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식민지

last modified: 2016-07-29 19:13:13 Contributors

植民地(한자) / colony(영어)

Contents

1. 개요
2. 이득
3. 부작용
4. 종합
5. 현존하는 식민지
6. 영향
6.1. 지배국
6.2. 피지배국
7. 전세역전
8. 관련 항목


1. 개요

본국 밖에 있으면서 본국의 통치를 받는 지역. 영어 스펠링은 건덕후라면 누구나 알 법한 콜로니. 성큰 콜로니 [1]과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또한 정복과는 다르다. 정복은 아예 본국의 영토에 편입시켜 버리는 것이지만, 식민지는 적어도 편입되지는 않는다. 요는 여기는 한국땅이 아닌 여기는 한국이 다스리는 땅 정도.

정복과 식민을 구분하는 방법은 점령지의 현지 거주민들이 점령자의 거주민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할 수 있다. 정복지라면 현지 거주민들도 점령자의 거주민들과 법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만, 식민지라면 현지 거주민들은 점령자의 거주민들에 비해 (개개인 단위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점령자의 법제도를 통해) 눈에 띄는 차별을 받게 되어있다. 현실에서의 예시라면 유럽 국가가 다른 유럽 국가의 마을 하나를 점령했을 경우 현지 거주민들을 원래 자국민과 동등한 위치로 대우한 것과, 유럽 국가가 아프리카 국가의 마을 하나를 점령했을 경우 현지 거주민들을 노예로 대우한 것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2] 독립시키지 않은 식민지는 모두 자국 영토로 편입됐고 주민들 역시 공식적으로는 자국의 국민이다.

원래는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처럼 정부 주도하에 의해 국민의 일부가 나라 밖의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거주지를 개척하는 것을 뜻했다. 독일의 도시 쾰른도 어원은 식민지이다.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서 건설된 이 도시는 라틴어로 Colonia Agrippina라고 명명되었다가 Colonia가 독일식 철자인 Köln으로 굳었다. 영어로 Cologne라고 쓰는 것은 라틴어 표기의 프랑스식 오철이 그대로 영어에 편입된 것이다. [3]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제국주의의 발달과 함께 점점 주로 다른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 외국을 침략해 종속시킨 후 착취를 하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바뀌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서 전 세계로 퍼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역사 기록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사람 살만한 땅에는 벌써 다 살았다. 당장 사람 살 만한 지역 중 유럽인이 도착할 때까지 사람이 안 살았던 지역은 모리셔스세이셸 처럼 대양 한가운데 고도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폴리네시아를 참고하면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고도도 이미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자의 의미로 식민을 하는 것도 먼저 살던 놈들은 다 쳐죽이고 입 씻거나 보호구역이란 이름으로 한 구석에 몰아놓고 모른 척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릭 이런 뜻의 식민지도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여러 남아메리카 공화국들이 원주민을 학살하며 계속 건설하였으나 앞 문단에서 말했듯 식민지의 주요 뜻이 바뀌면서 이 나라들은 식민주의란 비난을 다른 의미로 벗어나게 되었다. 원주민을 인종청소하고 땅을 빼앗는 게 목표지 그 노동력을 착취하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

2. 이득

식민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점은 바로 해당 식민지의 자원과 교역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근세 이후 유럽 열강들이 처음 식민지를 건설한 이유 역시 동양과의 향신료 무역과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의 자원을 독점하기 위한 것이었다.[4]

노예무역 역시 식민지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매우 주요한 원인이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로 인해 유럽의 열강들은 헐값에 가까운 수준의 대량의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당시에는 노예무역 자체가 큰 이득을 남기는 사업이었다.[5]

다만 아메리카 노예들은 역병에 시달린데다가 지구력도 아프리카 노예들에 비해 떨어져 금방 대체되었고, 아프리카 노예들은 쓸만 했으나 얘들의 거래 형태는 식민지로 정복하는 형태가 아니라 현지인들과 교역 내지는 납치하는 등의 형태였다. 심지어 19세기까지도 유럽인들 외에도 아랍인들도 노예무역의 주요 수요층이었으며 더 결정적으로 아프리카가 식민지 정복에 시달리는 19세기에 대부분의 서구 국가들은 노예제를 금지했다. 특히 아메리카 식민지의 이주민들은 현지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대량으로 구입했으며 기타 노예가 필요한 국가들과 교역을 하기도 했다.

