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양준혁

last modified: 2015-03-30 19:16:56 Contributors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올스타 베스트10
선동열
(투수)
이만수
(포수)
장종훈
(1루수)
박정태
(2루수)
김재박
(유격수)
한대화
(3루수)
양준혁, 이순철, 장효조
(외야수)
김기태
(지명타자)

비회원 기여자는 이 문서를 수정할 수 없습니다. HELP!

이 문서는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까지 위키 회원으로 등록한 기여자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위키워크샵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논란 중인 인물! HELP!

이 문서가 다루는 인물에 대해 현재 진행 중인 논란이 있습니다.
문서 열람 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늘 1루까지 전력질주하는 모습 때문에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수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내가 삼성 감독이 된 뒤인 2002년에 양준혁을 삼성으로 다시 데려온 것이다. -김응용-

"그저 1루까지 열심히 달렸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루까지 걸어서 가본적이 없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
No.10

성구회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2[1] 2,318 안타 2007년

이름 양준혁(梁埈赫)
생년월일 1969년[2] 5월 26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대구광역시
출신학교 대구상고(현 상원고) - 영남대학교
포지션 1루수(1993~1994, 2004)
좌익수(1999~2001, 2003)
우익수(1995~1997)
지명타자(1998, 2002, 2005~2010)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3년 드래프트 1차지명(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1993~1998)
해태 타이거즈(1999)
LG 트윈스(2000~2001)
삼성 라이온즈(2002~2010)

1993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염종석(롯데 자이언츠)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유지현(LG 트윈스)

1996, 1997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김광림(쌍방울 레이더스)
김상호(OB 베어스)
전준호(롯데 자이언츠)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김응국(롯데 자이언츠)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이병규(LG 트윈스)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박재홍(현대 유니콘스)
전준호(현대 유니콘스)
김재현(LG 트윈스)
1998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박재용(해태 타이거즈)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댄 로마이어(한화 이글스)
2001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타이론 우즈(두산 베어스) 양준혁(LG 트윈스) 마해영(삼성 라이온즈)
2004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김태균(한화 이글스)
2006년~2007년 한국프로야구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재현(SK 와이번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홍성흔(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1993~1998)
정성룡(1989~1992) 양준혁(1993~1998) 김기태(1999)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0번(1999)
최훈재(1997~1998) 양준혁(1999)
LG 트윈스 등번호 57번(2000)
김종헌(1999~2000) 양준혁(2000)
LG 트윈스 등번호 10번(2001)
안상준(2000) 양준혁(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0번(2002~2010)
승권(2001) 양준혁(2002~2010) 영구결번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류중일 양준혁(1998) 류중일

Contents

1. 개요
2. 프로 선수 시절
3. 사건사고
4. 은퇴 이후
4.1. 은퇴 후 진로
4.1.1. 자선경기
4.2. 트위터와 구설수
4.3. 방송 활동
4.3.1. 해설자
4.3.2. 예능
5. 일상
6. 노총각
7. 근황
8. 기타
9.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푸른 피의 사나이, 살아있는 전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3]
그리고 가장 위대한 2인자

이승엽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의 90년대~2000년대를 상징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며, 이만수-장효조-양준혁-이승엽으로 이어지는 본좌대두라인 계보 중 한 축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별명으로는 꾸준한 타격 능력에서 붙여진 양신과 머리가 크다하여 붙여진 양대갈이 있다. [4]

공을 때리려는 건지 타자를 때리려는 건지 분간할 수 없는 타격포즈가 특징. 일명 만세타법이라 불리며 양준혁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응원가는 따로 없이 관중들이 한 목소리로 "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친다. 양준혁 특유의 보스기질과 합쳐져 아주 잘 어울린다.

2011년 0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은퇴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10에 선정되었다.

yang_jh.jpg
[JPG image (Unknown)]


가..강개리?

여담으로 양일환 삼성 2군 투수코치가 사촌형이며[5] 김태한 삼성 1군 투수코치와는 대구상고 동기이다.

2. 프로 선수 시절

데뷔하기 전 쌍방울 레이더스에게 2차 지명이 되었으나, 지명을 피하면서 논란거리를 만들기도 했다.[6] 어쨌든 1993년 삼성 라이온즈에 데뷔.

