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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누엘 아데바요르

last modified: 2015-09-11 01:48:24 Contributors


토트넘 핫스퍼 FC No.10
엠마누엘 셰이 아데바요르
(Emmanuel Shéyi Adebayor)
생년월일 1984년 10월 18일
국적 토고
출신지 로메
포지션 스트라이커
193cm, 78kg
프로 입단 2005년 FC 메츠 B 입단
소속팀 FC 메츠 B(2000~2001)
FC 메츠(2001~2003)
AS 모나코(2003~2006)
아스날 FC(2006~2009)
맨체스터 시티 FC(2009~2012)
레알 마드리드(임대)(2011)
토트넘 핫스퍼 FC(임대)(2011~2012)
토트넘 핫스퍼 FC(2012~ )
국가대표 57경기 27골

Contents

1. 커리어
1.1. 아스날 FC
1.2. 맨체스터 시티
1.2.1. 레알 마드리드(임대)
1.2.2. 토트넘 핫스퍼(임대)
1.3. 토트넘 핫스퍼
2. 국가대표로서의 활약
3. 플레이 스타일
4. 멘탈 문제
5. 기타

1. 커리어

프랑스의 클럽인 FC 메츠의 유소년 클럽 소속이었다. 1999년 1군에 합류하였고,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된 02/03 시즌 17골을 넣으며 팀을 다시 승격시켰다. 이후 AS 모나코로 이적하였으나 주급 문제와 무단 이탈 등으로 갈등을 겪고 2006년 윈터 브레이크 때 아스날 FC로 이적한다.

1.1. 아스날 FC

아스날 FC로 이적한 후 첫 해에는 아스날의 킹이었던 티에리 앙리에 밀려 벤치 신세였다. 하지만 07/08 시즌 전 여름 이적시장에서 앙리가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말그대로 포텐셜이 폭발했다. 07/08 시즌 도합 30골을 넣으며 아스날의 초반 상승세를 이끌었고[1], 특히 AC 밀란과의 1차전에서의 모습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아드리아노 갈리아니의 눈에 확띄어 밀란과의 링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찬사를 받았지만 산시로에서의 2차전은 파올로 말디니에게 막혀 90분동안 경기장에서 문자 그대로 삭제 당했다.[2]하지만 이후 08/09 시즌에는 부상에도 시달리면서도 14골을 기록하며 우수한 선수임을 보여주었다.갓데발

하지만 아스날에서도 꾸준히 주급 문제로 구단과 갈등이 많았고,[3] 매 시즌 이적시장이 열릴 때마다 AC 밀란 등의 이적설에 휩싸이는 등 팀에 그다지 충성스럽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불화설과 이적설 등으로 팀의 분위기에 계속 안 좋은 영향을 끼치자 결국 아스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그를 이적시키기로 결심하고 08/09 시즌 이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적료 2500만 파운드에 그를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시킨다.

1.2. 맨체스터 시티

09/10 시즌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초반 연속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주전 자리를 굳혔지만 친정팀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직후 아스날 팬들을 자극하는 세레머니를 하고[4], 옛 동료였던 로빈 반 페르시의 얼굴을 가격하여 협회로부터 3경기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는다. 징계 이후에는 시즌 초의 맹렬한 기세는 약간 사그라 들었지만,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서 피습을 당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경기에 출장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후에는 또다시 이적설이 도는 모양. 이적설이 도는 이유는 맨시티가 4위 안에 들지 못해 챔스에 출전하고 싶어서라고(...) 하지만 로베르토 만치니 맨시티 감독이 직접 이를 부인했다고 하니 일단은 맨시티에서 계속 뛸 것 같다.

하지만 10/11 시즌, 입지가 매우 불안하게 됐다. 폼이 떨어져 예전만큼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벤치 신세인데다가 콜로 투레와는 훈련 중 난투극을 벌이는 등 병크는 다 저질렀다. 결정적으로 팀이 525억의 이적료를 들여 볼푸스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 최고의 스트라이커 에딘 제코를 영입했기 때문에 인원 제한으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다.

