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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훼

last modified: 2015-11-04 16:40:22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야훼라는 개념의 변형
3. 이름과 호칭에 대하여
4. 구원
5. 특징
5.1. 전지전능
5.2. 만들어지지 않은 신
6. 성향
7.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
7.1. 주의점
7.2.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리처드 도킨스의 견해
7.2.1. 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박
7.3.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근본주의 신학의 교리적 견해
7.3.1. 이에 대한 비종교인들 및 진보진영 개신교인들의 반박
7.4.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일부 진보신학 및 진보적 복음주의 신학의 교리적 견해
7.4.1. 이에 대한 비종교인들의 학문적 반박
7.5.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
7.5.1. 이에 대한 비종교인들의 반박
7.6. 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비종교적/학문적 인식
8. 창작물에서의 야훼
8.1. 여신전생 시리즈에 등장하는 존재
8.2.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8.3. 세인트 영멘
8.4. 존 로널드 루엘 톨킨 세계관의 일루바타르
8.5. DC 코믹스 세계관의 창조주 프레젠스
8.6. 프로메테우스(영화)
8.7. 블리치
8.8. 모게코의 캐릭터 엘룩스
9. 참고 항목

1. 개요

히브리어 : יְהֹוָה 또는 יהוה(Tetragrammaton)
로마자 : YHWH
재구성된 로마자 표기법 : Yahweh[1]



야훼가 등장하는 고대의 동전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의 아브라함교의 본래 이름.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이라는 명칭 대신에 야훼 혹은 여호와라고 부르기도 한다. 야훼 혹은 여호와는 신의 호칭이 아니라 고유 이름이며 다곤, 바알 등과 함께 고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믿은 이었다.

벨론마르두크수메르의 엘이나 나안의 다곤의 숭배는 지금은 사라졌으나 가나안의 야훼 숭배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세계적인 종교를 이루고 있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야훼를 운운하는 걸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자기들의 신을 멋대로 도용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훼니 여호와니 하며 이름을 발음하는 것도 유대인들한테는 금기라서 더더욱 분노한다고 한다.[2][3]

2. 야훼라는 개념의 변형

유대인에게 있어서 본래 야훼는 존재론적 표현이라기 보다는 현상적 표현에 가까웠다. 존재라는 말은 그냥 있다 없다 같은 표현이 아니라, 리스 철학적인 표현으로, 현상을 초월한 본체계에서 영원불변하게 있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신의 존재론적인 정의는 모두 중세 이후의 개념이다. 즉 바꿔 말하면 애초에 신의 개념이라는 것 자체가 다른 민족신들과 같은 현상을 지배하는 신이었고, 이는 주신인 야훼 역시 다르지 않았다.

과거 유대인에게 있어서 야훼는 창조하는 힘 또는 창조의 원리 정도로 여겨졌으며, 존재론적으로 유일하게 존재하는 신이라는 관념도 없었다. 고대 유대인에게 유일신이라는 말은 유일하게 믿고 따르는 이라는 뜻이었다. 허나 이말도 어폐가 있어서 사실상 유대교는 다신교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유일한 왕좌" 정도가 적합한 표현으로 볼수 있는 것으로, 정리하면 "부족신들의 왕"(만군의 왕)이 본래의 그 "아도나이"라는 존재, 혹은 "엘 샤다이"라고 불리우던 존재의 근본이라고 할수 있다.

유대인이 야훼라는 신을 민족신으로 받아들인 것은 전설상의 대략 모세 이후이다. 그 전까지는 유대인들은 제각각 다른 신을 믿고 있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가문도 원래는 달의 신을 믿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 아버지가 우상제작자였다) 아브라함만 특이하게 야훼를 믿은 것.

그러니까 전설상의 모세라는 사람이 등장하면서 유대교가 사실상 시작된 것이다. 유대인은 야훼만 믿기로 계약한 대가로 가나안 을 받았다. 물론 가나안 땅은 빈 땅이 아니었지만... 끔살 문제는 이것에 대한 실질적인 역사인데, 사실상 이 당시에 히브리인이라는 집단은 사분오열 콩가루 난민집단이었고, 신앙이나 신이 난립하기 때문에 집단내에서 제정일치 사회의 특징상 종교를 통해서 통합을 주장하는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름의 으뜸이 되는 주신(지배 부족의 신)을 정하고 그 주신의 지배하에 유지되는 부족 연합 체제를 세워 민족공동체를 유지하는(사실 민족이라고 보기도 뭐하지만...)방식이 쓰여진 것.

그러나 모세 당시의 야훼 개념은 현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야훼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야훼의 걸음소리를 아담이 들었다거나[4] 야훼 이외의 신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 등[5] 현대인이 생각하는 절대자로서의 유일신 보다는, '이집트의 신들보다도 강한 유대인의 신'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유대인들은 차츰 '강력한 신'이 아닌 '유일한 신'으로서 야훼를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막상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로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가나안의 신들을 믿게 되었다. 가나안의 주신(主神)이 그 유명한 바알이다. 야훼는 사막에서 투쟁하는 신이었기 때문에 농경지에서 농사 짓고 사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야훼보다는 바알을 더 잘 섬기며 살았다. 바알은 풍요로운 농토의 신이었고, 바알 신앙은 성적으로 매우 자유로워서 온갖 율법으로 성욕을 억압당했던 유대인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유민들의 경우는 대책없이 낳아서 불리는 것, 소유권의 문제에 대해 민감할수 밖에 없지만, 농경사회는 낳아서 불리는 것이 바로 노동력이므로 당연한 일이었겠고, 이런 추세는 부족간 인구통제에 대한 기득권층의 관리 문제를 야기하게 되므로 시대적인 패러다임에 따라서 이런 저런 조정이 가해지게 된다.

초기에는 바알에 대한 적개심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이 외적의 침입을 계속 받게 되면서 일종의 극우적인 야훼근본주의가 생기면서부터 바알은 철저히 악마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런 경향이 발생한 것은 바빌론 포로 이후이다. 즉, 그전까지는 왕정 시대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스스로의 제정일치 플롯에 맞춰서 중앙 집권화를 기도하는 형태로 진행된 일신교화였다면, 이후에는 부족보다 더 큰 형태의 그룹과 맞서는 형태가 되었기 때문에 이교도에 대한 배격이 진행되고, 심지어는 이교도가 아닌 경우도 정치적 의미에 따른 이단화, 분쟁과 차별이 일상화 되는데, 사마리아인이 바로 그 예이다.

이 때문에 구약에서 바알은 철천지 원수로 나타나는 것이다. 야훼 근본주의자들은 바알신앙을 타락으로 생각하며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바알신앙을 박멸하기 위해 노력했다. 바알을 믿는 것은 야훼만 믿기로 한 율법을 위법하는 큰 죄였기 때문이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툭하면 절에 가서 땅밟기를 하든가, 문화재를 훼손하고 단군상을 훼손하는 등 타종교를 적대시하는 행동은 모두 구약에서 영향력을 떨쳐버리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사실 구약의 당대에 야훼 신앙은 나안 토착종교와 결합된 상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야훼가 아셰라와 부부로 여겨지기도 했던 . 1978년 시나이 사막에서 발견된 기원전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항아리에는 '야훼와...그의 배우자 아셰라'로 해석이 되는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그 밖에도 많은 종류의 유물이 '야훼와 아셰라'를 함께 모시고 있어서, 야훼가 아셰라를 '배우자 신'으로 여기며, 아예 바알[6]과 동일시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성경의 문헌 묘사도 바알, 아세라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믿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고고학적 조사는 바알 신앙에 큰 영향을 받아 야훼라는 신의 속성도 점차적으로 바뀌었으며, 바알과 '동일시'되거나 '융합'되는 형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7]

흥미로운 것은 이스라엘에서 고고학 발굴중에 이러한 고대 유대인들의 다신교 신앙에 대한 증거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잽싸게 발굴지를 묻어버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고학자 목에는 칼이 안 들어간다냐?? from 극우 유대교 근본주의자

바알은 를 내리게 하는 풍요의 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신학적으로 야훼를 더 높이기 위해 야훼를 초자연적인 신으로 설정하게 되었는데, 결정적으로 알렉산더가 서아시아를 휩쓸게 되면서 야훼 신앙은 그리스 철학,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플라톤 철학과 만나게 되었다. 야훼에 플라토니즘적 존재론이 들러붙으면서 온갖 떡밥이 생성된 것이었다.

야훼는 유일신이며 창조자이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야훼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나중에 라톤 철학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야훼는 영원불변의 절대적 존재인 우주의 제1원리 같은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을 초월하는 절대 존재가 질투를 한다는 둥, 분노를 한다는 둥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논쟁이 벌어졌다. 초월적 존재가 왜 인간처럼 사사로운 감정을 보이냐는 것.

일단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플라톤 철학이 대세였기 때문에 여기서 비롯된 질문, "왜 이 이 세상을 이 따위로 만들었나?" "온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가 왜 유대인만 편애하고 타민족은 잡아 죽이냐?" 하는 등의 질문이 무시될 수는 없었다. 반면 플라톤 이후에 나타난 레니즘 철학(스토아 학파피쿠로스 학파 등)은 플라톤의 불생불멸적 이데아를 수용하지 않았고, 심지어 유물론적인 경우까지도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교가 이런 헬레니즘 철학과 연결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그리스도교 신학이 나올 수가 없다.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문제가 되는 그리스철학은 플라톤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중세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를 정통으로 삼는데, 전자는 플라톤 철학을 후자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가 신학 체계를 만들었다. 하여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과연 예수가 플라톤 주의자였는가?라는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수의 아버지가 야훼와 동일한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토마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그리고 나의 것은 나에게."라고 말한다. 로마 황제와 야훼를 동일선상에 놓고, 자신을 따로 말하고 있다. 토마스 복음서의 내용은 현존하는 4복음서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대충 영지주의 문서니 하면서 넘어갈 수가 없는 내용이지만, 이게 원전에 더 가까운 자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확답할 수 없다.

논리적으로도 아버지라는 말 자체에 인격성이 있는데 이러한 인격신은 그 자체로 제약성을 띠기 때문에 절대적인 유일신일 수 없다. 예수가 말하는 신의 절대성은 '존재의 절대성'이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의 절대성'이었다. 예수의 가르침만 봐도 예수의 아버지는 구약에 나오는 야훼와는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애초에 신을 개인적인 아버지로 규정한다는 것부터가 구약과 매우 다르다. 이건 모세오경이든 후대의 선지자 예언서든 마찬가지의 문제. 또한 전술/후술하듯 구약에서 야훼는 본래 유대 민족의 주신이었다. 출애굽기만 봐도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나는 여호와 너희(유대인)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8]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해석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신구약 중간 시대의 변천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본다. 메시아가 하느님의 아들로 올 것이라는 전승은 예수 출현 훨씬 이전부터 에쩨네파 공동체에서 내려오던 전승이었다.[9] 또한 예수 역시도 구약을 인용하였으며,[10]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시편의 기도문을 말하기도 하였다는 점, 야훼의 성전에서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발언한 점(루가 2:49, 공동번역성서) 등으로 볼때 예수가 야훼 이외의 신을 섬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예수가 말하는 야훼 신앙이 구약시대의 해석과는 어떤점이 다른지는 논의할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가장 큰 이유이다.

물론 이는 기독교의 관점이고, 예수를 유일무이한 메시아로 보는 관점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의 시각에서 예수는 그저 거짓 예언자일 뿐이며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예언자 중 하나인 예수를 신격화하는 잘못된 행위이다.[11]

3. 이름과 호칭에 대하여

원래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YHWH라고 쓰는데, YHWH, JHVH, YHVH 모두 히브리어를 독일어, 영어로 옮긴 단어이다. (의미상 차이는 없다) 신의 진짜 이름은 테트라그람마톤(τετραγράμματον)[12],즉 신성한 4문자라고 불리며, 불려서도 기록되어서도 안 되었기 때문에, 읽을 때는 아도나이(나의 주님)라고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고전 히브리 문자에는 모음을 표시하는 기호가 없기 때문에, 세대가 지나며 결국 어떤 모음을 붙여서 읽는지 잊어버렸다고 한다[13].

그래서 후세 학자들이 YHWH를 어떻게 읽는지 연구한 끝에 여러 학설이 나왔다. 한 때는 '야호바(Jehovah, Ye(a)HoWaH)'라고 읽는다고 받아들여졌으나 이는 잘못된 독음이다. 르네상스기에 신의 이름을 음역해 보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언어학적 성과가 없어서 재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네 글자(YHWH)에 히브리어인 아도나이(Adonai)의 모음을 끼워넣었을 뿐이다. 야호바를 영어식으로 읽으면 '여호와'[14]가 되며, 이를 한국 개신교에서 받아들였다. 덕분에 개역성경이나 역개정판성경은 죄다 여호와로 기록되어 있다.

YHWH의 원래 발음에 대해서는 야흐오, 야흐와 등의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야웨 또는 야훼라고 읽는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다.[15][16] 다시 말하자면, 학자들간에 YHWH의 첫번째 모음이 'a' 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으나 두번째 모음이 'e' 라는 데에는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아무튼 19세기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성서학자들은 야훼라는 이름을 다시금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그리스어 필사본에서는 YHWH를 야훼로 발음하고 있다고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신자가 전례나 기도 중에 신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에 맞추어 가톨릭 성경 역시 그 부분을 주님(dominus, κύριος) 등으로 치환하여 재판하였다. '야훼'의 발음이 언제든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질 여지가 남아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10계명의 계명[17]에 충실하기 위해서이다. 다만 가톨릭 신자가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개신교의 개역 성서에서는 옛날부터 사용했던 이름인 '여호와'를 존중하여 개정판에도 그대로 수록했으나, 표준새번역 및 새번역 성경에서는 YHWH를 모두 '주'로 치환하였다. 이는 칠십인역 및 불가타, 루터 독일어역, 제임스 흠정역 등이 모두 그 4글자를 '주'로 치환한 교회의 전통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물론 YHWH와 결합된 이름인 여호와 이레, 여호와 닛시, 여호와 샬롬, 여호와 샤마 등에서는 그냥 개역 성서의 표기에 익숙해진 독자들을 고려해 여호와로 표기했다.[18]

탈출기 3장 14절에 나오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을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쉘 에흐예"('ehyeh 'aser 'ehyeh)라고 읽는데, 보통 야훼라는 명칭이 여기서 도출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히브리어 동사 어근 '하야(hyh/HaYaH)'는 '떨어지다', '생기다', '되다', '생존하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을 토대로 야훼라는 이름을 해석하면 '나는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또는 '나는 존재하게 되는 자를 존재하게 하는 자이다.'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야훼는 미완료 동사형이며, 따라서 그리스 철학의 '본질'의 개념이 아니라 '현상적' '기능적' 개념에 가깝다.

