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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last modified: 2015-04-13 01:08:4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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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das AG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상세
3.1. 대한민국에서 마케팅
3.2. 해외에서의 마케팅
4. 관련항목


1. 개요

독일의 스포츠 의류, 용품 브랜드. 삼선네
현재 CEO는 2001년부터 헤르베르트 하이너(Hervert Hainer)가 맡고 있다.최근 인터뷰 기사#

2. 역사


아돌프 다슬러 (Adolf Dassler)

설립자인 아돌프 다슬러(이하 아디)는 루돌프 다슬러(이하 루디)와 함께 1924년, 뉘른베르크 인근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위치한 자택에서 축구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디는 뛰어난 손재주를 이용해 질 좋은 축구화를 만들어냈고, 외향적인 성격의 루디는 그런 동생이 만든 축구화를 팔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축구화 생산 주문을 받았다. 그리고 1933년에 형제가 나치 당원이 되면서 사업은 더욱 번창했다.[1]

다슬러 형제의 나치 경력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루디가 나치의 사상에 공감하고 있던 반면, 신발밖에 모르던 아디(...)는 그저 신발장사의 수단으로 나치당에 가입한 측면이 강하다고 한다. 어쨌든, 1938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다슬러 형제의 회사는 독일인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서 아돌프 히틀러를 엿먹인 흑인시 오언스에게 자신의 신발을 제공함으로서 그 우승에 일조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전쟁이 길어지자 형제의 사업 여건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형제는 회사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충돌하기 시작했다. 특히 루디는 아디의 아내가 회사의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루디는 군대에 끌려갔지만 아디는 징집되지 않았기에(…) 루디는 아디랑 제수가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수를 썼다고 생각했다. 거기다가 1945년 7월에 루디는 미군에게 잡혀 SS로 오해 받아 포로수용소에 1년 동안 감금된다(…).[2] 이게 다 동생 때문이라고 생각한 루디는 석방되자마자 아디를 나치 협력자로 밀고했지만 아디는 유태인계 시장(市長)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벌을 받지 않았다.[3]

결국 루디는 집에서 나와 강건너의 다슬러 공장을 차지했고, 그를 따르는 사원들을 데리고 독립했다. 아디는 자신의 이름과 성에서 글자를 따서 아디다스를 만들었고, 루디는 푸마를 만들었다. 이렇게 다슬러는 아디다스와 푸마로 나뉘게 되었다. 이 두 회사간의 화해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겨우 이루어지게 되었다.[4][5] 여담으로 둘 다 본사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했던 헤르초게나우라흐에 있다.

사업가적 기질을 가진 루디와 달리, 아디는 기술자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디다스 설립 후 아디의 부인인 캐테 다슬러가 아디다스의 경영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한편, 아디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버른 올림픽에서 수완을 발휘한 이후 아디다스 프랑스의 매니저를 맡게 되는데 그는 야심가로서 보수적인 경영을 추구하던 부모와 충돌이 잦았고 독일의 아디다스 본사와 프랑스의 지사는 독립적으로 제품을 개발하거나 판매하여 사업상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다.[6]

아직 루돌프 형제 신발 회사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미국의 육상선수 시 오웬스에게 자사의 육상화를 신겨 우승하게 한 것이 포츠 마케팅의 효시로 일컬어지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아디 다슬러의 아들 호르스트 다슬러는 버른 올림픽에서 참가 선수들에게 자신들의 신발을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스포츠 마케팅의 1인자가 되었다.[7]

또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농구화[8] 수퍼스타[9]는 농구선수들의 대호평을 받으며 아디다스는 미국 시장까지 석권했다. 심지어 마이클 조던은 어렸을 때 오히려 나이키를 싫어했고, 아디다스 농구화를 선호하였다고 한다.[10]