1.2.1. 레알 마드리드(임대)

결국 하반기에 레알 마드리드로의 임대가 확정되었다. 10/11시즌 끝날때까지 임대되는데 레알 마드리드의 주포였던 곤살로 이과인의 시즌아웃이 결정되었고 남은 공격수인 카림 벤제마마저도 거의 쩌리 상태. FC 바르셀로나에 다소 밀리고 있는 현 레알의 상황에 돌파구가 되줄지 아닐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시즌 아데바요르 본인의 폼이 워낙 좋지않다는것이 커다란 변수이다.

일단 데뷔전인 오사수나 전에서는 레알이 0-1로 패하는 바람에 고배를 마셨다.1:1상황만 3번 말아먹는 위엄을 보여준 끝에 국왕컵 4강 2경기에서 벤제마가 온갖 명수비로 공격기회를 말아먹자 83분에 교체 출전, 벤제마를 멀리 보내버리는 데뷔골을 뽑아냈다.
그리고 이 골은 산티아고 베르나우 5000번째 골이라고 한다.

1.2.2. 토트넘 핫스퍼(임대)

2011~12시즌에는 토트넘 핫스퍼로 임대되어 4라운드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4-0 대승에 기여했다. 21경기에서 모두 9골을 기록하며 팀내 득점 1위(가레스 베일도 9골을 기록했지만 23경기에 참여했기에)로 맹활약 중이다. 다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24라운드 리버풀 전에 출전해선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인 끝에 교체되었다.

그러나 25라운드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에선 1골 4도움으로 5:0 대승에 모든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며 10골 10도움을 넘어서며 팀 내 득점 1위로 올라섰다. 이런 활약 속에 토트넘에서 완전 이적을 원하지만 아데바요르가 맨시티에서 받던 돈만큼을 요구하는 통에 토트넘이 난감을 표하고 있다.

11/12 시즌이 끝난 후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이 토트넘에 부임하고 나서 그를 원했고 맨체스터 시티 입장에서도 재정 페어플레이 룰 때문에 고액 주급자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아데바요르를 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그 결과 5m 파운드의 가격으로 영입에 근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주급은 맨시에서 받던것보다는 더 적게 받아야 하는데 이걸 아데바요르가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

결국 2012년 8월 21일 주급문제가 해결되면서 토트넘으로 완전 이적했다. 등번호는 9번을 배정받았다.

1.3. 토트넘 핫스퍼

토트넘에서의 활약상은 나쁘지 않은데 골 결정력의 부족으로 상당히 까이고 있다. 저메인 데포에게 선발에서 밀리는 이유 중 하나인데. 볼키핑, 및 포스트 플레이에서는 데포보다는 좋을 지 몰라도 그 외에는 그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주급 떨어져서 그런가게다가 그놈의 멘탈은 어디 안갔는지 경기 도중에 거친 태클이나 상대 선수와의 싸움 등으로 퇴장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경기이면 모르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아스날 원정에서 그랬다.[5] 그의 리그24경기 5골이라는 갓데발스러운활약(?)덕분에 토트넘은 dtd 구단 최고 승점기록에도 불구하고 5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2013-14 시즌에는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의 눈 밖에 나서 보아스 경질 전까지 2군에 내려가는 수모까지 당했다. 그러나 토트넘의 득점력은 루이스 수아레스 한 명에게 통째로 밀리는 수준으로 부진했고 보아스는 경질되고 말았다.[6] 그리고 셔우드 감독[7]의 감독 데뷔전인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 27경기만에 선발 출전하더니 멀티골을 넣어버렸다(...) 흠좀무.갓데발의 재림인가!

이후 토트넘의 주전 공격수로써 사실상 토트넘의 득점력 부진을 말끔히 해소해 주고 있다. 토트넘에게는 로베르토 솔다도의 원톱 구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공격전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사실 솔기옥 모으기 지루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고 그런데 아데바요르가 득점을 늘리면서 득점 빈곤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한심한 수비들이 그만큼 더 실점을 해주는 까닭에 골득실은 여전히 답이 없다. 여하튼 13/14시즌 리그 11골(리그컵까지 합치면 14골)을 기록했다.

13-14 시즌이 끝나고 팀 셔우드 감독이 경질되자 다음 감독과는 어떠한 관계를 유지하게 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14-15 시즌은 부진하여 결국 토트넘은 재계약을 포기하고 임대까지 할 예정이다.아데바요르는 올 시즌 리그 12경기(교체 3회)에 출전해 2골에 그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 넣은 골은 지난해 10월 뉴캐슬 유나이티드전이었다. 게다가 해리 케인이라는 구세주가 등장하면서(?) 토트넘에서 아데바요르 입지는 크게 줄었다. 그럼에도 팀 최고 주급인 10만 파운드(1억 5900만원)을 받는 걸로 알려진 터라 토트넘에서는 처치곤란할 선수가 되었음에도 주급을 줄일 생각이 없는 아데바요르를 임대하는 팀에게 일부 주급을 지원하겠다고 나설 정도이다.