테트라그람마톤에 해당하는 Y, H, W ,H 이 4문자를 게마트리아로 풀면 72가 나온다. 큿... 같은 계통인 솔로몬의 72악마와도 연관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천주교정교회, 성공회하느님, 대부분의 개신교하나님이라고 호칭한다. 최초로 천주교 교리서를 동양 언어로 집필한 마테오 리치가 '신'을 대체하기 위한 표현으로 동양권 내의 문화에서 적절한 표현을 찾던 중에(...) 불교의 제석천을 의미하는 '天主'를 사용했으며,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도 '천주님'이라고 불렀다. 이 번역덕에 많은 신자들은 '그리스도교의 YHWH'를 상제(上帝), 제석천 등의 관념과 유사하게 이해하였고, 이것은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여 한국 대중들이 별 거부감이나 이질감 없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게 하는데 공헌했다.[19]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면, 찬송가에서 하느님이나 하나님을 빼고 야훼님이라고 불러보자. 중동 사막 땅에서 온 이교도 신앙에 대한 이질감이 느껴질 것이다.현지화의 좋은 예 이후 개신교가 한국에 유입되면서, 가톨릭을 따라하여 역시 '천주님'으로 절대신을 호칭한다. 문제는 당시 개신교를 보는 가톨릭의 입장은, '빼도박도 못하는 이단놈들'이였고, 당연히 개신교쪽과 가톨릭쪽의 갈등이 있었다.# 이후 개신교측에서 '천주님'이라는 호칭을, '하나님'('나'는 아래아로 표기)으로 변경했다.[20] 그런데 이 번역 역시도 심히 적절한지라(...) 이후 한국 가톨릭에서도 이 번역을 받아들였다. 다만 이 당시에는 아래아의 발음이 'ㅏ'에서 'ㅡ'로 변화하였으며, 사람들은 天을 하날이 아니라 하늘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하나님'이 아닌, '하느님'을 공식적인 호칭으로 채택하게 된다.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공동번역성서'를 출간하면서, 절대신의 호칭도 '하느님'으로 합의를 보게 되며, 공동번역성서를 사용하는 '성공회'와 '정교회' 역시도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채택한다. 다만 대부분의 개신교 종파들은 내부적인 문제로[21]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여전히 주류이다.

사실은 성은 씨요 이름은 평하라고 카더라. 드디어 밝혀진 신의 진정한 이름 관대하 외사촌이라 카더라

4. 구원

그리스도교가 맨 처음 생길 때부터 "야훼 안 믿으면 지옥에 떨어진다!"[22]라고 신자들이 '어흥!'했지만, 가톨릭정교회는 역사가 긴 만큼 옛날부터 여러가지 일 겪어서인지 요즘엔 "야훼도 믿고 예수도 영접하고 착한 일도 해야 천당 간다."로 변경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 문장은 명제 자체가 잘못되었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해야 구원받는다'라고 교리에 규정지어 놓지 않았다.[23]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항목에서 '개신교와의 교리적 차이'부분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착한 일 하면 구원받는다'라는 주장은 가톨릭과 정교회가 분리되기도 전에 이단취급 받은 '펠라기우스'라는 자의 주장이다.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이고 종파를 초월한 공통된 구원관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것이고 이를 베이스로 하여 종파별로 해석이 달라진다. 그러나 어느 종파든 간에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규정한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바울)가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매우 강경한 개신교와 다르게 가톨릭정교회가 '타종교를 존중'하는 자세로 전환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유일신을 믿으며 '구원은 주님을 통해'임은 변하지 않는다.[24]

한편 개신교, 특히 근본주의 개신교는 예수만 믿으면 천국, 불신지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논리는 보수적 기독교 종파 측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전 항목에서는 이러한 근본주의적 논리가 기독교 신학으로 보면 오류라고 되어 있었지만,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오류에 불과하다. 개신교 신학이 진보적 입장만 있는 것도 아니고, 후술하겠지만 개신교 내부에서 보수적 근본주의는 당당한 개신교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주요 종파의 교리이다.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위인들이 지옥에 갔느냐는 논제에 대하여 보수적 개신교 교리에 의하면 얄짤없이 지옥에 갔다는 결론이 나오고, 어디까지나 진보적 입장에서만 '모른다'는 회피의 여지가 있을 뿐이다.

여하간 이런 근본주의적 맥락에서 보면 충무공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은 예수를 믿지 않았으니 지옥에서 훨훨 타고 있다는 병크스러운 결론이 나오게 된다. 이에 대해 일부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반발을 하며, 성서에 엄연히 유대 전통이나 예수와는 무관하게 야훼와 소통하고 또 축복을 받은 자들이 등장한다면서 욥, 멜기체덱, 이드로, 레갑인들의 예를 들며, 특히 일부 진보적 개신교인들의 경우,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이 예수를 믿지 않았으니 지옥에 갔느냐는 명제에 대해서는 '모른다'라고 해야 그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른다는 답변이 곤란한 논제에 대한 회피성이 짙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욥이나 멜기세덱이나 이드로 레갑인들이 등장하던 구약은 성부인 야훼가 직접 개입하여 군대를 이끌고 직접적으로 세상에 개입하던 시기였다. 쉽게 말해 저들은 예수는 몰라도 야훼는 알았으며 야훼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25]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세종대왕은 말할 것도 없고, 이순신은 고니시 등을 통해 그리스도교의 존재를 알았을 가능성은 있으나 야훼에 대한 신앙심을 가졌을 확률은 한 없이 0에 수렴한다. 따라서 욥이나 멜기체덱 등과 같은 구약의 인물들의 예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의 경우를 설명하려는 것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26]

한마디로 결론을 내리자면, 근본주의 개신교 교리로 보면,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은 지옥에서 훨훨 불타고 있는 것이 맞다.[27][28] 덧붙여, 그 어떤 진보적 개신교 교단에서도,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같이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위인들이 지옥에 가지 않았다고 확정적으로 말하는 교단은 단 하나도 없다.[29] 어디까지나 모른다고 회피할 뿐이다. 이는 사실 진보와 보수를 망론하고 개신교 자체가 사람은 그 자신의 의로움으로 천국에 갈 수 없으며, 무조건 예수를 향한 믿음을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교리를 확고한 진리로 상정하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를 안 믿은 의로운 사람이나 위인들은 지옥에 간 것이냐?' 라는 비판에 대해, 보수적 개신교 쪽에서는 비판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강경하게 나가는 것이고, 진보 측에서는 비판을 회피하고자 하는 입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앞서도 서술했듯이, 전 세계 개신교 인구 수를 보면 보수적 근본주의는 절대 소수의 입장도, 마이너한 입지도 아니다. 물론 세계적 레벨로 보자면, 성공회와 루터교회를 포함한 진보적 개신교 교단도 소수는 아니며, 전세계 3.5억명의 개신교 신자 중에서 1억5400만명이 성공회와 루터 교회 등 진보적 개신교 종파의 신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나머지 보수적 근본주의 개신교 신자는 1억 9천 6백만으로, 오히려 진보적 개신교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 혹자는 성공회와 루터 교회 등의 진보적 개신교 신학이 오히려 세계 개신교의 주류 신학이라 주장하지만, 위에도 보다시피 세계적으로 봐도 진보적 개신교 종파보다 보수적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개신교 종파의 수가 많은데다, 주류 신학을 정하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30]

여하간 이러한 구원관이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대한 차이기도 한데, 유대교에서는 구원의 대상이 유대인, 이스라엘 민족만이다.[31] 그러던 것이 그리스도교에 와서는 구원의 대상이 전 인류로 확장되었다.[32] 이로 인해 유대교에서 파생된 그리스도교는 자신들의 교리를 널리 세계에 전파하려고 했기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종교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 이전에도 이미 유대교는 유대 민족의 차원을 넘어 세계 종교화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구약성경의 많은 대목들에서 '열방(세계의 여러 민족)이 주님께로 돌아오리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33]

뭐 사실 이 문제는 세계화 보다는 "영방이라는 개념이 가진 좁은 의미" 문제인데, 부족국가 사회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영방을 따져 봐야 그 주변국에 대한 문제만을 생각했을테니 뻔한 것으로 생각할수 있으며, 당연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부족 국가간의 한계가 극명하니 어쩔수가 없었던 듯.

또한 그 기독교의 포교개념에도 실은 이런 저런 문제가 많은데, 사실 유일신의 배타적 개념은 여기서 탄생한다. 이슬람과는 다르게, 기독교가 포교 대상으로 삼은 지역들은 남미 등 대륙에서 떨어진 지역들이었고, 이런것에는 사실 사연이 있다. 종교개혁 당시 점점 떨어지는 카톨릭 세력에 위기감을 느낀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는 이 당시부터 "카톨릭 개종을 늘려서 새로운 동맹을 창출" 하는 것을 모토로 중남미로 밀고 들어가게 되고, 개신교는 북미 지역을 공략하게 되는데, 공통점은 "종교가 바로 동맹의 여건" 인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무기기술의 우위를 바탕으로 해서 밀고들어간 이들이 문명화를 이유로 내세운 플롯이 종교였고, 당연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우월한 문명을 지닌 것은 유일신을 믿기 때문" 이라는 주장으로 귀결되는 개종 강요는 실은 흔한 일이었지만, 실은 이 과정에서는 종교동맹이라는 요소가 강조되어 "개신교로 개종하거나 카톨릭으로 개종하거나"라는 사연이 있는 것은 당연하였고...

정교회의 경우도 좀더 복잡한데, 사실 러시아 정교회나 각국 정교회가 부흥하게 된 시점은 합스부르크로부터 동유럽권이 독립을 하려고 하고, 러시아가 동구권에 큰 영향을 주던 그 시점부터이다. 즉, 반대로 카톨릭을 고수하는 것은 매국적 관점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친러/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정교회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극명해서 전자의 경우는 사실은 "이교도의 신에 대해 문명의 우월성을 기반으로 하여 개종을 강요하는 경우"다. 즉, 전자의 유일신은 "필히 전지전능해야 하고, 다른 신을 찍어 눌러야 하는" 신이었고, 후자의 경우는 같은 신을 믿는데 형식주의적인 부분에서 다른 점(주로 정치적인 부분)의 논쟁이 주안점이 되며, 실은 "기독교와 이슬람"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이 문제다.

즉, 정리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행위로 인한 구원에 대한 논증을 하는 카톨릭이나 정교회의 문제 역시, 기타 교리적 상이점과 더불어서 "형식적 전통주의나 수정주의적 입장을 주장해야만 하던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개혁주의적인 입장의 개신교는 거의 무조건 과거 형식을 비판해야 하는 관계로 구원관에 대한 명확한 분기에 대해 다른 해석을 주장할수 밖에 없는 경우"였고, 이런 결론으로 말미암아서 각각의 개념 차이가 발생하고 유일신에 대한 관점해석이 틀려지는 것은 뭐 별달리 이상한 일은 아닌게 된다.

허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은 "과거의 행태"에 있는데, 개신교는 인정하지 않고 정교회나 카톨릭은 인정하는 것, 바로 천사들과 관련이 있고, 성자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반면적으로 설명해 보면, 카톨릭이 구원관의 다양성을 어느정도 인정하게 되는 이유도 "실은 금전적인 소득만 보장되면 사리에 맞게 고치는 것이 당연한 실리주의적 역사"가 있었던 흔적인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세례관이다. 즉, 초기 카톨릭에서는 비세례자는 지옥행 익스프레스를 타는 것이었고, 세례수입 역시 고해와 더불어서 교회의 주 수입원에 해당했기 때문에 현재의 교리에 없다고 해서 "교리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야만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이 교리에 원래 없었다"고 하기엔 심히 문제가 있다. 이런 형태 때문에 성자공경, 성모공경, 천사공경등 이런 저런 신앙체계들이 복잡화 되자, 유일신에 대한 격의 해석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 부각되었고, 실은 종교개혁 이전까지 십수세기간 카톨릭은 그 천사를 타락천사 만들다가 복권시키기.. 등의 철권(...)을 휘둘러서 나름 유일신 체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점들이 부각된 이유는 실은 일종의 지역주의 토착화 문제 때문인데, 실제로 카톨릭의 성자들 중에서는 이교도의 신이 개종하여 된 성자들도 존재하곤 하기 때문에 지역에서 받아들인 개종이 서서히 중앙으로 전달되면서 온 형식적 차이에 대해 어디까지는 공통성을 주장하고 어디서는 개별성을 인정하는가의 차이점 인식의 문제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개념적 파생의 문제라고 할수 있을듯. 이는 실제로 정교회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역사를 가졌었다고 할수 있지만, 반면적으로 이슬람과 먼저 대립해서 부각된 바가 좀 적을 뿐이다.

고로 실제로 이 구원관의 차이를 보면 유일신의 해석에 대한 정도 차이가 있음은 실은 간단히 파악할수 있는 문제랄 수 있겠다.

5. 특징

5.1. 전지전능

절대자답게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하다. 말 한마디로 만물을 창조하고(창세기), 바다를 갈랐다가 도로 합쳐놓으며[34](탈출기) 소돔과 고모라를 하루만에 불과 유황으로 흔적도 없이 날려버린다.(창세기[35]) 사실 말 한마디로 세계 창조한 것부터 킹왕짱.

7일 창조에 대한 의문을 아이작 아시모프는 '모세가 창세기를 쓸 때 페이지 수가 쪼달려서 축약'이라 추측했다.

