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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종석

last modified: 2015-03-24 22:40:44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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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최훈김형준 칼럼에 투고한 일러스트.

롯데 자이언츠 No.68
염종석(廉鍾錫)
생년월일 1973년 3월 2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중앙초-부산중[1]-부산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롯데 자이언츠 고졸연고 자유계약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2~2008)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재활코치 (2009~2010)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2011~)

1992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조규제(쌍방울 레이더스) 염종석(롯데 자이언츠)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1992년 한국프로야구 투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염종석(롯데 자이언츠) 선동열(해태 타이거즈)

다시는 공을 제가 못 던져도 좋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지금 나가게 해주십시오.
ㅡ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제가 필요하다고 불러주시면 등판할 것입니다. 1992년 당시 그때 그렇게 던진 것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저는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때처럼 다시 던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는 그때 너무 행복했습니다.

Contents

1. 개요
2. 현역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역대 기록

1. 개요

롯데 자이언츠의 전 투수이자 코치.

무쇠팔 최동원에 이어서 등장한, 롯데 자이언츠의 안경잡이 우완 에이스. 공교롭게도 강병철 감독 밑에서 우승을 위해 자신의 팔꿈치를 바쳤다는 점까지 일치한다. 이 때문에 롯데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강병철이 감독으로 있으면서, 안경잡이 에이스를 갈아넣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돌기도 한다.

전성기 시절 주무기는 슬라이더로, 염슬라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크게 휘는데다 빠르기까지 한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압도하는 투수였다. 마구마구에서도 JS슬라이더는 가히 사기적이다. 다만 데뷔 시즌부터 엄청난 혹사를 당하고 후유증으로 기량이 하락했기 때문에[2], 1993년 이후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2. 현역 시절

통산 성적은 93승 133패 3홀드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76, WHIP 1.28. 17년 동안 1791⅓이닝을 던지며 통산 13위에 랭크되어있다. 기타 기록은 다승 24위와 완투승 20위, 그리고 패전 3위.(...)

부산고를 졸업하고 92년 롯데에 입단해 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 WHIP 1.01의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원래는 지명후 고려대학교에 진학 예정이었으나 진학 한달전, 경성대 앞에서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셔서 입원비 마련을 위해 계약금 1천 5백만원, 연봉 1천만원의 헐값에 울며 겨자먹기로 롯데에 입단한다. 데뷔 첫 해 17승은 그 이외에 류현진(18승) 정도가 이뤘다. 이 활약으로 신인왕과[3] 투수부문 골든글러브[4]를 받는다. 당시에 부산에서는 그는 인기 스타였고 그로인해서 롯데팬 한정으로 당시 같이 데뷔한 서태지를 갖다붙여서 염태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부산고였던 진갑용 선수의 증언

그러나 첫해부터 204 1/3이닝을 던진데다가 준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의 혹사 등이 더해져 그의 팔꿈치와 어깨는 망가질대로 망가지고 만다. [5] 92년 데뷔시즌에 대한 김형준 기자의 글 강병철 감독은 1992년 시즌 종료 후 염종석의 재활을 주장했으나 롯데구단은 2연패 욕심에 출전을 강요했고 1993년 시즌 종료후 방위병 근무를 하게 되면서 부상이 더욱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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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팬들이라면 위치까지 기억하고 있는 그의 유명한 수술자국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하면 무려 240이닝 이상을 투구하면서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 몸을 바쳤지만, 연봉 재계약시 처음 롯데의 제시액은 고작 1천만원 인상이었다.아 시바 롯데 지리한 협상끝에 결국 2천만원 인상에 보너스를 얹어줘서 마무리짓긴 했지만 이 늦어진 연봉 계약때문에 동계훈련을 충실히 소화하지 못했고 2년차인 1993년 그 후유증으로 혹독한 2년생 징크스에 시달렸다. 전반기동안 고작 3승 7패의 성적을 내는 데 그친 것.

후반기 들어서야 페이스를 회복하고 승수를 쌓기 시작, 7승을 보태 간신히 10승을 달성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것이 염종석이 마지막으로 거둔 두자리 승수가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이듬해인 1994년은 방위복무를 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계속 출전을 강요당했고, 제대로 된 동계훈련도 소화하지 못한채 줄창 등판하다가 결국 팔꿈치 부상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

결국 그 다음해인 1995년 시즌이 개막하기도 전에 팔꿈치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 시즌종료 후 팔꿈치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선수보호와 관리는 그야말로 개나 주던 시절이었던 90년대 프로야구니만큼 롯데구단은 이미 팔꿈치 수술을 확정한 방위복무중인 선수에게 계속해서 출전을 종용했고,못 쓰기 전에 최대한 뽑아먹어야 한다는 식? 염종석은 홈 경기 3연전에서 늘 한 경기의 선발을 맡아 팀에 공헌했다. 그 시즌부터 방위복무 대상자는 홈 경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기때문에 염종석은 타 선발투수들보다 훨씬 긴 휴식을 보장받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팔꿈치 부상을 낫게 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이 당시엔 공을 한구씩 던지고 난 후 연신 오른팔의 팔꿈치를 털어내는 듯한 동작을 보여줬는데, 당시 중계를 하던 중계진도 이 장면을 놓고 염종석의 팔꿈치 부상이 심각해 공을 던질 때 마다 팔꿈치를 털어내고 있으며 시즌 종료 후 수술이 확정이 되었다고 언급. 이런 심각한 부상을 안고 홈경기에만 등판했음에도 무려 규정이닝을 초과한 127이닝을 던지며 7승 7패에 평균자책점 2.98이라는 매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포스트시즌에서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승리투수가 되는 등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참고로 저게 18경기에 선발등판해서 거둔 성적인데 평균 소화이닝이 무려 7이닝을 넘어간다. 팔꿈치가 이미 맛이 가버린 선수를 저렇게 썼다는 것은 롯데가 얼마나 개념없이 에이스를 막 굴려댔는지 알 수 있는 대목.[6]

