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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last modified: 2015-07-22 11:47:4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특징
3.1. 무력
3.2. 통솔
3.3. 지력
3.4. 정치
3.5. 매력
3.6. 인격
3.7. 색욕
3.8. 여포와 유비의 복잡한 관계
4. 여포 이민족 설
5. 미디어
5.1. 삼국지연의 이전
5.2. 삼국지연의
5.3. 기타 창작물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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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써져있는 글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射戟轅門外(사극원문외) : 원문 밖에서 화극을 쏘아 맞추니
將軍氣稱雄(장군기칭웅) : 장군의 기상은 영웅으로 불리네
奇勳誅董卓(기훈주동탁) : 동탁을 붙잡아 죽인 공훈이 있고
失策拒陳宮(실책거진궁) : 진궁의 말을 거부한 실책이 있네
縛虎悲繩急(박호비승급) : 붙잡힌 범은 밧줄의 급함을 슬퍼하고
飢鷹嘆路窮(기응탄로궁) : 굶주린 매는 길이 궁함을 탄식하네
至今白門下(지금백문하) : 이제부터 백문 아래에서는
夜夜泣英風(야야읍영풍) : 밤마다 영웅 풍모를 그리며 우네

呂布.

후한 말의 무장으로 삼국지의 인물. 생몰년도 156 ~ 198년. 는 봉선(奉先). 사실 여포의 아이콘인 더듬이는 나름 고증의 산물이었다.[1]

2. 생애

젊었을 때부터 용맹하여 병주자사 정원(丁原)의 휘하에서 중용되었으나, 동탁(董卓)에 의해 매수되어 주군인 정원을 해치고 동탁의 밑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도정후에 봉해지고 중랑장(中郞將)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동탁은 주로 자신의 호위를 여포에게 맡겼는데,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나면 여포에게 창을 던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여포가 그런 걸 맞을 리 없었지만, 이 때부터 점점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반동탁 연합군에서는 서영에게 패퇴하고 군사를 수습한 손견을 쫓아내러 기병을 감독하여(기독) 호진(대독호이므로 이쪽이 주장)과 함께 공격했으나, 양인에서 도리어 져 낙양이 위기에 처했다. 동탁이 친히 싸우다가 손견에게 지자 여포가 마지막으로 낙양을 지키기 위해 손견과 싸웠으나 지고 낙양을 뺐겼다.

연의에서는 여포가 동탁을 배반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왕윤(王允)의 미인계라고 말하고 있으나, 초선(貂蟬)의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그것은 허구에 가깝다. 여포가 동탁의 시녀와 사통한 뒤 이것이 발각될까봐 불안해 했고, 서로 동향(同鄕)[2]인터라 평소 여포에게 후하게 대접해 주었던 사도(司徒) 왕윤은 여포가 그 일에 대해 상담해 오자 동탁을 주살할 기회라고 생각하여 여포를 부추겼다.

또한 동탁은 여포에게 수극을 던진 적도 있었고, 또한 여포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심하게 질책하였기 때문에 여포는 그에 대해 원망을 품고 있었다. 특히 수극을 던진 것에 대해선 여포가 심하게 충격을 받았는지 《후한서》에 보면 여포가 왕윤과 만났을 때도 이 이야기를 꺼냈고 왕윤이 이때다하고 여포를 설득한 것으로 나온다.

여포는 동탁을 죽인 후 온후로 봉해지고 분위장군(奮威將軍)이 되었으며, 삼공(三公)과 같은 대우를 받았고 병마의 통솔권을 얻었다. 한편 동탁이 죽은 후 그 잔당은 본래 고향인 양주(凉州)로 도망치려 하였으나, 왕윤이 그들을 끝까지 쫓아 주살하려 하였다. 이에 이각(李各), 곽사 (郭氾) 등은 군세를 정비해 결사의 각오로 싸웠고, 가후의 책략에 말린 여포는 패배해 도망쳤다. 왕윤은 살해당했다.

여포는 처음에는 원술(袁術)을 의지했으나, 원술은 거듭 주인을 죽인 그를 위험하게 생각하여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원소(袁紹)의 휘하로 들어갔고, 원소의 부장이 되어 원소가 상산에서 흑산적 총수 장연(張燕)을 격파할 때 맹활약했는데, 이때 사람들이 '말 중에 적토가 있고 사람 중에 여포가 있다.'고 하였다 한다.

