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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last modified: 2015-10-16 16:39:29 Contributors

가명

아랍어 : أبو بكر البغدادي
한국어 :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터키어 : Ebu Bekir Bağdadi
영어 : Abu Bakr al-Baghdadi

본명

아랍어 : إبراهيم ابن عواد ابن إبراهيم ابن علي ابن محمد البدري السامرائي
한국어 :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함마드 알-바드리 알-사마라이
터키어 : İbrahim İbn Awad İbn İbrahim İbn Ali İbn Muhammed el-Badri es-Samarray
영어 : Ibrahim Awwad Ibrahim Ali al-Badri al-Samarrai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1971년 생)는 이라크 사마라에서 태어난 종교인(?)이자 이후 ISIL의 수괴가 되었고, 이후 이슬람 국가의 건국을 선포하며 스스로 칼리프의 자리에 올랐다. 칼리프는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종교 지도자 겸 정치 지도자를 뜻한다. 즉 유럽권으로 따지면 교황 더하기 황제라는 뜻. 사실 칼리프는 모든 무슬림들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이슬람국가를 지지하지 않는 무슬림들은 그를 칼리프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그의 가명은 정통 칼리파의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의 이름을 따온 것.[2]흔한 아부 바크르 능욕 즉, '바그다드의 아부 바크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알 바그다디의 고향은 바그다드가 아니다. 그의 고향은 사마라다. 사마라는 주민 대부분이 수니파지만 시아파 성지가 있는 도시라서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그가 이름을 바그다디로 한 이유는 아마도 칼리프 국가인 압바스 왕조의 수도가 바그다드였기 때문인듯 하다. 정작 압바스 왕조는 시아파 왕조였는데 말이지

2011년 10월 4일 미국 국무부는 알바그다디를 특수 분류 테러리스트로 지정했으며 그의 생포, 혹은 사살과 직결되는 정보에 1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알 카에다 역시 알 바그다디의 목에 2천5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둔 상황.아랍국가에선 테러리스트가 테러리스트를 수배합니다! 죽이게 되면 알카에다 쪽으로 넘기는게 이득 근데 알카에다에서 그돈을 곱게 넘겨줄지는 보장할 수 없으니 그냥 얌전히 미국에게 넘겨주도록 하자

Contents

1. 생애
1.1. 출생
1.2. 유년기
1.3. 청년기
1.4. --성전에 입문하다
2. 평가

1. 생애

1.1. 출생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이라크 사마라(سامَرّاء‎)에서 1971년에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함마드 알-바드리 알-사마라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부족은 사마라에 있는 알-부 바드리(البو بدري) 부족이다. 알-부 바드리 부족은 사도 무함마드(محمد)의 후손으로서 원래 메디나(اَلْمَدِينَة)에 살았으나 1700년대에 사마라로 이주하였다. 즉 알 바그다디는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무함마드의 후손이 맞다. 물론 무함마드의 후손이란 사람들이 한 두명이어야지(...)[3] 그의 가족들 중에는 종교인들과 교수들이 많았다.

1.2. 유년기

이브라힘은 어릴 적에 부끄러움을 많이 탔으며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축구를 좋아했었다.[4]

1.3. 청년기

이브라힘은 어린 시절을 사마라에서 보냈다. 그가 열 여덟 살부터 바그다드(بغداد)에서 살게 된 건 그의 대학 때문이었다. 이브라힘은 국립 바그다드 이슬람 대학교(현 국립 이라크 대학교)에서 이슬람학에 대한 학사와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바그다드에 있는 옆에 살았다. # 그와 성원에서 만나서 자주 알고 지냈던 이라크인 아부 알리(أبو علي)에 따르면 그는 매우 예의가 바르고 말수가 적었고 축구를 잘해서 자신들은 이브라힘을 축구 선수 메시(Messi)라고 불렀다고 한다. 한편 아부 알리는 바그다드에서 영국인 기자와 이브라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창문을 전부 가렸고 동생보고 바깥의 망을 보게 시켰다. 왜냐하면 밖에서 시아(شيعة)파 민병대들이 수니파 주민들 사이에서 이슬람국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브라힘의 삼촌마저 이라크에 살다가 바그다디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잡혀가서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삼촌은 뭔 죄니? 이런 점들이 바그다디와 그의 이슬람국가를 더 과격하게 만든 것 같다.