데뷔 시즌에 신인왕[7]과 타격왕을 동시에 석권하였으며 아직도 양준혁 이후로 이 두 타이틀을 동시에 가져간 선수는 없다. 그러다 1998년 시즌이 끝나고 임창용 - 곽채진, 황두성, 양준혁, 30억원의 3대1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고, 2000년 LG 트윈스로 다시 넘겨졌다가 2001 시즌 종료 뒤에 FA 자격을 얻은 후 삼성으로 돌아와 2010년 시즌까지 계속 삼성에서 활약했다.

양준혁/프로 선수 항목 참고.

3. 사건사고

빼어난 성적만큼, 사건사고 역시 다사다난하여 아예 항목이 분리되었다(...)

양준혁/사건사고 항목 참고.

4. 은퇴 이후

4.1. 은퇴 후 진로

은퇴하면 야구장을 짓고 싶다고 했다. 허구연 필드에 이은 양준혁 필드가 나오길... 은퇴 선언 후 실제로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2군데 정도로 후보가 압축된 듯. 남자의 자격에서 직접 꿈의 구장 모형을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은퇴 선언 후에도 후배들을 성심껏 지도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지도자로서도 대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할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지 않고 방송 활동을 하다 자취를 감추어 코치감독이 될수 있을지는 불분명

2010년 플레이오프는 덕아웃에서 지켜봤다. 한국시리즈에서는 미디어데이에서 문제가 되어 덕아웃에서 퇴장. 하지만 4차전 도중에 난입(?!)해서 선수들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트위터 문제도 그렇고 왠지 은퇴 후의 행적이 순탄치만은 않아보인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김재현이 sk의 우승컵을 들었을때 카메라는 양준혁의 뒷모습을 비춰줬다. 김재현의 경우 타석에 섰으나 양준혁의 경우엔 팀이 패배를 가만히 지켜볼 수밖엔 없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김재현과 양준혁, 두 사람의 엇갈린 가을

지도자의 길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 하다. 자신이 감독이 된다면 어떻게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김성근 감독과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스타일을 섞은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박수 한번에 특타 한번 2011년에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구단으로 연수 예정이었으나 사전 언론 노출 관계로 계속 일정이 지연되다 본인이 고사했다. 대신 과거 선수협에 같이 참여했었던 김재현이 간다.(LA 다저스 산하 싱글A 쪽으로)

2010년 10월 24일에는 대전 갑천 잔디구장에서 제 1회 '양준혁 전국 청소년 야구 대축제'를 개최하였다. 야구선수의 이름을 딴 야구 대회로는 한국 최초. 1천여명 55개 팀이 참가했으며 구장만 13개를 대여한 엄청난 규모였다. 경비만 약 5천만원 들었다고 하는데 양준혁은 이 비용을 사비로 지출했다. 본인 말로는 이 대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양준혁은 이때를 기점으로 지도자의 길을 일단 접고, 재단 사업을 시작한다. 2011년 7월 30일 2회 대회 개최. 이 때 삼성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지만, 유소년 야구 투자가 코치 업무도 중요하지만 유소년 야구 육성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삼성의 코치 제의를 거절했다고.#

겨울에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다.

2011년 6월 13일, 양준혁 야구재단이 출범했다.

은퇴 후에도 삼성 라이온즈 팀에 대한 조언을 꼬박꼬박 해주는 모양. 실제로 2012년 초반 삼성이 극도로 부진하자, 삼성 타자들의 눈빛이 죽어있고 야구를 너무 쉽게 보는 거 같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도 했으며, 5월까지 5할 못 맞추면 선두권으로 올라가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5할을 실제로 맞췄다.

2012년에는 김응용의 추천으로 한화 이글스에서 플레잉 코치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할 뻔 했다. 본인도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멘토리 야구단을 이유로 코치직을 고사했다고 한다.

4.1.1. 자선경기

2012년 부터 시즌이 끝난 후 매년 자선경기를 펼치고 있다. 입장료 전액은 멘토리 야구단을 포함한 야구 관련 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 취지도 취지자만 그 내용도 그야말로 예능감이 넘치는 덕분에 팬들에게 "올스타전 없애고 양준혁 자선경기로 대체하라"는 호평을 듣고 있다. 특히 2013년 자선경기의 내용은 그야말로 백미. 네이버에서 다시 볼 수 있으니 꼭 한번 찾아서 보기 바란다. 여담으로 이날 양준혁은 구원등판했다 아웃카운트 하나도 못잡고 6실점해 자진강판 당했다(...)