1993년 10승을 거둔 이후로는 다시는 10승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없었다. 그는 Only 롯데에서만 17년을 뛰었는데 확실히 그 후론 혹사의 여파로 10승 이상을 거둔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수술과 재활로 자리를 비운 1996년과 2000년을 제외하곤 매 시즌 꾸준히 선발로테이션을 지키며 솔리드한 선발투수로 활약 해 주었다. 데뷔 시즌에 망가진 선수 치곤 통산 방어율이 3점대 라는 점에서 그가 혹사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게 하는 기록이다.8888577시절에는 무너진 마운드 속에서 팀내 최다승을 기록하기도. 2008년엔 주로 중간계투로 투입되어 1패 3홀드 3.65의 성적을 거뒀고, 포스트시즌 경험이 세 차례(92, 95, 99)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포스트시즌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준플레이오프부터 롯데는 3연패 안습)

08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한다.[7] 이 때 타 구단의 영입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 구단. 또한 영구결번을 해달라는 일부 롯빠들의 요청과, 다시 그것을 반대하는 다른 롯빠들이나 롯까들의 논쟁이 있기도 했다. 사실 그 당시 기준으로 투수 중에서 영구 결번된 사람이 선동열 , 박철순 , 김용수 , 송진우 등 어마어마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 정도고, 롯데 내에서만 봐도 최동원이나 윤학길을 오히려 영구결번으로 지정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물론 롯데는 아직 멀었다(...)라는 의견도 존재했다.[8]

3. 지도자 시절

2009년 4월 5일 사직구장에서 은퇴식을 갖고 지바 롯데에서 코치 연수를 갔다. 최동원이나 윤학길이 없는 지금 나중에 돌아오면 투수코치가 될 확률이 상당히 높다. 오랜 재활 경험을 인정 받아 2010년 시즌에는 2군 재활 코치로 재직했으며, 양승호 감독 부임 이후 2군 투수코치가 되었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그냥 롯무원이라며 평가가 안 좋다.

그런데 2015년부터는 뜬금없이 주형광을 2군으로 밀어내고 새 1군 투수코치가 된다. 여러모로 보여준게 없다보니 팬들은 걱정하고있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롯데는 팀방어율 1위를 기록했다.

4. 역대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2 롯데 자이언츠 35 204⅔ 17
(3위)
9 6 0 2.33
(1위)
171 43 127
1993 33 158⅓ 10 10 7 0 3.41 171 36 89
1994 14 102⅓ 4 8 0 0 3.69 112 25 42
1995 18 127 7 7 0 0 2.98 121 35 56
1996 부상 및 재활
1997 롯데 자이언츠 23 133⅔ 6 9 0 0 3.84 126 55 71
1998 27 163⅔ 7 15 0 0 3.90 152 61 108
1999 18 87 5 5 0 0 3.31 79 29 49
2000 6 9⅔ 0 0 0 1 4.66 15 3 8
2001 24 89 6 9 0 0 3.94 88 33 52
2002 31 159 8 14 0 0 4.36 180 51 108
2003 24 123⅔ 7 14 0 0 5.17 132 59 85
2004 21 102 3 6 0 0 4.59 113 35 55
2005 22 107⅓ 3 9 0 0 3.77 104 40 54
2006 25 128⅓ 6 9 0 0 3.72 146 36 62
2007 14 71 4 8 0 0 4.94 81 26 30
2008 21 24⅔ 0 1 0 3 3.65 28 10 16
16시즌 통산 356 1791⅓
(13위)
93 133
(3위)
14 3 3.76 1819
(7위)
576 1016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92 13완투
(3위)
2완봉
1993 7완투 2완봉
1994 3완투 1완봉
1995 3완투 1완봉
1996 0완투 0완봉
1997 1완투 0완봉
1998 4완투 0완봉
1999~2008 0완투 0완봉
통산 31완투 6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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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옛 초량중학교
  • [2] 이미 아마추어 시절부터 혹사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 [3] 2019-08-18까지 유일무이하게 롯데에서 배출된 신인왕이다.
  • [4] 원래는 다승왕(19승)과 구원왕을 동시에 석권한 송진우가 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도 있었으나, 다승경쟁자 이강철(18승)을 몰아내기 위해 이기는 경기에서 5회 한희민을 몰아내고(?) 투입되어 19승을 얻었고, 결국 기자단은 염종석에게 몰표를 던지며 그에게서 민심을 돌렸다. 물론 데뷔시즌부터 우승을 위해 혹사당한 것 때문에 동정표도 있었겠지만
  • [5] 이에 대해서 염종석 본인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하던 핸드볼 선수 시절부터 어깨 통증이 있었다고 한다.
  • [6] 이는 염종석 뿐만 아니라 주형광에게도 해당된다. 한창때 막 굴려먹은 후유증으로 염종석보다 더 빨리 은퇴했다. 그리고 롯데의 에이스 잔혹사는 여전해서 2000년도에도 손민한,조정훈등이 나가 떨어졌다. 다행히 이들은 나중에 복귀하긴 했지만.
  • [7] 이때까지 그의 통산 승수는 93승. 100승을 채우고 은퇴하게 해 달라고 무릎까지 꿇었다 하지만 롯데에게 역시 그런 아량은 없다...
  • [8] 결국 롯데 최초의 영구결번은 고 최동원 선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