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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리 셰브첸코

last modified: 2015-12-19 09:41:00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클럽에서
2.1. 디나모 키예프
2.2. AC 밀란
2.3. 첼시 FC
2.4. 다시 디나모로
3.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5. 기타
6. 기록
6.1. 대회 실적
7. 리그 기록


1. 개요


첼시에서의 리즈시절


밀란에서의 진짜 리즈시절


자신의 현역 마지막 경기에서

이름 안드리 셰브첸코(Andriy Shevchenko)
생년월일 1976년 9월 29일
국적 우크라이나
신체 조건 183 cm, 73 kg
등번호 7
유스팀 디나모 키예프(1986 - 1993)
소속팀 디나모 키예프(1994 - 1999)
AC 밀란(1999 - 2006)
첼시 FC (2006 - 2009)
AC 밀란(2008 - 2009)(임대)
디나모 키예프(2009 - 2012)
국가대표 111경기 / 48득점

2005 FIFPro World XI
FW
안드리 셰브첸코
FW
사무엘 에투
MF
프랭크 램파드
MF
클로드 마켈렐레
MF
지네딘 지단
MF
호나우지뉴
DF
파올로 말디니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DF
존 테리
DF
카푸
GK
디다

1999 Ballond'or
수상
히바우두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안드리 셰브첸코
2000 Ballond'or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지네딘 지단
3위
안드리 셰브첸코
2004 Ballond'or
수상
안드리 셰브첸코
2위
데쿠
3위
호나우지뉴

무결점의 스트라이커

풀네임은 안드리 미콜라요비치 셰우첸코(Андрій Миколайович Шевченко). 러시아어식 발음인 셰브첸코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의 축구선수. 흔히들 이름을 간단히 줄여 셰바라 부른다. 2000년대 국내 해축팬들의 자칭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축이었다.

2. 클럽에서

우크라이나와 AC 밀란의 전설의 7번

인터밀란과 바르셀로나,레알마드리드 킬러[1][2][3][4]

2.1. 디나모 키예프

자국 리그 명문구단인 디나모 키예프의 리그 5연패 및 98/9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의 주역으로 유럽무대에 그 이름을 알렸다. 특히 컬쳐쇼크 급 활약을 보여줬던 경기는 97/9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FC 바르셀로나 전으로 홈에서 3-0으로 셧아웃시키더니 원정팀의 무덤이라던 캄프 누에서는 한술 더 떠 4-0으로 데꿀멍시켜버린 사건인데, 셰브첸코는 캄프 누 원정에서 전반전 해트트릭이라는 폭탄을 터트려 전 유럽을 경악케 만들었다. 98/99 시즌 그는 챔스 16강에서 만난 아스날사스날을 상대로 프리킥 결승골을 터트려 팀을 8강에 올려놓았고 8강에서 만난 레알마드리드를 상대로는 1차전에서 1골 2차전에서 2골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어 챔스 4강행을 이끌었다. 4강에서 만난 바이에른을 상대로 그는 다시 1차전에서 2골을 기록하였지만 아쉽게도 2차전에서 1:0으로 아쉬운 패배를 당해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이 시즌 그는 챔스 득점왕 및 UEFA 최우수공격수로 선정되었다.

2.2. AC 밀란

이후 99/00시즌 이탈리아의 명문 구단 AC 밀란으로 이적, 데뷔시즌 득점왕 등등 전성기를 구가했다. 세리에 A 역사상 데뷔시즌 득점왕은 예전 유벤투스미셸 플라티니UEFA 회장과 셰브첸코 뿐이다. 부상과 이에 따른 컨디션 난조로 리그 5골에 그치며 극도로 부진했던 2002/03시즌을 제외하면 매시즌 20골 언저리를 기록하며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우뚝선다.[5] 셰브첸코 커리어의 정점은 2003/04 시즌으로 이 시즌 그는 리그우승과 세리에 득점왕을 차지하고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후 05/06 시즌 챔스 조별 라운드 5차전에서는 페네르바흐체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하였고 4강에서 만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차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바르셀로나를 탈락시킬 뻔 했었다.[6]

정확한 골 결정력과 '동유럽의 호나우두'라고 불릴 정도로 빨랐던 스피드, 그리고 상대방 수비수들을 초토화시키는 몸싸움과 준수한 테크닉, 윙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전술적 이해도 등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 칭송 받았던 선수.

밀라노더비 역대 최다득점 기록 보유자이며 레전드 나르 노르달에 이은 AC밀란 역대 최다득점 2위(173골)로 사실상 노르달의 기록을 깰 수 있으리라 기대를 모았으나...

