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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

LG 트윈스 No.2
오지환(吳智煥)
생년월일 1990년 3월 12일
신체 186cm, 80kg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초-자양중-경기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9년 드래프트 1차 지명(LG)
소속팀 LG 트윈스(2009 ~ )
응원가
등장곡: 김바다《Moonage Dream》[1]
배치기《반갑습니다》[2]
타격시: 박진영《너의 뒤에서》[3]

LG 트윈스 등번호 9번
이병규(1997~2006) 오지환(2009) 이병규(2010~ )
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광삼(2009)[4] 오지환(2010~2011) 이병규(2012~ )
LG 트윈스 등번호 52번
이범준(2010~2011) 오지환(2012) 손주인(2013~ )
LG 트윈스 등번호 2번
유강남(2011~2012) 오지환(2013~ ) 현역

등번호 컬렉터. 2014년 기준으로 입단 6년차인데 벌써 달아 본 등번호만 4개다.[5]

Contents

1. 커리어
1.1. 아마추어/프로 입단
1.2. 2009 시즌
1.3. 2010 시즌
1.4. 2011 시즌
1.5. 2012 시즌
1.6. 2013 시즌
1.7. 2014 시즌
1.7.1. 포스트시즌
1.8. 2015 시즌
2. 플레이 스타일
3. 연도별 성적
4. 기타


1. 커리어

1.1. 아마추어/프로 입단

전라북도 군산시에서 태어났으나 군산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 문제로 인해 야구를 그만 둘 뻔했다가 어쩔 수 없이 서울특별시로 전학을 갔다. 자양중학교 재학 중에 다리를 찢어 포구하는 1루 수비로 유명했던 OB 출신 원년 1루수 '학다리' 신경식 당시 감독이 그를 발굴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원래 내야수였으나 경기고의 에이스였던 최원제장충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투수도 겸업했다. 마운드에 선 뒤부터는 점차 비중이 투수 쪽으로 옮겨가야 했다고 맞을 듯. 고교야구대회 결승전까지 대부분의 이닝을 소화하며 올라가기도 했고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에 주장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고교 무대에서는 허경민(두산), 안치홍(KIA), 김상수(삼성)과 함께 1990년생 4대 유격수에 포함되었다. 안치홍KIA 타이거즈 입단 후 3루수로 잠시 뛰다가 붙박이 2루수가 되었고 김상수는 초반 활약 이후 간염으로 이탈, 허경민은 두산의 두터운 내야 뎁스를 뚫지 못하는 관계로, 공교롭게 국내에서는 2010년 들어 대놓고 주전 자리가 고정된 오지환만 유격수로 뛰는 듯했다. 국내외 통틀어서는 이학주도 포함될 듯.[6] 그리고 삼성의 원 주전 유격수 박진만의 급격한 노쇠화로 김상수도 유격수로 정착하게 된다.

2008 시즌 종료 후 실시된 드래프트에서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에 LG 트윈스와 계약하여 입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수로서 뛰어난 오지환을 투수진 강화를 위해 뽑았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스카우터였던 서용빈 코치는 순수하게 타격 재능만 보고 뽑았다고 한다. 입단 직후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에게 "고등학교 때 유격수뿐만 아니라 투수로도 나선 탓에 기본기가 부족하다. 다소 투박하지만 뛰어난 야구 센스를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7] 팀에서는 그 기대치를 반영하여 타자 전향을 포기한 김광삼에게서 등번호 7번[8]을 빼앗아서(…) 오지환에게 달아줬다.

1.2. 2009 시즌

2009년에는 주로 2군에서 뛰며 타율 0.312 12홈런 60타점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실책 14개로 1위를 기록하는 등, 수비가 불안했다. 1군에는 확장 엔트리 시행 후 처음 올라왔다.

1.3. 2010 시즌

사실상 데뷔 시즌인 2010년, 박종훈 감독 체제 하에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어 개막전부터 선발 출장했고, 심지어 그 경기에서 데뷔 첫 홈런인 쓰리런 홈런을 때려내며 타격 능력을 보이나 보는 사람 뒷목잡게 만드는 수비를 보였다. 4월 11일 두산전에서, 김현수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성 타구를 좌익수 앞까지 따라가 좌익수 작은 이병규와 충돌할 뻔하여 놓친 실책은 일품. 일익수에 대한 LG의 대답 개막 쓰리런의 임팩트 이후 타격감이 하락하여 만년 유망주 박경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나 싶더니만, 점차 타격감을 끌어올려 4월 26일 기준 타율 0.295 2홈런 12타점을 기록하며 조인성과 함께 LG 상승세의 실질적인 주역이고 특히 시즌 초반에는 신인왕 떡밥까지 돌았다. 수비도 날이 갈수록 안정되고 있었다.

