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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한국

last modified: 2019-09-10 11:57:19 Contributors

대한민국의 역대 영부인들.

목차

1. 프란체스카 도너 (남편 이승만)
2. 공덕귀 (남편 윤보선)
3. 육영수 (남편 박정희)
3.1.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
4. 홍기 (남편 최규하)
5. 이순자 (남편 전두환)
6. 김옥숙 (남편 노태우)
7. 손명순 (남편 김영삼)
8. 이희호 (남편 김대중)
9. 권양숙 (남편 노무현)
10. 김윤옥 (남편 이명박)
11. 공석 (대통령 박근혜)
12. 김정숙 (남편 문재인)

1. 프란체스카 도너 (남편 이승만)


Francesca Donner Rhee[1], 1900. 6.15 ~ 1992. 3.19

오스트리아 출신. 25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 미국에서 살다가, 광복 후 대한민국으로 가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하며 첫 번째 대통령 부인이 되었다. 외국 혈통의 대통령 부인이라고 하여 화제를 모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오스트레일리아와 혼동해서 그녀를 호주댁이라고 불렀다. 그 덕분에 6.25 전쟁 당시 UN군 전투기는 영부인 친정에서 지원 보내줬다면서 F-86 세이버, F-80 슈팅스타 등을 통틀어 호주기라고들 불렀다. 참고로 오스트리아는 전투기 지원한 적이 없지만[2] 호주, 그러니까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지원을 왔다. 글로스터 미티어가 그것.

그러나 이승만의 신변 문제에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 이승만의 심기를 거스르는 모든 인물과 정보를 차단하는 과잉내조로 이승만의 정치적 시야를 좁게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다. 사실 한국어를 잘 못했으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반드시 영어로 말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는 박마리아와의 유착관계를 형성하여, 그녀의 남편 이기붕이 이승만의 최측근이 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본인이 외국 사람이고, 이승만이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했으니 가정사에서 상당히 진보적일 것 같지만 목격자들에 의하면 가정사는 거의 조선시대 급이었다고 한다. 즉 이승만은 왕처럼 집안일에 매우 고압적이고 프란체스카 여사는 오직 순종한다는 것. 사실 두 사람의 성장하고 결혼할 당시의 사회상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미국이나 유럽이라고 마냥 진보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유럽 모두 한국처럼 가부장적이고 엄격한 집안이 많았다.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 등 게르만 문화권은 유럽에서도 상당히 가부장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승만의 경우 십대 후반까지 유교 교육을 받았고 자신에게 왕족의 피가 흐르는 것[3]을 강하게 인식하며 자라 제왕적, 가부장적 사고가 평생을 관통한 사람이었다.[4]

이승만이 물러나면서 하와이로 망명하자 따라갔고, 이승만 사후에는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가 1970년 한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만년에도 노태우 대통령 등의 초청을 받아 청와대를 방문하기도 하는 등 한국 최초의 퍼스트레이디로 예우 받았다. 한국명은 이부란이다. 한국에 귀화한 뒤에는 정식 이름이 되었다.

이승만과의 슬하에는 자식이 없다. 프란체스카 도너와는 혈연관계가 없는 이승만의 친아들 이봉수가 있으며 이은수, 이강석, 이인수 모두 양자이다. 이은수는 1949년 파양되었고, 이강석은 1960년 이승만 체제의 몰락 직후 가족을 죽이고 자살했다.

2. 공덕귀 (남편 윤보선)


1911. 4.21 ~ 1997. 11.24

경상남도 통영시 출신. 공덕귀는 5.16 군사정변으로 1년 6개월만에 영부인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구속자 석방 운동, 기생관광 반대 운동, 원폭 피해자 돕기 운동 등을 전개하며 사회운동가로 적극 활동하였다.

슬하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딸 2명과 친아들 2명이 있다.

3. 육영수 (남편 박정희)


1925. 11.29 ~ 1974. 8.15

충청북도 옥천군 출신. 170cm에 육박하는, 당시로서는 장신으로 역대 영부인 중 가장 키가 크다(지금 기준으로도 장신이다). 박정희의 두번째 부인이다. (첫번째 부인은 이혼한 김호남)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으로 죽은 후에는 딸 박근혜가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였다.

슬하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딸 박재옥과 자신의 친딸인 박근혜, 박근령, 친아들인 박지만이 있다. 자신의 장녀이자 남편의 차녀인 박근혜는 훗날 대통령에 당선된다.

3.1.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


1952년 2월 2일 ~

대구광역시 출신.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으로 어머니 육영수가 사망하면서 10.26 사건으로 아버지 박정희가 암살당하기 전까지 외국 정상 접견 등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다. 기간은 5년(육영수 사망 1974년 8월 15일 ~ 박정희 사망 1979년 10월 26일).

2013년 대통령이 됐다.[5] 참고로 박근혜는 자신이 출마한 모든 선거에서 단 한번도 낙선한 적이 없다.

