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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벵거

last modified: 2015-04-09 21:22:19 Contributors

아스날 FC 감독
아르센 벵거
(Arsène Wenger, OBE)
생년월일 1949년 10월 22일
국적 대한민국 프랑스
출신지 강원도 삼척시 프랑스 알자스 스트라스부르
선수시절 포지션 수비수
신체 조건 193cm / 78kg
선수시절 소속팀 FC 뮐루즈(1973~1975)
ASPV 스트라스부르(1975~1978)
RC 스트라스부르(1978~1981)
감독 AS 낭시(1984~1987)
AS 모나코(1987~1994)
나고야 그램퍼스(1995~1996)
아스날 FC(1996~ )

아스날 FC 역대 감독
라이스
(1996)
아르센 벵거
(1996~ )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단 5분만이라도 구현[1][2]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제는 타이틀도 모아주세요.

축구 역사상 생수를 가장 찰지게 마시는 남자

2014년 브라질 월드컵 기간, 리우의 해변에서 휴가 즐기는 벵거

Arsène Wenger. OBE[3]

Contents

1. 소개
2. 선수시절
3. 감독생활 초반(~J리그)
4. 아스날로의 부임. 그리고 현재까지
5. 그 외 이야기
6. 비판
7. 전체적인 평가
7.1. 선수
7.2. 감독
7.3. 개인수상


1. 소개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무패우승을 달성한 명장[4][5]

성공한 축덕후, 쇼타콘[6], 교수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에 소속된 프로 축구구단 아스날 FC미노년 샤먼감독. 1949년 10월 22일 대한민국삼척에서프랑스스트라스부르에서 출생했다.

1996년 9월 30일부터 이 문서를 확인하고있는 지금까지 아스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아스날 클럽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으로 별명은 'Le Boss', 'The Professor'(교수). 국내에선 벵타짜, 벵교수, 벵기꾼, 셔틀 벵신, 해적왕, 로리콘, 쇼타콘, 일빠, 벵업벵득, 벵갓, 벵멘, 실패의 스페셜리스트, 실패셜리스트, 실패셜 원, 성공의 어머니, 벵수리, 샤먼 등등이 있다.

웽거라는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독일어 사용 지역인 알자스-로렌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출생했기 때문에 벵거라고 부르는 것이 맞으며, 본인 또한 벵거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사실 벵어라고 부르는 것이 독일어 발음에 가장 가깝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독일어 표기에서는 이러한 경우 벵거라고 표기하고 있다.[7]

2. 선수시절

청소년 시절 아마추어팀 FC Duttlenheim, AS Mutzig 등에서 활약했다. 선수 경력은 골키퍼로 시작했으나 경쟁력이 없었기에 수비수로 전업하였다. 29살이 되던 해에 프로로 전향했다. 190cm 이상의 키로 공중볼을 클리어하는 능력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선수 생활의 대부분을 아마추어로 보냈다. 프랑스의 명문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학업과 선수생활을 병행했다.


아르센 벵거의 선수시절

차후 프랑스 리그 프로팀인 스트라스부르(RC Strasbourg)로 이적했다. 대개의 선수들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29세가 되어서야 1부 리그에 데뷔한다. 78/79 시즌, 소속팀 스트라스부르가 리게앙에서 우승하지만, 출장경력은 단 11경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것이 벵거의 프로 출전기록의 전부이다. 다만, 학업과 선수생활을 병행한 끝에 명문인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차후 명예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3. 감독생활 초반(~J리그)


1981년부터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스트라스부르의 유소년팀을 이끌면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다. 선수로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벵거는 일찌감치 지도자 수업을 쌓으면서 감독이 될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감독생활의 첫 발걸음은 낭시 로렌(Nancy-Lorraine)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부임 첫해에 팀은 리그에서 강등되고 말았지만 클럽은 계속 벵거를 신임했다.


AS 모나코감독 시절, 벵거 제 1의 전성기

1987년 AS 모나코가 벵거를 감독으로 선임하면서부터 벵거의 인생에도 큰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부임 첫해인 87-88 시즌에 AS 모나코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 해에 프랑스 최고의 감독상을 수상하게 된다. 아울러 이 때에도 로리콘어린 선수들의 재능을 알아보는데 일가견이 있어서 티에리 앙리, 릴리앙 튀랑, 마누엘 프티같은 어린 재능들을 발굴해내기도 한다. 또한 최초의 비 유럽인 발롱도르 수상자인 조지 웨아역시 아르센 벵거에 의해 유럽무대에 발탁이 된 선수이다. 젊고 재능있는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던 벵거의 커리어에 제동이 걸린다. 프랑스 리그앙에서 다른 팀에서 불거져온 승부조작 의혹[8]이 터지면서 리게앙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AS 모나코는 리그 순위가 9위로 떨어지는 등 안팎으로 문제가 일어나자 보드진과의 마찰에 휘말려 94년 해임당한다. 훗날 벵거는 혹시나 자신의 선수들도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라며 이 당시 자신이 인간 본연에 대해, 그리고 축구라는 스포츠에 굉장히 불신감을 가졌던 암흑기라고 회고했다. 모나코를 떠난 벵거에게 바이에른 뮌헨에서 감독직을 제의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감이 극심하던 벵거는 거절하고 칩거에 들어간다.


잠시 변방으로 떠났던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시절

잠시 칩거를 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던 벵거는 1995년 막 출범한 일본 J리그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J리그의 흥행을 혼자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뛰어난 지도력을 선보였다.[9][10]벵거는 일본의 식문화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쌀밥과 생선 그리고 채소 위주로 소식을 하는 일본의 식문화에 아이디어를 얻어 엄격하게 식단까지 관리하는 팀운영을 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리고 그래이엄의 불미스러운 사퇴로 팀의 전면적 개혁을 고려하던 아스날 FC의 보드진은 1996년 브루스 리오치의 후임 감독으로 아르센 벵거를 전격발탁한다. 잠시 일본에서 야인으로 있던 기간동안 자신의 축구철학을 완성한 벵거는 드디어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축구를 구현할 기회를 잡는다.

4. 아스날로의 부임. 그리고 현재까지


부임당시 언론들은 이 일본 초밥 좀 먹은 프랑스인과 벵거를 감독으로 선임한 아스날을 비웃기에 바빴다.[12][13] 게다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14], 그것도 영국과 앙숙인 프랑스인이기에 이러한 요소는 더욱 그를 극딜하기 쉬웠다. 이런 비난 속에서 벵거는 그동안 구상해 온 철학을 바탕으로 팀을 완벽히 개혁한다. 앞서 서술한 것 처럼 영국요리를 다 버리고식단 자체를 바꿨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도입한다.[15]


아스날의 레전드 캡틴 토니 아담스[16]와 함께 우승을 자축하는 벵거

벵거의 데뷔는 1996년 10월 12일 블랙번 로버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이뤄졌다. 이 날 2-0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점차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끝내는 리그 3위로 마감, 주위의 우려를 조금씩 불식시키기 시작했다. 부임 2년째인 이듬해 97-98 시즌에는 18실점이라는, 두 경기에 1골도 안내주는 짠물 수비력을 보여주며 FA컵과 리그를 동시에 석권하는데, 이것은 클럽 역사상 두번째의 더블이다.

그리고 이후 벵거는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연달아 준우승을 기록한 99 시즌 부터의 세 시즌을3연콩 단순히 암흑기라 치부할 수 없다. 티에리 앙리와 로베르 피레스, 프레디 융베리 등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을 헐값에 영입하며 팀의 리빌딩을 완벽히 해냈고, 비록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2000년에는 UEFA컵에서 결승에 올랐다.[17] 결국 2001-2002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보다 득점도 적고 실점도 많았지만 안정된 경기력으로 착실히 승리를 거두며 다시 한번 더블을 기록한다. 게다가 이 시즌에는 리그 38경기 전경기 득점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14경기 연속 승리를 거두며 리그 최다연승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또한 다음 시즌까지 기록을 이어가며 55경기 연속득점을 기록, 팀 최다 연속 득점 기록도 세우게 된다. 우승을 확정지은 경기가 엄청난 라이벌리를 형성하던 알렉스 퍼거슨이 이끄는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 원정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02/03시즌은 엄청나게 치고 올라오며 리그 우승을 확정짓나 싶더니, 막판에 리즈 유나이티드에게 발목을 잡히며 간발의 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FA컵에서는 분전하여 다시금 우승을 추가한다.