2. 국가대표로서의 활약

토고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11골을 넣으며 토고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견인했으며 월드컵 본선 첫 경기인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한국 팀의 경계대상 제 1호로써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팀 내부는 보너스 문제로 인하여 선수들과 토고 축구 협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등[8] 악재가 터져 분위기가 엉망이었고, 그 때 아데바요르는 아직 포텐이 안 터진 유망주일 뿐이라 더 이상의 활약 없이 3전 전패로 승점을 마구 퍼주며 조별예선에서 처참하게 탈락한다.[9]이놈들이 승점을 퍼 주는 바람에 한국이 16강 문턱에서 좌절했다

2010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기 위해 앙골라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3명이 사망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벌어진다. 아데바요르는 별다른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대표팀 동료가 사망하는 것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렸고, 결국 토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재미있는건 이때 인터뷰 할때 입은 옷이 아스날 피케티셔츠라는 점. 그 난장판을 쳐놓고 나와놓고 입은 옷이 아스날 의류라 상당히 이상해 한 아스날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2013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대표팀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했고, 지역예선에서 케냐와 가봉을 차례대로 무찌르고 본선에 진출한 후 본선 조별리그에서 튀니지를 골득실로 제치고 토고 대표팀의 사상 첫 네이션스컵 1라운드 통과 기록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아프리카 특유의 탄력과 키 193cm의 장신에 사기적인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주로 활약하는데 유연하면서도 개인기도 좋아서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수비진을 휘저으며 공격의 활로를 뚫기도 한다. 아스날 시절 챔피언스 리그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선보였던 활약은 그야말로 압권. 그러나 상대적으로 골 결정력이 많이 떨어져서 자비로운 갓데발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07/08 시즌 이후 이러한 측면은 다소 줄었으나 그래도 중요한 때 자비를 선사하는 것은 여전하다.

연계 플레이에도 상당히 능해서 한창 기량이 올랐을 때는 거의 만능형 공격수라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유형의 선수로는 첼시 FC디디에 드록바를 들 수 있다. 둘 다 막강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타켓형 스트라이커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그 외에도 다양한 공격 옵션으로 기용될 수 있다. 그리고 둘다 신...아니, 하나는 참 신 하나는 거짓신

4. 멘탈 문제



멘탈킹[10] 그와중에 갓데발의 또라이짓을 찬양하는 맨시팬들[11] 그리고 똥줄타는 안전요원들...

일단, 리그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여 쉽게 이적설과 불화설에 휩싸인다.(...)

AS 모나코에서는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 참가하기 위해 무단으로 구단을 이탈했다가 구단과 대립각을 세웠고, 2006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에서도 토고 대표팀의 감독과 불화를 일으켰다.

아스날에서도 심심하면 아르센 벵거 감독 또는 로빈 반 페르시 등의 동료들과 불화설이 터졌고, 매 이적 시장 때마다 이적설이 터졌다. AC 밀란 이적설은 정말 심심하면 터졌고, 실제 본인도 이적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하여 이적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12].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그 모습이 어디 안가서, 친정팀인 아스날을 상대로 골을 넣고 논란의 세레머니를 선보이기도 했다.[13] 당시 아스날 팬들이 아데바요르의 부모를 창녀라는 식으로 욕하는 노래를 부르고 토고 대표팀 테러사건에 대해 비하하는 내용의 욕설을 퍼부어 그 같은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지만, 경기 후 본인은 그저 기쁜 마음을 가지고 달렸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유가 뭐였든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했던 프로 선수답지 못한 행동. 흥분한 수천명의 아스날 원정팬들이 피치 가까이 쏟아져 나왔는데 겨우겨우 혼란을 막고 있던 안전 요원들을 비롯해서 하마터면 대형 참사를 유발할 수 있었던 결론적으로 잘못된 행동이었다.

