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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마르티네즈

last modified: 2015-06-03 04:10:42 Contributors


이름 Edgar Martínez
생년월일 1963년 1월 2일
국적 미국
출신지 뉴욕
포지션 지명타자[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 (1987~2004)

Contents

1. 개요
2. 뒤늦은 메이저리그 생활
3. 지명타자로 전향
4. 동료들이 떠난 속에서도
5. 은퇴
6. 평가
7.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1. 개요

메이저리그 최고의 지명타자중의 한 사람으로 뽑히는 선수이며 시애틀 매리너스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 랜디 존슨, 제이미 모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 스즈키 이치로등의 화려한 선수들이 포진했던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어 나갔던 선수이다.

통산 기록은 타율 0.312, 출루율 0.418, 장타율 0.515, 2247안타, 309홈런, 1261타점.

2. 뒤늦은 메이저리그 생활

지명타자로 활약한 에드가 마르티네즈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게 된 계기는 그의 수비력때문이었다. 1982년, 매리너스와 아마추어계약을 맺은 마르티네즈는 마이너리그에서 순차적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메이저리그에서도 곧잘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매리너스의 잘못된 판단[2]로 인해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시간을 썩어야보내야 했다.

27살이 되던 해인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활약한 마르티네즈는 3할은 기본으로 치는 타격에 두자릿수 홈런을 곁들이며 팀내 주력 타자로 활약했고 1992년에는 첫 올스타전 출장, 그리고 타율 0.343을 기록하며 매리너스에 처음으로 타율부문 타이틀을 선물해준다.

3. 지명타자로 전향

그러나 1993년부터 마르티네즈는 계속된 부상으로 제대로 시즌을 소화해내지 못했고 그로인해 수비력 역시 크게 떨어져버린다. 이런 상황속에서 에드가 마르티네즈가 선택한 것은 지명타자로 전향하는 것.

이 선택은 마르티네즈와 매리너스에게 모두 대성공이었고 풀타임 지명타자로 출장한 첫 해인 1995년에는 타율 0.356을 기록하며 자신의 2번째 타율 1위, 그리고 지명타자로서는 처음으로 타율 1위에 오르게 된다. 장타력도 크게 늘면서 이 해부터 2001년까지 20 ~ 30개에 달하는 홈런과 세자릿수 타점을 기록한다.[3]

이 당시 매리너스의 타선은 알렉스 로드리게스 - 켄 그리피 주니어 - 에드가 마르티네즈 - 이 뷰너가 2-3-4-5번을 치는 꿈의 타선이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7년간 지명타자로서 5번의 올스타전에 출장하고 3번의 실버 슬러거를 차지하는등 이 시기가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최고 절정기였다.

4. 동료들이 떠난 속에서도

그러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켄 그리피 주니어, 그리고 랜디 존슨등은 매리너스를 떠나야 했다.

먼저 랜디 존슨이 1998년 7월 31일에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되어 떠났고 이어 켄 그리피 주니어가 2000년 2월 10일에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마지막으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으며 떠났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꾸준히 팀의 타선을 지켰고 2000년에는 37개의 홈런을 때리며 개인 최다 홈런을 기록했고 145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다 타점을 기록한다.

매리너스의 새로운 홈 구장이었던 세이프코 필드는 투수친화적인 구장이었고 우타자에게는 불리한 구장이었음에도 위와 같은 기록을 세웠던 것.

2002년에는 처음으로 3할 기록에 실패하고 홈런 수도 20개 밑으로 내려오는등 부진에 빠졌지만 2003년에 다시 타율 0.294, 24홈런, 98타점을 기록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5. 은퇴

2003년 시즌이 끝난 후,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은퇴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매리너스는 그에게 1년 더 활약해달라고 요청했고 마르티네즈는 요청에 응한다.

하지만 40이 넘은 마르티네즈는 부진했고 결국 2004년 8월 9일에 에드가 마르티네즈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은퇴를 밝힌다.

그리고 매리너스는 마르티네즈의 등번호인 11번을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한다.[4]

6. 평가

메이저리그에서 18년동안 뛰면서 계속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만 뛰었고 시애틀에서는 이미 최고의 선수로 대우받는다.

매리너스에서 뛰면서 1999년도 이후엔 계속 좌타자에게 유리한 구장, 그리고 투수친화구장인 세이프코 필드에서 뛰었으면서도 한번도 불만을 표현하지 않은 선수이고 통산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300+/.400+/.500+를 찍은 14명의 선수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꾸준하면서도 뛰어난 선수였다.

1973년부터 지명타자제 실시 이후 한 시즌에 가장 뛰어난 지명타자에게 주는 상인 최우수 지명타자 상(Outstanding Designated Hitter Award)을 2004년부터 그의 이름을 따서 에드가 마르티네즈 상(Edgar Martínez Award)으로 바꾸게 되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선수라 하겠다.

7.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2010년부터 명예의 전당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득표율은 현재 30%대에서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약물의 시대에서 약물없이 활약한 선수이지만 누적 스탯이 부족한데다가[5] 커리어의 대부분을 지명타자로 뛰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명예의 전당에 지명타자가 입성할 수 있는가의 논쟁에 핵심이 되는 인물이다.[6]

게다가 앞으로 후보에 오르는 선수중에서는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켄 그리피 주니어, 프랭크 토마스, 톰 글래빈등 쟁쟁한 기록을 남긴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에 몇 년간은 입성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약물의 시대에서 활약한 깨끗한 선수 중 한 명이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3/4/5를 기록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은 에드가 마르티네즈의 명예의 전당 입성에 플러스 요인이다.

2014년도 투표에선 25.2%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아무래도 몇년간은 2,30%대에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2015년도 역시 27%의 득표율을 보여줬다. 득표율 상승치가 상당히 지지부진한 상태. 본인도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 중 내셔널리그 담당은 내 모습도 보지 못했을 것이며 언젠가 세이버매트릭스가 나를 도와줄 시기가 오길 바란다." 고 아쉬워했다. 또한 전 시애틀 팀 동료이자 명전 입성에 성공한 랜디 존슨은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가장 먼저 마르티네즈를 찍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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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데뷔초에는 3루수로 활약했고 이후에는 1루수로 경기에 나선 적이 있지만 커리어의 대부분은 지명타자로 뛰면서 쌓은 것이다.
  • [2] 당시 에드가보다 1살 많았던 주전 3루수 짐 프레슬리는 1985년에 풀타임 3루수로 등장해 3년 연속 20홈런을 넘겼지만 이른바 공갈포로 갈수록 스탯이 떨어졌으며 결국 FA가 되자 시애틀을 떠났다. 당시 주전 DH인 켄 펠프스는 장타력은 떨어졌지만 출루능력이 좋았던 베테랑이라 에드가가 주전자리를 따내지 못했다.
  • [3] 유일하게 1999년에 86타점으로 세자릿수 타점에 실패
  • [4] 아직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아닌지라 공식 영구결번은 아니다. 그렇지만 매리너스 구단 명예의 전당 헌액이기 때문에 비공식 영구결번이다.
  • [5] 명예의 전당에 안정적으로 입성할 수 있는 조건으로 뽑히는 3000안타-500홈런에 못미치는 2247안타, 309홈런 기록
  • [6] 에드가의 뒤를 이을 특급 지명타자로는 데이비드 오티즈가 꼽히긴 하지만, 이쪽은 금지약물 복용 전과가 있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 떡밥에서는 애초에 논외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