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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last modified: 2018-12-25 00:56:0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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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h man!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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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의 국가정보
국기
공식명칭 예멘 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يمنية, al-Jumhūrīyah al-Yamanīyah)
면적 555,000㎢
인구 2383,3000명(2011년 통계)
수도 사나
정치체제 공화제
명목 GDP GDP 334억 $(2011)
1인당 GDP 1,332$(2011)
GDP(PPP) GDP 665억 $(2011)
1인당 GDP 2,649$(2011)
공용어 아랍어
국교 이슬람교(수니파 53%, 시아파 45%)
화폐단위 예멘 리알 (rial)
ISO 4217 : YER
모토 신, 국가, 혁명, 통일(الله، الوَطَن، الثَورة، الوَحدة)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상징물
3.1. 국기
3.2. 국장
3.3. 국가
4. 지리
5. 정치
6. 사회
7. 내전 및 종파 갈등
8. 문화
8.1. 음식
8.2. 조혼
8.3. 스포츠
9. 관광
10. 외교 관계
10.1. 한국과의 관계
11. 창작물에서의 예멘

1. 개요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 그리스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축복받은 아라비아(Eudaimon Arabia)' 라 불렀을 정도로 과거부터 부유한 지역이었다. 수도는 사나(صنعاء, Sana'a)이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는 아덴(عدن, Aden). 공용어는 아랍어이다.[1]

아덴은 예로부터 동방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근대에는 배후에 석탄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대영제국의 본토와 인도의 중간에 위치하여 제국 내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번영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에 석유가 발견되면서 지역 제일의 석유화학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는 미국 뉴욕에 이어 물동량 기준 대영제국내 제일, 세계 제 2위의 항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의 철수 이후 공산국가 남예멘의 수도가 되어 완벽히 몰락하였다. 터키이스탄불이라든지 모로코카사블랑카처럼 수도보다 더 유명한 몇 안 되는 도시 중에 하나.

2. 역사

예멘 내전 참고.
1918년 이후의 예멘의 역사를 지도로 간략하게 나타낸 영상이다.
예멘에 대한 썰전 내용.

1517년 이후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 1839년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시대가 시작됐다. 1918년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자, 북예멘[2]이 왕국[3]으로 먼저 독립하였으며,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와 같이 아랍 연합 공화국에 가맹했다가 1961년에 연방을 탈퇴했고, 1962년 살레에 의해서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공화국이 되었으나 8년간이나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 벌어졌다.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공화파가 왕당파를 완전히 축출함으로 1970년에 공화국이 확정되었다.[4] 한편 소련의 지원하에서 독립한 남예멘공산화되었다.[5] 1970년대 국경문제로 남북간에 무력분쟁이 잦았으며,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대치 시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둘다 경제적인 상황은 영 안좋았던 개도국인 탓에 통일해서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얘기는 많이 나왔고, 결국에 냉전 시기가 끝나면서 상호 합의 하에 1990년 5월 남북협상에 의해 무혈 통일되었고 초대 대통령으로 북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얼마 못 가 1994년 5월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다. 종교 및 각 부족끼리의 정체성이 강한 동네라 그냥 문서에 사인하고 통합 좋지~ 하는 분위기가 되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무력 통일" 이라고 알려져있지만 무혈 통일을 먼저 하고 내전을 치루게 된 역사적 과정 때문에 해외에는 가끔 무혈 통일로 잘못 알려진 경우도 종종 보인다.[6]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1994년 7월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국가가 수립되었다. 통일 이후 직선 투표에서 다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선출되어 장기집권을 했지만 최근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물러났다.

1994년 때에 다시 터진 남북예멘 내전, 이 전쟁에서 자유 예멘이 무력으로 재통일시킨다.

3. 상징물

3.1. 국기

위의 요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범아랍색에서 초록색을 제외한 3색을 빨강-하양-검정 순으로 나열했다. 빨강은 순교자의 피와 통일을, 하양은 밝은 미래를, 검정은 어두운 과거를 나타낸다. 독일 제국의 국기와 색 배치가 정반대로 되어있다는 게 특징.

