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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last modified: 2016-08-15 14:34:53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전세계 최강의 한국 양궁
2.1. 에피소드
3. 양궁 제조 업체
4. 리그베다 위키에 등록된 양궁 선수

1. 개요

Archery. 을 가지고 하는 스포츠 중 주로 일정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과녁을 맞추는 것으로 승부를 가리는 경기.

현재 올림픽에서는 리커브 보우를 사용하는 종목만 있다. 하지만 양궁세계선수권대회와 같은 다른 대회에서는 컴파운드 보우를 사용하는 종목도 있다. 한국이 양궁 종목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올림픽에 관계되는 리커브 보우 종목에서만 강세를 보이고, 컴파운드 보우는 미진했으나, 최근에는 컴파운드 보우 세계선수권과 아시안 게임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컴파운드 보우 종목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올림픽에서 대체로 미국 등 강대국이 우세한 수영의 경우 거리별, 영법별, 심지어 혼성편성까지 종목이 다양한 반면[1] 양궁은 남녀 단체전, 개인전 달랑 4가지뿐이다. 본래는 말타고 쏘기[2], 그냥 쏘기부터 활 종류별, 거리별로 주루룩 나눌 수 있으나 개인과 단체 두 종목으로만 나뉜다.

넷상에선 이를 두고 대한민국의 금메달 독식을 방해하기 위한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올림픽 초창기인 20세기 초반에는 거리에 따라 나누었으나 정식 종목은 아닌 이벤트성이었고 그나마 대회마다 종목이 달랐다.

양궁의 역사는 1538년 영국헨리 8세가 처음으로 대회를 열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후부터 전유럽에 널리 보급되어 1931년에는 국제양궁연맹이 조직되었다.

현대적인 의미의 양궁이 제대로 채택된 것은 1972년부터로 이 당시에는 개인전 한 종목만 있었다. 이후 84년까지는 단체전 없이 개인종목만 있었으나 1988 서울 올림픽부터 단체 부문이 생겼다. 즉, 올림픽 역사를 보면 메달수는 오히려 늘었고 줄인 게 아니다.[3]

또한 현대 양궁의 규칙은 원거리에서 시작해 거리를 점점 좁혀 나가며 맞추는 것이라 거리별로 종목을 세분화 하는건 어려워 보인다. 사실 일련의 규칙 변화는 전술한 바와 같이 현대적 양궁이 정립한 시기가 20세기 후반으로 비교적 역사가 짧은데다, TV 중계에 특화하기 위해 경기를 빠르고 흥미진진하게 유도하려는 의도이다. 이는 양궁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이다. '시합이 지루하다'는 평을 받고 TV 중계권 협상에서 힘을 못쓰는 종목은 자연스레 세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스포츠 자체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시행되던 궁도를 스포츠화한 것이다. 캐나다미국, 일본 등 외국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대중화가 이루어졌으나, 한국에서는 엘리트 체육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하여 선수 외에는 양궁을 즐기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다. 동호인 인구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 국궁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2. 전세계 최강의 한국 양궁

양궁이란 간단하다. 128강부터 우승을 향해 토너먼트를 펼치다가, 항상 한국이 이기는 게임이다.
흑형의 육상종목, 백인의 설상종목, 중국의 탁구, 일본의 슈팅게임, 그리고 한국의 e스포츠와 양궁
여자 아이돌도 할 수 있다는 평범한 기술, 퍼펙트 골드[4]
하느님이 보우(bow)하사 우리나라만 쎄
한국 국화는 무궁(弓)화다!
에디터 같은 걸 끼얹나 치트키 같은 걸 끼얹나
심지어 농구선수들도 한다. 양궁농구

올림픽 양궁의 경우, 여러나라가 출전하긴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한국 vs 중국, 한국 vs 이탈리아, 개최국가 vs 한국 혹은 한국 vs 한국으로 구도가 좁혀지는 경우가 많다. 위와 비슷한 경우를 가진 종목으로는 아시안 게임 한정으로 펜싱도 있다. 한국 대표가 무조건 양궁에서 우승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 대표가 되는 것은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5]

