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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last modified: 2015-03-21 18:06:24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영지주의란?
3. 영지란?
4. 용어
4.1. 아이온
4.2. 아르콘
4.3. 데미우르고스
4.4. 소피아
4.5. 렉스 문디
5. 세계관
6. 기독교와 영지주의
6.1. 기독교가 주장하는 교리적 차이
6.2. 탄압과 분쟁
7. 중세의 영지주의
8. 현대의 영지주의
9. 관련항목


1. 개요

靈智主義; 그노스티시즘; Gnosticism

초기 그리스도교(1~4세기)에서 이단으로 지목된 집단. 그리스도교에서 유래한 내부의 이단이라는 것이 전통적 견해이지만, 영지주의 집단의 실체를 명확하게 드러낸 연구 결과는 없다. 단, 영지주의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한 견해는 교회사에 얽혀 있는 발렌티누스 주의에 대한 연구 정도로 집약할수 있을 것이다. 즉, 드러난 실체가 없는 영지주의의 경우는 대부분 영지주의 반박자들의 루머가 저서화 된 것에서 기인하는 문제이다.

현존하는 영지주의에 대한 자료는, 대부분 소위 정통파에서 영지주의자들을 비난하면서 언급한 자료가 상당히 많다. 따라서 정통 교리에 걸맞지 않는 신비주의적 경향은 대부분 영지주의라는 카테고리에 다 묶이게 된다.

허나 실상적으로 영지주의로 볼수 있는 것은 13세기 카타리파/보고밀파와 4세기까지의 발렌티누스에서 기인한 분파주의 운동들이다. 즉, 영지주의의 개념은 사실상 두개이다.

2. 영지주의란?

사실 여기서부터 막히는데, 물질과 영혼의 뚜렷한 이원론을 특징으로 하는 것은, 역사상 영지주의만이 아니라 아니라 서양에서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발상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질을 악마의 창조물이나 그 부산물로 여기는 경우가 흔히 말하는 영지주의이다.

신의 피조물인 영혼이 악마의 창조물인 물질(육체)에 갇혀 있으므로 영지(그노시스)를 얻어서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개념이다.

롤란드 베인턴의 <세계교회사>에서는 영지주의를 이렇게 인식했다.
영지주의에는 매우 다양한 체계와 사상이 있지만, 영지주의 신화의 핵심은 이와 같았다. 즉, 궁극적인 것은 부정적인 점들로만 (알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셀 수 없는 것, 헤아릴 수 없는 것) 묘사할 수 있는 존재의 거대한 심연이다. 이 심연은 역동적이고, 그 충만(플레로마) 속에서 발출(emanation)에 의해 상이한 것들이 발생한다. 그 발출된 것 중 하나가 지혜(Wisdom)이다. 지혜는 플레로마의 비밀을 알려는 과도한 호기심에 잔뜩 사로잡혀 있다가 고통 속에서 물질을 발산했는데, 이 물질이 데미우르고스(demiurge)의 도움으로 이 가시적인 세계로 조성되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창조관과 정 반대된다.

어째 여호와의 증인이 영지주의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영지를 추구하지도 않는데다가 비물질적인 영혼개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영지주의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아니 사실은 전혀 틀리다. 차라리 아리우스파겠지.

영혼과 육체를 근원적으로 다르게 여기는 것은 지중해 주위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사고방식이며, 기본적으로 육체를 단순한 껍질로 보고, 영혼만이 진실된 것이라고 주장한 플라톤 주의가 발전된 형태로 여러 지역의 특성과 사상에 융합되었다.

영지주의는 일관된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교가 퍼진 여러 지역에서 이원론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다르게 해석한 것을 모두 싸잡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 연구의 핵심은 "공통분모를 찾아 정리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는 학자도 있을 정도. 게다가 비영지주의 교파, 즉 보편교회 및 기타 교파에서 영지주의에 대한 기록 단편들이 남아 도는 것이 더 문제가 되었다.

2세기 로마교회에 거금을 헌금하면서 등장한 마르키온(Marcion)은 흔히들 생각하는 '모범적인 영지주의'와는 차이가 있으나, 그렇다고 영지주의와 관계가 없다고 하기에는 비슷한 요소가 많아서 '半 영지주의' 정도로 본다. 허나 마르시온파의 후대 행보를 보면 2세기 중반 발렌티누스와 연합하는 등의 행태를 거치게 된다.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영지주의의 대부분의 사상은 발렌티누스를 거치게 된다. 즉, 마르시온, 혹은 그 이전의 주장들은 발렌티누스에 의해 1차로 통폐합, 2차로 분화하게 된다.

