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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신라인설

last modified: 2015-03-16 16:54:12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2. 반박
3. 금사의 구절이 진실인가?
3.1. 부정론
3.2. 긍정론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소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인 소위 마의태자가 신라부흥을 위해 만주로 가서 여진족 세력들을 규합하였으며 그의 5대 후손인 완안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웠다는 가설. 이게 환빠적 논리와 결합해서 여진족이 세운 , 후금, 등의 중국의 거대 왕조들은 사실 신라인의 혈통이라는 주장이 있다.

근거로는 여진족이 자신들의 국가 이름을 금(金)나라라고 한 것은 금 태조가 신라에서 왔다는 《금사(金史)》의 기록을 근거로 자신이 신라의 후예 김(金)씨라는 것을 내외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는 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추장 누르하치가 자신의 성으로 삼은 애신각라(愛新覺羅)는 신라가 사랑하고 잊지 말라는 뜻이라는 점이 있다. 나는 신라를 사랑한다

2. 반박


우선 너무 쉽게 논파되는 애신각라설 = 신라 사랑설. 이 동네에서 쓰는 '각라'는 '부족' 혹은 '겨레'라는 뜻으로 만주어로 '기오로(Gioro)'라고 읽는다. 즉, 애신각라는 만주어로 읽으면 아이신기오로가 된다.

게다가 이 동네에서는 아이신기오로 외에도 이르건기오로(伊爾根覺羅, 이이근각라), 수수기오로(舒舒覺羅, 서서각라), 퉁얀기오로(通顏覺羅, 통안각라), 자무후기오로(嘉穆瑚覺羅, 가목호각라), 실린기오로(西林覺羅, 서림각라) 등의 성씨가 존재했다. 이것 하나만으로 설이 완전히 논파당하는 판에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 리가... 역사스페셜에서도 신라 사랑설까진 무리수라 여겼는지 방영분에선 아이신=金의 만주어 정도로만 설명해놨다.

또한 만주어 '아이신(= 애신)'은 '쇠'라는 뜻인데, 이는 금의 국명을 부족명에 넣어 정통성을 높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칭기즈 칸의 본래 이름인 '테무진'이 비록 때려잡은 적의 추장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나, ''이라는 뜻임을 감안했을 때, '김씨' 이외에도 강인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이런 국명을 썼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3. 금사의 구절이 진실인가?


3.1. 부정론


》에 금 왕실의 선조가 고려인 함보(김함보)라는 기록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단 상식적으로 그 사람 한 명으로(설령 단순한 한 명이 아니라 같이 온 세력까지 합친다 해도) 여진족의 정체성이 신라인으로 바뀌었을리도 없고, 함보와 금태조는 6대나 차이난다. 또 금과 고려 사이에서 혈통적인 동질감에 대한 정체성이 있었다는 근거도 없다. 전형적인 뻥튀기. 당장 아버지가 고려인이라 해도, 고려인의 피가 아들은 1/2, 손자는 1/4, 증손은 1/8, 고손은 1/16으로 줄어드는 마당에 문화도 다르면...

그리고 《금사》 이전대의 사서인 《막기문》과 《금지》를 보면 금 왕실의 선조가 신라인이었다는 기술이 있어 고려 기원설과 맞지 않는다. 또한 완안아골타의 할아버지 대 위의 족보가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았다. 즉 당시까지 제대로 국가를 세워본 적이 없었던 여진 세력이 정통성의 확보를 위해서 근처에 있던 국가에서 명분을 찾아왔고, 이로 인해 이러한 혼란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반론이다. 굳이 마의태자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 신라와 고려의 교체기 유명한 신라인이라 괜히 끌려 들어간 것이 아닌가하는 추정이 있다. 하지만 금사 및 금 왕실 측 사서는 자신들의 조상으로 마의태자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3.2. 긍정론


위의 부정론에는 아골타의 시조가 신라 고려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고 신뢰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신라와 고려 교체 시기에 아골타 선조가 만주로 갔다고 하면 결코 모순된 점이 아니다.

위의 부정론에선 사서간의 차이점을 들며 사실일 가능성을 부정하지만《송막기문》과《금사》를 교차검증했을 때 큰 틀에서 보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바로 금 황실이 자기 조상이 지금의 한반도 어디쯤에서 왔다고 하는 점인데, 신라나 고려나 똑같은 한반도에서 세워진 국가였고, 전자는 신라인이라고 하고 후자는 고려에서 넘어왔다는 것은 금 황실 시조가 나말여초 시점에서 만주로 왔다고 하면 모순이 아니다.

더욱이 금은 만주 및 화북지방을 지배했고, 한족 문물을 받아들인 어엿한 중국 왕조였기 때문에 대다수 피지배층이었던 한족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자기 조상이 중국에서 왔다고 하는 것이 자기네들 입장에선 더 이득인데, 왜 굳이 다른 나라인 고려에서 넘어왔다고 하겠는가? 그리고 중국이 고려보다 문화적&역사적 면 등 여러모로 보나 브랜드 가치(?!)가 더 높은데??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금사》의 함보 구절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당 황실은 선조가 선비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조상이 노자였다고 선포라하고 구라라고 말한다했다.