식민지 현지에서 유럽에서 인기있는 작물들을 대량으로 경작하기도 했는데 커피나 설탕, 각종 향신료 등이 당시 유럽에서 큰 인기 품종이었으며 이러한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이런 품목들이 해당 국가의 유명한 수출 품목으로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사탕수수를 들 수 있는데, 당시 영국은 한해 설탕 소비량이 무려 7만톤에 달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대량의 사탕수수를 재배하였고, 대중국 무역에서 차수입으로 적자를 보자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의 밀수출과 아삼 지역의 차재배로 이를 대체하였다. 또한 현지민들을 시켜 농노로 부려먹거나 금광을 채취하기도 했으며, 식량자원을 수탈하기도 하는 등 그 유형도 다양했다.

이렇게 열강들이 식민지로부터 얻은 이득은 그야말로 막대하였다. 실제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경우는 동양과의 향신료 무역과 아메리카에서 나는 풍부한 자원[6][7]으로 순식간에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으며, 스페인의 속령에 불과했던 네덜란드 역시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단숨에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8][9]

영국의 경우 역시 식민지에서 재배한 설탕과 향신료의 무역으로 큰 이득을 보았으며, 이를 발판으로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10] 이외에도 중국과의 무역에 적자를 보자 식민지인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해서 중국에 팔아 대중국무역에서 큰 흑자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홍콩을 식민지로 삼아 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도 했다.[11] 또한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선포하기도 했으나 영국은 식민지 덕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다. 되려 영국과 교역을 하지 못하게 된 러시아가 심각한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대륙봉쇄령에 불응하여 교역을 다시 재개했고 나폴레옹은 이를 응징하러 러시아에 쳐들어가지만…

과거에는 주로 향신료나 금, 은 등의 자원들을 얻기 위한 경쟁이 심했지만 세계대전 즈음에 가면 북아프리카나 중동의 석유를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다. 미국이 괜히 이라크를 2번이나 공격한 게 아니다[12]

다만, 적어도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들어 식민지로부터 얻는 이득이 그렇게 컸다고 보기는 어렵다. 19세기 중반부터 먹어치운 식민지, 특히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돈이 목적이 아니라 국가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밑의 부작용 단락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지만 단적으로 말해 식민지의 경제규모에 비해 본토의 경제력이 훨씬 압도적이거나, 식민지와 장사하는 것보다 비슷하거나 자기네들 보다 더한 선진국과 교역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이익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가령, 그나마 식민지와의 교역 비중이 컸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의 경우, 4공화국 당시 식민지들과의 무역비중은 전체 교역 비중 중 5위에 불과했고 지금도 그렇지만 서방권과의 교역이 압도적이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조선, 대만과의 무역 비중보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곳의 식민지, 미국, 중국과의 무역이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식민지의 경제 사정은 본토의 물건을 사줄 만큼 좋지 못해서 시장으로도 그닥 쓸모가 없었다. 애초에 본국 물건을 대량으로 소비해서 본국에 이득을 줄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었으면 식민지가 안 됐겠지?

식민지의 경영은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했다. 가령 영국은 인도와 본토를 연결하기 위해 수에즈 운하를 인수하고[13], 아프리카를 종단으로 개척하기도 했다. 일본 역시 조선을 대륙침략의 기지로 활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식민지 개척을 통한 국수주의적 열망 충족은 당시에 만연한 사회문제로부터 하층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좋은 소재였다. 이 외에도 종교적 열망, 국가적 위신, 군인 등의 일자리 보전 등이 동인으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따져 본다면 고대, 중세의 식민지 개척은 인구 분산이나 거점 확보적 측면이 강했다.[14] 그리고 대항해시대 이래 19세기 초에 들수록 원료 독점과 같은 경제적 목적이 상대적으로 더 강했다. 마지막 19세기 말 이후에 들어서는 애국심 고취, 사회갈등 해소, 군사적 필요 등과 같은 비경제적 목적이 강했다.[15]

3. 부작용

식민지는 분명 초중반에는 식민지를 경영하는 국가들에게 물질적ㆍ경제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 주었지만, 그런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 역시 어느 정도 있다. 사실 영국은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산업혁명으로 본토의 경제력이 쩔어줬고 물론 식민지 자체는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 아메리카 쪽에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질이 좋지는 않았다. 인도아시아, 아프리카 쪽은 산업혁명 이후부터 제대로 먹기 시작했고 그나마도 막대한 인력과 시장을 제공하는 인도를 제외하곤 돈은 별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적자라면 적자였다. 이미 세계 각국의 동인도 회사는 미국 독립의 시점부터 서서히 맛이 가고 있었고 결국엔 경제적으로 너무 손해가 커서 19세기엔 사라지기에 이른다. 스페인의 경제 성장은 네덜란드의 덕을 본 것도 있다. 네덜란드 역시 인도네시아를 먹으면서 향료무역을 독점했지만 얘네 역시 이전부터 경제력이 높긴 했다. 포르투갈 역시 그토록 식민지가 쩔었음에도 국가 자체의 피지컬은 2류라 결국 스페인에 합병되고 독립하고선 영국 똘마니로 사는 등 제대로 굴욕을 겪었다.