아디다스 최고의 히트작, '영원한 스테디셀러' 슈퍼스타

그러나, 새로운 유행에 둔감한 채 전문적인 스포츠 용품에만 관심을 가짐으로 인해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점[11] 결국 아디다스 전체의 경영을 이어받은 호르스트가 무리하여 미국 총판의 영업권을 구입해버린 점 등으로 인해 회사의 재정상태가 어려워진 점 등으로 인하여 결국 아디다스는 혜성같이 등장한 나이키에 그 지위를 빼앗기고 아디다스는 마당의 잔디를 깎을 때 아저씨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될 정도로 몰락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아디다스는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디다스는 본업인 스포츠가 아닌 엉뚱한데(?)에서 명성을 쌓는다. 힙합의 시조격인 전설적인 그룹 Run DMC가 아디다스의 파이어버드 져지를 입고 슈퍼스타, 캠퍼스 등의 스니커즈를 신고 활동하면서 아디다스는 언더그라운드 문화, 스트릿패션의 아이콘이 된다. Run DMC는 아디다스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My Adidas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 당연히 아디다스는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고 이 노래는 화면과 라디오를 타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주었다.

Run DMC My Adidas


1986년 Run DMC의 콘서트에서 팬들이 아디다스 슈퍼스타를 들고 열광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이에 힘입어 차후 스트릿 패션에 주력하는 Adidas Originals라인을 생산하게되고 수많은 셀러브리티, 디자이너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중이다. 폴 매카트니의 딸인 여성복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라인이 특히나 유명하며, 근래에는 제레미 스캇이 내놓은 라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오리지널스 라인은 대개 복고풍의 트렌디한 패션을 주도하면서 패션분야는 점유율에서 유일하게 나이키를 이기고 있다.콩탈출


그러나 본업인 스포츠 분야에서는 심각한 부진을 겪는다. 적어도 축구에서는 일인자라는 자부심이 있었으나, 뒤늦게 축구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 나이키가 'R9' 호나우두를 내세워 축구산업에 전념하면서 야금야금 점유율을 내주더니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축구에서도 2인자로 밀리게된다.안습 게다가 아디다스가 신경을 쓰지 않던 골프분야를 나이키타이거 우즈를 내세워 대박을 터트리면서 아디다스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된다. 이에 절치부심하던 아디다스는 나이키의 Just Do It 캠페인을 구상한 인재들을 영입하여, Equipment[12] 브랜드를 런칭하고 로고를 기존 불꽃 모양의 트레포일에서 삼각형의 로고(바로 이 페이지 맨 위의 로고, 트레포일은 패션라인인 오리지널스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제한.)로 교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써먹는 Impossible is Nothing도 이때 나온것. 결국 아디다스는 몰락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거대한 미국 시장을 홈그라운드로 하는 나이키에게 처발려 어쨌든 스포츠용품 업계의 콩라인.[13][14]아디다스가 나이키를 넘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그렇지만, 미국시장에서 압도적으로 발려서 그렇지 아디다스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는 우세하다. 아디다스는 나이키를 넘기 위해, 수많은 유명 디자이너들의 영입으로 패션분야의 지분을 점차 늘려가며 굳히기에 들어가고 있고, 축구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기존의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벤투스와의 대형계약을 맺어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의 최정상 클럽을 모두 스폰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만들었던, All in or nothing캠페인에서 마침내 나이키를 이기면서 영원히 고통받는 콩라인 이었던 꿈도 희망도 없던 2000년대 중반의 상태에 비하면 긍정적인 상태이다. 점차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져가는 윈터스포츠와 아웃도어, 중국의 성장으로 인해 점차 중요해지는 아시아권 공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콩라인 탈출여부가 결정될 듯 하다.

3. 상세

과거 아디다스코리아가 출범하기전 아디다스제품의 유통/라이센스제작은 아디다스코리아의 전신인 제우교역이 도맡아 하고 있었던듯 하다.