리그 중반 맨시티가 한창 막장 가도를 달릴 때도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물론 시즌 이후에는 또 이적설이 떠돌고 있고(...) 결국 2011년에 부주장 콜로 투레와 새해맞이(...) 주먹다짐을 벌였다. 마침 본인의 입지도 좁아지고 에딘 제코도 영입될즈음에 벌어진 상황이라 치명타가 될 듯.

여튼 여러 문제들과 관련하여 구단들과 잡음이 많은 선수 중 한명이다. 물론 그 중 주급 문제는 선수와 구단 간의 문제이니 만큼 제3자가 간섭하기 어렵고 프로의 세계에서 주급은 곧 자신의 가치와 직결되므로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 없지만, 아데바요르는 정말 심심하면 주급과 관련하여 문제가 생긴다.

AS모나코 시절에는 "구단에서 나를 인종 차별하여 적당한 주급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등 주급으로 구단과 싸웠고, 아스날에서도 07/08 시즌 이후 주급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하여 구단과 갈등을 빚었다. 0607시즌 직후에 주급을 2배로 인상해놓고 1년도 채 지나가도 전에 두배이상의 주급을 요구하는데 들어줄 구단이 어디 있겠는가. 맨시티야 구단주가 워낙 돈이 많은 만큼 아직까지는 별 말이 없지만...

아래 각주에서 설명했듯 토고 대표팀에서도 보너스 문제로 인하여 토고 축구협회와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토고 축구협회가 병크를 저지른 것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아데바요르는 이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프로 선수라면 돈에 이끌릴 수밖에 없다.라고 일축했다(기사). [14]
그리고 디디에 드록바, 사무엘 에투, 완코 카누처럼 병원과 재단을 관리하는데 많은 돈을 쓴다. 보통 주급의 50% 를 기부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맨체스터 시티에서는 매주 9만 파운드 가량을 쓴 셈이다.
그래서 토고 현지에선 선행으로 범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뷰에서도 자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기사)

"선수들은 돈을 벌기위해 경기에 나서지만 저 같은 아프리카인들은 지역사회에 환원할 의무가 있어요."
"저는 지금 많은 자선사업을 하고 있으며 이건 전부 제 주급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제 커리어를 마칠때까지 이 일을 진행할 거예요"결국 그놈의 성질머리가 문제

그리고 2014년엔 자기 엄마를 자신에게 저주를 하고있다라는 황당한 이유로 본인 소유의 집에서 쫓아냈다

5. 기타

한국 해축팬들 사이에서는 '갓데발'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경기 내 후덜덜한 활약으로 마치 신과 같은 포스를 뿜는다는 긍정적 의미와, 정작 쉬운 골과 결정적인 찬스에서는 삽질을 해서 상대팀에게 자비의 은총(...)을 선보인다는 부정적인 의미 두 가지 모두 내포하고 있는 별명.

엘 클라시코 직후에 얻은 별명은 데승사자. 등 뒤에서 갑자기 휙 나타나서 메시를 잡아채는 장면은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저승사자의 모습. 2010-11 챔피언스 리그 4강 엘 클라시코 2차전에서는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면상에 통렬한 장풍(...)을 날려주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갓데발을 막는 자에게 천벌을 내렸다

