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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타삿투

last modified: 2015-12-22 16:00:11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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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소개
2. 생애
2.1. 출생의 비밀
2.2. 왕위 찬탈
2.3. 몰락과 위기
2.4. 불교에 귀의
3. 죽음

1. 소개

기원전 493~462년 재위. 고대 인도의 16대국 가운데 하나인 가다 국의 왕, 빔비사라의 아들. 데바닷타의 꾀임에 넘어가 반역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고 빔비사라를 감옥에 가둬 죽이는 패륜을 저질렀으나, 나중에 크게 후회하고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였다.

2. 생애

2.1. 출생의 비밀

'아자타삿투'란 '태어나기 전부터 원한을 가진 자'라는 심상치 않은 이름이다. 이런 그가 태어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마가다 국의 왕 빔비사라가 왕위를 물려줄 자식이 없어서 근심하였는데, 점성가를 찾아가 의논을 하자 점성술사가 마가다의 수도 왕사성(라자가하)에서 멀지 않은 비후라산에 한 선인이 살고 있는데, 3년 뒤 죽어서 왕의 자식으로 웨데히(Vedehī) 왕비에게서 태어날 것이라고 했다. 빔비사라는 조급해져서 3년이나 기다리지 못하고 자객을 보내서 선인을 살해하려 했다.

그런데 선인이 죽기 전에 자객에게 말하기를, 자신이 목숨을 다하기 전에 왕이 살의를 품고 나를 죽이려 하니, 자신이 다시 태어나 왕의 자식이 되면 왕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왕비는 임신을 하였으나, 빔비사라가 점성가를 불러서 아들인지 딸인지 알아보게 하자 점성가는 아들이지만 왕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빔비사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불안감이 강해졌고, 사정을 왕비에게 털어놓았다.

결국 아이가 태어나자 불안해진 나머지 빔비사라는 아자타삿투를 높은 에서 떨어뜨려서 죽이려고 했으나, 아이는 새끼손가락 하나만 부러지고 살아남았다. (참조)

2.2. 왕위 찬탈

어느날 아자타삿투가 앙가국의 수도 참파(Campā)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였다는 것을 듣고, 빔비사라 왕은 아자타삿투 태자를 크게 질책했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빔비사라 왕 때 마가다는 건립 7~8백년을 맞이했으나 그리 대국은 아니었다. 그런데 빔비사라가 태자로 있을 때, 마가다는 앙가의 속국이었다. 앙가의 관원이 징세하는 것을 보고 빔비사라는 분노하여 관원들을 쫓아냈고, 마가다와 잉가는 전쟁을 벌였으며 마가다가 승리하여 앙가를 병합했다. 빔비사라는 앙가의 과도한 세금 부과로 마가다 백성들이 받은 고통을 알았기 때문에, 앙가 백성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자타삿투가 앙가에 중세를 부과하였으니 분노하였던 것이다.

아버지에게 질책받고 상심한 아자타삿투를 데바닷타가 찾아오게 되었다. 데바닷타는 자신의 신통력으로 아자타삿투를 홀리고, 그의 출생의 비밀을 알려줘서 동요시켰다고 한다.

아자타삿투가 분노하자 데바닷타는 음모를 꾸미자고 아자타삿투를 충돌질했다. 그래서 아자타삿투는 데바닷타와 공모하여 자신은 아버지 빔비사라를 죽이고, 데바닷타는 석가모니를 살해하여 국가와 종교를 나란히 찬탈할 것을 꾸몄다고 한다. 데바닷타는 결국 석가모니를 죽이는데 실패하였으나 아자타삿투는 찬탈에 성공하였고, 부왕 빔비사라를 감옥에 가둔다.

웨데히 왕비가 빔비사라를 염려하여 몰래 먹을 것을 들이자, 아자타삿투는 이를 알고 분노하여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의사 지바카[1]가 역대로 어머니를 죽인 왕은 없으며, 그런 것은 천민찬달라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만류하여 왕비를 가두기만 했다.