벵거 커리어의 정점, 2003/04 무패 우승

그리고 2003-2004 시즌, 벵거와 아스날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리그 무패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이뤄낸 것.[18][19] 현재 아스날 서포터들은 다시 이 시절을 재현하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다. 이 시기는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라이벌 의식이 최고조로 달할 때이기도 했다. 선수부터 시작해 두 팀의 감독까지 설전이 오가고 경기장 내에서 치열하게 싸웠다.[20] 2004-2005 시즌 아스날은 맨유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통산 10번째 FA컵 우승을 달성하였다. 04-05시즌 벵거는 플라미니, 로빈 반 페르시, 알무니아등의 선수를 영입하며 다가올 시즌을 준비했다. 시즌 초반 아스날은 지난 시즌 무패 우승의 기세를 이어가며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아스날은 블랙번 로버스전에서 43경기 무패를 달성하며 기존의 리그 연속 무패기록을 뛰어넘었다. 그러나 이 기록은 훗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의해 멈추게 되며 최종기록 49경기 연속무패로 기록을 마감한다.

시즌 종료 후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끊임없던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들고싶다는 이유로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팀의 주장이자 엔진을 내보냈지만, 그 공백을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완벽히 메꾸었고, 공교롭게도 아스날과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어 세스크가 평점 10점을 찍는 대활약 끝에 유벤투스를 꺾는다. 마티유 플라미니,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립 센데로스와 같은 젊은 선수들의 활약속에 아스날은 2005/06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른다. 바르셀로나와의 결승전에서 솔 캠벨이 선취골을 넣었지만, 옌스 레만이 퇴장당하며 주도권이 넘어갔고 아스날은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다.

그리고 계속된 부침이 이어진다. 레전드 데니스 베르캄프의 은퇴, 새로이 팀을 이끌어주길 기대한 호세 레예스의 향수병에 이은 방출, 그리고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 로베르 피레스 등 무패 우승의 멤버들의 이적이 이어지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세스크 파브레가스, 마티유 플라미니, 알렉산드르 흘렙, 토마스 로시츠키등의 선수들로 메꿨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석유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가 몰고온 잉글랜드 축구 환경의 변화가 아스날에겐 뼈아프게 다가왔다. 유럽 축구 그중에서도 EPL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전세계가 소비하는 콘텐츠가 되자 이를 노리고 전세계의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EPL은 이제 전세계 갑부들의 돈지랄머니게임의 무대가 되버린 것이다. 현실에서 위닝하는 갑부들

부임 이후부터 벵거의 가장 큰 관심은 아스날을 세계적인 명문으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구장이던 하이버리를 벗어나 체계적이고 꾸준한 수익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짓게 되는데, 구장을 짓기 시작하던 시기와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프리미어 리그 유입 시기가 겹치게 된다. 현실 치트키오일머니를 앞세운 스펜딩을 하는 첼시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한 라이벌들에게 파워게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구장 건립으로, 그것도 땅값이 높기로 악명높은 런던의 한복판에 구장을 건립해 장기간 긴축재정을 해야하는 아스날에게는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만수르구단주와 맨체스터 시티의 등장을 기점으로 유럽 축구판에 미칠듯한 오일머니가 들어오면서 선수들의 몸값과 주급이 엄청나게 폭등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10m 파운드 미만이면 주전/로테이션급 10m~20m파운드면 핵심선수급을 사올 수 있었고(실제로 아스날 클럽 레코드가 17m파운드의 레예스였다) 스타플레이어를 잡기 위해선 10에서 15만 파운드의 주급이면 충분했지만(애슐리 콜이 아스날을 버린 이유가 10만 파운드 주급을 달라는 요구였고, 당시 잉글랜드에서 10만 파운드를 줄 수 있는 팀은 단 하나, 로만의 첼시였다), 이제는 핵심선수를 사기 위해서는 30m파운드는 기본으로 깔고 시작해야하며, 스타에게 20만 파운드의 주급은 기본이다. 긴축 재정으로 머니파워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아스날은 점점 우승에서 멀어져갔고 또한 전통강호 리버풀의 부활, 에버튼, 아스톤 빌라, 토트넘 핫스퍼등 중위권 클럽들의 약진으로 세리에 A전성기의 7공주 시절처럼 프리미어 리그가 상향 평준화된다. 실제로 이 기간동안 아스날이 3위에 그쳤던 시즌들도 97/98시즌 우승을 달성할 때의 승점보다 많은 승점을 획득하기도 했다.

영광의 시절 수많은 슈퍼스타를 보유하던 클럽인 아스날은 이 시기, 긴축재정을 하기 시작한 에미레이츠 이후 부터 살아남기 위하여 젊고 재능있는 선수를 키우는데 주력한다. 그래서 일명 유치원화가 심해졌다. 주장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토마스 로시츠키, 마티유 플라미니,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로빈 반 페르시로 대표되는 새로운 벵거의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선전을 거두나 막판에 항상 미끌어지며 우승 도전에는 번번히 실패한다. 밥상을 뒤엎고 새로 밥을 먹으려니 힘든 거다

그렇게 5시즌째 무관의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우승이 아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하는 것에 전념하며 팀을 운영하면서 슬슬 서포터와 언론들도 인내심의 한계를 보이면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벵거는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를 거절하면서 다시 아스날과 계약을 체결했다.

2009-2010 시즌 다시 아데바요르, 콜로 투레 등 주축선수를 이적시키면서 큰 비판에 시달리며 몰락의 우려를 샀지만 화끈한 공격축구를 통해 우려를 불식시키며 리그 순위 2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리그 3위로 시즌을 마쳤다. 주포인 반 페르시는 중초반에 시즌아웃되었고, 세스크의 백업요원인 아론 램지는 스토크 시티전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당했다.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시즌 내내 잔부상에 시달려야 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역시 탈락했다. 8강에서 메神이 있는 상대였다. 1차전에서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축구를 하는 바르셀로나에게 70분동안 탈탈 털리다가 바르셀로나가 체력고갈로 방전되자 월콧을 투입, 20분동안 2골을 넣으며 극적인 동점에 성공했다...하지만 2차전에서는........대참사가 일어났다. 제 아무리 메시라도 경험해보지못한 수비에 막힐 것이라며 뻘소리 작렬하던 벤트너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선제골을 넣으나 그 때부터 메神의 매직 원맨쇼가 발동 걸려선.. 그야말로 미친듯이 퍼부었다. 혼자서 4골을 다 넣은 캐사기 메시때문에 아스날은 4:1로 대패당하는 치욕을 맛보았다. 본격 인간계와 천계의 싸움

10/11 시즌도 첼시의 몰락과 빅4의 붕괴 와중에서도 리그에서 꾸준히 순항하며 리그 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바싹 추격했고 칼링컵 결승 진출, FA컵 8강 진출, 챔스 16강 1차전에서 철천지 원수 바르셀로나를 만나서 2:1로 작년의 패배를 설욕하며 역전승을 거두어 우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으나...


칼링컵 결승에서 버밍엄에게 패배하면서 우승을 차지하는데 실패했다. 캄프 누에서 벌어진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은 스코어 3:1, 슈팅숫자 0[21]이라는 기록적인 참패를 당하면서 또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아름다운 비폭력, 무저항 축구 진정한 뷰티싸커 그리고 FA컵 8강에서도 1.5군이 나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2:0으로 패하며 락 쓰리런 2주일도 안되는 동안 세번의 토너먼트에서 모조리 고배를 마셨다. 리그에서도 항상 그렇듯 페이스가 떨어지고 실낱같은 희망의 아스날인이 되어 타오르다 4등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4년 3월 22일에 펼쳐진 첼시와의 경기는 아르센 벵거가 아스날 감독으로서 치르는 1000번째 경기다. 1000번째 경기인데다가 상대가 그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라서 굉장히 의미있는 경기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결과는 망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스카에게 두 골을 얻어맞는 등 처참하게 깨졌다. 그것도 0 대 6으로.