4. 홍기 (남편 최규하)


1916. ?.? ~ 2004. 7.20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 만 8개월 10일간 재임하여 역대 영부인 중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다(최단기간 재임이니 당연한 거지만...) 대외활동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영부인[6]으로, 전통적인 한국 여인의 부덕을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7]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5. 이순자 (남편 전두환)


만주 출신. 이화여자대학교 의대 재학 중, 전두환을 만나 중퇴하고 1958년에 결혼했다. 참고로 이순자의 아버지가 이규동 장군인데 전두환은 이 당시 아버지의 전속부관이였다.

역대 대통령 부인 중 남편의 재임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영부인일 것이다. 남편 못지 않은 비자금과 아버지 이규동, 숙부 이규광 등의 친인척 비리 문제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다른 영부인들이 공식 석상에서 다소곳하게 있는 거와는 상반되게 자신은 거만하게 손을 흔들며 자신이 여자 대통령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행동하여 눈총을 사기도 했다.

영부인이 되기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에 연희동 빨간바지라는 별명으로 땅투기꾼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외모 때문에 "주걱턱 여사"라고 불렸으며, 당시 KBS 9시 뉴스와 MBC 뉴스데스크에서 전두환 소식을 전한 뒤 바로 "한편 이순자 여사께서는..."이라는 멘트가 붙었기 때문에 한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당시 영부인에 대한 여론이 무척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5공 치하의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피플파워로 쫓겨난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영부인 이멜다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8]

또 당시 방송에서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배역은 비천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1979년에 '순자야 문 열어라'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하필 그 시기가 12.12 군사반란 무렵이었다. '무엄하게도' 권력자의 마누라 이름을 제목에 넣었던 영화는 제대로 상영도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고, 동명의 주제곡까지 금지곡이 돼 버리는 바람에 노래를 부른 '김철'이란 신인가수도 활동의 길이 막혀서 몇년 후에 '김현준'이란 이름으로 겨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가수 심수봉은 79년에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만들었던 '순자의 가을'이란 곡을 이듬해에 자신의 앨범에 실었다가 금지곡이 돼 버렸다. 버리기엔 아까웠던지 심수봉은 이 곡을 나중에 슬쩍 제목만 바꿔서 방미에게 주었는데, 이게 바로 방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이다.

친인척들을 이용하여 강남 땅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킨 원흉이라고 지탄을 많이 받는다. 또한 만화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면서 한국 만화의 발전을 저해한 이력이 있다. 그렌다이저의 더블하켄을 보고 폭력적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에겐 관례를 깨고 함정 시승시 함장석만 골라 앉아댄 시건방진 대통령이라며 가장 미움받는 남편과 함께, 가장 미움받는 영부인이기도 했다. 재임 중 해군 장교들의 정복 수장견장을 자기가 볼 줄 모른다며 육군식 철제 정장을 정복에 패용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바가 있기 때문이다.

슬하에는 3남 1녀를 두었으며 배우 박상아는 전두환과 이순자의 둘째 며느리이다. 차남 전재용의 아내.

6. 김옥숙 (남편 노태우)


경상북도 청송군 출신. 위로 친오빠인 김복동 등이 있었다. 유일하게 어록이 없는 영부인으로 기억될 만큼 취임 초기부터 ‘그림자 내조’를 내세우며 잠행 스타일을 고수하며 특별한 행보를 하지 않았다. 한 일은 많지만 어쩐지 존재감이 옅은 남편 노태우를 닮았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실제로는 대단히 적극적인 성격이지만, 직전 영부인 때문에 영부인의 공개적 행보에 극도로 부정적인 시각이 조성되어 조용히 참고 살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여사는 이순자보다 4살 위 언니였지만 1인자의 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형님으로 부르면서 깍듯이 모셨다 하지만 6.29 선언 이후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런거 없다.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민정당이 인기가 없어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우리는 국민이 직접투표로 뽑아 준 대통령이어서 체육관 대통령 하고는 달라요”라고 핵직구를 날렸다.

공개석상에서 무조건 90도로 인사하고, 노태우 옆에서 미소를 띄운채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인터뷰도 거의 한 적이 없으며, 복지기관 방문 등의 단독 일정도 무조건 비공개였다.

고종사촌 동생인 박철언을 매우 아꼈다.

슬하에는 딸 노소영과 아들 노재헌이 있다.