3. 영지란?

영지그리스어로 그노시스(gnosis)인데, 이건 그냥 지식이라는 일반명사이다.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말하는 영지는 진정한 신에게 도달하는 진정한 앎을 뜻한다. 영지는 소수만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므로, 특정 공동체에 소속되어 선택받은 자만이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런 영지를 추구한 공동체로는 특히 발렌티누스 파가 크고 유명했다.

4. 용어

아이온이 어쨌느니 소피아가 어쨌느니 하는 내용은 도서관 구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책에 있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인터넷에 제대로 올려놓은 경우는 없다. 지금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들은 적당히 주워들은 소리에 내용을 보탠 것들이 전부다. 관심있는 사람은 한국어로 번역된 유다복음을 추천한다. 그 외의 책은 대부분 영어다... 유다복음의 경우는 최소한 기본 개념을 잡고는 있지만, 실제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알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바로 발렌티누스에 대한 연구이다. 발렌티누스는 2세기의 교부로서 사실상 영지주의의 대부이며, 실상적으로 좋건 싫건 영지주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은 그이다.

사연이 좀 징한데, 플라톤주의의 용어들을 차용하여 영지주의를 설명하고 삼위일체를 처음 고안한 사람 자체가 바로 발렌티누스였다. 문제는 이후의 상황인데, 현재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은 실은 유다복음의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나왔다 하더라도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반박에서 차용한 내용을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윤색한 경우가 많지만, 실은 이건 과장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카인파, 즉 있지도 않은 분파에 대해 있다고 주장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며, 나그함마디 문서의 연구 등 이후 사료의 발견으로 발렌티누스주의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되기 전까지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상당부분 당시 보편교회의 입장을 차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즉, 애초에 데미우르고스의 개념을 정립한게 발렌티누스인데, 문제가 이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다른 영지주의 분파를 들어 주장하는 것은 더없이 애매한 문제라고 할수 있다.

4.1. 아이온

그리스어로 '시간', '영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냥 "영원한 존재" 정도의 뜻. 보통이 아이온은 데미우르고스를 창조했다고 여겨진다. 아이온은 하나 또는 여럿으로 나타난다.

4.2. 아르콘

아르콘은 본래 그리스어로 '집정관' 정도의 의미이다. 아이온에 대비하여 현재의 물질 세계를 만들어낸 신, 혹은 기존에 믿어지던 신들을 포괄하여 나타내는 용어이다. 데미우르고스 역시 아르콘의 일종이다.

4.3. 데미우르고스

그리스어로 '제작자'라는 뜻이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온다. 보통 영지주의에서는 물질을 창조한 신으로 나타난다. 이 제작자(데미우르고스)를 야훼와 동일시하고, 예수가 말하는 아버지는 그보다 상위의 신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위에 언급했듯이 영지주의에서 물질은 "악마의 창조물"이므로 데미우르고스는 악신이다. 설령 악신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완전한 물질과 악을 출현시킬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이다. 일부 영지주의자는 데미우르고스를 악신이 아닌, 선하기는 하나 약한 존재로 보았다.

데미우르고스는 사악한 신[2]이라, 데미우르고스가 만들어낸 세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악덕으로 가득했다. 데미우르고스는 인간에게 육체를 주었고 또 영혼을 부여했지만, 고귀한 영혼이 더러운 지구 중력에 사로잡힌 올드타입 육신에 사로잡힌 인간이 나왔다.

데미우르고스는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3] 그래도 다른 아이온의 개입으로 몇몇 인간들은 육체의 틀을 벗어나 참된 인식을 얻을 수도 있는 씨앗이 있었다. 이러한 인식의 가능성을 가진 인간은 노력 여하에 따라 참된 인식을 얻을 수도 있으나, 가능성이 없는 인간은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영지주의라고 편의상 하나의 명칭으로 부르긴 하지만, 이는 갖가지 분파를 싸잡아 불러진 호칭이다. 분파는 대단히 다양하며, 당연히 해석 또한 대단히 다양하다. 데미우르고스를 사악한 신으로 보는 분파도 있었으나 어떤 분파는 데미우르고스를 삐뚤어진 가짜 신으로 보지않고, 뭔가 하려는 능력은 되나, 의욕이 없는 무기력자라던가, 개념은 잡혔는데 능력이 안되는 무능력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대개 통용되는 개념이라고 해도 모든 분파에 적용되는 일괄적인 개념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그러나 사실 반대로 원개념은 악이었는데 이후 타협적 관점에서 악이 아닌 형태로 개수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유? 바로 그 플라톤주의를 배껴온 원흉인 발렌티누스의 정의 문제이다.