하지만 여포는 원소의 수하들이 원소가 내리는 관직을 받은 반면 자기는 장안의 황제가 직접 내린 관직을 받았다는 이유로 원소의 제장들을 은근히 무시해서 불만을 쌓았다. 당시 원소를 비롯한 군웅들은 형식적으로만 상표(보고)하는 형식으로 부하들을 관직에 임명했는데, 애초에 군웅들이 장안의 헌제 조정과 대립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사실상 자칭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비해서 여포는 확실하게 헌제에게 벼슬을 얻은 것이므로 여포 입장에서는 원소의 부하 등은 "가짜 벼슬", 자신은 "진짜 벼슬"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따지고보면 원소가 조정에서 직접 받은 벼슬은 발해태수에 불과하며, 기주목을 자칭하는 수준이었다. 동탁을 살해하고 왕윤 정권에서 여포는 온후(溫侯)에 봉해지고 가절(假節)을 수여받아 그 지위가 삼공과 같았으니, 자칭 주목, 정식 지위를 따지면 고작 태수에 불과한 원소보다도 훨씬 정통성이 있었던 셈. 현대로 치면 원소는 본래 일개 군수(...)가 스스로 도지사(...)를 자칭하던 수준인데 여포는 적어도 국무총리 급이다. 여포가 황제로부터 높은 벼슬과 관위를 받은 것은 분명 사실이고 여포가 자부심을 느낄 만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객장 처지에 이런 분위기를 풍기고 다니면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전공을 세운 일로 더욱 교만해져서 사병을 늘리고 마음대로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에, 이에 노한 원소는 자객을 보내 여포를 죽이려 하였다. 하지만 여포가 이를 눈치채고 달아나버려서 이는 실패하고 여포는 하내(河內)의 장양(張楊)에게 의탁했다.[3]

또 여포는 원소나 원술에게 의탁할 때, 자신이 원씨 집안의 원수를 갚아주었다고 매우 거만하게 굴었다고 한다. 그 까닭은 예전에 동탁원소원술이 반동탁 연합군을 주도하자 그 보복으로 낙양에 남아 있던 원씨 집안의 가족들을 몰살시켰기 때문이다. 여포는 자신이 동탁을 죽였기 때문에 원씨 가문의 원수를 갚아준 셈이라고 뻐기면서 거만하게 굴었으나, 여포도 그때는 동탁과 한편으로 붙어먹고 있었으니 원소나 원술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다.

여포가 원소에게 쫓겨나자 연주의 장막(張邈), 진궁(陳宮) 등에게 의탁한다. 장막과 진궁은 조조(曹操)를 배반하고 여포를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킨다. 당시 진궁은 장막을 섬기고 있었는데 여포를 끌어들인 이유는 당시 장막 측에는 군인 출신 인사들이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어쨋거나 여포의 황제로부터 직접 받은 삼공급 후작이라는 벼슬은 당시의 고만고만한 관동군벌들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통성과 권위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포를 내세우면 권위를 높히 세울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연주의 싸움에서 여포는 복양(僕陽)을 비롯한 연주지역의 많은 부분을 점령하였다. 조조와 장막의 싸움은 처음에는 백중세였으나, 점차 조조의 군세가 우세하게 되어 2년 뒤 거야에서 장막군을 패퇴시켰다. 여포, 진궁 등은 도주하여 서주(徐州)의 유비(劉備)를 의지하였고, 장막은 도주 중 살해당했다.

여포는 소패(小沛)를 양도받아 거기서 병마를 추스렸으나 유비가 원술과 싸우는 틈을 타서 유비를 배반하여 서주를 습격, 점령하였다.[4] 이후 유비는 오히려 여포에 의지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 여포는 처음에는 원술의 방패막이로서 유비를 구원하였으나 유비가 병력 1만을 모으자 유비를 공격한다.[5] 원술과 결탁하여 결국 유비를 몰아내고, 서주를 자신의 것으로 했다. 유비는 달아나 조조를 의지했다. 유비가 여포처럼 신뢰도 바닥인 자를 받아준 이유는, 조조에 대한 대비책이였다는 추측이 있다.

여포와 원술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조조는 하후돈(夏候惇)을 보내 소패를 공략하였으나 고순(高順)에게 패하였다. 이에 조조는 직접 군사를 이끌어 여포를 공격하였고, 여포는 소패, 서주성을 잃고 하비(下丕)성에 틀어박혔다. 원래부터 여포는 용맹하였으나 무모하고 의심이 많아 아랫사람들을 잘 통솔하지 못하였고 그가 신임하는 것은 몇 명의 휘하 장수들 뿐이었다. 게다가 곽가순유의 계략으로 하비성에 물이 차게 되면서 여포는 점점 심란해진다.

결국 여포가 크게 곤궁한 처지가 되자 부하인 후성(候成), 송헌(宋憲), 위속(魏續)은 진궁을 사로잡아 투항[6]하였다. 조조군이 성내에 진입하고 성이 함락되자 여포는 하는 수 없이 항복했다. 조조는 포로가 된 여포 휘하의 장수들을 모아 백문루 위에서 심문하였다.

(이 앞의 장면에서 진궁이 당당하게 사형장으로 걸어갔고, 조조는 그와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따라가다 멈춘 탓에 자리에 없었다)여포는 조조가 없는 틈을 타서 유비에게 속삭였다.
"나를 위해서 한 마디라도 해 주시지 않겠나?"
유비가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조조가 돌아왔고, 여포는 묶인 채로 요청했다.
"명공께서 근심으로 여기던 것 중, 나 여포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이제 항복을 했으니 천하에 근심거리가 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명공께서 보병을 거느리고 나 여포로 하여금 기병을 거느리게 하면 천하를 쉽게 평정할 것입니다."
이에 조조가 유비의 의견을 물었다.
"유 공, 저 소리를 들어줘야겠소, 말아야겠소?"[7]
유비는 이렇게 답하였다.
"저 자가 모시던 정원동탁의 일을 잊으셨습니까?"
이에 여포는 유비에게 잡아먹을 듯이 크게 외쳤다.
"이 당나귀같이 귀 큰 놈아! 네가 제일 못 믿을 놈이다!"
조조 역시 여포를 보고 외쳤다.
"당장 여포를 끌어내 죽이도록 하라!"
"내가 원문에서 활을 쏴 구해준 일을 잊었느냐!(아래 참고)"
이 때 아직도 소리지르는 여포를 꾸짖는 사람이 있었다.
"이 놈, 여포야. 죽을 때가 되면 당당하게 죽을 일이지 무슨 소란이냐?"
바로 장료였다. 장료가 조조에게 문초당하기 위해 끌려가는 동안 여포는 밖으로 끌려나가 목이 매달려 죽었다.(반면 장료는 당당하게 나간데다 유비&관우의 부탁으로 살아남았다.럭키가이)

