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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last modified: 2015-04-05 10:48:32 Contributors

Contents

1. 의 종류
2.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
3. 경상남도 양산시행정동
4.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양주
5. 고대 중국의 지명
6. 통일신라시대의 지명

1. 의 종류

사전적인 의미로는 대한민국에서 동양주에 대비하여, 유럽/북아메리카 등에서 만들어지는 서양주를 의미하나, 일반적으로는 주로 서양의 스피리츠(증류주)를 지칭하는 말.

한국에는 술을 단순하게 세 가지 종류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맥주, 소주, 그리고 양주이다. 막걸리는? 물론 술 좀 안다는 사람들이 보면 웃을 말이긴 하지만 주로 소비되던 술의 종류이기도 한지라 분류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의외로 없기도 하다.

양주는 보통 위스키를 가리키는 말이긴 한데, 색이 갈색이고 맛이 쓰면 대충 양주로 퉁치는 분위기. 때문에 이나 위스키, 브랜디가 한 묶음으로 엮일 때가 많고, 무색인 보드카도 종종 여기에 들어간다.

이런 분류법은 술의 제조법이나 제조국을 무시하고 단순히 외국술이라는 이유로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제대로 된 분류법은 아니다. 제조법과 기원이 전혀 다른 술들을 한꺼번에 묶기 때문. 다만 세간에서는 양주 하면 '맥주와 소주가 아닌 뭔가 고급스런 술'을 엮어서 부르고는 있다. 서양담배를 다 양담배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양상인데 분류가 국내술과 가까워지고 대중성도 있는 하이네켄이나 버드와이저, 기네스 같은맥주는 수입맥주라고 따로 부르고 있고, 와인 등 분류가 확연히 다른 술은 와인으로 또 따로 부르고 있다.

위스키의 경우 폭탄주의 베이스로 많이들 쓴다.

2.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도시

양주시 항목을 참고.

3. 경상남도 양산시행정동

항목 참고.

여담으로 양산시에는 양주동 외에 소주동(...)도 있다.

4.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양주

楊朱. 기원전 440년? ~ 기원전 360년?.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 높이는 말로 '양자'(楊子)라고도 불렸다. '내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에 이익이 되더라도 하지 않겠다.'라는 말로 위아설(爲我說), 즉 이기 / 개인주의의 선구자였다. 묵자(墨子)의 겸애설(兼愛說)과 흔히 비교된다. 전국시대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었던지, 자집주에서도 '양주와 묵적과 같은 이단'이라고 심하게 비판받는다.

간혹 양주의 주장을 단순히 극단적인 이기주의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있는데, 당대는 부국강병의 미명하에 개개인에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양주는 이런 풍조를 비판하며 인간이 남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거나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이 스스로를 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나아가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당시의 실례에 비춰 보자면 "천하 대의를 위한 전쟁 그딴 거 너라는 개인을 도외시하고 실상은 지배층들의 잇속을 챙겨줄 뿐이니 개나 주고 그 시간에 네 터럭 하나나 더 챙기라"[1]는 말과 같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분명히 다른 개념이고 양주의 사상이 이기주의라는 것은 그의 사상에 대한 몰이해와 후대 권력층의 사상적 탄압 및 왜곡으로부터 비롯된 경향이 크다. 즉, 양주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혹은 공동체주의에 대한 개인 혹은 소수의 희생이 당연시 되는 당대 사회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일 뿐이다. 장자 역시 그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물론 이러한 사정과는 상관 없이 현실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양주 = 천하를 위해서도 제 터럭 하나조차 희생하지 않겠다는 웃기는 싸가지로 치부되었고, 아가리파이터들이 입씨름 한판 할 때 상대방의 주장이 좀 이기적이다 싶으면 "얼씨구 이 놈 이거 봐라 말하는 게 아주 양주 같네?", "너 그러다 양주 되겠다?" 등으로 나쁘게 활용하였다.

그래서 중국의 학자 이중톈은 그의 저서 중 '아산지석(한국 정발명 "이중톈 정치를 말하다")'에서 양주의 주장을 단지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아주 단편적이고 오해스럽게 그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고, 실제로 그의 뜻을 자세히 이해하다보면은 중국 고대 역사상 최초의 인권 개념에 대한 주장을 한 혁명적인 사상가로 평가한다. 하지만 그만큼 진보적이고 혁명적이였던 만큼 당대에는 그 주장이 유명하면서 유명세를 탔지만, 그 이후부터는 양주가 직접 남긴 저서는 하나도 남지 않았고 묵자맹자 등이 남긴 저서에서 같이 논쟁하면서 간간히 언급되는 정도로 양주의 후세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먼지 수준으로 사라져 버리고만다.

5. 고대 중국의 지명

후한 자사
기주 연주 청주 서주 양주 형주 예주 옹주 익주 유주

동탁, 마등 세력의 본거지였다.

6. 통일신라시대의 지명

양주 상주 무주 전주 명주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체계였던 9주 중 하나로 옛 가야의 영역과 신라 남부 영역을 포함하고 있었다. 수도 서라벌금관소경이 여기에 있어 신라시대의 경기도쯤 되는 위상이었던 듯하다. 이름과 달리 2번 항목의 경기도 양주시와는 관련없고 3번 항목의 경상남도 양산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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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러한 해석은 양주 본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았고, 양주의 제자 중 한 명이 양주에게 뜻을 물어보러 온 문객에게 설명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