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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last modified: 2019-07-15 15:14:30 Contributors

Contents

1. 채소의 일종
2. 동양에서 죽은 군주나 신료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
3. 인명
3.1. 실존 인물
3.2. 가상 인물
3.2.1. 포켓몬스터 DP의 등장인물

1. 채소의 일종

柴胡

채소. 으로 끓여 먹거나 볶아 먹는다. 소화를 돕는 기능이 있어 약초로도 사용된다.

2. 동양에서 죽은 군주나 신료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

諡號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왕으로부터 받은 이름. 혹은 전대 군주가 죽은 다음에 후대 군주가 선대에 올리는 호칭. 군주의 신하가 받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군주의 가족(왕비후궁, 공주, 왕자 등)은 시호를 받는 경우가 많다.

죽은 이의 삶이나 업적을 평가하고 기리기 위한 호칭이다.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므로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들에는 모두 엄격한 의미가 정해져 있다. 이러한 의미에 대해서는 시법을 참조.

일반적으로 두글자로 구성되기에 동양 군주의 시호는 보통 ××왕 또는 ××제(××황제)가 되며, 신료에게는 그 신료의 봉작에 맞춰 ××공, ××후가 된다. 다만 ××왕이라고 해서 모두 시호는 아니다. 시호가 사용되기 이전의 백제의 왕, 또는 멸망한 국가의 마지막 군주는 대부분 시호를 붙여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시호가 없이 이름 + 왕의 형태로 서술되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보장왕이나 백제 의자왕의 경우가 대표적. 그리고 군주나 군주의 정실부인의 경우, 처음부터 글자를 많이 넣어서 시호가 길거나(...) 후대에 시호가 추가되어서 최종적인 시호가 엄청 길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경우엔 무슨 행사할 때 아니고서야 그 시호를 줄인 약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중국과 한국, 베트남에서는 양(煬)자를 피하는 게 대부분인데 왜냐하면 황제라는 호칭이 생긴 이후부터는 이 양자가 최악의 암군에게 붙이는 호칭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좋지 않은 시호로는 영(靈)과 여(厲)가 있다. 영 같은 경우는 최악의 암군이란 뜻이고, 여 같은 경우는 국민을 도탄에 빠뜨렸단 뜻.

양자가 들어간 최악의 암군의 대표격으로는 수나라의 양제가 있으며, 영자가 들어간 군주로는 초나라의 영왕, 진나라의 영공, 후한의 영제 등이 있다. 여자가 들어간 군주 중에는 주나라의 여왕이 있다.

폭군이거나 신하들에 의해 재위 중에 폐위된 군주에게는 시법을 적용하지 않고 '폐(廢)' 자를 넣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삼국시대 의 폐제 조방조모, 남북조시대 유송의 전폐제, 후폐제 발해폐왕 대원의 등.

한국의 경우, 신라 법흥왕이 아버지에게 지증(智證)이란 시호를 올린 것이 최초의 시호 기록이다. 이 지증왕의 대부터 국왕의 칭호를 왕(王)으로 고정하고 두 글자의 시호를 올리는 것이 법제화되었다. 신라가 935년 고려에 귀순하면서 멸망한 뒤 시호 제도는 그대로 고려로 이어졌으며, 고려에서 신하들에게도 시호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시호는 왕, 왕족, 공신, 명신에게 내려지는 명예 칭호로 자리매김한다.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 세력이 주축이 되어 건국된 조선시대에 이르러 시호는 더욱 세밀해지고 체계화되었다. 조선시대의 시호에는 종래의 시호 제도와는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폭정을 일삼다가 폐위된 왕에게 폐(廢)라는 글자를 내리는 대신 왕위에 오르기 전의 신분인 군(君)의 작호로 호칭하는 것이었다.

이 작호로 격하된 조선의 왕은 6대 노산군, 10대 연산군, 15대 광해군의 세 명이다. 그나마 노산군은 19대 숙종 24년(1698년)에 다시 왕으로 복위되고 단종(端宗)으로 추시되면서 종묘에 모셔지게 되었으므로 이후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작호로 불린 왕은 연산군과 광해군 두 사람만 남게 된다. 그런데 광해군은 당쟁에 희생된 왕이지 폭정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진짜 망나니였던 임금은 연산군 단 한 사람이다.

