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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노 유키오

last modified: 2015-01-19 17:19:1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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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전과 지진 후의 차이.

枝野幸男

(1964-)

Contents

1. 개요
2. 정치활동
3. 도호쿠 대지진
4. 한국과 에다노 유키오
5. 근황
6. 보컬로이드화(...)


1. 개요

일본의 정치인.변호사. 1964년 5월 31일생.

도치기현 우츠노미야시 출신으로 이름은 오자키 유키오[1]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이때문인지 어릴때부터 정치인이 되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교내 웅변대회에서 3년 연속 우승을 했고 합창부 활동도 해 NHK 음악 콩쿠르에 2년 연속 출전해 우승하기도 했다고 한다.

진로에 대해서 와세다대학에 합격하면 기자를, 호쿠대학에 합격하면 변호사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와세다 대학이 불합격하고 토호쿠 대학이 합격해서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도쿄의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하게 되었다.

2. 정치활동

1993년, 본 신당이 총선 후보자를 공모하자 공모에 응해 연고지도 아니던 사이타마현 제5선거구에 일본 신당 후보로 입후보해 신생당의 우에다 키요시에 이어 2위로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총선후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비자민.비공산 연립정권을 수립하자 여기에 참여해 상공의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당내에서는 호소카와 1인 독재체제인 일본 신당의 당개혁을 추진하다가 당 사무국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1994년,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총리직을 사임한후 하네다 내각이 출범하게 되자 자민당 정권 복귀를 막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하타 츠토무에게 국가수반 지명투표의 표를 던졌다. 그러나 하네다 내각 하에서 일본 신당이 신당 사키가케와의 통일 원내교섭단체를 깨고 신생당과 새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자 여기에 반발해 일본 신당을 탈당했다. 함께 탈당한 측과 원내교섭단체 "민주의 바람"을 구성해 신당 사키가케와 함께한다.

1995년, 자민-사민-신당 사키가케 연립정권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이 출범하면서 신당 사키가케에 입당해 정책조사회 부회장을 지냈다. 1996년에 국가수반 지명투표에 하시모토 류타로에게 표를 던질 것을 고민하다가 결국 하시모토에게 표를 던졌다고 한다.

에다노가 처음으로 국민적 주목을 받게된 것은 1995년으로 이 해에 일본 녹십자의 에이즈 혈우병 응고제 파문이 터지자 진상조사에 노력했고 이때 후생장관이던 간 나오토를 도와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섰다고 한다.

1996년 자민당 정권이 복귀하자 신당 사키가케와 간 나오토를 중심으로 한 사민당의 합동파와 통합하여 출범한 구 민주당으로 옮겨 사이타마현 제5선거구에 다시 출마했지만 자민당 현역의원에게 패배했고 비례대표 부활로 원내 진출은 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다양한 입법활동(예를 들면 아동 포르노 금지법안)으로 의원 입법 붐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1998년에는 현재의 일본 민주당 결성에 관여했다.

1999년 민주당 대표선거에서 마츠자와 시게후미의 추천인에 이름을 올리는데 마츠자와가 우정 민영화등을 언급한 것에서 정책적 코드가 맞다고 판단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9월에 열린 대표 선거에서는 간 나오토의 선대본부 사무국장을 맡았다.(...) 이후 하토야마 대표 체제에서 정책 조사회장 대리가 되었고 쉐도우 캐비넷 내각에서 관방부장관에 내정되었다.

2009년, 일본 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성공해 내각 입성이 유력하다고 보였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에서 장관직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에 대해 오자와 이치로와의 불화설등이 돌았지만 확실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행정개혁 장관인 센고쿠 요시토에 의해 행정쇄신 회의의 사업구분팀 총괄역을 맡았고 이때 국가 예산 편성과정을 일반에 공개하여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의 하락을 막는데 일정한 공헌을 했다고 한다.

이후 2010년 1월 센고쿠 행정개혁 장관이 국가전략 담당장관을 겸하면서 수상 보좌관에 내정되었지만 대신 센고쿠 장관의 업무를 나누는 차원에서 행정개혁 장관에 임명되었다.

하토아먀 유키오 총리가 물러나고 후임 민주당 총재선거에서는 마에하라 세이지와 함께 간 나오토를 지지했고 간 나오토 총리 체제에서 민주당의 간사장을 맡았지만 참의원선거에서 과반확보에 실패하자 간사장직에서 물러났고 후임 오카다 가츠야 간사장의 요청에 따라 간사장 대리로 취임했다.