아디다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유치와도 관련이 깊다. 아디다스의 리즈시절(...) 경영을 맡았던 호르스트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인연[15]으로 국제 스포츠계의 흑막(...)이 되어 있었다.[16] 그는 서울의 경쟁도시인 나고야가 속한 일본에는 아식스미즈노라는 스포츠 브랜드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나 한국에는 그딴 것 없다는 사실[17]에 주목하여, 서울의 올림픽 유치를 위해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총동원하였다. 아디다스가 서울 올림픽의 공식 스폰서 위치를 손쉽게 확보하고 스포츠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수영복으로 유명한 아레나와도 관련이 깊다. 아디 다슬러의 아들이자 그를 이어 아디다스를 경영하게 되는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디다스에서도 수영복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였으나 아디 다슬러는 아디다스는 신발 회사이고, 수영을 할 때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호르스트는 부모님 몰래(...) 아레나를 설립하여 수영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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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독일 연방군의 한 병사가 완전무장을 한 병사들 옆에 아디다스 활동복을 입고 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떠돌아 다닐 때의 제목은 독일군 말년 병장.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아디다스 재팬에서 제작한 영상이 대한민국 축구대표 팀을 비하하는 묘사를 담고 있어서 한국 국민들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참고링크). 뭐, 아디다스의 속내는 한국을 이기는 일본보다 나이키를 이기는 아디다스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월드컵 예선 때에는 한일전에서 일본이 연이어 발리는 바람에(...) 흑역사가 되었다. 안습

스포츠웨어 브랜드 중에서 디자인에 신경을 꽤 쓰며(대표적으로 아디다스 오리지널 블루 컬렉션) 정확히는 오리지널 라인은 패션라인에 가깝다.

디자이너 브랜드 등과의 콜라보레이션 이 굉장히 활발한 브랜드이다. 스텔라 매카트니와의 아디다스 by 스텔라 매카트니, 지 야마모토와의 Y-3등이 이에 속한다.

최근에는 오리지널 라인에 제레미 스캇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유명하다. 오리지널스의 공식모델인 2NE1이 제레미 스캇의 뮤즈중 하나라서 특별취급을 받는 듯. 오리지널 라인의 신발들이 2010년대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중 80년대 오아시스 등의 스타들이 신고다니던 모델을 복각한 슈퍼스타, 가젤, 스탠스미스, 캠퍼스, ZX750같은 모델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패션라인은 힙합문화와 상호작용한다. 래퍼들이 아디다스의 옷을 즐겨입는다거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 협찬을 때리는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옷들의 스타일이 힙합스럽다.

요건 푸마도 마찬가지. 누가 형제기업 아니랄까봐...

덕분에 비록 스포츠 분야에서는 콩라인 확정이지만, 패션 부문에서는 2010년 현재 나이키보다 매출이 앞선다(...)[18]

3.1. 대한민국에서 마케팅


대한민국에서 1978년 역사상 첫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로 선정된 게 바로 아디다스라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유니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오리지널스 라인으로 복각판을 내놓고, 후원하는 국가대표 선수에게 입혀 노출시켰으며 한정판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나이키에게 국대 유니폼으로 아디다스를 고를까 말까 떡밥을 던져 유리한 국대 스폰서 계약 연장을 이끈 것도 알려진 사실. 그렇지만, 아디다스는 나이키랑 다르게 K리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볼 수 있는 역도, 핸드볼, 양궁대표팀들의 후원사활동으로 활발하다.
우선 K리그부터 보면, 2015년 현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부산 아이파크, 울산 현대가 공식 유니폼 및 용품 스폰서로 활동을 하고있고, 그 전에는 부산 대우 로얄즈, 안양 LG 치타스, 부천 SK, FC 서울 등이 아디다스의 유니폼을 입었던 적이 있다.


K 리그 클래식 공식 스폰서 아디다스

특히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12년부터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B레벨로 승격하여[19] 아디다스가 스폰서를 하고있는 유명 유럽 축구팀과 동급으로 되어 유니폼 제작을 본사에서 직접 제작한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2012년 아디다스 본사의 첫 작품인 블루 피버 유니폼이 출시 하루만에 매출 1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부터 K리그 공식 스폰서로도 참여하고 있다.

