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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수

last modified: 2015-04-05 21:09:12 Contributors



이름 심정수
생년월일 1975년 5월 5일
국적 한국
출신지 대전광역시
출신학교 동대문상고[1]
포지션 우익수(1994~2004)
좌익수(2005~2008)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 연고구단 자유계약
소속팀 두산 베어스(1994~2000)
현대 유니콘스(2001~2004)
삼성 라이온즈(2005~2008)

2002, 2003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이병규(LG 트윈스)
정수근(두산 베어스)
심재학(두산 베어스)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송지만(한화 이글스)
이종범(KIA 타이거즈)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양준혁(삼성 라이온즈)
이종범(KIA 타이거즈)
이병규(LG 트윈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클리프 브룸바(현대 유니콘스)
이진영(SK 와이번스)

2007년 한국프로야구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용규(KIA 타이거즈)
이택근(현대 유니콘스)
박한이(삼성 라이온즈)
심정수(삼성 라이온즈)
이종욱(두산 베어스)
이대형(LG 트윈스)
김현수(두산 베어스)
이종욱(두산 베어스)
카림 가르시아(롯데 자이언츠)

2007년 한국프로야구 홈런왕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심정수(삼성 라이온즈) 김태균(한화 이글스)

2000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송진우(한화 이글스)
박석진(롯데 자이언츠)
심정수(두산 베어스)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안경현(두산 베어스)

2002년, 2003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
조경환(롯데 자이언츠)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배영수(삼성 라이온즈)

OB 베어스 등번호 4번(1994)
김광수(1982-1992) 심정수(1994) 윤기수(1995-1998)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등번호 32번(1995~2000)
윤기수(1993-1994) 심정수(1995~2000) 빅터 콜(2001~2002)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44번(2001)
심정수(2001)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2번(2002~2004)
김성준 심정수(2002~2004) 오윤(2005-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2005~2008)
손주인(2003~2004) 심정수(2005~2008) 강희성(2009)

Contents

1. 개요
2.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
3. 현대 유니콘스 시절
4. 삼성 라이온즈 시절
5. 은퇴 이후
6. 약물 논란
6.1. 약물 의혹
6.2. 약물 의혹에 대한 반박
7. 기타
8. 연도별 기록


1. 개요

한국의 전 야구선수. 그리고 한국야구 역사를 대표하는 우타거포 중 한 명.

외야수로서 유일하게 단일 시즌 40,50홈런을 기록한 동시에 이승엽박병호 함께 단일 시즌 50홈런을 넘긴 단 셋 뿐인 타자로서 리그 top 5에 들어가는 시즌기록을 남긴 선수이다.[2] 그리고 너무나도 아쉽게 50홈런 치고도 MVP를 수상하지 못한(...)선수생활을 끝마쳐야만 했던 비운의 2인자.그래도 역대 통산 만루홈런은 1위다 근데 이범호가 있잖아 안될거야 아마

대표적인 별명은 헤라클레스, 소년장사, 심장사[3], 심봉사(...)[4].

2. OB 베어스 &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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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정수빈? 심정수
1999.jpg
[JPG image (Unknown)]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웨이트 트레이닝이 제대로 빛을 발한 1999년.

학창 시절에는 동대문상고에서 유격수로 뛰었다. 이 때 보디빌딩을 하는 친구들로부터 근육 만드는 법을 배워서 일찍부터 감자, 달걀 흰자, 우유 등을 먹으며 몸을 키웠다고 한다. 덕분에 미래의 거포 감으로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접촉했고, 한양대학교로의 진학과 프로 입단 사이에서 최종적으로 프로 입단을 선택했다. 이 때가 1994년.

