마와 더불어 끝판왕급 위치의 배경으로 나온다.[58]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도 이곳을 배경으로 한 사건이 있다. 바로 오키나와에 있다는 고도 콘페키지마(감청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판 살육의 딥블루. 역시 열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건에 휘말리는 김전일 답다.

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의 속편 에우레카 세븐 AO에서는 대놓고 오키나와 독립 문제를 다루고 있어, 작중에서 오키나와 현은 '오키나와 제도 연합'이라는 독립국으로 일본에서 독립해 있다. 여기에 오키나와 사람이 아닌 주인공에 대한 경계와 배척의 분위기 역시 여과 없이 그려내고 있는 상황.

이를 두고 프로듀서타케다 세이지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며 또 온갖 욕을 다 먹고 있지만, 사실 이 시리즈의 중요한 주제가 '공존'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스토리 상으로 갈등 요소를 극대화시켜 내용을 쉽게 풀어나가기 위한 배경을 짰을 뿐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놀러갈게!에서는 아예 주요 배경이 오키나와이며, 등장인물 중 인간 상당수는 오키나와 사람이다. 작가인 카미노 오키나부터가 오키나와 출신이며, 작가 예명에서부터 오키나와 출신임을 느낄 수 있다..

그 여름에서 기다릴게에서 주인공들이 여름 방학 때 놀러가는 곳으로 등장. 여기를 다녀온 후 인물들의 관계가 많이 진전된다.

트러블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라라의 발명품으로 오키나와의 해수욕장으로 가려 했는데 도착한 곳은 오키나 별이었다(...) 이후 미카도 선생님이 구출그리고 고립되는 저스틴 안습

2013년 제64회 홍백가합전에서 오키나와에서 400km 떨어진 섬인 미나미다이토지마가 나왔다. "후루사토"란 곡에대해 생각해보았고, 전국의 초등학생+미나미다이토지마의 초등학생(미리 촬영한 것), 아라시가 곡을 불렀다.

이치하라 하야토, 이노우에 마오 등이 출연한《체케랏쵸》라는 영화의 배경도 오키나와. 극중 주인공들이 결성한 밴드 이름이 오키나와의 지역번호인 '098'이다.

2.10. 그 밖에

이 엄청나게 많으며 일본 최강의 독사인 하브의 서식지이기도 하다.[59]

게다가 이곳에서는 보르네오 등지에나 서식하는 대형 그리마가 서식하여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져다준다.

지리상 문제로 스포츠구단 등이 거의 없는 편이다. 오키나와를 연고로 NPB에 참가하는 야구구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한국과 일본 야구 구단들의 스프링캠프가 이 곳에서 많이 열리기 때문에 2월에는 연습경기를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더러 있다. 축구팀으로는 3부 리그격인 실업 축구리그 JFL에 참가하던 'FC 류큐'가 있었으나, 2014년 시즌부터 새롭게 창설된 정식 3부리그 J3리그에 참가하게 되어 프로구단으로 거듭났다. 농구팀으로는 '류큐 골든 킹스'[60]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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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제도 맨 끝자락 섬인 요나구니섬의 바다 밑에는 불가사의한 유적처럼 보이는 흔적이 있다. 요나구니 수중 유적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대 잠수장비를 갖고도 들어가기 힘든 깊이의 바닷속에 뜬금없이 집터같은게 있다(...). 길이는 750m, 폭은 1000m 정도 라고 하며 암석의 지질조사에 따르면 지반들은 적어도 5000년, 많게는 25000년 동안 물속에 침수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것이 인공적인 흔적인지 자연물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일본 본토와는 달리 오키나와와 서울의 실질 시차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서울특별시가 동경 126도 58분 41초, 오키나와 현의 최대 도시인 나하 시가 동경 127도 40분 45초로 사실상 한반도와 실질적인 시간이 같다.)

2010년대에 들어 인터넷 주소 정책이 바뀌면서 한 나라에 속하는 지역도 일정 요건만 채우면 최상위 도메인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의 분리 독립 운동이 있는 지역들을 상대로 도메인 장사하기[61] 그래서 이 지역을 위한 .okinawa와 .ryukyu 도메인의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 듯하다.#

2.11. 오키나와 현 출신자

우리에게 잘 알려진 류큐 출신 인물로는 아무로 나미에각트가 있다. 아무로 나미에는 기미가요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출신을 생각해 보면 기미가요 문제도 단순히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각트는 불렀잖아 나카마 유키에도 오키나와 출신.

