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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last modified: 2015-04-09 09:01:06 Contributors

Contents

1. 동음이의어·다의어/ㅅ
1.1. 의 한 종류
1.2. 화합물의 한 종류
1.3. 중국의 지명
1.3.1. 개요
1.3.2. 부흥의 역사
1.3.3. 쇠퇴
1.3.4. 유적들
1.4. 이름
2. 동명이인/ㅅ

1.1. 의 한 종류

청록색 항목 참고.

1.2. 화합물의 한 종류

Cyan(ogen). 사이안/시아노겐(사이아노젠)/청소(靑素)라고도 한다.

옥사마이드를 오산화인으로 탈수하거나 수은, 은, 금 따위의 사이안화물을 열분해할 때에 생기는 무색의 기체. 특이한 냄새[1]와 독성이 있으며, 불을 붙이면 보라색 불꽃을 내며 타는데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유리된다. 군사용 독가스로 쓴다. 화학식은 (CN)2.


1.3. 중국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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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시안성(장안성) 종루. 시안시의 상징. 1384년에 건립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중국의 종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1.3.1. 개요

시안(西安, 서안, Xi'an). 중국 산시성(陝西省)의 성도.

옛날에 '장안(長安, 창안)'이라고 불리던 곳이 바로 이 도시다. 송나라(북송) 시대 이전까지 낙양(洛陽, 뤄양)과 함께 중국의 양대 도시로 번창했었다. 이후 다소 쇠퇴하였고 명나라 때 서안부(西安府)로 개칭되었다가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시안시로 이어지고 있다. 워낙 유명한 도시였기에 수도(首都)를 가리키는 말인 '장안'도 이 장안에서 따왔다. 물론 '장안의 화제가 되다'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

1.3.2. 부흥의 역사

주나라(서주)의 도읍지 호경도 인근에 위치했는데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수도인 함양(기원전 350~206)[2]이 인근에 있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장안은 함양 외곽의 일개 향리였다. 그러나 결국 함양은 항우에게 의해 완벽하게 파괴되었고 장안은 한나라(전한) 고조 유방 때 처음 도읍했던 낙양에서 천도하면서 세워진 도시다. 파괴된 함양을 조금 이동해서 재건했는데, 그게 장안이었던 것.

한나라 때의 장안은 지금의 시안에서 북쪽으로 5 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비단길의 시작점이었다. 한무제 시대 장안은 제국의 수도로서 가장 번영했다. 전한 멸망 이 후 잠시 나라의 수도로 상안(常安)으로 개칭되었으나, 적미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는 다시 낙양으로 돌아왔으나, 후한 말기 헌제동탁은 낙양(洛陽, 뤄양)을 불태우고 다시 장안으로 수도를 옮겼다. 당시 장안은 적미군의 폐허를 제대로 복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우격다짐으로 대충 복구했으나, 동탁이 죽고 이각, 곽사가 깽판을 치고 삼보의 난으로 장안은 다시 잿더미가 되었다. 또 헌제는 이를 떠나 조조에 몸을 의탁, 조조는 허창을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이 후 조위를 세운 조비는 수도를 다시 낙양으로 옮겼고 조예는 낙양을 호화스럽게 복구했다.

수나라 문제 때 수도가 되어 대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수양제가 낙양(동도)으로 천도.

장안의 두번째 전성기는 당나라 때의 도읍지였을 때다. 정전이 중국 역사상 최대 크기의 건축이라는 함원전을 가진 대명궁 같은 화려한 궁전을 짓기도 했다. (지금은 폐허로만 남아있다.)

대명궁의 인덕전 복원도.