첫 해에는 2군에서 뛰다가 1995년에 본격적으로 1군에 콜업되었다. 이 때 별명이 소년장사, 공포의 8번타자. 김인식 감독의 배려로 부담감 없이 장타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라는 차원에서 8번에 들어갔다고 한다. 심정수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김인식 감독은 예의 믿음의 야구를 시전, 10경기 연속 무안타를 쳐도 서너번 연속 삼진을 당해도 심정수를 계속 내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너는 삼진 먹어도 되니까 니 마음껏 돌려."였다고. 오오 믿음의 야구 오오[5]

결국 .282, 21홈런, 59타점이라는 8번타자로서는 가공할 만한 성적을 내며 1군 데뷔시즌을 우승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당시 장타율(.508)은 선배이자 그 해 홈런왕이자 MVP였던 김상호보다도 높은 팀 내 1위. 물론 이것은 김상호의 타격 정확성이 나쁘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후 2년 동안의 조정기를 거쳐서[6] 본격적인 활약은 1998년 타이론 우즈, 김동주와 함께 우동수 트리오가 구축된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우동수 트리오의 5번 슬롯에서 활약하던 3년(1998~2000) 동안 심정수의 성적은 .311 79홈런 274타점 OPS .935. 이 기간 동안 심정수보다 좋은 성적을 낸 타자는 타이론 우즈와 이승엽 둘 뿐이었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잠실 거포 시대를 여나 했는데......

3.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0년 말의 제2차 선수협 사태에서 마해영, 양준혁, 송진우, 김재현 등과 함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7] 선수협 건은 결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중재로 잘 마무리되었지만, 선배들이 맞은 트레이드 후폭풍을 그 역시 비켜갈 수 없었다. 2001년 초 두산은 심정수보다 나이가 많고 공격력은 떨어졌던 외야수 심재학현대 유니콘스에서 받는 대가로 심정수를 트레이드 처리한다. 이 때 정들었던 두산을 떠난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부터 그의 본격적인 각성이 시작되었다.

새로 옮겨간 현대 유니콘스는 심정수가 딱 좋아할 만한 연습덕후(…) 분위기였다. 김용달 코치의 조언을 받아 타격자세를 수정한 심정수는 2001년 시즌 초 무서운 성적을 냈으나, 롯데 자이언츠 투수였던 강민영의 공에 얼굴을 맞는 바람에 광대뼈가 함몰되는 부상을 당하고 좋았던 페이스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후 심정수가 1군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쓰고 있던 헬멧이 안면부를 보호해 주는 이른바 검투사 헬멧. 그에게 있어서 선수생활때 팬들에게는 헬멧을 중요시 여겼다.

2002년 이후 심정수는 타격폼을 확 바꾸면서 홈런갯수가 확 늘어난다. 그러면서 2002년, 2003년 두 해에 46홈런과 53홈런을 연달아 쏘아올리면서 이승엽과 본격적인 선의의 경쟁을 펼쳤지만 두 해 다 아쉽게 홈런 2위에 머물렀다. 정규시즌 마지막 날에 이승엽이 연장전에서 홈런을 쳐서 공동1위는 아쉽게 무산되었다.

특히 2003년은 심정수 본인뿐 아니라 한국야구 역사에 남을 기록을 작성한 해였는데, 연초에 이승엽과 함께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한 플로리다 말린즈의 스프링캠프에서도 당시 스카우트들에게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 와도 좋을 선수"라는 평을 받았으며 MLB닷컴 메인에도 올라가는 등 화제를 뿌렸고, 정규시즌에서는 53홈런뿐 아니라 .335 / .478 / .720 OPS 1.198이라는 말도 안 되는 높은 생산성을 과시했다. 삼진은 63개였는데 볼넷이 124개. 그야말로 타석에서 공포의 존재였다. 지금 저렇게 친다면 홈런왕 따위는 기본적으로 따놓은 당상이겠지만 하필 이 해에 이승엽이 홈런을 56개 치는 바람에 또다시 2인자로 남고 말았지만, 그 해 소속팀의 승리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선수는 명실공히 심정수였다. (이승엽 .301 / .428 / .699, 심정수 .335 / .478 / .720)