다만 히브리 시대의 '하루'는 24시간 단위의 '하루'만 칭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는 게 좋다. 성서의 다른 책들에서도 하루(날)이 수 일에서 수십일을 가리키곤 한다. 즉, '창조의 날들'은 실제의 일주일이 아니라 일곱으로 나눠진 수천만년의 기간일 수 있다는 것. 이러한 해석을 신학적으로는 '골격해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성서무오설을 믿는 사람들이 들으면 스프링처럼 튀어오르며 반발한다.

이 전지전능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인간 언어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어라 선하고 전능하다면 왜 악을 방치하는가?라고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리스도교에서는 피조물에게는 자유 의지라는 창조 이념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악을 제거하면 신 스스로가 부여한 창조 이념을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기에 직접 악을 없애지는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설명을 하게 되면 '선하다'는 속성과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이라는 속성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애초에 이 논제 자체가 야훼교를 조소하기 위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난제인만큼, 그리스도교가 특정하는 야훼의 성향을 가지고서는 풀 수 없는 문제로 보아야 옳다.

근데 이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천사=인간=악마는 동위선상에 놓인 피조물이며 인간 역시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십계명도, '굳이 천국에 오라고 특별히 교리를 설파할 이유도 없어지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이를 '악을 향하는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에 대한 신의 권고 및 부름'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지옥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원한 인간 자유 의지의 선택 결과, 즉 無善'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존재한다.설정놀음[36][37]

이렇게 악을 스스로 제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을 못한 마당에 전지전능해서 인간이 타락할 줄 알고 있었으면서 그들을 심판하는 것이 말이 되냐는 의문까지 나오게 된다. 결국 이런 질문에 시달리고 또 시달린 나머지 기독교에서 내놓은 나름의 해석이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모시는 신은 전지전능하셔서 확실히 현재와 미래와 과거를 다 알고 계신다. 허나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시간이 우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를 우리가 너비와 길이, 깊이를 보듯이 동시에 볼 수 있기에, 그에게 과거나 미래는 없고 그저 한없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보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우주와 완전히 다르며, 따라서 자유 의지와 전지전능함은 충돌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이건 결국 신앙의 부분이니까 어찌보면 답이 없는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인간 인식의 한계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 듯 신학자들도 먹고 살아야지...

사실 성경을 읽어봐도 부활신앙이 없으면 기독교인 스스로를 가장 어리석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부활 역시 인간의 상식이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저런 설명이 성경에는 없다는 반박을 하기도 하는데, 애초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의 준수 대상으로 보는 성서무오설의 입장은 현대 신학계에서는 그다지 받아들여지는 편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상당수 개신교 교파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나라나 미국의 개신교 내에선 이쪽이 오히려 다수인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그러한 태도를 취한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데, 정말로 인간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변명할 말이 없어서 우기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게 문제. 당장 그런 주장을 하는 기독교인들 자신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을 진리로 믿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아니면 인간이 아니거나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데 그들이 이야기 하는 교리가 진리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는 정황상, 비신자들 입장에서는 가능성이 후자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절대성의 논리에 관한 유명한 주제로 "만약 어떠한 것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신이 있다 하면, '신의 힘으로 전혀 다룰 수 없는 세계'도 만들 수 있는가?" 같은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삼위일체 교리에 의하면 같은 존재이나 다른 모습, 단순하게는 외아들인 걸로 나온다. 옛날 중국 나라에선 기독교 신자인 홍수전이라는 사람이 뭔가 계시를 받는 듯한 꿈을 꾸고서, 이 야훼의 둘째 아들을 자처하며 태평천국 운동을 일으켰다. 홍수전 외에도 야훼의 둘째 아들 같은 걸 자칭한 사람은 종종 있었다.

이 이외에도 기본적으로는 선을 나타내지만, 선이라는 개념을 좀 더 명혹히 하기위해 그에 반하는 악을 만들어내고 반면교사로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써 악을 방치한다는 것. 악을 저지르면 지옥에 가기 때문에 현세의 사람들이 악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선과 악의 개념이 더 명확해진다는 설이다. 악인으로써 걸린 사람들은 그저 지못미그래도 회계하면 천국행 티켓을 살 수 있다

또 하나로는 전지(모든 것을 알고)전능(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성질에 있다는 것. 특히 앞의 전지(모든 것을 알고 인식한다)라는 것은 애초에 인간만이 멋대로 신이 선하다고 믿는 것일 뿐 사실 신에게는 그런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 자체를 초월하여 그냥 이것 저것 만들다보니 선인도 악인도 창조된 것이라는 설이다. 이를 자조적으로 보는 입장의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등에서는 마치 신이 세상을 심시티 게임하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등등등 이런 식으로 아예 이 전지전능을 부분을 하나의 항목으로 만들어도 될 만큼 여러가지 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딱히 대다수 사람들에게 공감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특히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해석된 신은 종교인들이 보면 펄펄 뛸 정도의 내용들로 가득한지라.

허나 일단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놓고 보면 이런데...

  • 불완전에서 시작해서 어느새 전지전능: 사실 초기 기독교의 논쟁, 특히 영지주의자와 보편교회의 논쟁에 대해서 가장 심각하게 이뤄진 것이 이 창조의 완전성에 대한 고찰이다. 이 경우 영지주의자들은 반대로 창조가 불완전한 상태라고 주장했고, 반대로 보편교회측은 완전한 형태로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던 것. 사실 창조적 불완전성의 문제로 보면 이 전능자의 문제는 해결이 된다 불완전한 전능이란게 있을수가 없으니... 하여 이 초기교회의 문제는 "일원적 이원론"으로 보는데, 창조를 시행한 주체는 둘, 그러나 그 근본은 하나인 것. 이 논쟁의 결과는 자유의지와 원죄를 주장하는 4세기의 교리투표로 인해서 결정되게 되었다만, 원래 기독교의 출발에서도 신의 완전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적으로 주장되었던 것이다.

  • 전능자의 의미에 관점을 맞춘 해석: 사실 유대교는 이 전능자에 대해 별로 의구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불완전한 창조를 두고 "그건 창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 이라는 정의를 내린바 있다. 즉, 실은 기독교의 개념은 이 개념에서의 "반증이나 반론"을 하면서 발전하게 된 것인데, 악이라는 개념에 대해 유대인들의 발상은 "완전한 창조를 이뤄지게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도태를 의미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아담이 실락하게 되는 이유도 창조의 프로세스로 해석해 버리는 등, "신은 완벽하기는 한데 일단 창조가 완전치 않다"는 부분을 근거로 한 주장을 제시하였던 바가 있다. 즉, 사실상 똑똑한 처사인 것이, 결론적으로 이들이 주장한 것은 현대의 진화론과도 별로 대치되지 않는 관계로... 문제는 이 사상의 근간이 민족주의화 된 것이 바로 유대인의 상대적 우월주의인데, 반대로 이 세상의 창조를 형평성있게 완성할수 있는 존재는 유대인이 유일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즉,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 교의적인 원안을 놓고 보면 전지전능신이라는 것은 기독교 형성 이후에 갑툭튀, 그것도 한 4세기쯤에나 튀어나온 주장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논리오류에 대해 자유의지를 들었지만, 실제로 그 자유의지가 주장되는 것이 전지전능의 모순이라는 점을 자각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는 점은 뭐.. 당시의 인식적인 문제이겠지만, 이미 로마의 지지를 받은 국교화된 종교로서는 그딴거 먹는거냐? 우걱우걱...이라는 정신으로 반대자에게 너 이단! 이라는 주장을 하면 되었다는 점은 뭐...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5.2. 만들어지지 않은 신

모세가 처음 야훼를 만났을 때,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이때, 야훼는 자신을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라는 말로 설명했다. 자신을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고 설명한 까닭은 자신은 누군가의 자식이거나 혹은 어떤 초월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말한 것이다.[38]

인간이 섬기는 대다수의 신들이나 초월자들은 대부분 자신을 낳아준 부모가 있다.[39] 즉, 스스로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한 신이 아니라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태어나거나 만들어진 신이다.

반면 야훼는 자신은 스스로의 의지로 존재한다는 것을 말함으로서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임을 부각한 것이다.[40] 물론 다른 종교에도 이와 비슷한 창조주나 조물주라는 개념은 있지만 이런 신들은 우주의 법칙을 관장하지 인간사에 관여하는 신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섬기지는 않았다. 창조신이면서도 인간사에 깊게 관여하는 야훼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즉, 반면적으로 "창조신을 섬기는 근본주의"임을 주장한 것인데.. 이것도 좀 사연이 있는 편이다.

사실 중근동의 종교는 지역 실세에 따른 종교의 문제가 있어서, 도시국가 1이 지역의 패권을 잡으면 그 도시국가의 종교가 킹왕짱이 되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주신의 위치는 언제나 변동성"이 있었다는 점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이런 창조신 놀이는 그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 "주신이 부족신들 위에 서기 적당한 형평성"을 주장하기 위한 일종의 설정놀이라고 할수 있겠고, 달리 말해서 "그 다른 신들(후대의 천사)"위에 서는 당위성은 그 신들의 "애비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고려되는 것과도 같은 논리다.

후대 유대교의 해석 개념에서는 이것이 태초로부터 스스로 존재하기로 규정된 것, 즉 태초의 무한으로부터 처음 존재하게 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실제로 이 개념은 카오스로부터 태어난 우라누스와 가이아 등과 비슷한 견지로 해석할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것이 나중에 "다신교의 신들보다도 우위에 있는 근본적인 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공식화 된 것으로 볼수 있을 듯.

6. 성향

시간이 지날수록 남성적 → 무성적, 감정적 → 무감정적으로 변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그래 우린 버림받았어... [41]또한 불타고 있지만 여전하게 푸른 나무, 하얀 비둘기처럼 상징적인 요소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대신 눈부셔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을 발하는 사람의 모양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음?

다만, 하얀 비둘기와 같은 상징적인 모습은 마태오 복음, 즉, 신약에서 또다시 등장하고, 삼위일체을 기반으로 생각하면 예수에게 옮겨간 감정적인 이미지는 그대로 야훼 자신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도 있긴 하다.

그리스인들은 신들을 형상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결국 야훼도 제우스 같은 흰 머리와 수염을 한 백인 남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 모습은 아마도 고대 로마의 신이었던 제우스 등의 이미지가 합쳐지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스테레오타입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와 '도그마'. 브루스 올마이티에서는 흑인 배우인 모건 프리먼이 연기하였고, 도그마에서의 모습은 충격과 공포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사실 모습 또한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형용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니, 흰 수염에 흰 옷 차림의 노인은 엄밀하게 말하면 이단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천지창조처럼 유명한 그림들은 이러한 모습으로 그리고 있으며 심지어 이런 그림들은 성당에 그려지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지전능한 초월한 존재기 때문에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려낼 수도 없다는 것. 비유하자면 ∞을 100으로 나누어 봤자(간단하게 표현해 봤자) 여전히 ∞이라는 식이다. 때문에 유대교나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그림이나 석상 등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간주하거나 다른 이교도 신으로 여긴다.

구약에서 나오는 야훼에 대한 내용은 제각각이다. 야훼는 창세기에서는 분명히 세상을 창조했는데,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는 모세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만 믿고 있었다. 유대인들도 각기 다른 신을 믿고 있었는데, 모세 아래로 집결하여 이집트에서 나온 후부터 야훼 만을 믿기로 계약한다. 이때 야훼는 '너희들 이제 나만 믿기로 했으니까, 나 말고 다른 신을 믿으면 죽여버릴거야. 난 질투하는 신이야'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한다. 정말로 스스로를 '질투하는 신'[42](신명 5,9)이라고 말하고 있다. 근데 그 뒤에 곧바로 '하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 가르침을 따르면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듬뿍 줄게'(신명 5,10)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분노와 자비 사이의 불균형이 일어난다.

'다른 신'이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야훼는 다신론자가 된다. 이렇게 이해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야훼가 말한 '다른 신'은 정말 신이 아니라 신처럼 여겨지는 잡신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사실 위 표현은 과거 유대인들이 유일신자가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야훼만 우리의 신'하고 야훼만 믿기로 정했을 뿐. 즉 '나 말고 어떤 (다른 민족의) 신들이 너희들을 구원하겠냐, 내가 니들의 진짜 주인이다' 같은 말이었지, 다른 신들을 부정한 게 아니었다.

어쨌든 초창기 야훼는 매우 투쟁적이고 잔인한 신으로 묘사된다. 유대인과의 계약 때문에 유대인과 대적하는 다른 민족들-갓난 아기까지-를 학살하고, 계약을 어긴 유대인에게도 엄벌을 내리고 있다. 그렇게 구약 성경에서 죽인 사람만 숫자로 추산할 수 있는 것만[43] 다 따지면 대략 200만명이 넘어간다[44]. 사탄은 고작 9명인데. 그것도 야훼가 명령해서 죽인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신학적으로 볼 때,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사탄 떄문에 인생 종친 사람들이 굉장히 많으므로 이러한 통계는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사탄 때문에 인생을 종친 사람들'에 대한 근거가 전무하다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신학적으로는 그렇다라고 주장하는데, 여기도 문제가 있다.

사탄의 문제를 꺼낸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봐도 야훼는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사탄 조차도 야훼의 주관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다고 규정한다. 악한 존재인 사탄이 전능하고 선한 야훼의 통제를 벗어나 움직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야훼가 사탄을 조종했다는 것을 인정하자니 위에서 언급된 악의 문제를 피할 수가 없어진다.[45] 즉, 사탄 때문에 인생 종친 사람들은 결국 그 상급자이며 사탄조차 주관하는 야훼 때문에 인생을 종쳤다고 봐도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

실제로 성경 여기 저기를 봐도 야훼 자신이 악신이나 거짓말 하는 영을 부리거나,다윗에게 인구 조사를 명할 마음을 넣은 것이 야훼였다는 기록과 사탄이었다는 기록이 동시에 발견되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할 것.