6월 7일 기준으로 타율 0.256, 5홈런 28타점 기록했다. 특히 누가 프랜차이즈 스타로 있는 팀 아니랄까봐 쓰리런덕후라는 별명이 있을정도로 유난히 영양가 있는 뜬금포를 많이 쳤다. 다만 BB/K 비율이 1:3인 데다 삼진율 3할[9]이라는 처참한 선구안과[10] 좌투수만 만나면 데꿀멍하는 (35타수 3안타 0.086) 고질병은 반드시 고쳐야 했다.

1군 첫 해라고는 하지만 주전 유격수치고는 실책이 너무 많은 게 문제. 하루 빨리 해결이 되어야 김재박-유지현의 라인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초반에 벌어놓은 실책들+후반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오긴 하는 실책의 결과물로 2010 시즌 실책 1위.[11] 결국 2010시즌을 0.241의 타율과 13홈런 61타점, 137삼진, 27실책(...)으로 마무리하며, 삼진왕, 실책왕을 차지하고 말았다. 신인왕 대신인가 또한 단일시즌 피삼진 137개로 역대 한국 선수 최다 피삼진 1위에 랭크되는 진기록을 남겼다 (...) 그래도 신연봉제 덕분에 고작 입단 3년차만에 억대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다. 물론 4년간 60이닝 던지고 4승거둔 투수2009년 6월부터 무승 행진을 이어가다가 야갤의 화폐단위가 된 모 선수에게 성화가 몰리는 덕분에 의외로 오지환은 조용히 넘어갔다.

1.4. 2011 시즌

박종훈감독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오지환에게 더 이상의 특혜는 없을 거라고 한 적 있었는데 개막 후 4경기 치르는 동안 겨우 1경기 출장했다. 타율은 0.000. 신연봉제로 인해서 본의아니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대팀은 줄창 좌투수를 내보냈고 박경수가 유격수 역할을 잘해냈으며 김태완의 예상밖의 선전으로 벤치를 지켰다.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다면 2011시즌은 벤치에서 손가락만 빨다가 끝날 거라는 성급한 예상도 있었다. 좌타자로서 좌투수를 상대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독한 마음을 가지고 연습하는거 외엔 방법이 없었다.

9일 한화전에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5타석 3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좋은 타격감을 보였고 볼넷도 2개를 골랐고 커트를 연신 해내는 등 오지환 답지 않게 정교한 모습을 보였다. 좌투수 마일영에게도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다.

박종훈감독이 11일자 기사에서 오지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인터뷰를 했다.


물론 이 인터뷰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역으로 오지환에게 더욱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관심이 없었다면 거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수비 & 좌투수공략 두 가지 명제를 강조해서 인터뷰했다.

오지환이 이걸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서 극복을 해낸다면 최고가 될 것이고, "이분처럼 난 너랑 맞짱뜨고 싶다!"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흔하디 흔하고 이름없이 사라지는 그런 선수가 될 것이었다. 다행히도 생김새완 달리 오지환은 마인드가 훌륭한 편이라 이 분처럼 키보드워리어 짓을 하지 않았다.

괜찮은 타격감과 수비에서도 경기를 많이 치른 상태는 아니지만 꽤 깔끔해졌다.

16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8회 내야플라이를 놓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애써 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었지만 추가실점으로 역전당할 상황에 몰렸을때 거의 울려고 하는 듯한 모습에서 얼마나 자신의 실책에 대한 자책감이 심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9회 마지막 땅볼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면서 승리. 여담이지만 이 실책은 오지환의 시즌 첫 실책이었다.

20일 SK 전에서 8회 대타로 나와 이영욱을 상대로 '밀어서' 문학구장을 넘기는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다

27일 롯데전에서 박종훈감독의 좌우놀이에 대해 한이라도 맺힌듯 미칠듯한 맹타를 쳐냈다. 감독님 보셨죠? 또 좌우놀이 하면 삐질거삼! 뿌뿌뽕 수비에서도 전에없이 매끄러운 플레이를 펼치며 수비쪽에서 만큼은 의구심을 서서히 걷어냈다.