실질적인 타자의 득점공헌도를 판단하는 wRC(weighted runs created)는 이승엽이 139.3, 심정수가 153.6. 또한 이승엽이 1루수였던 반면 심정수는 우익수였으며 심정수의 소속팀은 그 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끝내 홈런왕, 타점왕, MVP를 이승엽이 가져가자 심정수의 아내는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신에 타율, 출루율과 장타율은 이승엽보다 높아서 출루율과 장타율 부문 1위. 타율은 2위.(그해에 심정수의 3관왕을 저지했던 선수는 .342를 기록한 두산시절의 친구 김동주였다) 그리고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02~03 2년 연속 수상. 12할에 가까운 시즌 OPS를 기록하고도 비운의 2인자로 기억된 야구선수는 전세계에서 아마 심정수가 유일...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미국에서는 OPS 1.250을 2회 넘기고도 해당시즌에서 MVP를 못 탄 어떤 분도 있으니...
여튼 2003년은 이승엽도 대단하지만 심정수 만한 선수들 같은 성적은 진짜야 말로 충공깽 같은 성적급이다...[8]
그리고 이 화려한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의 몰락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몰락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상, 하나는 라섹수술. 특히 무릎과 어깨가 문제였다. 지나치게 송구연습을 열심히 한 탓에[9] 심정수의 어깨 회전근은 2003년 시즌 이전부터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고, 바꾼 타격폼을 정착시켜서 장타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스윙연습을 하는 통에 무릎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장종훈과 비슷하게 지나친 훈련이 도리어 해가 된 케이스.

결국 2004년 시즌 심정수는 우익수,지명타자 자리에서 뛰며 전 시즌보다 1할 가까이 낮은 타율을 기록했고, 이러한 부진 때문에 평소 갈망하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완전히 접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 초 라섹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밤에 움직이는 물체의 빛이 번져 보이는 야구선수로서는 치명적인 후유증을 약 1년여 간 겪었다고 한다. 그 결과 타격 정확성이 저하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두산에서 입단부터 7년까지 홈런이 121개였지만 트레이드로 들어온 현대에서 4년생활만에 두산에서의 총 홈런수보다 12개를 더 추가하여 133개 홈런을 쳤다.

그리고 승엽이도 없고, 해영이도 없던 홀로 분전하던 양준혁의 뒤를 받쳐 줄 우타거포를 물색하던 삼성 라이온즈FA로 풀린 그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4. 삼성 라이온즈 시절


라섹 수술을 받은 후 시력 저하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던 심정수는 시력 검사로 인한 메디컬 테스트 탈락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때문에 눈을 문제 삼는 구단과는 얘기 안한다는 선언을 했고, 우타거포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 최대 6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들이며 심정수를 영입한다.[10]

이후 그가 먹튀로 전락했기 때문에, 팬들은 심정수의 메디컬 테스트 거부가 정당하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심정수의 부상을 알면서 영입했다는 점이다. 심정수의 은퇴 즈음하여 삼성 구단 관계자들은 심각한 부상이 있더라도 심정수는 성실한 선수이기에 재활에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삼성 프런트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STC가 있었더라면??[11]

계약 첫 해였던 2005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 2연전에서 장원준에게 만루홈런을 뽑아내는 등 5월까지는 엄청난 활약을 보였으나 6월부터 부상이 악화되며 부진을 거듭했고 7번타자로 내려가는 등 수모를 겪으며 .275, 28홈런 87타점 OPS .903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망한 시즌이라는 게 OPS 9할이다. 게다가 시즌 홈런도 2위!(1위는 래리 서튼) 문제는 60억을 받았다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부터 좌익수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겨울 수술을 결심, 왼쪽 무릎과 오른쪽 어깨를 독일에서 수술하고 그 해를 통째로 재활에 날리게 되었지만 한국시리즈에는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다음 해인 2007년에는 안경을 스포츠 고글에서 옛날의 뿔테로 바꾸고 타석에 등장, 31홈런과 101타점을 기록하며 53홈런을 칠 때도 해 보지 못했던 타점왕과 홈런왕 타이틀을 함께 거머쥐었다. 그러나 타율은 막장. 1995년 OB 베어스(現 두산 베어스)의 김상호가 세운 25홈런, 2할7푼2리를 뛰어넘는 2할5푼8리라는 최저타율 홈런왕 기록을 수립하였다. 팬들은 심정수의 정확도 하락에 대단히 아쉬워하면서도 여전히 장타력은 살아 있음을 확인했고, 2008년에는 더 나아질 거라며 기대했다.

