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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last modified: 2015-04-12 20:17:22 Contributors

독일연방공화국의 역대 수상
7대 8대 (현직)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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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총리 이전 일생
3. 정치활동
3.1. 메르코지 체제
4. 여담

1. 개요

Dr. Angela Dorothea Merkel

독일의 정치인. 2005년 벌써 10년째(2015) 삼선까지 했으니 앞으로 12년은 해드실듯, 만약 4선 나와서 임기마치면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4선 재임을 할 듯.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선하기는 했지만 2년만에 급사하셔서 부터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의 총리로 재임하고 있다. 독일 기민당(기독교민주연합) 소속. 마가렛 대처영국 수상 이후 철의 여인 타이틀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2. 총리 이전 일생

총리가 되기 전까지의 경력이 굉장히 다이나믹하다. 여성동독 출신. 독일연방공화국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최초의 동독 출신 총리가 된다. 1954년 7월 17일 서독함부르크에서 태어났고, 결혼 전 성은 카스너(Kasner)[1]. 아버지는 베를린 교외 출신의 교회 목사였고, 어머니는 함부르크 출신의 영어 교사였다. 즉 아버지의 고향은 동독 지역이 되는 셈이다.

아버지가 동독으로 발령나면서 앙겔라 카스너가 갓난아기일때 부모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옮겨 가던 시절에 그의 가족은 특이하게도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케이스. 이에 따라 앙겔라 카스너는 동독에서 성장하고 경력을 쌓게 된다. 할아버지가 통일사회당원(동독의 공산당)이었다고 하나, 메르켈 가족은 동독의 지배층으로 출세하기에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종교에 냉담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목사의 가족이라는 점은 불리한 조건이었고, 또 외가가 서독에 있어 서독의 외가와 종종 왕래하기까지 한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까지 앙겔라 카스너는 종종 함부르크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외가 친척들이 동독을 방문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아버지가 목회하는 동베를린에서 80km 떨어진 템플린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보냈다. 목사의 아내라는 이유로 교사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동독의 학교(모두 국립)에서 일할 수도 없어서 당시 대다수 동독 여성들과 달리 직업 없이 가정주부로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민주의 성향이 강한 어머니 역시 사민당에서 활약하는 등 가족들은 집안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분분하다고 한다.

청소년기에는 대다수 동독 학생들이 하는 공산당의 청년단에 가입하여 성년식을 하지 않았고, 대신 공산당에서 좋지 않게 보는 개신교의 견신례를 받았다. 이때문에 불리한 위치에 처할 수도 있었지만 공부를 워낙 잘해서 명문 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거듭된 공산당(공식명칭은 '독일사회주의통일당')의 입당 요구를 거절하고, 다른 이들을 감시해 보고하라는 슈타지의 협력 요구도 거절했다. 이런 양심적 행동 덕분에 동독 출신임에도 전혀 커리어에 손상을 받지 않고 통일 독일의 정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었다. 동독 정치가들 중 상당수가 슈타지와 어쩔 수 없이 협력했다가 통일 이후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민의 분노의 대상이 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당해 버린 것과 매우 대조적인 상황.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울리히 메르켈과 결혼하였다. 메르켈 부부는 베를린의 연구소에서 일하였으나 부부관계가 악화되어 1982년 이혼하였다. 그 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다른 화학 연구소에서 일하였다. 1986년 함부르크에 사는 외가 쪽 사촌 결혼식이 있었는데, 그는 번듯한 직업이 있었기 때문에 동독 당국으로부터 서독 방문을 허가받는 특권을 누렸다. 독신으로 살다가 통일을 맞이하였고, 통일이 되던 해에 기민당에 입당했다. 자연대 그리고 1998년 동료 화학교수인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했다. 재혼 후에도 계속 前 남편의 성을 쓰고 있고, 어쨌든 박사학위 소지자라 공식적으로 이름을 불러줄때 Dr.를 붙여준다. 독일인을 포함한 서방권에서는 자신의 공식 명칭에 Dr. 같은 게 있다면 그걸 불러주는 것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한다.[2]

3. 정치활동

1991년부터 1994년까진 독일 여성청소년부 장관을, 94년부터 1998년까진 환경,자연보호,원자력부 장관을 지냈다. 2000년 4월 10일 부터 기민당 최초로 여성 의장을 지냈고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의석수를 줄였지만 기민당도 의석수가 줄어들었다. 당초 기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지만 선거막판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서도 정작 기업에 대한 세금을 깍아먹겠다는 공약이 논란이 되어 시민들의 지지율을 깍아먹었다. 결국 원내 제2당인 사민당과 내각 구성을 협력하는 좌우 대연정을 구성하여 2005년 11월 22일부터 독일의 제8대 총리를 지내고 있다.

