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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페티트

last modified: 2015-03-19 16:11:31 Contributors


이름 앤디 페티트 (Andrew Eugene "Andy" Pettitte)
생년월일 1972년 6월 15일
국적 미국
출신지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주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20라운드
소속팀 뉴욕 양키스(1995~2003)
휴스턴 애스트로스(2004~2006)
뉴욕 양키스(2007~2010, 2012~2013)

뉴욕 양키스 영구결번
No.46

Contents

1. 개요
2. 뉴욕 양키스 데뷔
3. 휴스턴 애스트로스 이적
4. 뉴욕 양키스 컴백
4.1. 2012시즌, 은퇴를 번복하다
4.2. 2013시즌, 견제신의 진짜 마지막 시즌
5. 플레이 스타일
5.1. 견제의 달인
6. 약물 관련 논란
7. 기타


1. 개요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서 뛰었던 투수. 등번호는 46번을 달고 뛰었다.[1] 2004년에 로저 클레멘스를 따라가 3년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뛰긴 했으나,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호르헤 포사다 등과 함께 양키스 프랜차이즈 Core 4로 불리우며 90년대 중반 이후 양키스의 전성시대를 이끈 주역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007년 발표된 미첼 리포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자로 지목되어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겼다.

국내 한정 별명은 견제신.

2. 뉴욕 양키스 데뷔


1990년 뉴욕 양키스에 지명되어 91년 입단하였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평범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조금씩 발전을 거듭하며 95년 빅리그로 콜업되어 선발로테이션에 합류, 12승을 거두며 무난한 데뷔시즌을 보냈으며 이듬해인 1996년 21승을 거뒀지만 사이영 상을 수상하는데는 실패한다. 이 해에는 타고투저 흐름도 있고 해서 사이영상 경쟁이 높은 편이 아니었는데, 페팃은 20승 10패 3.22의 방어율을 기록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우완투수 헨트겐에 밀려서 총 득표수 10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97년 이후 앤디 페팃은 약선배 로저 클레멘스가 합류한 뉴욕 양키스의 2선발로 자리잡아 2003년 시즌까지 9시즌 동안 2번의 20+승을 포함해 통산 149승 78패 방어율 3.94로 9년동안 평균 16승과 많은 이닝을 책임질수 있는 능력으로 선발투수진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4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시즌이 많았으나 라이브볼 시대 초창기 이후 최악의 타고투저였던 1990년대~2000년대에 살아남아 선발로서 롱런한 투수이다. 비록 약물을 복용한 경력이 있는 선수이긴 하지만 리그에서 손꼽히는 타자구장인 양키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면서 꾸준하게 선발진에서 던져줬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또한 경기 중에서도 급작스럽게 마구 무너지는 일이 극히 드물며 언제나 경기당 5~7이닝은 꾸준히 먹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높게 평가할 만 하다. 거기에 플레이오프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4번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와 6번의 아메리칸리그 우승의 중추가 되었다.

3. 휴스턴 애스트로스 이적


03년 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이적한다. 당시 팔꿈치 부상 문제로 페티트와의 재계약 문제에 비교적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팀의 자세에 실망하고 고향에 가까운 팀인 휴스턴으로 떠난 것이다. 페티트의 FA 이적 보상픽을 얻은 양키스는 2004년 드랩에서 필 휴즈를 지명했다. 이적한 첫 해에는 양키스에서 문제로 삼았던 팔꿈치 부상이 불거지며 8승으로 부진했으나 이듬해 다시 제 모습을 찾아 종전의 성적 이상을 내며 팀에서 로이 오스왈트, 로저 클레멘스와 더불어 최강급의 선발진으로 활약하게 된다.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여 준우승도 차지하는 등 견실하게 활약했다. 여담으로 이 시절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몸담고 있던 박찬호에게서 커리어 첫 홈런을 쳐내기도 했다.