그러나 2008년이 돌아오자 왼쪽 무릎부상이 재발했다. 결국 시즌아웃. 역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며 재기와 명예회복을 노렸지만, 무릎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결국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택했다. 다음 시즌에 부활하리라는 보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삼성 팬들에게는 안좋은 기억이 될 수밖에 없었다.(…) 팬들 입장에서도 여러 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선수.

5. 은퇴 이후

은퇴 직후에는 잠시 삼성의 어린이 야구교실에서 리틀야구팀을 지도하다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와 야구이론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양준혁이 했던 "내가 야구하면서 본 야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이승엽심정수다"라는 칭찬답게 타격이론에 해박하고 평소 영어에도 관심이 많아, 국내 복귀 후 어느 팀이든 간에 지도자 생활이 가장 기대되는 선수이다. 덤으로 선수시절 내내 끊임없는 영어공부를 많이한 성실한 선수로 기억되는 선수이다.



원래는 전준호, 심정수, 그의 두 아들들과 찍은 사진이다.#

2011년 3월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에 연수 간 전준호가 심정수 집에 들러 찍은 사진. 샌디에이고 주립대(UCSD)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 중이라고 한다.#

2015년 1월 LG 스프링 캠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야구하는 아들들 뒷바라지하는 재미에 빠진 듯. 조만간 그라운드에서 심정수 2세들을 볼 수 있을 듯하다. #

6. 약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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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약물 의혹

심정수 스테로이드설은 야구 사이트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떡밥.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OB 시절과 전성기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심정수를 비교해보면 야구선수에서 보디빌더 수준으로 몸이 불어났다가, 삼성에 간 이후로는 다시 몸이 작아져 은퇴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즈음엔 위 사진에서 보듯 대표적인 쌕쌕이였던 전준호보다도 몸이 작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릎 부상이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이 아니냐는 가설도 꽤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평균 2~30홈런 내외를 기록하던 선수가 갑자기 50홈런 가까이 치게 된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KBO 선수 중에서 직접 걸린 소수의 선수를 제외하면 비공인 약물 의심 선수 1순위이다. 거기에 한창 리즈시절때 국가대표를 계속 불참한 것도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데 한 몫했다.

사실 2001년 야구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긴 하다. #, # 그러나 심정수의 홈런 개수가 급격히 증가한 시점이 2002년이라는 점과 그 이후부터 국가대표를 불참한 것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가장 의심가는 행동은 2004년 FA때 삼성이 영입하면서 계약서 작성전에 기본적으로 해야되는 메디컬 테스트를 거부한 것. 당시 거부하면서 했던말이 명언인데, 날 못 믿는 팀에서는 선수생활 안한다였다. 게다가 선수 생활 마지막인 삼성 시절 시력저하, 무릎부상 등으로 결국 은퇴했는데, 금지약물을 장기간 사용했을시 나타나는 전형적인 부작용이 시력저하와 무릎부상이라 의혹을 사기가 충분했다. 날씬한 초기 시절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달덩이 같이 불어터진 얼굴은 심증은 매우 의심이 간다는 것이 사실.