그 뒤 스완지 시티, 맨 시티에게 연이어 비기더니만 33차전 에버튼 원정에서 0:3으로 처발리면서 FA컵에서 4:1로 이긴 에버튼에게 제대로 설욕당했고 이 패배로 이젠 리그 4강자리조차 에버튼에게 추격당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물건너갈 위기에 처했다. 리그 우승은 커녕 리그 4강 위태,리그컵과 챔피언스리그도 이미 탈락했고 이제 남은 건 FA컵 우승뿐. 4강에서 2부리그 위건 애슬레틱과 총력을 다해야할 형편에 처했으며 만약 위건에게 덜미를 잡힌다면 아스날 감독으로 입지가 불투명해진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벌어진 준결승전에서 양팀은 총력을 다해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서 아스날은 4-2로 이겨 결승에 9년만에 진출했다. 여기서 우승한다면 맨 유와 더불어 11번째 최다 공동 우승을 쌓게 되며 벵거 감독이 맡은 뒤로 5번째 우승이다. 진다면 11년만에 벵거 감독 2번째 준우승

맨유의 퍼거슨이 은퇴하고 에버튼의 모예스가 팀을 옮기면서 졸지에 가장 외로운(?) 장수감독이 되었다. 2014년 4월 23일 기준으로 감독생활 6408일을 맞았다. fm 2위는 뉴캐슬의 파듀인데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파듀, 앨러다이스, 로저스, 램버트, 브루스, 포체티노, 휴즈, 무리뉴, 페예그리니, 마르티네즈, 포옛, 풀리스의 각 팀 재임기간을 합한 것보다 벵거감독의 재임기간이 10일 더 많다. 결국 리그는 4위로 마쳤고, 2014년 5월 18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FA컵에서 헐 시티에게 먼저 2골을 실점하며 위기에 몰렸지만 끝끝내 동점을 만들어내며 연장전에 돌입, 연장 후반에 아론 램지가 결승골을 넣으며 벵거에게 9년만의 우승컵을 선사했다.


2014년 지긋지긋한 무관을 끊어냈다

2014년 5월 30일 구단과 3년 재계약하여 2016-17시즌까지 아스날을 계속 지휘하게 되었다.

5. 그 외 이야기

주제 무리뉴가 팀의 승리를 최우선으로 선택하는 실용주의자라면 벵거는 결과가 다소 좋지 않더라도 자신의 철학을 중시하는 로맨티스트에 가깝다. 테크닉 축구와 패싱게임의 열렬한 신봉자로 문서 시작의 부분의 말을 봐도 아름다운 축구[22]에 대한 진실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이건 축구장 내에서의 일이고, 축구장 안팎의 일을 통틀어서 본다면 벵거는 합리적인 실용주의자다.

다만 벵거 자신의 이상주의적 성향[23] 때문에 승리를 놓쳐버린 적이 많다. 이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과감히 전술을 바꾸는 알렉스 퍼거슨과 대조된다. 그래서 지도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단의 부채문제, 매년 끊이지 않는 선수들 부상러쉬와 이적파동 탓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든 4위안에 턱걸이는 한다. 11/12시즌에 기둥 두 개를 팔아먹으며 드디어 나락으로 떨어지나 했지만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벵거의 고향인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경계도시라는 별명답게 프랑스치고는 이질적인 문화가 많은데, 아이리쉬 펍도 그중 하나다. 어린 시절 벵거는 이 펍에서 놀며 깽판을 치는 아저씨들을 보고 자라났다고 했다. 그때부터 술을 극도로 멀리했으며, 그 덕에 아스날의 신년파티는 차나 음료수, 초밥으로 조촐하게 치룬다고 한다. 그때 어른들이 주고받았던 축구 이야기가 지금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회고했다.

벵거는 5개 국어에 능통하며, 2004년 10월 이즐링턴의 자유상을 수상했고 두 개의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경제학 학위를 받았고 하트퍼드셔 대학에서 사회학 학위를 받았다. 또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외국인 감독이다.

상당한 지일파이다. 일본어도 상당히 능통한 편인데[24], 일본 J리그의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감독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일본 문화가 꽤 인상적이었던듯 하다. 대체적으로 일본인들의 근면성실함과 육류를 적게 먹는 식생활을 높이 평가하는듯 하다.[25] 아스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에도 일본 관련 발언을 자주하며, 최근에도 감독생활의 마무리를 찍는다면 일본에서 하고 싶다라는 발언을 했다.[26]

193cm의 장신. 이와 관련된 우스갯소리로 페어 메르테자커를 영입할 당시 "드디어 벵거가 자신보다 큰 선수를 영입했다!" 따위의 드립이 나돌았다. 다른 팀 감독들을 능가하는 이기적인 기럭지로 여성팬이 좀 있는 듯하다(…). 이른바 미노년 간지.


우월하다. 하늘색(또는 흰색)셔츠빨간색 넥타이가 트레이드 마크.


재킷의 주머니를 못찾는 긔요미 모습이 팬들을 빵터지게 만들었다.


이번엔 지퍼가 고장나서 한참동안 지퍼를 가지고 씨름하시는 바람에 또 팬들을 빵 터지게 하심.눈치를 살살 본다


그리고 2013년 5월 4일, 이런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며 감독계의 긔요미 짤방제조기로의 등극을 노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믿으면 골룸 깨알같은 넥슨

2014-2015 시즌 부터 아스날의 공식 킷 스폰서가 된 푸마의 롱자켓 광고를 찍었다. 푸마 자켓은 지퍼가 잘 올라가서 걱정없다는 내용. 마지막에 귀요미 표정을 지으며 "I think so too"라고 말하는 것이 압권. SNL에서 패러디한 내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약빤 광고라 화제가 되었다. 벵거는 근엄한 교수님 이미지에서 코믹한 이미지로의 변신을 노리는 듯 하다.



2010년 10월 현재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알렉스 퍼거슨 감독에 이어 프리미어 리그에서 두번째로 오랫동안 감독을 하고 있다. 두 팀이 라이벌이기도 하고, 아무튼 2000~04년 정도까지만 해도 서로 죽어라고 깠는데 요새는 아스날이 우승경쟁에서 한걸음 비껴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퍼거슨도 그렇고 벵거도 그렇고 서로 다투지는 않는듯 하다.[27]. 하지만 팬들은 화해하기로 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퍼거슨 감독이 2012-2013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면서 그가 가장 오래된 장수감독이 되었다.

일명 올드 트래포드에서 아스날을 외치다

2009년 8월 29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의 경기에서 로빈 반 페르시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자 벵거가 화풀이로 바닥에 있던 물병을 걷어차버린 것을 주심이 매의 눈으로보고(...) 경기장에서 퇴장시켜버린 사건이다. 사실 감독 퇴장은 무리한 판정이었고 이게 추가시간도 거의 다 끝났을때라 벵거가 '그럼 나보고 어디 가있으란 말이냐'라고 항변했던 일화가 있다. 퇴장에 항의하던 벵거는 결국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테크니컬 에어리어 바로 뒤의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그 당당한 포스에 대기심도 제재를 못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마저도 박수를 치면서 응대했다. 경기는 벵거 퇴장후 채 1분이 되지 않아 끝났고, 이후 영국 축구심판협회는 이 퇴장에 대해 벵거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상대 전적상에서 벵거 감독이 퍼거슨 경에 비해 근소하게 우세했으나 최근에 역전당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나 UEFA 유로파 리그같은 국제 대회에서는 그다지 인연이 없다. 2006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준우승한 것이 전부다. 유럽무대 징크스로 많은 욕을 얻어먹지만 전전임 감독이었던 조지 그래엄의 지루하며 전형적인 영국구단 아스날을 이 정도로 변모시킨건 전적으로 벵거의 공이다.[28]]

또한 선수를 보는 안목 또한 뛰어나, 벵거의 밑에서 빛을 발한 선수가 많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아스날의 왕이라 불리던 티에리 앙리,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전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이 있다.