상술한 "데미우르고스의 선에 대한 설파"는 실은 기록상으로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논박, 특히 발렌티누스 주의에 대한 반박에서 드러나는 사상이다. 이 경우 교계의 다분히 "정치적"인 상황을 살펴야 하는데, 발렌티누스는 교황 될 뻔한 사람이었던 관계로 당시 최대 정파였고, 이레나이우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까야만 할" 입장이었던 관계로 "발렌티누스의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성향성 주장을 뒤집어 주장" 하는 셈이었다. 뭐, 없는 분파도 있다고 우길 판이었으니 어련할까만...

여하튼 그 개념의 정의에서 보면 발렌티누스에 대한 반박으로 볼때 원래 영지주의의 개념정의는 악이었으되, 이후 보편교회의 주장에 대한 타협적 입장으로 전제된 것이라고 볼수 있는 것이 바로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여러 주장이 된다. 실제로 이후 키프로스에서 영향받은 각종 영지주의 분파들이 "유동적인 이단"이었다는 점을 살펴 보면 그 "유동성"의 의미가 어떤 것들을 타협했는가에 대한 점을 쉽게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4.4. 소피아

그리스어로 '지혜'라는 뜻이다. 구약에도 지혜는 여성으로 의인화되어서 나타난다. 게다가 그리스어에서도 지혜(소피아)는 여성명사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여신으로 확대해석한 것이 이른바 영지주의의 소피아.

허나 정확히는 이것을 존재하는 여신의 개념으로 처음 발상하지는 않았다. 실은 이 개념은 "엔노이아-엔노이아 소피아(대 소피아)-에온 소피아"라는 3중의 개념으로 이어지는 경우이므로 사실은 여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아니무스-아니마의 개념과 비슷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알파와 오메가로 보는 개념이 적용되기도 한다.

즉, 엔노이아는 생각을 의미하므로 실제로 그 단어 그대로 신과 결합되어 있는 사고를 의미하며 그것을 "배우자"의 형태로 보았다. 남녀 중성의 형태로 개념화 된 신의 형상에 대한 주장은 사실은 여기서 기인한 것.

또한 소피아는 원죄를 의미한다. 사실 소피아의 잉태에 대해 그녀가 "불완전한 존재인 데미우르고스를 처녀생식" 했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배우자인 그리스도와의 협력이 없이 창조했기에" 세상이 불완전해 졌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실상적으로 볼때 인간의 원죄의 개념을 적용하지 않은 영지주의 분파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의미를 소피아에서 기인한다고 봤다.

4.5. 렉스 문디

신과 대비되는 악신의 개념으로 이원론적 영지주의에서 기인한 해석이다. 이는 13세기 카타리파에 의해 제창된 이론인데, 중세 영지주의와 초기 영지주의의 가장 큰 차이점을 부여하라면 바로 이 이원론의 존재이다.

초기 영지주의는 근원이 되는 신, 즉 아담이나 사람의 아들로 대변되는 일원이 제기되고, 데미우르고스로 의미되는 창조신, 달리 말해 악신이 대비되는 개념으로 제창되지만, 이것이 13세기 해석에서는 선악이 동등한 개념으로 공동창조를 한 것으로 의미된다. 즉, 사실상 이 두가지, 일원적 이원론과 이원론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면 영지주의를 분류할수 있는 기준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도 진배 없다.

5. 세계관

영지주의는 물질적인 현 상계를 더러운 것으로 본다. 물질은 사악한 신(=악마)이 창조했거나 결함투성이로 만들어졌다는 것. 인간의 육체도 물질이므로 사악한 피조물이며, 이 더러운 육신 안에 영혼이 갇혀 있다. 따라서 영혼을 육체와 물질세계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는 것.

어쨌든 진정한 신은, 비록 자신이 창조하지는 않았으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 인간들을 가련히 여겨 예수를 '인간이 아닌' 몸으로 내려보내게 된다. 인간 중에서 영지를 깨달을 수 있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은 예수를 통하여 영지를 깨달음으로써 사악한 물질세계로부터 탈출하여 빛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4]

오르페우스교나 피타고라스교에서도 이런 식의 영혼해방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니까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특별하게 생겨난 이단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그리스 세계로 들어와 접합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해석의 한 방식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적 영육이원론과 유대전통의 유일신론이 신비주의적으로 접합되면 영지주의는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다.

