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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레이더스

last modified: 2015-04-10 16:33:43 Contributors


[1]
오클랜드 레이더스
Oakland Raiders
창단 1960년 (AFL 창립멤버)
NFL 가입 1970년 (AFL-NFL 합병)
연고지 캘리포니아오클랜드
구단 연고지 변천 오클랜드 (1960~1981, 1995~)
로스앤젤레스 (1982~1994)
구단명 변천 오클랜드 레이더스 (1960~1981, 1995~)
로스앤젤레스 레이더스 (1982~1994)
홈 구장 케자르 스타디움 (1960)
캔들스틱 파크 (1960~1961)
프랭크 유엘 필드 (1962~1965)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1982~1994)
O.co 콜리세움[2] (1966~1981, 1995~)
구단주 마크 데이비스 (Mark Davis)
사장 마크 바데인 (Marc Badain)
단장 레지 맥켄지 (Reggie McKenzie)
감독 잭 델 리오 (Jack Del Rio)
홈페이지
우승 : 4회
슈퍼볼 우승 1976 (XI), 1980 (XV), 1983 (XVIII)
AFL(1회) 1967
컨퍼런스 우승 : 5회
AFL West(1회) 1968
AFC(4회) 1976, 1980, 1983, 2002
디비전 우승 : 15회
AFL West (3회) 1967, 1968, 1969
AFC West (12회) 1970, 1972, 1973, 1974, 1975, 1976, 1983, 1985, 1990, 2000,
2001, 2002
플레이오프 진출 : 21회
AFL (3회) 1967, 1968, 1969
NFL (18회) 1970, 1972, 1973, 1974, 1975, 1976, 1977, 1980, 1982, 1983,
1984, 1985, 1990, 1991, 1993, 2000, 2001, 2002

NFL미식축구팀. AFC 서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오클랜드.

NFL에서 가장 시끄러운 팀 중 하나. 2010년대 들어서는 NFL판 꼴데.

Contents

1. 시끄러운 창단, 더 시끄러운 구단주
2. 존 매든 시대
3. LA 이전
4. 오클랜드 컴백
5. 존 그루덴의 저주
5.1. 2013년 시즌
5.2. 2014년 시즌
5.3. 2015 시즌
6. 기타

1. 시끄러운 창단, 더 시끄러운 구단주

AFL의 8번째 신생팀 창단멤버로 들어왔지만 사실 시작부터 시끄러웠다. 창단하고자 했던 도시 오클랜드는 이미 옆동네인 샌프란시스코에 NFL의 명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가 있는 마당에 뭐하러 AFL팀까지 받느냐는 미온적인 반응이었지만 오클랜드에 팀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서인지 AFL 창립 직전까지 이름도 못 짓고 미네소타에서 대기타고 있던 구단[3]을 억지로 끌어와서 같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차저스가 캘리포니아에 구단 끌어오면 구단 해체한다고 반대하는걸 무시하고 덜컥 오클랜드에 앉혀버린다. 이때문에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시작은 공동구단주와 도시, 그리고 AFL과 주변 프랜차이즈간의 알력다툼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 바람잘날 없는 레이더스의 시작은 더욱 시끄러운 인물의 등장으로 격화되었다. 바로 미국의 대표 막장 구단주 故 알 데이비스. LA 차저스의 어시스턴트 코치를 지냈던 알 데이비스가 당시 중심이 없던 레이더스 공동구단주들 중 1명의 위임을 받아 임명되면서 레이더스는 그가 실무와 동시에 레이더스의 헤드코치로 현장에서 풋볼팀을 지휘한다. 알 데이비스의 현장 감독능력은 상당히 탁월해서, 창단 3년동안 최하위였던 레이더스는 데이비스의 부임 첫해 10승 4패의 성적을 내고 3년 통산 23승 16패를 기록한다. 알 데이비스는 1966년 AFL의 커미셔너로 임명되면서 레이더스를 떠났지만 두달도 안돼 AFL과 NFL의 통합으로 인해 커미셔너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데이비스는 레이더스의 지분을 구입해 공동구단주 그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며, 그 안에서 정치적으로 자기 세력을 불려나가더니 결국 레이더스의 대표 구단주가 된다.