어린 선수들을 주로 기용하는 탓에 로리콘 벵거라고 불리기도 한다.로리가 아니라 쇼타콘 아닌가 [29] 하지만 정작 본인은 24세가 돼서야 프로 리그에 데뷔했다(...) 이 유망주 정책은 구단의 여유롭지 못한 재정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벵거 자신도 경제학 학위를 가진 관계로 그런 재정적인 부분을 상당히 신경쓴다. 그렇다고 무조건 유망주만 영입하는건 아니다. 08-09 윈터브레이크 때 적절히 안드레이 아르샤빈을 영입을 한 것도 있고, 09-10시즌때 비교적 노장인(?) 토마스 베르마엘렌을 데려온걸 보면 영계킬러는 아니다. 다만 선수에 대해 경영학적 시각을 철저히 견지하는데,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는 앞으로 기량이 상승할 확률이 높으므로 그에 대한 금전적 가치가 많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20대 후반의 완성된 선수를 데려온 경우가 별로 없으며, 그나마 이적료 지출을 극도로 꺼린다. [30]

프랑스 출신 선수들을 애용하고 정작 잉글랜드 출신 선수는 애용하지 않아서 한때 아스날은 프랑스 리그 소속팀으로 불린 적이 있다. 원인은 벵거가 아스날을 테크니컬한 축구를 하는 팀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축구 스타일이 섬세함 축구보다 빠르고 거친 축구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유스들을 키우는 전략을 선택했다.

지금은 프랑스 출신 선수들의 비율은 줄어들었지만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의 비율은 별로 늘어나지않아 FIFA나 UEFA에서 은근슬쩍 까고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잉글랜드 선수들로 팀의 중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국 유망주들을 많이 기용하고 있다. [31]

2009-2010 시즌 중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부임할 것이라는 루머[32]가 파다했다. 벵거도 연이은 무관에 대한 비판에 시달리고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 역시 전통의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에 밀려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벵거는...

레알 마드리드는 어렸을적 내가 동경하던 클럽이지만 내게 있어 소중한 것은 자유다.
레알 마드리드는 사온 선수들이 아니라 어린 선수들을 통해 성공을 이뤄야 한다.
사람들은 내가 아름다운 축구에 대해 집착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단지 (현재의)어린 선수들이 계속 성장하고 같이 뛰면서 그들의 게임, 그들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을 사랑할 뿐이다.
맨 처음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짓기로 했을때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클럽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면서 최고의 레벨에 계속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어린 선수들로 이뤄진 팀을 만들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위로 올라가는 것.
우리는 이제 건전한 재정을 유지하면서 아주 어린 선수들로, 재정 건전성을 전혀 고려치 않는 팀들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150M씩 적자를 내면서 축구팀을 운영하는건 내게는 속임수나 다름없을뿐이다.

...라는 간지폭발인터뷰를 날렸다. 사실 이 발언 하나에 그동안 벵거를 향한 비판-계속된 무관, 로리콘, 똥고집, 매우 짠 돈씀씀이 등등에 대한 모든 대답이 다 들어있다고 봐도 무방하다.[33] 레알 마드리드 외에도 PSG, 바이에른 뮌헨,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감독직 제의가 수없이 들어왔으나 벵거는 모두 거절하고 아스날에 잔류중이다.그 이유를 벵거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아스날에 충성하는 이유는 변방에 있던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했던 것이 엄청난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아스날이 나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용기가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스날에 내 흔적을 남기고 싶다."

한때 네이버에서 인물정보를 잘못 올려 학력이 삼척초등학교 중퇴로 나온 적이 있다(…).


샤다라빠는 벵거가 풋볼 매니저를 구입한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2010-2011 시즌 말, 볼턴 원더러스를 상대로 (이번에도 후반 말 역전골을 허용하고) 패배해서 사실상 우승과 거리가 멀어진 경기에서 경기초반 어이없는 실점을 할 때 지은 표정이 뭔가 오묘해서 잠시 현지 포럼들의 필수요소로 등극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2012 시즌 3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경기에서 무려 2:8가르마이라는 대패를 당해 115년만에 아스날의 8실점을 재현했다. 이로 인하여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 상황이다.

하지만 클래스는 역시 클래스인지라. 한때 2부리그 강등권까지 밀려났던 순위를 올리고 또 올려서 결국 챔피언스 리그 직행 티켓을 확보할 수 있는 3위로 리그 일정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여기에는 로빈 반 페르시의 공이 지대하였지만, 반 페르시의 득점포가 박싱데이 이후로 다소 누그러졌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3위로 시즌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것은 벵거의 능력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봐야한다. 사실 2005년 FA컵 우승 이후 무려 7년간 무관이지만, 강등권으로부터 3위까지 팀을 끌어올린 내공으로 인해 이번 시즌을 일컬어 '실패한'시즌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는듯 하다.


2013/14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무력한 경기 끝에 탈락이 확정되어가는 시점에 눈에 눈물이 맺혀있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장시간 포착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클럽인 아스날이 유럽무대에서 다시금 무기력하게 탈락한다는 좌절감에 센치해진 듯. 애증관계가 된 팬들의 가슴까지 뭉클케 했다. 그러니까 좀 영입좀 팍팍하고 우승좀 시켜보자고

6.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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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전세계 축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명장이긴 하지만 최근들어 특유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경향이 생겨 비판여론도 이르고 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유망주 문제다. 유망주 키우는것에 너무 맛들려서 우승을 위해 한두명 정도는 꼭 필요한 베테랑 선수를 등한시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2003/2004년 우승 시즌 이후 파트리크 비에이라, 티에리 앙리 등 주축 베테랑 선수를 거의 매년 한명씩 내치다시피 했지만 이들의 대체자가 될만한 선수들을 사오지 못했다. 물론 세스크 파브레가스, 로빈 반 페르시 등 유망주들이 성장해서 그들을 대체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설사 능력상으로는 비등하다고 하더라도 비에이라나 앙리가 발휘하던 리더십이나 여타 정신적인 부분은 결코 되찾지 못했다. (되찾기는커녕 주장이 돼서 팀을 이끌어야 할 파브레가스는 매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썽을 부렸고 결국 떠났다. 그러나 파브레가스는 런던으로 리턴했다.)

결국 이것은 스쿼드 전체의 고질적인 정신력 부족으로 이어졌고 "벵거의 아이들" 은 매년 우승의 문턱에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경기후반 집중력 부족으로 어이없게 승점을 놓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첼시에게 자리를 내주는 과정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국 최근들어 매년 시즌 초반 돌풍 -> 이번에야말로 우승할 수 있다는 기대감 -> 팬들의 강한 기대와 언론의 주목에 따른 중압감 -> 어이없는 실수 -> 3위 or 4위라는 과정을 무서울리만치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다. 2010/2011 시즌도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4-0으로 앞서다 후반전에서만 4골을 내주고 4-4로 동점을 당하고 오랜만에 첫 트로피일 수 있었던 칼링컵 결승에서 후반 인저리타임 골키퍼와 수비수의 예능으로 하위팀 버밍엄 시티에게 패배를 당한후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 시즌 후반 급격히 무너지며 4위로 미끄러질 위기에 처했다.

지나치게 유망주 위주인 벵거의 영입정책이 특히 문제가 되는 곳이 센터백과 골키퍼, 두 포지션이다. 골문은 옌스 레만이 노쇠하여 떠난 이후 프리미어리그에서 손꼽히는 예능키퍼 누엘 알무니아와 함께 수많은 동유럽 유망주만을 영입하며 아직도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고, 주축이었던 콜로 투레리엄 갈라스를 너무나도 쉽게 내준 수비라인은 토마스 베르마엘렌이라는 걸출한 영건 이외에는 아직도 특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눈딱감고 1천5백만 파운드만 풀어서 제대로 된 베테랑급 센터백과 골키퍼 하나씩만 사와서 수비실책만 없애면 당장이라도 우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몇년 전부터 있었으나 (물론 그런 경험있는 베테랑급 센터백과 골키퍼는 타팀 주전이고 그걸 누가 싼값에 팔겠으며 아스날같이 오일머니가 없는 클럽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수년째 성공적인 선수보강에 실패하고 있다 결국 골키퍼는 유소년에서 올라온 슈체스니가 포텐셜 대폭발알무니아나 파비안스키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드디어 파비앙스키의 예능축구를 안보고 있다ㅠㅠ파비앙스키 임팩트있는 스키...- 수비 라인의 경우 벵거도 유망주 위주의 정책에 한계를 느끼고(요한 주루는 재앙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던 터라) 베테랑 수비수인 바스티앙 스퀼라치를 사왔으나 경기력이 기대이하였고, 결국에는 페어 메르테자커로랑 코시엘니를 영입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다. 골키퍼쪽은 결국엔 스체스니가 포텐셜이 터지면서 문제가 해결됐지만 수비수는 결국 영입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건데, 특히 경험이 필요한 포지션에는 영입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욱이 애초부터 리페 센데로스나 요한 주루가 주전으로 나설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물론 나름대로 긴축재정을 필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도 있다. 바로 아래 참조).