사실 뚱뚱하고 남성스러운 무트 콜 같은 정치인을 좋아하는 독일 정서에서는 대단히 신기한 인물일 수 밖에 없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만 해도 깨는 인물이었지만...

2009년 총선에서 자민당의 약진과 사민당의 대참패에 따라 우파진영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면서 사민당을 뺀 새로운 연정을 구성, 계속 총리로 재직중이며 경제 위기 이후 당 지지율이 나빠지고 있었는데 이후 지지율을 다시 회복중.

2013년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CDU)-기사당(CSU)이 사민당과의'대연정구성'에 성공, 메르켈 총리의 3연임이 확정됐다. 만약 4년 임기를 채울 경우 11년 6개월간 집권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제치고 유럽 최장수 총리가 된다.

2014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 양측 강국들이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자 양측 중제하니라 진땀빼고 있는 상황.


2014년 12월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승리하며 총리로써 4선의 고지에 올랐다. 이때 이례적으로 사회민주당을 상대로 디스를 했는데, 이는 11월의 튀링겐 주에서 기민당이 튀링겐주 선거에서 승리했음에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좌파당-사회민주당-녹색당이 적적록대연정으로 기민당을 물먹인 것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튀링겐주에 좌파당이 집권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주총리를 줘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독일의 연방하원의 경우에도 사회민주당,좌파당,녹색당 3당의 의석은 기민-기사연합보다 의석수가 많다. 즉 연방하원에서 흑적연정이 깨지고 적적록대연정이 이루어지면 당장에서도 메르켈은 정권을 내줄 상황이다. 아무래도 의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3.1. 메르코지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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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의류브랜드 베네통의 합성. "Unhate"란 주제로 각 대립국의 국가정상을 키스시키는 합정사진 시리즈의 일부였는데 이 사진만은 적절했다..

그래서 똑같이 다문화를 비난하며 우익적 태도를 보였으나[3][4] 네오 나치 3인방의 터키인 및 독일 경찰 살해 및 은행강도 짓으로 충공깽에 빠지며 네오 나치 척결에 나서고 있다. 보수주의자가 네오 나치 척결에 앞선다고 의아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나치문제에 관해선 개막장 극우가 아닌 이상 보수이건 진보이건 단호하게 대처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나서기 이전부터 독일정부는 네오 나치를 계속 예의주시하며 어떻게든 해산시키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었다. 이젠 빼도박도 못하는 대의명분이 생겼으니, 해산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을 뿐이다.

2010년부터 2012년에 이어 유로존 위기가 터지자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와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꼭 붙어다니고 있었다. 이를 '메르코지 체제'라고 부른다. 이 체제의 요점은 한마디로 '다른 EU국가들에게 긴축정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 지역의 시사 만화가들은 이 둘을 레이건-대처와 마찬가지로 부부로 표현한 만평을 쏟아냈다.

특히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려서 유로존 위기의 근원점이 된 그리스에 대하여 강도높은 긴축재정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다. 그것도 어느정도까지 긴축을 해야하는지 구체적인 안까지 제시했다. 그리스 입장에서는 사실 요구라기 보단 명령에 가까웠는데, 그리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그리스 정부의 부채를 대납해주기는 커녕, 아예 유로존에서 축출시킬 생각까지 하고있었기 때문. 한마디로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날로 국가 파산으로 모자라, 유로존까지 강퇴당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마냥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하는건 문제가 있는것이, 막장 상류층의 탈세와 부정부패, 아테네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낭비, 여기에 유로존 자체의 모순등 결과적으로 그리스가 만들어낸 문제에 유로존까지 끌어들이는 구도였기 때문. 그리고 그리스 정부가 독일이 직접적으로 개입을 해오기 전까지 제대로 된 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을 세우고 추진했는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사 청산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중이지만, 나치아돌프 히틀러의 딱지가 아직까지 붙어다니는 독일 정부의 적극적인 해외 개입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독일편을 들고 그리스를 욕할 지경이면 그리스가 어지간히 진상이라는 이야기다.