아데바요르는 조국인 토고에서 영웅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가족들은 아데바요르가 사준 벤츠를 굴린다고 한다. 2006 월드컵 당시 한국전을 앞두고 중앙일보가 토고까지 가서 그의 식구들을 만났는데 한국 서민이 봐도 꽤 잘산다는 느낌이 오는 집에서 살면서 집 안 살림도 상당했다. 당시 아데바요르의 형제들도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취재당시 한국에 가고 싶다고 밝힌 바 있는데, 월드컵 이후에 그의 형 피터 아데바요르가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테스트를 받으러 온 적도 있다. 하지만 동생에 비해 기본기가 떨어진다는 평가만 받고 탈락한걸 보면 재능은 한없이 평범했던 모양이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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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스날은 03/04 시즌 무패우승 이후 주전들의 은퇴와 이적으로 인하여 계속해서 전력이 약화되고 있었다. 이 시즌에도 변함은 없어서 언론에서는 아스날이 'BIG4'의 자리를 지키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시즌 후반 맨유에 역전당할 때까지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아데바요르가 있었음은 당연하다.
  • [2] 당시 말디니의 나이가 30대 후반인게 흠좀무(...) 말디니야 당대 세계 최고의 선수를 전부 상대했으니 그럴만 하다.
  • [3] 07/08 시즌의 활약 이후 구단에 대폭적인 주급 인상을 요구했지만, 아스날은 당시 경기장 신축 등으로 인하여 재정에 여유가 없었다. 그런 판인데 이미 2배의 주급 인상을 받은지 3개월만에 또 다시 주급인상을 요구하는 상식없는 짓을 벌였다.
  • [4] 사실 아스날 팬들이 아데바요르에게 심각한 인종차별 및 패드립등 폭언을 일삼아서 결국 보복성 세러머니 작렬
  • [5] 그래도 이 경기 골을 넣기는 했다. 그리고 골 넣자마자 5분도 안돼서 퇴장당했다. 팀은 5:2로 대역전패
  • [6] 여담으로 보아스 경질의 계기가 되었던 리버풀전 5:0 패배 이후 노아 아수 에코토와 찍은 토트넘 패배를 조롱하는 듯한 사진이 에코토의 트위터에 올라와 논란이 있었다. 얼마 뒤 아데바요르는 토트넘 조롱이 아니라고 사과하긴 했지만.
  • [7] 이때는 감독 대행이었다.
  • [8] 언뜻 보면 선수들이 돈만 밝히는 것 같지만, 토고 축구 협회가 꽤나 병맛이었다. 당시 토고 축구 협회는 쿠데타를 일으켜 38년동안 토고를 철권통치했던 독재자 나싱베 에야데마(1935~2005)장군의 아들인 포르 나싱베(1966~ )가 회장으로 있었는데, 이 자는 FIFA의 지원금을 횡령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예전에 약속했던 본선 진출에 대한 보너스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선수들은 협회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고, 보너스 지급을 직접 요구하기에 이른 것. FIFA의 출전지원금과 경기 출전수당에서 선수들이 요구한 금액을 주어도 10억여원이 남았었다고 하던데 그걸 안 주고 어디로 떼먹었는지... 참고로 포르 나싱베는 애비가 죽자마자 정권을 이어받아서 2011년 현재까지 토고 대통령으로 2대에 걸쳐 44년째 집권하고 있다.
  • [9] 이런 패배에 분노한 토고 나싱베 대통령은 감독을 즉각 해임했으나, 선수들은 감독 탓하지마라며 같이 분노했고 이후 토고는 다시 아프리카 축구에서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있다.
  • [10] 09-10시즌 초 친정팀 아스널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뒤 아스널 서포터즈석으로 달려가 아스널 팬들을 도발하는 장면.
  • [11] 사실 또라이짓을 찬양한다기보단 골을 넣었으니 환호하는 것에 가깝다.
  • [12] 뜬금없이 AC 밀란에 대해 비욘세만큼 섹시한 팀이라고 하는 둥 본인 주급을 자기 입으로 스스로 밝히며 난 이거밖에 못 받고 축구한다는 둥 구단 관계자 및 팬들을 데꿀멍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로써 무뇌 인증(…)
  • [13] 게다가 골을 넣은 반대쪽, 즉 100미터를 슬라이딩 세레모니 및 도발을 위해 달려왔던 것이다.사실 활동량 늘리려고 그랬다고 카더라
  • [14] 같은 아프리카권인 세네갈의 엘 하지 디우프도 돈 때문에 축구를 하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사실 아프리카 많은 축구선수들이 이렇다. 워낙에 경제적으로 극과 극이며 친척이나 식구가 많은게 다반사인 아프리카(및 중남미 선수들도 많이 그렇다.) 선수들은 부양할 식구가 10명 이상 때론 40명이 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워낙에 실업자가 넘치고 벌어먹을 게 없는 현실에서 축구선수로 대박을 거두면 친척들이 서로들 와서 부양하는 게 많다고 한다. 거기선 이런 게 당연한 인식이라고. 그래서 더더욱 돈을 많이 주는 팀에 솔깃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우린 X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거지 XX 그러니깐 주급 좀 꼬박꼬박 입금하라고
  • [15] 참고로 피터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시즌 도중 이경규가 간다에 출연하며 한국 연예인들과 꽤 친해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월드컵 이후 K리그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한국에 왔을 때 당시 만났던 연예인 중 한 명을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만 당하고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돌아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으며, 2013년 7월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