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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last modified: 2015-07-24 06:51:04 Contributors

Contents

1. 중동의 국가
1.1. 개요
1.2. 역사
1.3. 경제
1.4. 지리
1.5. 사회
1.6. 외교
1.7. 스포츠
1.8. 기타
2. 숫자 50000의 한국어한자 발음.
3. 傲慢

1.1. 개요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국가로, 정식국명은 오만 술탄국(سلطنة عُمان, Salṭanat ʻUmān). 인구 50000명의 나라가 아니다. 그리고 절대 오만한 나라도 아니다.삼호주얼리호 피격사건때만 봐도 그렇고 다만 식민지 경영하던 시절에는 오만했다 하더라 다른 때에는 안그런데 축구할때만 되면 오만해진다 카더라 영어표기로는 'Oman'이지만, 아랍어로는 '우마:ㄴ(عُمان, `umaan)'에 가까운 듯.[1]

수도는 무스카트(Muscat), 아랍어로는 '마스카트(مسقط, Masqaṭ)'라고 한다. 무스카트는 오랫동안 오만 지역을 대표하는 이름이었지만, 현재 재위하는 사이드 국왕의 즉위와 함께 국명에서 지워졌다.

공용어는 아랍어. 끝내주게 덥고 습한 기후이며 내륙 지대는 사막 기후. 종교는 이슬람교의 비율이 75%이다. 면적은 309,500㎢.

나라 이름을 영어로 표기했을 때 O로 시작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1.2. 역사

작은 부족과 토후국들로 분열되어 아라비아반도의 무역으로 번성하였다.잠시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동로마 제국사산조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이라크 육상 무역루트가 막히자 오만쪽으로 빙 돌아가는 무역이 성행해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AD 630년경에 아랍인들이 정복하고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바다(라비아 해페르시아 만)에 접하여 오스만 제국 때도 상당수의 해군력이 여기에서 충당되었으며, 이미 9세기에도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와 무역 중이었다고 한다. #

워낙 중요한 무역루트였기 때문에 여러 강대한 제국들이 처들어와서 점령을 하는 일이 잦았다. 1053년경에는 셀주크 투르크의 산하에 들어갔다. 이후 이바디파(하와리즈 운동에 영향받은 이슬람교의 분파) 이맘이 다스리는 이맘국이 세워지고 나바니 왕조와 야루바 왕조 같은 국가들이 성립되었다.

1500년대에 해상제국을 세웠던 포르투갈이 잠시 처들어와서 무스카트의 해안가 지방을 150년간 지배했다. 이 후 인도양 무역을 포르투갈이 방해하면서 카타르와 페르시아 호르무즈 지방,인도 서부의 해안가 지방도 진출한다. 여기에 영 껄끄러움을 느낀 야루바 왕조의 술탄들과 오스만 제국이 연합하여 1650년경 포르투갈과 전쟁을 벌여 축출하고 영토를 회복하였다. 이 후 1730년대에 동아프리카 지방의 아주란 술탄국과 스와힐리 지방의 포르투갈인들을 역공하여 축출하고 계속 남진하여 19세기 초중반까지 아랍 유일의 해상제국을 이룬 오만 제국(무스카트-잔지바르 제국)을 세웠다.# 영토 # 영향권 남으로는 소말리아,케냐,잔지바르,탄자니아의 해안가, 동으로는 이란 남부, 심지어 오늘날 파키스탄 령인 발루치스탄의 해안가 지방 까지 진출했다.[2] 신밧드의 고향이 북부의 소하르 출신이라는 (신빙성은 조금 의문시 되는) 민담이 전해져 것도 이 때문.

