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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샤 키스

last modified: 2015-04-11 13:47:22 Contributors


Contents

1. 음악 인생
1.1. 데뷔 전
1.2. 음악 커리어
2. 디스코그래피
2.1. 앨범
2.2. 싱글
2.2.1. 빌보드 1위
2.2.2. 빌보드 2위
2.2.3. 빌보드 3위~10위
2.2.4. 빌보드 11위~20위
3. 실력
3.1. 보컬
3.2. 작곡가
4. 결혼
5. 가족 관계

본명 Alicia Augello Cook
출생 1981년 1월 25일
출생지 미국
168cm
장르 R&B, Soul, Pop
데뷔 1996년 맨인블랙 OST 참여

1. 음악 인생

미국의 R&B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 R&B의 여왕. 빌보드에서 2000년대에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5인중에 한명으로 선정했다. [1] 00년대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흑인 여성 가수이다. 최고의 권위있는 시상식인 그래미 어워즈를 통산 15개나 수상하며 대중들과 평론가들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한국의 팬들 사이에서는 '열쇠'란 애칭을 갖고 있다.[2] 또한 국내 네티즌들 사이에 '흑인치곤 예쁜 여자'로도 유명하다(...).[3] 십 여년에 걸쳐서 그녀의 백업보컬로 활동했던 저메인 폴은 미국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더 보이스'에서 알켈리의 I Believe I Can Fly를 열창해 우승을 차지했다. [4]

1.1. 데뷔 전

엄마는 아일랜드계 백인, 아빠는 흑인이다.[5] 앨리샤는 두 살때 아빠와 헤어지고 싱글맘이 된 엄마에게 슬하에서 자랐는데 그녀의 엄마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앨리샤에게 피아노 레슨은 꼬박꼬박 시켜줬다고 한다. 무법천지인 뉴욕 슬럼가의 헬스키친에서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항상 총을 휴대했다고 한다. 공부도 매우 잘한 그녀는(대표적인 엄친딸....) 미국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컬럼비아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나 학교에서의 교육이 자신의 창조성을 헤친다고 판단하여 중퇴하였다고 한다.

1.2. 음악 커리어

그러다 앨리샤 키스는 1996년에 콜럼비아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맨인블랙 OST에 참여하며 메이저에 데뷔하였다. 그러나 선배디바들과 같이 보컬을 강조한 디바로 키우려 했던 레이블과 달리 그녀는 스스로 작곡을 하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레이블 담당자가 그녀가 만든 Fallin'을 뻇아서 다른 신인 가수에게 주려하자 앨리샤 키스는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클라이브 데이비스[6] 가 설립한 J레코드의 첫번째 아티스트로 계약했다.



이어서 2001년에 첫 앨범 Songs in A Minor를 발표하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본래 앨범의 제목은 'Soul in A Minor'이었지만, 메인스트림 라디오에서 그녀의 음악을 틀어주지 않을 것을 의식해 현재와 같은 타이틀로 변경됐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 동료가수였던 인디아 아리[7]등과 함께 오프라윈프리쇼에 출연했는데, 여기에서 부른 Fallin'이 미국 시청자들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신인 가수임에도 스스로 작사,작곡, 프로듀싱까지 해내는 그녀의 천재성은 언론과 대중들의 큰 호응을 이끌어낸다. 오프라쇼에 출연한 이후 1집 앨범의 선주문이 3배 이상 증가했으며, 발매와 동시에 235,000장의 판매고로 1위로 데뷔했다. 그리고 입소문은 더욱 퍼지며 둘 째주에는 4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로도 그녀의 성공은 탄탄대로였다.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올해의 노래와 신인을 비롯해서 5개 부문을 거머쥐며 전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때부터 앨범만 냈다하면 그래미를 우걱우걱) Songs in a Minor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740만장 [8], 전세계적으로 1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흑인 소울의 감성과 고전적인 클래식, 그리고 재즈를 두루 선보인 수작. 데뷔 앨범에서 선보인 레게 머리와 카우보이 모자, 그리고 특유의 보이쉬한 스타일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000년대 초 국내에서도 흑인음악이 크게 각광을 받을 떄 유수한 알엔비 가수들이 앨리샤 키스의 음악과 패션에 영감을 받았다.