일단 19세기 이전의 거점 식민지 형식과 달리 19세기 이후의 땅따먹기식 식민지 경영은 본국의 병력 + 관료 + 유지 관리 비용이 장난이 아니었다.[16][17] 게다가 식민지 지역중 상당수가 본국의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영 환경이 좋지 않은 곳이 많아서, 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계속 사람들을 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식민지를 너무 많이 만들어서 인구 유출이 가속되다보면 오히려 본국의 활력이 떨어지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헬레니즘 제국이 이런 사례이며 마케도니아-그리스의 인구 팽창이 정지하자 다 같이 몰락하고 말았다. 현재 스페인포르투갈도 이 시기의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국가 막장 테크를 밟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있는데 본국의 인력. 그것도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엘리트 청년층이 구 식민지로 대량 유출되고 있기 때문. 거기에 식민지의 인력, 자원을 써먹기 위해 인프라부터 재투자를 하느라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이 생겨났고 식민지인들의 경제력이 좋을리도 만무하니 식민지인들이 식민제국의 물건을 사서 손해를 메꿀리도 없다. 막말로 현재 북한이 남한에 흡수된다 해도 당장 이득볼리 만무하다.

또한 식민지 경영에 지나치게 힘을 쏟다보니 자연히 국내 산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져 결과적으로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단점이 발생하였다. 독일영국, 프랑스 등 기존의 강대국들을 상대로 2번의 세계 대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식민지 경영을 하는 대신 국내 산업의 육성에 힘을 쏟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스페인포르투갈이 몰락한 것도, 지나치게 해외 식민지에만 집착하다 보니 자연히 본국의 국가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인은 본디 목축 위주의 산업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양모를 팔아서 돈을 벌고 그걸로 강대한 스페인군을 유지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신대륙 개척 이후로는 신대륙산 금은으로 바뀌어 덕분에 스페인은 군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금은으로 인한 인플레[18]로 오히려 타 산업이 붕괴되어 경제구조를 취약화시켰다. 결국 그 군대가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망하고 하라는 국방은 안 한 채 쿠데타만 하게 되니 망했어요.[19]

스페인, 포르투갈의 항로 개척 등에서 들 수 있듯이 식민국이 피식민국을 병합하기 이전에는 보통 양자간 교류가 없거나 미미한 경우가 많았다. 어쨌건 이런 접촉을 통해 식민국과 피식민국간 상품 등의 교류가 이뤄지므로 식민지 개척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이건 득을 본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양자가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인 상태에서 무역을 하는 것과 식민지 무역의 손익을 비교하면 통제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 미국은 이런 점 때문에 직접 식민지화를 하는 것을 가급적 피했다. 그나마 후자가 더 나은 점이라면 식민국이 피식민국의 정책을 통제할 여지나 교류의 안정성 정도를 들 수 있다.

영국프랑스 역시 초중반에는 식민지 경영으로 인해 크나큰 이득을 보았으나, 지나치게 식민지 경영에 힘을 쏟다보니 세계대전이 발생할 즈음에 가면 기술과 산업에 있어서 미국이나 독일에게 추월을 당하게 된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국의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20세기 후반 이러한 단점들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그나마도 1870년대 이후에 먹은 식민지들에게선 이득 본것도 없이 순전히 자존심 싸움만 했다. 영국의 동아프리카, 남아프리카 회사는 주주들에게 투자 배당금도 주지 못해서 쩔쩔 맸고 아프리카 투자 기피 현상까지 벌어졌다.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하부 구조 자체가 없으니 뭐 돈이 벌릴 구석이 있나.

게다가 외국에 정복당한 피지배민들이 100% 적극적으로 본국에 협력했을 리는 없기 때문에[20] 생산성이 떨어졌다[21] 결국 프랑스의 경우에는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수십만의 젊은이들의 피를 뿌리며 국력이나 소모하게 된다. 베트남은 프랑스인들의 농장이 꽉 들어차 있고 알제리는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일부로 간주되서 그렇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스페인처럼 식민지에서 들어오는 엄청난 부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경우 쏟아져 들어오는 보물이 국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인플레이션[22]을 겪고 경제위기를 겪은 사례도 있다.