4.2. 트위터와 구설수

은퇴를 선언하고 트위터 열풍에 휩싸여 그야말로 실시간 트위터글로 야구팬들을 즐겁게 하고있다. 일부 팬들은 여자팬들에게만 답장해준다고 깠는데(…) 양준혁 본인이 이 때문에 잠시 울컥하기도 했다. 다만 슬픈 것은, 그 또래 남성들이 어린 자녀들의 사진이나 글을 쓰는 것에 비해 양준혁은 구단 후배들이나 혹은 성구회 회원(전준호와 송진우)과 찍은 사진 혹은 셀카 사진들만 올라온다는 것이…….

2010년 9월 11일에는 커플지옥 솔로홈런이라는 구호를 만들어 올렸다. 그만이 할 수 있는 구호이긴 하지만 아 양신이여….

2010년 준플옵 1차전때는 트윗하면서 경기를 보다보니 이게 어째 문자중계 비스무리하게 됐는데 반응이 매우 좋아서 2차전은 아예 자리깔고 문자중계(…) 야구팬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 현역으로 뛰던 최고 선수의 시각으로 경기 해설을 보게 되어 즐거워하기도 했다.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트위터에서 음주운전 사고에 연루된 이용찬을 옹호했다가 두산과 삼성을 제외한 6개구단 팬들에게 폭풍같이 까였다. 현재는 삭제된 상태. 또 고영민의 사인 훔치기 의혹을 제기했다고 이번에는 두산팬들에게 폭풍처럼 또 까였다. 트위터의 특성 때문에 조금이라도 문제되는 발언이 나오면 바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타이거즈 팬들과는 원래 척을 진 사이였지만 이런저런 구설수가 겹치면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스타로서의 성격은 퇴색되는 중. 그래도 삼성팬들에게 그의 인기는 절대적이다.

4.3. 방송 활동

4.3.1. 해설자

2011 시즌부터 SBS ESPN에서 야구 해설을 맡게 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지도자의 길로 가게 될 거라는 생각과는 다른 의외의 행보. 2011년 초 MBC FM 라디오에서 공익 광고를 했는데, 멘트는 훌륭한데 읽는 게 약간 어색함이 느껴져서 아쉽다. 말을 못 하는 선수는 아닌데 녹음시 긴장을 한 듯.

해설가로서의 평가는 대체로 좋지 않은 편이다. 초기에는 경험 부족이라는 실드거리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나아지는 게 없어서 문제. 야구팬들 사이에선 2011년 SBS ESPN에서, 아니 모든 스포츠 방송 중에서 최악의 해설자로 손꼽혔다. 특히 배기완 캐스터와의 조합은 최악으로 꼽힌다. 일단 특유의 발음과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해설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으며, 특히 경기 중 침묵이 너무 잦아서 중간중간 캐스터만 떠들고 있을 때가 많았다. 사실은 이 때 트위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설을 들으면서 양준혁의 트위터를 보면 실시간 업데이트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해설가 초기 시절에는 브라이언 코리선수에게 외국인인데 영리하다는 오해의 소지가 높은 발언을 하였다. 인종차별 의도는 없었겠지만 어휘선택에 문제가 있어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다행히 그 뒤로는 그냥 계속 영리하다고만 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 조심해야 할 사항. 참고로 브라이언 코리 선수는 대졸이다….

그 밖에,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겠지만 양준혁이 삼성 경기 해설을 맡으면 일방적인 편파해설이 돋보인다. 특히 4월 중순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가 가장 대표적인데, 당시 해설을 듣던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도 편파 해설 좀 하지 마세여라고 했을 정도. 상대방이었던 한화 팬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때문인지 이후로 편파해설은 좀 완화된 상황. 삼성 경기를 많이 맡지도 않는 편이고…. 그런데 예상 외로 롯데 자이언츠에는 친절한 편이었다고...