6.2. 약물 의혹에 대한 반박

평균 2~30개의 홈런을 쳤던 심정수인데 그 2~30개 치던 시절은 가장 홈런이 나오기 힘든 잠실구장을 홈으로 썼을 때의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면서 2자리수 홈런을 꾸준히 기록하는 정도만 되어도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선수라고 평가받으며, 20홈런을 넘겨본 타자일 경우 적어도 파워만큼은 확실하게 검증된 선수로 평가받는다. 잠실을 쓰던 시절의 심정수는 체격이 꽤나 슬림했었던 프로 2년차에 이미 1위와 불과 4개밖에 차이나지 않는 21홈런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OB/두산 시절 100경기 이상 출전했던 5시즌에는 언제나 18홈런 이상을 쳐줬다. 따라서 없었던 파워 포텐셜이 생긴 것이 아니라 체격과 관계없이 원래부터 톱클래스의 파워 포텐셜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또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몸이 불어났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심정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심을 가졌고[12] 프로 입단 후 본격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여 10kg를 찌운 결과 이미 두산시절에 몸을 완성하였고 그 몸을 계속 유지하였다. 지금은 사진이 뜨지 않지만 흔히 현대시절에 몸을 불렸다고 알려진 사진도 99년, 즉 두산시절에 촬영한 사진이다.[13]

결국 당대 최고의 강타자인 이승엽과 경쟁할 수준이 되고 1999~2003년의 기록적인 타고투저 시기에 접어든 상황에 엄청난 투고타저구장인 잠실구장에서 잠실과 비교했을때 훨씬 타자친화적 구장인 수원구장[14]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그리고 비록 이 것이 선수 생명에 발목을 잡았지만 김용달 코치와 함께 타격 폼도 바꾸면서 홈런 양산에 불붙이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게다가 야구월드컵에도 출전한 것으로 보아 더더욱 약물 의혹을 제기하기는 어렵다.[15] 게다가 2004 올림픽 예선에 출전하려다가 부상을 당해서 중도에 하차한거지, 안 나간게 절대 아니다.[16]

그리고 흔히 말하는 '날 못 믿는 팀에서는 선수생활 안한다'란 발언은 심정수에게 관심을 보이던 삼성이 시력에 문제를 제기하자 한 발언이며 와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력 저하는 라식수술 부작용 때문이란 것은 다 알지 않는가? 라식수술 부작용이 심정수의 커리어를 발목잡았단 것을 생각하면 약물 복용 의혹을 키우기 위해 거의 의도적으로 끼워맞춘 수준이다.

심정수가 가장 억울한 점은 프로야구 약물 떡밥에서 심정수에게 크게 쉴드를 쳐줄만한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두산팬들에게는 그저 OB시절의 옛날 선수이다. 현대를 이어받은 넥센의 팬들에게도 심정수는 세월이 흘러 이제는 옛날 선수이다.[17] 삼성팬들에게는 먹튀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있는데다 원조 탁구왕이라는 오명을 쓴 이승엽이 잠실을 쓰면서도 30홈런을 친 라이벌 심정수를 고의적으로 깎아내리게 만들고 있다.[18] 이 쉴드가 중요한 게, 진짜 약물 복용이 확실시된다면야 쉴드쳐줄 가치가 전혀 없으므로 별 의미가 없겠지만, 심정수처럼 단지 의혹인 상태에서는 쉴드를 쳐주면서 반박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경우 그 의혹이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과 확신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약물 떡밥이 풀릴 때는 보통 무릎 부상이 심했던 다른 강타자들도 어느 정도 언급되는데, 김재현이나 김상현처럼 무릎부상을 크게 겪었던 선수들에 대해서 약물 떡밥이 언급되면 대개의 경우 "그 부상 이후에 큰 부상 없이 고령의 나이까지 꾸준히 활동했다.", "스테로이드로 인한 근육량의 증가가 없다.", "원래 힘만큼은 장사였다.", "심리적인 안정으로 포텐이 터진것이다.", "첫 풀시즌에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이다." 등의 납득할만한 반박을 여러 팬들이 해준다.
그러나 심정수 같은 경우에는 "야구월드컵에 출전했으며 올림픽 예선에도 출전할 의사가 있었다.", "이승엽과의 경쟁구도,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을 쓰는 팀으로의 이적 등 홈런수를 증가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더욱 홈런이 양산된 것이다.", "벌크업 이전에도 이미 잠실에서 20홈런을 칠 수 있는 힘을 가진 선수였다.", "과도한 웨이트와 라식수술 부작용 때문에 몸이 망가진 것이다." 등 약물 의혹을 반박할 만한 사실이나 정황은 상당히 많지만, 정작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약물 의혹에 대해 반박을 해줄 사람들이 별로 없다. 게다가 당시 프로야구의 인기가 침체기였고 심정수의 소속팀은 그 상황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는 현대였기에 반박을 할만한 사실들도 꽤 묻혀있다. 이러다 보니 약물 떡밥에서 약물 복용이 확실한 리오스 다음으로 집중 포격을 받기가 쉬워지며 많은 사람들이 심정수를 약물 복용을 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결론을 정리해보면, "원래 힘이 장사인 선수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이 더 커지고 이승엽이라는 훌륭한 경쟁상대 덕분에 기록적인 타고투저 기간동안에 역사에 남을만한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이 리즈시절을 거쳐 라식수술과 과도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인한 각종 부상 때문에 일찍 선수생활을 접게 된다."로 굳이 약물 복용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연결이 된다.