2011년 간 나오토 내각의 부분 개각에 따라 관방장관에 임명되었다. 3월 초에는 마에하라 세이지 외무장관이 외국인 정치헌금 문제로 사퇴하면서 외무장관 임시대리까지 맡았는데...

3. 도호쿠 대지진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고 도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일어난 거대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 그야말로 격무중이다(...). 관방장관의 주업무가 내각의 총괄 사무인 탓도 있으나 비상사태시 총리를 대신한 기자회견과 브리핑도 담당하기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아예 3월 14일부터는 2시간마다 TV에 나와 브리핑을 하고 있다. 어떤 기사에 의하면 109시간이 넘도록 자지 못하고 후쿠시마 원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이 때문인지 시간이 갈수록 초췌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이라 되려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네티즌들이 에다노 장관의 건강을 우려할 정도다(...). 트위터에서는 아예 "#edano_nero"(에다노_자라) 해쉬태그를 달고 제발 잠 좀 자셈...하는 트윗이 많이 올라왔고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가디언지에도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뉴로맨서로 유명한 SF작가 윌리엄 깁슨도 자신의 트위터에 "edano, sleep"이라고 적었을 정도다.

게다가 고향인 도치기현의 위치가 후쿠시마 바로 아래(...)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면 자기 고향이 직격으로 당할텐데, 속이 배로 타들어가지 않을까...
이 과로로 인해 성씨에서 파생된 에다루(枝る, えだる)란 신조어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품사는 동사이며 뜻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한계에 이르도록 잠을 자지 않는다이고, 나머지 하나는 상사를 잘못 만나 필요 이상으로 고생하다(…).

입지가 흔들리는 건지 갈수록 병풍이 되어가는 칸 나오토 총리와는 달리 2시간 마다 얼굴을 내비치는 덕에 인지도는 확실히 높아졌고, 에다노 장관에게 격려 메시지도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민주당 입장에선 불행한 국가재변이긴 하지만 칸 나오토 총리의 후계자를 얻은 것일지도?

하지만 사건이 터진지 한 달이 넘어가기 시작하며 슬슬 이 사람에 대한 성토가 올라오고 있다. 노력하는 건 알겠지만 도대체 한 일이 뭐냐는 것. 5 주가 넘게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점차 악화되는 모습만 보여주자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도 '사람은 성실한데 무능한 게 아니냐' 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거기에 오염수를 방류한 뒤 '당장 피해는 없을 거다' 라는 발언을 하는 바람에 더더욱 까이고 있다. 오염수 방류 뿐만이 아니라 방사능 피폭에 관한 발언을 할 때 마다 저 말을 해 대니 일본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그로가 치솟을 수 밖에. 반짝 올라갔던 인기는 지금 다 사그라들었다고 봐도 된다. 사실 에다노만 특별하게 까이는 것은 아니고, 사태가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고 있다 보는 게 맞다.

중의원 해산이후 2012년 12월 16일에 열린 중의원 총선거에서 사이타마현 5선거구 지역구에서 지역구를 수성하는데 성공하였다.

2014년 12월 선거에서 또다시 연임에 성공했다.

4. 한국과 에다노 유키오

한국의 입장에선 달갑지는 않은성질이 뻗치는 인물로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데[2] 특히 독도와 한국 관련 망언을 한 인물이다. 2010년 3월에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건 역사의 필연이었다"라고 망언을 했다가 질타가 쏟아지자 사과를 했고(관련기사), 2011년 2월에는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했다는 역사적 근거가 없다"는 망언을 하기도 한데다 도호쿠 대지진 전날인 3월 10일에는 일본 민주당 의원 도이 류이치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대하는 문서에 서명하자 대놓고 "총리가 당 대표로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짜를 것"이라고 말한 바있고 실제로 도이 류이치는 당 윤리위원장에서 짤렸다(...)