7. 손명순 (남편 김영삼)


1928. 1.26 ~

경상남도 김해시 출신.[9] 손명순은 전통적인 "내조"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화여대 출신으로 김영삼 대통령과 동갑이다. 이순자와 마찬가지로 이화여대 재학 중 남편을 만났다. 당시 이화여대는 기혼자는 퇴학시킨다는 교칙을 두고 있었는데, 이순자와 달리 결혼 사실을 학교에 숨기고 학업을 마쳤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는 천으로 배를 두르는 고생을 해 가면서 겨우 약사 자격증을 땄는데, 영부인이 되면서 결국 장롱면허가 돼 버렸다. 결혼 후에도 남편을 총재님 또는 대통령 등 존칭으로 높여 부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에야 말을 놓았다고 한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사석에선 영부인을 친근하게 맹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슬하에는 2남 3녀를 두었으며 큰딸인 김혜영이 배우 이덕화의 친구이다. 둘은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반이였다. 장남 김은철은 정치인을 하고 있는 남동생 김현철과는 달리 정치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으며 미국에서 옷장사를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

8. 이희호 (남편 김대중)


1922. 9. 21 ~ 2019. 6. 10

서울특별시 출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번째 부인이다. 첫 부인인 차용애[10]는 1959년에 병사했다[11]. 남편의 기나긴 옥바라지와 내조, 민주화투쟁의 동지로 일생을 보냈으며,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비판자이자 조언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70대 후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소외계층 복지와 정책감시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 조문을 위해 방북한 것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사망 당시 북측의 조문단 파견에 대한 답방 차원이라고 한다. 당시 이희호와 함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동행했는데, 둘 다 남편이 사망했을 때 북한에서 조문을 왔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1남[12] 김홍걸을 두었다.

9. 권양숙 (남편 노무현)


1947. 12.23 ~

경상남도 마산시 출신.[13] 권오석의 딸. 장인의 문제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공격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1973년 결혼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법고시 준비를 뒷바라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양숙의 도움을 받고 1975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였으며 1976년 사법연수원 시절 꽤 준수한 성적을 올린 덕에 1977년, 1978년 두 해에 걸쳐 대전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슬하에는 아들인 노건호와 딸인 노정연을 두었다.

10. 김윤옥 (남편 이명박)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3살 때 대구로 이사하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는 1970년 결혼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77년 현대건설 사장을 역임했으며 1988년 현대건설 회장이 되었는데 이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뒷바라지를 했다. 슬하에는 1남 3녀를 낳았는데 유일한 아들인 이시형은 막내이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의 막내사위이다.

11. 공석 (대통령 박근혜)

박근혜가 여성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여성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호칭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 대통령의 배우자를 칭하는 말은 영남편부군(夫君)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First Gentleman라 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미혼.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 결혼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18대 대통령의 배우자 자리는 공석이다.

때문에 외국 정상 방문시 의전으로서의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누가 할 것인가로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총리 부인이 맡을 확률이 유력하며, 실제로 당선 이후부터 거론되어 # 정홍원 총리의 청문회에서도 이런 질문이 있었다. # 외교부 장관 부인이나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염두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퍼스트 레이디 대행을 따로 두지 않기로 했다.# 외국 정상이 방문하더라도 정상과 배우자의 짝을 꼭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고, 배우자의 일정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따로 조정할 수 있으니 꼭 퍼스트 레이디를 대행할 인물을 내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

2014년 7월 3일 중국의 시진핑 주석 방한 때에는, 조윤선 정무수석비서관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하였다.

12. 김정숙 (남편 문재인)

1954. 11.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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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명은 Franziska Donner이다.
  • [2] 오스트리아는 2차 대전 패전 후 세중립국이 되는 조건으로 독립을 되찾았기 때문에 파병 자체를 할 수 없었다.
  • [3] 전주 이씨 양녕대군파인데, 해외에서는 스스로를 한국의 왕자(prince of Korea)라고 했다고 한다.
  • [4] 이 때문에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프린스턴 대학에서 국제법 전공한 박사라곤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민주주의 대한 이해가 부족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그리고 조선시대 왕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그 행보가 보다 쉽게 이해된다.) 정치하며 맘에 안 드는 단체나 기관이 있으면 타협이나 설득 대신 때려 부셔버리기 일쑤였다.
  • [5] 해외에는 아르헨티나의 이사벨 페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케이스가 있다.
  • [6] 이런 영부인도 전두환의 취임식에서는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냈다 취임식내내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고 끝내 눈물까지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순자가 인사를 건낼때 시선을 외면한체 살짝 손만 쥐어줬고 최규하가 안내책자봉투를 건내자 뿌리치기까지했다
  • [7] 영부인이 되어서 청와대에 가야 한다는 기자의 말에 '김장도 해야 하고 할일이 많은데...' 라고 하셨단다.
  • [8] 단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이는 피고인이 '전두환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명예훼손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판례.
  • [9] 노무현과 그의 영부인 권양숙과는 같은 동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다. 항목 참조.
  • [10] 호적상 이름은 차용수
  • [11] 음독자살설과 수면제 과다복용에 의한 사고사 주장도 존재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후 자서전에서 과로사에 가까운 병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 [12] 김대중 대통령의 자녀는 3남중 장남 차남은 전처소생
  • [13]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