2013년 5월 13일,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양준혁의 해설에 대해 한 문장으로 잘 축약했다. "아는 건 많은데 말로 설명은 못한다." 그래도 2013년 들어서는 타격 메커니즘이나 투수 메커니즘, 특히 선구안 관련된 부분 등을 잘 풀어내면서 그 부분만큼은 괜찮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경상도 특유의 억양이나 사투리 등은 여전해 호불호가 갈린다.

2013 시즌 종료 후, MBC SPORTS+로 이적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났다. 덕분에 동 시기에 SBS ESPN으로 이적한 정우영 캐스터에 빗디어 정우영-양준혁 트레이드로 비유되기도 했다(...)

그런데 2014년 1월 15일 네이버스포츠 라디오볼 방송에 전화연결된 MBC 스포츠+ 이석재 PD는 아직 양준혁의 해설위원 영입이 결정되지 않았다. 현재까지 검토중이고 회의중이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후 한참동안 소식이 없다가 4월 8일부터 베이스볼 투나잇에 출연하고 있으며, 5월 18일 SK vs 한화 경기부터 해설에 투입되었다. 경기 중에 차명석 위원에게 .455의 타율을 기록했다는 것을 자막으로 띄워주면서, PD가 차위원 디스를 하기도 했다. 또한 예전 한밭야구장 이야기를 하니, 자료화면 나오니 '말만 하면 화면이 나온다'며 감탄했다.

사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양준혁 해설이지만 딱 한번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2013년 10월 5일, LG 트윈스가 두산 베어스를 꺾고 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따게 되자 박용택, 이동현, 이병규등 2002년 한국 시리즈를 겪은 고참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는데 이를 보고 양준혁이 본인도 울먹거리면서(!) "LG 선수들 오늘은 울어도 됩니다. 정말...얼마나 서러운 세월이었습니까."라고 코멘트를 하는데 극적인 승리와 함께 마침내 끊어진 비밀번호 + 동수옹의 은퇴 + 양준혁의 이러한 코멘트를 들은 쥐갤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며 이날만큼은 양신으로 칭송받았다.

4.3.2. 예능

해설뿐 아니라 예능 프로에서도 자주 모습을 비추었다. 야구는 뒷전이고 연예인으로 변신했다고 까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치를 하고 싶다고 해서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감독과 구단의 의중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양준혁의 경우에는 선수협 일로 팬심과는 달리 삼성 구단하고도 조금 껄끄러운 것이 사실이라 코치 인선을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니 코치 인선 기다리면서 손가락만 빨 순 없다는 점도 이해할 부분이다. 더군다나 삼성에서 은퇴 뒤 양준혁에게 전혀 코치직에 관한 언질조차 주지 않은 걸 생각하다면 양준혁만 깔 문제는 아니다. 선수 시절의 엄청난 실적에도 야구계에서 코치나 감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전직 선수들을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강호동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홈런 신기록을 세울경우 3루에서 홈까지 마이클 잭슨문워크로 들어올 거라고 약속했다.(후술) 또한 결혼 얘기가 나오자 세탁기만 들고 오면 된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약간의 개그 실력도 겸비하고 있는 듯. 정말로 그는 신이다.(……)

KBS 피선데이-1박 2일의 2010년 12월 12월 방송분에서는 강호동의 갑작스런 요청으로 서울에서 대구까지 급하게 내려와서 대구의 명사로 출연하여 자신의 집과 대구의 맛집을 알리기도 했다. 다음 회인 12월 19일 방송분에서는 대전까지 함께 이동하여 1박2일 출연진과 함께 복불복 등의 게임도 하였는데, 지는 바람에 강호동, 이수근과 함께 대전시청 앞에서 텐트 노숙까지 하였다.

2011년 4월경부터 남자의 자격 제7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이후 2012년 7월 하차. 하라는 결혼은 안하고! 남격에서 맞선 본 건 어떻게 된 건지

2011년 12월경부터는 불멸의 국가대표에도 출연하였다.

삼성팬들은 이렇게 예능을 하면 지도자 연수는 언제 가고 코치로 삼성에 복귀는 언제 하는 거냐거 양신 이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빡친 삼갤러들

2014년 7월부턴 TV조선 애정통일 남남북녀에 출연한다. 그리고 왜 결혼을 못했었는지 보여준다

5. 일상

홈런타자로써 괴력을 유지하는 비결의 하나는 스테이크 식단이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홈경기가 있는 날은 지인으로 부터 얻은 미군부대 출입증을 이용해 부대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곁들여 식사를 즐긴다고 한다. 그것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레어 스테이크를 즐긴다고 흠좀무...