연의에서는 "귀 큰 놈아! 내가 원문에서 활을 쏴준 것을 잊었느냐!"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유비와 원술 사이의 전쟁을 활쏘기로 휴전[8]시킨 것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 마지막 말을 극적으로 강화시키기 위해 바뀌었다고 한다.

진궁은 사로잡혀서도 조조에게 굴하지 않았으나 죽기 전에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천하를 효로서 다스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피붙이를 끊지 않는다고 했다. 나의 노모가 살고 죽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지 내 뜻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조조는 진궁의 노모가 여생을 마칠 때까지 봉양하였고, 그 딸도 시집보내 주었다. 또한 이 대목 뒤에 진궁이 당당하게 사형장을 향해 걸어가자 조조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진궁과 다르게 고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다가 참수되었다.

장료는 연의에서는 장료(張遼)가 여포에게 죽는 것이 두렵냐면서 일갈하며 조조의 질문에 기백있게 답해서 노한 조조가 장료를 죽이려는 것을 백문루에서 관우(關羽)와 유비가 말려 조조의 부하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포가 패하자 병사들을 정돈하여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후 여포, 고순, 진궁의 목은 효수되어, 저잣거리에 내걸어졌다.

3. 특징

정사에서나 연의에서나 여포에 대한 평은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용력(勇力)은 천하 제일이지만 꾀가 부족하고 신의(信義)가 없었으며, 일의 진퇴와 사세 판단에도 어두웠고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연의나 정사나 여포를 의리없는 놈으로 묘사하나, 정사에서야 어쨌든 연의에서는 최강. 덕분에 2차 창작들에서는 여포에 대한 평가가 대폭 상승하여 선악의 의미를 초월한 '무신'의 이미지를 부여받을 때가 많다. 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 적토마방천화극이 그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리고 초선이라는 캐릭터로 인해 로맨티스트로 그려지기도 한다.[9]

3.1. 무력

무력이 뛰어나서 '비장(飛將)'이라고 사람들에게 불렸다.

간혹 인터넷에 보면 여포가 자칭 비장, 즉 자기 스스로 비장이라고 칭하고 다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정사 삼국지의 공공의 적 김원중이 번역을 잘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남들이 비장이라고 불러주었다.

곽사와 여포의 일기토는 정사에 몇 안되는 진짜 대장전의 기록이기도 하다.[10]

이러한 기록 때문에 네이버에서는 가끔 "여포가 더 쎄요 항우가 더 쎄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유비에게 쳐들어 온 기령군을 돌려보내기 위해 활을 쏴서 극에 명중시킨 일화도 정사에 기록되어 있으니 무예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일화 때문인지 천자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천자문에는 布射僚丸 嵇琴阮嘯(포사료환 혜금완소)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포사(布射)'가 바로 여포가 활을 잘 쏘왔다는 의미다.

다만 연의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유관장 삼형제, 조조군의 장수 10여명과 단신으로 맞짱을 뜰 정도로 초인적인 강자라고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3.2. 통솔

여포가 용맹한 야전 지휘관이었다는건 사실로 보인다. 기록상으로도 대단히 용맹했다는 언급이 몇번 나오며 화려한 전과도 있다.[11] 사로잡혔을 때 기병대를 지휘하고 조조가 보병을 지휘하면 무적이라고 언급했으며 조조도 이 점은 특별히 부정하지 않았다.

3.3. 지력

개인의 무력과 통솔력은 뛰어나지만, 전략을 짜거나 전술을 내리는 등의 총사령관으로서의 군략은 떨어진다.

조조가 하비로 여포를 치러 왔을 때 진궁이 이제 막 도착해 조조군이 지쳤으니 여포가 본대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고, 자신과 남은 무리가 성에서 호응하는 식으로 지친 조조군을 치자고 권유하나 여포는 듣지 않았고, 쉴 시간을 번 조조군과 싸워 대패해 성안에 틀어박혀 농성을 하게 됐다.

진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고 하나[12] 먼길을 오느라 지쳤을 적군이 그냥 쉬면서 모든 준비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둔 것은 그의 총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은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3.4. 정치

여포는 무엇보다 용인력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충성스러운 고순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의 병사를 빼앗아 자신의 친척이기만 할 뿐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위속에게 준 적이 있다. 그래도 고순은 아무 불만도 나타내지 않았고 뒷날 조조와 끝까지 싸웠으며 결국 항복하지도 않고 죽었다. 이에 비해 위속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송헌, 후성과 함께 진궁을 잡아 조조에게 항복했다.