사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절 대선을 부각시키며 야훼의 악한 측면은말락 야훼라는 존재가 맡게 되었다. 구약 위경의 성립 시기를 고려하면 이러한 말락 야훼의 의미 변화는 명백히 바빌론 유수 등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외부로부터 이원론적 관점을 흡수한 결과이다. 결국 말락은 야훼와 분리되어 가며 마왕(evil one)이자 악적 성향(yester ha-ra)의 근원, 즉 야훼의 대극점에 선 또 다른 악신이 되어갔다.

이렇게 어떻게든 악을 신으로부터 분리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젠 악이 너무 쎄져서 밸런스가 안 맞게 되었다. 그리하여 악을 격하시키는 과정에서 원래 명백히 야훼의 하급자로 인식되던 존재였던 사탄에게 이 이미지를 투영하게 된다. 그리하여 예언서쯤 와서는 아예 말락 야훼를 사탄과 동일시하였는데, 이는 욥기 부분쯤까지 일관되게 주장하던 야훼의 정체성을 오히려 대단히 손상시키는 것이었다.

즉,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이 말락 야훼라는 신적 존재를 상정하고 야훼의 악한 면을 모두 몰아 주었다가, 악이 너무 강하면 전지전능하고 선한 야훼의 본질을 흐린다고 생각하여 신의 피조물이자 심부름꾼에 불과한 사탄에게 해당 이미지를 몰아준 결과, 이 모양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정 구멍이네 이래서 설정은 잘 짜야 한다.

기적을 자주 일으키면서 자신이 만든 것[46]을 자랑하면서 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다.

여튼 그러다가 유대 역사에 큰 전환점이 발생하는데, 바로 예루살렘이 함락당하고 유대인 대다수가 바빌론으로 이주당한 일이었다. 이는 유대인의 인구가 소위 '바빌론 유수'가 가능할 만큼 적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치욕 때문에 성서에서 바빌론을 한결같이 나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47] 결국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론을 함락하고 유대인들을 해방하면서, 유대인들은 오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전반적으로 리빌딩된다. 나라도 다시 세우고, 성전도 다시 짓고, 경전도 정리하게 된다. 이때 야훼에 대한 묘사와 교리해석도 달라지게 된다.

유대인은 바빌론 생활을 통해 바빌론 문화에도 많이 물들었지만,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페르시아에도 물들었다. 그리고 야훼도 아후라 마즈다를 닮게 된다. 다른 모든 신은 거짓이고 야훼 만이 진정한 신이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유대 민족과의 계약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못하지만, 대신 스케일을 유대 민족 뿐 아니라 인류 전체로 확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야훼는 이 때 이후로 완성된 것이며, 사탄이라는 것도 이 때부터 등장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이신론(二神論)을 신보다 한 계급 낮은 천사와 악마라는 형태로 수용한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한 모든 원형은 창세기 만이 아닌 곳곳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탄천사라는 관념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다. 출애굽기 때부터 자신 외에는 신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고 주장하며 그것은 창세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사탄의 원형은 창세기에 나오는 뱀이며 욥기에서 나오는 악신 역시 마찬가지라는 말인데, 결국은 이름을 사탄으로 통일한 것 외에는 변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뱀이나 욥기의 악신이나 모두 야훼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존재일 뿐이다. 사탄은 본디 지금과 같은 일반적인 마왕의 이미지를 가진 존재가 절대로 아니었다. 특히나 위에서 언급된 욥기의 경우, 야훼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며, 무슨 행동이든 야훼에게 허락을 구하고 야훼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말하자면 야훼의 하급 공무원에 불과했다.

7.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

다음은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들 중 일부의 몇 가지 구절들이다.

아이들 가운데서도 사내 녀석들은 당장 죽여라. 남자를 안 일이 있는 여자도 다 죽여라. 다만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은 너희를 위하여 살려두어라. (민수기 31장 18절, 공동번역성서)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신명기 20:16~17, 공동번역성서)

그러니 너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떼와 양떼, 낙타와 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 (사무엘기 상 15:1-3, 공동번역성서)

백성들은 고함을 지르고 나팔 소리는 울려 퍼졌다. 나팔 소리가 울리자 백성은 "와!"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백성은 일제히 성으로 곧장 쳐들어가 성을 점령하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소건 양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버렸다. (여호수아 6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그러나 나는 파라오로 하여금 억지를 부리게 하여, 여러 가지 놀라운 일을 베풀어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 증거를 이집트 땅에서 드러내리라. 파라오는 너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손을 들어 이집트를 호되게 쳐서 나의 군대,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하리라. 내가 손을 들어 이집트를 치고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 가운데서 이끌어내는 것을 보고서야 이집트인들은 내가 야훼임을 알리라."[48] (탈출기 7:3~5)

어떤 성에 접근하여 치고자 할 때에는 먼저 화평하자고 외쳐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하기로 하고 성문을 열거든 너희는 안에 있는 백성을 모두 노무자[49]로 삼아 부려라. 만일 그들이 너희와 화평할 생각이 없어서 싸움을 걸거든 너희는 그 성을 포위 공격하여라.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그 성을 너희 손에 붙이실 터이니, 거기에 있는 남자를 모두 칼로 쳐죽여라. 그러나 여자들과 아이들과 가축들과 그 밖에 그 성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은 전리품으로 차지하여도 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너희 원수들에게서 빼앗아 주시는 전리품을 너희는 마음대로 쓸 수가 있다.[50] (신명기 20장 10절~14절)

야훼께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레위기 27장)[51]

자기 남종이나 여종을 때려 당장에 숨지게 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그 종이 하루나 이틀만 더 살아 있어도 벌을 면한다. 종은 주인의 재산이기 때문이다.[52] (출애굽기 21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13)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로마서 1장)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53] (고린도전서 6장)

7.1. 주의점

이하 7번 항목의 하위 항목인,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견해들은 나무위키의 공식적 입장과는 무관하며, 각각의 당사자들의 견해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다만 리그베다위키는 규정상 특정 종교 사이트가 아니며,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이 충돌될 시에는 세속적 관점을 우선시한다. 따라서 특정 종교의 교리적 견해보다는 학술적이고 학문적인 견해를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명심하자. 종교에 관한 내용은 문화 상대주의에 의거하여 기술되어야 하지만, 문화 상대주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밑에 기술된 야훼가 자행한 유아 학살이나, 노약자 및 비처녀 살해 등의 행위 그 자체는 문화 상대주의의 이름으로도 옹호될 수 없다는 것이다.

7.2.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리처드 도킨스의 견해

리처드 도킨스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이런 모습들에 대해 그의 저서 만들어진 신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전략)... <구약성서>의 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시기하고 거만한 존재, 좀스럽고 불공평하고 용납을 모르는 지배욕을 지닌 존재, 복수심에 불타고 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 여성을 혐오하고 동성애를 증오하고 인종을 차별하고 유아를 살해하고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자식을 죽이고 전염병을 퍼뜨리고 과대망상증에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에 변덕스럽고 심술궂은 난폭자...(후략)>The God of the Old Testament is arguably the most unpleasant character in all fiction: jealous and proud of it; a petty, unjust, unforgiving control-freak; a vindictive, bloodthirsty ethnic cleanser; a misogynistic, homophobic, racist, infanticidal, genocidal, filicidal, pestilential, megalomaniacal, sadomasochistic, capriciously malevolent bully.

7.2.1. 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박

사실 도킨스가 지적한 이같은 문제 때문에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구약을 폐기하고 신약 만을 정경으로 쓰자는 주장이 나온 적도 있었다.[54] 그리고 이같은 문제는 구약성경이 당시 고대인들의 야훼를 바라보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가톨릭의 관점에서 보자면[55] 이런식의 학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기 보다는, '신성한 계약'에 대한 후대 유대인들의 '이론적 설명'이다. 즉 '계약과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야지, 고고학적으로 보면 역사적 신빙성도 의심되는(...) 것에 너무 충격먹을 이유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반박은 야훼의 성향에 대한 해명은 될 지 몰라도 야훼의 존재 여부에 대한 신빙성은 오히려 떨어뜨린다. 쉽게 말해 구약이 고대인들의 시각에서 쓰여졌음을 감안해야 한다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연현상을 보고 신으로 숭배하기 쉬운 고대인들이었음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예리코의 전투 항목을 참조할 것.

7.3.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근본주의 신학의 교리적 견해

이러한 구약의 내용은 문자 그대로 진리이거나, 비유와 상징 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그게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상관 없다. 야훼는 인간의 사고를 초월한 존재니까. 그게 비과학적이어도 상관 없다. 그때 당시 사람들의 한계로 지금 지식과 어긋난 내용이지만 야훼가 부득이하게 그런 표현을 허용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또 자연 법칙을 초월한 야훼 앞에선 과학적으로 불가능해도 상관 없다. 마찬가지로 도덕에 어긋나보여도 상관 없다. 야훼가 내린 계명이나 규율은 시대에 따라 계속 달라졌으며, 그 때문에 이전에 안되던 일[56]이 이제는 되거나, 거꾸로 이제는 안되는 일[57]이 이전엔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훼는 도덕의 근간이다. 불완전하고 결함 많은 인간이 뭐라 할 처지가 안된다는 소리.

게다가 기독교에서 타 종교에 구원이 없음을 말하는 것은 사실이며, 기독교의 정체성은 유일신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타 종교에 대해 극도로 배타적인 관점을 취하거나 심지어 타 종교의 교리를 거짓으로 취급하는 것도 옳은 것으로 간주된다. 타 종교의 사원[58]에 들어가서 땅밟기를 하거나 불상, 단군상 등 다른 종교의 신상을 때려 부수는 것도 포함해서.

또한 성경에서 동성애자는 쳐죽여라 내지는 최소한 구원이 없다고 쓰여 있으므로, 동성애자는 계도의 대상이며, 끝까지 동성애를 고집할 경우 구원이 없으며 지옥에나 떨어질 거라고 보는 것이 옳다.현대의 인간 윤리/헌법이 왠지 더 우위 같아 보이는 건 신경 쓰지 말자.[59]

7.3.1. 이에 대한 비종교인들 및 진보진영 개신교인들의 반박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 타 종교를 무조건 비방하고 적대시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기독교 전체의 입장은 아니다. 당장 최대의 기독교인 로마 가톨릭만 해도 이러한 관점을 취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개신교에서도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의 행위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근본주의적 관점은 다원주의 사회에서 유일신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이를 위해 타 종교에 대해 무조건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는 결코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이는 성경에 근거한 올바른 믿음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의 광신적 믿음에 입각한 행위는 같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비판의 대상인 것은 물론이고, 비기독인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무엇보다 명심해야할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교리와 규율은 시대에 따라서 달려져왔고 지금은 구약 시대가 아니라 신약 이후의 시대다. 즉, 예수의 죽음이 있었던 기원후이며 지금의 기독교에게 있어서 그 핵심적인 교리는 무한한 사랑과 포용, 용서, 자비인 것이다. 2015년 기준, 교황은 그 어떤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데 내가 어찌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그 입장을 대변했다. 하물며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그들의 신전을 밟아 부순다? 예수의 죽음으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원죄가 용서받은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남은 것은 그저 예수의 뜻대로 사랑을 받기보단 베풀고 배척하기 보단 포용하는 것 뿐이다.

7.4.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일부 진보신학 및 진보적 복음주의 신학의 교리적 견해[60][61]

1. 고난받던 히브리인의 개념을 특정한 민족이 아니라 그 지방에서 떠돌이 유목민이던 가난하고 힘없고 박해받던 사회계층이다.[62] 즉, 야훼는 이런 가난하고 힘없고 박해받던 사회 계층의 구원자, 해방자이다. [63]

야훼의 이러한 면모에 대해 반감을 가진 비종교인들은 예리코 성의 젖먹이 아기까지 다 죽이라는 야훼의 명령에 대하여 젖먹이 아기도 힘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지적을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가난하고 힘 없다는 뜻은 일종의 계급적 개념으로써 착취당하고 핍박받는 민중들을 뜻하는 것이다. [64]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의 여러 민족들에 대하여 잔인하고 살벌해 보이기까지 하는 정복 전쟁을 수행한 것은 낡은 가죽부대를 터트리기 위한 사회 운동이다.[65] -여기서 파파 스탈린 혹은 마오 따꺼의 향기가 느껴진다면 지는겁니다.

구약 율법서를 보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적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라는 내용이 많이 나와 있다. 그냥 자발적으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고 강제로 제도화하여 말이다. 십일조를 거둬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나눠 주라는 것이라든지, 농산물을 수확할 때 조금씩 남겨 두어서 누구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하라든지 하라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예 50년마다 모든 사람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도록 함으로써 토지 가치의 공유와 생산 수단의 공평한 분배를 도모하고자 한 희년법과 같이 급진적인 제도까지 언급되어 있다. 또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사회가 본격 국가 막장 테크를 탈 때 권력자와 부자들의 핍박과 착취 행위를 비판하면서 특별히 이러한 사회적 약자 보호, 경제적 정의 실현과 관련된 율법을 제대로 지키라고, 그러지 않으면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부르짖고 있기도 하다.대표적인 인물이 아모스, 이사야, 미카, 예레미야, 에제키엘.

2. 오직 야훼뿐(Mono Yawhism)이란 그 히브리인들의 사상을 다른 종교(우상)과 대결이라는 시각보다는 신격화된 인간의 지배에 대한 절대 부정이다.[66]

또한 가나안의 사회는 윗동네 막장 왕국주체교를 생각하면 되며, 당시 가나안에서 섬기던 이방 신들은 신격화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해 주는 장치였다. 가나안의 신들은 지배 계급의 옹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힘 없는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사회 구조, 체제를 '신의 뜻이다!' 라고 선포함으로써 민중들이 찍소리 못 하고 이런 핍박과 착취 체제를 받아들이고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체제를 뒤집어 엎고, 모든 사람이 야훼 앞에서 평등하며, 소중하고 존엄하게 대접받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라는 것이 히브리인들에게 내린 야훼의 명령이다.