북예멘의 국기에는 중앙에 녹색 별이, 남예멘의 국기에는 왼쪽에 큰 삼각형과 그 안쪽에 빨강 별이 있다. 통일 후 두 국기의 공통적인 부분만 남겨서 지금의 통일 예멘 국기를 제정하였다. 이러한 점은 독일 국기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다.[7]

3.2. 국장

국장은 금독수리가 두 개의 예멘 국기를 양 발톱으로 잡고 있는 모양으로 가운데에는 커피나무와 마리브 댐이 그려진 방패가 있고 밑에는 아랍어로 "예멘 공화국" 이라고 적힌 두루마리가 있다.

이 국장은 원래 북예멘의 국장이었다. 남예멘은 그냥 금독수리 가운데에 남예멘 국기를 세로로 그려넣은 방패를 넣고 밑에 아랍어로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이라고 적어놓은 형태였다. 통일 후 북예멘 국장을 통일 예멘에 맞게 수정한 것.

3.3. 국가

국기는 양쪽의 공통 부분, 국장은 북예멘 것을 약간 수정하였지만 국가는 구 남예멘 국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4. 지리

면적은 55만 km²로 남한의 5배가 넘는 큰 영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옆에 있는 4배 크기의 사우디아라비아 때문인지 작아보인다.[8]

Yemen_coast_guard.jpg
[JPG image (Unknown)]


미군은 소규모이지만 예멘에서 해안 경비대를 창설, 훈련과 장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곳 아덴만 인근에서 예멘 해군이 치안 확보에 기여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지정학적으로는 보기보다 중요한 지역이다. 바로 홍해의 입구이기 때문에, 예멘에서 마음만 먹으면 홍해를 막아서 수에즈 운하를 차단할 수 있다. 아래에서 언급되는 예멘의 내전에 사우디 뿐만 아니라 미국, 이집트 등이 많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

5. 정치

아랍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좋은 게 아니다. 높은 실업율+부패한 제도+서구식 민주주의=안보공백이라는 구도가 성립된다.

까놓고 말해서 정부가 정부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와하비, 지방 부족, 알 카에다 등등 다양한 세력에 의해 예멘 정부의 통제력이 매우 약화되어있다. 또한 전통적인 기호품인 환각 작물 '카트(قات, Khat)'를 대량재배할 때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성적인 수자원 부족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단지 모든 주요도로, 유전과 파이프라인의 "선과 점" 만 통제하고 있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UN 보안 담당관 밥 아돌프 중령의 의견으로는 국가장악력이 50%에 불과하다고.

과거 석유가 터지고 산유국이 되자 이것으로 봉건 족장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 석유가 모두 족장들의 뇌물 수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예멘은 일본 여행 안전 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과 더불어 온 나라가 '대피를 원고함. 여행을 연기하십시오.' 라는 뜻의 빨간색으로 칠해진 세계에 셋뿐인 나라 중 하나다.


실패국가지수에 따르면 예멘은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파탄난 나라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북한 (각각 11, 7, 23위) 보다도 더 심각한 세계 6위의 파탄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민주화 혁명으로 독재자 살레가 실각한 후에도 사회혼란은 지속되어서, 북부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이 준동하고 있으며 남부에서는 남예멘의 재분리를 요구하는 분리주의자들, 그리고 이 혼란을 틈타 침투한 알 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가 살림을 차려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안정을 위해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으나 부족주의 성향이 강한 예멘 특성상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는 않을듯 하다.