아부 알리는 영국인 기자에게 자신이 바그다디가 2004년에 침략해온 미군한테 잡혔을 때 이라크 남부 시아파 도시 바스라(البصرة)에 있었던 부카 강제 수용소(Camp Bucca)에서 찍은 사진을 정보통신망에서 봤었다고 말했다. 그의 사진은 현재 천만 달러 현상 수배 사진이 되었다. 그는 사진 속의 바그다디가 안경을 안 쓴 것 말고는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바그다디의 시력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그는 안경을 쓰고 다녔었다고 한다.

이브라힘이 바그다드에 살던 시절에 만났던 또 다른 이웃에 따르면 그는 미군의 침공 이전에 이미 보수적인 라피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남녀가 함께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어떻게 남녀가 이딴 식으로 함께 춤을 출 수 있냐 이런 건 매우 비종교적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었다고 한다.꼰대 결국 이브라힘은 소리 지르며 화를 내서 그들 남녀가 춤을 못 추게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솔로부대 깽판쩌네

그는 바그다드 이슬람 대학에서 율법 샤리아(شريعة)에 대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2000년 초에 결혼을 했고 2003년에 첫 자식으로 아들을 낳았다.

1.4. --성전에 입문하다


바그다디의 친구 아부 알리에 따르면 그가 성전, 즉 지하드(جهاد)를 하게 된 계기가 매우 사소한 것이었다고 한다.[5]-- 2003년에 미국이 사담 후세인(صدام حسين)이 독재하는 이라크(العـراق)를 침공하자 후세인과 같은 종파이자 침공 이후 권력을 잃은 많은 수니파들이 미국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러자 이브라힘 알 바드리의 집주인이자 바그다드에 있던 성원의 주인이었던 사람이 이브라힘보고 자신이 가입한 신생 이슬람 정당에 가입하자고 권유를 하였다. 허나 정당은 비종교적이다라고 생각했던 바그다디가 이를 거절했고 그 뒤 집주인과 바그다디 사이의 갈등이 커져서 바그다디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한편 그 집주인은 이브라힘의 명성이 알려지자 복수를 당할까봐 두려워서 현재 이라크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브라힘은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그의 전공인 이슬람 율법 샤리아 박사 학위를 살려서 수니파 무장 단체 '자마아트 자이시 아흘 알 순나 와 알 자마아트'(جماعتِ جيش أهل السنة والجماعة, 한국어로 번역하면 수니파 군사 회의) 안에 있는 샤리아 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미군한테 붙잡혀서 2004년 2월부터 12월까지 이라크 남부 시아파 도시 바스라(البصرة)에 있었던 부카 강제 수용소(Camp Bucca)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바트(البعث)당 이라크군 포로들을 만났고 그들과 친해졌다. 바그다디가 부카 강제 수용소에서 만났던 이라크군 장교들은 훗날 그가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아미르(أمير, 사령관)로 재직할 때 수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 점이 이브라힘을 이전의 지도자들(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أبومصعب الزرقاوي‎), 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أبو عمر البغدادي))과 다르게 만들어줬다. 저들은 미군이나 신생 이라크군 기지를 습격할 줄은 알았지만 점령할 줄은 몰랐다. 만약 바그다디 치하의 이라크 이슬람 국가마저 습격만 할 줄 알고 점령할 줄 몰랐더라면 이들은 국가가 아니라 떠돌이 무장 단체 혹은 테러 단체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트 당 출신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브라힘의 이슬람국가는 영토를 점령하고 또 그 점령지를 탈환하려는 정부군으로부터 점령지를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2004년에만 해도 이브라힘은 총을 잡고 싸우는 무장 단체 대원보다는 그냥 꼴통 이슬람 학자의 성향이 더 강했기 때문에 미국 국방부는 그를 테러범으로 분류하는 대신에 그냥 민간인 수용자로 분류했었다. 그리고 그는 십 개월 만에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그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이브라힘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전사들의 협의회(مجلس شورى المجاهدين)라는 무장 단체들의 연대 조직에 가입했다. 전사들의 협의회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주도한 알 카에다 조직과 현지 저항 조직들이 힘을 합친 곳이었다. 그는 거기에서도 전공을 살려서 율법 해석과 자문을 맡았었다.