그리고 ORANGE RANGE의 구성원들도 모두 류큐 출신. (이 때문에 이 그룹의 노래에는 류큐 방언이 꽤 자주 들어간다.) 건시뎅 2기 오프닝은 맡은 HIGH and MIGHTY COLOR도 류큐 출신이다.

2.11.1. 실존 인물

2.12. 독립 문제

현재까지도 종종 류큐로의 재독립을 운운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류큐 독립 운동 항목을 참조할 것.

2.13. 참고 항목

  • 삼별초: 패퇴한 삼별초가 류큐로 이주했다는 설이 있다. 물론 아직은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설이나 일부 고려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일은 확실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항목 참고.

  • 홍길동: 율도국이 오키나와의 부속섬이라는 설이 있다.

3. 키나와 시(沖縄市)

항목참조

2의 현에 있는 1의 섬에 위치한 도시의 이름으로, 나하에 이어서 오키나와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2010년 8월 1일 현재 나하 31만명, 오키나와 13만명). 하지만 한국에는 나고야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현 단락에서 설명했듯이 1974년 4월 1일에 고자 시(コザ市)와 미사토 촌(美里村)이 합병되어 만들어진 도시인데, 당시 고자 시는 2003년에 야마나시현의 나미알프스시라는 흠좀무한 지명이 생기기 전까지는 유일한 가타카나로 된 도시명이었다고 한다.

군사적으로는 미군 비행장이 데나초와 함께 걸쳐 있으며, 동시에 육상자위대의 주둔지이기도 하다. 또한 에서는 블러드 플러스의 무대로 나온다.