그리고 레이더스의 구단주 대표가 된 알 데이비스는 특유의 독선적이고 시끄러운 성질머리와 기행으로 레이더스를 이리저리 휘두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전히 다른 구단 주주들과 마찰이 잦고 아래 언급될 LA 이전등 수많은 사건사고로 인해 경영권 문제로 고소까지 주고받는 난잡한 구단 운영에도 불구하고 팀 전력은 NFL 가입과 동시에 치고 올라가 슈퍼볼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 되었다.

2. 존 매든 시대


안팎으로 시끄럽던 레이더스를 강팀으로 만든 헤드코치는 바로 NFL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헤드코치 존 매든. 1960년부터 대학팀 코치를 하다가 1967년 레이더스의 라인배커 코치로 올라온 존 매든은 1969년부터 본격적으로 레이더스의 헤드코치를 맡게된다. 알 데이비스가 공동구단주겸 GM의 역할로 올라온 뒤 존 매든의 레이더스는 이때 뽑은 센터 짐 오토,가드 진 업쇼,태클 아트 쉘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모두 헌액된 공격라인맨 3인방과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와이드 리시버 프레드 빌렛니코프와 타이트엔드 데이브 캐스퍼, 키커 조지 블랜다, 수비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코너백 윌리 브라운, 라인배커 테드 헨드릭스등 명예의 전당급 스타가 즐비한 라인업에 쿼터백 대릴 라모니카,켄 스테이블러가 이끄는 안정된 공격진으로 공수 양면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때문에 1970년대 AFC의 플레이오프는 AFC 동부지구에 소속된 밥 그리시와 노네임 디펜스의 마이애미 돌핀스, AFC 중부지구에 테리 브래드쇼와 스틸커튼 디펜스를 자랑하는 피츠버그 스틸러스, AFC 서부지구는 매든이 있을때는 독보적인 레이더스의 1위 독주로 인해 항상 AFC 챔피언쉽은 스틸러스,돌핀스,레이더스 3강이 서로 물고 물리며 대결하던 구도. 그리고 1976년에는 AFC 챔피언쉽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꺾고 스틸러스의 3연속 슈퍼볼 진출을 저지했고, 제11회 슈퍼볼(Super Bowl XI)에 진출하여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물리치고 창단 첫 슈퍼볼 우승의 영예를 안는다. 바이킹스는 또 우승에 실패했다.

존 매든은 지금도 코치로는 최연소 100승 기록과 통산 승률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1979년 이후에는 해설자로 전업하여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해설자로 명성을 떨치며, 자신의 이름을 건 미식축구게임 EA 매든 NFL 시리즈 게임을 런칭하여 지금까지 이어오는 등 스포츠 해설자로는 미국에서 본좌자리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2009년 이후로는 방송 은퇴.

존 매든이 1978년 시즌 마치고 헤드코치에서 물러난 뒤에도 레이더스는 줄곧 강팀의 자리를 유지했다. 후임 톰 플로레스 헤드코치가 팀의 전력을 잘 지켜냈으며 켄 스테이블러가 팀을 떠난 뒤 후임 쿼터백인 짐 플렁켓이 빠르게 안정을 찾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수비엔드 하위 롱[4]등의 전력보강이 이어지며 1980년 제15회 슈퍼볼(Super Bowl XV)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3. LA 이전

그러나 이미 창단 당시부터 시큰둥했고 그 당시도 크게 돈이 없었던 오클랜드시는 우승도 했겠다 홈구장 콜로세움에 고액 좌석을 추가하겠다는 알 데이비스의 요청을 거부했고 열받은 알 데이비스는 마침 1984 LA 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던 LA 메모리얼 콜로세움이 LA 램스의 홈구장 이전[5]과 대학팀 UCLA의 홈구장 이전[6]으로 비어있는 걸 알고 1982년 LA 메모리얼 콜로세움과 임대계약을 맺고 LA 이전을 선언한다.