그리고 정작 식민지를 많이 가졌다 해서 모든 국민들의 삶이 부유해지냐면 그렇지도 않아서 영국같은 경우 하층민들의 노동 조건이 극악하기 그지없었고, 런던에서 조금만 이동해도 법의 보호조차 제대로 못받는 빈민가가 나타나는, 흡사 21세기의 브라질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득의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인데, 자본가들이 식민지에서 쉽게 이득을 얻는데 익숙해진 나머지 부를 분배하여 하층민들을 부유하게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탓이 크다.

그래서 독일 제2제국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이런 이유로 식민지 정책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처음엔 독일 제국은 식민지를 확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1884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토고, 카메룬 등의 약간 식민지를 얻긴 했지만 그 뿐이었고 금새 그만두었다. 그나마도 경제적인 요인과는 전혀 상관없이 국가 내부의 불만 세력의 이목을 해외로 돌리고 민족주의를 고취하려는 의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식민지 보유국들보다 오히려 국력 및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더 앞섰다. 반면 야심만 크고 현실에 대한 인식 능력은 떨어지던 빌헬름 2세와 독일 내 제국주의자들은 쓸데없는 식민지 확장에 나섰다가 결국 신나게 얻어 터지고, 기존에 갖고 있던 식민지는 물론 왕조까지 빼앗겼으며,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식민지 획득 겸 제국 건설에 착수했다가 또 한번 제대로 얻어터지고 나서야 그만뒀다. 유사한 생각에서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23]같은 자유주의 성향의 인사들도 조선이나 대만을 독립시키고 중국(당시 일본 입장에서는 고갱님) 자극하지 말고 그냥 무역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류큐[24]와 대만에선 사탕수수 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득을 보았지만 조선 경영은, 35년간의 통치를 냉정하게 따져서 막대한 손해만 보았다. 조선총독부는 해체되는 순간까지 재정자립에 실패했고 본국에 엄청난 양의 돈을 요구했지 본국에 뭔가 준 적은 없었다.[25] 조선이 일본에 기여한 것은 쌀, 중화학 산업 뿐이었다. 그런데 쌀, 중화학 공업은 본토와 경쟁관계에 직면한 산업이라 본토 입장에서 키우기엔 리스크가 컸다.

식민지에 관련해서는 홉슨과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유명한데 홉슨은 보다 자유주의적 시각에서, 레닌은 공산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했다. 홉슨의 경우 식민지는 경제적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개척된다고는 하지만 정말 경제적 가치가 있는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식민지는 그 국가의 경제에 정말로 이바지한다기보다는 소수 재벌들의 압력+국수주의적 열망[26]에 따라 추진된 바가 크다고 봤다. 그러면서 홉슨은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국가가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고 봤다. 반면 레닌은 이를 부정했다.

또 보통 정치적으로 좌파들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긴 했지만 좌파들을 지지하는 노동계와 식민지인들의 이득은 서로 충돌하는 바가 꽤 있었다.[27] 따라서 제국주의 정책은 정치적으로도 우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물론 공산권도 스탈린 등장 이후로 사실상의 팽창주의 정책을 벌이고 자본주의 진영의 식민지 개념이나 다름없는 다수의 위성국과 괴뢰국을 만들어버려 '적색 식민주의(혹은 적색 제국주의)'라는 평을 듣긴 했지만 사실 그때쯤 가면 마르크스와 레닌이 생각하던 방향과는 많이 달라진 상태이긴 했다.

4. 종합

식민지는 어떤 지역을 차지했느냐에 따라 (경제적) 순이익 측면에서 강대국에 이득[28]이 될 수도 있었고, 손실이 될 수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초기에는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의 주요 자원, 향신료, 기호품 생산지가 주요 식민 지역이 되었고, 열강은 이러한 생산물을 독점하면서 재미를 보았다.[29] 그러나 점차 식민지 획득 과정에서 경제보다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는 경향이 강해졌고[30] 그 결과 식민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었다.[31]

오늘날까지도 유럽과 같은 정치사회적으로 자유롭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에서는 황금시대이고 천국이자 파라다이스라며 그 시절을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유럽의 경우 경제에 문제가 생길경우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타나며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일들도 있다.