<제바경>에 따르면, 아자타삿투는 매일 5백개의 수레에 5백 가마의 밥을 싣고 데바닷타에게 공양을 올릴 정도로 데바닷타를 지극하게 공양했는데, 이 때 왕에게 후원을 받아 데바닷타의 세력이 강해졌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이를 전해 듣고 많은 이익이 있다고 좋아할 것이 못되며, 파초와 갈대가 열매를 맺으면 죽듯이, 데바닷타 역시 이런 공양을 받으면 현세에도 내세에도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데바닷타에게 신심이 두터운 아자타삿투였지만 그가 석가모니를 죽이지 못하고 실패를 거듭하자 석가모니의 덕이 두터움에 감동하고 데바닷타에게는 실망하여 점차 데바닷타를 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데바닷타는 석가모니를 죽이려다 오히려 자신이 죽고 말았다.

2.3. 몰락과 위기

아자타삿투의 극악한 소행이 알려져, 코살라 국의 파세다니 왕을 비롯한 다른 왕들이 공격해와 마가다는 쑥대밭이 되었다. 파세다니 왕은 빔비사라 왕에게 시집보낸 자신의 여동생 코살라 공주가 왕의 몰락을 슬퍼하여 급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였다고 한다. 파세다니는 코살라를 시집보낼 때 지참금으로 보낸 카시국을 도로 빼앗아 왔다. 마가다가 처참한 상태에 이르자, 아자타삿투는 파세다니의 자비 덕분에 풀려났고 카시국을 되도려 받았으며, 코살라 국의 바즈라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

<전투경>에 따르면 아자타삿투는 코살라국의 파세다니(파사익)와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었는데, 석가모니는 싸워서 이기면 원수와 적이 늘어나고 패배하면 괴로워지니, 이기고 지는 것을 모두 다 버려서 고요한 즐거움을 찾으라고 권유하여, 두 왕은 화해하고 아자타삿투는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한다.

2.4. 불교에 귀의

<사문과경>에 따르면 자신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자타삿투는 아이에게 종기가 생기자 그 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 만큼 극진하게 사랑하였다. 그런데 어머니에게 들었던 빔비사라 왕 역시 자신에게 똑같이 해줬다는 말이 생각나서, 부왕의 사랑을 깨닫고 깊이 후회하였다.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부모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빔비사라 왕은 이미 감옥에서 죽고 말았다. 결국 아자타삿투는 참회하여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을 후회하고 석가모니에게 귀의하고 싶다고 부탁하였으며, 결국 아자타삿투는 정법에 귀의하여 다시는 악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아자타삿투가 밧지국을 공격하려 하자, 석가모니는 비유로서 밧지국의 사람들이 훌륭한 덕을 갖추고 있으니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설득하여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결국 장거리 석포와 창칼을 갖춘 전차 등 새로운 무기를 사용해서, 30개 소국으로 이루어진 밧지 동맹과 10년에 걸쳐 전쟁을 한 다음 승리하여 갠지스 강 유역을 지배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파세다니가 죽고 그의 왕의 아들 비두다바 왕자마저 죽고나서, 라이벌이던 코살라마저 아자타삿투에게 넘어갔고 중인도의 패권을 잡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사리가 8등분 될 때, 아자타삿투는 그 가운데 한 등분을 받아서 마가다로 모셨다. 그리고 이후 마하가섭 등 불제자들에 의하여 불경이 결집될 때는 시주를 하여 필요한 물건을 공급했으며, 마하가섭과 아난다가 입멸할 때 슬퍼하며 공양이 힘썻다고 한다.

3. 죽음

아자타삿투는 결국 그 역시 인과응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자신의 아들 우다야 밧다카(Udaya bhaddaka)에게 살해당하였다고 전해진다. 한 때 코살라를 병합하는 등 강대해졌던 마가다는 아자타삿투의 죽음 이후로 마가다는 윤리가 어지러워져 태자가 부왕을 죽이는 패륜이 여러 차례 벌어졌고, 마침내 왕가가 교체되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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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바카는 아자타삿투의 형제 아바야 왕자와 사라바티라는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명의이다. 왕실의 의사로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에게 의술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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