처음 시도는 1980년이었는데 이 시도는 LA 램스의 영업구역 침범으로 간주되어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저지당한다. 그러나 알 데이비스는 이에 항의해 NFL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해버린다. 2년여에 가까운 재판에서 알 데이비스가 승소[7]하자, 애초에 오클랜드 눌러앉기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NFL 사무국측은 몇몇팀이 투표에 불참한 가운데 22-0의 만장일치로 LA 이전을 승인했고 오클랜드는 LA로 이전하게 된다.

이전 후에도 1980년 우승 전력을 유지한 레이더스는 러닝백 자리에 텍사스 대학에서 맹활약한 마커스 알렌이 가세하면서 전력이 더 올라갔고 1983년 제18회 슈퍼볼(Super Bowl XVIII)에서 마커스 알렌의 맹활약으로 워싱턴 레드스킨스를 대파하고 통산 3번째 슈퍼볼 우승을 차지한다.

1983시즌이 끝나고 점차 주전들의 노쇠화로 리빌딩 시점이 다가오면서 헤드코치 톰 플로레스는 구단 프론트로 영전하고 새로운 헤드코치를 찾던 레이더스가 덴버 브롱코스출신의 공격 코디네이터 출신 마이크 섀너핸을 주목하고 그를 영입하는데... 이때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창단 이후 23년 동안 줄곧 알 데이비스가 골라 레이더스에서 코치를 시작한 어느정도 자기사람 위주의 인선을 해왔던 데이비스가 처음으로 외부에서 데려온 마이크 섀너핸이 자기 말을 안 듣기 시작한 것. 이미 10년 넘게 대학교에서 코치 경력을 쌓았고 NFL 공격 코디네이터로 4년이나 활동했으며 캐릭터가 강한 마이크 섀너핸의 자존심을 알 데이비스가 멋대로 휘두르자 제대로 충돌한 것. 팀의 GM겸 구단주와 헤드코치가 충돌하자 팀은 급격히 난장판이 되었고 이런 싸움에서 흔히 그렇듯 구단주 알 데이비스가 섀너핸을 일방적으로 잘라버렸다. 그렇게 1989년 시즌 중간 헤드코치가 교체되었던 레이더스는 이후 팀의 레전드 공격라인맨이자 알 데이비스에 충성하던 당시 어시스턴트 코치 아트 셸을 헤드코치로 임명해 1994년까지 시즌을 치른다. 하지만 그당시는 댈러스 카우보이스,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같은 NFC팀의 초 강세에다 AFC에는 버팔로 빌스라는 초강팀이 있었기 때문에 슈퍼볼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4. 오클랜드 컴백

1995년 시즌을 마치고, 알 데이비스는 다시 오클랜드 이전을 발표한다. LA 메모리얼 콜로세움과 임대계약이 종료되어서 다시 오클랜드의 콜로세움으로 홈구장을 옮기고 오클랜드 레이더스로 출발한다는 내용의 발표는 알 데이비스가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과 함께 역시 LA는 NFL팀 키우기 힘든 도시(정확히는 땅이 꽉차서 새 구장 지을 데가 없는 도시)라는 증명만 남긴 셈이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오클랜드에 돌아온 레이더스는 1998년 당시 35세에 불과했던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젊은 공격 코디네이터 출신 존 그루덴을 영입한다. 35세로 몇몇 선수들보다도 어린 나이의 헤드코치였지만 깡다구가 남다르고 자기만의 전략에 충실했던 존 그루덴은 저니맨으로 떠돌던 쿼터백 리치 개넌을 영입하고, 명예의 전당 헌액이 예약되어있던 베테랑 리시버 제리 라이스를 영입하고 공격진을 완전히 재편해 팀을 다시금 강팀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완벽하게 강팀을 만든 오클랜드 레이더스는 2001년 AFC 챔피언쉽에 올라서 톰 브래디가 이끄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상대하는데…….