그러나 1740년대에 이란의 전쟁기계 디르 샤가 처들와서 쑥대밭이 되고 잠시 정복당하였다. 그러나 사이드 가문을 중심으로 다시 이란인들을 축출하고 독립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사이드 왕조가 성립되었으나 술탄 사이드 빈 알 부사이드가 1856년 죽자 후계자 분쟁이 일어나 3번째 아들이 무스카트와 오만을 잇고 6번째 아들이 동아프리카 지역과 잔지바르 등을 접수해 제국은 분할되었다. 이때부터 후계자 승계에 조정을 맡은 영국과 서구 열강들의 영향력이 강해저 오만에 내정간섭을 하는일이 잦았다. 1885년경에 독일이 진출하여 탄자니아 지역에 독일령 동아프리카 식민지를 건설하여 영토를 강탈하고 소말리아 해안가는 이탈리아가 접수하였다.영국-잔지바르 전쟁 결과 케냐를 비롯한 나머지 동아프리카 지역도 깨끗하게 분할되었다. 오만도 1922년 노예매매를 금지하는 조약을 맺어 사실상 경제적으로 종속되었다. 이후 1951년,1955년 일련의 수호통상조약을 맺어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보호국 취급을 받았다. 1954년 이맘 칼리브가 무력투쟁을 전개하여 동생 타리부는 카이로로 망명하여 오만 이맘청을 설치하고 분리운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 아랍 10개국은 오만 문제를 영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UN의 의제로 채택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후 오만 문제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그 보고서에 근거하여 1965년 12월 영국의 의존으로 인한 오만국민의 민족자결권과 독립을 방해하고 있다는 취지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1970년 7월 족장단이 술탄 사이드의 퇴위를 강요하여 그의 아들 카부스 이븐사이드가 계승하였다. 이 때 국명을 무스카트 & 오먼에서 현재의 오만 술탄국(the Sultanate of Oman)으로 개칭하였다.

새로운 술탄은 정치범을 석방하고 중세기적 국가에서 탈피하여 오만의 국정을 개혁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1972년 정식으로 UN에 가입하였다.

1.3. 경제

1.4. 지리

아라비아 반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다. 북서쪽으로 아랍 에미리트와 접하고 서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접하며 남서쪽으로는 예멘에 접한다. 남쪽과 동쪽은 아라비아 해에 면하고 북동쪽으로 오만 만을 사이에 두고 이란과 이웃한다.

자국령인 무산담 반도가 UAE에 둘러싸여 있는 비연속국이다. 무산담 반도는 인구는 28,378명(2008년 기준), 면적은 서울 면적의 3배인 1,800㎢에 불과하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한쪽 끝에 있다. 수에즈 운하로 지중해에 통하는 홍해, 페르시아 만라비아 해의 목구멍 노릇을 하고, 이란에 불과 50km 떨어진 가장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다. 이 정도 거리면 정말 농담 아니고 하루 정도만에 헤엄쳐서도 갈 수 있다. 그야말로 아라비아의 지브롤터. 여기에 석유가스까지 나와서 그야말로 사랑 받는 땅이다. # 무산담 반도 끝 부분에 있는 마을인 쿰자리에서는 쿰자리어를 사용하는데 이 언어는 아라비아 반도 유일의 페르시아어계 언어인 것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 때문으로 추정 된다. 친서방 국가이기에 무산담은 그야말로 이란에게는 목 밑의 칼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무신담 지역에선 이란에 대한 감정은 꽤 좋은 편이라고 한다. 2014년 1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서 여길 다뤘는데 공교롭게도 다룬 이유는 전혀 정치랑 무관한 암벽 등반가 취재였다. 무신담 반도에선 온갖 천혜의 암벽이 가득하며 개발이 거의 되지 않기에 미국이나 유럽 암벽 등반가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취재도중 국경에서 이란 화물선(정확히는 밀무역선)들이 자주 오고가는게 보여서 놀랐지만 현지인들은 이란도 벌어먹어야지, 뭐하러 이란을 죽이려드느냐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현지인 통역은 오래전부터 무신담 반도 지역은 이란에 대하여 우호적이라 이런 일을 다들 모른 척한다고 했다.

남부의 마시라 마 사라가 아니다 섬도 미군영국군이 주둔 중.