한편,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축을 위해 엄청난 빚을 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로, 이 때문에 당분간은 돈이 있는데도 안쓰는 것이 아니라 없어서 못쓴다는 의견도 있다. 오히려 없는 돈에 유망주만 가지고 이 정도 스쿼드를 만들어낸 벵거를 고평가하기도 한다. 내부사정을 어떻게 아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아스날정도 되는 클럽이면 사실상 하나의 사업체이고 사업체의 자금흐름의 대강 정도는 관심이 있고 영어에 능하다면 알 수 있다. 어쨌든 돈을 막 쓸만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더 잘 쓸 수 있냐, 혹은 어느정도는 써야 되는데 왜 안 쓰냐 이것이 비판의 주안점일 것이다.

영입정책 이외에도 전술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도 있다. 화려한 숏패스와 태크닉을 위주로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하는 아스날은 역사적으로 항상 밀집수비와 피지컬이 좋은 팀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샘 알라다이스 시절의 볼튼과 풀리스 시절의 스토크과 이를 활용해 압도적인 전력차에 비해 제법 선전했다. 그리고 진정한 벵거써는 기계는 스페셜원 주제 무리뉴. 이 둘이 부딪치기 시작한지 10년이 다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한번도 못이겨봤다. 무리뉴의 제자들 중에선 압도적인 피지컬을 보유한 디디에 드로그바가 아스날만 만나면 문자 그대로 박살을 내버렸다.그리고 2014-2015 시즌에서 다시 첼시를 상대로 패배,이에 격앙되었는지 상대팀 감독 무리뉴를 밀치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 외에도 자존심이 강하고 약간 우월의식이 있고 경기후 심판판정에 불만을 제기하거나 상대팀을 깔보는 발언을 하는 빈도가 높다.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감독도 안 해봤으면 조용히 하라든지...첼시 FC를 지휘하고 있는 모 동업자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해도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감독생활 및 미야이치 료를 비롯한 일본 유망주 영입으로 일빠(...)라고 까였으나 11/12 시즌 여름 이적시장 막판에 박주영해적질 가로채는 신의 한수를 둠으로써 역시 해적왕, 개그 포텐셜이 터졌다는 평가 국민감독이 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박주영을 경기에 내보내지 않아 박주영 팬들에게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35]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끽해야 교체로 10여분을 내보내준게 전부다.이때 벵거에 대해서 몇 몇 축구 커뮤니티에서는 그야말로 인신모독에 가까운 욕설을 쏟아내기도 했다.덕분에 한때 아스날 팬들은 속을 끓이며 앓아야 했다.

그리고 2012년 박주영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로 임대되어 아스날을 떠났고 강등권 팀에서도 초반 반짝 후 별반 출장을 못함으로 역시 이유가 있었다는 재평가를 받게 된다. 그렇지만 힐러를 임대보낸 대가로 팀 내 부상자가 늘어나고 팀 성적도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박주영브라질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활약을 함으로서 아쉽지만 벵거가 선수를 박주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학자풍의 지적인 스타일로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휘어잡는 스타일은 아니다. 바비 롭슨경 처럼 "아버지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관심있게 지도하고 포용력이 강한 덕장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선수들과 좋은 일이던, 나쁜 일이던 간에 대화를 많이 하고 섬세하게 컨디션을 파악하며 적극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스타일. 티에리 앙리, 비에이라, 세스크 파브레가스,로빈 판 페르시, 팀을 떠나고 아스날에 폭풍 디스를 한사미르 나스리등 벵거의 수하에 있었던 선수들 모두 벵거를 평할 때 '친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평한다. 비에이라는 이적요청을 하러 휴일 벵거의 집에 찾아갔는데, 자신을 따뜻하게 반겨주는 벵거를 보고 '이 아버지같은 분을 내가 떠나야 하나' 하고 심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36] 이러한 리더십으로 인해 설령 팀과 안좋게 헤어지더라도반 페르시, 세스크, 갈라스, 나스리야망이 없고 투자가 없는 아스날의 정책에 비판을 할 뿐 벵거에 대한 디스를 하는 선수는 없고 도리어 감사를 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스날의 팬들은 팀이 수렁에 빠졌을 때 호통치고 정신 번쩍 들게하는 모습이 드물기에 아쉬워 하는 부분도 없진 않다.

또한 선수단 관리에 상당히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다. 이러한 점은 몇 년전부터 점점 제기되다가 2014-15 시즌에서는 대놓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메수트 외질의 부상으로 큰 논란을 빚기도 했고. 주로 적절한 체력관리와 휴식없이 특정 선수를 혹사시켜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가 방전되고 덩달아 팀 성적도 하락한다는 점, 관리가 필요한 선수를 로테이션없이 계속 돌리는 점, 이해할 수 없는 선수교체가[37] 점점 늘어난다는 점 때문에 부상 빈도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 등이다. 이 때문에 선수 생명이 우려되는 선수도 나올 정도. 게다가 너무나도 심한 선수들의 부상빈도 때문에 현지 전문가와 팬들은 팀 의료팀의 형편없는 수준, 훈련방식의 문제와 더불어 벵거의 선수기용과 혹사가 주요원인이라고 지적하는데도 불구하고 감독 본인은 들을 생각이 거의 없는 듯 하다.이러한 외불통 고집때문에 벵거를 옹호하는 팬들도 상당히 실망했고 다수가 떨어져 나간 상태. 점점 그의 이임을 원하는 팬들이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다. EPL의 대표적인 명장이자 장기재임감독으로 쌍두마차를 이루던 맨유알렉스 퍼거슨이 은퇴하기 직전까지도 팬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은 것과 대비되는 부분.

7. 전체적인 평가


위에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 대체적으로 평가는

아스날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기초를 마련하고 팀의 명성을 몇 단계 끌어올린 명장

일단 뻥축구가 만연한 EPL에 당당히 입성해서 패싱플레이 등 축구판도를 완전히 바꿨고, 훈련시스템이나 선수체크[38] 등 여러 방면에서 축구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39]

또한 많은 이들이 벵거하면 아스날 밖에 생각치 않는데, AS 모나코에 대한 기여도 상당하다. 사실 지금 AS 모나코가 몰락명문[40]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그 한때 명문인 시절이 바로 벵거 감독이 이끌었던 시절이다. 밑에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리그앙 우승 1회, 프랑스컵 우승 1회에 위너스컵 준우승 리그앙 준우승이 3번인데, 한마디로 모나코 부임 내내 팀을 우승권 언저리에 올려놓은 셈.

거기에 벵거 부임 직전 중위권[41]인데다가, 축구스타일이 지루하다고 까인 아스날을 부임하자마자 단숨에 바꾼 내공은 무시할 수 없다.[42]

박지성의 맨유입단 즈음인 2005년부터 해외축구를 접한 한국의 해축팬들에겐 무관이라 조롱받고 있고 능력없는 감독이라 폄하되고 있다. 근데 그렇게 애초에 그렇게 능력없는 감독이라면 독일 국대의 플레이메이커가 레알 마드리드라는 구단을 떠나서 감독 하나만 보고 레알보다 한참 떨어지는 레벨의 클럽인 아스날에 온점, 17년 연속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한점, 더비라이벌보다 단 한번도 리그테이블에서 밑으로 시즌을 마친점 등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감독들의 무덤, 레알 마드리드에서 언제나 영입 1순위로 점찍어 뒀던 감독이며,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영입 1순위이다.

