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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훈

last modified: 2015-04-13 06:16:15 Contributors


리그를 대표하는 왼발.[1] 그러나 오른발은...

Contents

1. 개요
2. 리그
3. 대표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 No.26
염기훈 (廉基勳 / Yeom Ki-Hun)
생년월일 1983년 3월 30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포지션 미드필더, 윙어
신체조건 182cm / 78kg
프로입단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팀 전북 현대 모터스 (2006~2007)
울산 현대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경찰 축구단(군복무) (2012~2013)
국가대표 48경기 / 3골
응원가 조용필 - 여행을 떠나요[2]

2006년 K리그 신인상
박주영(FC 서울) 염기훈(전북 현대 모터스) 하태균(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년 FA컵 MVP
이운재(수원 삼성 블루윙즈) 염기훈(수원 삼성 블루윙즈) 조동건(성남 일화 천마)

2013년 K리그 챌린지 도움상
리그 창설 염기훈(경찰 축구단) 최진호(강원 FC)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염기훈
MF
윤빛가람
MF
하대성
MF
에닝요
DF
박원재
DF
곽태휘
DF
조성환
DF
최철순
GK
김영광
2013 K리그 챌린지 베스트 일레븐
FW
이근호
FW
알렉스
MF
염기훈
MF
이호
MF
최진수
MF
김영후
DF
최철순
DF
김형일
DF
이재성
DF
오범석
GK
김호준

1. 개요

K리그 왼발의 마술사
그러나 국대에서는 왼발의 맙소사
전북의 금지어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축구 선수.

별명은 염구와 왼발의 달인(또는 왼발의 마술사), 염긱스였지만 남아공 월드컵 이후에는 그냥 왼발이 달린 사람, 왼발의 맙소사, 염의족, 염깁스, 염름발이, 염레기가 되었다. 안습. 하지만 그분께서 합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난 이후에는 염긱스로는 잘 안불린다. 오히려 염기훈의 굴욕이라 불리지... 그 이외에는 염키유천(...) 줄여서 엽기염키라고도 불린다.

2. 리그

2006년 호남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뒤 바로 전북 현대 모터스에 입단하면서 프로무대를 밟았다.

데뷔 시즌 구단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면서 유명세를 탔고, K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동시에 가능성을 인정받아 10월 가나와 평가전에서 국가대표로 처음 뽑혔으며, 이 당시 열렸던 도하 아시안 게임 멤버로도 차출되었다.[3] 이에 전문가와 K리그 팬들은 물론 축구에 관심이 많은 냄비축구팬들 사이에서도 나름 유망주로 이름을 알렸다. 다만 일반 시청자 눈에는 머리에 땜통[4] 인상적인(...) 풋내기강백호?라는 인상이 많았다.

2007년 전북은 울산 현대 호랑이와 2:1 트레이드를 단행, 염기훈을 내주고 정경호와 임유환을 받았다. 이 트레이드는 염기훈이 시즌 도중에 수원과 사전접촉을 하다가 들켰고[5], 이에 빡친 전북 최강희 감독이 강제로 성사시킨 트레이드이다.[6] 이 사실이 알려지고 덕분에 지금도 전북팬 가운데 염기훈가 많다.[7]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염기훈에게 20억(...)을 베팅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염기훈도 징징수원 이적을 강력히 원했다 카더라.

결국 울산이 염기훈을 얻어 좌기훈 우천수라는 ㅎㄷㄷ 진용을 구축한다. 더구나 최전방 공격수가 뒤늦게 포텐을 터뜨린 우성용. 염기훈-우성용-이천수 그야말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

그리고 2008년, 염기훈은 다시 한번 이적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다. 프리미어 리그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에서 염기훈을 영입하기 위해 입단 테스트를 했는데, 문제는 울산 구단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출국해 버린 것.