2.3. 첼시 FC

첼시 FC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세브첸코를 영입하는 것에 강한 욕심을 드러냈고, 약 500억 정도로 추산되는 거액의 이적료와 세브첸코 아내를 통한 설득을 통해 결국 영입에 성공하였다. 이적 직후 리버풀과의 커뮤니티 실드 경기에서 맹활약을 보이자 첼시 주전 공격수 디디에 드록바가 벤치로 밀려나는 거 아니냐는 여론이 주를 이뤘지만[7] 부상과 극심한 부진을 거듭하였고(06/07~07/08 리그 47경기 9골) 결국 드록바에 밀려 벤치나 데우다가 다시 AC밀란으로 임대 형태로 복귀하게 되었다. 2007년 2월 존 테리를 응급처치로 구한 것이 세브첸코가 첼시에서 활약한 유일한 사례라고도 회자되며, 구단주가 개인의 욕심만으로 선수를 영입했다가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AC밀란으로 복귀하자 많은 사람들이 "EPL 적응 실패였을 뿐"이라 생각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임대기간 1년동안 리그, 컵 경기 모두 합쳐 2골 1도움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결국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의 시간때우기용 교체선수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임대 만료 후 첼시로 복귀했지만 밀란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2.4. 다시 디나모로

2009년 8월 말 결국 자신이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디나모 키예프와 2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였고, 2010-11 시즌 종료 후 1년 계약을 연장하였다.

리그에서는 55경기 23득점을 기록하며 고국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유럽 대항전에서는 2010-11 시즌 12경기 5득점으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특히 2011년 3월 유로파리그 맨체스터 시티와의 16강 1차전 홈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득점을 기록하자 부활이니 제2의 전성기라느니 등의 설레발이 있었다. 하지만 2011-12 시즌 5경기 무득점에 그쳐 설레발에 불과했음이 확인되었다.

3. 우크라이나 국가대표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경기에서는 조별리그 10경기 중 9경기 출전에 6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쳐주고 있는데, 역시 애국첸코라는 말이 헛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리하여 강팀인 크로아티아를 간신히 제치고 플레이오프로 올라갔는데 정작 PO에선 2경기 모두 출전하고도 제대로 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그리스를 홈으로 불러들여 치른 경기에서는 미트리스 살핀기디스에게 한 골 얻어맞고 본선 진출권을 그리스에게 내 주게 되자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며 뭇 축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11년 시즌이 끝나고 2012년 자국에서 폴란드와 같이 공동 개최로 열리는 유로컵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유로컵 우크라이나의 첫 경기인 스웨덴 전에 선발로 나와 0:1로 끌려가던 후반 10분과 17분에 잇따라 헤딩으로 골을 작렬하며 조국 우크라이나에게 사상 첫 유로대회 첫 승을 안겨주었다. 역시 애국첸코였던 것인가. 다만 우크라이나는 안방임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와 프랑스에게 패하면서 8강에 오르지못하고 탈락하여 유로컵 1승을 챙긴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2012년 7월 은퇴 이후 정계 진출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 전진!" 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면서 일단 정계 진출은 무산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클래스에 비해 드리블 및 발재간은 투박한 편이라 이를 타고난 운동능력으로 커버하였다. 즐라탄이나 마리오 고메즈 같은 축복받은 신체를 타고난게 아닌 순수 운동능력만으로 세계최고가 된 만큼 그 운동능력만큼은 당대 최강에 역대 축구판에서도 그의 운동능력에 비교할 선수는 손가락에 꼽을 만큼 적다.[8]

단순히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득점에만 능한 선수가 아니라 '무결점의 스트라이커'라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수이기도 했다. 셰브첸코는 소련 축구계의 리누스 미헬스아리고 사키라 할 수 있는 레리 로바노프스키 감독이 말년에 디나모 키예프에서 길러낸 최고의 역작으로, 사키처럼 선수에게 다재다능함을 요구하는 로바노프스키에게 10대 시절부터 지도받았고 그 결과 공격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플레이를 수준급으로 해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원톱과 투톱에서 모두 능숙하게 뛸 수 있었고,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리는 플레이와 보다 공격적인 파트너를 뒤에서 지원하는 플레이가 모두 가능했으며, 심지어 스트라이커로서는 뛰어난 수비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운동능력을 극대화하는 셰브첸코의 스타일은 자연스레 몸에 많은 무리와 나이에 따른 급격한 기량저하를 불러왔고, 그로인해 셰브첸코의 최전성기는 다나모 키예프 말년과 AC밀란 첫 두시즌 이후 20대중반인 2001년에 벌써 지나간 상태였다. 그 이유로 2000년대 초반에 이미 노쇠화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2001/02시즌에는 리그 14골에 그쳤고 부상의 여파가 있다고 하지만 2002/03시즌 리그 5골의 성적표는 네임밸류에 비하면 극도로 저조한 성적이었다.[9] 이후 2003/04시즌 부활에 성공하여 세리에 득점왕과 발롱도르를 수상하나 퍼포먼스와 활약도 모두 밀란 커리어 초반의 최전성기에 비교하면 부족한 활약도였다.[10] 2004년 부터 2006년 까지는 상당히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06년에 접어들어서는 팬들의 우려가 나올정도로 기량이 저하된 모습이 관측되었다. 그러나 꾸준히 리그에서 20골 언저리를 기록했으며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바르셀로나와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우려를 어느정도 불식시키는데 성공하지만 첼시로 이적한 이후(...)[11]