2003년 12월에 발매된 2집 앨범인 The Diary of Alicia Keys 역시 엄청난 반응을 일으키며 첫주에 618,000장을 팔아치웠다. 평단의 평가도 전작보다 더 찬양일색이었으며, 그래미 어워즈에서는 이번에도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빌보드 뮤직어워즈 7개부문을 석권했다. 앨범 뿐만 아니라 싱글도 성공적이었는데, You Don't Know My Name, If I Ain't Got You, Diary, Karma가 모두 Hot 100 20위 안에 랭크되었다. 특히 그 중 If I Ain't Got You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수 많은 유명가수들이 이 곡을 커버했으며, 미국 현지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당골로 등장한다. 미국에서 약 480만장, 세계에서 9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녀가 일기를 쓰듯 매우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으며 기존의 알엔비 기반을 유지하되 60~70년대의 복고적인 감성을 더한 앨범이다.



2005년 자신의 첫 라이브 앨범인 Unplugged 를 발표했다. [9] 그녀의 인기에 힘입어 정규앨범이 아님에도 약 20만장의 판매고로 빌보드 차트 1위로 데뷔하였다. 미국에서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전세계에선 200만장이 판매되었다. 기존의 히트곡들과 몇 곡의 신곡을 더한 앨범으로 그래미어워즈에서 4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다. 같은 해에 키스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내한콘서트를 열었다.



2007년에 발매된 3집 앨범인 As I Am 역시 전작들과 같이 초 대박을 기록했다. 특히 히트 싱글인 No one은 빌보드 5주 1위를 기록하면서 엄청나게 잘 나갔다. [10] No one은 알리샤를 가장 대표하는 히트곡이며 2000년대 결산 6위, 2013년 빌보드55주년 기념 최고의 100곡에서 역사상 48번째로 성공한 노래로 선정되기도 하며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As I Am은 발매 첫주에 75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전작의 초동을 뛰어넘었다. 미국에서 총 380만장이 팔리며 빌보드 연말결산 1위를 차지했고 전세계적으로 6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에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그녀는 이듬해 그래미 어워즈에서 오프닝공연을 비롯, 3곡을 열창해 언론으로 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으며 에이미와인하우스, 리오나 루이스 등을 제치고 007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11] 본 앨범으로 그래미어워즈도 3개를 추가했다. [12] 이 때부터 그녀의 음악은 팝적인 성향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U2등의 영감을 받아 록을 접목시키기도 했다. [13]



2009년 12월 마지막 주 발매된 4집 The Element of Freedom은 첫 싱글인 Doesn't Mean Anything이 충공깽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알리샤 키스 싱글들 중 가장 망하는 바람에 싱글들이 전체적으로 묻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래도 앨범은 잘 팔렸다. 전작들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그래도 2009년 당시가 워낙 음반 시장이 불황이었던 터라.. 미국에서 첫주에 42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총 160만장, 영국에선 100만장이 팔렸고 전세게적으로 40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다.[14] 기존의 3집과 비슷한 음악을 이어갔지만 이번에는 얼터네이티브 록음악을 접목했다. 이러한 시도때문인지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많은 앨범이였다. 영국에서는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엑스펙터에 출연해 히트곡 메들리를 열창했는데 대중으로 부터 굉장히 큰 주목을 이끌었다. 이에 힘입어 1집 이후 처음으로 영국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초대박을 터뜨렸다.[15] 이 시기에 제이지에 퓨처링을 해준 'Empire State Of Mind'도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으며 그녀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16]그래미 어워즈에서 2개 부문을 수상했다. [17]



2012년 5번째 정규앨범 'Girl On Fire'를 발표하였다. 첫 싱글인 동명 타이틀의 Girl On Fire가 전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18] 앨범도 첫 주에 16만장의 판매고로 1위로 데뷔하였다. 현재까지 미국에선 80만장, 전세계에서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본작에선 자신의 영향력을 줄이고 영국의 흑인 뮤지션인 에밀리산데와 싱어송라이터 브루노마스등 외부의 작곡자들과 공동작업을 했다. 타이틀곡을 비롯한 상업적인 곡도 실렸지만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다소 실험적이고 마이너하다는 팬들의 의견이 많았다. 이에 따라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저조한 차트 성적을 냈지만 망해가는 음악시장에서는 여전히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그래미어워즈에서 '알엔비 앨범'부문을 수상하는 등 좋은 평가를 받은 앨범이다. 키스는 앨범 홍보를 위해 그래미어워즈, VMA, NBA 올스타전, 아메리칸아이돌, 엑스펙터 등에 출연했으며 수퍼볼에서 미국 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2. 디스코그래피