4. 뉴욕 양키스 컴백


06년 시즌오프후 3년간의 외도를 마치고 친정팀인 뉴욕으로 복귀하여 꾸준한 성적을 냈으며 2010년까지 4시즌을 뛰면서 4선발로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한몫 하였다. 4시즌 통산 54승 34패 방어율 4.08로 3~4선발급 꾸준함을 보여준 페티트는 2010년 시즌을 마치고 동료들에게 은퇴한다는 말을 해 은퇴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였다. 구단 측에서는 클리프 리를 붙잡는데 실패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지며 은퇴를 만류하고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2010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양키 망했어요...
그래서 양키스 11시즌 선발은 07년도 만큼이나 처참한 수준... 인줄 알았는데 영건 이반 노바줄기세포 기적이 약으로 드러난바톨로 콜론-레디 가르시아가 대박이 나면서 일단은 잘 버텨냈다.

은퇴의 사유로 지적되는 것이 약쟁이 로저 클레멘스. 페티트는 로저 클레멘스의 스테로이드 투약 사실을 증언했고, 클레멘스는 어떻게든 페티트를 깎아내려서 무죄판결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이라 클레멘스와 싸우면서 야구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듯. 그래도 양키스에선 레전드 대우를 해주는지 2011 ALDS 2차전의 시구를 맡기도 했다. 포수는 친구인 호르헤 포사다가 맡았는데, 당시 포사다도 은퇴 압박을 적잖이 받았음을 생각하면 양키 올드팬들로서는 가슴아픈 일이라 할 수 있겠다.

4.1. 2012시즌, 은퇴를 번복하다

...였는데 2012년 3월 중순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으며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메이저리그 승격시 $2.5M이 보장되는 계약이다. 대략 계약 3주 전 즈음부터 현역 복귀를 고려하고 있었다고. 마이너에서 몸을 만드는데 좀더 시간이 걸릴 것임을 생각하면 시즌 중반 포스트시즌 레이스를 위한 히든카드알바의 역할을 하거나 왼손 릴리버 노릇을 하게 될 것으로 보였지만 사바시아-구로다-피네다-노바-휴즈/르시아로 구성된 5인 로테이션 중 피네다는 몸이 심하게 불어서 나타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며, 휴즈/가르시아는 2012년에도 전과 같은 활약을 해줄거라 확신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30대 후반에 접어든 구로다가 동양인 투수들의 조로 증상을 보일지 여부도 확신하기 어려웠던 터라 베테랑 페티트가 돌아온 것은 선발 뎁스를 확실하게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구로다 - 피네다 딜이 진척되기 이전인 2011년 연말부터 양키스와 접촉하고 있었다고 한다.

은퇴한 해인 2010년에 받았던 11M 수준의 연봉을 제시받았지만 자신이 아직도 야구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달라고 했고 양키스 측이 구로다 - 피네다 딜이 완료되면 선발투수 자리도 없고, 페이롤도 다 차는 만큼 그 이전까지 답을 달라했지만 두 딜이 완료된 시점까지 양키스 측 오퍼를 승낙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2012년 2월 스프링캠프에 인스트럭터로서 참가했고, 3월 시범경기 기간에 비공개 불펜 세션을 가진 뒤 계약에 동의했다. 베테랑 불펜 포수인 로만 로드리게스가 그의 공을 받아본 뒤 "은퇴한 적이 없는 것처럼 던진다"는 인터뷰를 했고 본인 역시 "내 공 좀 좋은듯" 하는 거 보면 립서비스 성일수도 있겠다만 몸관리는 잘한듯. 콜업을 위해 하체 운동 열심히 한 모양이다.

마이너리그 피칭을 거친 뒤 5월 13일 시애틀전 선발투수로 등판해 6⅓이닝 7피안타 3볼넷 4실점의 그저 그런 결과를 거뒀으나 다음 경기인 신시내티전에서는 8이닝 무실점 9삼진으로 호투했다. 무엇보다, 1년 맹탕 쉬고 온 양반이 최고구속 91마일에 평균 87.5마일의 패스트볼을 찍는다는 게 참... 그러나 현지 시간 6월 27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 타구에 맞은 발목이 부러져 6주 진단을 받았다.

나이 탓인지 복귀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 9월 19일이 돼서야 복귀했다. 그리하여 12경기 5승 4패 2.87로 은퇴 번복 후 첫 시즌을 마쳤다. 시즌 첫 한달을 빠지고 중간에 석달 가까이 결장했음에도 관록투를 충분히 보여줬다.