또한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며 진궁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고, 이 바람에 모반이 일어나고 부하들 사이에 내분이 생겼다. 고순과 진궁의 경우 패망 직전까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즉, 사람을 다루는 데는 영 빵점이었다는 것이다. 군주로서의 자리에 올라서려면 사람을 잘다뤄야 하기에 군주로서의 그릇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3.5. 매력

몇몇 소설에서는 미남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중국인이 뽑은 삼국지 등장인물 최고의 호남으로도 뽑힌다. 고우영 삼국지의 인물설정집에서는 사료상으로는 미남이라 전해지는데, 고우영 화백에게 밉보여서 들창코에 추남으로 묘사되었단다.[13] 하지만 정사에선 외모에 대해 특별한 서술이 없어서 실제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매력이라는게 외모 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니거든. 그렇게 따지면 유비는 외모로썬 아님.

3.6. 인격

성격이 좀 많이 이상한데, 전반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자기가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기가 남한테 피해를 준 것은 전혀 기억하지 않는 굉장히 자기 중심적인 특징이 있다.

원소나 원술을 대할 때의 '동탁을 죽여서 원씨의 원수를 갚아줬지'라는 태도, 자기가 몰아내놓고 다시 유비와 화해할 때 '우린 같은 변방 출신이잖아?'하는 식의 태도, 이런걸 보면 어이 없을 정도로 자기 잘못은 다 까먹고 '내가 잘 해준 것만' 기억하면서 남이 자신에게 잘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해괴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최후의 순간에는 조조에게 자신을 살려달라고 협상을 제의하였는데, 자신에게 기병을 맡겨달라는 것은 곧 항복할테니 장수로 써달라는 것. 그런데 조조는 이미 여포가 사령관으로서 일으킨 연주 반란(장막, 진궁 등이 주도하기는 했지만.)에서 영토의 태반을 날려먹은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유비는 여포의 반란으로 서주를 상실했던 적이 있고. 둘 모두 여포 때문에 죽도록 고생한 적이 있는데 또 다시 자신을 살려두고 군권을 나눠달라는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발언이다.

일기토를 하거나, 아내를 술자리에 데려오거나, 활쏘기를 하는 걸 보면 상당히 과시욕이 강한 측면도 있다. 현대기준으로 봐도 이기적이고 사이코패스적인 민폐형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삼국지연의에서는 문자 그대로 배신아이콘(...). 정원을 양부로까지 섬기다 동탁의 후한 대우에 이끌려 정원을 죽이고, 초선 때문에 사이가 틀어져 그 동탁마저 "어명에 의해 역적을 친다"며 죽여 버렸다.

3.7. 색욕

오늘날 2차 창작물에선 한 여자(주로 초선)에게만 목을 메다는 로맨티스트로 그려지는 일이 많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실제의 여포는 성적으로 대단히 방종했던 인물로 보인다. 일단 자신의 제장들의 부인들과 간통했다. 강제로 겁탈했다는 표현은 없긴 한데, 간통 자체만으로 당시 윤리적으로 충분히 지탄 받을 행동이다. 게다가 부하들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주군이 되려 부하 아내들의 정조를 유린했으니 겁탈이건 아니건 파렴치한 짓이다.

관련 내용을 영웅기에 보면 이렇다. 다음은 영웅기에 나오는 기록이다.
여포가 태조에게 말했다. "내가 제장들을 후대했으나 제장들은 위급해지자 모두 나를 배반했소."
태조가 말했다. "경은 처를 저버리고 제장의 부인을 사랑했으면서 어찌 후대했다 하시오?"
여포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이때는 여포가 조조에게 사로잡혀 자신을 살려두고 수하로 두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시점이다. 한두명의 부인과 바람 피우고 끝난 일이면 저런 상황이 이루어 질까?

초선의 모델이 된 동탁의 시녀와 통정했다는 기록부터 시작해 여포가 남의 여인을 탐내다 척을 지게 된 사례는 꽤 많다. 유비 앞에서 아내를 불러낸 것도 성적으로 방종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을 듯.

당시는 유교 도덕이 지배하던 사회라서 현대 시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지나치게 꽉 막힌 측면도 있기는 하지만, 부하의 아내들을 탐했다는 기록에 이르면 현대 시점에서도 도저히 용납이 어려운 합법드립 수준. 이 시대는 이다 보니 별별 해괴한 일이 다 있었지만 적의 포로도 아닌 자기 부하의 아내들과 불륜을 저질렀다는 기록은 드물다.조조도 성욕이 왕성하고 유부녀도 좋아했지만, 자기 부하의 아내는 건드리지 않았다.

당장은 좋았을지 몰라도 이런 무분별한 처신은 그의 형편없는 용인술과 더해져 부하들의 배반을 불러왔다.