6. 사회

혼란스러운 역사와 막장인 정치 상황 때문에 1인당 4정(4인당 1정이 아니다!) 꼴로 기가 뿌려져 있는 상태다. 1980년대 남예멘에서는 귀찮은 협상이나 투표가 아니라 '총질' 에 의한 개각을 시행하려고 했을 정도. 대통령 경호원이 국무회의에 참석한 장관들에게 총기를 난사했는데 더 황당한 건 장관들도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장관들의 경호원들도 무장중이었다는 사실. 그래서 결국은 대통령측 경호원들vs장관들+장관 경호원들간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거기다가 장관들이 죄다 족장들이라 수도 시내로 총격전에서 확대되어 전투가 확산되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는 잘 조직되고 정부 경찰 제복으로 위장한 6명의 테러리스트가 미 대사관을 공격했었다. 물론 위험지역의 미 대사관들은 요새화가 되어 있으므로 애꿎은 예멘 정부군만 다쳤다(...).

동시에 아랍 세계에서 가장 인구 증가율이 많은(연간 2.8%) 나라이다. 이 속도면 25년 뒤 인구가 2배가 된다. 인구가 2005년에 2000만이었는데 6년 후인 2011년에는 2383만 3000명이 되었다.

튀니지 혁명으로 아랍권 전체가 혁명 열기로 들끓는 가운데 예멘에서도 혁명 열풍이 불어 결국 정부가 전복되었다. 예멘의 경우 이집트, 리비아와 함께 대표적인 정권 전복 사례. 아랍권 일대의 혁명은 전체 인구의 40~50%를 차지하는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상황인데 특히 예멘의 경우 30대 이하의 인구가 전체 인구수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피임을 금하고 아이를 많이 낳는 걸 오래전부터 권장하기에 대다수 나라들이 인구 증가률이 엄청나서 젊은 층이 많은 게 혁명 여파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7. 내전 및 종파 갈등


북예멘에는 시아파가 많은 편이다. 이에 비해 남예멘은 수니파가 많다. 예멘 전체를 놓고 보면 수니파가 다수이다.


2015년 3월 말 기준으로 상황을 보면 시아파 후티 반군(녹색)이 이미 수도 사나와 과거 북예멘 지역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제 2의 도시이자 과거 남예멘의 수도였던 아덴을 포위하고 있고, 정부군(붉은색)은 동부 사막지대로 쫒겨난 상태이다. 그나마 남은 지역의 상당부분을 알카에다(검정색)가 통제하고 있다. 노란색은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이 장악한 영역.

예멘 수니파와 종파 갈등을 벌이고 있는 시아파 후티 반군은 지난해 9월 수도 사나를 점령한 뒤 정치적 실권을 쥐었다. 초기엔 대통령에게 협조적이었으나 이후 자신의 몫을 주장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특히 최근 예멘을 6개 자치 지역으로 나누는 연방제로 새 헌법 초안이 작성되면서 후티의 공세는 거세졌다. 자원이 풍부한 남부까지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연방제로 막히자 쿠데타를 시도한 것.

2015년 1월 20일부터 21일까지 대통령궁을 장악한 뒤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예멘 최대 미사일기지와 군사학교를 장악했다. 로이터통신은 후티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현 대통령이 머물고 있는 대통령 관저의 경호원을 자체 병력으로 바꿨다고 보도했다. 대통령반군에 의해 관저에‘포로’로 잡혀 있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가 된 것이다.

만일 후티가 쿠데타에 성공한다면 전면적 내전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후티는 예멘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인‘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AQAP)와도 교전을 벌이고 있다. 후티가 정권을 쥐면 알카에다와 수니파 무장조직들이 반시아파 연합전선을 형성해 전쟁에 나설 가망이 매우 크다. 더욱이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서방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국제적 고립 속에서 참혹한 내전이 치러질 수 있다. 거기다 남예멘 사회주의 세력의 분리독립 운동도 있으니(...) 때문에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카에다나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많은 상황.