해외 이적 문제가 불거질 때면 으레 적절한 언플과 함께 대승적 차원 운운하며 K리그 구단이 호구 선수를 일방적으로 편들기 마련이지만, 염기훈의 경우 다른 선수들과 사정이 달랐다. 전북에서 울산으로 이적할 때도 분란을 일으켰고, 2:1 트레이드로 영입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엄연히 계약기간이 1년 남은데다가, 심지어 부상에서 갓 회복한 몸으로 해외로 뜬다고 한 것. 자연히 '프리미어 리거 6호 탄생'이라는 설레발 못지 않게, '제 버릇 개 못주고 또 징징대네'하는 싸늘한 시선이 있었다.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은 울산의 연락을 받고서 무단으로 영국으로 온 것을 알고는, 영입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염기훈을 얼른 돌려보내기 위해 건성으로 테스트를 했다고 한다. 이를 모르고 프리미어 리그 진출에 들떴던 염기훈은 열심히 테스트에 임했지만 결국 이적은 불발로 끝나면서 바보가 됐다. 당연히 한국에 돌아오자 배신자라고 사방에서 신나게 욕을 먹었고, 무단이탈로 벌금까지 물게 되었다.

이후 부상 등으로 떨어진 폼이 좀체 예년처럼 올라오지 않고, 리그와 국대에서 한미한 활약 밖에 보이지 못하면서 슬슬 먹튀 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전북과 울산에서 두 차례 이적 파동을 일으키면서, 다른 팀 팬들도 '기본적으로 실력은 있지만 거품이 상당하며 팀에 대한 충성도가 없는 선수'라며 영입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차범근 감독은 어떻게든 염기훈을 영입하기 위해 몇년째 구애했고[8] 결국은 유망주 이재성에 이적료까지 얻어주고 영입을 확정했다. 하지만 김형범과 함께 K리그를 대표하는 유리몸...[9]

2006년 7월, 교통사고 : 한달 반 결장
2007년 7월, 오른발 피로골절 : 3개월 결장
2008년 4월, 왼발 피로골절 : 5개월 결장
2009년 3월, 왼발 피로골절 : 100일 이상 결장
2010년 2월, 왼발 피로골절 : 자연치료시 2개월, 수술시 4개월, 동아시아대회 결장

왼발골절로 인하여 월드컵에 나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으나, 재활에 성공하고 소속팀인 수원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며 이근호를 밀어내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국가대표팀 최종엔트리에 포함되었다. 현재는 박주영의 파트너로 투톱으로 출장할 가능성이 높다.

2010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K리그에서 15경기 출전 1골 9도움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0 FA컵 결승전에서는 결승골까지 때려넣으며 충실한 모범사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팀에서는 우스개 소리로 "프리시즌을 월드컵에서", "월드컵에서 몸 만들었다"하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나, 월드컵 이후 활약상 덕분에 수원팬 한정으로 염의족에서 염메시로 개명했다. 그리고 당초 2010시즌 종료후 상무 입단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부진한 팀 성적과 출산을 앞둔 부인때문이라고. 김두현, 정조국 등도 그렇고 요즘은 A급 선수들이 경찰청이나 현역 입대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모양새다.

2011 시즌은 그야말로 절정의 활약을 보여줬다. 2011시즌 수원은 사실상 '염기훈 블루윙즈'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K리그에서만 9골 14도움을 기록했고, FA컵에서는 4도움으로 팀을 결승으로 인도했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도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수원은 이러한 염기훈의 활약에 힘입어 한 때 트레블을 꿈꾸기도 하였다. 시즌 내내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준 염기훈은 2011 K리그 베스트 일레븐 미드필더 부문에 선정되었으며, 몇 년간 이어지던 장기 부상도 당하지 않으며 유리몸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났다. 2011시즌 염기훈의 활약이 어느 정도였냐면, 염기훈이 교체되어 들어가기만 해도 염기훈 '콜'이 아니라 염기훈 '송'이 나왔을 정도[10]

한편 2011년 6월 18일 벌어진 K리그 14라운드 수원:대구 경기에서 개인통산 최초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 있었던 대구경기에선 1골 1도움을 기록했을 뿐더러 K리그 통산 28번째 30-30 클럽에 입성하였다.

