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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네프스키

last modified: 2015-02-28 01:28:38 Contributors

Contents

1.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네프스키
2. 영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1.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 네프스키


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
1220 - 1263

킵차크 칸국 지배시기 노브고로드 공,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 대공이었다. 그의 치세 스웨덴과 독일 침략군을 물리친 것으로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현재까지 숭상받고 있다. 군사적 재능 뿐 아니라 정치적 재능도 뛰어나 로마 카톨릭과 몽골계 칸국 사이에서 적절한 행보를 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몽골계 칸국과 러시아를 싸움붙이려는 교황청의 부추김을 무마하였는데, 이는 종교 및 문화보다는 세금에 관심이 많던 몽골계 칸국보다 교황청이 러시아에 더욱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이다.

1236년 노브고로드 공 및 군 지휘관으로서 노브고로드로 올 것을 주민들로부터 요청받았다. 스웨덴군이 이조라 강과 네바 강의 합류지점에 상륙하자 1240년 소수의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공격해 네바 강의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물리쳤다. 이 전투로 19살의 그는 네바 강(Neva)의 이름을 딴 네프스키(Nevsky)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몽골의 러시아 침략 단 3년 후에 일어난 이 전투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되었으나, 루마니아 및 키예프 지역의 제후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그는 노브고로드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 후 튜튼기사단의 일파인 리보니아 검의 형제기사단이 침략해오자 다시 노브고로드로 돌아와 군대를 모았다. 1241년 페이푸스 호수 위 빙판에서 이들은 격돌했고, 다시 한번 러시아를 외세의 침략에서 구하게 된다. 노브고로드의 일반 보병들이 중무장한 기사들을 상대해 패배시킨 이 전투는 중세에 있어 큰 사건이 되었다. 이 전투의 한참 후에야 서유럽의 보병들은 중무장 기병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훗날 알렉산드르 네프스키는 정교회에서 러시아군의 수호성인으로 받아들여지며, 위의 이콘도 그 경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비쳅스크 공이자 폴라츠크 공인 브랴체슬라프 바실코비치의 딸과 결혼해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두었으며, 그 중 막내아들이자 훗날 모스크바의 다닐로 불리는 다닐 알렉산드로비치가 모스크바 대공국을 세우며 모스크바 대공의 시조가 된다. 죽기 얼마 전 두 번째 아내와 재혼하나 그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독소전쟁에서는 아래 그림처럼 독일(게르만족) 침략에 맞서 조국을 수호한 영웅으로 포스터나 선전화에 널리 그려졌다.


"우리에게 칼을 빼들고 온 자는 그 칼에 죽는다. -넵스키- " 히틀러가 다시 한번 실증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교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2. 영화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전함 포템킨의 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영화이며, 1938년 제작되었다. 1의 인물을 영웅시하였다.

영화의 시작은 알렉산드르 네프스키가 스웨덴군을 물리치고 은둔한 뒤, 독일 기사단의 침략을 막기 위해 그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 후 노브고로드로 돌아온 그는 병사들을 규합해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적을 물리친다.

여기서 독일 기사단은 그야말로 악마와 같이 묘사되며, 반대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가 이끄는 러시아 군대는 악마를 물리치는 영웅들과 같이 묘사된다.[1]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을 비롯한 영화의 제작자들이 1941년 스탈린 상을 받은 것과, 영화의 제작 시점이 독소전쟁 직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뭔가 의미심장하다. 영화가 제작되었을 때는 아직 독일과 소련이 동맹국이었던 때라 상영이 금지되었으나 독소전쟁의 개전으로 상영금지가 풀렸다.

현대 영화에 자주 나오는 2인조 개그 캐릭터가 이 영화에도 존재한다.

한편 이 영화의 영화음악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작곡하였다. 두 거장의 협업이라 어떨땐 저녁때 에이젠슈타인이 찍어 놓은걸 보고 시간을 써간 뒤 다음날 아침에 거기에 딱 맞는 곡을 써 들고 오기도 하고, 어떨땐 프로코피예프가 먼저 작곡해 놓은 곡을 에이젠슈타인이 듣고 영화 장면을 그 박자에 맞춰서 찍기도 하는 등 호흡이 잘 맞았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유성영화 극초기 작품임에도[2] 영화음악이 효과적으로 잘 쓰였다.
또한 프로코피예프는 이때 작곡한 곡 중 7곡을 추려서 칸타타를 만들었는데(Op.78),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고 흐름이 잘 이어지기 때문에 그의 중후반기 대표곡으로 평가받으며 종종 연주되고 있다. 근데 이 곡 연주를 듣고 나서 영화를 보면 소리 질의 차이때문에 순간 적응이 잘 안된다.

톰 클랜시의 소설 붉은 폭풍에서 소련의 방송을 모니터링 하는 미국의 정보장교들이 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소설에서 소련의 주 공격 루트를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를 방송한 소련 당국의 의도는 눈에 보일 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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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러나 노브고로드 주교와 귀족들은 적과 내통하는 배신자들로 묘사된다.
  • [2] 에이젠슈타인의 실질적인 첫 유성영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