결국 후티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허핑턴포스트 기사 후티 반군이 예멘의 의회, 정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회를 세울 것이라고 발표했다. 혼란상이 극심해지고 치안 불안이 갈수록 악화되자 독일, 이탈리아 등 서구 국가와 사우디 아라비아까지도 대사관을 폐쇄하고 철수하였으며, 하디 대통령은 사직서를 내고 연금에서 풀려나자마자 자신의 지지기반인 남부로 달아난 듯 했으나 이내 사퇴를 번복하고 남부 6개 주의 지지를 받은 뒤, 아덴을 임시수도로 선포하고 합법 정부로서의 저항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반 후티 시위도 일어나는 중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예멘이 눈앞에서 붕괴되고 있다 며 경고하였다.

2015년 3월 20일에는 가뜩이나 상황이 안좋은 가운데, IS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까지 발생해 최소 137명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기사기사2 같은 날, 예멘에 주둔하던 미군(규모 100여명)이 완전 철수했다. 22일에는 후티 반군이 제3의 도시 타이즈를 점령했다.

26일부터 사우디군이 예멘에 전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15만명 규모의 병력과 100여기의 항공기를 동원하였으며 아랍국가들과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습 전날 백악관에서는 사우디에 정보와 군수 지원 명령을 내렸다.[9]

카타르수니파 아랍 국가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군사작전은 하디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전투는 예멘 수니파 정부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사우디 지상군 병력의 80퍼센트가 예멘에 투입된 가운데, 이미 이라크시리아에서 생지옥의 참극을 벌이고 있는 수니파-시아파 종파갈등 성격의 중동 국제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후티 반군은 4월 1일에는 하디 행정부의 임시수도인 아덴까지 점령했다. 하디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로 망명.

8. 문화

8.1. 음식

질 좋은 커피가 유명한데 예멘 모카 마타리는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 코나 팬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라 불릴 정도. 중세부터 커피를 재배하여 수출한 국가이기도 하다.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가 근처이며 당시 가장 큰 커피 수출 항구가 예멘에 위치하고 있어 커피 무역에 관한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던 곳이다. 이 항구 이름이 바로 모카다.

예멘산 커피는 특유의 복잡한 맛과 향으로 애호가들에게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예멘의 커피는 100% 건식 가공되며 그 방법으로는 커피 열매(체리)째로 바짝 말린 뒤 맷돌에 으깨어 커피에 필요한 부분만을 얻어내는데 그 과정상 불량률이 매우 높은데다 전근대적인 유통 구조 때문에 등급에 사기를 치는 일도 종종 있다.

사막기후가 많지만 그래도 자급자족할 먹을 거리는 충분히 재배할 수 있었으나 마약성 잎사귀인 카트 재배(물이 많이 필요하다)로 다른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여기에만 물을 많이 써서 지금은 먹을 거리인 밀가루와 여러가질 죄다 수입해오고 있다. 그리고 사막화도 늘어나고 있는 형편임에도 까트 중독자가 많아서 이 문제가 그래도 진행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년도 안 가서 까트도 수입해와야 하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엉망이 된다고 한다. 즉 내전 상황이 아니라도 먹을 것 문제로 헬게이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

8.2. 조혼

예멘 법안으로 17세 이상만 결혼 허가가 통과되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돈만 있으면 13살 이하의 여자애들과 결혼이 가능한 일이 많다.[10] 덕분에 # 이런 일도 있다. 이 블로그에 나온 내용 가운데 누주드는 한국에서도 나온 책 <나 누주드, 10살 이혼녀>로 알려지기도 했다. 블로그에선 250달러 위자료만 나왔는데 그 이후 국제적 비난과 같이 후원금이 들어오면서 위자료는 해결되었고 누주드는 다행히 별 일 없이 학업에 힘쓰고 있다.

8.3. 스포츠

나라 사정이 저러다보니 스포츠로 별다른 특징이 없다. 축구가 인기가 있긴 하지만 별다른 성적을 낸 게 없다. 예멘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약체급이라 걸프컵에서도 동네북.