29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첫 타석때 타격을 하다가 방망이 끝에 공이 맞으면서 손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2주간 2군크리... 이런류의 부상이 타자들에겐 의외로 많다. 물론 대부분 감수를 하면서 하는 타자들이 많다. 오지환의 경우는 손목쪽에 충격이 간지라 아쉬운 대목 제발 오지환 쉬는동안 타팀들 좌완만 선발 내주세요! [12]

5월 11일 1군에 재등록 되었으나 14일에야 100% 힘으로 타격훈련을 했다고 하니 생각외로 손목충격이 오래간 셈이다. 윤진호가 수비에서 상당한 능력을 보이며 유격수 자리를 메꿔주지만 자동아웃수준의 절망적인 타격 때문에 팬들은 오지환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렸다. 더군다나 오지환이 빠진동안 LG타선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15일날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부상이후 처음으로 대타 출전했으나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음주부터 선발출전할수 있을지는 얼만큼 타격페이스를 끌어올리느냐에 달려있는 듯 하다. 그가 합류해야 공격 & 수비 모두 안정된 플레이가 가능하다. 올해의 오지환은 유격수로써도 준수한 수비를 보였다.

그러나 야구관련 커뮤니티들에서 오지환의 부상이 좀 심하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그래서 11일 오지환을 올리긴 했는데 여지껏 타선에 선발로 넣지 못했다라는 속사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두고봐야 알 듯. 오지환 복귀시부터 상대팀이 계속 우투수를 선발로 세웠는데도 선발 유격수로 못 나왔다는게 꺼림직하다. 윤진호가 좋은수비를 보여 벤치에 있었다기엔 설득력이 부족한지라...

결국 그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KIA 타이거즈 전에서도 선발 출전했지만 3타수 무안타 3삼진을 당했는데 중요한건 배트를 제대로 못 쥐었다는 것이다. 결국 손등부위에 뼛조각이 발견되어 3개월 동안 결장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잘 회복해서 완벽하게 돌아오길 팬들이 바랐다. 그러나 그 사이에 팀은 귀신같은 DTD

복귀 후 팀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좋은 타격으로 타율도 0.292 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갑자기 물타격을 보여주며 타율은 0.220까지 떨어졌고 수비에서도 뇌수비를 저질렀다.

특히 임찬규가 나올 때마다 그의 수비는 다른 의미로 빛을 발하는 모습이었다. 9월 18일에는 포구실책으로 차일목끝내기 만루홈런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했으며, 10월 1일 임찬규가 선발로 나왔을 때는 1사 만루 병살 상황에서 공을 흘리는 치명적인 에러를 저지르는 등 연봉 대폭락이 예상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본 사람들은 기름손 왕자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2011년 시즌은 좋지 않은 기억만 남긴 채 마감했고, 연봉계약 에서도 찬물을 맞았다. 1억 2백만 원에서 53% 깎인 4천 8백만 원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1.5. 2012 시즌

오지환/2012년 항목 참조.

1.6. 2013 시즌

수비 측면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손주인이 주전 2루수로서 안정된 수비를 보여줌에 따라 오지환의 수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손주인과의 호흡도 잘 맞았다.

시즌 초반에는 타격이 안 올라온 모습을 보였지만, 타격이 올라오자 수비가 막장이 되어 구리에서 같이 사는 어떤 축구 팀의 헬수비를 시전했다. 그 절정은 4월 7일 두산전으로, 허경민의 타구를 놓쳐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NC와 한화를 만나자 날아다니기 시작, 특히 한화와 3연전에서는 3경기 연속 밀어쳐서 홈런을 달성. 홈런 2위와 득점 1위로 올라섰다.

5월이 되자 타격감이 좀 떨어지긴 했어도 0.270~0.280 사이에서 타율을 유지하였으며, 권용관이 돌아오면서 체력적인 부담도 덜게 되었다. 6월 10일 기준 성적은 0.281, 6홈런, 21타점, 10도루, ops 0.809.