7. 기타

넥센 히어로즈오윤 선수가 심정수와 비슷하게 닮아서 짭정수, 오라클레스로도 불린다.하지만 타격은...

2013년 10월 2일 마구마구에서 레전드 카드가 나왔는데심정구, 최고의 기록을 남긴 현대 유니콘스가 아닌 우동수 트리오를 이끌었던 시기를 감안해 두산 베어스의 레전드로 나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현대의 레전드로 나왔다.[19] 나중에 심재학이 두산 레전드로 추가되자 대부분의 OB-두산팬들이 "무슨 마약하시길래 이런생각을 했어요?"라는 질타와 함께 차라리 두산 심정수를 레전드로 내달라고 요청하기도. 실제로 박재홍도 SK와 현대로 나누어서 레전드 카드가 나왔다는 점에서 실현 불가능하진 않을텐데..

그러나 2014년 말 경에 성명권 문제로 인해 선수카드명이 본명이 아닌 '심경수'로 변경하게 된다.

8. 연도별 기록

역대기록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4 OB 베어스 32 61 .164 10 4 0 3 9 4 0 4 .377 .215
1995 116 362 .282 102 19 0 21
(4위)
59 63 4 37 .508
(4위)
.344
1996 107 371 .248 92 15 3 18 54 51 4 48 .450 .331
1997 40 122 .246 30 5 0 5 22 17 2 22 .410 .359
1998 126 477 .294 140 29 4 19 73 71 4 39 .491 .346
1999 두산 베어스 132 480 .335
(5위)
161 35
(4위)
1 31 110
(5위)
79 1 61 .606 .408
2000 126 454 .304 138 21 2 29 91 75 3 79 .551 .400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현대 유니콘스 107 381 .294 112 19 1 18 70 67 8 71 .491 .404
2002 133 502 .321
(4위)
161
(4위)
22 1 46
(2위)
119
(2위)
101
(2위)
2 72 .643
(2위)
.404
(5위)
2003 133 460 .335
(2위)
154 16 1 53
(2위)
142
(2위)
110
(3위)
6 133 .720
(1위)
.478
(1위)
2004 102 367 .256 94 14 1 22 78 64 0 81 .480 .385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 삼성 라이온즈 124 433 .275 119 14 0 28
(2위)
87
(3위)
77
(3위)
3 93 .501
(5위)
.402
(4위)
2006 26 85 .141 12 1 0 1 7 8 0 10 .188 .229
2007 124 427 .258 110 17 0 31
(1위)
101
(1위)
64 6 86 .515 .381
2008 22 68 .235 16 0 0 3 7 8 0 20 .368 .409
통산(15시즌) 1450 5050 .287 1451 231 14 328 1029 859 43 856 .533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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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대문상고와 청원고는 엄연히 다른 학교이다. 청원고는 동대문상고와는 별도로 설립한 일반계 고등학교이고, 동대문상고는 청원정보산업고로 교명을 바꿨다가 2001년 일반계인 청원여자고등학교로 전환했다. 하지만 동대문상고 야구부는 청원고로 이관되어서 동대문상고 출신 선수들에게 (현 청원고)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 [2] 리그 Top 5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94이종범, 82백인천, 01펠릭스 호세, 10이대호, 99이승엽 등과 함께 03 심정수는 꼭 들어간다. 전부 엘리트카드 아니면 EX카드