마의태자가 금나라 넘어 갔다는 전설도 우리나라에서 민간에서나 퍼진 이야기일 뿐 금나라에서 한 이야기는 신라에 살던 민간인 한 명이 넘어왔는데 그 분이 우리 선조인데요라는 수준이고, 우리나라 정사에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기재하고 있다. 금사는 신라인 김일-마의태자의 이름이다-이 아니라 고려인 김함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에 주목하자.

당장 금사는 금나라가 중국에서 황제국이 된 이후에 만든 사서인데 왜곡을 할려면 화끈하게 중국이나 신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 이름을 들지 김함보라는 사람을 선조로 거론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고려사에도 금 황실 시조가 고려에서 왔다는 구절이 있다.

是月生女眞完顔阿骨打稱皇帝更名旻國號金. 其俗如匈奴諸部落無城郭分居山野無文字以言語結繩爲約束. 土饒猪羊牛馬馬多駿或有一日千里者. 其人鷙勇. 爲兒能引弓射鳥鼠及壯無不控弦走馬習戰爲勁兵諸部各相雄長莫能統一. 其地西直契丹南直我境故嘗事契丹及我朝. 每來朝以麩金貂皮良馬爲贄我朝亦厚遺銀幣歲常如此.

이 달에 생여진(生女眞) 완안부(完顔部)의 아구타(阿骨打)가 스스로 황제를 칭하면서, 이름을 민(旻)이라 고치고, 국호를 금(金)이라 했다. 그 풍속은 흉노와 같아서, 모든 부락에는 성곽이 없었고 백성들은 산과 들에 흩어져 살았다. 또 문자가 없어서 입말과 결승[1]으로 의사를 소통했다. 그 지역에는 돼지·양·소·말 등의 가축이 풍부했으며 준마가 많아 그 중에는 하루에 1천 리를 달리는 것도 있었다. 사람들은 사납고 용맹하여 아이 때부터 활로 새나 쥐 등을 쏘다가 커서는 활시위를 당기고 말을 달리면서 전투기술을 익혀 강한 병사가 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모든 부락이 저마다 그 중에서 으뜸간다고 다투는 통에 부족의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땅은 서쪽으로는 거란, 남쪽으로는 우리 영토와 접해 있었기 때문에, 옛부터 거란과 우리 조정을 섬겨 왔다. 입조해올 때마다 사금(砂金)·담비 가죽·좋은 말 따위를 예물로 가져왔고, 우리 조정에서도 또한 해마다 은화를 후하게 주곤 했다.

或曰: “昔我平州僧今俊遁入女眞居阿之古村是謂金之先.” 或曰: “平州僧金幸之子克守初入女眞阿之古村娶女眞女生子曰古乙太師古乙生活羅太師.

혹자는, "옛날 우리 평주[2]의 승려 금준(今俊)이 여진에 도망쳐 들어가 아지고촌(阿之古村)에서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금나라의 선조."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평주의 승려 김행(金幸)의 아들 김극수(金克守)가 애초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서는, 여진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고을태사(古乙太師)라 했다. 고을이 활라태사(活羅太師)를 낳았고, 활라는 아들을 많이 두었다. 장남이 핵리발(劾里鉢)이고, 막내아들은 영가(盈歌)였는데, 영가가 슬기와 용맹이 가장 빼어나 민심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 핵리발의 장남 우야소(烏雅束)가 지위를 계승했고, 우야소가 죽자 그 동생인 아구타가 그 자리에 올랐다."

- 예종 10년(1115) 을미년, 고려사 권14 사 세가

역사학계에선 출처가 다른 기록들에서 큰 줄기가 같은 동일한 이야기가 나오면 진실성이 높다고 보는데, 이러한 점을 보면《금사》의 구절이 진실이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이글루스의 역사 블로그 저자도 《금사》의 구절이 진실이 가능성이 높다는 글을 썼다시조 신라-고려인설. 위의 문헌들과 한자/언어적 측면을 고려할 때 한반도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금 시조가 신라인이라고해도 금의 역사가 한국사라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단순히 지배층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당장 흉노&선비 같은 이민족들이 나라를 세웠던 오호십육국은 누구의 역사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왕이 없으면 다른 나라에서 선출해 오던가 아예 다른 나라 왕을 공동의 왕으로 삼았던 유럽국가들도 많다.

유럽역사를 보면 각 국가간에 혼인이 매우 빈번한 것을 넘어서 외국인을 자국의 왕으로 선출한 예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위만조선을 세웠던 위만이 연나라에서 건너온 중국인이라고 위만조선을 중국의 역사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있다. 그리고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적이 있었으므로(일제시대)한국의 역사를 일본의 역사로 볼 수도 없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아이신기오로의 유래에 대해서는 만주 시조 신화를 참조하자.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역사스페셜에서 2009년 9월 6일에 방영하였다.

  • 메가스터디에서 한문을 강의하는 박한신이 이 항목에 대해 언급하며 금나라를 찬양한다.

  • 무인시대에서도 이 설을 써먹었다. 두두을이 황룡의 대업을 거론하면서 이 설을 언급했다.

  • 조선을 증오하는 환빠들은 이성계를 여진족이라고 깐다.
  • 천추태후에서 마의태자 이야기와 천추태후치양의 아들 이야기를 짬뽕을 해서 써먹었다. 신라인 문제와 고려인문제의 언급을 각각 고려해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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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結繩. 새끼를 맺어 그 매듭에 의하여 기억 또는 의사를 소통하던 한 방법.
  • [2] 平州 : 지금의 황해북도 평산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