한국이 양궁에 강한 이유가 주변에 죽이고 싶은 새끼가 많아서 예로부터 한민족이 궁도를 즐겨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런 말은 반쯤 유머일 뿐이다. 물론 한국 무예사에서 활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나,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도 궁도를 즐기고, 동시에 주요 무예로 여겼던 만큼 이는 충분한 설명이 될 수는 없다. 동양에는 고구려주몽 이야기, 조선을 건국한 먼치킨군주 이성계, 그리고 삼국지에 나오는 오호대장군명궁으로 알려진 황충이 있으며, 서양에는 윌리엄 텔로빈 후드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한국 양궁이 처음부터 강했던 건 아니다. 1960년대에 故 석봉근 선생이 손수 교본 등을 제작하여 제자들에게 양궁을 가르친 것이 한국 양궁의 시작인데,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양궁은 당시 잘 나가던 다른 종목에 비하면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성적이 좋은 종목에만 대표팀이 참가하도록 했는데 그 때문에 초기엔 양궁 선수들은 대표팀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석봉근 선생의 아들이자, 당시의 에이스였던 동은 감독만 해도 선수 시절에는 올림픽에 참가한 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이런 호성적에는 혹독한 훈련과 선수들 스스로의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무한한 경쟁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훈련에 관해서는, 외국 감독이나 선수들이 한국 양궁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방한했다가, 선수들의 기초체력 훈련만 보고도 기가 질려서 돌아갔다고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전?현직 관계자들의 구전전설로 내려오는 3일내내 잠 안 재우고 걷기, 공동묘지 탐방, 목에 뱀을 걸고 뛰기 등등 정말 듣고도 믿겨지지 않는 훈련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다 소음 심한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도 온갖 욕설과 소음을 견디면서 훈련을 하는건 옵션이다.

한국 양궁의 호성적에는 양궁 경기를 주관하고 선수들을 관리하는 대한양궁협회의 개념찬 행보도 작용한다. 대한양궁협회는 1983년에 대한궁도협회에서 분리되어 창설되었다. 한국의 스포츠 협회 중 당수가 파벌 싸움이나 부정부패 문제로 끊임없이 구설수에 오르는데 반해, 대한양궁협회는 이런 문제를 거의 일으키지 않고 선수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매우 개념있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선수 육성 및 선발을 위해서 그토록 치열한 내부경쟁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협회의 노력으로 순수한 실력 이외의 다른 의혹들이 등장하지 않고 선수 및 지도자들이 선발 과정과 결과에 승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을 유지하고 향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양궁 국가대표는 보통 9월부터 종합선수권이라는 대회를 통해 11월에 남녀 8명, 총 16명을 선발하여[6] 동계훈련을 시키고 이듬해 세계대회 진출할 때, 이 8명의 선수들 중 평가전을 통해[7] 3-4명을 차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전년도 대표선수에서 탈락하는 선수가 반수 이상. 그 정도로 경쟁이 숨이 막힐 정도로 치열하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세계랭킹 2위이자,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기보배 선수가 겨우 10위를 기록하고 탈락했을 정도다!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8] 이를 뒷받침하는게, 94회 전국체전에서 기보배가 오다미에게 6대 0으로 패배했고, 오진혁은 우승했지만 7-3으로 이겨 스코어 면에서 상당히 고된 경기를 치른 편. 박태환이나 김연아가 전국 체전에서 상대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금메달리스트라고 해서 한국 양궁 바닥에서는 뭐든 보장받을 수 없다.

여자 양궁은 84년 올림픽부터 2004년 올림픽까지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석권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의 얼굴은 계속 바뀌었고, 2회 연속 올림픽 출전한 선수조차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즉 국가대표 단골멤버라는 말이 양궁에서는 없다는 말이다. 더욱이 놀랄만한 것은 금메달리스트들이 거의 고교시절에 금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실업팀 선수들도 뛰어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난 선수들이 고교시절부터 계속 배출되고 있다는게 실업팀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자극이자 부담이다.

