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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영

last modified: 2015-03-08 16:42:20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기자
3. 뉴스데스크 앵커
4. MBC 사장
5. 사장직 사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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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출생 1951년 8월 5일, 강원도
학력 춘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데뷔 1974년 MBC 기자
소속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종교 개신교

문화방송의 前 기자이자 사장.

1. 개요

뉴스데스크의 전설적인 앵커맨으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최장수 앵커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삼풍백화점 붕괴때 보도하시던 분. 그가 뉴스데스크 앵커로 재임한 기간은 장장 13년 2개월 (1989년 10월 9일 ~ 1996년 11월 8일 / 2002년 1월 1일 ~ 2008년 2월 1일) 로 뉴스데스크를 가장 오래 지켜온 앵커다. 2010년 MBC 리서치에서도 뉴스데스크 하면 가장 떠오르는 남자 앵커로 70%가 그를 뽑았을 정도다. 말단 기자로 시작하여 MBC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기도 하다.[1] 강원도 출신으로 춘천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1974년에 MBC에 입사했다.

2. 기자

1974년 MBC에 기자로 입사했다. 기자생활에서 꽤 파란이 많은데, 1977년에는 설악산을 취재하다가 헬기사고로 거의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 이 때 헬기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사망하였다. 1980년대에는 파리 특파원을 역임하며 뉴스 마무리를 항상 세느강변에서 하여 화제를 모았다. 이때 흩날리는 머리에 바바리코트 차림이었기에, 기자의 로망으로 불리며 기자 지망생들의 선망을 얻기도 했다.

3. 뉴스데스크 앵커

1989년 10월에 39세의 나이로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발탁[2]된 이후, 1996년 11월까지 7년 가량의 긴 기간동안 진행을 맡았다. 이후 파트너 김은주 앵커와 함께 앵커직에서 물러나고# 보도본부장을 역임하다가 2002년 1월부터 다시 앵커를 맡아 2008년 2월 1일까지 6년 가량 계속 뉴스데스크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다. 동시에 MBC 사장이 되기 전까지 특임이사 자리도 겸했었고, 2007년부터는 아예 부사장 대우를 받았다. 부사장이 직접 전해주는 뉴스. 손석희? 2008년 2월 1일, 엄기영 앵커의 마지막 날엔 뉴스데스크에서 고별 뉴스를 마련해줬다.2008.2.1 앵커직 고별 뉴스 2008.2.1 클로징 멘트

최일구 앵커만큼은 아니지만 클로징 멘트로 종종 이슈가 되는 말을 자주 했다. 최일구 앵커보다는 훈계적인 성격이 더 강하긴 했지만 이전 앵커들은 "뉴스 마치겠습니다." 같은 간단한 멘트로 끝마치다 보니 더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 당시의 유명한 유행어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였다. 이 말을 박명수를 비롯하여 여러 개그맨들이 엄기영 앵커의 성대모사를 할 때 사용했다.

하기야 엄기영 앵커가 앵커직에 있던 때(1989년-1996년)는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를 시작으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이어 역대급 재난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터지는 등 대형 사건들이 워낙 많이 일어났던 때인지라 저런 말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계속되는 대형사고 때문에 못참았는지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당시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계속 되어야만 합니까?" 로 뉴스를 시작한 적이 있다. 지금봐도 그 멘트는 후덜덜하다.#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한 달쯤 지나고 역대급 규모의 참사가 일어나 버렸다....

하지만 그의 앵커 생활에도 흑역사가 딱 하나 있었는데 2007년 7월 26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 관한 뉴스를 전해주다 화면이 특파원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웃음짓는 모습을 보여서 이에 대해 네티즌들의 엄 앵커를 비판하고 옹호하는 싸움이 일어났는데, 결국 엄 앵커가 이에 대해 사과했다.#

4. MBC 사장

2008년 MBC의 27대 사장이 되었다. 그는 사장직에 있었을 따 당시 집권당과 정부의 심각한 공정방송훼손위도에 저항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PD수첩에서 광우병 논란에 대해 다룬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당 쪽에서 계속해서 MBC의 임원을 여당측 임원으로 채우면서 엄기영 사장을 견재하면서 서로의 갈등이 극에 다른 시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2010년 임기를 마치지 못한채 갑자기 MBC에서 사퇴를 선언한다.# 사퇴한 이유는 뉴MBC플랜이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책임이라고 알려졌다.#그리고 그의 사퇴를 시작으로 많은 아나운서, 기자들도 파업 등으로 줄줄이 사퇴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시기부터는 머리 염색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백발 스타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MBC와 사이가 멀어져서 MBC에선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으나 의외로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에 참석했다. 그에겐 뉴스데스크가 특별한 존재니 이 자리만큼은 참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5. 사장직 사퇴 이후

그 이후로는 한나라당으로부터 계속 강원도지사 출마를 요청받았으나 거부해왔다. 하지만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물러나게 될 경우에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2011년 3월 2일, 한나라당 후보로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으며, 당시엔 평창 동계올림픽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시기에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KBS에 나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나 뭐라나.

2011년 3월 1일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강원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참조. 같은 MBC 사장 출신의 최문순과 매치를 벌여 주목을 받았지만 강릉의 한 펜션에서 불법적으로 전화 홍보원 30여명을 동원해서 불법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되었다. 엄기영은 선거운동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팬션과 휴대폰을 자신이 마련해준 걸 보면 믿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았다. 결국 최문순에게 득표수가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김문수 前 경기도지사에 의해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았으나 2014년 7월8일에 사표를 제출하였다. 그 이후로는 방송계와 정치계에서 물러난 상태이다.

여담으로 그의 한나라당 입당건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MBC 사장 시절만 해도 이명박 정권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MBC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 그래서 민주당과 최문순 의원이 후보 양보론까지 꺼내가며 영입하려 했을 정도였으나 결론적으로는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최문순에게 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안습한 행보를 가게 된지라.....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권 당시 개표방송을 진행할 때 열린우리당이 선전하면 밝은 표정을, 한나라당이 앞서가면 X씹은 표정이었다는 점(...)을 들어[3][4] 그가 X맨 역할로 한나라당에 들어가 고의적으로 토론을 망친게 아니냐는 그럴 듯한 가설을 내놓기도. 실제로 강원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앵커 출신이라는 점이 무색한걸 넘어 아예 횡설수설로 일관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오죽했으면 최문순 후보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마치 서로 짜고 친듯한 멘트를 날렸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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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몰론 그런 식으로 사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엄기영 이외에도 몇명 있는데, 대표적으로 엄기영 다음 사장인 MBC를 말아먹은 김재철 역시 예전엔 기레기자 출신이였다.
  • [2] 이득렬 앵커 이후 2년간 강성구, 추성춘씨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백지연씨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 [3] 대표적으로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이 그야말로 개박살나자 엄청 심각한 얼굴로 "위기의 여당, 2002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라는, 다소 중립성이 떨어지는 멘트까지 했었다. 게다가 2004년 총선 출구조사 때는 열린우리당 압승을 애써 담담하게 알렸지만 민주노동당이 10석 내외로 예상되자 "아 대단합니다."라는 멘트까지 날렸다.
  • [4] 실제로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을 보면 노무현 후보의 1위를 알리면서 그럭저럭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다가 화면이 넘어갈 때마다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