알 자르카위 사망 이후에 전사들의 협의회가 이라크 이슬람 국가 건설을 선포하자 거기에서는 이라크 이슬람 국가에 속한 각 주[6]들이 율법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브라힘은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아미르였던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 맹세를 했고 사마라와 디얄라에 살고 있었던 자신의 부족원들에게도 충성 맹세를 권하였다.


2010년에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가 미군과 이라크군의 합동 작전으로 전사하자 이브라힘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가명으로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아미르(총사령관)가 되었다.

2012년에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그는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시리아 출신 대원들을 불러 모은 다음 그들을 시리아로 보냈다. 이들이 만든 조직이 바로 알 누스라 전선이다. 알 누스라 전선은 그 뿌리가 뿌리인지라 알라위파 포로들을 전부 참수하는 기행을 선보여서 자유 시리아군까지 욕 먹게 만들었다. 어쨌든 정부군과 자유 시리아군이 점령하지 못한 시리아 영토들은 알 누스라 전선이 점령하게 되었다.

한편 2013년에는 이라크에서도 시아파 총리인 누리 알 말리키의 폭압 정책에 반발하는 수니파들의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 이라크 수니파 지역의 무장 투쟁은 더 거세졌다. 바그다디는 알 누스라 전선의 영토가 탐이 나서 알 누스라 전선이 이라크 이슬람 국가의 일부였다고 선언한 뒤 알 누스라 전선과 이라크 이슬람 국가를 일방적으로 통합시켰다. 그러자 한 때 바그다디의 부하였던 알 누스라 전선 총사령관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는 이에 반발하면서 알카에다 총사령관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게 일러바쳤고 알 자와히리는 알 바그다디보고 그만 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알 바그다디가 이를 무시하고 그냥 이라크 이슬람 국가 군대보고 알 누스라 전선 군대를 공격하라고 시켰다.

결국 알 누스라 전선은 조직원의 팔할과 시리아 동부의 라카와 데이르 알 조르 등을 내주고 시리아 북서부로 쫒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팔할의 조직원들은 전부 이라크 이슬람 국가가 흡수했고 이라크 이슬람 국가는 나라 이름을 이라크 샴 이슬람 국가로 갈아치웠다.

이라크 반정부 시위가 거세진 2014년을 틈타 안바르 주와 니나와 주 사막에 있던 이라크 샴 이슬람 국가의 군대는 팔루자를 점령해버렸고 점점 세력을 다시 키워가서 2008년에 잃었던 라마디와 히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끝내 2014년 6월에 모술과 히트와 티크리트를 함락하자 자만심이 높아진 이라크 샴 이슬람 국가는 스스로 칼리프 국가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이라크 샴을 떼어버리고 이슬람국가로 나라 이름을 갈아치우고 국가 원수 직함도 아미르에서 칼리프로 갈아치웠다. 아미르는 그냥 총사령관을 뜻하지만 칼리프는 모든 무슬림들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한다. 다른 종교로 따지자면 교황과 황제를 겸하겠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나 알카에다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마저 이슬람국가를 욕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슬람국가는 이라크와 시리아 뿐만 아니라 리비아 동부의 데르나라는 해안 도시도 점령했다. 데르나 점령에는 리비아 출신 토착 극단주의자 뿐만 아니라 이슬람국가에서 보낸 전사들도 많이 공을 세웠다. 한편 이집트에서 한국인 개신교 순례자들을 버스 폭탄 공격으로 죽인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디스라는 단체도 바그다디한테 충성 맹세를 했고 프랑스 등산객 에르베 구르델을 참수한 알제리의 준드 알 킬라파라는 단체도 충성 맹세를 했다. 그 밖에 사우디랑 예멘이 있던 극단주의자들이 충성 맹세 한 거 가지고 자기가 동부 리비아, 시나이 반도,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을 주로서 이슬람국가에 신설했으며 얘네들의 충성 맹세는 전부 받아들이겠다고 연설(...)한 뒤 녹음한 것을 11월에 정보통신망에 올렸다.깬다, 일부 과격파가 충성했다고 그 지역이 전부 지 땅이라고 개드립치네

