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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연합 공화국

last modified: 2015-11-02 22:12:38 Contributors

United Arab Republic. 1958년 이집트시리아통일하여 건설된 국가. 그러나 1961년 시리아의 쿠데타로 분열되어 소멸했다.

Contents

1. 소개
2. 배경
3. 실현
4. 이후

1. 소개

랍민족주의를 그 기반으로 하여, 1958년 이집트시리아통일하여 건설된 국가. 그러나 1961년 시리아의 쿠데타로 분열되어 소멸했다. 이후 이집트는 아랍 연합 공화국의 부활을 노리고 혼자서(…) 오랫동안 아랍 연합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유지했으나, 결국 다시 실현되지 못헀다. 좌절로 끝난 랍민족주의의 꿈이다.

2. 배경

1950년대, 가말 압델 나세르쿠데타로 이집트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집트는 군 주도의 정치, 사회 개혁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랍민족주의에 근거를 둔 세속주의 개혁 정책이었다. 아랍 민족주의의 융성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가 쇠퇴하고, 민족주의 운동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아랍 국가들은 구시대적인 왕정 국가가 많았고지금도 적지 않지만, 왕정 국가들은 대개 자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한 유럽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아랍 민족주의에서는 정치 사회를 개혁하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각국의 왕정을 무너뜨려고 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아랍인에 의한 통일족국가를 추구하였다.

아랍 국가의 분포범위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에서 중동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으로서, 현실적으로 이 구상은 당장 이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단 이 지역에 사는 아랍인이 아닌 다른 민족이 적지 않았고, 이 지역이 정치적으로 하나로 통합되어 '아랍인'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 우마이야 왕조압바스 왕조 시절의 일이었다. 각국의 주민들은 너무 오랫동안 다른 정치 체계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의 나세르 쿠데타와 아랍민족주의의 부흥은 아랍인의 국가들을 모두 통합하는 아랍 민족국가라는 꿈을 불러 일으켰다. 이집트는 아랍 국가들 가운데서 통일의 구심점이 되기에 좋은 점이 많았는데, 마그레브와 중동 사이에 딱 자리잡은 국가의 입지, 많은 인구수와 문화적 영향력, 아랍 국가들 가운데서 발전이 많이 되었고 비교적 선도적으로 준 독립반 식민지화적인 지위를 유지했다는 점, 이렇게 여러모로 주도권을 잡기 좋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아랍 통일 국가라는 꿈을 밀고 나가기에 좋았다. 당시 나세르의 인기는 여러모로 좋은 편이기도 했고.

3. 실현

1958년, 시리아가 마침내 이 떡밥을 물었다! 이집트시리아는 전격적으로 통일을 선언하고 하나의 나라로 합쳐 아랍 연합 공화국이 됐다. 통일 이라고 하지만 시리아가 이집트보다 국세가 약했기 때문에 이집트가 조도권을 잡았다. 이집트의 나세르가 대통령이 됐으며, 수도는 카이로가 되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통합국가를 운영하는데 문제가 적지 않았다. 일단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에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과, 왕정 국가 요르단이 끼어 있었다(…). 서로 소통하려면 바다를 거쳐야 했으니 이집트와 시리아 간의 보조가 제대로 맞지 않고, 통일이 됐다고 해도 인적, 물절 교류가 늘어나기 어려웠다.

통일 국가의 운영 역시 제대로 합의가 안 됐다. 이론적으로는 합의하에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집트 측에서 시리아에 이집트 소속 공무원이나 군인을 보내서 일방적으로 시리아를 '지도'했고, 시리아 측 정치인들은 카이로에 찾아가게 됐지만 형식적으로만 고위직을 부여했을 뿐 제대로 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에 시리아 측의 불만이 점점 늘어갔다.

1961년, 시리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재분리 되어버리고 말았다. 고작 3년 천하였다.좀 잘 해주지 그랬어.

4. 이후

이렇게 아랍 연합 공화국은 단기간에 끝나버렸다. 그러나 다른 아랍 국가의 추가 가입 가능성을 의식해 아랍 연합 공화국의 국호가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연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집트가 혼자 덩그러니 가입국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름 뿐인 연합'에 불과했다. 1971년 이집트는 슬픈 혼자 놀기를 끝내고 그냥 '이집트 아랍 공화국'이 됐다.

랍 연맹과는 다른 조직체이다. 이 시기에 카이로에 본부가 있던 아랍 연맹에서도 나세르가 주도하여 각국 정상들의 정기 회합이 열리게 되는 등, 아랍 연맹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