야구에선 2010~13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유니폼 및 용품 스폰서를 한 경험이 있다. 그 전에는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LG 트윈스와 스폰서 계약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유니폼 상의에 아디다스 로고가 들어간 것은 롯데 자이언츠가 처음이다. 아디다스용품을 사용하는 선수들을 보면, 이재학, 오재원, 정근우, 이진영, 김선빈, 손아섭 김용의, 진갑용, 최경철, 김재호, 에릭 테임즈, SK이재원, 이병규, 서건창[20]이 있고, 2015년 이전시기를 보면, 이대호[21], 이승엽[22]이 대표적이었다. 참고로 2015년 현재는 용품계약된 한국프로야구팀 2013년의 롯데자이언츠이후 없다.[23]

대한민국 프로 농구에서는 조성민이 모델로 활약하고 있고, 이승현도 여기에 포함되어있다.[24] 아직까지 프로농구와 후원계약을 한 적은 없지만, 14-15시즌 초기에 경기장 바깥 라인에 있었던 바닥광고에 있었던,(그러니까 중계화면기준으로 왼쪽 구석에 있었던) 나이키로고를 치우고 아디다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참에 후원사를 바꾸자는 말도 있다.[25]
유니폼의 경우에는 2011년까지 서울 삼성 썬더스안양 KGC인삼공사가 아디다스 제품을 썼다. 과거에는 원주 TG 삼보 엑서스(현 원주 동부 프로미)와 부산 KT 소닉붐이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 KT 소닉붐고양 오리온스 가 13-14 시즌 유니폼을 앞두고 아디다스와 계약했다. 그런데 오리온스는 팀 특유의 색깔을 버리고 보라색으로 변신했는데 연고지도 바꾸더만 이젠 팀컬러까지 유니폼들의 퀄리티가 영.... # 그리고 서울 삼성 썬더스가 14~15시즌부터 다시 아스토레에서 아디다스로 돌아갔다.


3.2. 해외에서의 마케팅









MLS의 경우에는 전구단이 아디다스의 후원을 받고 있고, 유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FC 바이에른 뮌헨, 첼시 FC, 레알 마드리드 C.F.,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AC 밀란, 벤피카, AFC 아약스, RSC 안더레흐트, FC 바젤, 파나티나이코스 F.C. 등의 유럽 명문구단들이 아디다스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다. 특히 아디다스의 본고장 분데스리가나 최근 새로 용품 계약을 체결한 팀이 많은 프리미어 리그[26]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2015-16시즌 부터는 맨유와 10년간 약 1조 3000억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하여 나이키를 밀어내고 다시 킷 서플라이어로 나섰고, 이탈리아에서는 유벤투스와 6년간 2000억 계약을 맺으면서 역시 나이키 대신 15-16시즌부터 후원사로 나설 예정이다. 명색이 자국을 대표하는 최다우승의 명문 클럽들인데 계약 규모가 너무 차이난다

NBA의 경우 리복과 계약을 끝내고, 전 구단의 유니폼을 공급하고있다. 농구계에서 에어시리즈를 내세운 나이키에게 힘도 못 쓰던 지난날의 설움을 되갚아 가면서 2016-17시즌까지는 공식 스폰서의 자리에 올랐다. 때문에 NBA팀들의 유니폼과 용품 제작이 전부 아디다스의 몫. 대표모델은 과거에 카림 압둘자바, 존 스탁스, 데릭 피셔, 케빈 가넷이 있었고 지금은데릭 로즈드와이트 하워드그리고 존 월 이외에 제레미 린, 리키 루비오, 데미안 릴라드등 이 있다. 국내에서는 한국계 코미디언 과의 아스트랄한(...) 광고로 꽤나 주목받기도. 그런데 NBA 관련 선수나 팬들 사이에는 흉흉한 소문이 있다. 아디다스와 대표급 모델로 계약 맺은 선수치고 평탄한 선수생활을 보내는 이가 워낙 드물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길버트 아레나스트레이시 맥그레디. 그리고 Crazy for Rose 캠페인까지 만들며 제2의 조던으로 만들려던 데릭 로즈도 이 전철을 밟는 거 아닌가 우려중(...) [27]. 하지만, 다행히도 존 월라인과 데미안 릴라드[28] 라인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극복을 하고있다. [29]