기존의 여포 캐릭터 때문인지 이런 모습이 묘사되는 작품은 드물다. 사실 여기까지 묘사하면 여포라는 인물 자체가 거의 개쓰레기 수준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3.8. 여포와 유비의 복잡한 관계

여포와 유비와의 관계에 대해 여포는 유비에게 호의적이었으나 유비는 그러한 여포를 싫어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연의 이야기이고[14] 정사에는 그런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살펴보면 두 사람에게서 살펴 볼 수 있는 다소 이중적인 면모나 여러 특이점 때문에 의구심이 들게 되는데, 이유는 정사에도 적혀 있다시피 인의의 대명사인 유비가 여포의 죽음을 거들었고, 또한 인간 통찰의 대명사인 유비가 인간 관계에 처음이자 실책을 했던 사례이기 때문이었다.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유비를 배신하고 곤경에 빠뜨린 게 여포라는 것이다. 연의에선 장비가 술을 먹고 여포의 장인인 조표를 욕보이자 성난 여포가 방비가 허술한 틈을타 서주를 빼앗지만, 실제론 조표를 비롯한 서주의 호족 일부가 여포와 결탁해 유비가 없는 틈을 타 서주를 빼앗은 것이다. 더도 덜도 아닌 그냥 뒷치기다. 유비는 하루아침에 기반을 잃고 원술과 여포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어 죽을 뻔 했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이후 유비가 소패에서 간신히 정착하는데, 정착하고 나서 다시 힘을 얻는 듯 하자 여포는 이걸 꺼려서 다시 공격한다. 결국 유비는 서주대학살을 일으켰던 조조 밑으로 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신기한 건 정사를 기준으로 볼 때 여포는 배신의 명수인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15], 무슨 능력이 있는지 사람보는 눈 하나만큼은 기가 막혔던 유비[16]를 크게 등쳐먹었다는 것.[17] 이외 장막, 진궁과 결탁하여 조조의 근거지인 연주를 휩쓴적도 있고 원소 밑에 있을때도 패악을 부리다 분위기가 이상하자 냅다 튀어버리는 등 어느 세력에도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포를 받아들이고 소패에 놔두면 곧 원술과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한데 여포가 그 틈을 노려 서주를 습격할 것이라는 예측은 진군이 유비에게 간언한 바가 있었는데 유비는 듣지 않았다. (진군전)

이 "왜 유비가 여포의 사람됨을 꿰뚫어보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조조등 주위 군웅에 대항하기 위한 전력보강에 눈이 멀어 자신이 여포를 능히 제어할 수 있으리란 착각을 해버린 게 아닐까하는 추측도 있다. 당시 서주가 조조에 의해서 두 차례 개발살이 났고 더군다나 대학살까지 벌어진 점을 감안하면 유비로서는 비록 신의는 없지만 무장으로서 검증된 여포를 그냥 뿌리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여포가 변방출신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끼며 동생 운운하는데 유비는 여포가 말을 자주 번복해 기쁘지 않았다고하니 여포를 진정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서주 호족들 중 자신에게 반대를 표하는 무리들이 있고, 서주가 이미 두 차례의 전란으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조조의 재침을 겪으면 막기 어렵다고 판단해 여포를 이용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조조빠 성향이 강한 이문열은 그의 삼국지에서 유비가 여포를 받아들인 이유를 조조에 대한 경쟁심리 때문이라고 썼다. 즉, 조조가 죽이려 드는 여포를 자신이 길들여 보겠다라는 허영심으로 여포를 무리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삼국지 연의 특유의 조조 VS 유비의 구도를 세우다 보니 두 영웅이 서로를 의식하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집어넣은 내용이다.[18]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유비가 여포를 거부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전략적으로 이득이 될지도 알 수 없다.

여포가 비록 근거지가 없이 떠도는 장수로 전락했다고 해도 여전히 휘하에는 용맹하기로 이름높은 동료 무장들과 잔여 병력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비가 근거지를 내주는 것을 거부한다면 결국 갈 곳이 없는 여포는 정말 필사적으로 유비를 공격할 것이다. 물론 근거를 갖추고 있는 유비가 훨씬 유리하겠지만, 이미 원술, 원소, 조조와 사이가 틀어진 여포에게는 살아남으려면 딱히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필사적일 것이다.

결국 여포를 물리친다고 해도 유비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고, 여포가 만일 서주의 군현(郡縣)을 일부나마 점령하여 알박기를 하고(...) 원술 등의 후원을 받아 세력을 유지한다면 유비에게는 내장에 우환이 박히는 격이다. 유비 역시 조조, 원술과 같은 강적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포를 물리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또 당시의 관례를 보는 시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후한말의 난세에는 이러한 류의 객장(客將)이 자주 등장했는데, 여포는 이전에 원술, 원소, 장막 등에게 의탁하길 반복했고, 유표에게 의탁한 장수나, 공손찬, 조조, 원소, 유표에게 의탁하기를 전전하게 되는 유비 본인(...), 장로유비에게 의탁했던 마초를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객장을 받아들이는 군웅 역시 객장들을 경계하기는 하였고, 군웅과 객장과 충돌이 벌어지는 사례도 많기는 했으나, 이러한 객장이 존재했다는 것은 전반적으로 의(義)로서 따져볼 때 자신에게 의탁하는 객장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일단 이 시기에 여포와 유비에게는 '조조'라는 '공동의 적'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즉, 여포가 의탁하러 왔을 당시에는 유비로서는 여포가 설사 의심스럽다고 해도 여포를 배척하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았다. 나중에 배신했으니 '여포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야 한다.'는 것은 다소 결과론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여포가 지금까지 몇 차례 배신을 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배신으로 비난을 받을 것은 정원의 경우 뿐이었다. 동탁은 사적인 의리 이전에 동탁 자체가 역적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으며, 원소, 원술의 경우는 그들이 먼저 여포를 내친 것이지 여포가 배신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조조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장막과 진국이 조조를 배신하면서 여포를 끌어들인 것이지 여포는 조조의 수하였던 적이 없으니 배신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 여포의 관점에서는 변명할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일이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었으니 여포가 의리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아무튼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번번히 뒤통수를 치면서 사방에서 어그로를 끌어모았으니 끝이 좋을리 없었다. 결국 여포에게 연주를 날려먹은 적이 있는 조조와 여포에게 서주를 날려먹은 유비의 협공에 사로잡혀 목이 매달린다.