출신 인물로는 음악가이자 정치인인 나 쇼키치, 복화술로 유명한 코쿠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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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류큐어 오키나와 본도(沖縄本島) 중남부 방언 うちなあ를 한자로 훈차(訓借)한 것. 바다 앞에 친 줄에서 유래했다.
  • [2] 중국 간화자(간체자)로는 冲绳으로 표기한다.
  • [3] 일본 발음은 오키나와지마(おきなわじま, Okinawa-jima)이다.
  • [4] 일본의 해상보안청 해양정보국과 토지리원은 오키나와 섬을 정식 명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 [5] 나머지 4개는 혼슈, 큐슈, 시코쿠, 홋카이도이다.
  • [6] 당시 일본의 내각경(內務卿)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정대신인 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에게 1879년 3월 1일 제출한 제2차 류큐 처분에 관한 문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고 한다(현대 표기가 아니라 당대의 문어 표기이니 양해 바란다). "琉球藩ヲ廢シ、更ニ琉球縣ヲ被置候、此旨布告候事但縣廳ハ首里ニ被置候事". 여기서 류큐 번(일본이 제1차 류큐 처분 때 류큐 왕국을 강제로 일본 내 행정구역으로 바꾸면서 사용한 명칭)을 폐지하고 류큐 현(琉球縣)을 설치하자는 내용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 [7] 이 섬을 오키나와 섬이 아니라 굳이 오키나와 '본도'라고 부르는 것은 오키나와의 의미가 확장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오키나와 현의 여러 섬 중에서 본토 격인 섬이라는 뜻에서 本을 강조한 것. 만약에 행정구역의 이름이 류큐 현이 됐으면 오늘날 이 섬은 오키나와 섬으로만 불리고 있었을 것이다.
  • [8] 중국 간화자(간체자)로는 冲绳县으로 표기한다.
  • [9] 이전부터 있던 지명이 아니라, 1974년에 기존의 고자 시(コザ市)뭐요?와 미사토 촌(美里村)의 합병으로 생긴 도시이다. 명명 당시 나하시의 반발이 있었다고. 유사하게 행정구역 합병 등으로 사후에 현과 같은 이름을 갖게 된 도시는 이타마시 (이 쪽은 현청소재지긴 하지만 원래 사이타마의 유래와는 무관) 나 마가타시 등이 있다.
  • [1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슈리 지역은 나하의 일부로 아예 흡수됐다. 당연히 슈리 주민들이 강력 반발했다. 나하 문서 참고.
  • [11] 이곳은 2014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맞서 독립적인 행보를 보였고 끝내 승리를 거두어 유명해진 지역이다. 현재 이곳의 학교들은 일본군태평양 전쟁 중 저지른 잔학행위를 담은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12] 오키나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大和村(야마토손), 宇検村(우켄손) 등. 다만 이 지역도 류큐 문화권이다. 아마미 항목 참고.
  • [13]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소철'이다. 잎과 열매에 독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절대 사가미 철도가 아니다!
  • [14] 그러니깐 평상시에는 죽어라 차별해 놓고, 나중에 가선 이제 일본인이니깐 '죽어라'라는 진짜 황당한 명령을 내린셈. 죽을때까지 차별시킨건 둘째치고 자국민도 초개같이 던져버리는 당시 일본의 광증(狂症)을 볼 수 있다.
  • [15] 게다가 젊은 여자들을 강간(!)하기도 했다. 천하의 개쌍놈들..
  • [16] 심지어 외모가 되는 애들중에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7] 동중국해 포위망의 정중앙이므로 중국이 오키나와를 손에 넣을 경우 한국과 타이완을 손쉽게 양동공세로 밀어붙이는 게 가능하며, 한국과 대만을 손에 넣을 경우 일본과 필리핀도 무사할 수 없다. 사실상 오키나와를 포기할 경우 극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며 태평양 진출로가 생기가 된다.
  • [18] 출처는『미일동맹 : 안보와 밀약의 역사』
  • [19] 해당 페이지에서 'Facilities' 표의 미 공군미 해병대 항목을 보면 미군 기지로 인해 오키나와가 받고 있는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일간지《르몽드》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주일미군 약 41,000명 가운데 무려 25,000명이 오키나와에만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비교하기 무안할 정도로 거대한 혼슈 전역에는 고작 7,000여 명만 주둔하고 있는데 말이다!
  • [20] 바로 지금의 일왕 아키히토.
  • [21] 그래서인지 혁신정당이 사실상 망하다시피한 일본에선 그나마 혁신정당이 강한 지역으로 꼽힌다고 한다. 다만 최근 십 몇년 동안은 보수계가 현지사 자리를 차지했지만, 2014년 지사 선거에서 마침내 뒤집혔다.
  • [22] 『오키나와의 눈물』(메도루마 슌, 논형, 2013) 33쪽을 보면 저자의 부친이 히로히토가 어떤 축하연에서 하객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하는 걸 TV로 보고 "고맙습니다, 라고 해!"라고 격노했다는 부분이 있다. 장년층 이상의 오키나와 주민들이 '본토'와 덴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내는 상징적인 부분.