장안의 인근 지역을 도읍으로 삼았던 서주와 진나라를 생각하면 기원전 1122년부터 기원후 907년까지 1140년간 장안과 인근 지역은 중국의 중심이었다. 장안은 낙양(洛陽, 뤄양)에 견주어 서도(西都) 또는 상도(上都)라고도 불리기도 했으며, 낙양과 함께 송대 이전까지 중국의 중심 도시였다. 장안과 낙양이 고대 중국의 수도였던 것은, 당시 황하와 그 지류 유역이 중국에서 가장 농업생산력이 풍부했었고, 따라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 본디 중원이란 이 지역만을 한정하여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지금의 척박함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정도지만 말이다.

중국 고사에는 장안을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得長安者得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고대사에 있어서 그야말로 핵심적인 지역이었으며, 진시황유방은 이 장안이 포함된 관중 일대를 기반으로 천하를 얻었고, 오호십육국시대전진前秦과 후일 수나라의 전신이 되는 남북조시대북주北周 역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화북을 통일한 바가 있다.

1.3.3. 쇠퇴

장안이 망한 이유는 당나라 이후의 기후변화 때문이다. 당나라 이후 이 지역은 농사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가 되었으며(건조하고 추워졌다), 한때 중국에서 제일 번성했던 곳이었으나 이후 쇠퇴를 거듭하게 된다. 이후 중국사의 중심은 이곳으로부터 좀 더 동쪽(해안)지역으로 옮겨갔으며, 양쯔 강 유역이 개척되고, 북쪽으로도 영역을 넒힘에 따라 시안과 뤄양은 중국사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다. 허난성의 카이펑에 수도를 정했던 북송을 마지막으로, 이후 왕조들은 난징(초기의 중화민국)과 베이징(명, , 및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도읍한 것도 그 때문.

지금은 지방도시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공산당 전선을 시찰온 장제스장쉐량이 잡아가둬 제2차 국공합작을 요구해 결국 성사시킨 시안사건 등 역사에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최근 시안 시는 개방 도시로 지정되어,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통로이자 중국이 추진하는 서부대개발의 교통요지로서 중국 서부 최대의 도시가 되고 있다. 개혁 개방 이전에도 시안은 중국 경제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해 왔지만, 최근에는 경제발전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성 안의 공업에서 중공업의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고, 국방 산업 등의 특수 공업을 기반으로, 경공업이나 기술 개발력을 중시한 공업 정책의 결과이며, 최근에는 하이테크 신기술 산업 개발구, 경제 기술 개발구, 곡강 신구, 생태구, 염양국가 항공 하이테크 기술 산업 기지의 「4구 일기지」를 설치해, 첨단기술의 개발과 산업화를 추진하는 경제정책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1.3.4. 유적들

xi-an-south-gate-city-wall.jpg
[JPG image (Unknown)]

시안의 벽. 경악스러울 정도로 높고 넓다. 성벽위에 사람들이 서 있다. 코에이 삼국지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에게는 악명높은 3중 성벽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시안은 성벽을 중심으로 안쪽이 중심가이다. 성벽은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물론 삼국지 시대의 것은 아니고 명나라 때의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 (이것은 문화대혁명기간 동안 성이 박살난 베이징과 매우 대조적이다.) 성벽 위로 올라가서 둘러보는 것도 가능한데, 대단히 높고 두꺼운 성벽이 둘레 14km 에 달한다. 아예 위에서 자전거나 전동차를 대여해주기도 할 정도. 성문에 따라 다르지만 어떤 문은 아래로 차도 다닌다. 도시 자체도 역사적 볼거리가 많은 곳이고, 근교엔 저 유명한 진시황 병마용역덕후라면 한번쯤 방문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도시.

1.4. 이름

Sean. 영어권 이름이며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에서 자주 보이는 이름이다. 샨 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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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보통 아몬드 냄새라고 일컬어지는데 흔히 생각하는 아몬드 고소한 냄새가 아니라 덜익은 아몬드에서 나는 냄새로 일반인은 접할일이 없을것이다. 덜익은 아몬드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것은 덜익은 아몬드에 시안화합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
  • [2] 전국시대 중기 때까지는 옹(雍)이었으나, 효공 때 천도했다.