그리고 '삼성 직원인데 삼성제품을 써 줘야지'라고하며 TV, 에어컨, 냉장고, 노트북을 모두 삼성제로 통일했다. 그리곤 계약직이라 직원할인은 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반쯤은 사실. 프로야구 선수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개인사업으로서 돈을 받고 그 팀을 위해 싸워주는 용병일 뿐이다. 외국인 선수만 용병인 것이 아니다. 실업선수와 프로선수의 가장 큰 차이가 그것. 아마추어인 실업선수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소속팀의 직원이지만 프로선수는 아니다. 그저 용병일 뿐. 아마추어선수는 취미, 프로선수는 직업 이렇게 말하는 건 사실 이제 옛말이라 무의미하다. 수많은 아마추어선수들을 누가 취미로 한다고 말하는가? 엄연한 직업이다. 오히려 아마와 프로의 구분은 이쪽으로 보는 것이 현재로선 타당하다. 용병인가 용병이 아닌가.

그런데 은퇴 이후 찍은 삼성카드[9] 광고는 마치 선수 시절에 직원 혜택이라도 받은 것처럼 찍었다. 삼성한테 내쫓겼는데도 삼성 광고를 찍어줍니다 사실 삼성이 아니라 이 사람이 쫓아냈지

6. 노총각

인터뷰에서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나이 얘기와 결혼 얘기.(…)

1969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며 팬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양준혁은 동자공을 익히고 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쩌면 결혼을 안 하는 것도 긴 선수 생활의 비결 아닐런지. 대부분 야구선수들이 결혼 후 안정을 찾고 기록이 상승하거나[10] 선수생활을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11] 독신으로 저정도의 커리어를 쌓았다는 것은 놀랄 부분이 많은 듯. 부모님께서 결혼 좀 하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이젠 포기한 상태라고. 만약 아들이 생긴다면 그 아들도 전설이 될 수도….

하지만 워낙 발이 넓어 오승환 여친을 소개시켜주었고 박한이에게도 지금의 부인을 소개시켜 주었다고…. 자기코가 석자인데…

자기보다 25살 어린 F(x)의 설리에게 반하기도 했다. 설리는 영원한 오빠 ㅋㅋㅋ라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설리 어머니와 양신의 나이가 동갑이라고.;;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그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유이에게도 마수(?)를 뻗었다. 유이의 부친인 김성갑 코치에게 오빠 동생 사이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김성갑 코치와 양준혁은 8년차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양준혁과 가장 관련이 깊은(?) 여자 연예인은 역시 한효주...이상형으로 그녀를 꼽았고 드라마도 그녀가 출연한 동이만 시청했었다고 고백할 정도다. 효주앓이 이 덕분인지 한효주와 화보촬영도 하는 등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편이다. 연예 찌라시들은 그 이상을 바라겠지만

2012년 시즌 이후 박재홍이 노총각인 상태로 은퇴하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나눌 이가 생겼다. 그리고 2013년 시즌 이후에는 삼성시절 그를 잘 따랐다던 이분도 노총각으로 은퇴...한 이후 결혼했다.

2014년 삼성과 한화의 2차전에서 한명재가 같이 해설중인 박재홍에게 "시즌 끝나면 엠스플에서 겨울 특집 프로그램으로 류택현, 양준혁, 박재홍 모아놓고 장가 보내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겠다"며 놀렸다.자기 해설도 아닌데 뜬금없이 까인 양준혁

아니, 그나저나 본인과 나이가 같은 모 팀모 감독은 결혼해서 이미 딸이 대학생인데 이분은 어째서....

7. 근황

2010년 10월 30일 김동재 코치를 돕기위한 일구회와 천무야와 자선경기를 가졌으며 여기서는 일구회의 타자로 출장했다. 송진우, 이종범, 박철순 등등 야구인들이 참석해 서로의 훈훈함을 선보였는데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장효조와 서로 등번호를 맞바꿨다. 장효조 코치의 등번호는 83번이다. 그것도 서로의 등번호와 맞바꾼 것. 참고로 일구회 유니폼은 간지. 그런데 같이 참석한 김봉연과 김시진의 등번호는 똑같다. 뭥미!