9.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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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다만 구룡성 같다

'시밤' 이름이 참 마을은 사막 한가운데에 흙으로 만든 집들이 9~10층으로 고층 빌딩을 이루고 있어 '세계 최초의 마천루', '고대 세계의 맨하탄' 등등으로 불리며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던 세계적인 관광지였는데 최근의 치안 악화로 여행가기 어려운 곳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랍의 하와이[11]라고 불릴 만큼 천혜 관광자원이 가득한 나라이기도 하다. 온갖 대추야자 열매와 일절 개발되지 않은 바다와 산과 호수가 가득하여 그야말로 환상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소코트라섬은 2008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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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예멘이라면 믿기는가? 아니 애초에 지구도 아닌거 같은데?? 아바타??

내전으로 인하여 안타깝기도 하지만 되려 사람이 설치지 않아서 저런 자연이 유지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부정할 수가 없다. 2009년 여길 여행한 이의 책을 보면 되려 내전 지역이나 위험 지역을 피하고 무슬림같이 하고 지내면서 현지인들과 친해지면 더 물가도 싸고 사람들이 순박해서 더 좋았다고 쓴 적도 있다. 게다가 이런 위험 덕분에(?) 외국인이 안 와서 너무나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실컷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왔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고 한들 예멘은 엄연히 여행제한 국가다. 정부에서 가지 말라는 곳. 게다가 2011년 6월에 여행금지로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2009년 3월경에는 예멘 지역을 여행하던 한국인 관광객에게 폭탄테러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사태를 수습하고자 방문하던 공무원과 유족들에게도 테러공격이 가해지는 바람에 결국 2011년 6월 28일부터 반년(6개월)동안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었다. 참고로 그 테러 참사가 일어난 도시 이름이 시밤(Shibam 현지 발음은 쉬밤이라고 한다)' 이다.

그리고 2009년 6월 초에 선교차 방문하던 여교사 엄영선 씨가 납치를 당했다가 6월 15일 어린이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납치된 이들과 함께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같이 행동하던 독일선교사가 지나가던 현지인 무슬림에게 "헤이, 야만인. 그딴 믿음 버리고 기독교를 믿는 게 어때?" 라는 투로 말을 했다가 다음날 다같이 납치당한 것. 물론 이 독일인 선교사도 같이 벌집이 되어 끔살당했다. 이 때문에 당시 예멘 언론이나 여론이 더 분노했고 결국 자업자득으로 죽인 것이니 보상이니 사죄는 우리가 할 필요도 없다며 무시했다. 독일 및 한국 외교계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며 그저 사망자 시신이나 받아와야 했다. 독일 여론도 사정이 드러나자 더 욕을 먹었음을 물론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아프가니스탄 납치는 자주 거론하는 거와 달리 이 사건은 묻혔는데 개신교계도 마찬가지로 거의 거론을 안한다.

10. 외교 관계

이웃 사우디아라비아와 애증의 관계가 있다. 애초에 사우디아라비아가 현재의 공화국이 아니라 기존 왕정을 지원했던 역사적 앙금도 앙금이거니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말고 자국 부족한 문제인 곡물 재배일에 종사하는 이들이 예멘인들이 많다고 한다. 꽤나 고된 일임에도 워낙에 저임금이라 예멘인들에게 불만이 가득했는데 그나마도 곡물종자 시장에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하는 유대계 자본을 견제하고자 이슬람인들을 골라 쓴다고 하는데도 이 모양. 지금은 폐간된 월간잡지 지오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독특한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와 예멘 사이의 사막지대에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합의된 국경선이 없고 분쟁중이다! 합의된 국경선이 없으니 초소도 없고 감시도 없고 그냥 대충 넘다보면 예멘이 되고 사우디가 되고 그런 식이다...