현대와 와서 삼국지 관련 컨텐츠에서 여포를 띄워주자 나쁜 놈은 실은 유비고 서주를 뺏긴 건 유비의 계략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말도 안 되는 떡밥이다. 사서에 근거도 없을 뿐더러 유비가 서주라는 기반을 날려버리고 자기 자신과 제장들의 목숨과 처자식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계책을 쓰려 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19]

마지막으로 유비가 여포를 죽이자는 의견을 내놓은 걸 놓고 유비까들은 이걸로 유비를 배신자라며 까는데 악용하지만 여포가 유비에게 한 배은망덕한 행동들은 쏙 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걸까? 또한 조조가 유비의 의견 하나에 자기 결정을 덜컥 내릴 정도로 줏대 없는 인물도 아니고 그도 여포가 그동안 해온 행동들을 잘 알 테니 처형을 결정했다. 다만 위의 각주대로 조조가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유비에게 물었다는 설도 있다. 혹은 단순히 유비의 입을 통해 그의 과거를 말하게 하여 살려두면 안 된다는 것을 나타냈다고도 한다. 어쨌든 기록에서 조조는 여포의 말을 의심했다고 할 뿐, 여포의 능력 때문에 그를 죽이는 것을 주저했다고 보긴 어렵다.

묘하게 마초와 유비의 관계도 유비와 여포의 관계와 비슷하다.

4. 여포 이민족 설

여포가 이민족 출신이라 부정적으로 서술되었다는 설도 있다. 특히 김운회가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하지만 같은 지역 출신인 왕윤은 삼공의 하나인 사도에까지 올라갔다. 결정적으로 여포가 이민족이라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불이익을 당했다는 기록도 없다. 그에 비해 마초의 부친인 마등이 강족계의 혼혈임이 언급되고 원소는 노비의 자식이란 이유로, 조조는 환관 가문이란 걸로 까이는 걸 생각하면, 여포가 정말로 이민족 출신이라면 왜 다른 제후나 적대 세력이 그 점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즉, '여포 이민족 설'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소리인 셈이다.

다만 이것이 '혈통이 섞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능성은 없지만 여포의 시체를 발굴해서(…) 유전자를 검사하면 이민족 계통의 유전자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당대 기록을 보아 여포는 자신이 이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고, 타인들 역시 여포를 이민족으로 보는 관점은 전혀 없었다. 즉, 문화적으로는 완전히 한인이었으며 거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혈통이 섞였을 수도 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것이나 다름 없다. 실제로 여포의 시체를 찾아서 조사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여포가 유비를 자신의 아내로서 대접하게 한 것을 예를 들어 나그네가 여포 이민족설에 힘을 실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여포가 본디 예의를 모른다는 서술이 있고, 자신의 제장들조차 막 대하였으며, 자만하고, 교만하였다는 내용을 봤을 때, 나그네가 주장한 것처럼 여포가 이민족이라 중원의 법도를 몰라서 그랬다기보다 안하무인격으로 막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 아내와 동석하거나 아내에게 손님을 맞이하라고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었다. 유교의 규범에 따라서 내외(內外)를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조비가 소싯적에 문소황후를 연회석에 불러내자 신하들이 당황하여 얼굴도 들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는 기록이 있다.[20]하후돈이 제장들이 참석한 자리에 자신의 아내를 부르려다 망신을 당했던 사건이 있다.

다만 그의 출생지인 병주(幷州) 오원군(五原郡)이 오지이고 수도인 낙양과는 한참 먼 곳이었기에 시골 촌놈 취급 정도는 받았을지는 모른다. 그래서 유비를 만났을 때 같은 변방 사람이라고 동질감을 느꼈다. 또한 흉노와 국경지대인터라 여포가 그들과 어울리다 썩 뛰어난 기마술과 궁술을 익혔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연의나 정사에서 여포가 낮은 평가를 받는건 이런 것과 상관없으며, 배신으로 점철된 그의 이력과 평소 말과 행동이 가볍고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평가가 낮은 것일 뿐이다.

여포가 정말 삼국지연의에서 폄하가 된 것이라면, 영웅기의 기록을 인용해서 여포가 부하들의 아내를 사랑한 사실 또한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에서 여포는 오히려 자신의 부인들이 만류하자 진궁의 계책을 거절해 가정적이다라는 평마저 받고 있다.(…)

이민족 설 때문에 몇몇 만화에서는 금발벽안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5. 미디어

대개 삼국지 미디어에서 여포는 꽤 비중이 큰 인물이 되는데, 이는 여포가 극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포란 인물은, 동탁의 집권과 18로 제후들과의 대결, 그리고 동탁의 몰락에 모두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동탁 세력의 움직임에 매우 깊이 관여하고 있다. 동탁이 몰락한 뒤 여포는 관동으로 이동하여 조조와 대결하고, 조조에게 패배한 다음에는 유비와 대립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조조/유비가 협력하여 여포를 공격하는 구도가 된다.

