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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last modified: 2015-02-15 05:13:0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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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안성기(安聖基)
출생 1952년 1월 1일, 대구광역시[1][2]
신체 173cm, 72kg, B형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학과
데뷔 1957년 영화 '황혼열차'
가족
형 안인기PD,
배우자 오소영,
자녀 안다빈, 안필립
종교 천주교 (세례명: 사도 요한)
소속사 없음
팬카페


Contents

1. 소개
2. 생애
2.1. 유년기와 군인
2.2. 배우 안성기
3. 기타
4. 가족관계
5. 출연작

1. 소개

1980년대, 90년대 초반 충무로황제[3]
충무로의 살아있는 역사
국민배우

대한민국의 영화배우.

국민배우로 알려져 있으며 그 생애에 흑역사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4]

많은 연예인들의 치부인 병역문제에서도 안성기는 장교의 신분으로 병역을 이행했다. 학군 12기로 육군 포병소위로 임관하여 제12보병사단에서 복무, 중위로 만기 전역하였다. 학군 13기 출신으로 안성기보다 한 기수 후배[5]인 국회의원 정몽준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여,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회에서 두 사람이 함께 일하기도 하고, 2013년 안성기가 현대중공업 CF에서 나레이션 형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주로 대통령, 특정 집단의 우두머리의 배역을 많이 맡으며 특이하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범죄자의 배역도 소화해냈다.

2. 생애

2.1. 유년기와 군인

안성기는 5살 때 처음으로 연기자가 되었으며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는 8살 때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계속 연기를 한 강수연이나 손창민 이민우 같은 이후의 아역 출신과 달리 초등학생 이후에는 연기를 그만둔다. (60-70년대 당시는 아역 출신이 성인 연기자로 성공하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워서, 계속 연기를 하는 사람이 훨씬 적었으니 일반적인 길을 택한 쪽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6] 뜻하는 바가 있어서 베트남으로 진출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대학교를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로 진학했다.


육군 소위 안성기

대학에 진학한 안성기는 베트남에 가기 위해 ROTC를 지원해서 후보생이 되었다. 그러나 안성기가 소위로 임관하기 전에 전쟁이 종결되었다. 결국은 미국 쪽이 망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성기는 포병 소위로 임관해서 열심히 군복무를 했다. 사단장배 음어 조립 해독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2.2. 배우 안성기

안성기는 전역을 하고 나서는 회사원이 되려 했으나, 그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바람에 탓에 쓸모 없어진 베트남어로는 계속 취직을 못하다가 병사와 아가씨들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다시 연기자가 되었다.[7]

아역 스타 출신은 성인 배우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였으므로 그가 성인 배우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의심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로 충무로에 복귀한 후 이어진 영화의 성공으로 자리를 잡으며 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되었다. 그 시절 화제작들의 주연은 도맡았을 정도였다. 특히 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든 명장 창호 감독의 영화들에서 주연을 맡아 작품성과 흥행 모두를 잡으며 배우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신현준도 그가 출연한 영화 '기쁜우리 젊은날(1987년)'를 보고 배우가 되었다고 훗날 무릎팍 도사에서 밝혔다. 태백산맥 촬영당시 안성기와 같은 숙소 같은 방을 썼을 때 신현준은 이 사실을 안성기 본인에게 털어놨는데 그 때 안성기는 눈도 안 마주치며(…) 응~ 그런 애들 많아~라고 대답했다고……안성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 자신의 수첩에 기록하는 신현준의 행동에 그만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문에서 이야기되듯 아역시절부터 계속 영화를 찍어온 공장장 배우다. 후배 배우들 중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못 볼 확률이 사실상 0]

그래서인지 상당히 맡는 배역의 폭들이 넓은 편이기도 했다. 어리숙한 캐릭터부터 지적인 캐릭터, 심지어는 2010년에 히트한 모 드라마의 남자주인공보다도 더 오래 전에 까도남같은 역도 했을 정도(《그대 안의 블루). 다만 창호 감독의 전성기가 끝난 후로 여러 감독들과 작업했는데, 이미 한국영화의 간판이던 안성기는 캐스팅 제의를 쉽게 거절하지 못 했다. 그 때문에 함량미달의 작품에도 얼굴을 팔아서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많이 잃었다는 평가가 있다. 덕분에 인간으로서의 흑역사는 없는데 괴작이나 졸작을 거절 못해서 배우로서의 흑역사만 있다.[8]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기억에 남는 게 안성기뿐이다 할 정도로 그 능력이나 지위가 확고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TV 드라마 출연이 극히 드물다. 이는 안성기가 성인 배우로 다시 복귀하던 시절부터 한국 영화는 컬러 TV 보급 등의 영향으로 방화[9]로 불리며 긴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영화판에서 새로 건진 배우가 있어도 곧 TV 탤런트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영화 최고 스타인 안성기로서는 자신만은 한국 영화를 위해 TV 드라마 출연을 자제하겠다고 맘먹고 그에 따른 것이다. 위의 흑역사라고 불리는 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한국 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역이라도 하겠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3. 기타