3. 히브리어 샬롬(shalom)의 평화를 싸움이 없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닌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 곧 정의를 무너뜨리는 세력과 적극적으로 싸우면서 찾는 역동적인 상태다. 여기서 '평화' 라는 것은 단순히 무력 충돌과 살육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정의가 구현되어 모든 사람이 야훼 앞에서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상태를 뜻한다. 히브리의 평화 개념은 반드시 정의를 동반한다. 정의의 기초 위에 평화가 설 수 있다는 이러한 사상은 현대 로마 가톨릭에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즉 민중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체제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무력 충돌이 없고 평온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평화로운 것이 아니며, 그런 불의한 체제가 뒤집어지고 정의로운 체제가 들어서야 그것이 진정한 평화다.

가령 출애굽 사건의 경우 단순히 야훼를 믿는 민족이 우상을 숭배하던 이집트인들을 물리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이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히브리인들을 압제자인 이집트인들에게서 정의의 힘으로 해방시키는 역사인 것이다. 즉 민족과 민족의 대결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의 편에서 서는 신의 역사인 것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이런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공평과 정의(사무엘기 하권 8장 15절)의 기초 위에 생명과 평화(로마서 8장 6절)가 구현된 새로운 체제를 건설해야 한다. 구약에 나오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기에 잔인하고 살벌해 보이는 정복 전쟁은 사실 이러한 사회, 정치적 변혁 운동의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당시의 신들은 민족 신의 개념이어서, (모압인이었지만 야훼 신앙을 받아들이고 보아즈와 결혼한) 룻과 같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이민족들이 야훼를 믿게 된 경우는 많지 않았으므로 히브리 공동체를 통해 구현되어야 할 야훼의 공평과 정의에 입각한 생명과 평화의 대안적 세계질서'가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아예 아무도 살려 두지 말고 다 죽여 버리라는 다소 극단적이고 살벌한 명령을 야훼가 내리는 것이다.

7.4.1. 이에 대한 비종교인들[67]의 학문적 반박

물론 위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진보주의적 개신교인들의 주장이다. 애초에 야훼는 자신이 선택한 히브리 민족만을 차별적으로 우대했다. "살인하지 말라"와 같은 십계명조차, 사실은 다른 유대인을 죽이지 말라는 집단 내의 도덕일 뿐이다.

진보적 개신교인들은 가나안이 불의한 사회체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역사적 사료는 전무하므로, 이러한 아전인수격 주장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역사적 사료가 전무하다는 것은, 성경을 제외하고 당대 가나안의 사회체제를 기록한 역사서가 없다는 뜻이며, 성경은 종교적 경전이지 역사서가 아니므로[68], 가나안의 사회체제가 불의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말이다.

진보측 개신교인들이나 김회권 교수의 주장대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타민족 학살 및 유아 학살이, 체제를 완전히 뒤집어 엎고 새로운 세상, 곧 대안적 세계질서를 세우라는 명령으로 해석을 한다고 해도 유아를 학살하는 행위는 절대로 정당화 될 수 없으며, 포장될 수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더군다나 모세오경에 나오는, 유아는 학살하고 죽이면서 처녀들은 전리품으로 살려서 끌고 가는 행위는 도무지 합리화할 길이 없다.

개신교인들이 예로 드는 구약 율법서의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적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라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내 집단 도덕으로서, 히브리 사회 내에서 같은 히브리인들을 배려하는 것에 불과했다. 구약 경전에서 히브리 족이 가나안의 타민족과 온건하게 공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히브리의 침략 이후 도륙되고 진멸되었다.

또한 구약 성경에서 흔히 보이는, 히브리의 타민족의 신앙을 모독하는 부분은 설명이 불가하다. 이를테면 바알 신전을 화장실로 만든다거나… 또한 이후 집필된 열왕기에는 엘리야바알예언자들의 제사를 조롱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바알의 신관들이 불을 내려달라고 제사를 지내며 춤을 추고 노래 부르다가 급기야 자해 행위까지 해도 '아무 일도 없다'면서 조롱하는 장면이다.[69]

일부 개신교인들은 가나안의 토착 종교가 인신공양을 요구했으며, 따라서 불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앞서도 서술했지만 가나안의 토착 종교가 그 모양이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없으므로, 해당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70] 오히려 구약성경을 들여다 보면,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입다의 예를 제외하더라도, 야훼가 인신공양을 받았다는 구절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그 예들 중에 하나로 다음을 보자.

그들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남자는 모조리 죽였다. 이렇게 군사만 무찔러 죽였을 뿐 아니라 미디안의 왕들도 죽였는데 에위, 레켐, 수르, 후르, 레바 등 다섯 미디안 왕을 죽였고, 브올의 아들 발람도 칼로 쳐죽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미디안 여인들과 아이들을 사로잡고 가축떼 등 재산을 모두 약탈하고는, 그들이 살던 촌락들과 천막촌들에 불을 질러버렸다. 그들은 사람이고 짐승이고 닥치는 대로 노략질하여 전리품으로 삼았다. 그들은 포로와 노략질한 전리품을 예리고 근처 요르단강가 모압 평야에 있는 모세와 엘르아잘 사제이스라엘 백성 회중의 진지로 가져왔다. (민수기 31장 7~12절, 공동번역성서)

민수기를 보면 야훼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갚으라고[71] 모세에게 명령하여 미디안을 쳐서 학살을 하고 약탈품과 포로들을 끌고 오는 대목이다.

계속 살펴보자.

모세와 엘르아잘 사제와 회중의 대표들은 그들을 맞으러 진지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모세는 싸움터에서 돌아오는 군대 지휘관들, 천인대장, 백인대장들을 보고 화가 나서 야단쳤다. "어찌하여 이렇게 여자들을 모두 살려주었느냐?? 브올에서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것들이 바로 발람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꾀지 않았느냐?? 야훼를 배신하게 한 것들이 바로 이것들이 아니냐?? 야훼의 회중에 염병이 내린 것도 이것들 때문이 아니냐?? 아이들 가운데서도 사내 녀석들은 당장 죽여라. 남자를 안 일이 있는 여자도 다 죽여라. 다만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은 너희를 위하여 살려두어라. (민수기 31장 13~18절, 공동번역성서)

전투가 끝나서 히브리가 승리하여 포로들과 전리품을 끌고 개선하는데, 모세어째서 여자들을 살려주었느냐면서 아이들 중에서 남자와 비처녀를 다 죽이고 처녀들만 살려주라고 화를 내면 장면이다. 그런데 처녀인지 아닌지는 대체 어떻게 구별한 거냐

그리고 전리품을 분배하는 장면인 다음을 보면,

모세사제 엘르아잘은 야훼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 군대가 약탈해 온 전리품 가운데 살아 남은 것은 이 67,5000마리, 가 72,000마리, 나귀가 61,000마리요, 사람은 32,000명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이었다. 그 절반은 싸우러 나갔던 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는데, 이 337,500마리였다. 그 떼 가운데서 야훼께 드린 헌납품은 675마리였다. 는 36,000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야훼께 드린 헌납품은 72마리였다. 나귀는 30,500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야훼께 드린 헌납품은 61마리였다. 사람은 16,000명인데, 그 가운데서 야훼께 헌납된 사람은 32명이었다. (민수기 31장 31~40절, 공동번역성서)

보다시피 야훼에게 헌납된 사람이 32명이었다고 나온다. 31절을 보면 이것이 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 행한 것임을 알 수 있으므로, 야훼가 원하지 않는데 모세가 독단적으로 행했다고 볼 수 없으며, 타 민족의 여자들과 아이들마저도 비처녀는 싹 잡아죽이는 전황으로 미루어 보아 저 32명을 살려서 성전에서 노역을 시켰다는 변명[72]도 불가능하다. 만약 저 32명의 미디안 사람들이 인신공양된 것이 아니라면 다르게 처리되었다는 구절이라도 있어야 정상인데, 그런 구절은 전혀 없고 바로 앞에는 똑같이 야훼에게 공물로 바쳐진 짐승들의 목록이 나와 있다. 변명의 여지가 없이 야훼의 뜻으로 자행된 인신공양인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인신공양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인식의 변화가 반영되어, 그 이전까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음과 같은 말로 인신공양에 대한 부정적 구절이 등장하긴 한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 그런 식으로 해 드리면 안 된다. 그들이 저희 신들에게 해 드리는 일은 한결같이 야훼께서 싫어하시고 역겨워하시는 일이다. 그들은 심지어 제 아들 딸마저 불에 살라 자기네 신들에게 바친다. (신명기 12장 31절, 공동번역성서)

그러나 후기에 구약 성경이 집필되고 인신공양의 풍습이 다른 의식으로 변하면서, 여기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인식이 달라지자 야훼도 자신이 인신공양을 명령했음을 인정하며 변명을 시도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여러 민족 가운데 흐트러뜨려 여러 나라에 쫓아보내겠다고 광야에서 또 한 번 손을 들어 맹세한 것은, 그들이 조상들이 위하던 우상들에 눈이 홀려 내가 세워준 법대로 살지 않았고, 내가 정해 준 규정을 거절하였으며 내가 정해 준 안식일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좋지 못한 규정도 정해 주었다. 그대로 하다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법도 세워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예물을 우상에게 바쳤다. 제 속에서 나온 첫 새끼까지 바쳤다. 내가 그들을 이런 것으로 부정하게 만들어 벌을 내린 것은, 그들로 하여금 내가 야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에제키엘 20장 23~26절, 공동번역성서)

그 이전까지 인신공양을 명한 야훼가 이제는 그 명령이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한 모양인데, 자기의 인신공양 명령이 옳지 않은 율법이었음을 자폭고백하면서도 그 이유가 너무나 처참하다. 히브리족이 자기의 규례대로 살지 않고, 자기 율례를 멸시하며 자기 안식일을 더럽혔기 때문이며, 따라서 자신이 야훼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러한 인신공양이란 잘못된 명령을 내렸다고 변명하고 있는 것이다[73]. 야훼가 스스로 인신공양을 명령했다고 자백 하는 구절까지 있으니 도저히 변명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차라리 에제키엘 예언서의 저 구절이 없었으면 좋았을 걸

참고로 개신교 목회자들이 주로 참고하는 주석 중 하나인 존 위클리프의 주석을 보면, 해당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 족들이 몰렉을 숭배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 우상 숭배 의식은 아이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이미 가나안 땅에 팽배해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율법으로 이 의식을 금지하셨다(레위기 18:21;20: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족들은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광야 40년 동안에도 이 우상을 숭배했고(행 7:43), 후에 솔로몬 왕 시대(열왕기상 11:5, 7), 아하스 왕(역대기하 28:3) 및 므낫세 왕(열왕기하 21:6) 시대에도 섬겼다.

분명히 에제키엘서의 해당 구절을 보면 야훼 자신이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인신공양을 드리게끔 명령했다고 나오는데, 개신교인들의 성경 주석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회피하고 엉뚱하게도 몰렉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고 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런 해석은 야훼가 악행을 시킨 것이 아니라 그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는 구절로 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해도, 야훼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기술은 없이 그냥 몰렉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넘어간 것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하며, 앞에서 설명한 사탄의 악행도 결국 전지전능한 신의 책임일 수 밖에 없는 문제에 다시 봉착할 뿐이다. 또 다른 주석에도 위에서 언급한 민수기의 구절에 대해서도 언급을 회피하며, 위에도 언급한, 민수기 이후 성경 집필 과정에서 인신공양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인식이 변화한 이후 기술된 인신공양에 대한 부정적인 구절들만을 언급하고 다시 우상 숭배 이야기로 넘어가 버린다.

해당 구절에 대해서 존 위클리프 뿐 아니라 메튜 헨리, 오리게네스, 페트릭, 다이어, 헹스턴버그 등의 개신교인들이 참조하는 다른 주석들도 모두 이 모양이다(…). 야훼 스스로가 인신공양을 드리게끔 명령했다는 부분에 대한 언급은 모두 회피할 뿐이다. 초등학교 수준의 문장 이해력만 겸비하고 해당 구절을 읽어 보더라도 이 구절은 야훼가 인신공양을 명령했다는 내용을 기술한 것이라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다.

또한 진보진영 개신교인들은 히브리가 사회적 약자였고, 야훼는 사회적 약자인 히브리를 도왔다고 주장하는데, 히브리가 가나안을 침공하여 예리코를 비롯하여 여러 타 민족을 진멸시킨 것을 볼 때, 히브리가 과연 사회적 약자였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보적 개신교인들은 히브리인들이 야훼의 명령 아래 벌인 타 민족 학살과 유아 살해에 대해, 우리 한국독립군이나 아일랜드IRA를 생각하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독립군이나 IRA는 힘없는 젖먹이 유아와 노약자를 학살하고 처녀들을 전리품으로 취하지 않았다(…).

또한 야훼가 세계 평화와 정의를 수립하려고 타 민족의 젖먹이 아기까지 살해했다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처녀들은 살려서 전리품으로 끌고가는 마당에 젖먹이 갓난아기들을 굳이나 칼로 쑤셔 죽이는 방법으로 생명과 평화의 세계 질서'를 수립'''한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뭐가 얼어죽을 생명과 평화냐

다시 말하지만, 어떠한 포장으로도 유아 학살과 처녀들을 전리품으로 끌고 간 행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합리화하는 것은 궤변일 뿐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그 부모의 죄와는 상관없다. 이는 야훼 스스로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자식의 잘못 때문에 아비를 죽일 수 없고, 아비의 잘못 때문에 자식을 죽일 수 없다. 죽을 사람은 죄 지은 바로 그 사람이다. (신명기 24장 16절, 공동번역성서)

앞서도 서술했으나 가나안과 예리코인들이 그 정도로 타락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다는 것을 상기할 때, 개신교인들의 아전인수격 억지 주장에 가깝다. 백번 양보해서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이런 방법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74]인간들마저 교육이나 제도 정비를 통해 교화하는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냈을 법한데 말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어떤 변명을 덧붙이더라도 이러한 학살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상 유명한 학살자들도 자신들의 학살 행위에 온갖 변명과 핑계, 명분을 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것.