수원에서 주장이 된 이후 이전 최레기와는 다르게 팀 분위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대 알 사드 경기 때에도 홈 관중이 폭행을 당하자 앞장서서 뛰어들어가 관중을 진정시키며 알 사드 선수와 떼어놓는 등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서 좋은 주장으로 칭찬을 받았다.

K리그 챌린지에서 경찰 축구단의 선두 질주의 일등공신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K리그 챌린지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K리그 클래식에서는 데얀이 뽑혔다.

2013년 9월 28일, 경찰청에서 제대한 이후 다시 수원에 복귀했다.

3. 대표팀

그런데 월드컵 전 평가전들에서 활약을 보면 피지컬, 스피드, 드리블, 킥 정확도 등 월드 클래스에 비한다면 모두 한수 아래임을 인증할 뿐이었다.(...) 스페인전에서는 27회 패스중 2회 성공이라는 엄청난 성공률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히 교체되지 않았기에 '허정무의 검열삭제 비디오를 가지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굳이 선수를 위해 변명을 해 주자면 이 때는 장기부상 이후 회복경기에 가까웠다.

그리고 남아공 월드컵 B조 예선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연달아 선발 출장하였다. 그리스전에는 죽어라 뛰면서[11] 승리에 일조하였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전에서는...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먹으며 한국의 4:1 대패에 크게 공헌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왼발을 능숙하게 쓰기로 유명한 염기훈이 오른발을 통해 슛을 날리는 경우, 혹은 스텝 조절을 통해 왼발 박자까지 늦춰서 슛을 할 경우 대부분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 이 때문에 월드컵 당시 염기훈은 '극단적으로 한쪽 발에만 실력이 편중된 선수'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며 염의족이라는 별명까지 얻어야 했다.

물론 염기훈으로선 이런 일방적인 비난이 억울할 수도 있다. 워낙 상대가 상대인만큼 딱히 염기훈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었고, 현재로선 염기훈의 위치는 마땅히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으니[12] 별 수 없었던 거지만...어쨌든 패배한 주요인 중 하나다. 이 경기로 인해 오범석과 염기훈의 앞글자를 따서 라고 부를 정도니 말 다했다. 나이지리아전에서도 선발 출장했으나 별반 틀릴 것 없는 양상을 보였다.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다행히선발에서 제외됐으나, 2:1로 뒤지고 있던 후반 종료 5분 전 허정무 감독이 돌연 염기훈 교체카드를 꺼내들며 수많은 이들에게 좌절을 안겨줬다.[13]

그런데 의외로 염기훈 말고도 찬스 상황에서 기회 다 날려버리는 공격수들이 워낙 나오고 있어서 해충갤에서는 그런 선수들을 염라인으로 만들어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14] 또한 그런 상황이 나오는 것을 가리켜 '염발'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놀랍게도 염발은 이 대회의 결승까지도 작렬했다.

그러나 독일의 '키커'지는 2010 월드컵 올타임 평점에서 염기훈을 이청용의 뒤를 이은 2위로 이정수와 함께 높은 평점을 주었다. 그다지 나쁜 활약은 아니었던 셈이다.실제 좋은 활약을 했다 말해도 무방할 정도.기사

아직은 국대레벨의 라인 조절이 미숙한 반면 좁은 공간에서의 공격기술에 능한 이청용 대신 많이 뛰고 부딪치며 이청용의 지나치게 편향된 공간선정을 메꾸는 등 보이지 않는 공헌을 크게 했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볼간수는 되고, 패스 셀렉션도 나쁘지 않고, 크로스는 대한민국에서는 최고 수준인 나름 실력 있는 선수다. 박지성이 이청용 반대편에 있지 않을 경우에 손흥민이나 유병수를 반대편 자리에 놓는다면 2선과 3선간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 상대편에게 광야와 같은 공간을 제공할 소지가 다분하다.