  • [23] 도쿄대 명예교수인 이시이 아키라의 분류에 따르면, 번국은 종주국의 제후가 파견돼 다스리는 변방국가이고, 속국은 자체 왕조가 있되 종주국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타입을 말한다고 한다. 이 양자가 혼재된 형태가 바로 번속국. 동아일보 2012년 7월 13일자 기사 참고.
  • [24] 2012년 4월 통계에 따르면 오키나와 현의 인구는 140만 1730명.
  • [25] 기적적으로 일반인 피해자는 전무했다.
  • [26] 이상의 자료는 2011년판 일본 방위백서를 참조한 책『오키나와와 평화』(2007)에서 참조했다.
  • [27] http://reuters.donga.com/bbs/main.php?no=21280&tcode=10101&work=view
  • [28] 세계일보 보도 참조 http://www.segye.com/Articles/NEWS/INTERNATIONAL/Article.asp?aid=20130428002417&subctg1=&subctg2=&OutUrl=naver
  • [29] 한편 단체 명칭에 민족독립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데, 공식적으로는 철폐되었다지만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열도 전체의 주민은 모두 '일본인'이라는 기치 하에 통합된 단일민족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체 명칭에 '민족독립'이라고 명기한 것은 오키나와 주민이 '일본인'과는 다른 별개의 민족으로, 자결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라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 된다.
  • [30] 동아일보 외신 다이제스트 보도http://news.donga.com/3/all/20130517/55214101/1
  • [31] 이전 대가로 약 3460억 엔( 3조 5,13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이전 비용도 일본 정부가 부담한다. 비용은 약 3조 엔 가량. 또 현 주민의 의견을 고려해 이전 대상지인 나고 시 헤노코(邊野古) 지역의 환경보전을 위한 조치도 강구하기로 했다고 한다.
  • [32] 1995년에도 미군의 아동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민심이 폭발해 기지 문제가 미국일본 양자에게 곤란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현지사였던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는 당초 주민들의 기지 폐쇄 입장을 지지하는 쪽에 섰다가 막판에 배신을 때렸다.그리고 당연히, 다음 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현 나카이마 지사도 현재로선 1995~96년 사이 오타 지사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뭔가 아주 강력한 외압이 들어간 거 아닐까?
  • [33] 오키나와 주민들에게는 정부의 '지역 개발' 논리가 식상한 것이, 1972년 일본에 '반환'된 이래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지역 관광자원 개발, 대규모 리조트 단지 건설 등을 지원해 왔지만 그로 인한 혜택은 토지개발업자 등 소위 '토건족(土建族)'에게 돌아가고 주민들에게는 별다른 수혜가 없었다. 여전히 오키나와는 '본토'에 비해 훨씬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으며, 지역 주민의 소득 수준도 일본 최하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가 40년 넘게 이어져 왔는 데 새삼스러운 '기지 유치를 통한 경제 개발'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 게 당연하다.
  • [34] 이쪽은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의 유신당이 우익 표를 많이 가져갔다.
  • [35] 이 사탕수수 농업은 사실상 사츠마번의 식민지 상태였던 메이지 유신 당시 사츠마 번의 자금원이 되었다.
  • [36] 지금도 주일 미군의 대부분이 여기에 주둔하고 있다. 오키나와인 학자 아라사키 모리테루에 따르면,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의 0.6%에 지나지 않는데 75%의 미군 기지가 오키나와에 있다."고 밝혔다. 우리가 잘 아는 주일미군의 절대다수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셈. 이쯤되면 차라리 주일 미군이 아니라 주류(駐琉) 미군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정도다.
  • [37] 애초에 오키나와 주민들이 1950년대부터 '본토복귀' 운동을 벌인 이유중 하나는, 일본으로 복귀하면 미군의 임의적인 군정(軍政)이 끝나고 미군기지의 축소, 폐지가 이루어질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본토의 미군기지를 감축하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오키나와 주민들의 희망을 묵살해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대우를 여지 없이 드러냈다.
  • [38] 유난히 일본의 골프 선수들 중에서는 오키나와 출신이 많은데, 이는 정규 골프장도 많지만 파3 골프장이 매우 많으며 회사원이나 택시 기사 같은 평범한 아저씨들도 시간이 나면 틈틈이 골프를 즐기러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 [39] 코가 장음인 こう이기 때문
  • [40] 대표적으로 대만 배우 금성무(일본명 카네시로 타케시)가 이 성을 쓴다. 참고로 금성무의 가계는 아버지가 오키나와 출신에 어머니가 대만인이다. 이거 보기 전까지 금성무의 성씨가 '금성'이 아니라 '금'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꽤 많았을 것이다
