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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last modified: 2015-04-03 18:48:29 Contributors

중화인민공화국국가주석
6대 7대 (현직)
후진타오 시진핑 (현직)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주석[1]
5대 6대 (현직)
후진타오 시진핑 (2012 ~ ) (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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习近平·習近平(습근평) / Xí Jìnpíng (1953년 6월 1일 ~ )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권력 장악
4. 대외관계
5. 예상되는 그의 행보
6. 1인 독재체제로의 회귀?
7. 기타

1. 개요

중화인민공화국의 제7대 국가주석이자 제 5대 중국 공산당 총서기, 제8대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쉽게 말하면 2012년 11월부터 중국 최고지도자.

태자당의 주축으로, 보시라이와는 같은 태자당이지만 그 같은 강경파가 아닌 온건파 지도자에 속한다.

2. 생애

산시 성(陝西省)에서, 혁명 원로로 부총리였던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렸을 때는 부러운 것 없이 자랐으나 1962년 류즈단 사건에서 시중쉰이 펑더화이[2]를 지지하다 반당(反黨)집단으로 몰려 오지로 처분되었고 산시 성 시골로 하방되어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이 때 토굴에서 7년간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소시적부터 리더십이 있었는지 하방 당한 곳에서 노동자들을 지도하여 최고의 생산량을 올렸다고 한다.[3][4]

시진핑은 1970년대에 명문 칭화대학에서 공정화학과를 졸업하고 공산당에 여러 번 입당 퇴짜를 맡다가 겨우 입당, 정치 생활을 시작했으며 마오쩌둥이 죽은 후 시중쉰이 덩샤오핑에 의해 복권되자 베이징으로 돌아오며 본격적인 정치이력을 쌓기 시작한다.

정치 생활의 대부분을 푸젠 성, 장 성 등 동남부 지방 정부에서 지냈는데, 2007년 상하이 시 당서기를 지내면서 장쩌민과 주룽지의 파벌인 상하이방과도 관계를 맺게 되어 태자당상하이방 양쪽의 후원을 받는 거물로 성장했다. 2008년에는 국가 부주석 직에 올랐다. 하지만 이때까지 보시라이리커창에 비해 외국에 덜 알려졌으며 한국에서도 그가 중국의 주석에 오를 것으로 미리부터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부주석을 지냈던 쩡칭훙 외에도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지지와 후원 모두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주석으로 있다가 2010년에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직에 오르면서 후진타오를 이을 차기 지도자로 공인되었다.

영국 주재 대사의 딸이었던 첫 아내와는 성격차이로 이혼했고, 재혼한 현 부인 펑리위안중국 인민해방군 예술단 소속의 가수[5]로 중국의 국민가수로 불리는 사람인데, 펑리위안의 인기도 시진핑의 권력 상승에 도움이 되었다.

3. 권력 장악

전임인 후진타오 주석이 전전임인 장쩌민이 자기 권력을 내놓지 않겠다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계속 유지하는 바람에 5년동안 반쪽짜리 권력만을 유지하였으나, 시진핑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제 18회 당 대회 때 후진타오로부터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동시에 이양받았고 2013년 3월 후진타오의 국가주석 임기가 끝나면서 국가주석 직도 승계하였다. 따라서 2012년부터 별 일이 없는 한 2017년의 연임을 거쳐서 2022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 전체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4. 대외관계


시진핑은 국가 부주석일 때 멕시코를 방문하여 "우리는 혁명을 수출한 적이 없고 배고픔을 수출한 적도 없으며 상대를 괴롭히지도 않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가한 서방 사람들이 이렇다 저렇다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30년을 지나 경제가 계속 발전하면서 중국에 대한 서방의 간섭이 수위를 높여오자 이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려는지 대충 방식을 보여준 셈. 중국의 국력 증대와 국제적인 위상 상승, 세계금융위기 이후 미국 패권의 상대적인 위축 등으로 중국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대해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제 18회 당대회에서 취임 기자회견 이후 중화문화의 부흥에 대해서 강조했고 채택된 내부 정치보고 문안에서는 "국제적 위치에 맞고 국가 안보와 발전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고 명시함으로써 태평양 지역에서 이제는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 국가 안보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을 것임을 피력하였다.

