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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소

last modified: 2014-08-17 05:37:47 Contributors

令狐邵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인물로 자는 공숙(孔叔). 병주 태원군 사람으로 아버지는 한나라에서 오환교위를 지냈다. 영호우는 영호소의 족자가 된다.

건안[1] 초, 원소가 기주를 점거하고 있을 때 영호소는 고향을 떠나 업으로 이주해서 살았다. 204년에 무안현의 모성으로 출타해서 얼마간 성 안에서 살았으나 조조가 업을 포위하고 모성을 치자 영호소 등 십여인의 무리가 붙잡혀 모두 참수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 [2]

이 때 조조가 그를 보고는 영호소의 의관을 이상히 여겨 선조가 누구인지 물으니 영호소의 아버지는 조조의 옛 지인이었고, 조조는 그를 석방해 군모연으로 임명한다.역시 아버지는 잘 두고 봐야할 일이다.

군수, 국상을 역임하고 이후 승상주부로 옮겼다가 지방관으로 파견되어 홍농태수가 되었으며, 그는 가는 곳마다 차가운 눈처럼 청렴해 처자가 관청에 오는 일은 드물었다. 선한 일을 권해 민중에게 가르치고 관용으로서 사람을 대우하며, 소송을 좋아하지 않고 아랫 사람을 살갑게 대했다.

홍농태수로 되었을 때 군에 학식있는 자가 없었기에 그는 일일히 관리들에게 차례로 물어 멀리까지 가서 공부하고자 하는 이가 있으면 곧 휴가를 주어 파견해 하동에 가서 악상에게 경전을 배우게 하고, 대개 이해가 된 이후에 돌아오게 해 이로써 학문을 가르치게 하는 방법으로 홍농의 학업을 흥하게 한다.

황초[3] 초가 되자 조정의 부름으로 우림랑의 관직을 받고, 호분중랑장으로 승진해 3년이 지나 병으로 죽었다.

처음 영호소의 족자 영호우가 평민이었을 때 그가 언제나 높은 뜻을 갖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영호우가 필시 영호씨를 번영케 하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호소만은
영호우는 성질이 호탕해 덕을 닦으려 하지 않으면서 큰 뜻만 품고 있다. 필시 우리 일족을 멸할 녀석이다.
영호우는 영호소의 말을 듣고는 이를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영호소가 호분낭장이 되었을 때 영호우는 출사하면서 승진해 그 명성이 있었다. 영호우는 영호소와 만나 그를 책망했다.
이전에 어른께서 영호우를 일컫기를 일족의 맥을 끊을 자라고 하셨음을 들었습니다. 이제 와서는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영호소는 가만히 쳐다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은밀히 처자에게 말했다.
공치(영호우)의 성격 태도는 과거 그대로이다. 내가 보기로는 결국에는 파멸할 것이다. 그저 내가 오래 살아 그에게 연좌될지 어쩔지는 모르겠구나, 너희들에게 화가 미치겠구나!
과연 그의 말대로 영호소가 죽은 후에 10년이 지나 영호우는 연주자사가 되었고, 왕릉과 더불어 천자의 폐위를 획책했다가 나중에 발각되어 가족들은 주살되었다. 다행히도 그 때 영호소의 아들 호화는 홍농군승에 있었지만 영호우와 친족 관계가 멀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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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6 ~ 220년이다.
  • [2] 업이 포위될 당시 무안의 현장 윤해가 모성에 주둔하며 병주와 연계를 시도하자 조조가 포위군을 남겨둔 채 별동대를 인솔해 윤해를 격파했다. 아마 영호소는 원씨의 휘하에서 일했고, 조조가 업을 칠 무렵에는 윤해를 지원해 고간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듯 하다.
  • [3] 220 ~ 22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