  • 영화 《실미도》에서는 안성기가 실제로 장교 출신이였기 때문에 이것이 반영되어 교관 배역을 받았다.

  • 아역 시절에 샌프란시스코 영화제 특별상을 받았는데, 이게 대한민국 최초의 해외 영화제 연기자 수상 기록이다.

  • 가끔 '영화배우 A 성기 사진 (공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놓고 안(Ahn)성기 사진을 올려놓는 낚시를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도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신문 유머란에는 이름이 시모네타로도 유용되는 등 여러모로 굴욕을 겪었다. 한국 영화는 성기를 보여줘야 히트한다는 식으로. 안습.

  • 두시탈출 컬투쇼에서도 영화 《어러브》 때문에 이하나와 같이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김태균이 "이하나씨는 이 하나로 연기하느라 힘들다" 라는 말을 하자, 정찬우가 "그럼 안성기씨는 그게 없이 한다는 소린데……." 라는 개드립을 날린 바 있다.

  • MBC 《인간시대》에서 단란한 가정을 보여주었고[10] 안성기는 그 다큐 최초로 나온 연예인이었다. 이후 무명에서 막 뜨기 시작한 최진실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유명인이 자신이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 적이 없었다는 평. 이후에도 큰 스캔들이 없어서 그때의 인상이 남아있었고 다른 배우들과 달리 TV 출연이나[11] 다작 CF도 없어서 상대적으로 성실함과 신비감을 유지했다.[12]

  • 대한민국 가요계의 제왕 조용필과 중학교 동창이다. 실제 학생시절부터 알고 지냈다고 한다. 한 명은 영화계를 평정한 국민배우, 한 명은 가요계를 평정한 국민가수.

  • 그리고 영화배우로 있는 동안 박중훈콤비를 이뤘는데 첫 콤비는 《수와 만수》로 시작하여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콤비를 이루었다. 이제 안성기에게 박중훈은 사실상의 절친이다. 물론 나이는 안성기쪽이 훨씬 많긴 하지만… 아무튼 박중훈은 데뷔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항상 안성기를 꼽는다. 특히 그의 인격적으로 변하지 않는 모습에서 완성된 인격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이 항상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방송에서 나오는 모습과 실생활의 차이가 없고, 실제로 볼 때 카리스마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성격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잘 따를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후배들에 대한 배려도 잘 하기 때문에 실제로 안성기와 함께 촬영을 해본 다른 후배들이 존경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연기폭이 다양한 반면 드신은 못 찍는다고 한다. 일설에는 기독교인이라거나 혹은 아내나 아들 보기 민망해서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오인돼서 안성기는 영화에서 벗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로 발전했었다.[13] 모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의하면 이런 저런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연기 인생이 오래되도 베드신은 감정이 이입이 안 되어서 찍지 않는다고. 그래서 《깊고 푸른 밤》 등에서 나온 장면은 많은 부분 대역을 썼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박중훈이 과거에 한 인터뷰에 의하면, 안성기는 꿈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유혹하자 꿈에서라도 아내를 배신할 수 없어서 억지로 잠에서 깼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내에 대한 엄청난 충실함(!)을 보여주는 대목. 그렇게 부인에게 충실하니 베드씬에서 몰입을 못하지 흠좀무

4. 가족관계

  • 여담으로 전형적인 아들고추부잣집이다. 아버지 형제들, 사촌에 조카들까지 집안 대대로 이 매우 귀하다. 그의 아버지는 4남 1녀 중 둘째로, 큰집은 아들만 5명! 본인 형제는 아들만 3명, 작은집은 아들 여럿에 딸이 하나씩이라고 한다. 형제들 중에서도 큰형(안인기PD)씨만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나머지 형제는 모두 아들만 있다고(...) 그래서인지 본인도 결혼 후에 어느정도 예상했다고 한다(...)[14]


  • 부인 오소영씨는 이화여대 조소과 출신 조각가/교수이다. 안성기는 직접 부인의 전시회장에서 작품을 나르기도 할 정도로 자상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부인은 상당한 미인으로, 미남인 아들들 외모는 상당 부분 엄마 덕인 듯.