빅게임 피처답게 포스트시즌에서도 호투를 펼쳤다. 그런데 결과는 ALDS 2차전에 나서 7이닝 3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패전을 기록했고, ALCS 1차전에서는 6.2이닝 2실점을 기록하고도 패전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9회 호세 발베르데의 불쇼 덕분에 노디시전이 된 것이 전부다. ALCS에서 양키스가 디트로이트에게 스윕패를 당함에 따라 등판 예정이었던 5차전이 치뤄지지 않으면서 포스트시즌 20승 도전은 다음 해로 넘기게 되었다.

시즌 종료 후 1년간 1200만달러(인센티브 250만달러)의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4.2. 2013시즌, 견제신의 진짜 마지막 시즌

WBC의 사령탑이 된 조 토레 감독이 WBC 참여를 권해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베테랑 좌완인데다가 한국의 봉의사처럼 견제의 달인이라 만약 한국과 붙게된다면 조금 껄끄러울수도 있을거라 예상됐지만 출전하지 않았다. 양키스 입장에서는 다행

2013시즌 정말 은퇴를 선언했던 선수가 맞는지 싶을 정도로 시즌 첫 4경기 동안 역투를 펼치며, 빈약해진 투수진과 타선진 속에서 구로다 히로키, CC 사바시아와 함께 양키스의 기둥을 맡았는데, 4월 경기에서 한가지 흠이 있었다. 4월 29일에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경기에서 친정사랑이 발동했는지 (...) 4.1이닝 동안 10안타를 맞으며 7실점을 기록해 팀의 패배에 일조했다.

2013년 6월 8일 통산 250승을 달성했다. 성장호르몬 복용 전력이라는 큰 오점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꾸준한 피칭으로 250승을 달성한 점은 그래도 호평을 받을만 하다.

그렇게 어영부영 돋보이진 않지만 딱히 흠잡을 데도 없는 공무원 피칭으로 CC 사바시아가 5점대에 가까운 ERA를 기록할 정도로 부진한 와중에 마찬가지로 마흔을 바라보는 노땅인데 젊은 것들보다 훨씬 잘하고 있는 구로다 히로키와 함께 나이 마흔을 넘겨 원투펀치 노릇을 해주며 4점이 안되는 ERA로 10승을 달성한 2013년 시즌 말, 이번에는 진짜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하는 시즌에 페티트마저 은퇴를 선언하고 데릭 지터도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의 치명적인 부상 때문에 오늘내일 하고 약을 빨았는데 기량은 더 떨어지고 있는 최고 연봉의 노동자야 말이 필요없는 지경이라 양키스의 한 시대가 마무리된다 할 수 있다. 리베라만큼 강력한 마무리야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하다 해도 현 시대에 나이 든 페티트만큼 하는 선수도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는 추세라 양키스는 그들의 빈 자리를 쉽게 메꿀 수 없어서 팬들은 이들의 은퇴를 굉장히 아쉬워했다.

9월 22일 마리아노 리베라의 은퇴식이 치뤄진 날, 마지막 양키스타디움 등판에서 7이닝 2안타의 빼어난 피칭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로버트슨에 의해 분식을 당하며 패전을 안았다. 하지만 9월 28일 한때 머물렀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원정경기에서 9이닝 5안타 2볼넷 5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며 2006년 이후 7년만의 완투승을 거두며 11승 11패로 시즌을 마감, 1995년 데뷔 이후 18년동안 모든 시즌에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게 되는 등[2] 커리어의 마지막을 완벽하게 장식했다.

5. 플레이 스타일

페티트의 패스트볼은 80마일 후반대가 주로 찍히는 정도지만, 그 패스트볼 못지 않게 빠르고 날카롭게 휘는 커터가 위력적이다. 그 덕분에 상대 타자의 배트를 부러뜨리는 것으로 유명한 배트 브레이커로 명성을 날렸다. 또한 싱커나 12-6 커브같은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로 땅볼 유도능력도 뛰어나다. 덕분에 피안타율과 WHIP은 제법 높은 편이지만 빼어난 경기운영능력으로 커버가 되면서 이닝도 잘 먹어주는, 감독이 선호할 유형의 투수다.