4월을 넘어 6월이 되자 김재박 감독이 보았던 센스가 유지현 코치와의 강훈련, 2루 손주인 / 1루 문선재라는 호수비요원들의 도움으로 빛났다. 잔실수가 줄어들고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에러들도 다른 선수들이 적당히 커버해줬다.

2013년 7월 16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팽팽하게 이어지던 연장 11회초, 김사율의 공을 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쏘아올려 그 날 경기의 결승타와 타점을 기록했다.

다음날인 7월 17일에도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키던 8회초 쓰리런 홈런을 쏘아올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7월 전반기를 마친 현재 8홈런으로 팀 내 홈런 1위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2010년 기록한 13홈런도 넘어갈 기세였다.

7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5타수 3안타 2타점 4득점 2도루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1루타, 3루타, 2루타를 차례로 기록해 사이클링 히트의 꿈을 키웠으나 마지막 타석에서 영웅스윙을 하는 바람에 홈런 달성 실패로 사이클링 히트는 아쉽게 물건너 갔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 2차전, 3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 4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팀내 선배인 정성훈이 실책을 연발한 것과는 다르게 예상 외로 깔끔한 수비를 선보였지만, 그에 반해 타석에서는 9타수 무안타 1볼넷 2사구(死球) 1도루 2득점, 출루율 .250으로 부진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하는 바람에 오지환의 포스트시즌 첫 안타는 결국 나오지 못했다.

2013 시즌에는 실책이 많이 줄었다지만 실책 20개를 기록하여 결국 2위 최정과 1개, 3위 황재균과 2개 차이로 실책왕을 차지하고 말았다.

1.7. 2014 시즌

김기태 감독이 절대 안주하지 말라고 했다. 기대에 비해 성장이 더딘 원인을 그동안 주전 경쟁이 없었던 점에서 찾고 있는 모양이다. 권용관, 박경수, 박용근[13]을 경쟁 상대로 붙여서 오지환에게 긴장감을 심어줄 생각인 듯 하다. 그리고 오지환은 이번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 바로 아시안 게임이 걸려 있기 때문. 하지만 다들 올 시즌 끝나고 군대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결국 개막 엔트리에서 빠졌다. 김기태 감독은 개막 명단 중 유격수 자리에 권용관박용근을 등록했다. 이후 11일에 임지섭, 김선우등과 함께 1군에 첫 등록되었다.

또한 벤치 클리어링에서 정근우의 스파이크에 스타킹이 찢어진 것이 보여지기도 했다. 다만 정근우가 시합중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는 발언과 더불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갈 때 잘못된 방식이 지적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2013년 개막전에서 오지환의 슬라이딩에 정근우가 쓰러진 영상이 발견되기도 했다.(2013년 3월 30일 LG-SK의 시즌 개막전 8회초 오지환의 병살방지 장면, 10분 46초부터)

결국 대부분 팬들의 예상대로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박경수, 박용근 등 대체 자원이 있기 때문에 LG에게 큰 빈자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6월 24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7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상대 선발 투수 찰리 쉬렉노히터 경기 때 볼넷 두 개를 얻어서 작은 이병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출루했다. 하지만 첫 번째 출루 때 도루자를 저질러서 까였다.
오지환은 이날 3타석 1타수 무안타 2볼넷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6:0으로 졌다.

6월까지 득점권 찬스에서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7월 1일 현재 타율은 2할 7푼 9리인데 득점권 타율은 무려 5할에 가까운 4할 9푼 1리(7월 1일 게임 종료 후 기준 어차피 내려가겠지)로 1위를 기록했다. (네이버 오지환 연관 검색어 '오지환 득점권타율', '오지환 끝내기' 의 위엄)

7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10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했다. 스코어 0:0인 11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득점권 타율 1위에 걸맞게 끝내기 안타를 쳐서 이 경기의 MVP가 되었다. 오지환은 이날 2타수 1안타 2볼넷 1희생번트 1타점 1뇌주루을 기록했고, 6월 13일 SK전 끝내기 안타를 포함해 팀의 연장 승부 2승을 만들어냈다.

7월 22일 KIA전까지 타격 부진을 겪다가 수비에서까지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자 황목치승과 교체되었다.

계속되는 타격부진과 원래 타석이었던 우타석에 대한 미련을 못버렸는지 2015년도 부터는 좌타를 포기하고 우타를 서겠다고 7월 30일 선언하였다.