그 뒤 12월 달에는 바그다디의 전 부인 사자 알 둘라이미가 바그다디와의 관계에서 낳은 딸과 함께 레바논에서 붙잡혔다고 나왔다. 둘라이미 집안도 극단주의자 집안이라서 사자의 아버지는 알 누스라 전선과 이슬람 국가에서 활동하다가 전사했고 형제 한 명도 자살 폭탄 공격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위조 여권으로 레바논에 들어갔다가 잡힌 것이다. 한편 이라크 내무부에 따르면 둘라이미와 바그다디는 이혼을 했으며 현재 바그다디의 부인은 이라크 여자 한 명과 시리아 여자 한 명으로 총 두 명이라고 한다.양손의 꽃

2. 평가


시아파에서는 대부분 천하의 개쌍놈, 서방과 제3세계 세속 국가들에서는 이슬람판 아돌프 히틀러.

수니파 일각에서는 영웅 대접을 하기도 했으나 요르단 조종사 포로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을 벌이면서부터는 서서히 등돌리는 이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뭐 이게 어디까지나 같은 수니파 무슬림을 죽여서 율법상 모순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여론이 바뀌는 것일 뿐, 그들 시각에서 '이단'인 시아와 '이교도'인 비무슬림들이 죽어나갈 때는 보수적인 율법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침묵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끔살당한 요르단 공군장교 포로인 무아트 알 카사스베 아버지나 그 부족들도 맨 처음에는 이슬람 국가를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고 미국에게 반감을 가졌으며 잡힌 아들을 풀어달라고 부족 홀로 교섭하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안 미칠 아버지가 어디 있을까. 결국 아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는 걸 본 아버지는 이슬람 국가는 악마다! 모든 이슬람인이여, 아니 전세계가 저 악마들을 물리쳐야 한다며 맹렬한 반대파로 돌아섰다. 다른 수니파 국가들도 제 멋대로 교리를 해석하는 놈들이 무슨 이슬람이냐 라면서 등 돌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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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세계 주요국가의 거의 모든 형법에 명시된 강력 범죄를 저질러왔다.
  • [2] 실제로 이슬람 역사상 수많은 지도자들이 자기 영역을 가지고 나면' ~~의 아부 바크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일종의 태조와 같은 명칭인 셈. 실제 사용례는 위키피디아의 아부 바크르(명칭) 항목 참조.
  • [3] 이는 당연한 이치다. 무함마드지금으로부터 1400년전 사람이다. 게다가 이 사람은 무려 12명의 아내를 두고 있었다. 그러니 그의 후손들은 엄청나게 많을수 밖에 없다. 현재 무함마드의 후손 중 직계는 요르단 왕실이다.
  • [4] 물론 지금은 축구를 매우 혐오한다. 오죽하면 그의 부하이자 이슬람국가 대변인인 아부 무함마드 알 아드나니가 카타르 월드컵을 공격한다고 위협했을까. 원래 축구는 영국에서 유래했고 그 특유의 폭력성과 과격성 때문에 종교적인 인물들은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한다. 한국도 조선 시대에 축국을 했다지만 축국공과 축구공은 그 재질이나 강도가 매우 달라서 단단한 축구공을 본 조선 선비들은 축구를 상놈들이나 하는 거라고 비판하였다.
  • [5] 성전은 개뿔. 사이비 종교 입장에선 성전이다.
  • [6] 2006년에 이라크 이슬람 국가가 선포된 이후 이들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모술, 팔루자, 라마디, 바쿠바, 바그다드, 사마라 같은 수니파 도시들의 일부를 장악하였다. 허나 미국이 이라크 이슬람 국가에 반발하는 수니파 부족들에게 돈을 주고 무기를 전해준 뒤 이라크 계몽 위원회라는 친미 수니파 조직을 창설하자 수니파들 사이의 반목으로 인해 이라크 이슬람 국가는 이 년만에 대부분의 점령지를 잃고 사막으로 후퇴해야 했다. 어쨌든 이라크 이슬람 국가는 국가 행세를 하기 위해 장관들도 두고 행정 구역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