벵거가 오기 전 아스날은 리그우승 10회 FA컵우승 6회의 성적이었다. 지금이야 맨유, 리버풀과 더불어 명문취급받지만, 당시 트로피 숫자로 보면 넘사벽의 맨유나 리버풀보다는 오히려 에버튼이나 아스톤빌라와 가까운 클럽이었다. 벵거 부임 두 시즌전인 1994-1995 시즌을 기준으로 보면, 에버튼은 리그우승 9회 FA컵우승 5회였고, 아스톤빌라는 리그우승 7회에 FA컵우승 6회 그리고 무려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의 역사를 가지고있었다. 아스날과 정말 비슷하다. 에버튼과 아스톤빌라가 프리미어리그 출범이후 부진한 사이 벵거의 아스날은 90년대 중반부터 2005년까지 리그우승 3회와 FA컵우승 4회를 했고[43] 낡은 구장에서 신식구장으로 이사까지 했다. 거기에 1998/1999시즌 이후 17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참가중이며 2000/2001시즌부터 15시즌 연속 챔스16강에 진출중이다.[44] 이런 기록을 가지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45] 맨유정도가 유일.[46] 가장 꾸준한 것이 가장 쉬워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어려운 법이다.[47]

위에도 있듯이, 세계 최고의 구단인 레알 마드리드가 항상 원했지만 늘 정중히 거절해온 감독이 아르센 벵거다. 바이에른 뮌헨 역시 모나코 감독이었던 시절 부터 꾸준히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벵거는 모나코 감독을 사임하고 뮌헨과 J리그중 J리그를 택했다. 잠시 머리를 식히러 갔던 J리그에서도 1년만에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팀을 우승권에 바로 안착시키는 등, 트로피를 드는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48]

그리고 무엇보다 벵거 감독의 가장 뛰어난 점, 그리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점은 바로 구단의 재정관리 부분인데, 사실 현재 아스날이 무관의 세월을 견디고 있는 이유는 벵거의 무능이 아니라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은 데에 대한 후폭풍이다. 지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소리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아스날 이외에 구장 새로 지었다가 강등 안 된 팀 없다.맨시티는 예외로 두고 가자 솔직히거기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땅값이 엄청난 런던의 한복판에 지은데다 모든 시스템이 전부 최신이기 때문에 돈은 그것대로 더 들어갔다. 어마어마한 부채를 떠앉고[49][50] 거기에 빨리 짓기 위해, 나이키/에미레이츠 등과 스폰서계약을 사실상 헐값에 가까운 돈으로 일시불로 받아서[51] 재정적으로 허덕이는 팀을 매년 챔피언스리그로 이끈 것은 전적으로 벵거의 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기에 EPL의 스카우터 제도 또한 벵거가 새로운 파도를 일으켰을 뿐더러[52], 선수를 보는 눈 또한 대단하다. 2000~2006년 무렵 벵거가 선수 사고 파는 솜씨는 정말 경탄을 자아내는데, 콜로 투레, 티에리 앙리, 송, 파브레가스, 아데바요르, 반페 르시, 가엘 클리쉬, 니콜라 아넬카, 바카리 사냐, 에보우에, 알렉산드르 흘렙과 같은 선수를 단물 실컷 빨아먹고 팔았다. 정말 이 시절은 벵기꾼, 벵타짜라는 말이 어울리던 시절. 플라미니, 갈라스, 애슐리 콜, 로베르 피레스도 장사에는 실패했지만 쏠쏠하게 잘 부려먹었다. 2000년후반~2010년대 초반에도 영입질을 못하진 않았는데 부상 + 얇은 스쿼드의 한계 때문에 말아먹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산티아고 카소를라로랑 코시엘니, 기어이 포텐을 터트린 아론 램지 사례를 보면 이 분의 촉은 아직 살아있다. 다만 부임 당시 가장 진보적인 훈련, 진보적인 선수관리로 일컬어졌던 벵거의 선수관리 스타일이 2000년대 후반 들어 집중적으로 부상병동화가 되면서 비판을 받고있다. 당시에는 진보적이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2013-2014 시즌에 들어서며 7,000만 파운드의 이적자금을 손에 쥐고서도 자유계약으로만 단 두 명을 영입[53]한 채로 이적시장 마감 하루 전날 북런던 라이벌 토트넘 핫스퍼와의 더비전을 치르게 되자 잉글랜드 현지뿐 아니라 전세계의 팬들이 "팬들에 대한 기만이다."라며 분노의 수위가 높아졌으나[54]... 선수 영입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지난 시즌의 베스트 일레븐으로 나선 아스날은 이날, 폭풍영입으로 스쿼드의 절반을 갈아치운 토트넘을 경기력으로 압도하며 1-0으로 승리했으며 경기후 이적 상황에 관해 묻는 인터뷰에서 벵거는 "우리는 한두 명의 슈퍼 퀄리티를 영입할 것이다."라며, 뭔가 밑장을 깔아놨을 때 항상 지어오던 특유의 의뭉스러운 미소를 던지곤 돌아서 분노했던 팬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적시장 막판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메수트 외질을 영입 완료하며, 이번에는 슈퍼 퀄리티에 대한 약속을 정말로 지켰다![55] 그것도 클럽 레코드를 경신하는 4,250만 파운드 (5000만 유로)로 역대 EPL 영입금액 2위, 타 리그에서의 이적으로는 역대 1위(!!!), 2013년 EPL 내 1위에 해당하는 금액을 질러버린 것.[56] 기존 클럽 레코드였던 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영입금액 1,500만 파운드(추정)에 비해서도 세 배 가까이 되는 충격적인 액수였기에 전세계 축구팬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벵거는 자신을 향한 '짠돌이'로리콘, '몽상가', '완고한 늙은 독재자' 등등의 비난여론에서 흐름을 완전히 반전시켜 버리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더이상 벵거의 독단을 방치할 수 없다'며 인내심을 잃었던 팬들이 다시금 벵거를 찬양하며 자신의 믿음이 신실치 못했음을 참회하고 있다고....벵멘 ...인줄 알았으나 이후로도 지속적인 문제가 드러나면서 점점 그에 대해 신뢰를 잃는 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8. 경력

8.1. 선수


연도클럽출장수(골)
1973–1975Mulhouse56(4)
1975–1978ASPV Strasbourg80(20)
1978–1981RC Strasbourg11(0)
Total147(24)

  • 스트라스부르
    • Ligue 1 우승 (1978–79)

8.2. 감독


  • Nancy (1984–1987)
  • AS 모나코(1987–1994)
    • 우승
      • Ligue 1 (1회): 1987–88
      • Coupe de France (1회): 1990–91
    • 준우승
      • UEFA Cup Winners' Cup (1회): 1991–92
      • Ligue 1 (3회): 1990–91 1991–92 1992–93

  •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 (1995–1996)
    • 우승
      • 천황배 축구대회 (1회): 1996
      • J리그 Super Cup (1회): 1996
    • 준우승
  • 아스날 FC(1996~)
    • 우승
      • Premier League (3회): 1997–98, 2001–02, 2003–04
      • FA Cup (5회): 1997–98, 2001–02, 2002–03, 2004–05, 2013-14
      • FA Community Shield (4회): 1998, 1999, 2002, 2004, 2014
    • 준우승
      • UEFA Champions League (1회): 2005–06
      • Premier League (5회): 1998–99, 1999–2000, 2000–01,2002–03,2004–05
      • FA Cup (1회): 2000–01
      • League Cup (1회): 2006–07
      • FA 커뮤니티실드 (3회): 2003, 2005, 2014
      • UEFA Cup (1회): 1999–2000

8.3. 개인수상

  • French Manager of the Year: 1988, 2008
  • J. League Manager of the Year: 1995
  • Onze d'Or Coach of The Year: 2000, 2002, 2003, 2004
  • FA Premier League Manager of the Year: 1998, 2002, 2004
  • LMA Manager of the Year: 2001–02, 2003–04
  • BBC Sports Personality of the Year Coach Award: 2002, 2004
  • Freedom of Islington: 2004
  • FWA Tribute Award: 2005
  • English Football Hall of Fame: 2006
  • Premier League 이달의 감독: 13 times (March 1998, April 1998, October 2000, April 2002, September 2002, August 2003, February 2004, August 2004, September 2007, December 2007, February 2011[57], February 2012, September 2013)