단, 13세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영지주의는 이슬람의 수피즘, 혹은 그 전단계의 다른 영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즉, 일원적 이원론의 관점에서의 영지주의는 세계관에 있어서 창조의 근원이 결국은 하나이지만, 이원론적 영지주의에서는 창조관이 완전히 둘로 나뉘게 되며, 이 특징은 반대로 이슬람 신비주의의 영향에서 왔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6. 기독교와 영지주의


사실 아래 기술된 내용은 영지주의에 대해 전혀 역사성을 부여할수 없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일각의 관점이지만, 영지주의의 기록에 대해 거의 확실성을 부여하는 기록은 아이러니컬 하게 스리 기독교 내부의 기록에서 이미 드러난다. 특히나 2세기의 교황권(로마 주교좌)문제에서 그 기록을 찾을수 있다.

대부분 영지주의에 대해 시몬파나 카인파 전설을 믿는 사람들이나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할수 있겠지만, 사실은 영지주의자에 대한 기록중 카톨릭이 가장 경계했고, 이후의 교회사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발렌티누스이다. 때문에 발렌티누스를 두고 모든 이단의 어버이라는 칭호까지 줄 정도였으니...

역사적인 영지주의에 대한 기록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1. 원래의 영지주의는 마르시온파와 더불어서 초기 기독교의 계파 중 하나였으되, 로마 교구가 아닌 알렉산드리아 출신이었고 베드로가 아닌 바오로의 승계를 주장하는 파벌이었다. 실은 카톨릭쪽의 기록을 봐도 이런 내용들이 뻔하게 드러나 있는데, 마르시온은 바오로의 제자를 사칭했다 하나 발렌티누스에 대해서는 바울의 통역이었던 이의 제자로 사실상 바울의 직계로 평가했던 관점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2. 2세기 중엽의 교황 선출 문제에 있어서 발렌티누스의 약진과 마르시온파를 흡수한 그 영향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반증으로 주장되는 것이 바로 이 당시 교황선출 바로 다음에 있었던 "베드로의 무덤 발굴"과 발렌티누스가 키프로스에 들어간 다음 나온 이단논박이다. 이 이단논박을 쓴 이레니오, 흔히 이레나이우스라고 알려진 이는 사도 요한의 문하생 출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나" 발렌티누스를 반박하기 위해 온갖 노력과 무리수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이 증명 또한 명확하며, 이는 삼위일체의 원조라고 기독교가 주장하는 테르툴리아누스(실제의 원조는 발렌티누스다)가 발표한 발렌티누스 주의에 대한 반박이 실상은 이레나이우스의 저서를 번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연원을 살펴 볼수 있다.

3. 사실 테르툴리아누스의 이단논박에 대헤서 생각해 보면 이 시기까지는 영지주의자들이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즉, 만일 3세기에서 4세기에 영지주의적 교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반박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꿔 말해서 3세기까지도 키프로스에서 기인한 영지주의 분파들의 주장은 교계 내에서 정치적 암투를 유발할수 있는 기폭제였던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나, 이후 테르툴리아누스의 행적이 몬타누스파로 개종한 것으로 이어진 행보를 보면 당시 어지러웠던 교계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다.


바꿔 말해서 니케아 공의회 이전까지는 영지주의는 기독교 분파였다. 단지 당시 보편교회도 실은 보편이 아니었던 안습한 상황이었고, 자금력에서 우위인 로마교구가 다른교구를 뒤흔들고 수장권을 주장하던 상황, 뭐 이건 사실 후대에도 같지만 여튼 그런 상황에 힘입어서 신앙이 아닌 조직내 암투에 의한 정쟁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은 분석이 될 것이다.

6.1. 기독교가 주장하는 교리적 차이

초기 기독교는 유대교의 전통과 예수로 대변되는 유대교 개혁운동, 그리고 플라톤 철학을 위시한 그리스 사상체계가 뒤섞여 있었으며, 이 때문에 당시 그리스 철학의 큰 흐름중 하나였던 영지주의적 사상이 전파되었으며 부분적으로 수용하기도 했으나, 이후 기독교내에서 영지주의가 강한 교파는 이단으로 규정되며 치열한 종교 투쟁을 벌이게 된다.