즉, 여포의 존재와 움직임이 '동탁'과 '18로 제후'를 중심으로 하는 초반의 구도에서 '조조'와 '유비'를 중심으로 한 중반부의 구도로 시점을 이동하게 된다. 이렇게 여포는 삼국지의 초반전개에서 일종의 중간보스 격인 악역으로, 작품의 포커스를 동탁에서 자연스럽게 조조와 유비로 바꿔나가는 전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5.1. 삼국지연의 이전

삼국지연의 이전 부터 여포는 삼국지 시대의 주요 군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미 삼국지 평화에서 여포의 무용과 패배가 잘 묘사되어 있을 정도. 다만 삼국지 평화에서 띄워준 이미지는 장비의 상대역으로 띄워준 것에 가깝다.
확실히 평화에서는 장비와 꽤나 많이 싸운다. 호로관에서도 싸우지만[21] 이후 소패가 여포에게 포위 당했을 때 포위를 여러번 풀기도 하고, 이후 마지막 발악에서도 싸운다. 물론, 다 장비가 이겼다. 단, 장비는 삼국지 평화 최강. 덕분에, 이미 이 시절부터 여포의 무력은 꽤나 부풀려져 있었다.

경극에서는 본디 초선과 부부 사이였다가 황건의 난 당시 헤어지고 왕윤의 연환지계로 서로 다시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부부 사이임에도 알고서도 왕윤은 연환지계를 계속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왕윤이 이 둘이 부부 사이였는데 헤어졌다는 것을 알고 이를 연환계로 이용한 것 이다. 덕분에 삼국지 연의 이전 초선은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상황에 휩쓸려 다니는 소극적 여인상이었다.

5.2. 삼국지연의

여포의 이미지가 완전히 정리되었다.

특히 유비, 관우, 장비 형제가 호로관에서 여포와 싸우는 장면과 초선, 왕윤이 등장하는 연환계가 유명하다. 이 연환계의 전개에 관해선 초선 항목 참고.

호로관의 싸움은 장면은 여포를 무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유비, 관우, 장비 3:1로 붙으면서 수십합을 싸우는 묘사를 넣었기 때문이다. 이후 관우, 장비가 불세출의 무장으로 묘사되니 그들과 싸운 여포도 엄청 강하게 인식되었다.

"유비, 관우, 장비와 3대1로 싸워서 안 밀렸으니 여포야 말로 최강의 무장이다!"[22]라고 인식되기도 했다. 게다가 뒤에는 조조가 자기 휘하의 무장을 전부다 내보내서 여포와 싸워서 겨우 이기기도 하니.[23] 덕분에 코에이 삼국지에서는 늘 무력 최상급.

하지만 삼국지연의는 배틀만화 같이 파워밸런스를 상정하고 써진 작품은 결코 아니다. 명확하게 상하관계가 정해진게 없고 그냥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서 무장들의 전투력이 오락가락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기령문추. 그리고 서황 장료 안량 문추 하후돈 관우. 또한 연의에서 여포와 장비는 나중에 서주성에서 장비가 말도둑질(...)을 했을 때 리벤지 매치를 갖는데 여기서는 100합을 넘게 싸웠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24]

다만 유비는 이후 무력을 강조하는 묘사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고우영 삼국지에서 "괜히 싸움에 끼어들어서 망쳤다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는 "유비가 제일 약해서 여포가 유비 쪽을 뚫고 지나갔다."는 묘사가 붙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장면에서 유비의 무용이 뒤떨어진다는 묘사는 없다.[25]

연의에서 완전한 형태로 완성된 연환계는 여포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해준 장면. 당시에 이 에피소드의 서술 시 왕윤의 계략에 넘어간 것에서 여포를 띄워줄 의도는 없었겠지만, 초선을 되찾기 위해 동탁을 배신했다는 점이 사랑을 강조하는 현대적인 정서에는 오히려 여포에게 (머리는 좀 안 좋아도) 낭만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더하게 되었다.[26]

관우가 손권을 욕한 '강동의 쥐새끼'란 말이 있다면, 장비가 여포를 욕한 유명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호로관에서 여포와 싸울 때 여포를 욕한 세 성 가진 종놈(三姓家奴). 원래 여씨인데 양부로 정원과 동탁을 모셨기에 성이 세 개라는 이유로 이렇게 욕한 것이다.