아디다스가 스폰서하는 미국대학교들의 농구팀 모습.

미국에서 미식축구 NFL, 메이져리그 MLB 다음으로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대학스포츠계 NCAA와 대학야구에서도 아디다스가 여러 대학교들을 스폰서하며 확장하고 있다. 현재 스폰서하는 대학교는 UCLA, 시건대학교, 트레담대학교등이 있으며, 대학교의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스포츠팀의 장비를 후원하고 연간 수십억원의 마케팅 비용을 지급한다.
나이키, 미즈노, 언더아머, 뉴발란스에 비해 메이저리그 에서는 많이 밀리는 듯 한 상황이지만 미국 내, 대학야구에서는 강세를 보이고있고, 메이저리그에도 나름 이름 있는 선수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업튼 형제, 제이슨 워스, 체이스 어틀리, 호머 베일리, 코코 크리습, 제임스 실즈가 있고 조바 체임벌린도 속한다. 이에 탄력을 받았는지 2015년 2월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신발을 신는 선수250여명과 3년간의 계약을 맺기도 했다. 참고로 이전시기를 본다면 라이언 하워드, 콜 해멀스, 그리고 애덤 던이 아디다스의 모델이었다.[30]

이승엽이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때를 본 야구팬이면 알겠지만 오랫동안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폰서를 맡았었다. 바지에 삼선이 있었던 유일한 팀이었던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 그러나 2014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서 일본야구에서도 손을 뗐다.

유럽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은 아디다스의 지배력도 크다. 예를 들어 펜싱에서는 이탈리아의 남자 사브르 슈퍼 스타인 도 몬타노나 플뢰레 여제인 렌티나 베찰리를 후원한다.[31] 그 외에도 독일, 프랑스, 중국, 그리스, 헝가리등의 국가대표팀에는 선수 전원에게 용품을 제공한다.[32] 대한민국의 펜싱 국가대표팀도 아디다스가 용품 후원을 하고 있다.
핸드볼의 경우에는 유럽이 초 강세를 보여서 프랑스, 독일, 헝가리등의 굵직굵직한 국가들을 후원하고 있는데 후원국 가운데 아시아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핸드볼 국가대표팀이 후원을 받고있다.

1990년대 중반에 나이키타이거 우즈를 후원하면서 나이키 골프를 런칭해 재미를 보자, 아디다스는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내세워 골프 사업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아디다스의 로고가 붙은 제품을 내놨으나 2000년대 초반에 테일러 메이드를 인수하여 골프 시장에서 나름 입지를 굳히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3선에 매우 집착한다.그래봤자 험멜이 화살표에 집착하는것만 하겠냐만 아디다스 제품중에 삼선 붙지 않은것 찾기가 쉽지 않을정도. 매우 개성적이지만 매우 단순하여 유사품이 등장하기 쉽다. 예를들자면 2선이라든지 4선이라든지 말이다. 그런 이유로 아디다스는 삼선을 지키기 위해서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법정투쟁을 벌이곤 한다(...)

