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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주

last modified: 2015-03-28 21:38:05 Contributors



삼성 라이온즈 No.97
신동주(申東宙)
생년월일 1972년 12월 14일
출신지 경상북도 포항시
학력 포철공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삼성 라이온즈 연고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91~2000)
KIA 타이거즈 (2001~2003)
삼성 라이온즈 (2004~2005)
KIA 타이거즈 (2005~2006)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0번(1991~1993)
신동주(1991~1993) 최창양(1996~200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7번(1994~2000)
최문호(1993) 신동주(1994~2000) 강영식(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0번(2004)
주재필(2003) 신동주(2004) 차민규(2006~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4번(2005)
최익성(2004) 신동주(2005) 최용호(2005~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7번(2014~ )
전병호(2012~2013) 신동주(2014~ )

Contents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연도별 성적

1. 소개

삼성 라이온즈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2. 선수 시절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1]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게다가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2]]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3] 그러나 김기태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4]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다가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라이온즈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타이거즈로 오고 이듬해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현역시절 불꽃 남자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고 찬스에 무척 강했다. 또한 현역시절 공수주 3박자를 고루 갖추었던 호타준족 스타일의 외야수였다.

3. 지도자 시절

은퇴한 후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2동에 B&G 스크린 골프연습장을 열었으며, 전 삼성-두산-롯데 투수 출신 이상훈을 티칭 프로로 맞이하여 함께 운영했다. 2012년 현장으로 복귀하여 친정 팀인 삼성의 원정 기록원으로 활동했다.

2014년부터 정식 코치가 되어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결정됐는데, 실제로는 1군 선수단과 동행 중이다. 1군과 동행하면서 팀타율 3할의 특등공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내년부터 당장 1군메인타코하라고 대구아재들이 벌써 아우성이다.

그리고 여론을 반영한 삼성 구단에서는 1군 타격코치로 신동주를 승격시켰다. 김한수와 같이 타격코치를 맡게 된다.

4.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2삼성 라이온즈 9 5 .000 0 0 0 0 0 0 0
1993 4 1 .000 0 0 0 0 0 0 0
1994 25 32 .188 6 1 0 0 0 3 0
1995 115 328 .238 78 14 2 5 28 39 23
1996 75 174 .230 40 9 0 9 22 31 6
1997 120 399 .326
(5위)
130 37
(1위)
1 21 66 79 18
1998 78 238 .290 69 9 0 13 35 38 11
1999 122 431 .278 120 9 2 22 87 64 26
2000 97 310 .261 81 14 0 12 52 53 17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1KIA 타이거즈 116 387 .284 110 24 1 11 52 64 13
2002 81 244 .311 76 9 1 7 33 34 6
2003 95 205 .263 54 8 1 8 31 29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4 삼성 라이온즈 73 105 .219 23 5 1 2 9 11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5 삼성 / KIA 23 32 .094 3 0 0 0 0 2 0
2006 KIA 타이거즈 8 13 .077 1 0 0 0 0 0 0
통산 1041 2904 .272 791 139 9 110 415 447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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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골든글러브양준혁, 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
  • [2]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 [3]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 [4]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