8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9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했다. 스코어 2:2인 3회말에 선두 타자로 나와서 상대 선발 투수인 오재영의 초구에 등을 맞고 말았다. 이 여파로 여전히 스코어 2:2인 5회초 수비 때 황목치승으로 교체됐다.
이날 오지환은 1타수 무안타 1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3:4로 역전승했다.

맞은 몸에 맞는 공으로 인한 부상 때문에 8월 2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8월 19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해 1회말 선두타자 서건창 타석부터 시원하게 덕아웃으로 송구를 해주시고 결과적으로 박병호의 40홈런 및 1타점 추가에 기여하셨다[14]. 2회에는 2사 1,3루에서 2-유간을 지나는 땅볼을 멋지게 잡아 2루로 백핸드토스를 악송구로 만들어-_- 3루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6회 1사 1,2루에서 1타점 중전 결승 적시타를 쳐냄으로써 간만에 오지배 본능을 보였다.

9월 4일 두산전에서 선취점을 따내는 솔로홈런을 치며 간만에 좋은 의미로 경기를 지배하나 싶었다. 그러나 6회에 최경철의 2루송구를 포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결국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그야말로 경기를 쥐락펴락하는 지배본능.

9월 7일 6회 1사 1, 2루에서는 김태완의 어중간한 거리의 뜬공을 유격수 오지환이 고의낙구로 더블 플레이를 노렸는데, 이 와중에 2루로 귀루하던 2루주자 송광민이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가 비디오 판정 번복으로 아웃되며 이닝이 끝나 버렸다. 오지환의 플레이로 한화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경기가 끝나고 나서 다음 날까지 필요 이상으로 폭풍까임을 당한 건 덤

10월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9회말 1사 2루에서 손승락으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

2014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0.262 8홈런 56타점 출루율 0.354 장타율 0.413 OPS 0.788 실책 20개[15]로 마감했다.

1.7.1. 포스트시즌

10월 19일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했다. 팀이 스코어 8:2로 앞선 8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상대 7번째 투수 이혜천을 상대로 안타를 쳐 생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안타를 쳤다. 하지만 이날 6타수 1안타 1득점에 그치며 2013년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한 타격을 이어갔다. 팀은 1회초에만 6점을 뽑아 스코어 13:4로 대승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2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했다. 1~3차전까지 2번타자로 출장했지만 15타수 2안타 1볼넷으로 매우 부진하여 이날 7번타자로 타순이 조정된 것도 모자라, 스코어 0:0인 2회말 무사 만루에서 포수 플라이로 아웃되어 엄청나게 까였지만, 팀이 스코어 1:4로 앞선 6회말에 선두 타자로 나와 안타를 치고 출루하여 득점을 올린데 이어 스코어 3:6인 7회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2타점 적시타를 때려 쐐기점을 올림과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타점을 기록했다.
오지환은 이날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을 활약했고, 팀은 7회말에 7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하는 등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하며 스코어 3:11로 대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오지환은 2014년 준플레이오프 1, 2, 3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수비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타석에서는 19타수 4안타 1볼넷 2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211, 출루율 .250으로 비교적 부진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매우 부진했지만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양상문 감독은 오지환을 '키플레이어'로 지목하였다.

오지환은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4년 플레이오프 1, 3,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 2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수비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타석에서는 13타수 2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154, 출루율 .267로 부진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오지환은 2014년 포스트시즌에서 32타수 6안타 3볼넷 2타점 4득점, 타율&장타율 .188, 출루율 .257로, 2014년 포스트시즌 10타석 이상 출장한 LG 선수들 중 가장 낮은 타율, 장타율, 출루율을 기록했다.

1.8. 2015 시즌

2014시즌이 진행중이던 7월 말에 2015시즌부터 우타로 전향한다는 떡밥을 던지면서 논쟁이 오고 갔지만 없던 일이 된 듯 하다. 밑의 설명에서 나오듯 우타석의 컨택이 개판이기 때문에 전향시키는 것이 오히려 손해라는 판단이 선 것 같다. 대신 이전의 거친 타격폼을 박용택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새로 바꾼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선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2. 플레이 스타일

타격 재능과 빠른 발, 투수 경험도 있어 레이저 송구를 할 수 있는 강견까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전혀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 자체다. 포텐은 있는데 현실은 시궁창.