눈이 펄펄 쏟아지던 질레트 스타디움 원정 경기 막판에 레이더스의 코너백 찰스 우드슨의 블리츠와 쌕이 성공하면서 브래디가 공을 놓쳐서 펌블이 일어났지만, 쿼터백이 패스의 의사가 있어서 공을 들어올린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린 것은 패스 실패로 간주한다라는, 후일 턱 룰(Tuck Rule)이라고 불리는 판정으로 인해 턴오버가 번복이 되었고 그것이 결정타가 되어 패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때 논란의 여지가 있던 판정으로 석패한 레이더스의 알 데이비스는 어처구니 없게도 4년동안 팀을 잘 이끌던 헤드코치 존 그루덴을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에 드래프트 지명권과 현금을 받고 트레이드 해버린다. 당시 스타급 선수들의 폭풍영입러시덕에 꽉 차버린 샐러리캡해결이라는 이유때문인데, 알 데이비스의 독단적인 이 결정은 어처구니 없게도 1년만에 바로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5. 존 그루덴의 저주

존 그루덴을 버커니어스로 보낸 다음해인 2002년 공격 코디네이터 빌 캘러핸을 헤드코치로 앉혀서 뉴욕 제츠테네시 타이탄스를 연파하고 1984년 이후 18년만에 제37회 슈퍼볼(Super Bowl XXXVII)에 올라서는 데 까지는 성공했다. 그런데 슈퍼볼의 상대는 다름아닌 알 데이비스가 트레이드 해버린 존 그루덴이 헤드코치로 있던 탬파베이 버커니어스. 전형적인 창과 방패의 대결로 흥미를 모았으나 4년동안 자기가 만든 팀을 상대한 존 그루덴은 오클랜드 레이더스의 공격진을 손바닥 보듯 잘 알고 있었고, 당해 시즌 MVP인 레이더스 쿼터백 리치 개넌이 5개의 인터셉트를 범할정도로 강력한 수비로 압박해 48:21 대승을 거두며 37회 슈퍼볼이자 개인 첫 슈퍼볼 우승의 영예를 자기가 만들어놓고 간 팀 상대로 거둔다. 이후 존 그루덴은 버캐니어스에서 6년간 헤드코치로 있다가 2008년 사임하고 2012년부터 2020-10-26까지 ESPN의 먼데이 나잇 풋볼의 해설자를 맡고 있다.

2001년 아쉽게 슈퍼볼 진출에 실패하고 2002년에는 자기가 트레이드 해버린 헤드코치에게 1년만에 부메랑을 제대로 얻어맞은 레이더스는 결국 지름신의 대가인 샐러리캡 오버라는 폭탄을 맞고 주축 선수들을 줄줄이 방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을 영입할때 쓴 매물이었던 신인 드래프트 픽은 그대로 다른팀으로 가서 신인 보강이 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신인 보강때 알 데이비스의 간섭때문에 제대로 된 신인 지명에 실패한 여파가 누적되면서 레이더스는 나락에 빠져버린다. 때문에 존 그루덴의 후임 헤드코치로 올랐던 빌 캘러핸은 짤리듯 네브라스카 대학교로 옮겨가고 그 후에 영입한 헤드코치들은 하나같이 70먹은 노인네 알 데이비스의 전횡에 휘둘리며 짤리거나 단물만 빤뒤 도망가거나 하는 식으로 팀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하지만 고령이었던 알 데이비스는 2011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 자리는 아들 마크 데이비스가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40세의 젊은 헤드코치 데니스 알렌으로 채워 팀 재건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주전 쿼터백 카슨 파머의 영입을 위해 질러댄 드래프트픽 퍼주기와 이런저런 누적된 악성계약과 먹튀들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

5.1. 2013년 시즌

작년에 꼴찌를 다투던 지구 내 라이벌 캔자스시티 치프스가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인 덕분에 나홀로 AFC 서부지구의 호구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문제가 많았던 쿼터백 카슨 파머를 애리조나 카디널스로 내보내면서 새로이 주전 쿼터백이 된 터렐 프라이어는 마이클 빅을 연상시킬 정도로 발 빠른 쿼터백 이지만 정작 패싱 능력은 대학 수준에도 못 미치는 막장급. 쿼터백의 러싱시도와 패싱시도가 거의 비슷할 정도니 이건 그냥 러닝백이 쿼터백 자리에 하나 더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게 맞을 듯 싶다.