젖먹이 아기를 죽임으로써 불의한 사회 체제를 개혁한다는 말도 동의하기 어렵다. 죄 없는 젖먹이 아기를 죽이는 불의한 짓을 통해 불의한 체제를 개혁한다니? 어떻게 보면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지전능하니 일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터, 갓난아이를 죽이고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의 가능성마저 미리 끊어버릴 정도라면 처음부터 가나안과 예리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으면 되었을 게 아닌가? 시간이라는 4번째 차원의 축에서 조율까지 가능하다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타락 때문에 아이들을 미리미리 죽이면서, 세상에 넘쳐나는 온갖 범죄자들은 미리미리 처단하지 않는 이유가 참으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으며, 젖도 못 뗀 젖먹이 아기들은 죽이면서 처녀들은 살려서 전리품으로 끌고 간 이유에 대해서도 전혀 제대로 된 답변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저 민족은 악의 민족이니까 씨를 뿌리뽑아 멸절해야한다"라는 논리가 어떤 종자들에 의한 인종청소와 크게다를바 없는 주장이며,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 상기해보면 금방 성경의 논리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임을 알 수 있다. 야훼의 인종청소


7.5. 성경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의견을 피력했다.

하느님의 분노는 우리가 하느님 자신이신 사랑에 대해 어긋나는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벗어나 사는 사람, 선을 벗어나 사는 사람은 그럼으로써 그 분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은 부정적인 것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분노는 지배욕에 찬 독재자가 매를 드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내적인 논리를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 곧 우리를 지탱해주는 사랑에서 벗어나면 그야말로 공허와 어둠 속으로 빠져 버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는 이른바 사랑의 영역에 존재하지 못하고, 분노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곳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하느님의 형벌은 하느님께서 벌금을 부과하시고 사람에게 무엇인가 제재를 가하시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는 의미의 형벌이 결코 아닙니다. 하느님의 형벌은 우리가 실제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 그릇된 노선으로 들어서고 올바른 삶을 벗어날 경우에 느끼게 되는 당연한 결과들의 표현입니다.

다만 오해해선 안되는게, 교황의 이 발언은 구약에 묘사된 야훼의 행위 그 자체가 옳다기 보다는, '성경이 유기적 영감에 의해 쓰였다는 전제하에' 과연 구약에서 나타난 이런 묘사들이 궁극적으로 현대인들에게 전달하는 메세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다. 즉 구약에 나타는 그런 행위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기 보다는, 이것이 고대인들이 적은 신학적인 설명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이러한 서술의 목적을 설명한 것이다.[75] 이렇게 될 경우, '야훼는 악한 신인가?'라는 논란에는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다만 성서무오설을 고집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논리라는 한계점이 있다.걔네들은 원래 답이 없잖아

7.5.1. 이에 대한 비종교인들의 반박

교황의 답변은, 그리스도교 측의 답변 중에서 가장 무난하고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답변이 된다. 허나 이 경우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답변할 수 있지만,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는 종파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어차피 그런 종파들이 교황말 듣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유기적 영감설'을 근거로 '고대인의 신학적 해석'이라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자칫 '설정 뒤집기'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76]

이걸 가지고 일부 종교인들은 그러나 이 유기적 영감설을 부정하면 비종교인들은 성서무오설에 대한 반박의 근거를 잃게 된다느니[77], 성서무오설을 반박할 때는 성서가 모순과 오류가 없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야훼의 비윤리적 모습을 비판할 때는 성경의 구절 하나 하나를 들고 와 반박한다면서 자가당착이라느니 하며 반발하지만, 이는 억지에 가깝다.

기독교인들 중에는 성서무오설을 신봉하는 보수적 입장의 사람들과, 성서무오설은 부정하지만 성서에 여전히 가치가 있고, 야훼는 실존한다고 보는 다소 진보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두 부류로 나뉠 수 있으며, 각기 다른 두 입장을 가진 두 부류의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반박해야 할 때 각기 다른 두 개의 비판을 가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1. 성서무오설을 반박할 때에는 성서 그 자체가 현대의 보편적 윤리와 동떨어진 전근대적 윤리관을 지향하며, 비과학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내용들이 즐비한 시대적 한계가 분명한 경전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며, 2. 성서무오설을 부정하지만 여전히 성서가 가치가 있으며 야훼는 실존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을 할 때에는 그러한 시대적 한계를 가진 성경이 다른 종교의 경전과 비교하여 다를 바가 없으며, 따라서 비슈누, 시바, 오딘, 토르, 제우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과 같은 온갖 형이상학적 존재 가운데 야훼 만이 실존한다는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것이다. [78]

또한 유기적 영감설은 단순히 성서가 시대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결국 야훼가 실존하여 성서 필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신학적 견해이다.[79] 애초에 유기적 영감설이니, 축자 영감설이니 하는 기독교 신학에서의 영감(靈感)라는 말 자체가 영(靈)에 의한 감응(感)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서무오설을 부정하는 비신자들은 야훼 같은 건 실존하지도 않았고, 야훼이건 성경이건 그 시절 유대인들의 창작물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전혀 유기적 영감설이 아니다. 따라서 유기적 영감설을 부정한다고 해서 성서무오설을 부정하는 근거를 잃는다는 것은 전혀 말이 안 되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고로 위에서 서술한 종교인들의 반발들은 사실상 억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 단락명은 분명히 비종교인들의 반박이다. 이전 버전에서는 이 항목에 기독교인들이 위와 같은 자신들의 입장을 억지스럽게 써놓았는데, 최소한 단락명은 봐 가면서 반달을 저지르도록 하자. 성령이 충만해서 단락명도 눈에 안 들어오나 봅니다

또 다른 한 면으로 해석적인 영역에 있어서 가톨릭 측에서 말하는 궁극적 메시지라는 것이 사실 종단 측의 견강부회가 아닌가 하는 부분은 여전히 쟁점으로 남는다. 이 견해는 가톨릭 안에서 신자들의 믿음을 더 공고히 하는데는 쓰일 수 있는 논리이고 성경 역시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존재한다는 대전제가 없는 사람들, 즉 비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성경은 수메르 신화, 이집트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 단군 신화와 동일선에서 보일 뿐이다. 물론 대전제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 어차피 종교라는 것은 믿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므로, 궁극적인 영역(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에 대한 대전제)에서는 논쟁이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다.

7.6. 에 나오는 야훼의 비윤리적인 모습에 대한 비종교적/학문적 인식[80]

사실 어떠한 포장으로도 유아 학살과 처녀를 전리품으로 끌고 가는 행위 자체를 합리화하는 것은 궤변이고 헛소리일 뿐이다.

그나마 이걸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고 현대인에게 주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해석한다면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있으나, 이러한 서술을 한 인간 저자의 시대적 한계들 때문에 비신자들에게는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효과가 있다.

또한 일부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은 저자와 편집자의 개성이 풍부하게 반영된 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그것이 비신자가 그리스도교를 믿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아니다. 애초에 사실상 이것은 개성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 저자의 인간적/시대적 한계에 가깝다. 이는 해당 구절들의 문제가 성경 저자 개인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 아니라,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는, 전근대적인 가치관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서 근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유아를 학살하고 처녀를 전리품으로 삼아 끌고 가는 구절이 구약 성경에 있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타민족 학살 전쟁은 사실 고대 시대에 세계 어느 문명이든 있었기 때문인데, 이를 21세기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에 야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저러한 기록은 그냥 그 시대 사람들의 한계일 뿐이다. 즉 그 당시 중동 히브리 족들에게는 타민족의 유아와 노약자를 학살하고 처녀를 전리품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매우 당연한 것이며 선이었다는 이야기다.

밑에도 후술되어 있듯이, 바빌론 유수 및 페르시아의 영향 등, 히브리인들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변동에 따라 야훼의 성향도 달라지는 것은, 야훼가 히브리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신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실존할 확률이 0%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존재할 확률이라는게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제우스, 비슈누, , 미트라가 존재할 확률과 동일하다는 것(...) 결국 이 지극히 희박한 확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갈림길인데, '확률은 낮지만 참이라고 확신하고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실존할 확률이 동일하다면 저 존재들 중에 유독 야훼만을 취사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다.

즉 비종교적인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야훼는 히브리인들이 상상해 낸 존재이며 야만적이고 잔혹한 존재이다. 21세기 현대의 전 인류의 보편적 윤리에 반하는 구약 성경의 내용들도 실존할 확률이 제우스, 오딘과 동일한 야훼를 탓할 것이 아니라, 그냥 청동기 시절 히브리인들의 수준이 그 수준이었기 때문인 것을 탓해야 하는데[81][82], 이 야훼를 실존한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내용이 어떻든 옳다고 합리화 하려고 하니 위와 같은 복잡한 답변들이 나오는 것 뿐이다.

물론 현대 기독교의 진보적 종파들은 성서무오설을 부정하는데, 이들의 의하면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유기적으로 받은 저자가 개성[83]을 넣어서 집필한 것이므로 성경이 비신자가 보기엔 다른 신화책과 다를 바가 없어도 적어도 그리스도교 적 관점에서는 내면에 초월적이고 궁극적인 구원의 논리가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어디까지나 '성령의 영감'을 믿는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통용되는 논리이고,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논리이다. 어차피 유기 영감으로 가지 않고, 축자 영감으로 가더라도 비신자에게는 성경이 다른 신화와 다르게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당장 기독교 종파 내부에서도 교파 별로 유기적 영감설에 대한 교리 및 주장이 다르다. 완전 축자 영감설부터, 부분 축자 영감설, 그리고 받아쓰기설 및, 기계적 영감설, 성령 자동 축자 영감설, 성령 감동설 및 유기적 영감설, 문학적 영감설까지 해당 문제와 관련된 주장과 교리가 한 둘이 아니다. 즉 기독교인들은 내부적으로 자기들끼리도 말이 통일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비신자들[84]에게 해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는 현대에는 모조리 유기적 영감을 지지하고, 성서무오설을 부정하긴 하지만, 상술한 4개의 기독교 종파는 한국에서 세력이 약하며, 한국에선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종파들이 대세라는 것이다. 그나마 가톨릭의 경우는 한국인의 10% 정도를 신자수로 가지기는 했지만,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한국인 개신교인들을 긁어모으면 가톨릭보다 훨씬 숫자가 많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봐도 전세계 3.5억명의 개신교 신자 중에서 보수적 종파의 신자는 1억 9천 6백만으로, 개신교 내부의 진보적 종파의 신자 수보다 오히려 숫자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저러한 말들은 성령, 즉 유일 신이 존재한다는 논리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유효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현대는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것이 주를 이루는 사회이다. 당연히 '믿는' 것보다는, 합리적이고 증명된 것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다. 종교인이고 비종교인이고 간에 이건 엄연한 21세기 현대의 객관적 현실이다.

물론 어차피 성경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교(구약은 유대교 포함)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논리로 읽으라고 적힌 경전이고[85] 그렇기에 비신자들이 성경을 소설책 읽듯이 읽고 비판하는 것이 기분 나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에 적힌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읽는다면, 여기에 서술된 유일신의 행적이 현대인들에게는 굉장히 회의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성경이 종교 안에서 종교의 눈으로 보는 책이라고 하더라도, 인간 저자들의 시대적 한계는 오늘날 비신자들에게 결코 좋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에선 주요 종파들이 예수쟁이들에게 밀리고 있다 사실 극단적이고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비신자들은 단지 소설책[86]을 소설책 읽는 방식으로 읽어서, 등장 인물인 야훼의 행적을 비판하는 것이긴 하다. 다만 이렇게 야훼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존재라고 하면서 어째서 야훼의 유아 학살 등의 비윤리적 행위를 문제시 삼느냐는 종교인들의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허구라 하더라도 그러한 비윤리적인 야훼를 합리화/옹호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임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라도 유아 학살을 자행했다면 그 인물을 미화/합리화 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시바 타츠야나, 윌허프 타킨도 학살자라고 비판 받고 이들의 행위를 합리화 하는 사람들도 비판 받는데, 있지도 않은 케릭터를 왜 비판하냐 내지는 어차피 실존하지도 않는 캐릭터가 저지른 짓을 왜 비판하냐는 논제가 합당하게 보이는가?

결국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적인 방식으로 읽고 비신자들은 소설책 읽듯이 읽게 되는데, 양측의 패러다임 안에서는 각자의 의견이 맞는 것이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종교인이 비종교인을 종교적 패러다임 안의 논리로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종교인이 종교인을 무신론적 패러다임 안의 논리로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 인류역사상 종교인이 사라지거나 비종교인이 사라지지도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 한마디로 서로간에 말이 안통하고 각자의 패러다임 안에서는 자기들 말이 맞아서 논쟁이 평행선을 달린다(...) 당장 이 항목만 하더라도

많은 종교인들이 논리적으로 무신론자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데, 사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 역시도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했으면 '학문적 성향'을 지지하는 리그베다위키나 위키피디아는 진작에 종교 위키 혹은 반종교위키로 바뀌었을 것이다. 허나 전술했듯이 리그베다위키는 공식적으로 비(非)종교 위키이며, 규정상 세속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이 충돌할 경우, 세속적 관점을 위주로 쓰여지게 되어 있다.

또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비신자들의 합리적 논리와 종교적 패러다임의 논리는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지금은 청동기나 중세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 타당한 것이 주를 이루는 21세기 현대 사회이며 당연히 비신자들의 합리적 논리가 종교적 패러다임에 비해 훨씬 논리적이며 합리적일 수 밖에 없다. 당장 본 나무위키만 하더라도 '학문적이고 세속적인 성향'을 지지하기에, 종교적 입장과 과학적/합리적 입장이 상충될 때는 후자를 위주로 기술하도록 되어 있다. 당장 창조설 항목과 진화론 항목을 비교해보자.

즉 신자들의 신앙은 그 자신들만의 신념으로서 존중되는 것이지, 그 신앙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이어서 존중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하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야훼가 실존할 확률은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토르, 오딘, 사우론, 간달프가 실존할 확률과 동일하기 때문에, 비신자들 입장에서는 어차피 실존할 확률이 똑같은데 저 중에서 유독 야훼만 취사 선택할 합리적인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내적 정합성의 측면에서만 보면 차라리 그리스 신화나 게르만 신화가 더 설득력있게 느껴질 수 있다. 무한히 자애롭고 절대적으로 선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하고 심오한 이유 때문에 온갖 악과 고통을 만들고 비윤리적 행동을 지시했던 전능자보다는 감정적이고 제멋대로에 가끔은 지들끼리 싸우는 여러 신들이 있다고 가정하는 편이 세상이 왜 이따위인지에 대한 설명으로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가. 적어도 악의 문제 같은 수천 년에 걸쳐도 결론이 나오지 않는 골치아픈 논리적 모순도 없고.