기본적으로 중거리형이고 장타툴이 있다. 원래는 오른손잡이지만 김재현의 타격폼을 보고 좌타로 전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론 우타는 파워, 좌타는 컨택이라 우타에서 파워는 상당하지만 컨택이 절망적이라 신경식이 스승 시절에 오지환을 좌타로 전향시킨 듯하다. 그런데 좌타에서도 폭삼 헛스윙을 일삼을 정도로 컨택 선구안이 안 좋기 때문에 우타에서는 대체 얼마나 더 선구안 개판이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유지현 이후 처음으로 LG 유격수로서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유지현과 오지환 사이에 주전 유격수는 권용관밖에 없었다. 타격 밸런스도 훌륭하며 손목 힘은 발군. 밀어치기도 할 줄 안다. 그러나 변화구엔 젬병이고 직구도 조금만 빠르게 던지면 여지없이 폭삼.

투수 출신이라 강견이다.[16] 덕분에 송구 스피드는 매우 좋으나 정확도는 떨어진다. 포구실력도 좋지 않다. 전체적으로 수비에선 그야말로 2010 시즌 실책의 대명사. 다만 위에 언급한 대로 재능만큼은 진퉁이라, 대다수의 엘지 팬들을 희망고문했다. 초창기에는 유지현이라는 명 유격수 출신 코치가 존재하기 때문에 점차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많았지만 풀타임 4년차인 2013시즌까진 별로 달라진 모습이 없다.

전체적인 수비에서의 문제는, 어려운 수비는 경험이 쌓이면서 잘 해내는 편이지만 기본적인 포구가 전혀 늘지를 않는 것이었다. 쉬운 수비에서 에러를 자꾸 범하며 팬들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했다.

불암콩콩코믹스 만화에서 LG 신 연봉제를 다룬 내용이 있었는데 거기서 LG 고참 선수들이 오지환을 양계장 오씨라고 부르는 내용이 나온다. 실책이 잦고 타구를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 수비수를 양계장 주인이라고 비꼬는 표현이다.

유형으로 따지자면 공격형 유격수인 셈인데[17] 수비에서 최소한 필딩율 0.970 정도 유지를 하는 선에서 공격에서 포텐셜이 터진다면 한국판 데릭 지터를 볼 수도[18]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유격수로 데뷔 했지만 수비 부담을 못 이겨 내고 코너 내야수로 수비 위치를 바꾼 장종훈이나 이범호, 결국 부상이 발목을 잡은 홍세완의 경우도 있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혹평을 뼈저리게 깨달았는지 매년 스프링 캠프에서 죽어라 펑고를 잡으며 훈련하는데 2013년까지 달라진 거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봄에는 강정호 안 부러운 능력을 보여주는데, 여름이 다가오면 체력의 문제인지 타격과 수비가 함께 바닥을 쳤다.

그런데 2014년 들어 여름이 지나도 어느 정도 수비를 잡은 모습을 보였지만 타격 능력이 떨어졌다. 다만 타율은 0.262로 뒤에서 3위를 기록했음에도 득점권 타율은 0.359로 13위를 기록했다.

2014년 시점에서는, 매년 죽어라 펑고를 치고 유지현코치가 직접 사사한 덕분인지 수비력에 관해서는 이제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아직도 가끔씩 어이없는 실책을 하긴 하지만 실책 자체는 송광민에 이어 2위로 많은 편이지만, 박진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실책이 많다 = 수비력이 안좋다라는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는다. 어깨가 그리 좋지 않았던 유지현코치의 풋워크나 글러브질이, 어깨가 좋은 오지환에게 이어지면서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는 듯. 강정호의 포스팅때 사도스키가 KBO 내야수중 유일하게 메이저리그 식 풋워크를 사용한다고 오지환을 지목한 바 있다.타격만 각성하면 된다

3.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9 LG 트윈스 5 9 .111 1 0 0 0 1 0 0 1 .111 .200
2010 125 352 .241 85 13 6
(2위)
13 61 59 13 51 .423 .332
2011 63 156 .212 33 7 0 2 15 17 5 20 .295 .299
2012 133
(1위)
462 .249 115 22 2 12 53 66 23 61 .383 .331
2013 124 441 .256 113 20 8
(1위)
9 47 81
(3위)
30
(4위)
63 .399 .347
2014 113 397 .262 104 20 8
(4위)
8 56 72 28 58 .413 .354
통산 6시즌 563 1817 .248 451 82 24 44 233 296 99 254 .392 .337

4. 기타

별명은 오지배(인), 오지랄, 오각, 양계장 오씨, 오백호 등.