덕분에 현재 한국 양궁 선수들은 표적 정 중앙에 있는 설치된 카메라를 박살내는 살벌한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9] 화살 안에 화살을 집어넣는, 로빈훗도 울고 갈 신기도 보여준다(이건 나중에 대회에서도 선보였다). 실에 걸린 콩을 맞춰보랬더니 콩을 매달아놓은 실을 반으로 가르는데 더 설명이 必要韓紙?[10]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여자단체 종목에서 6번째, 그리고 1988 서울 올림픽 이후에 단체전이 정식종목이 된 이후로 20년 동안 정상을 지키는데 성공했으며, 남자단체 종목 역시 3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개인 종목에서는 중국 응원단의 소음과 방해로 인해 7연패를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한국의 독무대를 모처럼 깼다면서 우승한 중국선수들의 활을 올림픽 기념관에서 전시했을 정도. 물론 한국에선 정당한 실력이 아니라면서 이를 갈았고, 결국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신나게 설욕했다.

이에 중국의 방해공작에 빡치신 정의선 회장의 지시로 한국 양궁팀은 또 중국의 홈그라운드인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습경기를 겸한 소음훈련을 9월 25일 잠실야구장에서 치루기도 했다. 당일 홈경기를 주관하는 LG 트윈스 측에서는 "조금 일찍 경기장에 오셔서 양궁 대표팀의 연습경기를 보시면서 많은 함성[11]을 보내주시면 태극 궁사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고 밝혔다. 게다가 부부젤라까지 이용했다고.기사
그 밖에 경마장에서도 훈련을 하였고 무수한 야유와 성희롱에 가까운 폭언을 고의로 들으면서 훈련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결국 이겼다.

여담이지만, 한국 양궁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다 보니, 한국 양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외국에서 국내 양궁 감독들을 초빙해 가는 일도 제법 많아졌다. 그런 탓에 경기 중에 동창회(?)가 벌어진 경우도 많다. 예를 들자면, 2012 런던 올림픽 남자부 경기에서 4강전을 치룬 한국, 미국, 이탈리아, 멕시코 감독이 모두 한국인이었다. 특히 세계랭킹 1위인 미국을 이기고 우승한 이탈리아를 맡은 감독이 석동은이다. 그러니까 높은 확률로 서로 동창이나 선후배, 혹은 사제관계가 된다는 이야기다. 축구로 치면 월드컵 4강에 든 4개 팀 모두 감독이 브라질 출신인 셈이려나?

2012 런던 올림픽을 하루 앞두고 대표팀 양궁 감독인 오선택 감독이 망언(?) 아닌 망언을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 시험이 어려웠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부를 잘하니까요 결국 여자 단체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정말로 비가 내리면서 악천후에 7, 8점을 쏘는 상대팀들을 도륙내버렸다.

그리고 2012 런던 올림픽 예선에서 임동현 선수가 세계 신기록을 경신했다. 문제는 이 임동현 선수의 시력은 0.2 정도. 그래서 어떻게 쏘느냐고 물었더니 '감으로'라는 대답이 돌아와 사람들 턱을 빠지게 했다. 다만 7월 31일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시력에 관한 건 약간 과장되어 알려진 것으로, 시력이 낮은 건 맞는데 원시라서 과녁판은 잘 보인다고 한다.그럼 겨냥할때 가늠자는 어떻게 보는겨?? 역시 감인가??

2012 런던 올림픽 한국시각으로 7월 30일 새벽 여자 양궁 단체전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가 중국을 210 : 209 1점차로 누르며 금메달을 가져갔다.한중일이 순서대로 금은동 이로써 88년부터 지켜온 여자 양궁 단체전 금메달을 이번에도 가져가며 7연패를 달성했다.

사실 주로 한국 양궁이 강한것은 주로 여성 양궁쪽에서 많이 나오는 말이다. 물론, 남자 양궁도 굉장히 강력하긴 하지만 올림픽 단체, 개인 금메달을 석권하는 일이 많은 여자 양궁에 비해 남자 양궁은 올림픽에선 주로 단체전에서 빛을 보았다. 그것도 그럴것이, 남자 양궁은 전세계적으로 전력이 상향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좋게 여자 개인전 금은동을 나눠가지던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선 기보배가 고전끝에 금메달을 따내자, 한국 양궁 역사의 산증인인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불십년을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일은 권불십년이라기 보단 한국양궁의 노하우가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감독들에 의해 수출되어 실력 상향 평준화가 일어났다는게 옳은 말으로 보인다. 실제로 위에서 썼듯이, 단체전 4강진출 팀 감독 모두 한국인 감독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니 충분히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일이다.