덧붙여 성경을 단순히 종교적 경전이 아니라, 역사적 기록으로서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몇몇 예수쟁이들의 반발이 있긴 하다. 그러나 어떤 기록물을 역사적 기록으로 인정할수 있는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역사적 기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탄생해서가 아니고, 그것을 역사적 기록으로 인정할 만한 기준이 충족되었을 때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들에 대한 충족은 교차검증으로 가능한 것인데, 앞서도 말했지만 성경에서 다른 역사적 문헌과 교차 검증이 되는 역사적 문헌 사이의 제대로 교차 검증이 되는 부분은 거의 없으며, 따라서 성경은 종교 경전이고 역사적 문헌으로 분류하지 않는 것이다.

주류 고고학자와 문헌 비평가, 역사학자들의 절대 다수는 성경을 역사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성경안에 역사적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에 역사적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과 그 책이 '역사서'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하물며 구약 안에서 어디까지가 역사적 내용인지 알기도 어려우며, 서술된 내용 안에서도 과장이나 비유 등을 걸러내는 것 역시도 어렵다. 즉 성경은 역사서가 아니다. 성경이 역사서가 되려면 심청전이나 전우치전, 홍길동전도 역사서가 되어야 한다(...). 성경을 실록과 같은 역사서로 취급한다는 주류 사학자의 의견이 있다면, 해당 논문과 레퍼런스를 가져오면 된다.

오히려 성경을 역사책이나 과학책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주요 그리스도교 종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을 역사책이나 과학책 따위로 취급하는 것이야말로 주요 종파에서는 신성모독이다. 물론 과학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성경 따위가 미개한 책이며, 역사서의 입장에서 볼 때는 성경 따위가 잠꼬대





8. 창작물에서의 야훼

8.1. 여신전생 시리즈에 등장하는 존재

까놓고 말해 진 여신전생 2진 최종보스. 즉 이 게임의 최종보스전에선 주인공은 진짜로 신 죽이기를 하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YHVH 항목을 참고할 것.

8.2.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여기서는 야훼의 성격을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난 에덴동산 이야기 중에서 항상 그 부분이 생각나."

포드가 말했다.

"뭐?"

"에덴동산. 나무. 사과. 그 부분 말이야. 생각나?"

"그래, 물론 생각나지."

"너희의 신이 정원 한가운데다 사과나무를 하나 심고는 이렇게 말하지. 하고 싶은대로 뭐든지 마음대로 해라. 얘들아, 하지만 그 사과는 먹으면 안 돼. 자, 기대하시라. 다음 순간, 그 사람들은 그걸 먹고, 신은 덤불 뒤에서 펄쩍 뛰어나와 '걸렸지' 하고 외치는 거야. 그 사람들이 그걸 안 먹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을 거야."

"어째서?"

"왜냐하면 너희가 상대하는 사람이 도로 위에다 모자를 놓고 그 속에 벽돌을 감춰놓기를 좋아하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그런 사람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결국은 상대방을 잡고야 말지."


8.3. 세인트 영멘

흰 비둘기 모습(성령)으로 지상에서 휴가 중인 예수와 붓다를 만나러 오곤 한다. 종교개그만화인 이 작품의 특성상 이 작품에서의 야훼 역시 개그캐릭터다.

8.4. 존 로널드 루엘 톨킨 세계관의 일루바타르

대놓고 나오지도 않고, 작품만으로는 알 수 없기는 하지만, 그 이름 풀이(영어로 ALL FATHER)로 정체를 암시하고 있고, 틸란티스누메노르의 동일화를 표현함으로 결국 동일존재로 인식함을 알려준다. 그의 본명은 에루의 경우는 영어 The One으로 번역이 되고 이건 더 노골적이다.[87] 기독교와 아무 관련이 없는 아틀린타스가 근거로 등장하는것은 작가의 성향과 관련이 있는데, 신앙심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던 톨킨 성향상 그의 이야기를 현실과 연관성을 둔 이상 다른 존재로 만들기는 힘들었을 것이란 점을 둘 수가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세계관인 운데 땅이 고대 지구의 이야기라는 시초가 되는 것이 저 아탈란테고(발리노르는 떨어져나가고, 땅을 둥글어지며-즉 행성이 되며-, 지형은 현재와 비슷해진다)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연결시켰는데, 톨킨의 입장에서 일루바타르는 결국 야훼라는 것.

사실 반지의 제왕까지만 해도 일루바타르가 아훼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실마릴리온등 세계관이 완성되며 확정된것으로 봐야 한다. 다만 톨킨 자신이 일루바타르와 아훼가 동일인물이라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소문에 의하면 톨킨은 아칼라베스(athrabeth)에서 멜코르를 창세기의 뱀 처럼 쓰다가 중간 여백에 '이렇게 계속 나가다 보면 성경의 패러디가 되어 버리지 않겠는가' 라는 말을 남기고는 [[HoME]] 10권 분량에서 이런 제반 신화에 대한 저작을 그만둔다는 말이 있다. 이건 소문이 아니라 실제 기록이다. 원문 여백에 실제로 존재한다.

다만 그가 쓴 작품의 성향과 여러 모티브를 봤을때, 일루바타르와 야훼의 연관성은 부정 할 수가 없고 비현실적 세계를 다룬 소설(주로 판타지 계열)에서 가장 아훼에 가까운 존재라 볼 수 있다. 적어도 단순히 이름만 가져다 쓴 존재들과 비교하면 그 연관성은 격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누메노르인들이나 엘프들이 일루바타르에 대해 보이는 신앙을 언급하면서도 그 형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누메노르에서 일루바타르에게 제사를 지냈다로 끝..... 어쨌든 이들의 신앙은 그리스도교가 아니고 관련도 없지만(시대상으로 봐도 엄청난 과거가 된다), 작가가 작가인 만큼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아도 그 뼈대는 종종 나타난다(골룸을 살리는 것에 대한 대화나 일루바타르의 의도나 등등). 그 신이 그리스도교의 야훼 하느님과 동일존재라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로 톨킨은 자신이 말한대로 자신의 신화가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조화를 이루게 저작했다. 하긴 현실상도 같은 신 두고 3개종교(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존재하고 실질적인 분리를 보면 수도 없는데(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수니파, 시아파, 등등등) 새로운 신화를 만들면서 역시 같은 신 두고 이런 종교들이 창조되기 전 원시 시발점으로서의 다른 신앙을 만드는 것은 그에게 별 부담감이 없고, 그의 신념과 조화를 이루는 선택이였을 것이라 여겨진다.

일루바타르와 아훼의 인식이 위의 내용들과 차이가 나는 것은 여기서 다루는 야훼는 기원전 하고 한참 전의 구약의 야훼, 유대인의 야훼를 다루기 때문이고, 일루바타르는 톨킨이 믿는 20세기 중후반의 신약을 주 바탕으로 한 야훼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2000년 + 천년 이상 차이나는데 인식이 같을 리가 있나.

8.5. DC 코믹스 세계관의 창조주 프레젠스

프레젠스 참고.

8.6. 프로메테우스(영화)

인류를 과학적으로 창조한 외계인 엔지니어로 나온다.

8.7. 블리치

퀸시의 황제 유하바하는 야훼가 모티브이며, 능력도 전지전능이다.