5. 현존하는 식민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주의의 바람이 불고 열강 구조가 개편되며 거의 사라졌다. 역으로 말하면 아직도 남아 있는 식민지가 있다는 소리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영국, 미국,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같은 서방 세계 국가들이 대서양이나 오세아니아 등지에 소유하고 있는 타히티, 마르티니크, 세인트헬레나, 포클랜드,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누벨칼레도니, 아루바, 퀴라소, 아소르스, 등 속령 섬들처럼 현재도 존재한다. 또 중국의 지배 하에 있는 티베트, 위구르,내몽골이나 덴마크,노르웨이북구 왕국들의 지배하에 있는 그린란드페로 제도,스발바르 제도북극해 지역 같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서방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러한 속령 섬들의 대부분은 독립의 필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하는데다 독립하여 주권국가를 경영할 의지가 없는 곳들이다. 독립해서 듣보잡 국가 국민으로 사느니 강대국 국민으로 사는 게 해외 나가서 도움이 되므로. 그리고 강대국들도 괜히 챙겨야 할 국민만 늘어나니, 형식적이라도 독립시켜 주고 단물만 빨아먹지 속령을 새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는다. 미국이라크를 점령했지만 이라크미국 땅이 된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익이 있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예를 들면 누벨칼레도니의 경우 세계 니켈 매장량의 약 20%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니켈 채굴로 인한 막대한 수입이 프랑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경우 프랑스의 배타적 경제수역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프랑스는 이 식민지 덕택에 세계 제2위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보유하고 있으며, 알제리독립 이후 알제리사막 지역을 핵실험 장소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이후 주로 이 지역을 핵실험장소로 사용하여 주민들의 반발이 매우 컸다. 누벨칼레도니의 경우 1980년대 이후 격렬한 독립운동이 벌어져 무력 충돌까지 일어난 일이 있을 정도. 내부적으로 보면 심각한 경제적 격차와 식민지배적 경제구조로 인해 해당 섬의 원주민들은 말이 같은 프랑스 국민이지 사실상 주변인화되는 등 사실상 20세기의 식민지와 다를 바가 없는 착취구조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도 프랑스처럼 떨어진 곳에 섬 영토가 있는데 영국의 경우도 프랑스와 비슷하다.

결국 식민지 문제는 예전에 비해서는 줄어들었지만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런 해외 식민지들이 무조건 독립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32]

그러나 선주민족들의 입장에서 더욱 심각한 사례는, 식민지 본국에서 건너온 식민자들이 자기들 주도로 본국에서 독립해 버린 경우다. 보통 이런 나라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원래 살던 민족의 수와 영향력을 줄여 소수민족으로 만들어 찍 소리 못하게 함으로써 자국 건국에 얽힌 약탈과 학살의 역사를 부정하고, '권위주의적인 본국에서 해방되려 투쟁한 자유의 나라들'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라틴아메리카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쿠바등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며 "식민지"의 원래 뜻에 가장 잘 부합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신대륙 국가들은 미국/유럽에 짓밟힌 "순수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가장 잘 하는 부류다. 독립하자마자 원주민 땅 뺏어서 유럽인 이주자한테 더 많이 주지 못해 안달한 사람들이 바로 그 독립 지도자들 아니었는가? 독립 이전에는 오히려 가톨릭 교회와 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 안 데 미라아나 등의 양심적인 학자들 주도로 원주민과 노예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와 자치를 존중했으며, 북미의 경우도 원주민들과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신대륙 독립운동가들의 대의에는 "원주민 땅 마음대로 못 빼았게 하는 잔소리 시어머니 본국 정부를 엎어 버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뺏어 먹자!"라는 계산이 노골적으로 깔려 있었다

흔히 이런 나라들이 '민주주의의 종주국'소리를 들으며 프레드릭 잭슨 터너 같은 미국인 역사학자는 이를 프론티어 데모크라시라 하여 아예 식민주의와 민주주의를 깊이 연관지었다.

6. 영향

6.1. 지배국

독립이 된 이후에도 식민지는 과거 종주국에게 이득이 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종주국의 언어 영향력 확대이다. 과거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독립한 이후에도 대부분 그 종주국의 언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라틴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어포르투갈어. 거기다 식민지 시대에 쌓인 학맥과 인맥으로 구 식민지 국가의 지배층과 지식은 구 식민지배국의 대학에서 학문을 수입하거나 유학하여 구 식민지배국의 문화 지배가 계속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종주국들은 인재난이 심한 분야인 건설업과 제조업 등에 언어가 통하는 과거 식민지였던 개도국의 인력들을 충당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경제난을 극복하고 또한 경제를 성장시킨 나라들이 대표적으로 스페인프랑스이다.