2010년 11월 5일, 금복문화사회문화상을 수상하면서 부상으로 한 테이블 가득한 소주를 받아왔다. 양준혁 선수 본인은 트위터에 수상도 기쁘지만 역시 소주는 참○주가 최고라고 평한듯. 그런데 여기에 일부 유저가 수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삼성에서의 선수생활에 큰 자부심을 가진 양준혁 선수에게 뜬금없이 삼성불매 드립을 쳐서 화제가 되었다. 해당 유저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급히 사죄하였으나 이미 퍼질대로 퍼져 고생 좀 한듯.

2010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홍명보 자선축구경기에 스트라이커로 선발출전했다. 오프사이드 개념을 전혀 모르는건지 계속해서 수비수들 뒤에서 방황하고(…) 상대팀 수비수에게 관광을 타기도 했지만 계속적인 양준혁 밀어주기 플레이 끝에 김병지 골키퍼를 상대로 한 골을 넣었다. 꼬발로…. 이당시 등번호는 10번.

2011년 2월 6일 코엑스에서 열릴 V-리그 올스타전에 선동렬, 순페이이순철, 홍명보, 우지원, 문경은 및 전직 배구 선수 김호철, 박희상, 김상우, 김세진, 신진식과 함께 배구 선수로도 출전하였다. 전직 운동 선수로는 최초로 대한민국 4대 프로 스포츠를 섭렵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등번호 10번을 달고 나왔다. 게다가 같이 출전한 이순철은 14번, 선동렬은 18번, 홍명보는 배구에서는 흔하지 않은 20번, 김태영은 7번, 문경은은 10번을 달고 나왔는데 우지원만 문경은과 번호가 겹쳐 5번을 달고 나왔다. 이 날 양준혁은 스파이크를 성공시키면 문워크 세레모니를 선보이겠다고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스파이크는 커녕 거의 공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 선수의 공격을 블로킹하다 네트 터치를 범할 뻔...

2011년 4월 1일 엠팍인증을 했다. 그것도 한국야구게시판이 아닌 불펜에.. 불펜에 글을 쓰려면 4주간의 대기기간을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양준혁은 뭘 한걸까? 있는대로 조공을 바친 삼갤만 허탈하게 됐다. 때문에 엠팍과 견원지간인 야갤에선 야갤에 인증안하고 엠팍에 인증한다고 분노. 매우 까였다. 40대의 어장관리. 아니면 지역드립에 실망했거나

그리고 4월 22일 새벽 야갤에도 인증을 남겼다. 하지만 보면 알 수 있듯이 엠팍의 댓글과는 달리 리플들이 하나같이 까는 리플들이다. 야갤러와 삼갤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며, 단적으로 예전엔 양준혁 혹은 양神 혹은 양甲 이라고 부르던 호칭이 '양씨', '양가', '양가놈' 으로 바뀌어버렸다.(…)

2012년 7월 20일 한일 프로 야구 레전드 매치에도 출전하였다. 4타수 1안타 2타점 1도루로 맹활약했으나 8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2루 땅볼을 친 뒤 1루로 뛰다가 오른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다행히 입원할 정도로 큰 부상은 아니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회복될 거라고.

8. 기타

위키백과 한국어판에서 2009년 2월 경 그 동안의 양준혁 관련 기사를 스크랩한 기사들이 출처로 사용되어지면서 알찬 글로 선정되었다. 위키백과에서의 알찬 글 선정은 양준혁이 야구 선수로는 유일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준혁과 관련된 사진들이 모두 지워지면서 한때 알찬 글 지정 해제 논쟁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알찬 글 해제는 면했다.[12]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평발이라고 한다.