패싱공격이 리그 꼴지를 기록할 것이 확실히 되는 가운데, 결국 2013년도 수비의 힘으로 시즌을 이끌어 나갈수 밖에 없지만 지구라이벌 세 팀 중에 이 컨퍼런스 1, 2위를 다투고 있고 그나마 남은 한 팀도 시즌 중반까지 5할이상 승률을 기록하면서 와일드 카드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지라... 그나마 시즌 중후반 이후 지구내 라이벌인 샌디에이고 차저스가 승률 5할 밑으로 떨어지면서 위안이라도 삼을까 했더니 마지막 주에 기적적으로 AFC 플레이오프의 막차를 타면서 배신을 때리는 바람에 지구 라이벌 3팀이 모두 플옵에 진출한 가운데 홀로 남겨지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했다. 영원히 고통받는 레이더스

5.2. 2014년 시즌

11주차까지 무승 가도를 달렸던 2014년 0승 클럽 최후의 생존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잠시 눈물좀 닦고.

12주차 경기에서 캔자스시티 칩스에게 경기 막판 터치다운으로 간신히 재(!)역전승(그렇다, 리드하던 경기를 뒤집히고 그대로 역전패로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을 거두고 가까스로 0승 클럽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했다.

그런데 14주차에는 샌프란시스코를 압살하며 2승째를 올렸다! 뭐야 이거......

또 16주차에는 버팔로 빌스를 이겨놓는다. 이로써 3승.

그리고 어떻게되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시즌을 3승 13패로 끝내놓는다.

레이더스는 현 구장인 콜로세움과의 계약이 올 시즌을 끝으로 만료되고 구장의 노쇠화가 온다는 점 등 때문에 올 시즌을 끝으로 연고이전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팀으로 손꼽히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샌안토니오가 가장 유력한 연고이전 도시로 꼽히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포틀랜드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 여러가지 사정으로 보았을때 오클랜드 시가 새 구장 건설 및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지 않는 한 오클랜드 레이더스라는 이름은 올 시즌을 끝으로 종료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더스는 차저스와 함께 LA 근교 카슨이라는 도시에 새 구장을 짓는데 협력하기로 발표하였다. 이로서 이변이 없는이상 레이더스는 오클랜드를 떠나게 될듯. 2015 시즌이냐 2016 시즌이냐만이 남을 듯 하다.

5.3. 2015 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덴버에서 디펜시프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젝 델 리오가 선임되었다.

6. 기타

  • 구단주 알 데이비스의 진상 행각에 대한 분석은 크게 한 줄로 요약된다. "헤드코치 그거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 창단 직후 헤드코치로 좋은 성적을 냈으며, 존 매든 시대에는 GM으로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자신감때문인지 팀이 조금만 삐걱대도 내가 하고만다라는 간섭으로 현장을 힘들게 했다. 그의 간섭은 단순히 팀 전력보강문제를 떠나 직접 선수를 기용하라 마라 어깃장을 놨다. 대표적인 사례가 팀의 레전드 러닝백 마커스 알렌. 1983년 MVP에 선정되고 슈퍼볼 18의 우승에도 기여한 마커스 알렌이 1990년 FA를 앞두고 고액연봉을 요구하자 그를 클럽하우스의 암적 존재로 간주하고 헤드코치의 의사도 무시하고 강제로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을 정도. 헤드코치 아트 쉘이 강력하게 알 데이비스를 만류하여 완전히 폐업하진 않았지만 마커스 알렌은 결국 1992년 팀에서 방출되고, 자존심이 크게 상한 33세의 마커스 알렌은 캔자스시티 치프스에 입단해 러닝백으로는 환갑의 나이에 가까운 37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결국 명예의 전당에는 캔자스시티 치프스 모자를 쓰고 들어갔다. [8]