긴축재정의 칼끝이 향한 이탈리아 또한 이러한 정책에 반발했다. 이탈리아 신문인 일 조르날레(Il Giornale)에서는 메르켈이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의 경제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두고 '이탈리아는 메르켈의 제4제국에 편입되었다'고 표현하였다. 히틀러는 당시 나치 독일 체제를 제3제국으로 표현하였는데, 여기서 따온 표현이다. 한마디로 메르켈 총리를 아돌프 히틀러와 동일시 시킨 돌직구를 뛰어넘는 모욕. 그런데 이탈리아는 나치의 동맹국 아니였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일 조르날레의 소유주인 파올로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 전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동생이라는 것. 그 악명높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동생이 형을 평소 열심히 까던 외국 정치가에 대해 내린 평가라면 대충 답이 나올 것이다.

9월 12일 그리스를 방문하여 안도니스 사마라스 총리와 환담하며 "긴축정책을 지지한다. 유로존에서 남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했다. 반면 같은날 아테네에서는 독일 좌파당의 대표와 시리자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손을 잡고 수만명이 바리케이트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2012년, 단짝처럼 지내던 사르코지가 프랑스에서 재선에 실패하고, 그와 비교적 대척점에 있는 중도좌파 프랑수아 올랑드가 당선되자 EU에서 고립되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고 예측되었다. 그래도 메르켈은 혼자서나마 꿋꿋이 버티며 올랑드의 당선 바로 다음날 전화를 걸어 긴축정책에는 변화가 없을거라고 못박는 등 유럽연합 구조조정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다행히도, EU 경제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프랑스의 새 대통령 올랑드 또한 '어느 누구의 압력도 없이 스스로' 프랑스 재정적자를 줄이는 고강도의 긴축재정을 실행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메르켈은 일단 사르코지 없이도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쩔 도리가 없는 게 프랑스의 경우에도 PIGS처럼 부패 쩔고 유로존의 한계로 적자가 누적되며 부채가 쏟아져 들어오는 형태의 막장은 아니지만 역시 상당한 규모의 국가부채를 갖고 있어 자칫 디폴트할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 사실 이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간 국가는 선진국 중에 미국 정도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르켈 자신이 실각하지 않는 이상 유럽연합 긴축정책의 기조는 꺾이지 않을 듯 하다.

이를 두고 '메르코지'에 이은 '메르콜랑드' 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물론 사르코지 때만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아니지만 유럽연합의 두 대국의 지도자가 일단 손발을 맞추었다는 의미다.

그 후에는 지지율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60%대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연이은 지방선거 패배와 자민당의 지지율 부진으로 인해 3선 여부가 불투명 했었다. 하지만 사민당 당수가 이탈리아 총선 결과 비아냥 사건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잦다보니 3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탈세 스캔들이 터지면서[5] 다시 정국은 혼미중. 하지만 이번에는 사민, 녹색당과 좌파당과의 연립이 무산되면서 사실상 3선이 확정되었다.[6] 그래서인지 제18대 독일 연방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해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좌파진영이 과반을 확보했음에도(기민/기사련은 승리하긴 했지만 과반수는 확보하지 못했다. 311/630석) 흑녹연합이나 흑적연합이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4. 여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연속으로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뽑혔었다. 2010년에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영부인미셸 오바마에게 1위자리를 뺏기고 4위로 내려앉았었지만, 유로존 위기에서 여러 유럽국가들에게 긴축재정을 강요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 메르켈이 결국 2011년에 다시 1위를 탈환했다. 실제로 브스에서는 "논쟁의 여지 없는 유럽연합의 지도자이자 유로존 경제위기를 해쳐나갈 해결사이다"라며 2011년 메르켈의 1위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는 단지 농담으로만 보기엔 묘한것이, 실제로 독일이 유로존 경제위기를 이유로 자국 내정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것을 내정간섭처럼 보며 싫어하는 남유럽인들이 적지않다.(특히 그리스인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시위에서 메르켈과 히틀러를 합성한 그림을 들고 나오며 욕하기도 했다.