물론 시호상으로 폐(廢)라는 글자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연산군과 광해군은 이후 임금들의 세대에서 폐주(廢主)라고 불리었다. 말 그대로 폐위된 군주라는 의미이다. 고려·조선시대에 와서는 간신이나 권신에게는 악시(惡諡)를 내려서 일족에게 경계의 의미로 삼도록 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아깝다하여 시호를 내리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고려시대에는 한국 역사상 가장 안 좋은 의미의 시호를 받아본 사람이 있긴 했다. 바로 황무공(荒繆公) 이인임. 황무(荒繆)는 "국사를 농단하고 백성을 핍박했다"는 의미로 그의 권력남용을 비난하는 시호였다. 고려사에 의하면 이인임이 죽고 조민수가 이인임의 시호를 결정해 내려주자고 조정에 건의를 했지만 시호 제정을 담당하는 전의부 관리들이 모두 발뺌을 하는지라, 전의부령 공부(孔俯)가 독단적으로 시호를 황무로 결정해서 올려버렸다. 이인임의 처조카 하륜과 같은 집안이었던 이숭인이 시호를 정해 올린 공부를 욕했는데, 공부는 농담이었다고 받아쳐서 시호를 내리는 문제는 유야무야 되었고, 공식적으로는 이인임에게는 아무런 시호도 내려가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륜은 이인임 사후 친명파인 이성계의 편으로 들어가 조선 건국의 공신이 되었고, 이후 이방원의 참모 역할을 맡아 공을 세워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한 뒤에는 의정부사까지 올라 권세를 누리다가 죽었다. 제대로 된 시호인 문충(文忠)이라는 시호까지 받는다.

일본같은 경우에는 시호를 내리는 방법이 체계화되지 않았다. 최초의 관찬사서라고 불리는 일본서기고사기에 등장하는 덴노의 시·존호는 일본 고유의 방식인 와시(和諡)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칸시(漢諡)가 혼재되어 있다.
칸시, 즉 한시는 말 그대로 한나라(중국)의 시호라는 뜻인데, 이 선대 덴노들의 시호는 문신 오미노 미후네(淡海三船)가 지어올린 것이라고 전한다. 헤이안 시대를 전후해서부터는 능이 위치한 지명을 따라 시호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흥미롭게도 이는 고구려의 존시법과 같은 형식이다.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적인 독자 연호를 썼던 일본이었기에, 이들 덴노를 언급할 때 연호를 시호 대신으로 부르기도 했다. 62대 무라카미(村上)덴노의 경우 능호에서 유래한 무라카미(村上)보다도 그의 치세의 대표적 연호 중 하나인 텐랴쿠(天曆)를 따서 텐랴쿠노 미카도(天曆帝)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일종의 '별칭' 개념이었고, 시호 자체는 꼬박꼬박 따로 붙였다. 메이지 덴노(明治天皇)가 즉위한 후 메이지이신(明治維新)을 선포하면서 한 덴노의 치세 당 하나의 연호만을 쓰는 일세일원제가 공포되었고, 메이지 덴노가 사망하자 연호인 메이지(明治)가 시호 대신 추시되었으며, 이후의 덴노에게도 같은 방식의 추시가 이루어져 왔다.
가장 최근에 추시를 받은 덴노는 1989년 1월 7일에 사망한 124대 덴노 히로히토(裕仁)로, 추시된 시호는 그의 연호였던 쇼와였다.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한 현직 덴노는 125대 아키히토(明仁)인데, 현재 재위하고 있는 아키히토는 관례에 따라 킨죠덴노(今上天皇) 혹은 이마노카미(今上)로 불리고 있다.[1] 특별한 헌법 개정이 없을 시엔 아키히토 사망 시에 추시될 시호는 현재 쓰이고 있는 그의 연호인 헤이세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묘호와는 약간 다르다.