초기 기독교와 영지주의가 충돌한 것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유일신인 야훼를 악하거나 허약하여 더러운 육신의 세상을 만든 데미우르고스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구약의 신(야훼)과 신약의 신의 분리해서 구약의 신을 하위신으로, 신약의 신을 상위신으로 구분하는 식. 이 외에도 사악한 육신에 고결한 신성이 깃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 예수를 아예 인간인 적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야훼를 최고신으로 보고 별도의 데미우르고스를 간주하는 경우에도 야훼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는 것, 선한 신성이 잘못된 물질과 연관될 수 없기에 신성에 육신에 머무를 수 없다고 여겨 성육신(예수의 인성)을 부정하는 점등 많은 차이가 보인다. 하나님과 예수의 정의, 설명이 다르면 이단으로 여길 수 밖에 없기 때문.

여기에서 중요한 용어인 데미우르고스, 소피아, 아이온 등은 원류가 플라톤 철학이며 기독교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유대교식의 유대-아람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그리스 철학을 받아 들였다고는 해도 원류는 유대교에서 출발한 기독교 본래의 체계와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불교 교파가 기독교의 교리를 받아들여 연기론을 부정하고 예수를 석가모니보다 우위에 놓는다면 이것을 불교라 할수 없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영지주의와 뿌리를 같이 하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초대 교회의 학자들(대표적으론 오리게네스)이 기존의 교회구성원들과 교리의 해석에 충돌하여 비영지주의파와 가열찬 사상적 논쟁을 벌이게 된다.

단, 초기 기독교는 모조리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와 기존의 교회 구성원들과 교리의 해석에 충돌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만... 기독교의 정통교리를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도 플라톤의 틀을 거의 통째로 가져다가 신학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시간, 즉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논박은 2세기의 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세기 사람이므로, 결론적으로 플라톤주의에 대한 논박은 그 이전의 일이 된다.

역으로 대조하면 이는 4세기 이전, 즉 기독교의 보편교회 교리의 성립 이전의 문제일 뿐이고, 그 이전에는 플라톤주의적 사관을 반하는 해석과 상호간의 대립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즉, 기독교측 주장의 문제는 시간의 벽에 가로막히는 셈이 된다. 근데, 그건 맨날 있는 일이지... 항상 역사에 엿먹는 종교

즉 의외로 명확한 경우인데, 초기 영지주의의 플라톤주의적 논조에 대한 비판의 문제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달리 말하면 당시 로마교구의 입장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며, 초기 헬레니즘 계열의 개혁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유대교에 근본을 둔 로마교구 세력과 어떤 갈등 상태에 있었는가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바이다.

6.2. 탄압과 분쟁

초대 교회와 영지주의의 충돌은 초대 교회 교부들이 쓴 반영지주의적 논박서나 공개적인 행사인 이단논박등을 통해 알 수 있으며 단편적으론 영지주의에 대한 서적들를 통해 알 수 있다.[5]

영지주의에 대한 탄압은 동일한 신앙을 중요시한 기독교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신앙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로마인이었기에 기독교의 교리적 차이에는 별 관심이 없어, 케아 공의회의 결정대로 단죄한 아리우스파를 몇 년 뒤 다시 불러들일 정도였다. 뭐 당연한 것이지... 왜냐하면 황제파 측근들이 대부분 아리우스파라서 결국은 아타나시우스가 추방을 당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면 교계에서는 생난리를 쳐도 정치권에서는 영지주의고 나발이고 상관 없이 유용한 교파가 갑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가톨릭적 체계는 발생하고 있었으며 몇몇 사도의 순회 집회를 통해 정통 교리와 어긋난 해석이나 이단화된 해석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즉 비교적 일찍 부터 정통이라는 개념이 등장해 있었던 것이며, 사도들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지역교회의 감독이나 장로들이 교부라고 불리게 되면서 이들이 이단과의 싸움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다. 이들은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사도들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설들을 제거해 나갔다. 또한 공의회의 권위는 정통파 교회가 서로 하나의 신조를 갖게 할 수 있었고 서로의 결정사항을 알리는 등 연대의식이 있었지만, 영지주의파는 이러한 연대의식이 없었다.

사연은 사실 3세기 이후의 문제가 되긴 하는데... 영지주의자들은 원래 3세기 이전에는 그 사도 정통성을 주장하였었다. 바로 바오로의 직계. 영지주의 최대 계파였고, 당시 가장 날리던 교부인 발렌티누스, 마르시온과 같은 경우는 바오로의 제자, 바오로의 통역이자 직계의 제자 등으로 정통성이 서 있었고 사실 여기에 대해서 보편교회 측에서 반박도 별로 없었다.[6]

그에 반하여 많은 영지주의는 우주관과 구원관의 상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주장들이 다른 교파들이 많았고, 이들끼리는 서로 손을 잡지 못했다. 그 결과 보편교회를 주장하는 로마교구 세력들에 의해 이단으로서 각개 격파, 제거될 수 밖에 없었다. 발렌티누스의 키프로스 은둔 이후에 분열도 그랬고, 사실 영지주의 사상관 자체가 개인적 사색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교파간 상호 문제에 대해 별로 연대도 터치도 안 했다는 것이 포인트. 즉, 그 이후 구심점이 없었다는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고질화 된 것으로 볼수 있다.