2013년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양궁 월드컵에서 한국은 그동안 비주류로 여겨졌던 컴파운드 양궁에서도 금2, 은1, 동2개를 따냈다! 한국 양궁은 컴파운드에서는 부진해서 반쪽짜리 강국으로 여겼던 서구권이 충공깽에 빠졌다 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컴파운드 분야에서 금 2개(여자 단체, 여자 개인)와 은 2개(남자 단체, 여자 개인)을 차지하면서 이젠 컴파운드까지 싹쓸이 할 기세.

2.1. 에피소드

퍼펙트 골드의 충격이 대단했기 때문에 양궁 하면 박성현을 쉽게 떠올리지만, 국내대회에서 항상 메달을 독식하지는 못한다. 국가대표 단골 멤버인 윤미진 선수는 메달 하나 없이 끝나는 대회가 많을 정도다. 심지어 윤미진 선수는 전국 체전 출전을 위한 경기대표 선발전에도 뽑히지 못할 뻔했다(경기도에는 수원시청과 여주군청 두 팀이 있어서 대회를 통해 4위 이내 선수까지만 전국체전에 출전할 수 있다). 세계챔피언이 국내대회 출전을 걱정해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박성현은 대한민국 양궁이 배출한 무수한 궁사 가운데 레전설급도 아니다. 1979년 세계선수권 5관왕[12] 김진호, 신궁(올림픽 금4 은1 동1) 김수녕 이들 선배가 워낙 사기적인 업적을 남겨서... 사실 한국 양궁에서는 최소한 자기 이름을 딴 국제 양궁장 하나쯤은 있어야 레전드로 불릴 수 있다 카더라. (예천군에는 진호국제양궁장이, 청주시에는 김수녕양궁장이 있다.[13])

아시안 게임이 열릴 당시 한국양궁팀의 1군이 결승전에 전원 진출하였는데 동시기에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작은 규모의 국내대회가 열리자 1군이 모조리 국내대회에 참전하기 위해 이탈, 아시안 게임을 2군들만 가지고 진행했는데 상대방을 압도적인 차로 깨부수고 점수누적기록도 신기록 세우며 우승했다.

90년대 중반 프랑스 양궁팀하고 같이 합숙을 하게 되었는데 막 양궁팀에 들어오게 되어 참관을 목적으로 합숙보조팀에 끼어온 (전력외인) 듣보잡 후보가 상대팀의 후보부터 주전까지 싸그리 박살낸 일이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중학교 3학년부터 실업팀 선수들 가운데 일정 점수 이상을 한 번이라도 기록한 선수들을 모아 놓고 뽑게 되는데 중학교 3학년 선수가 선배들을 제치고 국가대표가 되어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국체대 선수인 임동현 선수는 고교 1학년때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고, 고교 2년생 이특영 선수는 고1 때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여 개인전 은과 단체전 금을 따기도 했다.

1992년 국가대표였던 정재헌 선수는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국가대표 영구제명의 징계를 받았는데 징계가 풀린 뒤 2005년 무려 13년이 흐른 뒤에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여 금을 획득하며 건재를 알렸다. 하지만 정재헌 선수는 2006년에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꼴지에 가까운 성적으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2005년 전국체전에서는 그간 전국대회에서 이름조차 내밀지 못했던 신성우라는 선수가 4관왕에 오르기도 했으며, 국내 전국체전 기록이 세계 신기록보다 높게 나오기도 한다(전국체전은 국내경기여서 공인세계기록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전국체전 개인전 신기록이 12발에 120점 만점이다. 한 마디로 그냥 다 10점을 쐈다는 소리.

양궁 국가대표되면 메달이 확정되는 곳이 한국이다. 단지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욱 어려울 뿐이지.

3. 양궁 제조 업체

양궁에 쓰이는 활을 만드는 대표적인 제조업체 중에 윈앤윈과 삼익 스포츠가 있다. 삼익 스포츠는 삼익악기에서 독립해 나온 업체로, 과거에는 야마하에서 나온 활이 유명했지만 지금은 버로우한 상태.