    알 데이비스는 기존 선수운영도 모자라 신인 지명에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2001년에는 얼마든지 싼값에 구할 수 있는 포지션인 키커에 꽂혀서 1라운드 지명권을 키커에 쓰는 뻘짓[9]을 저지르는가 하면 2007년 LSU출신 듀얼스렛 쿼터백 자마커스 러셀에 대해 현장에서는 먹튀 가능성이 높은 타입이라 거부했지만 러셀에 꽂혀서 지명을 강행한 뒤 먹튀가 되자 헤드코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민폐짓까지 저질렀다.

    그 외에 헤드코치들과 싸운건 수도 없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맨 위에 나왔던 마이크 섀너핸 前 워싱턴 레드스킨스 헤드코치. 특히 시즌중에 그를 자르면서 풀시즌 계약이 되어있던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억지를 부려서 섀너핸은 그에게 앙심을 품고 레이더스 전이라면 지금도 이를 갈고 경기한다. 그래서 2000년 덴버 브롱코스에 있을때는 주전 쿼터백 브라이언 그리시(밥 그리시의 아들이자 톰 브래디의 미시간 대학교 2년 선배)가 오클랜드 레이더스와 MNF 경기 전반때 어깨가 탈구되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레이더스와의 경기를 이기려고 억지로 그리시를 풀로 뛰게 해 경기는 이겼지만 6주 결장후 어깨가 망가져 결과적으로 커리어를 아작낼 정도.[10]

  • 알 데이비스가 구단 내에서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구단이 주식회사도, 유한회사도 아닌 합자회사(limited partnership company)인 점에 기인한다. 한마디로 무한책임사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알 데이비스 일가의 개인회사 비슷한 구조. 미국의 4대 메이저 프로 스포츠 리그 구단 중 유일한 합자회사이다. 주식을 공개하든 안하든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고 있는 다른 구단과는 다른 부분. 물론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만 있다면 구단이 꼭 주식회사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알 데이비스는 합자회사의 특성을 이용하여 구단의 지분은 소유하고 있으나 유한책임사원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다른 파트너들의 간섭을 차단하는 정치질로 구단을 자신의 개인 소유물인 양 좌지우지, 쥐락펴락 하며 막장짓을 일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합자회사로서의 구단의 특성은 레이더스를 개막장으로 전락시킨 데에 기여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알 데이비스는 무한책임사원의 지위를 팀운영을 내 맘대로 하는 데만 썼지 횡령이나 배임 등 다른 범죄행위에 악용하지는 않았다는 점(...).
    구단 소유구조의 측면에서 레이더스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구단은 그린베이 패커스이다. 패커스는 주식회사이면서 지분을 그린베이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형태이다. 따라서 패커스에는 경영진만 있고 특정한 구단주가 없어서 개별 구단주가 독단적인 결정을 밀어붙이면서 전횡을 일삼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다.[11]

  • 팀 로고도 그렇고 콜로세움 동네 주변 이미지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NFL에서 가장 강성에 터프한 팬덤을 자랑한다. 웬만한 훌리건들 저리가라. 팀 컬러나 스타일이 그래서인지



    현실세계로 워프한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들(...)



    본격 DMC의 미식축구 버전(...) 무슨 데스메탈밴드 콘서트장을 방불케하는 응원단의 모습. 미식축구계의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이라 카더라.





    이들이 모여있는 응원단 좌석을 더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특히 AFC 서부지구의 라이벌 팀들과의 경기 때면 구장 주차장에 임시 감옥을 갖다놓고 테일게이팅을 하면서 원정응원 온 상대팀의 팬들을 잡아서 감금하기도 한다(...). 체험해보고 싶으면 덴버 브롱코스의 유니폼을 입고[12] 이들이 있는 곳을 어슬렁거려보자. 이렇게 해준다.