사진에 찍힐 때는 거의 항상 손끝을 붙인 포즈다. 그래서 "접착제때문에 손이 붙었다"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유명한 축덕이다. 유로 2012에서는 그리스와의 8강 경기직관하며 국채 더비의 흥행(?)에 일조하였으며, 이 경기에서 독일은 4:2로 넉넉한 승리를 거뒀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독일과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1차전직관하는 위엄을 선보였다. 독일이 포르투갈을 상대로 4대 0 완승을 거두자 응원석에서 일어나 박수치며 기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여러 번 잡혔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직접 탈의실까지 가 선수들을 격려하고 함께 사진을 찍은 모습이 올라왔다. 총리님과 축구선수들 물론 브라질을 상대로도 적당히란 말을 꺼내지 않는 독일의 절륜함에 감동하여 결승전 장소 마라카낭 경기장을 찾아갔고 그 결과 독일이 마리오 괴체의 골로 아르헨티나에 승리하자 시상식에서 독일 선수들을 껴안아주며 격하게 기뻐했다. 이 승리로 메르켈 총리가 독일의 A매치를 직관했을 때 독일팀의 성적은 11승 1패라는, 흠좀무한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총리님이 보고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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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결승전이 나오기도 전 미네이랑의 비극 이후 출현한 이 짤방은 실로 적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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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을 할때마다 각 국 남성 정상들이 메르켈에게 스킨십을 시도 해서 골치라고 한다. 포옹, 어깨에 손 올리기 등등. 당연히 메르켈이 남성 정상들의 스킨십을 좋아할 리가 없다. 특히 조지 W 부시는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스킨십을 하는 바람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메르켈이 알아서 피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종류의 사진을 보면 메르켈의 불편한 표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상습범들(...)은 프랑수아 올랑드블라디미르 푸틴이라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협력 관계다. 양국의 무역 의존율이 높고, 둘다 냉전을 거쳤으며, 푸틴은 독일어에 정통, 메르켈은 노어에 능숙, 또한 둘다 보수 성향이니 죽이 잘 맞는다고. 비공식 만남에서는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야기한다고 한다. 오바마를 비롯한 서방 지도자들은 생까고 무시하는 푸틴도 이 여자의 말에는 귀를 기울인다고 한다. 오오 메르켈 총리 오오...

2015년 새해 초부터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의 여파로 인해 독일 내에서 반 무슬림 운동이 확산되자, 보수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을 지지하며 이명을 받았다. 오오...메르켈...오오...

이랬던 여자가 현제 악화되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여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이 여자의 강단있는 지도력을 기대했던 국제 정치 전문가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7]

2015년 3월, 방일하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이 끝난 후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질의된 질문에 대해 독일의 과거사 청산 사례를 거론하며 독일은 과거를 직시했으며, 주변국들의 관용이 있어서 국제사회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었다. 모든 관계국들이 긴장을 해소하기위해서 평화적인 노력을 경주해야한다.라고 답변 그러나 독일은 일본에 대해서 훈계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매스컴에서 이를 보도하자 기시다 외무상은 일본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어떤 상황에서 전후 처리에 임했는지, 어떤 국가가 주변국인지 등의 경위가 달라 양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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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원래 메르켈의 아버지의 성은 폴란드계 성인 카지미에르차크(Kaźmierczak)였으나 1930년 성을 카스너로 고쳤다. 참고로 메르켈의 조부는 당시 독일령이었던 폴란드의 포즈난 출신이었다가 독일로 이주했다.
  • [2] 근접한 문화권의 오스트리아에서는 박사학위자는 Dr.을 많게는 10번도 넘게 불러준다고 한다. 독토르 독토르 독토르 독토르 독토르 독토르...
  • [3] 기존의 독일 다문화 정책의 실패를 선언한 적 있다
  • [4] 물론 나치라면 치를 떠는 건 우파도 대다수가 해당되는지라 메르켈의 정책은 이민제한 등의 정책적 경향 정도고 아무리 독일이라지만 이 정도까지 문제삼지는 않는다.
  • [5] 독일인들은 기본적으로 메르켈의 절약정신 및 긴축 위주 경제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까지 용납하는 것은 아니다.
  • [6] 사민+녹색+좌파당의 지지율을 합하면 기민/기사+자민당의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좌파당이 구 동독집권당인 통일사회당의 계보를 잇는데다가 슈뢰더 정권 시절 사민당의 우경화에 반발한 당원들 상당수가 좌파당으로 탈당한지라 그리 사이가 좋지 못하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가끔씩 연립정권을 수립하는 일은 있다.
  • [7] 전문가들에게 '햄릿'이라고 까이고 있는 상황.독일 가스의 비중의 30%를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일이 상당히 소극적이기는 했다. 근데 러시아 가스의 비중이 적은 한국도 차후 러시아하고 협력을 위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소극적이었던거를 생각한다면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