참고로 역사상 가장 긴 시호는 효명세자113자. 중국사까지 범위를 넓혀봐도 이 정도로 긴 시호는 없다! 중국에서 가장 긴 시호는 누르하치가 받은 겨우(?) 29자 짜리다. 가장 긴 후비의 시호 또한 효명세자의 비인 신정왕후가 받았는데, 이쪽은 56자. 다만 방계 혈통으로 즉위한 고종이 칭제할 때 정통성 확보를 위해, 양부모의 시호를 엄청나게 올려준 것임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위의 설명에서 보듯이, 생존해 있는 임금이 자신을 지칭하여 시호로 부르는 경우는 있을 수 없으므로 만일 신하가 임금에게 시호로 부른다면 더더욱 무례한 행동이요 모가지가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아니 그전에 죽어야만 붙는 이름이므로 문명 5에 군주로서 음성지원을 하며 처음 선보인 세종의 경우 엄연한 고증 오류가 된다.("조선의 궁궐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낮선이여. 나는 나의 훌륭한 백성들을 굽어살피는 깨우친 임금 세종이요")

대한민국 정부에선 시호 제도를 부활시키지 않아서 대한민국엔 공식적인 시호를 받은 사람이 없다. 공식적으로 조선에서 시호를 마지막으로 수여한 것은 순종 3년(대한 융희 4년/1910년)8월 26일에 이간(李揀) 등 57명에게 시호를 수여한 것이 마지막이다. 경술국치 3일 전.
1926년 4월 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왕직 장관 민영기가 순종의 시호 망단자로 문온(文溫), 무녕(武寧), 돈인(敦仁), 성경(誠敬)을 올리자 사왕(嗣王)인 영친왕이 아뢴대로 하라고 정한 시호 문온무녕돈인성경(文溫武寧敦仁誠敬)이 한국사에 기록된 최후의 공식 시호 부여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 세상을 떠난 순정효황후, 영친왕, 이방자, 이구의 시호는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이 주관하여 정한 사시(私諡)에 해당한다.

3. 인명

한국일본에서 쓰이는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한자로는 志穗, 志保 등으로 표기.

3.2.1. 포켓몬스터 DP의 등장인물



한글 명은 시호. 일본명은 나오시(ナオシ), 영어명은 Nando.
성우나카이 카즈야/오인성신용우

DP 4화에서 첫 등장. 그 외에도 36화, 49화, 174~177, 182~183화에 등장했으며, 106화에서는 만화 내 중계방송으로 잠깐 등장했다.

체육관전과 콘테스트 둘 다 도전하는 인물로 지우와 빛나 양쪽의 라이벌이다.

체육관과 콘테스트 양쪽에 전부 관심이 있어 어느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지만(4화)[2] 지우나 빛나와 만나 둘과 배틀을 하게 되면서 양쪽 모두 하기로 결정한다. 양쪽 모두 도전하는것 때문에 소망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날 했던 콘테스트에서 소망이 반대로 역관광 당했고, 이 일로 소망에게 쇼크를 줬다. 양쪽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을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던 소망은 시호와의 결승 때 졌지만 그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고심하며 사고의 변환을 겪기도 했다.

DP 36화에서는 지우 일행에게 신오지방의 전설을 가르쳐 준다.

원래 직업은 음유시인으로, 모양 하프를 자주 들고 있다. 평소에는 뮤가 한마리, 콘테스트 때는 두마리가 이어져 있는 듯한 모양.

상대가 누구이든 존댓말로 정중하게 말하는 존댓말 캐릭터. 주인공들도 그에게 존댓말 하는 것으로 보아 나이는 주인공들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풀/벌레 타입의 포켓몬을 주로 사용. 파비코리 같은 노래하는 포켓몬도 사용하고, 그랜드 페스티벌에서는 이어롭을 사용한다.

그랜드페스티벌 준결승전(176화)에서 소망과 치열한 접전 끝에 한끗 차이로 패배했다. 정보유출로 소망이 노래하기 대책을 세워온 것이 컸다.

신오리그에서는 1차전(183화)에서 지우에게 패배. 이때 지우도 노래하기 대책으로 잠꼬대를 익힌 헤라크로스를 데려왔다. 콘테스트 때의 대결과는 달리 뜨겁게 불타오르고 영혼까지 타오르는 것 같다며 지우와의 배틀을 진심으로 즐겼다. 베틀에서도 실력이 약한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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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금상(今上)은 재위 중인 임금이란 뜻이다.
  • [2] 빛나가 나오시의 꼬몽울하고 대결을 한 뒤 빛나는 콘테스트, 지우는 체육관 시합을 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