다만 이것이 꼭 이익은 아닌 게 본국이 엉망진창이 되고 반대로 식민지가 잘 나가면 본국이 오히려 구 식민지 국가들에게 인재를 제공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 현재 스페인포르투갈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이 자국 청년층 및 엘리트들이 한창 자원 개발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앙골라, 브라질, 칠레 등 과거의 '식민지'로 진출하는 현상이다. 게다가 스페인포르투갈의 경제 위기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부실한 기간산업 및 유로존 체제 등 근본적인 경제 구조 자체의 문제인지라 단기간 내에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6.2. 피지배국

식민 지배를 당한 나라는 훗날 독립하더라도 자주적인 국가 운영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를테면 식민지 시절 지배자들의 뒤를 핧으며 거대한 부와 권력을 축적한 매국노들이 독립 후에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쥐어잡고 있고, 식민지 주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각종 부정부패와 경제적 혼란이 만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그 때문에 정부와 지배층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여 공권력 무시도 심하고 치안이 엉망이다. 또한 식민 지배 시절 지배국들이 멋대로-혹은 의도적으로-헤집고 갈라 놓은 그 나라의 민족, 문화, 역사 등의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식민지 시절 본국의 이해관계로 만들어 놓은 경제환경이다. 피지배국의 경제상황과는 무관하게 식민 모국의 분업화 과정에서 플랜테이션 등 특정 산업만을 기형적으로 발전시킨 경우가 많다. 비유하자면 식민 모국이 자동차를 만들면서 A 식민지는 유리창만, B 식민지는 타이어만 만들게 한 것. 그러다 보니 피지배국이 독립했지만 해당국의 산업 구조 자체가 식민 모국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경제적 혼란 및 침체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결국 나라만 형식적으로 독립했지 산업 전반은 식민 모국을 본거지로 하는 기업집단에 의해 또다시 지배되어 사실상 식민지 시절이나 다름 없는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게다가 식민지 시절 지배국이 식민지 주민들에 대한 교육 거부 및 축소, 강간 및 강제노역 동원, 차별 등으로 인해 식민국 인구 특성이 변질되어서 생기는 인종 및 민족차별 등의 문제도 있다. 게다가 식민지배자가 물러간 대신 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민족 외에도 이념 차이로 인해 나라가 갈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스페인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 직후 허약한 민주주의 정치와 지속되는 국내 정쟁, 잦은 군부 쿠데타와 군부의 정치 개입, 좌익 반군들의 준동으로 정치, 경제등 자국사정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엘살바도르, 아르헨티나,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33] 8.15 해방 직후부터 남북한 분단, 이념 대립, 계급 충돌, 독재 등의 위기를 겪은 대한민국, 이념과 제국주의 식민 유산 청산 밑 내부 갈등으로 독재 정치와 분쟁을 겪은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동남아시아의 국가들, 르완다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앙골라, 우간다, 소말리아등등 종족간 분쟁과 내전으로 완전히 파탄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수많은 아프리카 국가들, 과거 식민 종주국이었던 영국과 이집트에 의해 종교, 민족, 문화등 배경이 다른 지역들을 한 나라에 통합시켜 독립 직후 종족, 지역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내전이 벌어져 2011년에 자국의 남부 지역 영토가 남수단으로 분리 독립하여 영토 절반이 갈라진 수단,제1차 세계대전 직후 팔레스타인등 중동 지역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대인과 아랍인들을 상대로 행한 벨푸어 선언, 맥마흔 선언등 이중조약으로 인해 영국 철수후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분쟁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과 중동의 아랍 국가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34]

비교적 재출발이 수월했던 필리핀, 벨기에 등은 꽤 예외적인 경우지만, 필리핀은 섬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외세 침입이 많지 않았으며 벨기에는 국가들 간의 유대감이 깊은 유럽쪽 국가였으므로 그나마 평화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35] 게다가 벨기에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보다 100년 앞서 독립했으며 석탄이 풍부하고 영국과 가까운 지역적 이점을 살려 유럽 본토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나라였으며 유럽 제 2의 항구도시인 안트워프를 보유하여 지정학적 위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국가들보다 재출발이 아주 쉬웠다.

따라서 진정한 예외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이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하나같이 원주민이 아니라 원주민을 억압하는 유럽 출신 식민주의자들이 본국에서 독립한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국이 남북전쟁 같은 일을 겪었다지만 내전은 식민지가 아니었던 나라에도 있는 일이며, 원주민 말살 정책은 사실 미국 쪽에서 영토 소유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집단을 없애거나 약화한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좋은 일'아니었는가.[36]

그리고 종교민족주의 문제 특히 열강들에 의해 민족적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국경이 슥슥 나뉘어진 아프리카 대륙 쪽이 가장 심각하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의 경우 이 문제 때문에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 풍부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기는 커녕 르완다, 우간다 등 주변국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중.

7. 전세역전

대부분의 피지배국이 지배국보다 국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해진 사례는 매우 희귀하다. 당연한 것이 지배국이 피지배국을 마구 착취해갔기 때문. 하지만 흔치 않게 피지배국이 지배국보다 앞선 선례도 존재한다. 물론 아주 희귀한 선례이긴 하지만.

다음은 그런 흔하지 않은 선례들을 거론해본다.