오백호는 머리가 까까머리이고 재능과 기본기가 반비례하며 경기할때마다 타격, 수비 모두 일취월장한다는 점에서 오지환 + 강백호. 그러나 역시 가장 많이 쓰이는 건 LG 트윈스 갤러리에서 파생된 오지배다.
뛰어난 타격과 결정적인 에러(...)로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경기를 지배한다는 의미. 득점권에서 날라다니며 결승타를 많이 쳐서 오지배라 불리기도 한다이의 파생형이 오지배인. 그리고 그의 수많은 실책들의 대부분이 정말로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실책일 때가 많아서(...) 까이는 별명인 오지랄이 있다.
허나 2012년 들어서서 몰라보게 달라진 수비로 인해 LG 트윈스 유격수에게는 최고의 별명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유지환이라고 불렸다[19] 거기에 뉴욕 양키스의 명 유격수인 데릭 지터에 빗대어 오릭 지터 라고 불렸다.박기혁처럼만 되지말자

솔직히 엘지팬들이 까는 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깐다. 차기 클럽하우스 리더로서 손색이 없는 행동들과 은근히 드러나는 팀부심, 그리고 나날이 향상되는 실력은 엘지팬들이 오지환을 까면서도 그가 대체불가능한 선수라는 것을 느끼며 애정을 갖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긴 경기와 진 경지에서 타격 성적의 차이가 크다. 이긴 경기 타격 성적만 모으면 김현수가 안 부럽다. 그래서 LG 신연봉제 최대 수혜자

외모가 배우 주원과 닮았고 빅뱅T.O.P와도 닮았으며 SK 와이번스최윤석과도 상당히 닮았다. 사실은 그냥 허각

2010년 9월 18일 KIA와의 경기에서 김선빈의 타구가 그의 글러브를 뚫고 지나가 버렸다. 오오 정말로 오지배.

잘 알려져있지 않지만 멘탈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전에 일어났던 청문회 사건에서도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팬들에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하거나 팀이 부진하자 김기태 코치를 따라 완전 삭발을 하는 등 좋은 행동으로 호감을 샀다. 한기주의 빈볼에도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쿨하게 1루로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의외로 2014년까지의 기준으로 통산 병살타가 24개밖에 없다. 536의삼진을 당해서

2012시즌 들어서 희한하게 롯데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급상승했다. 당시즌 롯데 주전 유격수였던 문규현의 실력과 이미지가 급하락하던 타이밍에 절묘하게 잘할 때는 화끈하게 잘하고, 못할 때는 화끈하게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친 해양도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 참고로 당시즌 롯데팬들과 LG팬들은 올스타전 동맹 때문에 사이가 꽤 호전된 상태여서, 동맹팀의 경기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높아진 상태였다.


2013시즌이 끝나고 FA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이대형과 영혼의 단짝이란 소릴 들을 정도로 친했다. 그래서 이대형의 이적이 확정되자 페이스북에 위와 같은 멘션을 날리기도 했다. 그리고 18일 오지환의 화보촬영 때 이대형이 작별인사를 하러 오기도 했다.

의도인지 우연인지 몰라도 프로야구매니저에선 오지환 올스타 카드 2장(10년도 13년도) 모두 무지 신이 난듯한뒤태가 찍혀 있는 사진을 사용하고 있다.