5.3. 기타 창작물

삼국지삼국지연의를 제외한 기타 창작물에 등장하는 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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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흔히 더듬이라고 알려져 있는 저 모자는 자금관(紫金冠)이라는 것이다. 여포의 경우 연의 본문에 자금관을 썼다는 묘사가 존재한다. 실존인물이었던 여포가 자금관을 썼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게임 등의 미디어매체에서 더듬이 이미지를 창작한 것은 아니다. 자금관을 쓴 중국 고대소설의 또다른 유명 인물로는 손오공이 있다.
  • [2] 왕윤과 여포는 모두 병주 출신. 참고로 동탁의 직계 부하들은 거의 대부분 양주(凉州) 출신이다.
  • [3] 이 과정에서 진궁장양의 동생 장막에게 의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궁이 여포의 참모가 되었다고 한다.
  • [4] 연의에서는 기령이 "소불간친지계"라는 이름으로 이 계책을 내놓으며, 이 계책에 따라 유비가 위험해지자 진등의 아버지 진규가 병든 몸으로 직접 여포를 찾아가 역설한다. 그러나 여포의 마누라 엄씨가 참견하여 여포가 결정을 못 내리던 중, 장비의 말도둑질(…)이 발생하여 싸우게 된 것.
  • [5] 「영웅기」에는 여포가 유비군이 말을 빼앗았다는 억지를 부려 공격해 들어갔다고 나온다. 이 기록이 소설의 모티프가 되어 장비가 여포의 말을 빼앗은 것으로 했다.
  • [6] 연의에서는 여포가 때문에 몸이 망가지자 금주령을 내렸고, 이에 후성이 말도둑을 잡은 기념으로 술잔치를 하려고 여포에게 허락을 구하려다 매를 맞고 쫓겨났다. 그러자 후성이 먼저 적토마를 훔쳐 달아났고, 이후 송헌과 위속이 여포가 전투 중 지친 틈을 타서 그를 묶어 항복했다고 한다.
  • [7] 연의에 나오는 대사다(정사에서는 자세한 대사까지는 나오지 않고 대신 조조가 "의심하는 기색"이 있었다고 적혀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목을 두고 조조가 책임을 유비에게 떠넘겼다 라고 보고 있다.
  • [8] 유비군과 원술의 기령군이 싸우던 중 각자 여포에게 구원을 청했는데, 여포는 "내게 둘을 화해시킬 계략이 있다"면서 유비와 기령을 자기 진지로 초대하더니 "내가 저 멀리 있는 방천화극의 곁가지를 활로 맞추면 둘은 화해하시오"라고 했고, 두 사람이 (마지못해?) 승낙하자 곁가지를 맞춰 화해시켰던 일.
  • [9] 하지만 실제로 여포는 부하들의 아내를 사랑했다.
  • [10] 참고로 이 내용은 엄밀히 말하면 정사 기록은 아니고 영웅기의 기록인데, 영웅기 역시 당대 인물인 왕찬이 기록한 것이므로 상당히 신뢰할 만한 사료이기는 하다.
  • [11] 보통 유비처럼 상대방의 세력이 자신보다 큰 경우가 많았다.
  • [12] 여포의 부하인 학맹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진궁은 학맹과 공모하고 있었다.
  • [13] 고우영 삼국지 전집에 포함된 여봉선의 설정집에 서술되어있다.
  • [14] 예를 들어 아랫사람들(관우손건 등)이 "무엇이 아쉬워서 여포를 받아들이냐"라고 묻자 유비가 "나도 싫기는 하지만, 이러이러하여..."라고 대답하는 식.
  • [15] 이미 정원동탁을 배반한 전력이 있다.
  • [16] 물론, 이 당시의 유비는 익주를 차지했을 때의 유비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 [17] 조표, 허탐 같은 서주의 권력자들과 손을 잡았기에 가능했던 일인데 이들이 굳이 여포를 선택한것을 보면 여포가 당대에 상당히 군웅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18] 또 이문열 삼국지에서는 원소가 유비가 여포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 [19] 화봉요원이 이런 스토리를 썼으나 이 만화의 스토리를 따를려면 여포는 조조를 농락하는 지략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화봉요원의 여포는 지략과 무력 양쪽에서 완벽한 남자로 묘사된다.
  • [20] 덤으로 그 중 건안칠자 중 하나였던 유정이 슬쩍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고 조비의 노여움을 사서 석공일을 하는 노역을 당하게 되었다. 조조가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아름다움에 끌려서 어쩔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대답하자 조조가 웃으며 풀어줬다는…. 뭐 그런 이야기도 있다.
  • [21] 참고로 3:1도 있기는 했지만 장비가 불리해서 3:1이 된게 아니라 싸움이 질질 끌리니까 화나서 3:1이 되어 버린 것. 뿐만 아니라 바로 다음 전투에서 장비가 1:1로 간단하게 이긴다.
  • [22] 2ch이라든가 어떤 몇몇 사람들은 이 싸움의 무력계산식은 관우 + 장비 - 유비 = 여포라고 말한다. 지못미 유비.
  • [23] 이때 허저가 여포와 20합을 싸워 밀리진 않았는데. 전위 하후돈 하후연 이전 악진을 보내면서 여포를 퇴각시킨다. 6명이랑 맞닥뜨리면서 달아난 자체가 엄청난 무력이긴 하다.
  • [24] 사실 1차전에서도 50합정도 싸웠는데 밀리지 않았다. 단지 관우가 멋대로 중간에 끼어들었을 뿐.
  • [25] 참고로 연의에서 유비는 주 무기로 쌍검을 썼는데 알다시피 마상쌍검술은 매우 어렵다.
  • [26] 정사에 나오는 제장들의 아내와 사통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은 것도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