수상경력도 거의 없고 올스타에도 3번(1996, 2001, 2010)밖에 뽑히지 못했지만 그래도 통산 250승과 6할을 훨씬 상회하는 승률을 가진 베테랑 투수. 뚜렷한 임팩트나 몬스터 시즌은 없지만 메이저리그의 소리없는 강자 중 하나다. 간혹 양키스의 타선 덕분에 그리 되었다고는 하지만, 승리를 거둘 수 있을 정도의 피칭을 하지 않으면 그조차도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200이닝을 3점대 초반으로 막으면서 10승도 못하는 투수들이 꽤 많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페티트는 커리어 내내 승복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나, 승복 많은 투수는 절대 아니었다. 전성기의 페티트는 200이닝/3점대 중후반의 ERA가 보장된다는 평가를 받는 최고 수준의 2~3선발이었다.

페티트의 커리어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 포스트시즌 기록이다. 통산 19승을 거두었으며 이는 메이저리그 통산 포스트시즌 최다승리 기록이다. 이는 2위 기록인 존 스몰츠의 15승을 넘어서는 수치이며 이닝 수 또한 통산 1위다. 그러나 실제 통산 PS 방어율에서 드러나듯 그는 커리어 평균 정도의 투구를 포스트시즌에서 보였다. 물론 포스트시즌에 정규시즌만큼 던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의 포스트시즌 기록은 포스트시즌에 단골출장하고 거기서도 많은 승리를 거둔 리그 최고의 강팀 양키스에서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덕이 크긴 하다. 일반적인 빅게임 피처의 정의에 부합하는 비슷한 시기의 선수들로 포스트시즌에서 매우 뛰어난 투구를 보인 존 스몰츠, 커트 실링 그리고 같은 팀의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가 있다.

5.1. 견제의 달인


미네소타, 필라델피아를 거친 좌완투수 테리 멀홀랜드와 함께 90년대를 대표하는 픽오프 마스터.

주자 견제 시 모션이 투구 모션과 너무나 비슷한데다가 견제 동작도 무척 빠르고, 게다가 좌완인지라 주자 견제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견제사 시키는 장면만 모아놓은 비디오가 돌아다닐 정도. 97개의 견제사를 잡아내며 1973년 이후 가장 많은 견제사를 잡아낸 투수이다. 견제사 부문 올타임 리더는 스티브 칼튼의 144개.

페팃의 견제능력에 대해서 마이클 영 曰 "포수에게 던지는 데도 나는 1루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해야 했다."

6. 약물 관련 논란

페티트는 팔꿈치 부상을 치료하고 빨리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성장호르몬을 사용했다는 점으로 인해 미첼 리포트에서 언급되었고 이후 기자회견에서 끝까지 인정을 거부하던 라파엘 팔메이로, 배리 본즈 등과 달리 바로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여 그나마 좀 덜 까였다. 그러나 미첼 리포트에 이름이 올라가자 뒤늦게 시인한 것에 불과하며 이미 팬들의 신뢰를 저버린 약물 복용자의 변명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까이기도 하며 이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미첼 리포트라든지 각종 약물 스캔들에 깊이 연루되었음에도 끝까지 약 안 빨았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결백을 주장할 근거도 없이 우겨댄 선수가 부지기수지만 페티트는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했기에 다른 이들에 비하면 덜 까이는 것이 맞기도 하다. 어쨌든 그 이후 약쟁이들 중에서는 약물 문제로 자주 언급되지 않는 편이다.

7. 기타

Josh_and_Andy_Pettitte.jpg
[JPG image (Unknown)]


사진 왼쪽의 아들 조시 페티트 역시 야구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우완투수인데다 아버지만큼의 재능을 갖추진 못한 모양.약을 안해서 그렇다 그래도 2013년 양키스에게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받아 프로로 활동할 길이 열렸지만, 앤디는 일단 대학을 보낼 생각이라고. 2014년 조시가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고 하며 현재 재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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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휴스턴 시절에는 21번
  • [2] 15년 이상 활약한 투수가 모든 시즌을 5할 승률 이상으로 은퇴하는 경우는 페티트가 최초다. 하지만 루징 시즌이 없는 대신 약쟁이라는 타이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