  • [41] 또는 킨죠인 경우도 있다. Kiroro의 멤버 킨죠 아야노가 이에 속한다.
  • [42] 타마시로인 경우도 있다. 역시 Kiroro의 멤버 타마시로 치하루의 경우가 이에 속한다.
  • [43] 오키나와를 비롯하여 가고시마현, 미야자키현 등 남부에 특이한 성들이 많다. 하지메(元), 아타리(仲), 고미가와(児美川), 시모시키료(下敷領), 히가시바루(東原), 오사(長), 하쿠(白), 류(龍) 등등. 특히 가고시마현 아마미오시마 이남지역이 특이한 성이 많은 편인데, 애초에 1609년 이전 이 지역도 일본영토가 아닌 류큐의 영토였으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이는 일본 쪽에서 의도적으로 오키나와 주민을 분리하고 차별하기 위해 일부러 '본토박이'들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성씨를 만들도록 했기 때문.
  • [44] 잘 알려진 '톤파'역시 오키나와에서 쓰던 무기. 현재는 개량을 거쳐 경찰봉으로도 쓰인다.
  • [45] 이 분은 후일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으로도 지내기도 했다.
  • [46] 정작 오키나와 저항의 노래였던 섬노래(島唄)는 일본 우익들이 대표곡으로 써먹는 안습한 상황이지만...
  • [47] 실제 경험담으로, 국제거리에서 회전초밥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다수의 영어 대화음이 들렸다. 당연히 주둔 미군 및 그의 가족이거나 외국인 여행객으로 생각했는데 웬 걸,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오키나와 어르신들과 좀 높아보이는 미군이라카더라.
  • [48] 일본의 미군기지 중 절대다수가 오키나와에 있고 때문에 주민피해가 극심하다. 이런 상태에서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 계속 주민의 의향을 무시하고 접근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본토 주민들의 태도는 오키나와인에게 심각한 피차별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애초에 일본 제국 시기부터 일본인들은 오키나와 출신자들을 노골적으로 차별대우 해서 식민지의 조선인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오키나와 전쟁 중에는 주민이 일본군 병사에게 학살당하거나 자살을 강요당한 사례도 많다. 게다가 최근에는 교과서까지 꾸준히 고쳐서 학살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 [49] 남국의 에메랄드빛 바다로 표현되는 이런 물빛은 날씨빨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 날의 운도 강하게 작용한다.
  • [50] 2013년에 이시가키 시내에 있던 옛 공항을 없애고 만든 신공항. 여름 성수기 한정으로 타이완인천국제공항으로 운항
  • [51] 심심치 않게 한국의 렌터카 '허' 번호판에 해당하는 '와(わ)' 번호판을 볼 수 있다.
  • [52] 단, 아즈망가 대왕 투니버스판과 프레쉬 프리큐어! 국내판에서는 진짜로 오키나와 여행으로 처리했다. 상세는 해당 항목 참조.
  • [53] 정반대로 크레용 신짱처럼 홋카이도를 제주도 고지대에 대입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실제로도 고도가 높아 추운 지역홋카이도랑 더 비슷한 편. .한반도 본토보다도 눈이 더 많이 오기도 하고.
  • [54] 특히 오키나와는 100여년 전만 하더라도 아예 다른 나라였으니...
  • [55] 제주도도 오키나와처럼 태평양전쟁 때 병참기지로 이용되었다, 거기에 제주도민들 역시 역사적인 박해(제주도 4.3 사건 등)들로 인해 '본토'에 미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니...
  • [56] 게다가 군사기지와 관련된 지역주민과 정부 간 극심한 마찰을 겪고 있다는 묘한 상황까지... 물론 제주도 해군기지는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해군기지지 미군기지는 아니다. 그런 논란이 있을 뿐...
  • [57] 제주도에는 한라봉, 오키나와에는 '탕캉'과 '시쿠와사'
  • [58] 더 퍼시픽,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
  • [59] 하브는 일본 남방 도서지역에서 흔한 독사이다. 실제로 사건사고가 많아서, 하브를 잡아 관청(동사무소 등)에 가져가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아마미오시마 기준으로 마리당 3,500엔~4,000엔. 또한, 때로는 하브를 길들여(...) 하브쇼를 하는 곳도 있다.
  • [60] http://www.okinawa-basketball.jp/
  • [61] 분리주의와 별 관련이 없는 지역들도 이런 도메인들을 등록하고 있다. 예를 들면 .london이라든가 .paris라든가 .tokyo라든가... 따라서 꼭 도메인을 등록한다고 분리주의와 관련 있는 건 아니다.
  • [62] 킨죠 테츠오의 친구이자 각본가. 오키나와 전투의 직접적인 체험자이기도 하다.
  • [63] 결혼 못하는 남자, 호타루의 빛등에 출연한 여배우.
  • [64] 여성 패션잡지 논노의 모델. 오키나와 여자는 모두 예쁘다는 환상을 아무로 나미에와 함께 심어줬다고...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라, 그게 말이 되겠는가.
  • [65] 각본가. 울트라 시리즈의 기초를 닦은 사람.
  • [66] 단, 지금은 탈퇴한 멤버인 키타오 카즈히토는 오사카 출신이다.
  • [67] NPB와 MLB에서 활약한 강속구투수, 아버지는 누군지 모르는 오키나와 주둔 미군,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효고현에서 성장
  • [68] 배경이 오키나와가 아니지만. 오키나와의 방언으로 주인공히로인의 이름으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