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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last modified: 2015-03-29 04:19:36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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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해외안전정보 - 에콰도르



República del Ecuador.

Contents

1. 개요
2. 국호
3. 역사
4. 자연
5. 요리
6. 민족
7. 스포츠
8. 외교 관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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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콜롬비아페루 사이에 낀 작은 나라이다(그래도 국토면적은 28만 4,000km2한반도보다 넓다). 수도키토(Quito). 인구수로는 최대 도시가 아니다. (인구상) 에콰도르의 최대 도시는 최대 항구도시이기도 한 과야킬(Guayaquil)이고 키토는 인구 약 140만 명으로 2번째로 큰 도시이다. 키토의 해발고도는 2,850m. 백두산(2,744m)보다 높은 해발고도이다.

2. 국호

국명인 에콰도르는 이 나라를 적도가 관통하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어의 '적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적도를 영어로 equator라고 한다. 스펠링이 비슷하다. 같은 스페인 식민지였던 '적도' 기니와는 아무 상관 없다. 아니 적도를 끼고 있고 스페인 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실제로 적도가 지나는 곳에 적도 기념관도 있다.

3. 역사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와 함께 란 콜롬비아 연방의 일원이었으나 독립했다. 이 나라 역시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막장의 길을 걸었으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겨우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있다. 2006년에는 반미를 내세운 좌파(라파엘 코레아) 정권이 집권했다.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외교적으로는 반미성향이긴 하지만 젊었을 때 미주개발은행(IDB)의 지원하에서 교육 시스템 개선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었고, 미국에서 정통으로 경제학을 공부하여(...)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낸 경력이 있다. 그가 유학한 일리노이대 경제학과 자체의 성향은 이른바 시카고 학파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하고는 거의 정반대의 스탠스를 지니고 있긴하다. 이름답게 경제학자 장하준과도 인연이 있다. 미국 유학시절 장하준의 지도를 받은적이 있었고 특히 그의 저서인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2010년 10월 1일, 경찰들이 공무원 복지 혜택 축소법안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켰다. 일부 군인을 포함한 경찰 폭도(…)들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을 붙잡아 경찰병원에 12시간 이상 억류하고, 각종 관공서를 장악하는 등 거의 쿠데타에 가까운 혼란을 일으켰다. 대통령이 억류된 과정이 좀 웃긴데,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연설하러 오자 최루탄을 쏘았고, 그게 대통령 옆에서 터져 치료를 위해 병원에 후송했는데, 하필이면 경찰병원으로 옮겨져 거기서 흥분한 경찰들에게 둘러싸였다. 결국 코레아 대통령을 구출하러 출동한 군대와 경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사망자 2명과 수많은 인명피해를 낸 끝에 대통령은 구출되었고, 군부대가 투입되어 경찰 병력을 제압하였다.

그러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3선 이후 에콰도르 내정은 상당히 안정되어가고 있으며, 특히 빈민층과 서민층, 일부 중산층을 중심으로 지지가 상당하다. 그 이유가 자신의 기반이 안정된 이후 내부 인프라 확장과 빈민구제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인데, 도로를 신설ㆍ확장하고, 전화와 인터넷망 등을 확대하며, 치안도 강화했다. 덧붙여 빈민구제로 중산층이 상당부분 늘어났기도 했다. 부유층이 상당히 많아 코레아 대통령의 힘이 약한 과야킬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치안이 그나마 괜찮은 편. 경범죄만 조심하면 된다.

4. 자연

안데스 산맥이 이 국가를 북에서 남으로 관통하고 있다. 수도인 키토(해발고도 2850m)가 이 산맥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고도가 더 올라가면 최고봉에 1년 내내 눈이 덮여 있는 설산도 있다. 화산도 상당히 있다.

찰스 다윈진화론을 쓰는 계기가 된 갈라파고스 섬이 이 나라에 속해 있다. 단 이 나라 본토 근처는 아니고, 이 나라의 본토에서 서쪽으로 좀 멀리 떨어진 편이다.