북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의 안보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보유[6]에 반대한다는 입장이 단호하고 국제적인 규범을 성실히 이행할 것임을 천명하였지만 북한의 동향이 줄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크므로 북한에 대한 전통적인 외교경제적인 후견인 역할이 어느 면에서 한국과 안정적으로 공조가 이루어져 변화하고 조정될 수 있는지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깊고, 준영 전라남도 지사,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 새정치민주연합 손학규 고문,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차 정몽구 회장, 포스코 준양 회장 등 한국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과의 교분도 깊어 지한파로 알려져 있으며, 예전 중국의 지도자들에 비해 한국과의 관계 발전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한 점이 작용했는지 2014년 7월 3일 대한민국에 방한하게 되는데 중국과의 수교 이후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전통적인 동맹국인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을 먼저 방문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2014년 11월 북경에서 열린 APEC에서 시진핑은 박근혜, 버락 후세인 오바마, 아베 신조를 만났는데, 아베 총리에게 보여준 표정은 박근혜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악수할 때는 사뭇 달라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른 그림 찾기

대충 봐도 시진핑이 아베 신조와 악수할 때는 표정이 확 다르다. 그래서 그런지 아베 신조도 제대로 웃지를 못하고 있다.

youtube(cSjcpkteSx8)

나 지금 너랑 말 섞을 기분이 아니야.
비정상회담

5. 예상되는 그의 행보

폭발적인 성장에 따라 부작용이 확대하는 것을 감안, 개혁으로 국가 동선을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부정부패를 감시, 처단하는데 힘을 쏟고, 역시 세계적으로 문제시되는 빈부격차에 대해서도 줄이는 노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장과 복지에 모두 관심을 가질 것이며 중국 국내에서 2000년대 후반기부터 문제시되어오던 한자녀 산아 제한 정책은 시진핑 시대를 기점으로 폐지되었다.

1%의 국영기업이 40%의 비중을 차지하는 경제에 대해서도 메스를 댈 듯하다. 하지만 중국 내 기득세력과 개혁세력의 복합적인 이익관계를 조정해야하는 입장이고 게다가 사회적 혼란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정치와 법 분야의 개혁은 안정적인 기조 위에서 실행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 면에서도 마찬가지로 민간기업의 몫이 늘어나겠지만 전면적으로 정부와 무관하게 시장에 권한이 집중될 것으로 보기 어렵다.

임기 초반부터 개방개혁을 우선 강조하며 강한 의지를 보였으나 이에 대해 보수세력[7]들로부터 견제도 받았던 것 같다. 그가 공산당 혁명 유적지를 찾기보다 개혁•개방 1번지인 선전을 방문해 덩샤오핑 동상에 헌화한데 의구심을 표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오 시절 자기랑 아버지가 그 고생했는데 곱게 보기도 머하다 이후부턴 마오쩌둥 기념식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현재 자신의 정책을 실행해나가는 상황이며 계획생육정책의 골자인 한 자녀 정책을 부모 중 한 쪽이 한 자녀일 경우 둘째까지 허용하는 방침이 그 중 하나이다. 노동교화소 폐지도 정책으로 실행된다고 하였는데 정식으로 폐지되었는지 아직 확인되진 않았다. 대대적으로 출범한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조장도 직접 맡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내외 현안 전반에 걸쳐 추진작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다만 중국 국가와 체제에 대한 변화를 근본적으로 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이고, 미국과 똑같은 정치제도의 시행에는 부정적이며, 이 점에서는 여태까지의 다른 중국 권력자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 2013년 8월 뉴욕타임스 기사.

특히 이런 점은 소수민족 분리운동에 대한 억압정책에서 잘드러나는데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람들에게 단호한 대응을 취하고 있다. 분리운동 테러분자들에 대해 강경대응한다는 점에서[8] 기존 중국의 노선와 별반 다르지 않는 안보정책을 취하면서 경제적으로는 개방개혁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합하면 이런저런 전향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중국의 안정에는 조심스럽고 신경써야하는 부분 역시 많기 때문에 전반적인 변혁은 이를 감안하면서 중국 내에서도 역시 문제가 되어온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혁을 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2014년 들어선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자신의 친인척들에게 재산을 처분하고 대외투자를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반부패 주창 시진핑, 누나 등 가족들에 재산 처분 압박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2007년 이후 친인척들의 재산이 크게 불어났다고... 다만 이걸 단순한 쇼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반부패를 외치면서 사실은 자신의 반대파 정적제거용으로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일당독재라는 틀 내에서도 수많은 계파가 서로 싸우는 형국이라 나름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부패 척결은 모든나라 지도자[9]가 하는 말이고, 솔선수범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거 자체를 음모로 보는 것은 무리한 시각이다.

6. 1인 독재체제로의 회귀?

보시라이 숙청을 시작으로 점차 자신의 정적을 제거해나가며 권력을 강화시켜가고 있다. # #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마저 부패혐의로 처벌 수순에 오르면서 # 그의 독주를 막을 세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단순히 정적 제거 뿐 아니라, 마오쩌둥 이후로는 전례없는 지도자 선전 # 등 그가 점차 권력을 강화시키려고 드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죽하면 새로운 행정기관 설립으로 인해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맞먹는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올 정도.# 오죽하면 전직 대만총통이 시진핑의 행보에 대하여 모택동(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라는 발언을 했을까...