2.1. 앨범

  • Songs in A Minor (2001) 1위
  • The Diary of Alicia Keys (2003) 1위
  • Unplugged (2005) 1위
  • As I Am (2007) 1위
  • The Element of Freedom (2009) 2위
  • Girl On Fire (2012) 1위

2.2. 싱글

2.2.1. 빌보드 1위

  • Fallin' (2001)
  • My Boo (2004)[19]
  • No One (2007)
  • Empire State of Mind (2009)[20]

2.2.2. 빌보드 2위

  • Gangsta Lovin' (2002)[21]

2.2.3. 빌보드 3위~10위

  • A Woman's Worth (2001)
  • You Don't Know My Name (2003)
  • If I Ain't Got You (2004)
  • Diary (2004)

2.2.4. 빌보드 11위~20위

  • Karma (2004)
  • Like You'll Never See Me Again (2007)
  • Girl on Fire (2012)

3. 실력

3.1. 보컬

비욘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함께 지존급 가창력으로 평가받는다. 흑인답게 그루브가 뛰어나며 음색도 매우 좋다. 다만 무리한 목 사용으로 라이브에서 삑사리가 참 자주 난다. 이는 알리샤 키스 음악의 주된 테마인 '소울' 창법 때문이기도 한데, 소울 창법 자체가 쌩목으로 긁어대는 창법인 데다가 데뷔초부터 난이도 높은 노래를 계속 공연해왔기 때문. 그리고 알리샤 키스의 트레이드마크인 피아노 역시 문제가 된다.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데, 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자세는 목, 어깨, 가슴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노래하는데 그리 좋은 자세는 아니기 때문. 한두곡 정도야 상관없지만 데뷔 이후로 계속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공연을 고수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 가만히 서서 부르기만 해도 어려운 노래들인데

비교적 데뷔 초기였던 첫 내한공연에서는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며 국내 언론과 팬들로 부터 찬사가 쏟아졌지만 3집 앨범의 투어였던 두번째 공연은 큰 화제는 되지 못했다. [22] 특히 여럿이 나눠 불러도 어려운 No One을 매 공연마다 올라이브로만 진행하며 목이 많이 상한 것 같다는 팬들의 의견도 많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라이브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대신 1~2집 때와는 달리 곡의 음역대 자체가 낮아졌다. 1~2집 때는 E5(3옥타브 미)정도 되는 음이 많았고 F5(3옥타브 파) 까지도 종종 냈는데, 이제는 D5(3옥타브 레) 이상 되는 음은 거의 쓰질 않는 듯. 1~2집 시절 히트곡[23]을 공연할 때는 백업 코러스가 노래를 많이 불러준다. 아무튼 3집 이후 팬들로 부터 우려를 받은 것에 비하면 여전히 대부분의 공연에서 라이브를 무난히 소화하고 있다. 선배디바인 휘트니 휴스턴처럼 본인의 모든 공연을 라이브로만 소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4]

3.2. 작곡가

스스로 노래를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그 유명한 If I Ain't Got You와 Fallin'을 '혼자' 만들었다! [25] 오 소울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고전적인 소울 음악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26] 고전적인 소울에 현대적인 감성의 R&B와 힙합 등을 더하는 것.

4. 결혼

지난 2010년 유명작곡자이자 프로듀서인 스위즈 비츠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스위즈가 전부인인 마숀다와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와 만남을 가져서 논란도 있었다. 최근에는 전부인도 자녀들을 동반한 채 피서지 휴가에 동참한 장면이 파파라찌에 찍히는 등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참 쿨한 서양식 마인드...) [27] 여담으로 앨리샤 키스는 사생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해서 동성애자 의혹이 끊이지 않았는데, 결혼과 함께 관련 루머는 종결된 듯 하다.