영어에 엄청나게 약한 듯하다. 봉중근 자서전에 따르면, 학구적 분위기의 잘생긴 3-유간 내야수로 실책을 많이 하는 후배가 진지한 태도로 비행기가 영어로 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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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4시즌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오지환의 이미지에 잘 부합하는 곡이라는 평가. '미치면 어때~ 난 그럼 어때~'
  • [2] 응원가가 랩이다. 가사는 '만나서 반갑습니다 LG 오지환입니다 안타 날라갑니다 준비 됐습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LG 오지환입니다 안타 날라갑니다 준비 됐습니까'
  • [3] 2011년부터 이 랩 응원가는 등장곡으로만 쓰이고 다른 응원가가 제작되었다. 무적LG~오지환~♪, 무적LG~오지환~♬ 워어어어어어 무!적!L!G! 오!지!환!
  • [4] 다시 투수전향을 하면서, 서승화의 22번을 가져갔다. 서승화이형종이 달던 47번을 가져갔다.
  • [5] 어째 재밌는 건 프렌차이즈 스타들이 달던 등번호를 달고 있거나 달아본 적이 있다. 9번은 라뱅의 등번호이며, 7번은 김재박-김재현의 등번호이다. 그리고 2014년에 단 등번호인 2번은 1990년대 최고의 포수인 김동수의 등번호었다.
  • [6] 이학주는 시카고 컵스 산하 싱글 A팀 피오리아 치프스에서 118경기를 유격수로 소화했다. 2010년 시즌 기록 .282 타율에 3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공격력과 주루는 인정받았으나 34개의 실책을 저지르는 등, 수비는 아직 개선해야 했다. 관련자료. 2011년에는 맷 가르자 트레이드에 엮여 탬파베이 레이스로 옮겨서 마이너 리그 최고수준(베이스볼 어메리카 전체 94위.) 유격수 유망주이자 2011 탬파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 [7] 김상수는 김응용 사장,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제2의 이종범이란 소리를 듣고, KIA의 안치홍은 조범현 감독으로부터 타격 재능은 팀내 최고 라는 소리를 들은 것에 비하면 수수한 평가다.
  • [8] 김재박의 등번호. 어느 팀 선수를 막론하고 유격수라면 으레 김재박의 플레이에 감탄하고 그를 동경할 수밖에 없다. LG 감독이 된 뒤에 이미지 깎아먹어서 그렇지(…). 젊은 선수들 중에는 이종범, 유지현, 박진만이 우상인 경우도 있겠지만 어차피 예시로 든 그들 모두의 우상이 김재박이다.
  • [9] KBO 통틀어서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삼진율 3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2000, 2001 시즌의 톰 퀸란밖에 없다. 퀸란은 리그 최고 수준의 3루 수비력과 리그 최고의 뜬금포(당시 퀸란은 삼진/볼넷/홈런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를 장착하고 있었기는 하다.
  • [10] 단 출루율이 1할 가까이 높았던 2010년 기록을 볼 때 선구안보다는 컨택트 능력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공은 보는데 못 맞췄다(…). 그래도 2013년 현재는 많이 개선되었다.
  • [11] 강정호가 2위를 차지했다. 얜 갑자기 왜 이래
  • [12] 데드볼이 아닌 공을 치다 가장 끔찍한 부상을 당한 사례도 있다...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인 하라 타츠노리가 그 좋은 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전설적인 마무리 츠다 츠네미의 돌직구를 쳤다가 오른팔뼈가 아예 부서져 나갔다. 타격후 하라의 오른팔은 너덜너덜해지고 고통속에 뒹구는 모습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 결국 이것 때문에 회복후 타격폼까지 바꿔야 했다. 지금이야 하라 타츠노리본인도 허허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에 웃을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번개 맞을 확률이긴 하다.
  • [13] 2014 시즌부터 외야를 겸업한다. 시범경기에서도 외야수로 출장하고 있어서 주전 경쟁자라고 보기 보다는 백업 역할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
  • [14] 4번타자 박병호가 2사에 나와 홈런을 쳤으니 실책이 없었으면 타석 자체가 성립되지 않음
  • [15] 리그 2위다. 1위는 송광민
  • [16] 사실 유격수를 보는 선수들은 고교시절 다 투수 해봤던 사람들이다.
  • [17] 라기보단 장타에서 가능성을 보인것 외에 아직까지 공격에서도 크게 인상적이진 않다. 타율은 풀타임 2할 5푼이 될까말까고 장타력은 2010년 제외하곤 4할 넘긴적도 없다. 그냥 수비를 못하는데 장타툴은 있으니 그쪽으로 분류하는 것 뿐이다.
  • [18] 데릭 지터 같은 경우 골드글러브 수상도 순전히 인기빨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비가 영 좋지 못한 유형에 속한다. 그나마 오지환과는 달리 필딩율 자체는 준수한 편. 다만 세부 스탯이 참으로 안습이라...
  • [19] 유지현+오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