첼시 시절 실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피지컬이 떨어져가고 있던 시기에 타 리그 적응실패까지 겹치며 선수 본인이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꼽히고 있다. 실제로 밀란 임대시절의 경기를 보면 예전에 득점왕을 몇 번이나 했던 선수와 동일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맥없는 플레이를 보이곤 했다.

5. 기타

토레스, 셰브첸코처럼 부상으로 폼이 하락했다가 스타일의 변화로 롱런한 대표적인 선수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이자 유벤투스의 까비딴이였던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있다. 알레의 경우엔 상기한 둘과는 달리 볼 컨트롤, 개인기 능력이 세계 최고급이기도 했고 애초에 이들처럼 최전성기이던 20대 초반 피지컬에 극도로 의존하진 않았다.[12]

6. 기록

6.1. 대회 실적

7. 리그 기록

시즌 클럽 리그 경기
1994/95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171
1995/96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3116
1996/97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206
1997/98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2319
1998/99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2618
1999/00AC 밀란세리에 A3224
2000/01AC 밀란세리에 A3424
2001/02AC 밀란세리에 A2914
2002/03AC 밀란세리에 A245
2003/04AC 밀란세리에 A3224
2004/05AC 밀란세리에 A2917
2005/06AC 밀란세리에 A2819
2006/07첼시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304
2007/08첼시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75
2008/09AC 밀란세리에 A180
2009/10첼시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10
2009/10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217
2010/11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1810
2011/12디나모 키예프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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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터밀란과는 총 19경기 출장 14골을 기록하였는데 이 기록은 밀라노더비 역대 최다득점 기록이다.
  • [2] 누 캄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최초이자 유일한 선수이며 총 6경기 6골을 기록하였다.
  • [3] 레알을 상대로 4경기 4골을 기록했다.
  • [4] 엄밀히 말하자면 강팀과의 경기에선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저 세팀이 특히 호되게 당해서 뇌리에 박혔을 뿐.
  • [5] 그러나 이 부진했던 시즌에서도 그는 조별리그 1차전에서 만난 레알마드리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 팀을 조별리그 1위로 16강을 진출시키고 4강 2차전에서 벌어진 밀라노더비에서 골을 기록하여 원정다득점 원칙에 따라 팀이 결승에 진출하게 만드는 등 팀의 챔스우승에 적잖은 공헌을 하였다.
  • [6] 결과는 바르셀로나와 무승부로 1차전 결과에 따라 바르셀로나가 결승에 진출했지만 당시 그의 정당한 골이 푸욜의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무산되었다.
  • [7] 사실 당시에는 그야말로 유럽을 호령하는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었던 셰브첸코가 다이버 별명을 얻으며 뽀록바로 조롱받던 드록바보다 나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 [8] 유벤투스 중원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중원을 씹어먹고, 98 월드컵당시 호나우두보다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호나우두를 따라잡아 1:1찬스를 커버하는 엄청난 운동능력을 보여준 네덜란드의 '싸움닭' 에드가 다비즈조차 셰브첸코의 운동능력에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 [9] 이 때 당시 그는 매우 힘든시기를 겪고 있었는데 부상도 그를 괴롭혔지만 그의 은사이자 정신적 지주인 발레리 로바노프스키가 사망하였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흔들릴수 밖에 없었다.
  • [10] 이 때문에 요한 크루이프는 기술대신 신체능력에 극도로 의존하는 셰브첸코가 30줄에 이르면 기량을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으며, 이는 결국 무섭게 맞아 떨어지게 된다.
  • [11] 사실 셰브첸코의 하락의 징조는 발롱도르를 수상하던 AC밀란 시절의 03/04시즌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이른시점부터 관측되기 시작했다. 셰브첸코는 세계 최정상의 클래스치고는 상당히 투박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 [12] 하지만 알레 또한 부상전 압도적인 스피드를 활용하여 수비수들을 터는데 매우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