5. 가족 관계

  • 크레이그 쿡 (부)
  • 테레사 오젤로 (모)
  • 스위즈 비츠 (남편, 본명은 카심 딘)
    • 이집트 다우드 딘 (장남)
    • 제네시스 알리 딘 (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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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위는 에미넴, 2위는 어셔, 3위는 넬리, 4위는 비욘세, 5위가 앨리샤 키스.
  • [2] 그녀의 성인 'Keys'에서 따왔다.
  • [3] 소녀시대의 태연이 라디오에서 '흑인치곤 예쁜 여자'라고 앨리샤 키스를 소개하는 바람에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비난을 받았었다. 여전히 앨리샤 키스의 검색어에는 '흑인치곤 예쁜 여자'가 함께 뜬다.
  • [4] 특히 앨리샤의 2집 앨범의 히트곡 Diary가 유명하다. 이 곡으로 함께 그래미어워즈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 [5] 흑-백 혼혈의 경우 대개 스스로를 흑인으로 인식한다.
  • [6] 팝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CEO이다. 휘트니 휴스턴 등을 직접 키운 아리스타의 전사장으로 유명하다. 미국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아이돌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 [7] 데뷔 초 앨리샤 키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흑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이다. 특히 2002년 그래미어워즈에서 7개 부문이나 후보에 오르며 언론에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단 하나의 수상도 하지못하며(..) 앨리샤에 판정패를 당한다.
  • [8] 사운드 스캔에서 640만장이 집계되었으나 소니BMG사운드 클럽에서 따로 발매되 100만장이 더 팔렸다. 음반시장이 컸던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는 이런식으로 앨범이 따로 발매되었다.
  • [9] 미국의 대표적인 음악 채널인 mtv는 유명 가수와 함께 라이브 앨범을 줄곧 발매해왔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음악시장의 판매고가 저조해 더이상 발매를 하지 않다가 10년만에 알리샤 키스와 손을 잡았다.
  • [10] 2위도 7번이나 했다. 앨리샤 키스는 1위도 많이 했지만 유독 2위도 많이 했다. Fallin'도 1위를 6번했지만 2위도 5번이나 했다. 본 3집 앨범 역시 4주간 1위를 했지만 조쉬그로반의 캐롤음반과 경쟁하며 2위를 7번이나 했다.
  • [11] 이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에이미와인하우스는 키스의 음악이 매우 지루하다며 디스하기도 했다..
  • [12] 본작의 수록곡인 No One과 Superwoman으로 2년연속 알엔비 여성 보컬을 수상한 것이 특이하다
  • [13] The thing about love나 Go ahead 등이 대표적이다
  • [14] 하지만 대진운이 나빠서 무려 40만장이 넘는 판매고로도 2위에 그쳤다. 당시에 오디션 신드롬을 일으켰던 수잔보일의 데뷔 음반이 1위를 차지했다.
  • [15] 영국에서 1집은 120만장, 2집은 55만장, 3집은 40만장, 4집은 100만장, 5집은 25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4집은 음반시장이 많이 축소된 시기에 발매되었기 때문에 1집보다 더욱 큰 상업적인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 [16] 이 곡에서 가장 유명한 그녀의 코러스 파트는 키스가 직접 작곡했다.
  • [17] 그녀의 커리어 중 유일하게 알엔비 이외의 장르에서 그래미어워즈를 수상한 곡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알엔비 아티스트인 그녀는 Fallin'이 올해의 노래, 신인상을 받았고 Empire State of Mind가 올해의 랩과 퓨처링부문을 수상했으며 나머지는 알엔비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주로 활동한 2000년대 초중반에는 빌보드 차트 30위안에 20곡이 흑인음악이였을 정도로 매우 경쟁이 치열하였다.
  • [18] 빌보드 차트 11위에 그쳤지만 굉장히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미국에서 350만건의 판매고를 올렸다. 당시 높은 디지털 싱글 판매고와 라디오 방송횟수로 차트 상위안에 드는 것이 당연한 인기였지만 빌보드 차트가 갑작스레 룰을 변경해 유튜브 조회수를 적극 반영하며 결국 톱텐에도 들지 못하고 말았다... 그밖에 유럽 전역과 남미, 아시아 일부에서도 히트했다. 브라질에서는 인기 드라마 주제가로 삽입되 티비에서 지겨울정도로 나왔다고 한다..
  • [19] 어셔와의 듀엣.
  • [20] Jay-Z의 싱글을 피쳐링.
  • [21] Eve의 싱글을 피쳐링.
  • [22] 첫 공연의 경우 If I Ain't Got You가 국내에서도 메가히트한 직후 공연을 치룬 탓도 있는듯 하다.
  • [23] Fallin', If I Ain't Got You 등
  • [24] 많은 디바들은 목관리 차원으로 립싱크 공연도 많이 하는 편이다.
  • [25] 미국 팝은 한 곡 마다 4~5명씩의 작곡가가 달라붙어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 [26] 그래미 자체가 보수적인 곳이라서 테일러 스위프트, 노라 존스, 비욘세, 아델, 앨리샤 키스 등 고전적인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아티스트들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 [27] 외국에서는 별거를 한 뒤 한참 뒤에 이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