  • 2003년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 명예수훈[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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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벵거는 아리고 사키의 철학을 그대로 물려받아 발전시킨 감독으로서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사키이즘의 완벽한 실현이다. 이 말 역시 사키의 어록과 유사하다. “난 단순히 역사에 쓰여지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난 90분간 내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기 때문에, 이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이 아닌,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고 즐기는 것에서 오는 기쁨을 느끼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다.” - 아리고 사키
  • [2] 다만 그가 구현한 아스날 특유의 축구색은 시간이 지날수록 퇴색되고 있는 중이다.선수단의 퀄리티 자체가 그 정도의 축구를 구현할 수준이 안되는 탓이 크다.결정적으로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바르사로 이적하면서 거의 유명무실...
  • [3] 프랑스 사람이지만, 알자스(알자스-로렌 참조) 출신의 독일계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웽거'가 아닌 '벵거'로 읽어야 한다. 본인도 자신을 벵거라고 칭한다.
  • [4] 이전 버전에서는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는 설명이 있었는데 벵거가 아스날에 대단히 큰 공헌을 한 명장이긴 하지만 역사상 최고는 아니다.20세기 초 아스날의 감독을 역임한 허버트 채프먼이라는 감독이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힌다.그는 아스날에 많은 기록을 만들어주었고 전술적으로도 개혁적이고 우수한 면모를 보여줬으며 오늘날 아스날의 토대를 쌓았다.그가 죽은 것도 직접 선수들을 스카우트하러 다니면서 비에 맞아 폐렴에 걸리면서도 일을 쉬지 않았기 때문이다.
  • [5] 하지만 허버트 채프먼이 아스날 역대 최고의 명장은 아니다. 아스날의 가장 찬란한 역사는 벵거 시대에 만들어졌고 최고의 선수들 또한 벵거가 직접 영입해서 역사가 된 것이 굉장히 많다. 바로 그중 하나가 티에리 앙리. 또한 국가내 명문이었던 클럽을 세계적인 위상으로 끌어올린것도 벵거이며 그 기간동안 경기장 건설과 긴축재정으로 아스날의 기반을 확실히 닦았다.그리고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 [6] 젊은 유망주들을 선호하는 벵거의 성향을 두고 부르는 별명
  • [7] 독일어의 잉에(Inge)를 잉게, 징어(Singer)를 징거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이러한 예에 해당한다.
  • [8] 참고로 저 때 승부조작을 시도한 주동자 중 한 명이 장-피에르 베흔이다. 당시 마르세유와 경쟁하던 AS 모나코의 감독이 벵거였기에 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악연을 이어가는 중이다. 베흔은 2년간 축구계에서 퇴출된뒤 현재는 프랑스 A급 선수들을 독점하는 에이전트이자 프랑스 축구계의 흑막으로 활동중이다. 베흔은 아스날에서 맨시티로 이적한 사미르 나스리의 에이전트도 맡고 있으며, 그의 맨시티 이적에는 베흔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 있다.
  • [9] 그래서인지 일본 축구팬들은 벵거를 J리그 덕에 알려졌다는 투로 이야기하곤 한다. 다 욕할건 아니고, 한국에서도 수원 삼성 출신이던 가비가 루마니아 명문인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1986년에는 FC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전신 유러피언컵까지 우승했었다!- 감독이 될때 꽤 관심을 가진 적도 있다.
  • [10] 그러나 아르센 벵거의 증언에 따르면 AS 모나코에서 감독으로 있을때 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한 여러 명문 클럽들의 오퍼도 거절했는데 경질당한 배신감에 가장 먼저 오퍼오는 팀의 감독으로 가려고 결심하고 있었는데 J리그에서 오퍼가 와서 갈지말지 고민을 하다가 갔다. J리그로 가기 전에 이미 벵거는 여러 우승기록을 가진 유럽에서 주목받는 감독이었다.
  • [11] 벵거가 부임 이후 하이버리구장에서 아스날 매거진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잡지에는 당시 영국에서 듣보잡인 벵거를 소개하고 그를 옹호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 [12] 당시 한 신문의 머릿기사 제목이 Arsen who? 였다. 한마디로 듣보잡이라고 깠던 것.
  • [13]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잉글랜드 언론의 무식함을 보여주는것이다. 아르센 벵거가 감독직을 일본에서만 한것도 아닐 뿐더러 모나코에서 리그 및 유럽대회 우승까지 이뤄낸 주목받는 젊은 감독이었다가 잠깐 일본으로 갔던것인데, 2014년으로 치자면 위르겐 클롭이 잠시 변방으로 갔다 왔는데 듣보잡소리를 듣는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14] 당시 잉글랜드 리그는 굉장히 폐쇄적인 체제였다. 외국인 선수의 수도 상당히 적었다.
  • [15] 이는 나중에 영국 축구 전체에 잔잔한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과정은 잔잔했지만 그 결과는 글자 그대로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벵거가 오기 전까지 영국인들은 축구시합후 마구 맥주를 마셔대고 각종 튀긴 음식과 초콜렛을 퍼먹는 인간들이라 벵거가 기겁했다고 한다. 벵거가 식단을 통제하자 아스날의 선수들은 제발 초코렛좀 돌려달라고 선수단 버스에서 노래까지 불렀다.
  • [16] 아스날,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을 장기간 역임했으며, 잉글랜드 역대 최고의 센터백을 꼽을때 항상 언급되는 레전드이다. 그러나 루크 쇼는 토니 아담스를 몰랐고 프랭크 램퍼드는 이에 기겁해서 은퇴를 고려했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루크 쇼참조
  • [17] 벵거의 지독한 유럽무대와의 악연은 이 때 부터 시작이다. 무패우승을 기록하던 당시에도 챔피언스 리그와는 인연이 없었고, 비에이라를 팔고 리빌딩한 05-06시즌에도 레만의 퇴장이 겹치는 등 불운속에 준우승에 그친다.
  • [18] 유럽 3대리그 최초의 무패우승은 91-92 시즌의 AC 밀란이며 빅리그 3번째 무패우승은 11-12시즌 유벤투스다.
  • [19] 잉글랜드 최초의 무패 우승은 1888-89 시즌의 프레스턴 노스 엔드이며, 77/78시즌의 노팅엄 포레스트는 42경기 무패 기록을 달성하며 우승했지만 두 시즌에 걸친 무패행진으로 인해 3패를 기록한 상태로 우승을 했다.
  • [20] 이 시기 무적 포스의 아스날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두들기지는 못하였다. 이 사실이 두 팀 팬들에게 영원한 떡밥으로 작용한다.그리고 이후로도 아스날은 맨유에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그래서 아스날 팬들은 이 점을 한탄하기도.
  • [21] 1골은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자살골
  • [22] 벵거가 말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아스날 전성기에 보여준 우두다다 닥공 축구에 가깝다. 유로 2012를 프랑스TV에서 해설하면서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에 대해서도 재미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점유율을 부수적인 산물로 보는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는 셈.
  • [23] 한경기만 봤을때는 맞는 말이지 전체적인 아스날의 커리어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게.. 사실 추구하는 패스축구가 이상적인 거지 구단 운영모습을 보면 굉장히 현실주의적인 사람이다. 경제전문가이기도 하고.
  • [24] 어디까지나 다른 유럽인들에 비해 능통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능통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 듯 하다. 2015년 2월 가브리엘 영입과 관련된 가디언 인터뷰에서 나고야 감독시절 배운 일어를 언급했다. 기본 회화는 가능하다고 한다.
  • [25] 현대 프랑스 요리관이 일본 요리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탓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26] 또 2010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이후 혼다 케이스케를 칭찬한 일화라든지, 최근 일본의 유망주 미야이치 료를 영입한 일이라든지 일본 선수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명하는 편이다. 단, 국가대표팀 감독은 맡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직은 딱 잘라 거절했다.