유다복음을 예로 기존 교단이 영지주의를 직접적으로 탄압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유다복음이 집필 될 당시에는 그리스도교 자체가 비밀종교로 활동하던 때라 직접적인 탄압은 불가능하다. 또한 유다복음을 쓴 분파는 영지주의 중에서도 소수분파다. 유다복음을 쓴 분파는 기존 교회의 부패를 비난하다 공개매장된 게 아니다.[7] 유다복음을 쓴 분파가 별달리 호응을 얻지 못해 영지주의 중에서도 소수분파였던 것이다. 유다복음을 쓴 분파는 기존 교단의 개혁을 원한 게 아니라 독자적인 교리체계를 갖춘 곳이었고, 그 교리 내에서는 비영지주의파의 도덕이 타락한 수준이었던 것이다[8] 뭐 실상적으로도 타락했던 것이, 2세기에서 3세기, 로마교구의 주도권 쟁탈 행위는 점점 심해졌다. 정치적으로도 탄압당하는 기독교의 세력에 대한 내부 단속에 대한 이유도 있었겠으나, 3세기경의 교계 상황을 보면 몬타누스파 등의 은사주의 분파도 생겨나는 등 사실 기독교계는 어지러운 상황이었던 것이 실상이다.

게다가 그 탄압 문제에 대해서는 뭐 단순히 정의할수 있는데, 실은 탄압이 있기는 있었는데 4세기이다. 탄압의 원인은 사실은 카르타고 공의회를 기점으로 한 정경 성립을 위한 투표에서 기인하는데, 이 이후에 경전 탄압이 이뤄진 것이다. 즉, 탄압이 있었다면 사실상 유다복음 자체가 로마교구와 대치하는 주장을 담았다는 점을 보면 같은 기독교계의 동조를 얻지 못했으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대상이 된 것이 실상이라고 할수있다. 바꿔 말하면 탄압을 하는 조직이 기독교 자체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기독교 조직은 그걸 그냥 방관했을 것이라는 점이 간단히 유추되는 결론이다.

실제 당시 비영지주의파 교회가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부패/타락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는 있다. 상대를 비판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부패나 상황에 따라서는 더 심각한 법죄 혐의를 덧씌우는 것은 흔한 수법.[9] 인데다가, 기본적으로 영지주의는 육체적, 물질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의 인간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 주류 교회를 무조건적으로 부패한 것으로 인식했을 가능성도 높다. 허나 일반적인 관계 해석과는 달리 당시 기독교의 나름 실험적인 교리 도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이것에 대해 타락한 교리를 주장하였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지주의를 비롯한 이단과의 종교투쟁을 통해서 대략적으로만 존재했던 기독교의 교리체계가 점차 확고한 체계를 잡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뭐 좋게 말해 확고한 체계이지, 실은 정치적 리폼이었긴 하지만...

이단논박이 쓸고 지나간 뒤, 이단으로 몰리면서도 자신들의 사상과 접근법을 고수한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기독교와 분리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영지주의적인 해석은 플라톤 철학의 보존과 함께 끊임 없이 등장하게 된다. 실제로 중세 이단으로 간주되어 탄압당한 몇몇 교회 개혁 운동은 영지주의적인 색채를 띄기도 하며, 루터의 종교개혁에서도 일부 영지주의적인 요소가 교리를 확립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영지주의교회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교회에나 대충 실체화해서 언급하고 있지, 현대신학에서는 영지주의를 실체화할 수 있는가를 놓고 연구를 하는 중이다. 영지주의자들이 기존의 교회를 '그리스도의 참된 뜻을 왜곡시킨 자'로 비난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런 비난은 교회내부에서 벌어지는데, 서로가 서로를 영지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뭐 사실 당연한 결과였기도 한 것이, 마르셀루스의 삼위일체 폭로와 같이 기독교의 주요 교리를 처음 제창한 것이 바로 영지주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엄청나다고 할 밖에...