  • 미국: 설명이 必要韓紙? 다만 지배를 벗어난 미국은 또다른 지배국이 되었다.

  • 브라질: 애초에 나라 크기가 포르투갈의 수십배인데다가, 인구도 브라질이 더 많았던지라 애초에 브라질이 더 우세할수밖에 없었던 상황, 페드루 2세하에서 적극적으로 근대화 정책을 펼치고 공화정으로 전환 된 이후에는 이민을 널리받아들면서 공업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한데 반해, 포르투갈은 혼란기를 겪고 살리자르 하에서도 공업화가 더딘 상황이었고, 거기에다가 식민지를 포기하지않으면서 벌어진 장기간 전쟁으로 발전이 크게 뒤쳐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이 1970년대 오일쇼크때부터 90년대까지 경제적으로 막장테크를 타고 반대로, 포르투갈이 80년대 들어 민주화가 정착되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면서 브라질에서 포르투갈로 대대적으로 유입이 되는 상황이 펼쳐졌다가, 2000년대 이후에는 다시 역전되어서 유로존 위기로 인해 사실상 파탄국가로 전락. 미래가 안 보이는 조국을 떠나 브라질 땅에서 새출발을 하고 있으며 이는 포르투갈의 인재 유출을 더욱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다.

  • 인도 : 아직은 종주국이었던 영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약한 상황이지만,[37] 높은 인구수와 급격한 성장으로 특별한 재난이나 금융위기 사태가 오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경제, 군사력으로 영국을 따라잡고 중국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 패권국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미 군사력 부분에선 GFP순위로 미국, 러시아, 중국을 이은 4위. 5위의 영국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인도네시아 :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으나 경제규모에서는 이미 능가했으며, 지금도 꾸준히 성장중인 이상 앞으로 국력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인구도 2억 6천만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
  • [1] 스페이스 콜로니도 일종의 식민지이다. 단 우리가 흔히 아는 식민지와는 전혀 다르다. (후술할 내용 참조)
  • [2] 현재에도 비슷한 지역들이 남아있기는 하다. 프랑스령 기아나, 영국 or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 [3] 일례로 스타크래프트크립 콜로니만 해도 크립을 지면에다가 '확장'시키는 것이지 크립으로 지면을 '착취'하는 것(…)은 아니었다.
  • [4] 물론 원주민들에 대한 약탈의 목적도 있었다.
  • [5] 이 시절 아프리카에서 끌려간 노예가 최소 수천만명에서 최대 억대의 수일수도 있다고 한다(…)
  • [6] 오죽하면 스페인은 식민지에서 나는 은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을 겪을 정도였다.
  • [7] 아메리카 식민지의 효용성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애초에 자원의 저주가 생긴 이유를 생각해보자.
  • [8] 물론 그 이전부터 높은 경제력을 자랑하긴 했지만 일류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식민지를 경영했기 때문이다.
  • [9] 정확히 말하자면 스페인은 이전부터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금 조달이 시급했다. 이게 신대륙 개척 이전 레콩키스타를 할 적에는 양모 같은 상품들을 팔아 조달하는 식으로 해결이 되었다. 이 외에도 아라곤은 지중해 무역으로 돈을 벌었다. 신대륙 개척 이후에는 네덜란드 같은 부유한 동네에서 거둔 세금과 귀금속으로 해결이 되었다.
  • [10] 물론 영국의 모직물 산업 역시 이러한 경제대국의 발판이 된 이유 중 하나였다.
  • [11] 자세한 것은 아편전쟁 항목 참고
  • [12] 다만, 이런 향신료, 금 은의 자원으로 직접 혜택을 보는 이들은 재벌같은 이들로 제한되어 있었다. 미국의 이라크전 운운하는데 정작 미국도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제대로 경제적 이득을 보진 못했다. 봤다 해도 그 막대한 국력낭비에 비하면…
  • [13] 물론 수에즈 운하 인수는 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이었다.
  • [14] 사실 이러한 주요 거점의 인구 분산이 원래 그 식민지의 컨셉이다. 식민지의 한자를 풀이하면 나무를 심듯이 사람을 심는 땅이라는 의미이므로. 근대 이후에도 이러한 인구 분산적 경향은 어느 정도 수행된 바 있다. 히키아게샤가 대표적이다.
  • [15] 19세기 말 이후의 식민지 경영은 주로 경제적 관점에서 비판이 되었는데, 홉슨의 제국주의론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레닌 역시 홉슨의 제국주의론을 발전시켜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도 제국주의론을 저술했다. 홉슨의 아이디어는 일본의 이시바시 단잔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 [16] 특히 영국네덜란드동인도 회사는 이런 문제로 향료 무역의 이익에도 불구하고 적자, 부정부패 등에 시달렸다.