  • [27] 11/12 시즌에는 퍼거슨이 초반 나락에 떨어진 아스날과 벵거에 대해 걱정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팬들은 굴욕이라고 느낄수도...
  • [28] 애초에 조지 그래엄이 사퇴하게 된 계기자체가 흑역사다. 선수영입 대가로 에이전트에게 뒷돈을 받아먹었다.
  • [29] 덕분에 로리라는 단어를 널리 전파하였다. (...) 하지만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못한 일반인들이 벵거를 로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60대 로리 돋네...
  • [30] 하여튼 국내 유럽축구 팬덤에서 아스날의 별명은 벵거 유치원이다. 그와 반대되는 팀은 밀란 노인정이다.
  • [31] 중하위권팀에 상당수의 아스날 유스 출신 잉글랜드 선수들이 있다. 그 선수들의 실력이 아스날의 수준에 안맞는 것일뿐이다. 이 부분을 아스날 서포터들은 유스키워서 2부리그나 중하위권팀들 먹여살린다고 주장하고있다.
  • [32] 레알 마드리드의 페레즈 회장이 벵거를 좋아한다는 것도 한몫했다는 설이 있다.
  • [33] 하지만 '왜 확실한 공격수를 영입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샤막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선수지만 보르도에서 제시한 금액을 지불할 생각이 없었고, 따라서 샤막에게 '우리에게 에두아르도가 돌아왔어. 자네를 벤치에 앉혀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네.'라고 말했다.'라고 그 당시엔 간지나는 답변을 했지만... 상황이 바뀌어서 샤막은 공짜로 아스날로 이적했고, 에두아르도는 결국 밀려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했다;
  • [34] 가운데 있는 벵거를 제외하고 그 주위에 있는 감독들 모두 챔피언스 리그에서 빅 이어를 든 감독들이다.소년명수도 든 빅 이어인데......
  • [35] 닉 밴필드 당시 리저브 감독이 비판한걸 보면 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 [36] 실제로 비에이라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데다 매우 젊은 나이에 아스날에 왔기에, 중요한 사적인 결정을 할 때면 항상 벵거와 상담할 정도로 그를 "진짜" 아버지로 여겼다.
  • [37] 팀이 뒤지고 있는 상황인데도 후반 인저리 타임때가 다 되서야 겨우 교체를 한다던지, 똥을 싸지르는 선수는 빨리 교체 안하고 엉뚱한 선수를 교체한다던지...
  • [38] 벵거 감독은 아스널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를 위해 음식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스널에서는 케첩도 금지 식품 중 하나다. 격렬한 운동을 마친 사람이 단시간에 케첩을 많이 섭취할 경우 일시적으로 혈액이 응고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출처-http://isplus.liv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4466086&cloc=
  • [39] 벵거가 아스날에 처음 와서 바꾼 것이 음식 부문이다. 알콜에 빠져있던 아스날의 영국 선수들의 술을 금지하고 과도한 육식대신 일본에서 경험한 채식 위주의 식이요법을 적용했고 그 결과 후반전만 되면 체력이 고갈되던 아스날 선수들은 전후반 90분을 뛰고도 더 뛰고 싶어할 정도로 체력이 급달라졌다. 이건 그저 한 예시에 불과하고 벵거를 다룬 칼럼을 찾아보면 대단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다.후에 이런 방식이 널리 전파되었지만 벵거가 선구자인 것은 아니다.음주 금지와 식단관리같은 것은 다른 감독들도 먼저 시작했던 부분으로 벵거보다 거의 10여년 먼저 잉글랜드 축구팀에 부임한 퍼거슨도 이러한 면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 [40] 뭐 13-14 시즌부턴 그렇지 않겠지만
  • [41] 1994-1995시즌에 토트넘이 7위였고 아스날은 12위였다. 이후 벵거가 부임한 96-97시즌부터 아스날은 토트넘보다 순위가 밑이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 [42] 스타일로 비유하자면 벵거가 부임직전의 아스날은 현재의 풀럼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 [43] 13-14시즌 헐시티를 꺾고 팀 역사상 11회의 우승을 기록함. 맨유와 타이기록.
  • [44] 98/99시즌 첫 출전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단 이때는 챔스본선이 32팀이 아니고 24팀이 6개조로 나누고 각조 1위팀 6팀과 2위팀중에 승점이 높은 2팀이 8강에 진출하는 식이었다. 두번째 출전인 99/00시즌에는 챔스가 32팀으로 개편됐는데 이때는 조별리그에서 3위를 기록하고 유로파로 밀려났다. 그리고 유로파결승에서는 갈라타사라이에 패하여 준우승. 이후 3번째 출전인 00/01시즌부터 지금까지 32강조별리그를 통과하고 16강에 합류중이다.
  • [45] 레알은 97/98시즌부터 지금까지 18시즌 개근중이다.
  • [46] 바르셀로나는 2002-03시즌 6위, 바이에른 뮌헨은 2006-07시즌 4위(당시 분데스리가의 챔스 티켓은 3장)를 기록하면서 챔스 진출 기록이 중간에 끊어졌다. 맨유도 2013-14시즌 모예스의 활약(...)으로 챔스무대 연속진출을 마감했다.
  • [47] 지금이야 부활에 성공했지만 리버풀도 사비알론소 등이 이탈한 후 챔스권 진입도 못했고, 첼시는 챔스우승으로 다음시즌 챔스권을 획득한 것이지 당시 리그 성적은 6위로 형편없었다. 맨유도 모예스 이후 챔스권 진입 실패. 토트넘도 한시즌 챔스진출 이후 다음시즌은 리그에서 부진. 아스날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던 스페인의 발렌시아, 클롭 이전의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잇달아 실패한 사례, 그리고 이탈리아의 AC밀란이나 인테르같은 명문들도 정점을 찍은 이후 중위권에 머무르는 현재만 봐도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꾸준히 획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챔피언스리그 진출은 오일머니가 없는유럽의 명문팀에 사활이 걸린 문제인데, 진출에 실패할 경우 막대한 중계권과 스폰서를 포기해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스날이 에미레이츠 이적 이후 가장 재정이 쪼들리던 2000년대 말에 챔스 진출에 단 한번이라도 실패했다면 엄청난 나락으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 [48] 나고야 그램퍼스는 당시 결코 강팀이 아니었고 리그에서는 부진했다.
  • [49] FM에서 빚이 많은 구단을 해본 사람이라면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매달 수억~수십억씩 채무 상환으로 빠져나가는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때문에 처음에 구단 재정이 넉넉하다고 선수를 마구 사버리면 얼마 안가 재정난에 빠지기 쉽다. 보통은 챔스 등에 꾸준히 나가면 중계 수입으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으나, 만약 챔스에서 광탈하고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하면 순식만에 몰락할 수 있다. 현실에서 이런 테크로 순식간에 몰락한 대표적인 예로 리즈 유나이티드가 있다.
  • [50] 참고로 FM에서 아스날의 구단 부채는 한화로 5,000억원에 이른다. 단순 수치긴 하지만 몸값만 따진다면 호날두, 메시, 네이마르 등을 몽땅 사고도 남는 금액이다.
  • [51] 말하자면 몇년간 스폰서에 의한 수입은 거의 없었던 셈
  • [52] 이건 축구잡지 포포투에 나온건데 타 구단과 다르게 아스날은 특유의 피라미드식 스카우터 제도를 갖고 있었는데, 덕분에 세스크 파브레가스를 손쉽게 낚아올 수 있었다. 또한 제 2의 파브레가스의 재능이라 불리는 게디온 젤라렘 역시 이 제도 덕에 데려올 수 있었다고. 이는 타 구단에 없던 상당히 특이한 제도였으므로 다른 구단은 금방 벤치마킹하게 되었다. 가장 빨리 벤치마킹한건 당시 알렉스 퍼거슨이 이끌었던 맨유였고 지금은 타 구단들도 이런 방식이 보편화되었다고.
  • [53] 야야 사노고마티유 플라미니.
  • [54] 잉글랜드 경기전 방송 캡처사진에 의하면 '0 파운드 vs. 1,000만 파운드'의 그래픽이 떡하니 있었을 정도이니 아스날 팬들이 느꼈을 굴욕감에 대해 더 설명이 필요한지?
  • [55] 이번에는 이라는 것은 전에는 그 말을 어겼다는 이야기이다. 이전의 슈퍼 퀄리티가 누구였느냐 하면...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다. 그래서 아스날 팬들은 체임벌린을 슈퀄이라고 부른다.
  • [56] 그러고도 최대 영입자금 7,000만 파운드를 다 쓰지 않았기 때문에 흑자다. 즉 본인의 소신에도 위배되지 않는 행위였다는 것.
  • [57] 무려 38개월만의 수상이다.
  • [58] 외국인 대상 명예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