마찬가지로 시그내쳐로 3선을 선택했던 브라운과도 법정 분쟁을 했었다. 아디다스가 승소해서 톰 브라운은 3선을 사용하지 않거나 선을 하나 추가해서 4선을 쓰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 쓰레빠인 삼디다스(...)는 아직도 없어질 생각을 안한다. 게다가 얘내들은 4선도 아니요 2선도 아닌 3선을 대놓고 쓴다. 이것은 아디다스의 adilette의 마이너카피다. 자세한 것은 삼선슬리퍼 항목 참조. 문구점 따위에서 팔리는 다운그레이드 버전은 1년이 채 못가는 반면 이것은 5년이 넘어도 가수분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삼디다스는 삼천원이며 원조인 adilette의 가격은 39000원으로 정품가격이면 짝퉁을 13켤래나 살수있다.가성비의 승리? 게다가 adilette은 무려 메이드인 이태리(...)

쓰레빠 말고도 추리닝(저지 혹은 트랙탑)도 유명하다. 특히 가을&겨울철에 중고등학교에 가면 노스페이스 리즈시절마냥 좀 논다싶거나 기 많아 보이는 아이들은 다들 입고 다니므로 나이키아베크롬비 3대장[33]와 함께 자주 찾아볼수 있다.[34][35] 다만 아디다스 추리닝자체가 유행을 별로 타지않는 스테디셀러긴 하고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편하게 걸치고 다닐수있다.


한편, 피델 카스트로가 아디다스 체육복 매니아이다. 피델이 아디다스 빠라서 그런지 쿠바의 거의 전종목 국가대표팀의 키트 스폰서가 아디다스다.

또한 지네딘 지단차범근이 여기 제품만 고집하기로 유명하다.[36]

ADIDAS의 뜻이 국내에 All day I Dream About Sports라고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 기원을 생각해보면 무척 민망하고(..) 웃긴 일이다. 뉴메탈 밴드인 이 아디다스 츄리닝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그 곡의 이름이 A.D.I.D.A.S 그러나 이건 All Day I Dream About Sex의 약자일 뿐이다. 이게 와전되어 위의 문장이 뜻인것 마냥 전해졌다. 실제 의미는 아디의 이름에서 Adi Dassler의 앞에 6글자이다.

2005년, 스포츠 업계 1위인 나이키와 경쟁하기 위해 영국의 유명 스포츠 업체인 리복[37] 측에 합병 요구를 하게 되고, (한화로)4조원에 리복을 인수해 서브 브랜드로 보유중이었으나, 다시 분사한 상태이다. 나이키는 영국의 스포츠 브랜드 엄브로를 인수해 브랜드를 유지중.[38]