단지 영지주의 교단의 실체와 관련한 내용을 좀더 짚어 보면 기독교 신학자들이 울고 싶어지는 결과는 속출할수 밖에 없다. 사실 고고학에 의해 소위 신학이 맨날 무릎을 꿇는 것이... 어쩔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 반면적으로 실체에 대해서 언급하는 근거가 되는 이레나이우스의 이단반박의 경우 앞선 기술과 같이 무리수가 너무 많아서... 발렌티누스와 같이 여러 기록에 등장하여 확실시 되는 인물을 제외하면 교파에 대한 설명은 애매하기 그지 없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학자들은 발렌티누스를 원류로, 마르시온을 모티브로 보는 경향이 많다.

즉, 반대로 보면 기독교 내부에서 영지주의가 분리되었다고 볼 증거도 없고 보편교회가 영지주의를 베낀 교리를 나중에 주류화 한 것은 불편한 진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반대로 말하면 위에서 상술된 교리체계를 확고히 하다는 의미는 실은 "온고이지신-교리를 배껴와 새롭게 하다"라는 의미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은 더 충공깽한 사실이 있다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물론 정통성을 지닌 발렌티누스에서 기인한 원조 영지주의자 그룹은 아니었지만, 기본적으로 마니교 개종자였다. 달리 말해서 전영지주의라고 불리우는 마르시온-발렌티누스주의가 마니교와 페르시아 영지주의와 주고 받은 영향을 고려하면 그는 희석된 영지주의 교리를 차용하여 적절한 교리적 타협점을 주장할줄 알았던 인물이었다고 할수 있다.

이후 일반적으로 중세 이후 대부분의 교부들이 영지주의라 생각한 것은 실은 중세 영지주의이다. 이 경우는 고대 영지주의와는 전혀 틀린 관점을 가지고 있다.

7. 중세의 영지주의

사실 대부분 "영지주의"라고 생각되어지는, 한국이 아닌 외부의 경우는 발렌티누스파로 이어지는 계보로 4세기 까지를 의미하거나 중세의 영지주의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 중세 영지주의는 실체가 분명하기 때문에 더더욱 잘 알려진 케이스이다.

이 시기의 영지주의로 잘 알려진 계파는 카타리파, 그리고 보고밀파가 있는데, 이들이 잘 알려진 이유는 이들을 기준하여 반란이 일어났고 특히나 카타리파는 십자군 전쟁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

이들 사상의 경우는 과거 영지주의와 차이가 있다. 사실 영지를 알고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비슷하나 극단적 이원론을 주장한다. 소위 렉스문디를 지칭하여 신을 두가지 개념으로 보는 관점이다.

허나, 이 영지주의는 극단적 이원론의 문제도 그렇거니와 초기 영지주의와 이어지는 흐름은 아니다. 이유인즉 영지주의의 전이성에 대한 문제.

사실 고대 영지주의는 마니교로 흡수되면서[10] 이슬람 영지주의 형성시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고려되고 이것이 다시 역수입된 것으로 볼수 있다. 이 경우는 주로 이슬람의 수피즘과 유사한 영지의 형성으로 인한 결과, 즉 플레로마의 상태와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되는 그들의 주장으로도 알수 있다.

이 카타리파는 사실상 카톨릭에 개망신을 주었으며, 마르세유 지방의 종교가 이미 되어 버린 관계로 카톨릭이 십자군보다는 개종을 먼저 시도 했으되 매우 소수만 개종했다는 역사가 있다. 따라서 군사적 개입이 불가피했다고 하는데, 실은 정치적으로 얽혀 있는 이런 저런 사항들이 독립을 요구하게 했고, 독립하는 측에서는 종교의 정치간섭을 억제하기 위해 신종교를 주창한 것으로 볼수 있다.

때문에 카타리 십자군, 혹은 알비 십자군으로 불리우는 십자군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8. 현대의 영지주의

없다. 루시퍼처럼 종교가 아니라 소설이나 판타지에서만 종종 이야기된다.

현대에 영지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종교는 여호와의 증인 정도인데, 이들도 영지주의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이 세계를 악마적으로 여긴다는 점이 영지주의와의 공통분모인데, 이것 말고는 비슷한 것도 없다. 무엇보다 여호와의 증인은 영지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알려진 영지주의에 대한 내용은 발렌티누스파로 대표되는 철학계통의 유명한 분파이나, 정신적인 깨달음을 강조하는 형태를 취하기에 사상이나 학문적인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때문에 불교와 영지주의를 모두 잘 모르는 경우 이 둘을 영지주의를 불교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11] 이 경우는 불교를 알 필요는 전혀 없으되, 그간 페르시아 영지주의의 문제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불교와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고 사실은 마니교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12]

반대로 발렌티누스파가 잘 알려진 것은 그 역사적인 연원이 가장 확실하기 때문이다. 즉, 이 경우는 애초에 부정할수가 없거나 어려운 사실들에서 기인하는 나름 인증된 경우이기 때문. 사실상 발렌티누스파 이후라면 모를까, 시몬파나 카인파와 같이 이레나이우스의 주장이 하도 부정확한지라서 실상 학계에서 영지주의 실존성을 의심하는 경우에도 시몬파, 혹은 카인파와 같은 경우만 고려될 따름이다.