머리 사이즈가 좀 되신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양준혁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교타자이자 삼성의 레전드이자 똑같이 10번달고 뛰던 장효조 코치도 머리 사이즈가 만만찮다.(…) 게다가 이승엽의 머리사이즈 역시…. 이 때문에 삼성팬들은 삼성에서 뛸 선수라면 머리 큰 좌타자여야 대성할 것이라고 하면서 젊은 선수들이 잘 쳐도 머리가 작잖아라며 좌절하는 모습도 간혹 보여주었다. 2008년 머리 큰 좌타자 최형우의 등장으로 삼성의 좌타대두라인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양준혁을 잇는 좌타 천재타자로 손꼽히는 김현수도 꽤 머리가 큰 편이다. 그럼 이진영은? 입쥐효과

존경하는 스승으로는 방황하던 LG 트윈스시절 단 1년 가르침을 받았던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을 꼽았다. 발려버린 김응룡

양준혁의 스탯은 고등고시에 문제로 만들어져 출제된 경력이 있다. 정확히는 행정·외무고시 1차시험인 PSAT의 2008년 자료해석영역[13] 열책형 25번(정책형 5번) 문제이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의 타격기록이 데이터로 제시되었다. 물론 실명을 거론하지 않고 '프로야구 선수 Y'라고 표기되었지만, 찍혀 있는 스탯의 범상치 않음으로 인해…[14] 당해 시험에서 야구팬 고시생들은 문제를 보면서 즐거워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합격 불합격 여부를 떠나서.(…)

한 때 국내 최고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해서 다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해외진출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렇다할 활약도 못하고 온거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야할까. 그리고 자신의 해외 진출에 대해서도 같이 언급했는데, 자기 자신은 실력이 안돼서 해외 진출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도 LG에서 FA로 풀린 뒤 삼성으로 가지 못하는 경우 해외진출을 고려했을 것이라는 인터뷰를 보면 단지 겸손한 의사표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선수협 파동과 더불어서 받아줄 팀이 없었다. 원 소속팀 LG도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지 않았고, 다른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당시 타격왕을 딴 타자임에도 말이다. 즉, 삼성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국내에서 야구를 할 수 없으니, 야구를 하려면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심지어는 이도 저도 할 수 없을 위기까지 몰렸다고 한다. 다행히 김응룡 감독이 강력히 주장해서 삼성으로 왔지만.

박재홍과 함께 올스타전 홈런 레이스 통산 우승 3회로 공동 1위다. 2006년엔 결승전에서 홈런을 하나도 못때리는 바람에 이택근이 고작 홈런 1개 때리고 우승하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본인 말에 따르면 투수나 피칭머신이 던지는 공은 살아있는 공이라 홈런을 때리기 어려워 컨택에 집중하지만 홈런 레이스 때는 죽은 공을 때리기 때문에 편해서 홈런이 잘 나온다고. 이 무슨 당연한 소리를..

최훈이 프로야구 카툰 연재를 시작한 후 최초로 한 회차를 모두 할애해 은퇴기념 카툰을 그렸다. '양신'을 떠나보내며 더구나 패넌트레이스가 끝나갈때 그렸다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일일연재가 아니라 매주마다 8개 구단을 모두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다. 이 후 카툰과 관계없이 양준혁을 따로 그려내면서 은퇴를 아쉬워했다. 그림 주소

9.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3 삼성 라이온즈 106 381 .341
(1위)
130
(5위)
27
(3위)
1 23
(2위)
90
(2위)
82
(2위)
4 69 .598
(1위)
.436
(1위)
1994 123 427 .300 128 21 1 19
(4위)
87
(1위)
62 15 63 .487 .386
(5위)
1995 125 438 .313
(4위)
137
(5위)
34
(1위)
1 20 84
(3위)
81
(2위)
8 83 .532
(2위)
.417
(3위)
1996 126 436 .346
(1위)
151
(1위)
33
(1위)
2 28
(2위)
87
(2위)
89
(2위)
23 88 .624
(1위)
.452
(2위)
1997 126 442 .328
(3위)
145
(5위)
32
(3위)
5
(5위)
30
(2위)
98
(2위)
94
(5위)
25 110 .627
(2위)
.455
(2위)
1998 126 456 .342
(1위)
156
(1위)
30
(6위)
1 27
(5위)
89
(5위)
80 15 92 .590
(4위)
.450
(1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9 해태 타이거즈 131 496 .323 160 23 1 32 105 96 21 87 .567 .421
(4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0 LG 트윈스 117 432 .313 135 30 2 15 92 79 15 78 .495 .415
(4위)
2001 124 439 .355
(1위)
156
(3위)
20 3 14 92 79 12 81 .510 .449
(3위)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2 삼성 라이온즈 132 391 .276 108 23 2 14 50 60 2 44 .453 .349
2003 133 490 .329
(4위)
161
(3위)
37
(2위)
2 33
(5위)
92 90 2 55 .614
(3위)
.395
2004 133 479 .315 151 30
(3위)
0 28
(4위)
103
(4위)
95
(2위)
5 102 .553
(3위)
.434
(4위)
2005 124 394 .261 103 15 1 13 50 61 10 67 .404 .367
2006 126 413 .303
(5위)
125 31
(1위)
1 13 81
(2위)
63 12 112 .477
(5위)
.445
(1위)
2007 123 442 .337
(2위)
149
(2위)
34
(1위)
0 22
(4위)
72 78
(4위)
20 98 .563
(2위)
.456
(2위)
2008 114 385 .278 107 16 2 8 49 49 1 53 .392 .364
2009 82 249 .329 82 16 0 11 48 51 3 67 .526 .464
2010 64 142 .239 34 6 0 1 20 10 0 31 .303 .371
통산 18시즌 2135
(1위)
7332
(1위)
.316
(4위)
2318
(1위)
458
(1위)
25 351
(2위)[15]
1389
(1위)
1299
(1위)
193 1380
(1위)
.529
(5위)
.421
(3위)