하지만 사실 그는 일본에서는 오히려 진보세력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게 된건 역사의 필연이었다'는 망언은 정확히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할 의도로 한 말은 아니고, 일본의 개혁이 늦어지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될 수 있으니 일본은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한국인 입장에서는 대단히 기분나쁜 말인 것은 변함이 없긴 하지만.
(관련기사 - 조선일보 일본어판),

2011년 2월 22일 '독도를 한국이 점유하는 것을 불법점유라고 하는 것은 국익에 적합지 않다'고 하여 일본 우익들한테 대차게 까인적도 있다.
(관련기사 - 산케이 신문),

2011년 3월 10일의 성명에서는 '그의 발언은 유감이다. 민주당의 입장과 다르다. (민주)당에서는 오카다 가쓰야 간사장을 중심으로 적절히 대응하겠다. 간 나오토 수상이 간사장에게 그렇게 지시하고 있지않을까'가 정확한 번역이다. 이 정도의 발언은 관방장관으로서 무리한 발언은 아니었다.
( 관련기사 - 산케이 신문)

또 중국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나쁜 이웃이라도 이웃은 이웃이므로 교류를 하기는 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을 미국이나 한국처럼 신뢰 관계를 갖고 일을 진행하기를 기대하는 건 이상하다'고 발언을 한 적이 있으니 딱히 혐한은 아닌 듯 하다. 혐중인 건 맞는 것 같다. 법치주의가 통하지 않는 나라라고도 했으니까.(관련기사 - 요미우리 신문)

그는 분명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정치인이긴 하지만, 사실 일본 정치인 중에 독도를 한국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이래서 일본 정치가들이 막장이긴 하지만). 때문에 일본 정치인 중에서 특별히 혐한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그저 보통 일본 정치인 수준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5. 근황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자살했다는 글 있는데 잘 보면 뉴스도 아니고 웹문서에 저렇게 써놨다. 모 잉여 사이트의 악의적 장난질, 확실히 낚시다... 제정신이냐.

근래에 일본 국민을 상대로 차기 총리로 누가 적합하다고 보느냐는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감 1위에 선정되었다. 물론 20%도 안되는 수치이긴 하지만.

대한항공 A380 독도 시범비행으로 시작된 일련의 사건에서 2011년 8월 1일 다시 일본의 정치인다운 행보를 보여 한국에 다시 이름을 알렸다.#

2011년 9월 29일 일본 국회 참원예산위에서 아키라 마츠가 방사능 우유를 마실 것을 강요당하는 후쿠시마 현 어린이들의 현실을 고발했는데, 이때 오사무 후지무라 관방장관과 함께 웃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게 웃을 상황인가?

2011년 11월 일본 유명 아나운서인 오츠카 노리카즈가 백혈병으로 입원했다. 이 사람은 후쿠시마산 음식을 직접 먹으며 후쿠시마를 응원한 모습이 TV에 자주 나온 사람이다. 그리고 에다노 유키오 장관께서는 그런 음식을 1년간 섭취하면 위험하지만, 한 두 번 먹는 정도로는 즉시 영향은 없다고 말했으며, "저는 (그런 음식을 먹어도) 건강에 즉시 영향은 없다는 말을 7번 밖에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2011년 12월에는 부적절한 발언[3]으로 경질당한 하치로 요시오의 후임으로 경제산업성 장관을 맡게 되었다. 이후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모테기 토시미츠로 교체.

6. 보컬로이드화(...)

도호쿠 대지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TV에 자주 나온 고로 음성 소스(...)가 많이 모여, 니코니코 동화잉여들이 UTAU를 이용해 보컬로이드화 해버리기에 이르렀다. 평소에는 인기도 없는 정치 카데고리의 동영상이 상위권에 올라가기도 하는 등 반짝 인기를 끌었다. 잠도 안자고 일하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높아진 그의 인기도 한몫 한듯. 하지만 니코동에는 극우들이 많기 때문에 민주당 소속인 그는 당연히 까인다.

보컬로이드에 붙은 이름은 에다노 네로(枝野ネロ : 해석하면 에다노 자라(...)가 된다)이며 별칭으로 원자로이드(原子炉イド)라고도 불린다. 노래를 들으면 "즉시 복근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웃음수치에 피폭되는 모양.[4]

물론 통제된 환경에서 녹음된 라이브러리는 아닌지라 하츠네 미쿠카가미네 린같은 다른 보컬로이드만큼의 곡 완성도는 기대하기 힘들다. 아직 오리지널 곡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개그 소재일 뿐


여담이지만, 중학생 시절 합창부 활동을 했고 NHK 주최의 전국합창콩쿠르(1979년경)에 나가 우승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늦게나마 이룬 가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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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의 저명한 민주정치가. 일본에서는 '헌정의 신' 또는 '의회 정치의 아버지'라 불린다고 한다.
  • [2] 그래도 민주당 소속인 만큼 일본에선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 [3]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을 '죽음의 땅'이라고 말했다가 후쿠시마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 [4] 그가 회견에 나와 입버릇처럼 말하는 "즉시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방사선량은 아니다."를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