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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가족)

last modified: 2018-08-10 01:44:46 Contributors

養子

친자가 아닌 자신의 자식. 입양아가 그 대표적인 양자라고 할 수 있다. 여아의 경우 양녀(養女)라고 한다. 이 문서에서는 양자와 양녀를 통합해서 다룬다.

Contents

1. 설명
2. 양자/양녀인 실존 인물
2.1. 양자
2.2. 양녀
3. 양자/양녀인 캐릭터
3.1. 양자
3.2. 양녀

1. 설명

현재는 입양한 아이라면 그냥 양자, 양녀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으나 사실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여기에도 구분이 있다. 일단 양자의 경우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동성동본의 일가친척집에서 데려온 남자아이에 한정되는 표현이었고, 자신과 혈연관계가 아닌 아이를 입양하여 자식으로 삼는 경우에는 시양자(侍養子)라고 했다. 시양자는 대를 이을 아이가 있더라도, 여자아이라도 입양이 가능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단, 법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관계를 명확히 따져야되는 상황에서는 양자와 양녀, 수양자와 수양녀를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도 양자 제도가 있었는데, 대를 잇기 위한 —좀 더 직설적으로는 제사를 지내줄 사람이 필요해서— 용도였으므로 자신의 자(子)와 항렬이 일치하는 근친의 남자만을 입양할 수 있었다. 원칙적으로 이런 경우 장남이 아닌 남자를 입양하도록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1] 이 법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그대로 내려왔기에 이승만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자세한건 이기붕 항목 참조). 1990년에 민법이 개정된 후로는 자신보다 혹은 만 아니라면 쌩판 남이라도 상관없다. 그런데 제한 사항이 저러니 또 재미있는 것이 친동생이나 동갑친구를 양자로 들일 수 있다.[2][3]

그리고 또 과거에는 자식을 낳지 못하고 요절하거나, 갑자기 자식손자들이 떼몰살 했다거나 해서 제사를 지내줄 아이를 사후입양이나 황혼입양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 왕실의 경우. 하지만 현재는 사후입양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입양 아이와 입양자의 나이 차이가 60세가 넘으면 입양이 불가능하다.

조선왕조에서는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왕자의 경우 형식적으로 왕비의 양자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와는 달리 서자라도 이런식으로 대를 잇는 것이 가능했다.

만약에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 양자로 입양됐는데, 갑자기 노년에 아들을 낳게 되더라도 먼저 입양된 양자에게 장자의 권리가 있었다.

반대로 파계귀종(罷繼歸宗)이라는 것이 있는데, 다른 집안으로 입양된 이후에 본가의 대가 끊기면 양자를 파양하고 복귀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유명한 사례가 있다. 조선 성종시대 강석덕이 동생 강순덕에게 차남인 강희맹을 양자로 보냈는데, 강희맹의 형인 강희안이 후사없이 죽어서 본가의 대가 끊겼다. 그러자 강희맹이 자신의 차남인 강학손을 형의 양자로 보내 대를 잇게 했다. 대소신료들은 "이미 입양된지 오래 되었고, 본가의 대는 강희맹의 차남이 이었으니 그대로 두는게 옳다" vs "강석덕은 강희맹이라는 친아들이 있는데, 본종을 양자로 대를 잇게 하는것은 옳지 않다" 라는 주제로 갑론을박했는데, 강희맹을 파양하고 본가의 대를 이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야구에서는 성적을 내지 못함에도 지속적으로 출전하는 선수를 일컬어 'xxx 감독의 양아들'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아래에는 입양된 실존인물과 가상캐릭터만을 다루고 있으므로, 양자 절차 등에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입양 참조.

로마 시대에도 양자제도가 굉장히 잘 발달되어 있었다. 당시에 귀족들은 당연히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이어주기를 원했지만 귀족이라고 자식을 많이 낳았다가는 후폭풍이 심했다. 일단 딸들은 시집보낼때 막대한 지참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아들들은 공직자가 되기 위하여 험난한 교육및 경력을 쌓아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집안의 위세가 높으면 높을수록 딸들은 지참금이 높아야 했으며, 아들들은 더 높은 공직자가 되어야 했다. 따라서 많은 귀족들은 자식을 많이 낳지 않고 2~3명 정도만 낳았다. 그런데 영아 사망률도 높은 시기였고 아이가 장성할 확률도 적었고, 그나마 장성한 아이가 아들이란 법은 더욱 없었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많은 귀족들은 자기 가문 수준 이하의 집안들[4]중에 아들이 두명 이상 있는 집에서 똘똘해 보이는 젊은이를 양자로 입양했다.

이렇게 보면 알겠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입양이 흔했던 것이 자녀들 육아 비용때문에 허리가 휘어서 못 한 것이다(...) 그리고 부자 귀족 가문들도 아들 하나 이상은 키우기 힘들었는지, 남은 아들들(...)을 기꺼이 남의 집에 입양을 보냈다. 물론 이와같은 경우는 양자관계를 구축하면 양쪽 집안끼리 관계는 더욱 돈독해져서 일종의 동맹관계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기꺼이 남의 집에 양자로 보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귀족들이 아이들을 많이 낳지 못했던 것은 육아비용때문이라는 점이다.

2. 양자/양녀인 실존 인물

2.1. 양자

2.2. 양녀

3. 양자/양녀인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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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양자

3.2. 양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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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성종예종의 양자로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건 의경세자의 차남이었기 때문이며, 고종효명세자의 양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차남이었기 때문이다. 선조도 3남이었기 때문에 명종양자가 되었다. 참고로 인조가 생부 정원군을 왕으로 추존한 이유 중 하나는 인조가 장남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송시열쫓아낸 광해군의 양자가 될 수는 없었으니 인조가 할아버지(!)인 선조의 양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 [2] 친동생의 경우 족보가 약간 꼬일뿐이지 예법에 아주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원칙은 예법에 어긋나는건데 마땅한 자식이 없고 아랫 항렬에 조카도 없을 경우(조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조카가 너무 어린 경우를 말한다) 동생 본인이 제사를 이어받을 후계자가 되는 사례가 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허용이 된 사례다.
  • [3] 검은사기 33권에는 일본에서는 자신보다 연상이라도 가능하다는 잘못된 정보가 나와있는데, 일본 민법 793조에 의해 연장자를 양자로 들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 [4] 당연하지만 자기보다 높은 가문의 집에 "댁의 아들들 중 하나만 입양하게 해줍쇼"라고 하긴 이상하니까(...)
  • [5] 정확히는 猶子라 하여 아들은 아들이되 계승권이 없다는 점에서 양자와는 구별되지만, 일본에서도 거의 양자로 취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