허나 전영지주의 계파 중에서 세트파나 오피스파, 발렌티누스 이후의 종파 중에서는 바오로파 정도는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게다가 사실 2세기 말엽에 형성된 발렌티누스주의의 주장은 사실상 1세기 말엽 경의 학파들의 주장을 거의 흡수한 단계였다. 말하자면 영지주의의 통합적 형태를 가진 편이라고 할수 있고, 복잡성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거기서 기인한다고 할수 있다.

현대 영지주의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내용들이 밝혀지게된 것은 나그함마디 문서를 발견한 이후 여러 고문서들이 대조되면서 발렌티누스주의의 위치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여러 사실들 때문이다. 즉, 과거까지는 주로 카톨릭측에 남아 있는 여러 모작된 기록들의 진위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사료가 없었으나 20세기 들어서 발견된 여러 논조들에 의해서 재해석된 것들이 영지주의의 본모습을 복각해 가는 형태로 드러나게 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이 영지주의에 대한 본질을 비교적 바르게 설명하게 된 것.

9. 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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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발렌티누스의 삼위일체 원안에 대한 주장은 역사적 반증 및 마르셀루스의 삼위일체 반박에서 찾아 볼수 있다. 이 경우 마르셀루스 자신이 언급한 대로 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삼위일체 개념을 도용한 것이 발렌티누스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그는 그 관점에서 아타나시우스를 살벌하게 까지만 아리우스파는 아니었다고 외려 반대 진영이었다. 즉, 니케아 이후 아리우스 까기가 성공하고 난 다음에 반대로 삼위일체를 발렌티누스 베끼기라고 폭로해 버린 것.
  • [2] 혹은 선하지만 진정한 신이라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존재
  • [3] 물론 데미우르고스를 사악한 신으로 보는 분파에서는, 데미우르고스가 이러한 사태를 바로잡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고 생각했다. 사악한 신이라면 세상을 올바르게 하려고 할 리가 없지.
  • [4] 이것이 불교와 가장 큰 자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누구나 다 진리에 도달해 붓다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니 말이다.
  • [5] 반영지주의적 서적을 쓴 교부로는 "테르툴리아누스가 대표적"이다... 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테르툴리아누스는 결국 이레나이우스의 반박을 번역한 것 뿐이다.
  • [6] 실제로 발렌티누스에 대한 논박을 보면 "그는 대단한 교부였으나, 교황선출에서 떨어지자 이단이 되었다"는 논거를 하고 있다. 허나 시몬파나 카인파와 같은 비방은 하질 못했다.
  • [7] 그럼 다른 영지주의파는 어떻게 알려졌겠나?(...)
  • [8] 신흥종교가 기존종교의 부패를 공격하는 것은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하지만 신흥종교가 기존종교의 개혁을 원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마찬가지 현상이다.
  • [9] 기독교 초기, 로마가 기독교 탄압의 빌미로 내세운것이 유아 살해, 인신공양, 인육 섭취등의 황당한 죄목이 포함되기도 했다. 또한 중세 교회가 이단 종파를 악마 숭배, 남색등의 혐으로 몰기도 했으며, 유대인을 공격할때는 언제나 "유대인의 탐욕"과 "예수의 처형에 동의한 죄"를 빌미로 했다.
  • [10] 이 경우 페르시아 영지주의에서 기인한 바이고, 그 과정에서 세례요한의 전승이 흡수되어 실제로 이 계열에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학설이 있기는 하다. 실상은 이런 영향이 기독교와 결부되어 영지주의 일부 분파를 이루면서 교리적 혼재가 왔다는 주장역시 가능해진다.
  • [11] 영지주의에서 육체와 영혼을 극단적으로 구분하고 소수의 타고난 사람만 깨달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둘 다 불교에서 배척하는 주장이다. 허나 골때리는 것은 일부 불빠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12] 마니교에 오리엔탈리즘이 영향을 주긴 했지만, 발렌티누스주의는 그 이전에 거의 동등한 위격으로 마니교와 연관을 두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