한편 특이사항으로 본국대테러부대GSG-9의 택티컬 부츠를 납품하는 업체이기도 하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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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나치는 유럽 정복(!)을 위한 병역 자원을 마련하고자 젊은이들의 체력 및 협동심을 기를 스포츠를 장려했고, 스포츠 용품 업자인 다슬러 형제는 그 수혜자가 되었던 것이다.
  • [2] 루디의 소속 부대가 패전에 즈음하여 재편성되면서 SS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루디는 독일의 패전을 직감하고 탈영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나, 이 때문에 게슈타포에게 끌려가 다카우 수용소(...)에 끌려가던 중 독일의 패전을 맞이하게 되고, SS의 최후의 발악으로 인해 총살당할 뻔 하였지만 독일군 트럭 운전사의 기지로 미군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미군에게 다시 체포(...)
  • [3] 아디는 전쟁 말기 자신의 직원들을 향토방위군 훈련에서 열외시키기 위해 훈련시간마다 초과근무를 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 [4] 1974년 루디의 사망 당시 전화통화를 통해 아디가 형을 용서하겠다고 하며 형제간의 화해가 있었다고는 한다. 그러나 루디의 장례식 당시 아디 본인은 참석하지 않고 딸 한 명이 가족 대표로 참석하였다고 한다.
  • [5] 어차피 지금은 두 회사 모두 다슬러 집안의 손을 떠났다.
  • [6] 물론 가족회의를 통해 조정되고 최종적인 결정은 어머니 캐테를 거치긴 했다. 물론 호르스트는 겉으로는 따르는 척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켰다. 캐테는 종종 아들 때문에 힘들어요하면서 하소연했다고 한다(...)
  • [7] 호르스트는 스포츠 상업화의 원흉으로 꼽히기도 한다
  • [8] 당시 미국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가 석권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만들던 농구화의 재질은 천이었다. 지금도 컨버스 매장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의 그것
  • [9] 의외로 수퍼스타가 농구화로 출시된 모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슬램덩크에서 안선생님강백호와 점프슛 대결을 할때 착용한 모델도 수퍼스타 하이탑 제품인 Adidas Pro Model이다. 이는 훗날 2015년 2월에 퓨쳐스타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판이 나왔다.
  • [10] 때문에 컨버스도 가죽으로 농구화를 만들어야 했다. 매직 존슨줄리어스 어빙의 시그네쳐화는 컨버스에서 제작되었다.
  • [11] 조깅이 미국에서 유행이던 시절 조깅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며 아디다스가 조깅화의 출시를 망설이는 사이, 나이키는 조깅 열풍에 편승하여 아디다스를 추월하고 그것을 이은 에어 조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12] 지금의 퍼포먼스.
  • [13] 아디다스 그룹이 리복을 인수한 것도, 미국 시장에서 비교적 경쟁력을 가진 브랜드인 리복을 통해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높여보려는 시도였다.
  • [14] 그런데, 미국 내에서는 뉴밸런스에 2위 자리를 내어주고 있어서(...) 특히 런닝화 시장은 넘사벽이다.
  • [15] 스포츠 마케팅의 초창기인 1950년대, 당시 젊은 선수들에게 무료로 고성능 운동화를 제공해주곤 했는데 그 당시의 젊은 선수들이 각종 경기단체의 임원으로 훌륭하게 자라준 것이다!]
  • [16] 주앙 아벨란제의 FIFA 회장 당선,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IOC 위원장 당선, 현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의 FIFA 사무총장 취임,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 취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 [17] 물론 프로스펙스 등이 나름대로 있긴 했지만(...)
  • [18] 특히 미씨 엘리엇에서 대박을 쳤었는데 현재까지도 최고의 입지를 가지고 있다.
  • [19] 일본의 경우 아디다스 재팬에서 자체 제작한다. 국대 유니폼도 마찬가지.
  • [20] 좀 더 자세하게보면 2014년 시즌까지는 아디다스를 신었으나, 시즌 후 2015년 전지훈련을 보면 나이키를 신고있다. 하지만 이후의 시범경기를 보면 다시'아디제로프로메탈'을 신고있다.
  • [21] 이 외에도, 롯데가 후원을 받던 시절에는 김사율, 최대성등 대다수의 선수들이 신기도 했다.