  • [3] 당시 '이승엽은 허리로 치고 심정수는 힘으로 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 하나는 장사였다.
  • [4] 라식수술 후 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처참하게 몰락하면서 생긴 별명으로, 공이 보이지 않아서 귀로 공이 오는 소리를 듣고 친다는 청각타법드립이 심정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 [5] "심정수가 고등학교 때 유격수로 뛰었고 프로 데뷔 때는 3루를 수비했다. 그런데 1루 송구를 시키면 ⅓가량이 관중석으로 날아갔고 그래서 외야로 전향했다고 한다.
  • [6] 밑에 통산 성적에도 나와 있듯이 1997시즌은 4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는데 군 문제(결국 면제가 되었다)와 부상이 겹쳤고 2000년이 되어서야 밝혀졌지만 가정적인 문제(이혼을 했다)도 겹쳤다.
  • [7] 심정수 본인은 후의 인터뷰에서 이 때는 후배로서 동기인 김재현과 함께 주로 선배들의 결정을 따르는 쪽이었다고 말했다.
  • [8] 사실 이승엽의 03시즌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시즌이기는 하지만, 세이버스탯으로 따지면 오히려 99이승엽과 02이승엽이 더 고평가 받는다. 대체적인 평가는 99이승엽>03심정수>03이승엽 정도가 된다. 신들의 전쟁
  • [9] 심정수는 심재학, 심성보와 함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KBO 최고의 강견 중 한 명이었다. 일명 트리플 3심
  • [10] 이 금액은 2013년 시즌 후 강민호가 롯데와 4년 최대 75억 계약을 맺기 전까지 역대 FA 최고액 계약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마이너스 옵션에서 손해를 본 것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심정수가 60억을 온전히 받은 것은 아니다. 52억에 플러스 8억, 마이너스 8억 옵션이 걸려있었는데 삼성이 우승하면 그 해의 마이너스 옵션은 적용되지 않는 등의 복잡한 계약이라 여기에 모두 적긴 애매하고 여하튼 최종 수령액은 50억정도라는 것이 정설. 게다가 뒤에 서술되는 무릎 및 어깨 부상에 대한 재활비를 구단의 지원을 일체 받지 않고 자비로 해결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래도 역대 최악의 먹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맞지만
  • [11] 실제로 STC가 삼성라이온즈 선수들에게 개방된 것은 심정수가 은퇴하고 난 바로 다음 해였던 2009년이었다.
  • [12] 이것은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데도 이상하게 약물 떡밥만 나오면 잊혀지는 사실이다.
  • [13] 그 99년에 심정수는 31홈런 OPS 1.014를 기록했다.
  • [14] 수원구장의 사이즈는 좌우 95m 중앙 120m 펜스높이 2.5m이다. 심정수가 원래 썼던 잠실과 비교하면, 잠실은 좌우100m 중앙 125m 펜스높이 2.6m이므로 전체적으로 못해도 5m의 이득을 보는 상황. 당연히 홈런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 [15] 야구 월드컵은 항상 도핑 테스트를 실시하며, 두산의 김재환이 여기서 도핑 테스트에 걸리기도 했다.
  • [16] 참고로 본선엔 진출을 하지도 못했다.
  • [17] 특히나 대부분의 넥센팬이 유입된 것이 중간에 재창단을 거치고도 꽤 시간이 지난 12년 이후이다.
  • [18] 몇몇 과도한 삼성팬+승빠들의 경우 이승엽을 과도하게 띄워주고 심정수를 깎아내리기 위해 그럴듯한 근거도 없이 약물설에 긍정하는 일도 있다.
  • [19] 덧붙히자면 최초 레전드 16명 중 한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