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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코란도 훼미리

last modified: 2017-06-23 23:27:30 Contributors


쌍용자동차에서 1988년 부터 1996년까지 생산한 SUV 차량으로, 국내 최초의 5도어 스테이션 웨건SUV. 국내 최초로 SUV를 제한된 목적이 아닌 다목적 차량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끔 하여 한국에서 SUV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한 차량 중에 하나였다.
그 시초는 거화자동차 시절인 1984년에 무역박람회에서 공개한 고유모델[1] 시제차인 KR-600이 원형으로 거화자동차 시절 부터 추진되었던 프로젝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5년에 거화자동차가 창업자의 원정도박에다가 창업자 부자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인하여 어이없게도 흑자도산하여 회사 자체가 동아자동차로 넘어가버렸고, 1986년에는 동아자동차가 무리하게 (주)거화를 인수했던것이 화가 되어 쌍용그룹으로 팔려가면서 출시 이전의 개발 단계에서 두차례나 주인이 바뀌고 말았다.
주인이 자꾸 바뀌면서 출시가 지연되다가, 우여곡절끝에 쌍용자동차로 사명이 바뀐 이후인 1988년 11월에 겨우 출시될 수 있었고, 이스즈제 파워트레인은 기존의 쌍용 코란도와 동일하였지만 기존의 쌍용 코란도가 AMC 지프 CJ-5/7 기반이었던것과 달리 코란도 훼미리는 이스즈 패스터 로데오/빅혼(트루퍼)의 새시를 기반으로 하여서 계보 자체가 다른 차종이었다.

사실 코란도 훼미리가 출시되기 전에도 지프 CJ-5/7기반의 코란도 롱바디가 이미 12/9인승 훼미리 라는 네이밍을 쓰고 있었는데, 어찌보면 CJ-5/7 기반의 코란도 롱바디의 후속이라고 볼 수 도 있겠지만 코란도 훼미리 출시 후에도 지프 CJ-5/7 기반의 9인승 훼미리가 계속 병행생산되어서 계보가 난해하였다.
출시 이듬해인 1989년에는 900만원대로 가격을 낮춘 보급형이 출시되었으며, 1990년에는 일본산 이스즈 C223 엔진에서 대우중공업에서 이스즈로 부터 라이센스를 얻어 생산한 국산 DC23 엔진으로 바뀌었다.


1991년 4월에는 처음으로 페이스리프트를 받은 1991년형 모델이 출시되었는데, 대우중공업의 노사분규로 인하여 엔진 생산이 중단되어 엔진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자 거기서 엔진을 공급받았던 쌍용자동차에게도 그 먹구름이 드리우게 되면서 1991년 5월 15일부터 24일까지 코란도와 코란도 훼미리를 한동안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다. 엔진수급 문제가 계기가 되어 쌍용자동차는 엔진 공급처를 다변화 하기 시작하면서 1991년 7월에는 이스즈 4ZE1 2.6 가솔린 엔진이 들어간 RX 2.6i 트림과, 1991년 9월에는 푸조 XD3P 2.5 디젤 엔진이 들어간 RV 트림을 출시했지만 얼마 후에 코란도 훼미리 보다 상품성이 좋고 현대정공에서 만들기는 했지만 현대 라는 넘사벽 브랜드 밸류를 갖춘 현대 갤로퍼가 출시되면서 코란도 훼미리는 물론이고 쌍용자동차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놓여버렸다.

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1992년 11월에는 5링크 리어 서스펜션이 적용된 1993년형 코란도 훼미리를 출시해서 무쏘의 출시 이전까지 시간을 잠시 끌었고, 1993년 8월에 후속이라고 할만한 무쏘가 출시되어 갤로퍼에게 반격을 날린 후에도 코란도 훼미리는 무쏘보다 한급 아래의 차종으로 계속 생산이 되었고, 1993년 12월 28일에는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여 이듬해인 1994년 1월 18일에 국산차 최초로 다카르 랠리 공식 완주에 성공한다. [2] 1994년 10월 부터는 쌍용 무쏘가 파라오 랠리와 다카르 랠리에 참전하게 되면서 코란도 훼미리에게는 마지막 모터스포츠 참전 기록이 되었지만, 그 직전인 1994년 8월에 무쏘 601EL과 같은 엔진인 벤츠 OM601 2.3 4기통 엔진이 들어간 최후기형인 뉴 훼미리가 출시되었는데 코란도 훼미리의 결정체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무쏘의 출시 이후로 무쏘가 쌍용자동차의 주력으로 엄청나게 판매된것과 달리 코란도 훼미리는 상대적으로 비인기 차종이 되어버렸고, 설상가상격으로 1996년 7월에 코란도의 후속인 뉴코란도가 출시되면서 코란도 훼미리의 입지는 엄청나게 위협을 받아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코란도 훼미리는 1996년 연말에 조용히 단종되면서 8년간의 모델 사이클을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국내 최초로 도입된 스테이션 웨건형 SUV라는 컨셉이 오늘날 수많은 국산 SUV의 컨셉에 영향을 주었다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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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쌍용 코란도 훼미리가 고유모델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있는데 새시와 파워트레인은 이스즈의 것을 썼지만 어퍼바디의 상당부분은 자체 개발이기 때문에 고유모델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테일게이트도 이스즈 빅혼/트루퍼는 양쪽으로 열리는 형태(다만 오른쪽 부분이 좀 더 컸고 그쪽에 스페어 타이어가 있음.)지만 코란도 훼미리는 오른쪽 한쪽으로 열리는 형태다. 쌍용자동차 측에서도 자사 최초의 고유모델로 인정하고 있지만, 코란도 훼미리는 쌍용자동차 이전의 거화자동차 시절부터 추진된 프로젝트를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쌍용자동차 최초의 고유모델은 무쏘라고 할 수 있다.
  • [2] 비공식적으로는 아시아자동차록스타가 시판 이전인 1988년에 신차 홍보 및 개발참고 목적으로 랜드마스터 라는 가칭으로 다카르 랠리에 참전하여 완주했지만 이쪽은 제한시간내에 완주하지 못해서 리타이어 하여 공식 완주에 실패하는 바람에 비공식 완주 기록이 되었다. 코란도 훼미리의 경우도 1991년에 다카르 랠리에 처음으로 참가했지만 첫번째 참가에서는 리타이어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