    물론 장난이니 정색은 하지 말고 적당한 수준에서 같이 놀아주는 센스는 필수.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팬에게는 공공의 적. 오클랜드로 이전한 뒤 한 번도 안 옮기고 7~80년대 황금시대를 지내며 시의 역사를 빛내준 애슬레틱스임에도 불구하고 레이더스가 다시 복귀한다고 하자 냉큼 콜리세움을 양보시켜주면서 찬밥신세가 된 상태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새 구장도 안 지어주고 지원도 안 해주면 인근의 산호세 또는 프리몬트로 연고지 이전할거라고 땡깡치는 중이다. 오클랜드시도 레이더스만 있으면 된다는 입장인 듯하기 때문에 MLB의 승인만 떨어지면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레이더스는 죽만 쑤고 있고, 오히려 나가겠다는 애슬레틱스가 잘나가고 있는 형편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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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블랙&실버&화이트의 이 로고가 NWA시절 닥터드레,아이스큐브, 이지E가 온몸에 걸치고 활동했기 때문에 힙합계 쪽에선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아울러 일부 미국 양아치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 [2]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홈구장 공유중.
  • [3] 처음에는, 그린베이 패커스를 견제하고 미국 북부지역에 손을 뻗치기 위해 미네소타를 물색했지만 NFL이 재빨리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창단하면서 시장을 선점했다. 이 때문에 어쩔수 없이 북부지역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 [4] 2012년 현재 NFL네트워크에서 해설자로 일하고 있으며 그의 큰아들 크리스 롱은 아버지와 똑같은 수비엔드로 2008년 세인트루이스 램스에 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입단했다. 아버지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 [5] 콜로세움에서 MLB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의 홈구장이었던 애너하임 스타디움으로 이전뒤 결국 LA를 뜨고 세인트루이스행
  • [6] 패서디나에 위치한 로즈보울.
  • [7] 여담이지만, 미국의 풋볼 독립리그인 USFL의 시작이 바로 이 알 데이비스의 승소덕이다. 그리고 알 데이비스는 1986년 USFL의 운영에도 참여한다.
  • [8] 아트 쉘 역시 오클랜드 레이더스에서만 15년간 선수생활을 하고 프로볼에만 8번 뽑혀 명예의 전당에도 들어간 명 오펜시브 라인맨 출신의 구단 OB이다. 곧 이 팀에서 선수-코치-감독으로 잔뼈가 굵은 레이더스의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감독이었음에도 의견이 무시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 [9] 키커항목의 사진에 나와있는 그 키커다. 세바스티안 자니코우스키. 2014-2015년 시즌까지 레이더스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하며 한동안 최장거리 필드골 기록을 보유하는 등 팀의 키커로 오랫동안 모습을 보이자 15년이 지난 이제서야 1라운드로서도 괜찮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 소수에서부터 나오고는 있으나... 참고로 NFL에서 가장 '위험한' 뚱보 10걸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키커 '주제에' 체중이 250파운드 = 113Kg(...) 그래서 다른 키커와는 달리 리터너의 태클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든다.
  • [10] 그리고 그 이후 그리시의 부상이 심각해서 실력을 제대로 내기 힘든걸 알면서도 보상차원에서 6년 3900만달러의 장기계약을 체결해 그리시에게 큰 돈을 주었다. 섀너핸이 GM을 겸임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보상차원의 일. 그리고 그리시가 예측한 그대로 실력을 못내자 2년만에 잘라버렸다.
  • [11] 대부분의 NFL 팀은 주식회사라도 상장이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최대지분을 가지고 있는 구단주의 입김이 강한 편이다.
  • [12] 존 엘웨이 유니폼이면 더 특효약. 초창기에는 브롱코스가 레이더스의 호구였으나 존 엘웨이 입단 후 관계가 역전되어 마이크 섀너핸이 감독을 맡은 시절에는 레이더스가 브롱코스의 호구노릇을 하는 바람에 AFC 서부지구 팀 중에서도 특히 브롱코스를 더 미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