  • 장남인 안다빈은 프랫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다. 여담으로 어느날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만난 이정재정우성을 개인전에 초대해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다며 찍은 사진이 있다.

    바로 이 사진
    작풍은 에곤쉴레나 클림트가 생각나는 그런 그림. 이정재와 정우성 옆에 섰는데 신장과 비율에서 꿀리지 않는다 ㅎㄷㄷ

  • 둘째 아들 이름이 안필립인데, 1992년 로드쇼와 인터뷰에서 안창호 선생 아들 이름에서 따왔다고 밝힌 바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아기 때 위의 《인간시대》에 나왔다.

5. 출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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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명목상 출신지가 대구로 나온 것은 그의 부모가 한국 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그를 낳았기 때문이며, 실제로 전쟁 후 자란 곳은 서울특별시이다. 이 때문에 보통 그의 고향을 서울이라고 많이 말하는 편. 참고 자료를 보도록 하자.
  • [2] 또 한가지의문은 50년생 조용필과 절친이라는건데 두살터울을 허물고 친구가된건지 둘 중 누가 나이를 속인건지는 모른다. 다만 어릴적부터 친구라 두살 터울보다는 동갑인거 같은데 그럼 누가 나이를 속인건지...
  • [3] 한국의 배우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원톱의 인기와 영향력을 누린 배우이다 안성기를 제외하면 한석규가 충무로 한 시대의 원톱이었으나 그 기간이 짧았으며 박중훈, 최민수 그리고 2000년대 설송최 트로이카는 전성기에 완전한 원톱이었던적이 없었다
  • [4] 물론 망한 영화는 많다. 《퇴마록》이라든가 《한반도》라든가 《7광구(영화)》 등. 하지만 본인이 망한 영화에 대해 흑역사로 생각하지 않으며, 최근에도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거저나 다름 없는 개런티로 흥행성 없는 영화에 출연 중이다. 개념 충만한 다작 배우. 병역, 연기력, 배우로서의 개념,사생활, … 개드립용으로도 깔 거리가 없다.
  • [5] 나이로는 동갑이지만 안성기가 빠른 생일이라 1년 일찍 학교를 들어가서 그렇다.
  • [6] 이때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 [7] 당시는 공산권 국가와는 문물 교류는 커녕 얘기만 꺼내도 빨갱이 취급 받고, 갔다 오면 국가기관에 잡혀가는 시절이었으므로 배운 베트남어는 전혀 쓸 데가 없게 된 것. 정작 안성기가 졸업하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어학과는 꽤나 취업 잘 되는 축에 속한다. 본인 회고로는 당시에 워낙 고급 인력이 없으니 베트남 다녀온 장교 출신 친구들은 다 취업 잘 되더라고.
  • [8] 물론 농담으로 안성기 본인이 해당 영화 출연 사실을 흑역사화 한 적은 없다.
  • [9] 일본에서 쓰는 한자말 (邦畵)을 그대로 쓴 표현. 2000년대 이후엔 거의 쓰지 않는다.
  • [10] 80년대 일반인들의 삶을 다룬 한시간짜리 리얼다큐. 《인간극장》의 단편화라고 보면 된다.
  • [11] 유신시대에는 실화극장류의 반공물에는 유명 영화배우들이 반강제로 출연했었다. 신성일이나 김승호도 TV 출연경력이 있는 게 이런 이유. 다만 안성기의 전성기때는 그때만큼 반공 드라마가 빡센 편이 아니라서 강제출연은 없었다.
  • [12] 나이가 들어서 전자제품 CF를 찍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는 모 커피 CF가 유일했다.
  • [13] 안성기는 필요할 때면 얼마든지 영화에서 벗는다. 《하얀 전쟁》에서 고자인증 장면이나 《남부군》에서 집단 목욕 장면 부러진 화살에서의 강간 당하는 신-- 등등.
  • [14]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는 대표적으로 김종필(7남 중 다섯째) 전 국회의원,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6남2녀 중 장남, 슬하 8남1녀), 조영남(8남 1녀 중 일곱째 밑 밀이 여동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