원래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경기에 쓰이는 활은 외국산으로 남자는 주로 미국 호이트의 활을, 여자는 일본 야마하의 활을 사용했다. 그러나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대회를 맞아 미국은 호이트 활 공급을 중단했고 덕택에 남자 부문에서는 미국이 단체 개인 금메달을 전부 가져갔다. 이에 빡친대한민국 양궁협회에서 초등/중학교 외국산 활 사용을 금지시켰고 국내 활 제조사가 이때부터 성장하게 되었다.

외국 선수들은 아무리 해도 한국 양궁을 따라잡을 수 없게 되자 한국 선수들의 유니폼[14] , 걸음걸이, 스트레칭 동작까지 따라했고 한국인 코치를 영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사용하는 활의 종류까지 따라하게 되자 자연히 외국 선수들도 한국산 활을 쓰게 되었고 현재 일본 야마하는 활 사업을 접었으며 호이트는 점유율을 절반 이상 빼앗겼다. 금메달 한번 따고 떡실신 조만간에 한국 메이커인 삼익, 윈앤윈이 시장을 거의 독점할 것으로 보였으나, 국내에서마저도 호이트사의 활을 사용하는 선수가 많이 있는 상황이라, 아직까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 리그베다 위키에 등록된 양궁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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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를 들어 단거리 자유형 선수면 100M, 200M, 400M에 혼계영까지 최소 4관왕을 노려볼 수 있다. 여기에 접영까지 곁들이게 되면 두배... 수영에서 괜히 5관왕, 7관왕이 나오는게 아니다. 지나치게 세분화된 종목 편성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 [2] 다만, 이것은 조금 무리일 듯 싶다. 부상의 위험이 크다.
  • [3] 단, 이건 올림픽에 한정한 이야기이다. 양궁 세계선수권대회 같은 경우는 1970년대까지는 거리별로 종목이 세분화되어 있었다. 김진호선수가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
  • [4] 소현과 재경이 2014년, 정화가 2015년 아육대에서 렌즈를 박살냈다.
  • [5] 심지어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퇴출론에 대하여 어느 야구 사이트 자게판에서는 양궁을 한국이 잘한다고 퇴출한다는 소리 나오느냐? 이런 의견도 여럿 올라오기도 했다. 물론 거기서도 "양궁은 하는 나라 많잖아? 누가 어디가 너무 잘해서 퇴출한데? 야구는 하는 나라가 너무 없어서 경기장조차 제대로 못 만드니 아시안 게임 퇴출론이 나오는 거라 양궁이랑 다르거든!"라는 등의 반론이 가득 올라왔지만...
  • [6] 보통 9~11월 사이에 2~3번의 과정을 거친다.
  • [7] 이 평가전도 보통 3회 이상 치뤄진다.
  • [8] 참고로 이 조건은 모두가 동등한 조건에서 치뤄지기 때문에 눈이오나 비가오나 같은 날짜에 반드시 시행된다.
  • [9]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 2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1개,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1개.
  • [10] 은 결국 2차 시도에서 맞췄다. 양궁에서도 까이는
  • [11] 야유, 괴성, 호루라기, 막대풍선, 나팔, 짝짝이 등도 환영한다고 한다.
  • [12] 여자부 6개 금메달 가운데 5개를 혼자 휩쓸었다. 대한민국 양궁 전설의 첫 페이지를 연 선수. 아쉽게도 동서 이데올로기 대립이 심했던 시기라 올림픽 무대에서 진정한 세계정복을 이룰 기회는 없었다. 전성기를 지난 뒤 출전한 LA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전부. (이때 한국 양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김진호가 딸거라고 누구나가 예상했던 때, 당시까지 무명이었던 서향순이 갑툭튀해서 금메달을 대신 딸 때부터, 얇지만 두터운 선수층에서 나오는 한국 여자 양궁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 [13] 이 외에 광주 염주동에 서향순양궁장이 있으며, 2015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양궁장으로 쓰일 곳이 서향순·기보배 양궁장으로 이름붙여질 예정이다.
  • [14] 심지어는 2012 런던 올림픽때 외국선수들이 한국산 가슴보호대를 차고있었는데, 그게 여성의류 쇼핑몰 홍보용으로 상당히 소녀소녀한(...) 디자인이라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다. 아래 사진의 우크라이나 선수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