결국 그렇게 예멘인들 모아다가 사우디아라비아 넓은 사막보리에서부터 복숭아무화과같은 농작물, 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다. 이게 돈이 엄청 들기에 밀 같은 경우는 수입해오는 돈 3배 이상을 들여야지 재배하여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이게 죄다 석유 파는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라 석유 떨어지면 막장될 듯.[12]

10.1. 한국과의 관계

한국과는 자본주의 성향의 북예멘과 1985년에 수교하였으며 이후 사회주의 국가인 남예멘과도 통일 직전인 1990년에 5월 18일에 대사급으로 수교하였다가 4일 뒤 남북 예멘이 통일되면서 외교관계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로코도코가 여기서 2년 정도 살았었다고.

북한과는 일찍이 남예멘과 단독수교를 한 후 통일 이후에도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1. 창작물에서의 예멘

영화 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배경이 예멘이다.

블랙 옵스 2에서도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발전한 것은 그저 군인의 무장 뿐. 여전히 막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파리드는 메넨데즈와 합류하기 위해 예멘군을 닥치는 대로 사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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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영어는 비즈니스상에서 주요 외국어이지만,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 한정되어 있다. 근데 남예멘지역이 예전엔 러시아어가 주요 외국어라서 일부 러시아어 사용자가 존재하는 것이 흠좀무하다.
  • [2] 이 북예멘으로 검색해도 이 예멘 항목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있다.
  • [3]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디파 세습 이맘이 통치했다#.
  • [4] 이집트 군대는 이 내전에 너무 발벗고 도와주다가 1967년 6일 전쟁 중에 이스라엘에게 완전히 뒤통수를 털리고 만다.
  • [5] 한국이나 베트남 같은 다른 분단국과의 차이가 이것인데, 두 지역이 서로 다른 외세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게 아니라 먼저 북예멘이 독립하고 그로부터 약 50년 뒤에 남예멘이 독립했다는 것. 그래서 분단국이란 인식이 적었던 편이었다.
  • [6] 실제로 아랍권은 단일국가로 통일,통합이 상상이상으로 잘 안 되는 지역이다. 일례로 1990년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무력 침공하여 쿠웨이트를 이라크에 합병시키려다 실패한 전례도 있었고 1950년대 말 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랍연합공화국으로 통합을 시도했다 실패한 전례도 있는 등 단일 민족 국가들로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나라마다 배타적인 부족주의, 지역주의 의식이 강하다.
  • [7] 분단 시절 동독과 서독도 각각 가운데 독수리와 공산마크를 상징하는 국가 로고만 빼면 국기가 전체적으로 동일했고, 결국 통일 독일 때에는 삼색기로 통일했다.
  • [8] 인구 역시 사우디 인구가 2700만이라서 거의 대등한 수준(80%).
  • [9] http://www.washingtonpost.com/world/middle_east/report-yemens-embattled-president-flees-stronghold-as-rebels-advance/2015/03/25/e0913ae2-d2d5-11e4-a62f-ee745911a4ff_story.html
  • [10] 이것도 이슬람 탓을 하기 쉽지만 실은 조혼은 전세계적으로 흔하던 일이다. 옛날에는 평균 수명이 워낙 적어서 일찍 결혼하던 문제도 있긴 하지만 7세기 이슬람권에서도 8살 소녀와 결혼(정확히는 양녀로 받아들였다가 좀 큰 다음에 결혼했다) 기록이 있고 지금도 인도나 서남아시아 비이슬람 지역이나 아프리카 및 중남미 원주민들에겐 꽤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물론 법적으로 금지되어 몰래 결혼하거나 외부인들에겐 양녀거나 친척이라고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2011년 6월호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참고).
  • [11] 이건 오래전 YTN에서 틀어주던 국제뉴스로 나온 바 있는 명칭이다.
  • [12] 이스라엘 키부츠도 비슷한 운명이다. 유태인들의 돈 없더라면 불가능했다. 물도 없던 척박한 곳에서 사해 물을 마구 끌어다쓰고 결국 터키에게 물을 수입해오는 형편으로 무리하게 사막에서 키부츠를 운영하는 판국. 골란고원이 있지만 거긴 시리아와 국경 분쟁으로 잘하면 폭격을 맞을 곳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