에콰도르는 산유국이기도 하다. 다만 이집트몽골처럼 정유 능력이 부족하여 정제된 석유를 역수입해오는 형편이다. 덕분에 현재 대규모 정유 공장 단지를 짓는데 총력을 기울이는데, 여기에 다국적 자본 참여가 끼어들고 있으며 2010년 9월에는 한국도 이 자리에 참여했다. 공사 및 시설 투자 확정은 아니다. 볼리비아처럼 좌파 대통령이라고 실컷 욕하던 언론도 이땐 입 다물었다 산유국인 덕에 베네수엘라이란, 러시아와 같이 정유 기술 협조 및 여러가지로 친근하게 교류하기도 한다. 다만 여기도 2014년 하반기부터 석유값 하락의 여파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와 같이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침체를 겪고있는 중.

더불어 광물과 가스 자원도 상당하며, 수력 발전으로도 꽤 위치가 좋은 자원 부국이 될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곡물 및 소나 양 사육 농장도 활발하여 빵이나 소고기 및 양고기 값은 굉장히 싼 나라이다. 다만 에콰도르가 잘살고 못사는 거랑은 관계가 전혀 없다. 경제적으로 보면 에콰도르는 개발도상국이 맞다.

5. 요리


위의 소고기 값과 관련된 일화로 현지에서 태권도 도장을 차린 어느 교포의 증언을 보면 한국에선 에콰도르가 알려지지 않아 못 사는 나라로만 아는데, 한국에 모처럼 들렸더니 쇠고기를 사주기에 에콰도르에서 1주일에 적어도 4~5번은 실컷 먹는다고 말해줘도 믿지 못하기에, 여긴 한국에 파는 쇠고기 값 10%도 안 된다고 말해줬더니 기겁했다고 한다.


다만 현지인들은 주로 옥수수나 콩, 쌀 등 채소와 해물 위주로 먹는 편이다. 위 사진은 에콰도르식 세비체(Ceviche)이다.

6. 민족

남미 상당수가 그러듯 독일계 이민자들이 상당한 곳이기도 하다. 후예들까지 약 40만이상이 살고 있으며 아랍계 이민자들도 나날이 늘어가면서 약 11만여명이 살고 있으며 이슬람 도시까지 작게 생겼을 정도이다. 반대로 유대인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아서인지 2008년 조사론 겨우 6백명도 채 안되는 수준의 유대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7. 스포츠

볼리비아와 함께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고산, 고원 등 고지대 홈빨을 받는 팀. 자세한 것은 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유명한 클럽축구팀에는 바르셀로나 SC가 있다. 이름에서 보듯이 창설자 고향이 바르셀로나의 이름을 딴 것이다. 스페인권의 도시 중에는 스페인에 있는 도시명이 라틴아메리카 지역도 있는 경우가 많다. 발렌시아도 그런 경우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이탈리아 전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주심 바이런 모레노가 에콰도르 출신이다.

8. 외교 관계

주변 이웃나라라 할수 있는 콜롬비아페루랑은 거의 앙숙. 콜롬비아와는 한때 그란 콜롬비아 연방의 일원이었으나 결국 갈라섰고 갈라선 이후에는 국경지역에서 서로 군사적인 무력충돌까지 일으켰다. 거기다 최근에는 반군, 정부군 내전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콜롬비아를 탈출해 그나마 안정적인 에콰도르로 밀려들어오는 콜롬비아 난민의 수용 처리 문제와 콜롬비아군의 자국 영토 침범등으로 갈등을 빚기까지도 했다.

페루와의 관계는 최악. 과거 자국이 점유하고 있던 동부 내륙 열대림 지역을 페루에게 빼앗긴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페루에게 빼앗긴 내륙 열대림 지역을 되찾으려고 에콰도르-페루 전쟁 등 페루와 전쟁을 세 차례씩이나 벌였다. 비록 최근에는 아마존 강 유역 지방 영토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양국관계도 다소 개선되었으나 영토문제로 전쟁도 세번씩이나 벌였던 만큼 양국 국민 감정은 그리 좋지 않다. 거기다 심지어는 양국 국가 대표 선수들끼리 축구 경기가 벌어지면 축구 응원단끼리 상대방 국가를 비방하며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에 단독수교하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UN의 대한(對韓) 지원결의 때 UN 비상임이사국 자격으로 대한 지원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