이로 인해 시진핑의 "반부패 드라이브"의 진정성이 의심받기도 한다. # 반부패 운동 자체가 그의 권력 강화를 위한 기반이 아니겠냐는 의혹이다. 반부패를 위해 권력을 강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반부패를 권력 강화에 이용하는 것인지는 좀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듯. 참고로 시진핑 본인은 깨끗한거같지만 사실 그쪽도 뜯어보면 본인 자신도 구린내가 물씬 풍기는건 마찬가지, 즉 반부패 드라이브의 원칙이면 자기 자신도 반부패 드라이브의 표적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장쩌민, 후진타오도 이러한 시진핑의 이런 행보에 대해서 은근슬쩍 견제하고 있기에 과연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무난하게 1인독재체제를 확립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역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1인독재체제의 확립을 위해서는 많은 피가 동반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나와 무엇보다도 문화대혁명을 통하여 1인독재체제의 폐단에 대하여 체감한게 현재의 중국 공산당인지라 두 명의 전직 지도자들이 시진핑의 움직임에 대하여 견제에 들어갈 것은 분명한 일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시진핑이 완전히 1인독재체제를 완성하게 된다면 중국의 부패는 오히려 시진핑 시대 이전보다 심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는 격언은 중국이라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4년 11월 14의 위 기사에 보면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 13일 시 주석을 중국 개혁개방의 새로운 총설계사로 대놓고 신격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중국 개혁개방의 새로운 총설계사라는 표현은 등소평(덩샤오핑) 시절, 덩샤오핑을 신격화할 목적으로 그를 지칭하던 표현이다. 중국 안팎에서도 표현에서의 차이만 있을뿐 한결같이 시 주석을 강력한 1인 통치자로 평가하고 있는것을 보면 확실히 1인독재체제의 구축이 그의 목표인듯,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미국의 시가주간지는 시 주석이 아니라 아예 황제로 묘사했다.

이러한 시 주석의 움직임에 대해 반대파 관료들의 반발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몇몇 매체를 통해 시진핑 정권 전복을 노린 암살 미수 사건 및 쿠데타 음모 사건이 적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기사 처음 이 기사를 보도한 매체가 반중 성향이 강하고 신뢰도가 비교적 낮은 보쉰이라 의심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중국 주요 언론에서도 "비조직 정치활동"]에 대해 언급한 걸로 보아 뭔가 심상찮은 일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홍콩의 주요 월간지 중 하나인 개방에 따르면 시진핑 암살 시도만 현재까지 6차례나 된다고(...).

7. 기타

축구광으로도 유명하다. 한 예로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때는 메시의 유니폼까지 선물받고 좋아할 정도.

2011년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만남 당시 "중국이 월드컵에 나가고, 월드컵을 유치하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이 내 세 가지 소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영향때문인지 중국 고등학교 입학 시험 체육 과목 구기 테스트 종목에 축구가 포함되었다.http://www.hankookilbo.com/v/c3c03290909d4cf3b9fcf5c49896a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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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가주석이 법률상 국가원수이나 이자리가 실질적인 국가원수라고 할 수 있다.
  • [2] 시중쉰은 중공정권 수립 후 서북(西北)지역 제1서기, 군정위원회 주석이던 펑더화이가 항미원조전쟁 (6.25 전쟁) 지휘관으로 불려가면서 1950년 10월부터 1952년 9월까지 서북지역 군정위 부주석, 주석대리와 경제총책을 맡았다.
  • [3] 다만 정치인들에게 붙는 이런 일화는 프로파간다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 있으니 함부로 믿으면 안된다. 특히 중국처럼 언론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선 더더욱.
  • [4] 국내도 어린이 위인전에 나오는 유명인들의 어린 시절 일화는 거의 대부분 소설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어른이 되고나서 뒤통수 맞는다 혹은 죽을 때까지 모르거나
  • [5] 2012년 기준 현역으로 계급은 소장이다.
  • [6] 2014년 7월 4일 한반도 비핵화라고 언급을 하였으나, 이것은 단순히 북한의 비핵화뿐만이 아닌 한국의 비핵화, 즉 미국의 핵우산 전략목적에 대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 [7] 웃긴게 경제적으로 따지면 중국은 보수세력이 좌파다. 당부터 공산당
  • [8] 독립을 요구하는 신장 자치구의 테러리스트들을 왜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2014년 6월 25일에는 테러죄로 113명에게 중형을 선고하였다. 문제는 69건의 재판 중 4건의 재판의 판결 내용만 공개하고 나머지는 전부 비공개로 돌렸다는 것. 즉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으면 무차별적으로 체포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것이다.#
  • [9] 심지어 김정은마저도 부정부패 척결을 항상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