8.8. 모게코의 캐릭터 엘룩스

모게코의 6개 세계관의 첫번째 세계관의 신인 엘룩스는 모티브가 야훼이며, 마켄 다비드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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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하단의 '이름에 대하여'부분 참고
  • [2] 이것은 모세의 십계 중 세 번째 계명 때문이다.
  • [3] 로마자로 모음이 표기되지 않은 YHWH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사실 정확한 이름은 아무도 모름
  • [4] 날이 저물어 선들바람이 불 때 야훼 하느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는 야훼 하느님 눈에 뜨이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창세기 3:8, 공동번역성서)
  • [5] 이제야 나는 야훼께서 어떤 신보다도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았다. 이집트인들은 이 백성에게 너무나도 방자했구나.(출애굽기 18:11, 공동번역성서)
  • [6] 아셰라는 최고신의 배우자로, 바알의 어머니 혹은 아내로 여겨졌다.
  • [7] 바알의 뜻 중에는 '큰 어른'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이 부분에서 서로 혼용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단 신화적인 역할도 왠지 둘 다 강력한 신이자 주신이기도 하고, 제우스-주피터처럼 여러 종교에서 비슷한 위격의 신이 종교끼리 섞이면서 동일시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
  • [8] (출애굽기 16:11~15)
  • [9] 이걸 생각한다면 하느님 아버지, 하느님의 아들이란 개념이 구약에서 없던 갑툭튀라는 주장은 할 수 없다.
  • [10] 다만 신흥종교가 기존의 종교에 영향을 받거나 기존 종교의 교리, 가르침 등을 종종 인용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보면 드문 일이 아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기독교 역시 당시 기준으로서는 신흥 종교였다.
  • [11] 코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오, 성서의 백성들아! 너희 종교를 과시하지 말고,하나님께 진리 이외의 다른 어떤말도 하지말라.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하나님의 사도였을 뿐이며,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을 행하신 것이고,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 것이다. 출처.
  • [12] 코이네 그리스어로 네 글자라는 뜻.
  • [13] 모음 기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은 중동 지역 문자의 특징이다. 현대 아랍어에서도 의미를 명확히 할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는 꾸란 외에는 자음만 나열하는 것이 대부분. 하지만 아랍어에는 나름대로 모음이 붙는 규칙이 있어서 규칙에 따라 단어가 파생되기 때문에 원어민들은 읽는데 별 어려움이 없지만, 외국인에게는 이만큼 지독한 언어도 없다. 어떤 단어든지 일단 외우지 않으면 쓰여있어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원어민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모음 기호를 병기하면 글자를 읽기 굉장히 어려워진다(…).
  • [14] 사실 영어식으로 하면 지호바에 가깝다(...)
  • [15] 사실 정확한 발음은 야훼(YHW/H)가 아니라 야웨(YH/WH)다. 히브리어에는 훼라는 발음이 없다. 그래도 이미 익숙해져서 여호와, 야훼, 야웨가 두루두루 사용되는 상황.
  • [16] '야베'라는 주장도 있다. Yah-weh는 두 음절 단어이고, w는 이디시어 '와우'가 아니라 현대 히브리어 '바브(vav)'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 [17] 가톨릭, 루터교회의 경우는 제2계명, 성공회를 비롯한 기타 개신교와 정교회와 유대교의 경우에는 제3계명.
  • [18] 일부 보수적인 목사들은 이걸 가지고 표준새번역은 자유주의 사상에 물들었다고 까기도 했다. 에라이...
  • [19] 가끔 왜 신(神)으로 번역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한자의 신(神)은 god보다는 spirit이나 ghost의 개념이다. 과거 한국 가톨릭에서 성령(스피리투스 상티)을 '성신'으로 번역한 것이 그 예. 다만 이후 神이라는 한자의 뜻이 god 의미가 강해졌을 뿐이다.
  • [20] 가끔 하나님이나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그리스도교가 근래에 만들어낸 신조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라는 표현 자체는 그리스도교의 전래 이전에도 한국에 있던 표현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시인 '노계가'에서도 확인되는 나름 유서깊은 표현이다. 제일 왼쪽 열을 참고.
  • [21] 개신교는 하나의 교단이 아니므로 의견 통합이 힘들다.
  • [22]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길로 주장하고 있으니 이게 틀린 얘기라는 괴이한 주장이 있는데, 삼위일체 교리를 접어두고 생각하더라도 예수를 믿고 야훼는 안 믿는다는 건 애초부터 성립불가다.
  • [23] 다만 맨 마지막 문단의 설명처럼 예전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면벌부 판매나 돈 받고 세례주는 등의 중세 가톨릭의 부조리는 차치하고서라도 가톨릭의 교리 자체가 어떻게 보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와 구원 문제에서 교회의 역할과 7성사(특히 세례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 입장에서는 이를 변형된 행위구원론, 혹은 구원에서 인간의 역할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여겨 껄끄럽게 볼 수가 있다.
  • [24] 물론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스스로의 길을 '구원의 필연성'으로 두고, 다른 종교나 믿음 혹은 무신론에서도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생활(아마도 사랑)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이게 만인존중사상과 더불어 '타종교를 존중하는 태도'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자세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항목을 참조하자.
  • [25] 게다가 모든 기독교의 공통된 교리는 삼위일체이며, 이에 따르면 야훼는 예수와 동등한 한 위격이다.
  • [26] 가톨릭의 경우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을 통하여 비신자들의 구원에 대해 긍정적인 해석이 나왔으며, 결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비신자들의 구원 가능성을 분명하게 인정하였다. 다만 가장 올바르고 정석적인 구원의 길이 가톨릭 신앙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명시하였다. 자세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항목을 참조.
  • [27] 개신교에서는 연옥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믿는다. 게다가 근본주의 개신교 교리상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를 향한 믿음 뿐이고, 제아무리 의인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고 죽으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천국에 갈 방법이 없다고 하니 반박의 여지가 없다.
  • [28] 고니시의 경우에는 근본주의 개신교 입장에서는 구원을 얻지 못했다고 보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고니시는 근본주의 개신교에서 그렇게도 싫어하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
  • [29] 한국 내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한국 기독교 장로회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 [30] 우리나라의 경우도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인 예장, 순복음, 성결, 감리교 등등의 대부분이 보수적 근본주의를 표방하며, 하다못해 ccc와 같은 개신교 계열 대학 선교 단체조차 보수적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실정이다.
  • [31] 때문에 예수는 그냥 예수이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
  • [32] 예수 그리스도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모든 인류의 죄가 사해진 후 베드로의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자기 사건 이후이다.
  • [33] 구약에서 가장 대표적인 변곡점이 바로 느헤미야서이다. 구원의 대상인 유대인의 기준이 혈통적인 유대인에서 종교적인 유대인으로 넘어가는 상황이기 때문. 물론 이 전의 율법서들을 읽어보면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친절히(?) 설명이 되어있다. 즉 유대인 아니면 구원 못 받나요?라는 질문에, 유대인이 되세요로 대답한 것.
  • [34] 모세가 하긴 했지만, 하느님에게서 힘을 받은 것이므로.
  • [35] 여기서 소돔과 고모라는 대도시였다는 사실을 유념하자.
  • [36] 그런데 이런 해석은 어디가서 함부로 주장하면 안된다. 이 내용을 정리하면,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곧 선하지 않은 것이고, 그게 바로 지옥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런게 바로 불신지옥과 일맥상통하는 논리인 것이다. 그러니 '신에 대한 믿음'과 '선악에 대한 판단'을 동일시하는 것은, 자칫 불신자는 선하지 않다는 식의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이 있는 일이란 것을 기억하자. 다만 가톨릭의 경우는 이 문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1.사람이 착한건 하느님의 은총 2.따라서 선한 사람은 의식하지 않아도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 3.따라서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무신론자이거나 이교도인 사람중에 무의식적인 그리스도인이 숨어 있을 수 있음.) 이 이론을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이라고 한며 신학자 '칼 라너'가 주장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의 영향으로, 타종교인과 무신론자의 구원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명시했다.(다만 공의회에선 다소 애매하게 표현했다)
  • [37] 그러나 사실 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단지 지엽적인 견해차일 뿐, 어차피 둘 다 기존의 '신명론(도덕이 신에게 종속된 것이라는 주장)'의 입장을 답습한다는 점에서 그 근본논리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어느 쪽이든 야훼가 선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야훼가 하는 일이 선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도덕을 객관화할 수 없는 임의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경우 그 누구도, 심지어 야훼 스스로조차 옳고 그름의 절대성을 보장할 수 없게된다.
  • [38] 다만 이 구절은 개역이나 개역개정판의 번역 기준으로 영어성경이나 새번역 성경을 보면 뉘앙스가 좀 달라진다. NIV기준으로는 이 구절이 "I'm that I am." KJV기준으로는 "I'm who I am." 새번역 기준으로는 "나는 곧 나다"이다.(...) 이쪽 번역이 보다 더 단순해 보이지만 그냥 존재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의미까지 더해진 초월적인 존재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 [39] 제우스, 바알, 심지어 태양신 라까지
  • [40] 이우혁은 이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설명이 감명이 깊었는지 퇴마록에도 비슷한 '스스로 존재하는 자들'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복수형으로 보아 유일신은 아니지만 다른 신이나 악마들보다는 더 상위의 존재들로 언급된다.
  • [41] 엄밀히 말하면 신약에서는 야훼 자신 대신 예수성령이 등장하게 되어 그렇다.
  • [42] 기독교의 주석에는 그 '질투'가 열등감의 소산에서 나오는 즉, 연인의 바람을 질투하는 그 질투가 아닌 다른 고차원의 질투라고 설명하고 있다.
  • [43] 노아 홍수처럼 싹쓸이 살육은 숫자 추산이 되지 않는다.
  • [44] 카더라가 아니다. 성경 내에서 야훼가 사람을 쳐죽일 경우 그 죽인 수를 자랑스레(...) 기재해 놓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경을 근거 자료로 삼아 숫자로 추산될 수 있는 야훼의 의한 사망자들을 합치면 실제로 대략 200만명이 넘어간다.
  • [45] 사실 이런 부분은 이슬람교가 이블리스의 개념으로 기독교보다 훨씬 깔끔하게 정리해 버린 바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알라가 이블리스의 행동을 용인하기 때문에 야훼와 같은 모순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이는 실상과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이블리스 항목을 참조할 것.
  • [46] 욥기에서의 베헤모스라든가. 다만 욥기는 장르가 역사서가 아니라 문학서(지혜서)에 속하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상당히 골룸해질 수도 있다.
  • [47] 요한묵시록의 악마의 나라도 로마가 아니라 바빌론이다.
  • [48] 간단히 말해, 파라오가 반항하도록 일부러 파라오의 마음을 조종해놓고, 그 반항하는 파라오를 꺾기 위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릴 것인데, 이러한 짓을 해야 이집트인들이 자신의 대단함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
  • [49] 공동번역 성서에서 의도적으로 완곡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개역개정판에는 노비로, 영문 성경에는 slaves로 나와 있다.
  • [50] 타민족이 화평을 맺겠다고 하면 노예로 만들고, 안 맺겠다고 하면 쳐죽인다. 고자되기 vs 고자되기
  • [51] 야훼가 인신공양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 [52] 종을 때려 죽이면 형벌을 받지만, 하루나 이틀 연명하면 형벌을 면한다. 다시 말해, 죽지 않을 만큼만 패면 괜찮다는 이야기. 그리고 명백하게 노예는 재산이기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 [53] 요약하면 동성애자는 쳐죽여야 할 천하의 개쌍놈들이며 천국은 국물도 없다는 것.
  • [54] 마르시온같은 사람.
  • [55] 유대교, 이슬람교의 관점이나 타 그리스도교 종파의 관점은 추가바람
  • [56] 구약 시대에선 돼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 [57] 레위기가 쓰여지기 전에는 누이랑 결혼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 [58] 예를 들어 불교의 절
  • [59] 취소선을 긋긴 했지만 헛소리가 아니다. 혹자는 이런 발언을 종교에 대한 비하적 사설이라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그러한 주장이 현대의 인간 윤리와 헌법에 대한 비하적 사설이다(...) 전근대도 아닌 21세기 현대에는 당연히 현대 인간 윤리 및 법이 지배하는 세계이고, 현대 사회에서 저렇게 근본주의 성령이 충만해서 엄연히 문화재인 타종교의 사원이나 신상을 때려 부수는 등의 짓을 하면 매우 높은 확률로 법에 의해 범죄자가 되어 사회로부터 유리되거나, 사회적으로 비윤리적이라 지탄 받고 심하면 사회적 매장을 당할 수도 있다.
  • [60] '일부' 라고 한 까닭은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는 근본주의에서는 그런 거 없고 무조건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때문. 이러한 관점을 취하고 있는 신학은 민중신학 및 해방신학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에큐메니컬 신학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학도 포함된다. '하느님 나라 신학'을 설파하는 숭실대학교 교목실장 김회권 교수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 [61] 이러한 관점은 노선이 다양하여 하나로 묶기가 곤란하다. 진보적인 신학 노선을 취하는 경우도 있고,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과 같이 아주 급진적으로 나가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신학 노선을 취하는 경우도 많아서 개신교계에서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경우에도 이러한 관점을 취하는 경우도 있고, 가톨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복음주의 신학 입장을 취하고 있는 김회권 교수가 신자유주의=사탄이라는 등식을 세워 놓고 저서나 설교, 채플, 심지어 수업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리에서 신자유주의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나, 역시 보수적인 편인 프란치스코 교황신자유주의 체제와 IMF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62] 히브리의 어원을 하비르(혹은 아비르)와 동일시 하는데 역사학자들도 대부분 하비르와 히브리 와 동일개념이라고 말해도 부인 못할 정도로 많이 닮아있음을 인정한다
  • [63] 여기에 대해서 보충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에큐메니컬 진영의 들꽃향린교회 김경호 목사는 그의 저서 '야훼 신앙의 맥' 에서 다른 신들은 가난하고 힘없고 박해받는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지배 계층의 온갖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신이지만 야훼는 그렇게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들의 편에 선 신이라 주장했다. 한편 에반젤리컬 진영의 김회권 교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런 불의한 체제 질서를 뒤집어 엎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상, 곧 하느님(하나님) 나라를 열어 주는 신이라는 뜻에서 야훼를 '체제 전복적인 창조의 하느님'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64] 특히 예리코 성과 같은 가나안의 체제는 김회권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낡은 가죽부대'로써,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불의한 체제이다.
  • [65] 2012년 3월 27일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김회권 교수는 판관기(사사기) 제 4장을 주제로 설교하면서 '철병거' 로 대표되는 가나안 체제는 곡식, 곧 재물을 독점하는 불의한 체제였고, 그런 가나안 체제에 맞서 싸우는 히브리인들의 투쟁은 그런 체제를 때려 부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 [66] 그 당시 이집트의 신의 개념과 신격화된 왕의 개념을 보면 된다.
  • [67] 비(非) 그리스도교인들 중, 야훼의 이러한 면모에 비판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무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 등등을 포함할 수 있다.
  • [68] 바빌론 유수페르시아에 지배를 받은 것, 이집트에 대한 기록 등은 개략적으로 성경에도 나와 있긴 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이집트 총리 대신을 역임했다는 요셉부터, 모세, 아론여호수아 등등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 왕조의 기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은 그 자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해가는 과정까지 기술한 사람들로서, 그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하여 기록을 누락시켰다는 개신교인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밖에도 다니엘서에서 짐승으로 변했다고 묘사하는 느부갓네살은 해당 시기에 멀쩡하게 옆 나라 왕과 영토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으며, 성경과 비슷한 내용은 보이지도 않는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짐승으로 변해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왕이 짐승으로 변했다는 디테일한 기록은 무리이더라도 최소한 대리 통치인이나 섭정이 바빌론을 통치했다는 기록이라도 있어야 정상이다. 아니, 그 이전에 느부갓네살이 총애했다던 다니엘에 대한 기록도 바빌론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히브리 여인으로서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의 둘째 왕비가 되었다던 에스더의 기록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내용과 상충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는 왕비가 교체된 적이 없으며, 그 왕비는 페르시아 장군의 딸인 후타오샤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 [69] 그러나 이전에(아니, 사실은 그 당시에도 공식적으로는), 성경에 의하면 아합의 왕비 이세벨의 명령으로 바알의 신관들과 아세라의 신관들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여, 야훼의 예언자들을 탄압하였다. '그렇게 너희들이 등에 업고 있는 신이 이거 하나 안해주느냐'는 의미의 조롱으로 보면 되겠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당했으니 니들도 당해봐라 하는건 좀...
  • [70] 거증 책임은 있다고 주장하는 자에게 있으므로, 가나안의 사회 체제가 불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싶으면 덮어놓고 우길 것이 아니라, 증거로서 역사적 사료를 가져오면 된다.
  • [71] 고스비를 비롯한 미디안 여자들이 히브리족 남자들을 유혹하여 음행을 저지르고 우상을 숭배하게 했다는 것인데, 민수기 31장 시점에서 당사자인 미디안 여자들과 고스비는 이미 야훼에 의해 고인이 된 지 오래다. 해서 미디안 족 일부 여자들의 잘못으로 해당 사건의 당사자도 아닌 수많은 미디안족들을 학살하며 아이들마저도 처녀를 제외하면 다 죽이라고 하는 것은, 합리화가 불가능한 부분이다.
  • [72] 애시당초 성전에서의 일은 아론 혈통의 신체적 장애/병환이 없는 제사장만 가능하다.
  • [73] 사실 야훼가 이러한 변명을 하는 것은 성경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성경/논란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탈출기에 야훼 스스로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야훼의 말을 듣지 않게 해 놓고, 파라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며 이집트에 재앙을 내린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서도 야훼는 이집트 사람들이 나를 야훼임을 알게끔 하려고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한다.(…)
  • [74] 야훼는 전능하여 무엇이든 할 수 있으므로, 그가 '가나안의 인간들을 교화시켜야겠다' 내지는 '최소한 젖먹이 아기들이라도 교화시켜야겠다'라고 마음만 먹었어도 그대로 되었을 것이다.
  • [75] 즉 교황의 이 발언을 두고, '그렇다고해서 그 행위가 정당화되는건 아니다'라고 반론하는 것은 살짝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
  • [76] 다만 오해와는 달리 '유기적 영감설' 자체는 결코 최근에 갑툭튀한 개념은 아니며, 초기 교부인 아우구스티노 같은 이들에게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는 학설이다.
  • [77] 후술하겠지만 이건 문자 그대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 [78] 각기 다른 두 주장에 대해 각기 다른 두 반박을 존재한다고 해서 자가당착이라고 한다면, 애초에 서로 다른 두 입장이 같이 존재하는 기독교 자체부터가 자가당착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 [79] 유기적 영감설을 지지하는 한국내 가장 큰 교파인 한국 기독교 장로회(이하 기장)와 성공회조차 야훼는 분명히 실존한다는 것이 교단의 공식 입장이다.
  • [80] 종교적 입장은 여기에 기술하지 말 것. 하더라도 '종교인은 이렇게 주장하는데, 여기에 대한 비판은 이렇다' 정도로만 언급하자. 종교적 견해는 다른 문단에 적고, 이 문단에는 비종교적 견해를 적을 것.
  • [81] 마찬가지 맥락으로 구약 성경에서 야훼는 박쥐를 새라고 하고 곤충의 다리를 4개라고 하는데, 전능자인 야훼가 실존하고 성서무오설까지 옳다면 해당 구절들은 나올 수가 없다. 온 우주를 창조한 존재가 박쥐가 포유류인 사실을 몰라서 새라고 하거나 자신이 창조한 곤충의 다리가 몇 개인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은 그냥 당시 히브리인들의 지식 수준이 그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 [82] 물론 이 야훼가 실존한다고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서 별개의 문제다. 단군 신화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단군 신화를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듯이.
  • [83] 앞서도 서술했지만 개성이 아니라 시대적 한계에 가깝다.
  • [84] 본 리그베다위키 포함
  • [85] 다만 신약의 공관복음서는 어느정도 '선교용'으로 쓰였다.
  • [86] 종교적 시각을 제거하고 보면 이렇다.
  • [87] 인터넷 초기에 에루를 하느님으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적도 있다. 결론은 톨킨의 의도상으로는 하느님이 맞을수는 있어도 오해의 여지등등의 이유로 번역을 한하고 그냥 에루로 부르자가 나왔다. "에루 - 일루바타르"의 번역으로 "하느님 - 만물의 아버지"로 하는게 어떠냐는 말도 나왔다. 물론 너무 지나치게 해석한다는 견해가 많아서 채택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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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함 계통의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