  • [22] 2014년 시즌에 신었던 야구화중에서 가장 많이 신었다. 아무래도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듯. 하지만 러닝화는 2014년부터 에너지부스트를 쭉 신고있다.
  • [23] 선수의 경우에는, 누가 계약을 했는지 추가바람
  • [24] 여담이지만 바로 전 시즌(13-14)과 다르게, 2014-15시즌부터 경기를 자세히 보면 아디다스 후원을 받는 3팀(서울삼성, 부산KT, 고양 오리온스)은 선수전원이 아디다스를,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팀 선수들은 거의 나이키를 신고있다.(서울SK의 경우 선수전원 나이키 착용.) 단, 전자랜드의 이현호와 울산모비스의 이대성은 각각 아디다스, 언더아머를 신고있다.
  • [25] 14-15 시즌 초부터 경기를 본 팬이라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라진 데에는 KBL의 삽질에 가까운 협상능력도 한 몫을 했다. 그 자세한 내용은 기사참조
  • [26] 첼시 FC,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스완지 시티 AFC, 선덜랜드 A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헐 시티, 풀럼 FC 등 모두 7팀으로 제조 업체별로 팀 수를 분류하면, EPL 내에서 팀 수가 가장 많다. 몇 년 전까지 리버풀 FC뉴캐슬 유나이티드도 오랫동안 아디다스를 입었으며, 80년대엔 맨유도 아디다스 유니폼을 채택하기도.
  • [27] 이건 사실 저주라기 보다는 당연한 수순인데, 하워드와 로즈 두 선수 모두 부상 이전부터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이 뛰어다녔다.(플레이 타임이 긴 것은 물론 비교적 작은 키를 커버하기 위해 본인들 스스로 더 많이 뛰어다녔던 것이 시즌아웃의 원인이었다. 로즈의 경우 PG로는 준수한 키였지만 팀의 에이스인데다 사실상 듀얼 가드를 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많이 뛰어야 했다.) 무게가 가벼우면 그만큼 발에 가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경량 농구화 최악의 단점은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참고로 로즈의 농구화는 한때 210g까지 가기도 했다가ㅎㄷㄷ 어지간한 축구화보다 가볍다!!D 로즈5 부터 372g으로 다시 무거워졌다.
  • [28] 릴라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공개전에 자신이 먼저 디자인을 공개했다.
  • [29] 나머지 선수들은 일 터지기 전에 다른 회사로 도망갔는데, 그 중에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있었다.(...) 당장 현 대표 모델인 로즈와 하워드도 11-12 시즌 나란히 부상으로 시즌을 접었다. ㅎㄷㄷ. 그 중에는 팀 던컨도 있는데, 아디다스에서 경량 농구화를 만들기 위해 마루타시켰다가 선수 생활 평생을 족저근막염에 시달려야 했다. 루키 시즌 던컨이 베이스라인에서 원핸드 엘리웁을 찍어대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안습
  • [30] 참고로 하워드와 해멀스는 뉴발란스로 옮긴 상태.
  • [31] 그러나 이탈리아 펜싱 대표팀 유니폼의 제조업체는 다. (...)
  • [32]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남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전에서 최병철에 패한 일본의 오타 유키 선수의 팔쪽을 보면 아디다스 로고가 있기는 하나, 실제 일본 펜싱 국가대표팀은 아식스와 계약되어 있다.
  • [33] 2014년 현재는 험멜, 카파등은 노페와 함께 거의 멸종해 버렸다. 그나마 노페는 특유의 가격때문에 아까워서 계속 입는 사람들도 많은데...
  • [34] 가격도 주로 10만원 전후를 유지하며 노스페이스 리즈시절에 제일 싼 바람막이가 13만원이었던걸 생각하면 비교적 싸다.
  • [35] 특히 3학년쯤 되면 체육복도 거의 다 작아지고 1년쓰고 버릴 체육복 또 사려니 돈낭비가 되기 때문에 체육교사들도 학교체육복과 비슷한 편이라면 체육시간엔 허용해주므로 입고다니기 편하다. 용인의 H모 고등학교는 체육복이 아예 파이어버드 모델 카피품이고 아디다스 로고 대신 교표가 붙어있는것을 제외하면 디자인은 아예 똑같다.
  • [36] 게다가 차붐은 나이키를 까기까지 했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나이키는 부상당하기 쉽댄다;; 수원 감독시절에 선수단에게 머큐리얼 베이퍼의 갑피가 너무 얇아 시합도중에 상대팀 축구화에 밟히면 통증이 심하다고 다른 축구화를 신으라고.그런데 최근 나오는 아디다스의 아디제로 축구화도 머큐리얼 못지않게 얇은 갑피인데?
  • [37] 1895년에 설립된, 현존하는 스포츠 용품 메이커들 중에서 매우 오래되고 유서깊은(?) 유명 브랜드이다.
  • [38] 현재는 다시 분사한 상태다. 분사하는 과정에서 나이키는 엄브로가 스폰서를 하던 잉글랜드 축구 국대를 뺏어왔다.
  • [39] 하지만 독일연방군은 제외다. 독일연방군에선 소방화/안전화/전술화 메이커인 HAIX사의 제품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