1.5. 사회

이슬람 신자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남녀칠세부동석"급의 성차별이 현존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바로 밑이라 보수적 신학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법 개방된 편. 이는 1970년 현 술탄인 부스 빈 사이드(قابوس بن سعيد‎)가 보수적인 아버지였던 사이드 빈 타이무르(سعيد بن تيمور)를 무혈 쿠데타로 몰아내고 재위하면서 제 연합에 가입하고 종교를 자유롭게 허락하며 꽤 개방적으로 나섰기 때문. 기독교 교회까지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몇몇 지역에서 가스 및 광물 자원이 꽤 있는 편이라 이걸 개발해 받는 수익이 꽤 된다고 한다. 게다가 애초에 역사적으로 오만의 국교인 이바디 이슬람이 다른 이슬람보다 타 신앙에 관대한 편이다. 알레비파와 비슷하게 이바디파의 교리도 구전으로, 공동체 내에서만 전해지기에 구체적인 교리는 잘 알려지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이교도에 대해 다른 이슬람 종파 보다 훨씬 더 방임적인 태도를 취한 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 현대적인 의미에서 개방적이고 관용적이라 볼 수는 없고, 내부적 단속은 일반 수니파 보다 훨씬 더 심하게 하기에 다만 종교 자체가 내부적으로 '자기들이 알아서 불신으로 지옥에 가겠다는데 우리야 좋지'라는 타 신앙에 대한 방임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우디를 비롯한 다른 걸프지역 국가들에 비해 음주, 놀이 문화는 관대한 편으로 제한적이지만 술의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나이트클럽도 존재한다(!)

1996년 기본법(헌법)을 만들었고, 2003년 전 국민에 참정권을 부여했으며, 매년 초 2∼3개월 간 각료들을 대동하고 각 지방을 돌며 민의를 살피고 이를 국정에 반영한 것도 국왕이다. 덕분에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아내고 있다. #


술탄의 '르네상스'에 비견할 만한 현명한 개혁정책으로 카타르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먼치킨 간의 비교인 것 같다 국내 정세도 다른 중동 나라들에 비해 매우 안정적이다. 옆에 매우 위험한 예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치안이 눈에 띄게 위험한 지역은 없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유혈사태가 이 나라까지 번졌으나, 소강 된 상태. 애초에 원인 자체가 반 국왕이 아닌 개혁이었으며, 국왕이 제때 개각에 나서고 '슈라 위원회'를 확대하면서 잘 수습했다. 자세한 것은 아랍의 봄 항목 참조.

사이드 국왕은 이미 40년째 재위하면서 아랍 동맹 국왕에서 최장 기간 집권했다. 그러나 카부스 국왕은 부패 등의 문제를 막기 위해 독신으로 가 없으며 그래서 후계자도 없다. 오만판 케말 파샤자신의 권력을 위해 인척들조차 정부 요직에 기용하지 않은 상황으로서 국왕 이후가 불안정한 상황. 본격 고자되기로 부패를 막는 국왕의 긍정적 사례 일흔을 훌쩍 넘긴(1940년생) 사이드 국왕의 후계 문제는 왕권 유고(서거)시 3일 이내에 왕가 회의인 통치가문위원회가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상태이다. 현재 국왕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국왕 서거 이후 정세가 불안할 것으로 보인다.

1.6. 외교

한국과는 1974년에 먼저 수교하였고 1992년에는 북한과도 수교하였다(북한대사는 이집트 대사가 겸임). 2015년에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이란 핵협상 타결 관련 이란과 미국, 사우디와 모두 좋은 관계에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이란과 가까운 점을 이용하여 막후협상에서 여러 역할을 했다고 한다.

1.7. 스포츠

축구가 인기많은데 국대에 대한 것은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참고.

1.8. 기타

이름 때문에 일본에서는 각종 섹드립에 사용되기도 한다. 나라이름에 코(こ)를 붙이면 검열삭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만 국제 여자 마라톤이라든가, 오만 국채라든가...

2. 숫자 50000의 한국어한자 발음.

3. 傲慢

pride(프라이드).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을 뜻한다. 7대 죄악의 하나로써 교만 항목으로도 등록되어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 또는 해당되는 성격을 가진 서브컬처 캐릭터를 알아보고 싶다면 교만 쪽으로 들어가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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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오만은 요르단의 수도인 (عمان)과 아랍어 표기가 같다.
  • [2] 그 당시 오만은 아프리카에서 포르투갈, 스페인과 더불어 노예 무역으로 유명했다. 덕분에 오만의 지배를 받았던 탄자니아 등지에서는 지금도 오만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