----
  • [1] 최초 창립멤버 3인
  • [2] 엄정화와 동갑이다. 게다가 염경엽 감독과도 동갑. 아이고...
  • [3] 물론 팀 선배 장효조가 타율, 출루율에서 앞서며 무려 5번의 출루율왕을 했던 만큼 역대 최고라고 말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타격왕 횟수는 4번이쯤되면 둘 다 인간이 아닌데으로 동일하며, 무엇보다도 350홈런을 때린 선수의 통산 BB/K가 1.41이란 점에서 장효조(이분은 통산 54홈런에 BB/K 1.75)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선수이다.
  • [4] 하지만 은퇴 후 각종 흑역사들이 발굴되며 엠엘비파크에서는 양아치, 양파. 디씨 등지에서는 양형, 양가놈, 양 얼굴의 사나이, 양쯔쯔, 양대갈비 등의 부정적인 별명이 순식간에 붙어 버렸다. 은퇴 후 성명 라이센스권과 관련된 문제로 게임 등의 매체에서 양준혁의 이름이 장남식장가놈으로 잠시 바뀐 사건 때문에 장남식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당장 이 항목도 장남식으로 들어올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양준혁/사건사고 항목 참조.
  • [5] 삼성을 선택한 데에는 양일환이 삼성 선수였던 부분이 크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다.
  • [6] 논란거리 정도가 아니라 지금 같은 상황이면 프로선수로 활동이 불가능할 지경의 행동이었다. 당시 프로야구 규정/단속이 느슨했던 것이 천운일 따름
  • [7] 당시에 입단 동기로 신인왕 경쟁자가 이종범, 박충식, 구대성, 이상훈이었다.
  • [8] 야갤 등지에서는 해설가 양준혁을 상징하는 감탄사(?)로 통한다. 뭔가 김빠진 듯한 억양이 포인트.
  • [9] 삼성카드 S클래스라고, 신세계, CJ삼성 관계사 혜택이 많다고 광고하는 카드였다.
  • [10] 대표적인 예가 2010시즌 이대호다.
  • [11] 이쪽의 예는 박찬호를 들 수 있겠다.
  • [12] 참고로 위키백과에 등록된 알찬 글에서 사진이 모두 없어지면 알찬 글 항목에서 해제된다. 그럼에도 양준혁 한국어판 문서가 알찬 글에서 해제되지 않은 것은 데뷔 시절 이래 자료가 빈약했으니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13] 그래프나 표 등의 데이터를 제시하고, 문제를 푸는 과목이다. 일반적으로 PSAT 3개 영역 중 평균 점수가 가장 낮다.
  • [14] 맞는 보기를 고르라는 문제였는데, 보기 ㄴ이 1997~2007년 중 Y선수의 타율이 0.310 이하인 해는 4번 있었다. 였다. 물론 틀린 보기로, 4번이 아니라 3번이다. 어?
  • [15]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가 2013년 6월 20일 문학 SK전에서 KBO 통산 352호 홈런을 기록하여 1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