조광래 감독이 사임한 뒤 대표팀을 맡은 최강희 감독은 염기훈을 소집했다. 온전한 전력의 해외파 소집이 어려운 상태에서 급히 K리그 선수만으로 꾸린 팀이었지만 우려와 달리 잇달아 승리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염기훈은 6월 12일 열린 레바논 전에서 도움을 하나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대표팀 양 날개가 이근호 이청용이 붙박이 주전을 차지하고 손흥민이 조커로 굳어지면서 염기훈은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최강희 감독을 이어 대표팀을 맡은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다시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시기상 해외파들을 소집하지 못한 가운데 신인 위주로 이루어진 대표팀에서 최고참이 되었다. 다만, 후배들을 배려해 주장 자리는 하대성에게 넘겼다. 동아시안컵 호주전과 중국전에서 모두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라 까이는것에서 네티즌들이 얼마나 선입관을 가지고 염기훈을 보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국대에 뽑힌 멕시코전에서 부진하면서 국빠들이 인터뷰 내용을 들춰내어 까대기 시작했는데 인터뷰 전문을 보면 그리 까일만한 요소도 없다.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해외파도 잘하지만 국내파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한 거다. 그럼 자신 없으니 못할 것이라고 인터뷰 해야 할까? 원래 까려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 가져다가 깔 수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사리분별은 하면서 까야 하겠다. 오히려 흔히 염기훈이 까일 때 인용되는 '해외파와 국내파의 차이는 없다' 는 기사를 보면 정성룡의 발언임을 알 수 있다. 정작 이 말을 한 정성룡은 월드컵에 출전한 K리그 선수중 자신만 해외파들과 같은 수준으로 말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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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가대표에서 48경기를 뛴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히 못했다기보다는 꾸준히 잘해서 48경기를 뛰었다. 그러나 임팩트 있는 장면에서 실패하면서 오즈의 마법사를 패러디 한 "왼발의 맙소사"라는 별명을 받는다던가.
  • [2] 수원의 사나이 염기훈은 수원 위해 왼발을 쓸거야~ 염기훈은 왼발의 지배자~
  • [3] 이로 인해 시기상 일정이 겹쳤던 FIFA 클럽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 [4] 데뷔한 시즌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 남을 흉터를 얻었지만 금방 털고 복귀해서 신인상을 차지했다.
  • [5] 부모님을 모시고와 이적동의 해달라고하기도하는등 팀분위기를 망침
  • [6] 대표팀 차출로 팀에서 나갈 때 자기 짐을 숙소에서 싹 빼서 가져갔을 정도. 그러고도 '본인은 남으려 했으나 팀에서 울산으로 보냈다' 등 언플을 심하게 했다. 때문에 당시 속사정을 모르던 팬들은 구단을 욕했다.
  • [7] 그래서 그가 경기에 뛸때 서포터즈들은 '염기훈 꺼져!!'라고 소리지른다.
  • [8] 수원은 김대의가 노쇠화하면서 강력한 왼발 윙어를 물색하고 있었다.
  • [9] 근데 수원에 입단하면서 장기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사라졌다.
  • [10] 축구경기에서 대개 선수가 교체되어 나가면 이름을 호명하는 콜을 하지, 선수의 응원가를 부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염기훈이 수원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
  • [11] 한국에서 10km 넘게 뛴 선수들이 5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이 염기훈
  • [12] 이전까지 붙박이나 다름없던 이천수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 [13] 남아공 월드컵을 복기해보면, 허정무 감독이 조예선 3경기에 올인했고 16강 이후 매치업은 고려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 당시 엔트리를 보면 우르과이전에서 꺼내들 카드가 처음부터 마땅찮았고, 전세를 뒤집을 비장의 카드는 더더욱 부족했다.
  • [14] 아펠라이와 포돌스키가 그 예. 또다른 선수는 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