  • [17] 물론 처음부터 적자였던 것은 아니고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회사들이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경우는 일단 아시아 무역 쇠퇴의 타격이 컸고, 여기에 분식회계 문제, 영국 및 아메리카와의 경쟁 문제 등이 겹쳤다. 영국은 회사가 지나친 확장을 벌이다 자초한 것이 컸다.
  • [18] 물론 종교재판 등의 다른 요소도 있다.
  • [19] 포르투갈의 경우 분명 인도 무역 자체는 짭잘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게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기도 어려운데, 결국에는 무역이 낫냐 식민지 정복이 낫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인도 무역은 이문도 짭잘했지만 리스크도 그만큼 큰 산업이라 선원이나 선박 손실이 심각했다. 특히 선원들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양성하기 어려워서 망했어요.
  • [20] 홍콩처럼 현지인에게 선정을 베푸는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처음부터 쥐어짜는게 목적인지라 당연하다.
  • [21] 물론 역으로 이득을 바라고 잘 협조했던 사람도 있긴 있었다. 이를테면 이완용을 위시한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이 대표적.
  • [22] 가격혁명
  • [23] 훗날 총리대신 역임
  • [24] 근세 이후 일본의 식민주의 정책 첫 시범타가 다름아닌 류큐 왕국(현 오키나와)이었다.
  • [25] 물론, 조선은 대만이나 만주에 비하면 투자가 상당히 안 된 쪽에 해당했다.
  • [26] 식민지로 가면 보다 고래등같은 집에서 원주민들을 종처럼 부리고 살 수 있다는 열망이 하층민들에게 적지 않게 퍼졌다. 물론 한 몫 잡은 이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고 비교우위 원리에 따라 오히려 식민지인들 때문에 3D산업, 농업(모토야마 히로시의 <나라가 불탄다>라는 만화에서는 조선 등지에서 수입되는 로 인해 일본 현지 농민들이 착취당하고 몰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등지에서 몰락하는 이들이 그 이상으로 적지 않았다. 일본의 경우는 나라에서 강요한 구석도 있긴 하다. 히키아게샤 참조.
  • [27] 가령 식민지인들을 본토로 이주시키면 본토인들의 일자리가 줄고, 식민지에 공장을 지으면 본토인들의 노동조건이 위협받는다. 실제로 동인도 회사에서 인도산 면직물을 본토에 팔면서 동인도 회사는 이득을 본 반면 영국 본토는 곤경에 처했던 반대 경우도 있다. 그나마 저것 덕에 영국에 처음으로 면직물이 전파된 것 정도가 이득이 된다.
  • [28] 자원 원산지를 차지하거나 무역하기 좋은 곳을 차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후자의 사례가 홍콩
  • [29] 다만, 여기에는 식민지 경영에 따른 이득 외에도 기존에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제권의 연결에 따른 이득도 포함되어 계산되었다 볼 수 있다.
  • [30]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식민사업, 일본의 조선 병합, 스페인의 모로코 병합, 이탈리아의 리비아, 에티오피아 병합 등이 대표적이다.
  • [31] 그나마 일본의 조선 병합의 경우는 중국 밑 동남아시아 침략의 전진 군사 기지로 기능했고, 리비아 역시 2차대전 당시 본토의 방패 노릇이라도 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나머지 경우는...
  • [32] 실제로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가장 안좋은 경우가 프랑스령 기아나로 배치되는 것이다. 말이 프랑스 땅이지 사실상 식민지로, 현지인들의 민심이 최악이라 근무 환경은 파병지역 못지 않게 안 좋은데 파병 수당도 못 받고 본국 근무와 동일하게 처리되기 때문.
  • [33] 그나마 엘살바도르나 아르헨티나의 경우 개국초기에는 경제적,정치적으로 중진국 내지 선진국 수준으로 잘 나가던 시기도 있었다.
  • [34] 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중동 아랍 국가들의 중동 지역의 분쟁은 단순 식민지 유산으로 보기에는 애매하다는 견해도 있다.
  • [35] 실제로 네덜란드는 벨기에의 독립을 막으려고 전쟁까지 각오했지만 유럽 주변국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독립을 허용해야 했다.
  • [36] 미국독립전쟁 발발의 원인 중 하나는, 영국정부가 북미원주민과 맺고 식민지인들에게 강제한, 더이상의 서쪽으로의 영토확장을 금하는 조약이었다.
  • [37] 이래뵈도 GDP순위 11위로 한국보다 높다. 영국의 GDP순위가 많이 높은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